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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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de : 선생)
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스키를 처음 타는 사람이라서, 우리는 초급자 코스에 올라가는 리프트로 먼저 향했다. 줄이 길었기 때문에 잠시 서서 기다려야 했다.
"줄이 좀 긴데."
"그렇네요."
우리는 순서를 기다리며 짧막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여기 스키장 말고도 놀 게 많더라고."
"맞아요. 아까 보니까 뭐가 많던데."
"스키도 타고, 다른 것도 좀 하다 갈까?"
"좋아요. 헤헷."
이야기를 나누다가 고개를 들어서 앞을 보니 어느새 앞을 빼곡하게 매우고 있던 사람들은 많이 줄어든 뒤였다. 곧 우리 차례가 되었다. 우리는 리프트에 앉아서, 매우 편하게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 밑을 보니 조금씩 땅에 있던 게 작아져간다. 밑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코스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좋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데도 이렇게 느긋할 수 있는 게 얼마만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직접 높은 곳에 올라갈 때만 됐다 하면, 운명의 장난인지 그 상황은 매우매우 긴박한 상황이었을 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른. 책임과 의무,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당신의 선택.'
주마등을 봤던 적도 있고,
'틀렸어요. 떨어지는 속도가 줄어들지 않아요...'
공중의 특권인 경치를 감상할 여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선생님! 빨리 올라오세요!'
'너희는 이런 걸 어떻게 매일 하는거야-!!"
헬리콥터 프로펠러가 만들어내는 굉음과 엄청난 바람을 뚫고 레펠을 오르는 건 다반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리프트가 가끔씩 불규칙한 간격으로 덜커덩 하는 소리를 곁들여서 내 안전을 지켜주는 안전바 빼고는 별다른 방해 없이, 나는 여유를 즐기며 공중의 특권을 만끽할 수 있었다.
생각에 푹 빠져있다 보니, 어느새 리프트는 코스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리프트에서 조심스럽게 내려 코스의 시작 부분 앞에 늘어섰다. 그러나 먼저 내려가려고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음.. 우리 뒤에 분명히 몇 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러면 뒤에서 뭐라고 해."
"아... 그렇지만.."
그럼에도 다들 출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코스 밑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밑에서 보자."
"에?"
"예?"
나는 이마 쪽에 걸려 있던 고글을, 눈을 가릴 수 있게 내리며 짧게 한 마디 툭 던졌다, 직후에 당황한 듯한 단말마를 남긴 애들을 뒤로 하고 발을 틀어 자세를 맞춘 후, 폴로 땅을 한 번 탁 찍어 밀었다.
촤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스키가 밀려내려가기 시작하며, 정체불명의 배덕감과 함께 밀려오는 쾌감, 그리고 온몸에 점점 커지는 짜릿한 속도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유후! 신난다!!"
"선생니-"
뒤에서 무언가 고함이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그 목소리는 바람에 갈라져서 곧 사라지고 말았다.
*
"오랜만에 타니까 재밌고 좋네."
땅에 도착한 뒤 나는 고글을 벗고, 폴을 오른쪽 옆구리에 낀 채 뒤를 돌아보았다.
긴 코스이고, 다들 조심조심 내려오는지 눈알이 튀어나올 기세로 눈을 크게 뜨고 슬로프를 바라보아도 아직 헤일로를 비롯해 저게 우리 학생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내리는 눈이 조금 커진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차로 올라오는 동안 봤던 높은 경사와 넓지는 않은 도로를 떠올렸다. 나는 살짝 불안한 마음에 장갑을 벗어서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고, 휴대폰을 꺼내 날씨 정보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은 것 같긴 하다."
제일 먼저 확인한 건 YTN과 연합뉴스TV를 비롯한 여러 방송사들의 유튜브 채널. 진행되고 있는 생방송들의 제목에 '폭설' 이라는 섬뜩한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은 걸 보니 그렇게까지 큰 일은 아닌 것 같다.
날씨 앱을 켜서 본 일기예보에서도 그렇게까지 눈이 많이 내린다는 정보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안도하며 다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장갑을 꺼낸 뒤, 주머니의 지퍼를 닫았다.
"위에서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가.."
그러나 여전히 내려오는 애들은..
저건.. 모자인가?
응. 모자가 공중에 떠 있을리는 없지.
전혀 관광 온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 흡사 설산에 며칠 고립된 듯한 꼴을 한 신비로운 사람 셋이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다들 고글로 눈을 가리고는 있었지만, 내려오고 있는 꼴과 내게 보이지 않는 눈을 제외한 모든 신체 부위들이,
'우리 엄청 긴장했어요!'
라고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애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작은 부분들도 관찰할 수 있게 되자 보이는 것들은 더 가관이었다. 머리에 쓴 모자는 비뚤어지고 눈이 뭍어 원래의 모양과 색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벌린 입 옆으로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으며, 고글에도 눈이 잔뜩 뭍어 저게 앞이 보일지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으아악!"
"선생님!!"
..그리고 종국에는 스키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이 아닌 데굴데굴 굴러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내 제자들의 신나는 구르기 놀이는 경사가 없는 땅바닥에 도착해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
"으에엑.."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직후에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는 애들을 일으켜 세워 준 뒤, 장갑 낀 손으로 옷과 장비에 뭍은 눈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아직 평형이 돌아오지 않았는지 일으켜 세워 준 뒤에도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려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신을 다 차린 애들의 얼굴은 추워서 그런지 엄청나게 빨개져 있었다.
"선생님?"
"으응.. 하루나."
"선생님."
"응. 유우카."
"선생님~"
"죄송합니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는데, 그게 완벽한 오판이었으며, 그런다고 잘못한 게 없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건 유우카가 눈을 하나 뭉쳐서 던진 게 눈 앞으로 날아올 때였다.
'어. 좀 위험할 수ㄷ'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이 얼굴로 팍 튀며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많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눈밭에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
그렇게 우리는 몇 번 정도 스키를 더 탔다. 가면 갈수록 숙련도가 조금씩 붙어 다들 넘어지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하루나의 경우에는 마지막에 나보다 빨리 마치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어 있었고, 다들 체력이 떨어진 게 대놓고 보였던 지라 적당한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다시 리프트를 향해 앞장서는 대신,
"배 안 고프니?"
"고파요."
"그럼 밥 먹을까?"
"음.."
장갑을 낀 손으로 숙소 건물 쪽을 가리켰다. 다들 배가 고프다고 대답은 했지만 밥 먹으러 가자는 말에 섣불리 먼저 대답을 하지 못하고, 그 밖에도 뭔가 아쉬워하는 듯한 느낌이 느껴졌다. 다들 재미를 붙였구나. 재미없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근데 다들 다리를 절뚝거리는 걸 보니까 스키를 더 타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쉬는 것도 중요해. 놀러 나와서 다치면 너무 억울하잖아."
"그건.. 그렇죠?"
"너희들 다리 한 번 봐볼래?"
내 말에 셋은 각자 고개를 숙여 본인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밥 먹으러 갈까요?"
유우카의 말 한 마디를 시작으로 다들 내 말을 납득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점심을 해결하러, 장비를 벗으며 숙소 건물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계속>
뭔가 좀 많이 늦어진 느낌인데.. 죄송합니다!
현생이 바쁘고 요새 PES가 너무 재밌어서 글 쓸 시간이 없던 게 컸던 것 같음
메시 시발새끼 하루에 12만원을 태우게 하다니
어쨌든 재밌게 봤으면 개추랑 댓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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