#헤비 #L #드라마 #노아 #????
원본 by 赤魔の牌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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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3>
<1>
갑작스럽지만, 여러분은 벼락을 맞아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지금 막 맞았다.
소박한 선술집.
몇 명분의 자리를 대충 이어 붙인 단체용 구역.
떠도는 술기운과 미인들의 손짓에 기분이 좋아진 채 안내받은 방석 위, 내 정면에는 이미 한 여성이 정좌하고 있었다.
유려한 백발을 단아하게 묶어 옆으로 내리고.
마음을 연 사이 앞에서는 노출이 많은 옷도 잘만 입으면서, 오늘은 손목까지 덮는 터틀넥 차림이다.
자연스럽게 유도된 시선 끝에는 잘 정돈된 손끝과 네일이 비쳐…아니. 상대의 눈에서 눈길을 돌리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 끝이다.
체념과 용기를 뒤섞어 억지로 고개를 들자…아아, 역시나.
“후후, 안녕하세요.”
그녀의 이름은 우시오 노아.
“노아즈 아크라고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우시오 노아라고 몇 번을 말해.
“당신의 성함은…….
후후. 여쭐 것도 없겠네요. 유명인사분, 이시니까요♪”
“그, 그럴까요. 길가에 굴러다니는 나무토막 같은 존재입니다만.”
“어머, 겸손은 좋지 않아요.
이름이란 신념이 깃드는 법.
자신의 가치를 속이는 자는 언젠가 스스로 깎아내린 그 가치에 의해 파멸하게 됩니다.
부디 자신의 이름에 자신감을 가지세요. ‘샬레의 선생님’ 씨♡”
가명에 대해 지적당했다.
어느 입이 그런 말을 지껄이는 걸까.
노아즈 아크 여사는 슬림하게 뻗은 손가락을 입가에 대고 무척이나 고상하게 ‘호호호’ 웃는다.
왠지 약간 노아답지 않다.
어, 설마 이거 연기인 건가?
이 녀석, 설마 진심으로 속일 수 있을 거라 믿는 거야?
맞춰주는 게 예의인 걸까?
뇌내 회로를 유연하게 회전시킨다.
그래, 언제나 하던 그거다.
나에게 장난을 치고, 놀리고, 깔깔 웃는 것.
노아가 제일 좋아하는 놀이에 어울려 주는 것, 단지 그뿐인 일이다.
여기는 엄연히 술자리.
미성년자가 섞여 있다는 것 자체는 옹호의 여지가 없으니 나중에 엉덩이 때리기 형에 처하기로 하고,
지금은 그녀의 유흥에 맞춰주기로 하자.
어쩌면 나름의 의도가 있을지도 모르니 쓸데없이 캐묻는 건 금물이다.
숙녀에 대한 예절을 갖추고, 신사의 가면을 다시 고쳐 쓴 뒤 노아…아니, 아크 여사에게 시선을 향한다.
“노아즈 아크 씨, 로군요.
오늘은 잘 부탁드립니다. 실례지만, 특이한 성함이시네요.”
미팅이란 담소의 장.
남녀가 친교를 다지는, 혹은 애욕과 육욕의 전장으로서 각자 지혜를 겨루는 곳.
그렇다, 여기서는 가장 혀끝을 날카롭게 벼리고 달변을 토해내는 자가 승자가 된다.
언어를 이용한 사냥터다.
곧장 선제 펀치를 날린다.
선생답게.
이름에 대한 의심이 노아에게 압박이 될 수 있을까.
위력은 낮을지 몰라도 견제구로는 적당하다.
“어머, 후후후♪ 자주 듣는 소리네요♪”
“기분을 상하게 해드렸다면…….”
“아니요, 괜찮답니다. 친구들도 제 이름을 놀려대서 익숙하거든요♪”
예상대로 노아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태연하다.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생글생글 웃음을 흘린다.
노아의 표정은 읽기 힘들다.
차라리 완전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자라면 오히려 속내를 떠볼 수라도 있을 텐데.
그녀는 복면을 철저히 쓸 때도 있고, 쉽게 얼굴에 드러낼 때도 있다.
강인한 여걸의 측면과 보호해야 할 아이의 측면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상반된 표정들.
그 마음의 기미를 살피며 말을 자아내야 한다.
조금이라도 건성으로 대답했다가는 금세 시무룩해져서 토라지고 삐지고, 끝내는 자기 방에 틀어박힐 때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번거롭다.
“아, 지금 막 기분이 상할 것 같아요♪”
“컨디션 난조이신가요.
술도 입에 대지 않으시는 듯한데, 어떻습니까. 오늘은 이만 파하는 게.”
내 무례한 생각을 간파한 건지, 노아의 눈꺼풀이 웃는 얼굴 그대로 2밀리 정도 열린다.
너무너무 무섭지만, 여기서 기가 죽을 내가 아니다.
나도 명색이 어른이다.
이성에게 몰아붙여진 경험 따위 셀 수 없이 겪어왔다.
말하자면 과거에 밟아온 바퀴 자국이다.
아무리 노아가 희대의 미인이라 해도 어린애 상대로 긴장할 리가 없다.
아무리 노아가 반야의 가면을 쓴다 해도 어린애 상대로 겁먹을 리가 없다.
진짜라니까. 선생은 거짓말 안 해.
그 증거로, 그녀의 얼음송곳 같은 시선에 꿰뚫리면서도 보시는 바와 같이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
나아가 재치 있는 야유로 받아치기까지 했다…는기분이 든다.
어떠냐 노아, 나도 맨날 지고만 살지는 않는다고.
승리는 나의 것.
“후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술이 약해서요.”
“아아, 그러셨군요. 무척 아름답고 젊어 보이셔서, 혹시 미성년자가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어머나, 말씀도 참 잘하시네요.”
말끝에 미소를 머금은 채 노아의 눈꺼풀 폭이 5밀리까지 넓어진다.
이 표정은 기억하고 있다.
그녀가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
누군가의 과오를 밝혀낼 때,
다음 화살을 시위에 먹일 때 보이는 눈매의 습관이다.
요컨대 화가 났다.
만화라면 이마에 핏대가 솟아오를 정도로 불쾌한 감정을 쌓아두고 있다는 증거.
이번에야말로 등줄기에 오한이 스친다. 위험할지도.
“샬레의 선생님 정도 되는 분이라면 역시 저 같은 동안의 꼬맹이는 상대하고 싶지 않으신 걸까요.”
“천만에요. 불쾌하게 해드렸다면 사과드립니다.
아크 씨의 아름다운 얼굴을 마주하니 저도 모르게 들떠버렸군요.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고개를 들어주세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아닙니다, 귀인께 신경을 쓰게 해서야 어른으로서도 남자로서도 체면이 말이 아니죠.
무엇으로든 보답하게 해주십시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그녀는 말을 끊고 매끄럽게 뻗은 손가락을 턱에 갖다 댄다.
노아의 시선에서 격류가 사라지고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안색을 보니 일단은 안심이다.
어른스러운 척하는 연기보다는 역시 이 표정이 그녀에게 어울린다.
“그럼 저와 친목을 다져주시겠어요?”
“친목을요?”
“네♪ 예를 들면 좋아하는 것이라든가, 취미라든가. 휴일을 보내는 방법이나 일에 대한 푸념이라든가.
무례할지도 모르지만…저, 당신에 대해 알고 싶거든요.”
“─…….”
거짓말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우시오 노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는.
왠지 그녀가 오늘 이 자리에 잠입한 이유를 깨달았다.
원래 우시오 노아는 공평한 사람이다.
그렇게 있고자 자신을 다스리고, 그렇게 존재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규정해 버린 아이.
…아니, ‘버린’이라는 표현은 나의 편견이 섞여 있으니 적절하지 않지만.
“어떠신가요. 취미는?”
“취미 말입니까.
글쎄요, 소셜 게임을 조금 즐기고 있습니다.
이건 약간 자랑입니다만, 요전에 상위 2만 명에게만 배포되는 플래티넘 트로피를 획득해서 말이죠,”
“그렇군요. 그럼 취미는요?”
“……. …보기보다 손재주가 좋아서요. 업무 틈틈이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이 아주 흥미롭고,”
“그거 참 대단하네요. 그럼 취미는요?”
“……. …이건 여기서만 하는 말인데. 학생들의 졸업 앨범을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말이야,”
“그러셨군요. 그럼 취미는요?”
“…….”
저항도 무의미하다.
당연한가.
그녀가 원하는 답을 내놓을 때까지 용서는 없으리라.
그만한 각오를 품고 그녀가 이 자리에 있다는 뜻.
무시할지 말지, 결정권은 나에게 있지만.
어느 날, 그녀는 의문을 던졌다.
‘어째서 선생님은 주관을 개입시키면서도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건가요’라고.
나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감정치이며 지극히 평범하고 흔해 빠진 해석이지만, 노아는 그것을 거듭 이해하고 싶어했다.
객관성이라는 단어에 집착한 나머지 주관을 배제해 온 자신의 가치관.
그 지표의 개정에 나 따위의 삶을 참고하고 싶다는 것이다.
듣기 좋은 말도 이 정도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시에는 당황했다.
“…과연.”
꿀꺽, 단숨에 잔을 들이킨다.
이 정도로 취기에 삼켜질 만큼 나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릴 필요는 있었다.
이것은 용기와 각오의 문제다.
떨리는 변명을 술과 함께 삼켜야만 한다.
다시 그녀의 얼굴을 직시한다.
자수정 빛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흩날리는 꽃잎을 떠올리게 하는 그 눈동자를 향해 거짓 없이 이야기한다.
“보잘것없는 생각이라도 괜찮다면 기꺼이.”
“─네, 잘 부탁드립니다.”
‘속내를 드러내라’.
우시오 노아의 요구를 정면으로 받아들였다.
<2>
“인간 찬가를 좋아합니다.”
“…….”
어느덧 5분.
사고의 바다에서 돌아온 선생님이 드디어 말문을 여셨습니다.
나와 그가 마주 앉은 이 탁자는 양옆에 묘령의 남녀를 여럿 거느리고 있음에도 우리만 공간에서 잘려 나간 듯 정적을 머금고 있습니다.
마시지도 못할 잔에 부어진 연갈색 알코올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고독과 긴장에 목덜미에 땀이 배어 나오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후회와 초조함,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아주 약간의 용기를 뒤섞으며.
나는 알고 싶은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당신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알아야만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지표로 삼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없습니다.
내 것으로 만들겠다고 결정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말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아, 그러니까.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 당신을.
“…인간 찬가…말씀이신가요?”
“네. 떠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웃겠지요. 그래서 평소엔 입 밖에 내지 않습니다만.”
오늘 밤만은 특별히, 라며 선생님은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댑니다.
넋을 잃을 뻔한 자신의, 붉게 달아오른 뺨을 깨닫고 고개를 흔들며 가벼운 기침과 함께 잡념을 털어냅니다.
“인간 찬가.
‘공포나 약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고결함이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말과 개념’.”
“오. 아크 씨는 박식하시네요.”
“일반 상식이에요.”
“아니요, 참으로 늠름한 자태와 단어 선택이군요.
그 센스, 분명 업무에도 활용하고 계신 게 아닌지.
설마 비서…서기 같은 직종은 아니신지.”
“후후.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선생님의 가벼운 농담을 딱 잘라 봉쇄합니다.
어렵사리 당신의 흉금을 열게 했습니다.
평소처럼 연기 속에 휘말릴 제가 아닙니다.
오늘의 우시오 노아는 진심입니다.
선생님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 짓더니 다시 술을 들이킵니다.
내가 즐길 수 없는 그 액체의 맛은 당신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할까요.
아아, 알고 싶다. 기록하고 싶다.
“나는 무적의 초인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만화 이야기인가요?”
“그렇죠,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상관없습니다.
소설, 코믹스, 카툰…왕왕 ‘완성된 존재’라는 거물들이 비위에 거슬리거든요.”
신기합니다.
선생님의 입에서 부정의 단어가 나오는 것이 이토록 생경하게 느껴지다니.
위화감…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조금 평소의 당신에게서 떨어져 있는…그런 감각.
꿀꺽. 경쾌하게 목을 울리며 선생님은 세 번째 알코올을 입에 머금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술의 효과인 걸까요.
평소의 기록에 비해 한 숟갈 분량의 붉은 기를 머금은 당신의 뺨이 쓴웃음으로 일그러집니다.
“아크 씨도 아시다시피, 나는 샬레의 선생 직을 맡고 있습니다.”
“네. 아주 훌륭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이네요.”
“빈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네요.
샬레의 선생님, 아주 힘든 일입니다.
여러 학원 간의 분쟁에 공명정대하게 중재를 하고, 다양하게 모인 학생들에게 차별 없이 사랑을 쏟고.
천칭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당신의 맑은 심성 덕분이니까요.”
“후, 후후후. 참으로 간지러운 말씀을.”
목을 떨며 선생님은 웃으십니다.
큭큭큭.
어울리지 않는 웃음소리가 유난히 귀에 남았습니다.
“제자 중에 아크 씨와 똑같은 말을 하는 아이가 있거든요.”
“어머.”
“그 아이가 그러더군요.
‘당신은 주관을 내포한 채 타자를, 세계를 객관시할 수 있다.
그것은 무척 훌륭한 일이며 본받고 싶다’라고.”
“……. …후후. 그럼 그 아이는 좋은 본보기를 얻었네요.
지금쯤 읽어내려 기를 쓰고 있을 테지요.”
야유로 답할지, 불쾌함을 드러낼지.
선생님이 던진 질문에 일단은 본심을 놓아보았습니다.
내 마음은 변함없이 그때 그대로.
당신을 읽어내고, 당신을 기록하고. 강한 주관을 가졌으면서도 사람들을 객관성 아래 재결할 수 있는 당신의 천칭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큭큭. 글쎄요, 그건 어떨까요.”
“─…….”
그렇게 나는 경직되었습니다.
넋을 잃은 것입니다.
나를 응시하는 그 얼굴에.
빨려 들어간 것입니다.
던져진 그 두 눈동자에.
빼앗긴 것입니다.
마음의 멍에를, 그 말마디마다 자아내는 그 입술에.
혹은, 겁을 먹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기록한 적 없는 당신의 얼굴을, 그 시선의 흔들림을.
단어의 무게를,
열량을.
“아크 씨.”
취기를 머금고 검게 탁해진 그 눈동자 색을 엿보고서.
“과연 나는 정말로 학생들을 객관시하고 있는 걸까요.”
당신의 자조 섞인 시선과 입꼬리를 엿보고서, 겁을 먹은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평등. 공평. 참으로 듣기 좋은 울림이지요.
귀에 감기는 달콤한 단어들.
자신의 올바름을 증명해 주는 듯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다르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큭큭.”
변함없이 선생님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조소를 흘리십니다.
취기에 사로잡힌 사람의 흐릿한 자세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록합니다.
“어른을 자처하는 남자 이야기를 하죠. 술자리 안주로는 무척 따분한 이야기입니다만.”
“…들려주세요.”
“남자는 평소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나는 어른이다’라고.
남자는 늘 마음을 다했습니다.
‘어른은 아이의 편이어야 한다’라고.”
“…그것을 그분은 고통스럽게 여기는 건가요?”
“천만에요. 남자는 매일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설마 싶어 다시 물었지만 나의 기우를 선생님은 호기롭게 걷어차셨습니다.
샬레의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당신에게 주는 수많은 고통.
그것에 괴로워하고 있었다는 나의 흔해 빠진 사고 회로를 부정하며 당신은 말을 엮어갑니다.
“아이들과 교감하는 시간은 그에게 보물이었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인생의 명제라고 인식할 정도로.”
“…….”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윽고…아아. 감사하게도 남자의 곁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주었습니다.
정말로 기쁩니다. 기쁜 일이죠.”
몽상하듯 허공을 바라보는 선생님.
그 눈동자에는 눈앞의 내 모습이 비치고 있습니다. 분명 다른 많은 아이도 함께.
“누구나 다 착한 아이들이었습니다. 나쁜 존재 따위 한 명도 없었죠.”
“너무 다정한 말씀이시네요.”
“큭큭, 꿰뚫어 보고 계신 모양이군요.”
키보토스 주민의 상식은 쉽게 선생님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방아쇠 하나로 부서지는 당신의 꿈길.
가벼운 야유를 섞는 것도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낄낄거리는 경박한 웃음과 함께 선생님은 이어갑니다.
“물론 대응은 천차만별입니다.
나는 학생들의 선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먼저 살고, 뒤에 따르는 자들에게 길을 제시한다’는 이유로 ‘선생님’.”
“당신의 가르침에 구원받은 학생은 많습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에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쁘군요. 겸손은 무례한 법, 솔직하게 칭찬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내 안색을 살피며 미소 짓는 당신. 역시 그 눈동자에 내 모습은 깃들지 않은 채.
“그렇다면.”
잔을 쥔 당신의 손끝이 떨렸습니다.
불과 2밀리의 미동. 그 모습에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당연히 정반대의 입장이었던 자들도 있다는 뜻이지요.”
예상치 못한 단어가 던져졌습니다.
“아크 씨, 나는 무적의 초인이 싫습니다.”
꿀꺽, 잔을 비우며 선생님은 말합니다.
무척이나 달변으로. 춤추듯 혀끝이 스텝을 밟습니다.
“모든 것을 내다보고,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완전무결한 해피 엔딩을 거머쥐고.
누구든 차별 없이 평등하게 균일하게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주인공 같은 초인을.
이야기 속의 초인을 나는 혐오합니다.”
왜 싫어하는가. 왜 혐오하는가.
당신의 사고 회로에 물음을 던져봅니다.
선생님이 말하고자 하는 초인이란 누구인가. 완벽이란 무엇인가.
“남자는 어느 날, 입장이 갈린 학생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
이야기가 비약…확실치 않았지만, 아마도 취기가 만들어낸 결과이겠지요.
선생님은 허공을 향해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남자는 학생에게 간청받았습니다.
‘배신자를 찾아주세요’, ‘찾아서 처단해 주세요’.”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당신에게 의뢰를 가져왔던 어느 학생의, 고뇌로 일그러진 표정을 떠올립니다.
“남자는 학생에게 부탁받았습니다.
‘우리들을 도와주세요’, ‘청춘의 나날을 지켜내고 싶어요’.”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당신의 두 손에 매달리던 어느 학생의, 초조함에 쫓기던 표정을 생각합니다.
“남자는 학생의 의사를 존중했습니다.
남자는 학생의 힘이 되어주었고, 학생의 꿈을 지켰습니다.
결과만 본다면 해피 엔딩. 남자가 지불한 나름의 노력과 노고를 훨씬 상회하는 대가를 얻었습니다.
‘학생들의 청춘을 지켜냈다’는 대가.”
“…선생님?”
그렇게, 갑작스럽게.
수치심인지 조소인지 분간하기 힘들던 선생님의 표정에서 열기가 사라졌습니다.
“남자는 잊고 있었습니다.
‘배신자’에게 집착하던 학생을 다그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바로잡은 길이야말로 정도(正道)라고 믿으며 강요하고는.
학생을 상처 입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
확신에 다다릅니다.
목적을 달성했다는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동시에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부유감을 느꼈습니다.
엎질러진 물이 그릇으로 돌아갈 수 없듯, 부어진 알코올이 이끄는 대로.
“어른을 자처하는 그 남자.
그는 수많은 사건을 해결해 왔습니다.
뭐,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뇌가 밀려오는 나날도 있었겠지요.
우울함에 고개를 숙이는 날도 있었을 겁니다.”
“…….”
“그리고 보답으로 대가를 받는 것을 무한한 기쁨으로 여겼겠지요.
학생들의 미소.
그것이야말로 남자의 기쁨.
그것을 능가하는 가치 따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남자는 오직 그것만을 위해, 정도를 계속 걸어왔습니다.”
“…….”
내가 선생님에게 강요한 일련의 귀결. 이번 막이 오른 이유.
“그래요. ‘그 나름의 정도’를 말입니다.”
선생님의 흉금을 열게 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크 씨. 이 세상에 올바른 천칭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요.”
“…….”
“적어도 남자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런 결론에 도달했죠.”
“…….”
“남자가 조율할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천칭은, 치명적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자신만의 정도’로 기울어 있었던 겁니다.”
“…….”
웅성거림에 지워져 버릴 것 같은 연약한 음색이 이명처럼 귓가에 맴돕니다.
그의 본심이, 듣고 싶고 알고 싶고 기록하고 싶어 견딜 수 없었던 선생님의 본심이.
두개골 안쪽에서부터 두들기듯 뒤흔듭니다.
“남자는 학생에게 정도를 가르쳐주지 못했습니다.
카야의 마음을 구하는 일을, 나는 끝내 해내지 못했어.”
푸념하며. 술을 들이켜고.
“남자는 정도라고 믿었던 길로 학생을 인도하며 고초를 겪게 했습니다.
아리우스 아이들을, 나는 방치해 버리고 말았어.”
푸념하며. 술을 들이켜고.
“남자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며 스스로를 속이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위대한 선대 프레나파테스를 죽였어. 내가 죽였습니다.”
푸념하며. 술을 들이켜고.
“남자는 자신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 빠졌습니다. 거만함이었고, 자만심이었습니다.
어딘가 마음 깊은 곳에서, 매달리고 있던 것을 다 버리지 못했어.
타산을, 오산을, 소망을. 무른 생각을 버리지 못했던 겁니다.”
주먹으로 감싼 잔이 떨림을 견디지 못하고 소리를 냅니다.
달그락달그락.
당신의 마음이 삐걱거리는 소리도 소음에 파묻혀 사라집니다.
“그래. 내가 선택을 틀리지 않았다면. 내가 완벽한 초인이었다면.
나에게 구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면.”
서류에 기록된 일련의 과정을 상기합니다.
간소하고 간결하며 정확한 밀레니엄의 보고서.
처음 그것을 훑어보았을 때는 지나치게 감정이 배제된 서문을 용납할 수 없어, 작성자인 리오 회장에게 항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오직 유우카 짱만이 당신에게서 들었던 말을 통해서.
리오 회장이 당신을 배려하여 단어를 고르고 골랐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세 명을 죽게 할 일은 없었을 텐데.”
“…….”
당신의 애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크 씨. 나는 인간 찬가를 좋아합니다.”
“…….”
“인간찬가는 용기의 찬가.
타산 없이, 공포에 떨면서도 지켜야 할 자를 위해 맞서는 인간의 ‘용기’…볼품없더라도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인생 그 자체…….”
“…….”
“완벽한 존재에게는 결코 태어날 수 없는 인간의 꿈.
초인에게는 결코 찾을 길 없는 인간의 공백.
곤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의 용기를 나는 사랑합니다.
그것을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해 어른 흉내를 내고 있는 겁니다.”
“…….”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고.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언젠가 당신이 흘렸던 혼잣말을 떠올렸습니다.
굳이 부정할 것도 없이, 당신은 우리에게 누구보다 무엇보다 좋은 분이셨기에, 선생님 나름의 자기계발이라 생각했습니다.
더 나은 고지를 지향하는 당신의 고결한 마음의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군요.
“방황하는 아이들의 이정표가 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아이들이 내딛는 한 걸음을 지탱해줄 수 있다면.
남자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소행을 ‘어른의 책임’이라 속이고, 자신의 욕망에 대한 해답을 ‘어른의 의무’라고 기록했습니다.
아아, 참으로 듣기 좋은 울림이지요.
신념과 긍지를 보여주는 것은 궁극의 자기만족이기도 하니까.
스스로를 고무하고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으니까요.”
“…….”
“하지만 말이야, 노아.”
드디어 눈동자 속에 나의 그림자가 비쳤습니다.
검게 탁해진 진흙탕 속에 하얀 그림자가 번지고, 녹아들어.
“네가 ‘주관’이라고 불렀던 것.
내가 주관을 섞으면서도 사람들을 공평하게 심판하는 이상적인 기구라고 숭상했던 것.
내 안의 천칭.”
녹아서 사라지듯 흩어지고. 풀려서 해체되듯 뒤섞이며.
융해되어 당신 안으로 잠입한 나의 사상이.
“처음부터 그런 거, 기울어 있었어.”
녹아내려.
불타 문드러지고 추하게 일그러진 채 달라붙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한쪽 편을 들었어. 그래서 나기사를 상처 입혔지.”
고해.
올바른 행위에 의해 인도된 올바른 결말.
그러나 학생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는 사실은 변함없고.
“나는 한쪽을 인정하지 않았어. 그래서 카야를 타이르지 못했지.”
고해.
올바름을 행하고 올바름을 설파하고.
그러나 가르치고 이끄는 자의 책임도 본연의 뜻도 다하지 못하고.
“나는 한쪽의 손을 잡지 않았어. 그래서 스바루는 한탄하고 있었지.”
고해.
올바른 자들의 올바른 말을 믿고.
그러나 그것은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추궁당하고.
“나는 한쪽의 미소를 선택했어. 그래서 위대한 선대 프레나파테스를 쓰러뜨렸지.”
고해.
올바르게 있으라.
책임을 걸치고 올바르게 있으라.
신념을 믿고 올바르게 있으라.
긍지를 새롭게 하고 올바르게 있으라.
기탁받은 희망, 짊어진 꿈길과 함께 올바르게 있으라고.
“나는 구하지 못했어. 아인을. 소프를. 오르를. 구하지 못했단 말이야.”
그것은 진정한 고해였습니다.
이미 다 말라버린 것이겠지요. 한 방울의 눈물도 흐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그의 말이었습니다.
둑이 터진 듯 쏟아져 나오는 속마음.
잠시도 한눈팔 수 없고, 한 마디도 놓칠 수 없습니다.
“노아. 나의 천칭 따위 처음부터 뒤틀려 있었어.
기울어 있었다고.
처음부터 나는 주관에 사로잡힌 채였어. 객관성 같은 건 가지고 있지도 않았지.
언제까지고 어디까지고 자신만의 가치관에 도취해서, 내 안의 정도가 똑같이 학생들의 정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거야.”
얼어붙은 나의 양 귓가에 걸쭉하게 녹은 열량이 주입됩니다.
내가 바랐던 결말입니다.
내가 바랐던 해답입니다.
알고 싶었습니다. 아아,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본심을 알고 싶었습니다.
“악을 행한 학생을 심판했어. 그것이 악의라고 천칭을 기울였으니까.”
이것이 당신의 본심. 선생님으로서 행한 일들. 선생님으로서 선택한 귀결.
“길을 잘못 든 학생을 인도했어. 그것이 잘못이라고 천칭을 기울였으니까.”
이것이 당신의 본심. 어른으로서 설파한 수많은 것들. 어른으로서 바랐던 전망.
“가로막는 위협을 물리쳤어. 그것이 옳은 행위라고 천칭을 기울였으니까.”
이것이 당신의 마음속.
“있잖아, 노아.”
이것이 당신의.
“나 같은 걸 본받으려고 하는 거, 그만둬.”
“─…….”
당신이 나에게 줄곧 그려왔던 진의.
“이런 거야. 네가 동경했던 천칭의 정체는. 네가 바랐던 공명정대한 해답은.”
아아, 제발.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습지 않니.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갈구하고, 완성된 존재를 절망적으로 바라고, 동경하고, 질투하고.”
아니에요. 아니에요. 선생님은 틀렸습니다. 착각하고 계신 거예요.
“어중간한 인간일 뿐이야. 나는 어디까지나 범부일 뿐이지.
주워 올린 것들만 과시하고, 놓쳐버린 것들로부터 눈을 돌리며.”
치명적인 착각입니다. 있어서는 안 될 인식의 어긋남입니다. 아니에요, 선생님.
“뭐가 ‘어른’인가. 뭐가 ‘선생님’인가. 뭐가…….”
당신이 하시는 말씀은. 당신이 바라고 있는 해답은.
“노아.”
아아, 그 말만은 하지 마세요.
“나 같은 사람을, 이제 그만─”
그 말을 들어버리면, 나는.
“큭큭큭.”
그 순간, 긴장의 끈이 소리를 내며 끊어졌습니다.
어긋나 있던 초점이 한꺼번에 돌아오고,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듭니다.
목소리의 주인은 선생님의 등 뒤에 서 있었습니다.
온몸을 검은 정장으로 감싼 차림의 인물.
“과음하셨군요. 술에 삼켜지다니, 한심하긴. 확실히 지금의 당신은 어른 실격입니다.”
“뭐라고…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큭큭. 지껄이고말고요.
발걸음조차 불분명한 애송이와 나눌 거래 따위는 없습니다. 오늘은 이만 파하도록 하죠.”
그 인물은 선생님의 어깨에 팔을 두르더니, 힘겹게 부축하며 일어납니다.
비틀거리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달려갔습니다.
그러자 검은 옷을 입은 인물이 나를 쏘아봅니다.
등줄기에 오한이 스치는 듯한 감각.
왜일까요. 분명 선생님의 지인일 거라 짐작할 수 있음에도 공포가 가시지 않습니다.
“큭큭큭, 그럼 당신에게 맡기도록 하죠. 아크 여사.”
“엣, 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은 인물은 선생님을 나에게 떠넘깁니다.
실제로 부축해 보고는 탄식했습니다.
아아, 가볍다. 당신의 몸무게가 이토록 가벼울 줄이야.
“어이…검은 양복…….”
“잔소리도 원망도 듣지 않겠습니다. 용건은 나중에, 취기가 깨고 나서 다시 하시죠. 큭큭.
지금처럼 꼴사나운 당신에게 제가 건넬 말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뭐라고…….”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럼 평안하시길, 선생님.
다음에 만날 때는 부디 어른으로서의 대화를 즐기고 싶군요. 큭큭큭.”
그 말을 끝으로 그날의 술자리는 끝이 났습니다.
우리는 검은 인물에게 불평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반쯤 쫓겨나듯 차가운 밤공기 속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여전히 독한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선생님을 껴안고, 나는 깊은 생각과 함께 샬레로 향하는 귀갓길을 택했습니다.
<3>
“너무 많이 마셨어…….”
“그러게요~”
“말을 너무 많이 했어…….”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등에 업힌 선생님이 중얼중얼 무언가 읊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샬레로 향하는 귀갓길.
네온 거리의 불빛이 색을 달리하며 우리의 발걸음을 수놓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일렁이는 형광등의 광채가 서로의 등을 태우고 있었습니다.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할 생각이 아니었는데……. 거기까지는…….”
“그렇게 낙심하지 마세요, 선생님.
술에 취해 실수한 이야기,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었던 건 저에게 요행입니다.
앞으로의 인생에 밑거름으로 삼을게요♪”
“누구 때문인데…….”
원망 섞인 어조가 강해집니다.
그럼에도 그 말끝은 너무나 작고 나약한 채로.
매달리듯 내 어깨에 둘러진 당신의 두 손은 손가락 끝까지 힘이 빠져 있어서.
사실 나에게 업히는 것 따위 당신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나에게 이 행복한 한때를 선사해주고 있습니다.
“창피해…….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
“맨홀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만.”
“더러워서 싫어……. 노아가 파줘……. 내 무덤을 파줘…….”
“어머나, 그건 프로포즈로 받아들여도 될까요?”
“됐어 이제……. 마음대로 해…….”
“자포자기하시기는.”
여전히 투덜대며 불평을 늘어놓는 그를 다시 고쳐 업습니다.
너무나 가볍습니다.
그의 키와 나의 키를 비교하면 본래라면 발걸음이 무거워져야 마땅한데.
헤일로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완력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서로의 차이를 곱씹으며 걷습니다.
“죽고 싶어…….”
“아직 죽음의 문턱까지는 멀었습니다.”
“이대로 불규칙하게 살다간 금방이야……. 세리나가 그랬단 말이야…….”
“그렇다면 선생님, 죽는 김에 제 이야기 하나만 들어주세요.”
“싫어…….”
“시체는 불평하는 거 아니에요.”
“…….”
딱 잘라 반론을 봉쇄하고.
이제 정말 시체가 되어버린 것처럼 등에 실려 흔들리는 당신의 미세한 온기를 느끼며, 천천히 발걸음을 계속 옮깁니다.
“선생님이 미팅에 나가신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을 때는 욱하고 화가 치밀었습니다.”
“…화났어……?”
“화났습니다. 뿔도 돋아날 것 같아요. 우시오니가 될 뻔했다고요.”
네온사인과 달빛이 녹아드는 길거리.
자율주행 셔틀이 밀레니엄행 안내판을 띄우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데려가 버릴까. 찰나의 유혹을 눈을 감으며 삼키고 계속 걷습니다.
“그렇게나 학생 여러분께 사모받고 계시면서.
그렇게나 유우카 짱을 홀리고 계시면서.
여자들을 꼬시러 가는 일에 들떠있는 당신을 보니…뭐랄까,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노아치고는 단순한 표현이네…….”
“죄송합니다,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거든요.
정말로 화가 났습니다. 배 속 한가운데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녹아 나오는 듯해서.”
질투심에 이름을 붙일 수 없었습니다.
너무나 어린애 같고 한심해서.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방해해 주자고 마음먹고 잠입한 겁니다.”
“…….”
“후후, 무슨 모임인지도 모르고 어른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는 건 나름대로 용기가 필요했답니다.
칭찬해 주셔도 된다고요.”
미끄러져 내려갈 듯한 그의 허리를 다시 받쳐 들고 고쳐 잽니다.
네온사인들의 배웅을 받던 보폭은 점점 주택가로 인도됩니다.
자판기와 가로등의 점점박이 불빛들이 새롭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당신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어떻게 괴롭혀 줄까, 어떻게 혼내줄까, 그것만 생각했습니다.
‘교사라는 사람이 여자 놀음이나 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요.
후후, 유우카 짱의 화내는 법을 한차례 흉내 내며 왔답니다.”
“……”
“하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당신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저로서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잘 설명할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사과할 일은 아니잖아.”
고개를 떨군 당신의 한숨이 목덜미에 닿습니다.
이런 때조차 두근거리는 심장에 어처구니없음이 뒤섞입니다.
아니요, 아니요. 선생님.
“죄송해요, 선생님. 저, 욕구를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
“알고 싶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을.
그곳에 품고 있는 당신의 색깔을, 본심을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
“…….”
가로수길이 고요히 스쳐 지나갑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의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지는 밤의 정적. 고해의 이정표.
“미팅. 이성과의 만남의 장이라는 의미가 통설이지만, 인맥 쌓기의 장으로도 마련된다고 하더군요.”
“…….”
“선생님.”
당신의 강한 마음을 믿으며, 진심으로. 앞으로도 나는 믿으며 살아가겠지요.
“저건 게마트리아와의 합동 미팅이었군요.”
“…….”
정적이 웅변하고 있었습니다.
가로등 간격이 조금 넓어지고 그림자가 길게, 길게 늘어집니다.
발걸음은 변함없이 느릿하게. 나는 추궁을 계속합니다.
“무엇을 알고 싶으셨나요?”
“…….”
“무엇을 얻고 싶으셨나요?”
“…….’
“얻은 인맥을 써서, 얻은 지식을 써서 무엇을 이루고 싶으셨나요?”
“…….”
“억측을 말해볼까요?”
“…아니, 됐어. 분명 정답일 테니까.”
한층 깊게 당신이 숨을 내뱉는 소리가 들립니다.
맞춰서 나도 눈을 감았다가 뜹니다.
“잘도 알았네, 노아.”
“아니요, 거의 유도 심문에 가까웠습니다.”
“추측인가……. 가르쳐줘,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어?”
“결정적인 증거는 검은 옷의 그분입니다.
그 인물은 선생님 한 명을 부축하는 데 온 힘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키보토스 주민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성인 남성 한 명 들어 올리는 것쯤은 중화기를 겨누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이니까요.”
커다란 혀 차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선생님이 내기에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아서, 우스운 나머지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집니다.
“칫…… .검은 양복 녀석……. 끝까지 내 발목을 잡는군……”
“그 시점에서 그분…검은 양복 씨인가요?
그분은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키보토스 밖에서 오신 분이라 추측했습니다.”
“그래, 정답이야. 그래서 너는 생각한 거겠지.
‘선생님이 키보토스 밖에서 온 인간과 만나고 있다.
즉 그것은 키보토스 밖의 인간으로만 구성된 조직, 게마트리아와의 회합을 의미한다’라고.”
“네. 하지만 결론은 맞을지 몰라도 도달한 과정은 다릅니다.”
“…….”
무모.
내가 얻은 해답을 말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겠지요.
그것은 너무나 무모한 일.
사실은 조금 쓸쓸하지만.
내일을 싫어했던 당신의 손을.
과거를 저주했던 당신의 손가락을.
잃어버린 세 명의 소녀를 되찾을 방법을 게마트리아에게 매달려 가면서까지 구했던 당신의 손끝을.
그 너머에 놓여 호곡을 공유할 수 없는 이 몸이 조금은 외롭지만.
“당신을 몰아세운 마당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송구스럽지만.”
“…….”
“아아, 그래도.”
그래도 선생님. 나는 당신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선생님.”
“…….”
밤의 장막이 정적 속으로. 무음으로 물든 두 사람의 그림자가 거리의 어둠 속에 녹아들어.
드디어 나는 진심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대로 당신이 말해주어서 진심으로 안심했습니다.
괴로운 게 당연합니다. 당연한 정동 반응입니다. 정말로, 정말로요.”
“…….”
“저기 선생님. 이건 제 욕심입니다만, 유우카 짱에게만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평등이라는 관념에서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저에게도 의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매달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우시오 노아는 당신의 버팀목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나의 천칭 같은 건 그런 거라고…….”
“아아, 맞다! 그건데요.”
부서져 내릴 것 같은 선생님의 말꼬리를 건져 올려 설득합니다.
아까부터 고개만 떨구고 있던 선생님이 약간 고개를 든 것을 등에 닿는 기척으로 느끼며.
“선생님. 당신의 조금 전 실수를 정정해 드릴게요.”
“무엇을…….”
“저는 ‘선생님이라는 기구’에 동경한 것이 아닙니다.”
“뭐……”
“저는 ‘당신의 천칭’에 동경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윤리’에 동경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의 존재 방식’에 동경한 것이 아닙니다.”
“…….”
짊어진 열기에. 스치는 살결과 살결의 온기에 마음을 실어.
“저는 ‘당신’을 동경한 것입니다.”
“─…….””
아아, 드디어. 드디어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동경했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갈망했습니다.
천칭의 기울기요?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선생님, 당신의 개성입니다.
존중받아야 할 점이죠. 제가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당신의 꿈길입니다.”
“…….”
“당신의 이상을 믿었습니다. 당신의 사상을 꿈꾸고 바랐습니다.
선생님. 저는 당신에게 매혹되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매혹되어 있습니다.”
“…….”
이렇게 길을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무엇보다 자랑스럽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어주는 당신이 누구보다, 누구보다 사랑스럽습니다.
양보할 수 없습니다.
설령 당신 자신이 당신의 존재 방식을 부정할지라도.
당신의 옆자리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주관을 섞으면서도 유지하는 객관성.”
“…….”
“내가 동경한 당신의 삶. 만약 그것이 언젠가 파멸로 향하는 길로 나를 유혹한다 할지라도.”
“…….”
‘나 같은 사람은, 이제 그만.’
당신이 말하려다 만 뒷이야기를 상기합니다.
아니요, 아니요. 그만두지 않을 겁니다.
술기운에 내뱉은 나약한 소리 따위, 이 애모의 정을 깊게 할지언정 결코 단념할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네, 네. 웃어넘겨 보이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걸어와서 다행이라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웃어 드릴게요!”
“─…….””
밤의 정적을 목소리가 갈기갈기 찢어놓습니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커져 버렸네요.
허공에 울린 목소리가 나를 현실로 끌어당겨 조금 뺨을 붉게 물들입니다.
“…에헴. 그러니까, 에, 뭐. 그렇다고요. 요컨대 말이죠 선생님.”
“…그거, 프로포즈로 받아들여도 되는 거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복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말이지, 금방 그렇게 농담으로 넘겨버리다니.
당신의 나쁜 버릇이자, 그리고.
“네.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상관없어요. ─놓아줄 생각 따위 털끝만큼도 없으니까요.”
“…정말이지.”
정적과 흑백이 수놓는 밤의 거리.
한 걸음 한 걸음, 착실하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일렁이는 별하늘과 달빛이 두 사람만의 세계를 비춥니다.
“앞으로도 노아에게는 이길 수 없을 것 같네.”
“네. 앞으로도, 영원히.”
앞으로도, 영원히.
나는 당신에게 계속해서 이겨 보일 겁니다.
그 너머에 우리의 여정이 펼쳐져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서로의 꿈길이 교차할 것을 믿으며, 지금은 평행하게 선을 계속 그어 나갑니다.
당신이 긋는 인생의 기로에 곁에 서서.
그 선이 휘어진다면 나는 함께 걷겠습니다.
그 붓끝이 방황한다면 나는 당신의 도움이 되겠습니다.
아아, 선생님. 저는 당신을 동경하고 있습니다.
“그건 그렇고, 안내역이었던 미인분에게 실실 웃으며 좋아하셨죠?”
“그런 적 없는데.”
“벌을 줘야겠네요~”
아직 귀갓길은 멀고 앞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닿지 않는 저편의 꿈의 빛깔을 향해 문제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당신과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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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분 생일ss 썼나 했는데 역시 쓰셨구나
아니 이름 너무 대충 지은거 아니냐고ㅋㅋㅋ
소설은 너무 맛있네 근데...
노아's 아크 = 노아의 방주 작중 선생은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존재들인 나기사,데카가키,아리우스 카야 프선생 등을 떠올리며 괴로워함. 성경에서 노아가 많은 종을 한쌍씩 구해 방주에 태워 구했지만 바꿔말하면 한쌍씩을 제외한 동물들은 구하지 못함. 그것을 괴로워하는 선생(노아)와 방주로서 끝까지 함께한다는 표현이지 않을까 싶네.
그래서 노아스 아크였구나
너무 좋구나
우당탕탕을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슈퍼 시리어스가
너무 마싯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