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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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8100978
원문: 11,103자
니코 인연스토리 얘기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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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가늘게 뜨고 응시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타이밍에, 집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최근 들어 부쩍 귀에 익숙해진 맑고 투명한 목소리.
나는 흐트러진 표정을 황급히 지워내며 미소를 지었다.
「아, 응. 들어와.」
「실례하겠습니다.」
특유의 싹싹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 FOX 소대의 요시노 니코가 들어왔다.
나 역시 반갑게 웃으며 그녀를 맞이했다.
「안녕, 니코. 어서와.」
「후훗, 선생님도 참…… 어서 오고 말고 할 게 어디 있나요. 지금은 샬레가 엄연히 저희 소대의 임시 거처인걸요?」
「그랬었지... 요즘 정신이 없어서 큰일이네.」
하하, 하고 웃어보인다.
그 웃음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메말라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눈치채고, 일부러 약간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하지만 그런 어설픈 속임수가 명색이 FOX 소대의 부소대장인 그녀에게 통할 리 만무했고,
실제로 니코는 전보다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선생을 바라봤다.
「무슨 일 있으셨던 거죠, 선생님?」
나를 가만히 꿰뚫어 보는 니코의 올곧은 두 눈동자가 부담스러워,
나는 이내 조금 멋쩍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진짜 별일 아니야.」
「정말 별일이 아니라면, 더더욱 숨기지 말고 제게 말씀해 주세요.」
「그렇지만 정말로…… 그리 거창한 고민이 아니라서 그래. 이 정도는 그냥 조금 지나면 아무렇지 않게 다 나아질 테니까.」
예전에 한창 마음이 꺾이고 우울해져 있을 때 니코에게 기댔던 기억이 떠올라,
이번만큼은 학생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지 않겠다며 애써 의연하고 강한 척 허세를 부려 보았다.
하지만 그 가식적인 표정이 유지된 것은 고작 5초 남짓이었다.
역시 그녀의 올곧은 시선 앞에서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다.
평소에는 한없이 다정하고 상냥하지만 막상 진지하게 화를 낼 때의 니코는
특유의 묵직한 압박감이 있어 조금 무섭다.
그런 꼼꼼한 성격까지 포함해서 그야말로 '소대의 엄마'답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그런 장난스러운 농담을 입 밖으로 꺼낼 만큼 내가 대담한 어른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혹시, 문밖에서 다 들렸으려나?」
내가 힘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슬쩍 묻자, 니코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선생님께서 방 안에서 아주 커다란 한숨을 내쉬고 계셨던 건 진작 알고 있었답니다?」
「그랬구나. 귀찮게 신경 쓰게 만들어서 미안해.」
「혼자서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상황이 이쯤 되니 더 이상 발뺌할 구멍도 없었다.
나는 내 부끄럽고 부정적인 감정을 학생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때마다 느껴지는,
목구멍에 끈적하게 들러붙는 특유의 죄책감을 간신히 억누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사실은 말이지, 오늘 아침부터 말도 안 되는 한심한 실수가 계속 겹쳐서──」
나는 조용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부터 결재 서류에 어처구니없는 오타와 누락을 연발해서 안 그래도 바쁜 린의 업무를 배로 늘려버렸다는 것.
차라리 호되게 혼이라도 났으면 마음이 편했을 텐데,
오히려 린이 내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배려해 주는 바람에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지고 괴로웠다는 것 등등──
한 명의 한심하고 못난 어른으로서 저지른 실태를,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니코에게 고백했다.
「과연,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니코는 내 하소연을 들으면서 섣부른 감정이나 주관적인 판단을 섞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게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 사려 깊은 태도 덕분이었을까.
나는 평소보다 훨씬 편안하고 매끄럽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당초에는 말할 생각조차 없었던 자잘한 다른 일들까지 나도 모르게 전부 쏟아내 버린 뒤였다.
「저기, 니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방금 한 이야기들은 다른 애들한테는──」
부끄러움에 뺨을 발갛게 물들인 채 머리 뒷스케를 긁적이며 슬쩍 부탁하자 니코는 생긋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건 저와 선생님만의…… 소중한 '비밀'이니까요.」
니코는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붉은 입술에 살며시 갖다 대며, 후훗 하고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그 매끄러운 입술의 움직임에는 어딘가 모르게 성숙한 여인의 묘한 색기가 서려 있어,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쿵쾅거리며 요동치는 불규칙한 고동을 느끼고는 황급히 그녀의 이마 부근으로 시선을 홱 돌려버렸다.
확실히 3학년쯤 되니 여러 의미로 어른스러워서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정신 바짝 차리자. 여기서 무너지면 어른으로서 끝장이다.
평소 몇몇 다른 학생들을 대할 때 보여주던 내 업보 가득한 행실들은 슬그머니 마음속에 감추며 나는 스스로에게 강력한 이성의 브레이크를 걸었다.
「어, 어쨌든! 이렇게 전부 털어놓고 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편해졌어. 정말 고마워.」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나는 최대한 밝고 활기찬 목소리로 쾌활하게 말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소중한 학생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있을 수는 없다며 다시 서류 업무로 복귀하려던 바로 그 순간,
내 어깨 위로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힘이 실린 누군가의 손바닥이 스윽 내려앉았다.
「선생님, 아직이에요.」
「어? 아직 멀었다니, 뭐가──」
「지금 그런 위태로운 표정으로는, 아직 '마음이 완전히 편해졌다'고 말할 수 없다구요?」
니코는 한 치의 타협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어조로 쐐기를 박았다. 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니코, 아무래도 내 몸 상태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겠지... 그렇지?」
「네, 그렇겠죠. 그리고 저는 선생님이 소중한 학생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혼자서 온갖 짐을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아두기만 하는, 아주 고집스럽고 못 말리는 어른이라는 사실도 무척 잘 알고 있습니다. 제 말이 틀렸나요?」
방금 전 내가 부렸던 그 얄팍하고 엉성한 거짓말들이 고스란히 떠올라 나는 항복이라는 듯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명색이 SRT 특수학원의 부소대장을 상대로 말싸움에서 이기기란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밀린 일은 마저 끝내야 하니까……」
나는 책상 위에 탑처럼 쌓여 있는 서류 더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씁쓸하게 말했지만,
니코는 내 속마음을 전부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만큼 시급한 안건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남은 자잘한 일들은, 이따가 집으로 돌아가서 제가 옆에서 전부 도와드릴게요.」
최근에는 샬레의 공식 당번 일정에 편성되어 있지도 않았을 텐데 그녀는 대체 내 업무 진행 상황을 어떻게 이토록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걸까.
그런 합리적인 의문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지만 내 이성은 그보다 훨씬 더 신경 쓰이는 치명적인 단어가 방금 전 문장의 뒷부분에 섞여 있었다는 사실을 포착해 냈다.
「집으로 돌아가서라니……? 너랑 내가?」
멍한 얼굴로 묻자 니코는 성모처럼 자애로운 미소로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 지금은 저랑 같이 밖으로 나가서 시원한 바람도 좀 쐬고 기분 전환부터 하신 다음에──라는 얘기에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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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는 선생님을 집무실 밖으로 이끌어 한적한 D.U. 시내 거리를 함께 한가로이 거닐기 시작했다.
예전에 그를 강제로 데리고 나왔을 때처럼 식료품을 조달하거나 군용 장비를 보충하려는 등의 거창하거나 특정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치구 중앙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넓은 강변 산책로를 따라.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느긋하게 바람을 맞는 일상.
말 그대로 '산책'이라는 다정한 표현이 가장 완벽하게 어울리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물론, 아무런 제약 없는 자유로운 산책길이라 해도, 니코는 자신이 위치한 현재 좌표와 주변 지형을 끊임없이 무의식적으로 의식하고 있다.
그것은 그녀가 평생을 특수부대라는 살벌한 환경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오며 뼈에 새겨진 본능적인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바로 곁에서 나란히 걷고 있는 선생님의 피로 상태를 수시로 체크하고,
보이지 않는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확보하는 경호 계획 역시 한순간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호라는 것은 여럿이 조를 짜서 수행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기에 혼자서는 한계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니코는 그동안의 경험과 타고난 직감을 활용하여,
게릴라 습격이나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안전 확보가 비교적 용이하고 탁 트인 동선의 산책 코스를 정교하게 엄선함으로써
잠재적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전술적 행보를 취하고 있었다.
「저기 좀 보세요, 선생님. 예쁜 장미꽃밭이에요.」
「정말이네.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걸까. 장관이네.」
「네. 알록달록하게 색이 어우러져서 정말로 예뻐요.」
「.....니코처럼?」
「…… 정말이지 선생님도 참.」
다각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으면서도, 니코의 얼굴에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운 미소가 가득 피어올라 있었다.
결코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억지로 무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는 선생과의 소소한 대화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행복하게 즐기고 있었다.
산책을 시작한 직후에는 아직 표정에 그늘이 조금 남아있던 그의 얼굴이,
어느새 따스한 햇살만큼이나 밝고 화사하게 활력을 되찾아 급기야 자신을 슬쩍 놀리는 장난기 가득한 여유까지 부리고 있다.
그런 작은 긍정적인 변화들이 니코의 마음을 훈훈하게 채워주어 뭐라 말 못할 안식과 평온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어째서 이 어른에게 이토록 마음이 사로잡혀 버린 걸까.'
죄를 지은 우리 소대의 재출발을 위해, 자신의 안위나 정치적 리스크를 조금도 마다하지 않고 그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지탱해 주었던 그 따뜻한 포용력 때문일까?
목숨을 건 작전 임무를 수행할 때는 그 누구보다 든든하고 신뢰할 수 있는 완벽한 어른이면서도,
막상 평범한 일상 속 사생활에서는 어이없을 정도로 서툴고 허술해서 자꾸만 모성애를 자극하는 그 귀여운 갭 차이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정작 자기 자신을 돌보는 데 써야 할 최소한의 에너지와 생명력까지 전부 쥐어짜내어,
오직 소중한 학생들과 구원을 요청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남김없이 낭비해 버리는 그 위태롭고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뒷모습 때문일까?
그렇게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 구체적인 핑계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내 마음속 요동치는 감정을 이성적으로 정당화하려 해도,
그런 단어와 논리만으로는 도저히 온전히 다 담아낼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알맹이가, 손가락 틈새로 모래처럼 스르륵 흘러내려 버리는 듯한 묘한 갈증이 들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결코 이성적인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 연애의 진리를 니코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가슴이 저릿해지는 경험으로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선생님, 저기서 잠시 쉬어 갈까요?」
니코가 부드럽게 발걸음을 멈춘 곳은, 산책을 시작한 지 약 30분 정도 지났을 무렵 당도한 어느 푸르른 자연공원 내부의 나무 벤치 앞이었다.
평소보다 일부러 보폭을 좁혀 느긋하고 완만한 템포로 걸어왔다고는 하지만, 오늘은 유독 하늘의 햇살이 내리쬐어 따갑고 기온도 제법 높은 편이었다.
니코 본인은 SRT 특수부대원 특유의 체력과 커다란 여우 귀의 뛰어난 열 방출 효과 덕분에 이 정도 더위쯤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선생님에게는 이 뙤약볕이 꽤나 무리가 가고 있을 지 모른다.
실제로 그의 이마와 목덜미에는 어느새 송골송골하니 투명한 땀방울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직 괜찮아.」
선생님이 짐짓 괜찮다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지만 니코는 추호의 타협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약 10미터 정도 떨어진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 놓인 사각형의 철제 물체를 손가락으로 곧게 가리켰다.
「안돼요. 수분 보충은 본래 갈증을 느끼기 전에 하는것이 원칙이니까요. 저기 있는 자동판매기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사 올 테니 선생님은 여기 그늘진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려 주세요.」
「그럼 내가 갈게. 니코도 목 마를 거고.」
「하지만, 그러면 제가 선생님을 모시고 나온 의미가──」
갑작스러운 제안에 니코의 눈동자에 찰나의 망설임과 미안함이 스쳤지만, 그는 니코를 안심시키기 위해 다정하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오늘 하루 종일 니코한테 과분할 정도로 챙김만 받아버렸으니까. 가끔은 어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게 해줘.」
그렇게 말하는 동시에 가볍게 윙크하며 마치 소년처럼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될까?」
「……하아, 반칙이에요, 선생님...」
니코는 당해낼 수 없겠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이내 입가에 화사한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이 사람은 매번 이런 식으로 순진한 학생들의 마음을 홀리고 다니는 걸까. 참으로 나쁜 어른이다.
그렇게 속으로 괘씸해하면서도 그의 그런 달콤한 유혹이라면 기꺼이 속아 넘어가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짐짓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온다.
「알겠습니다. 그럼 얌전히 대접받을 테니까,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렇게 말하며 벤치에 사뿐히 엉덩이를 붙였다.
「고마워. 마시고 싶은 음료라던가 있어?」
「선생님이 골라주시는 거라면 뭐든 좋아요. 부탁드릴게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줘. 시원한 걸로 얼른 사올게.」
선생님이 보란 듯이 가슴을 쫙 펴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자판기가 있을 방향으로 향한다.
'어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말은, 단순히 나를 배려하기 위해 급조해 낸 얄팍한 핑계가 아니라,
어쩌면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던 본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는 다정한 온기를 느끼고 있던 바로 그 순간.
니코는 등 뒤에 맞닿은 벤치 반대편 자리에 소리 소문 없이 누군가가 사뿐히 엉덩이를 걸치고 앉는 기묘한 기척을 알아챈다.
바람에 풀잎이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는 완벽한 은밀함.
고도의 훈련을 거친 사람이 아니라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극도로 미미하고 날카로운 기척이었다.
허나 니코는 당황하지 않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붉은 입술을 부드럽게 끌어올려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 미야코 쨩.」
「네. 정말 오랜만이에요, 니코 선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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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BBIT 소대의 소대장, 츠키유키 미야코가 니코와 선생님을 목격한 것은 완전히 우연이었다.
소대의 다른 대원들과 함께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던 길,
그녀는 새 충전기 케이블을 구입하기 위해 편의점에 잠시 들렀다가
유리창 너머로 무척이나 다정하고 화목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자기도 모르게 뒤를 밟게 되었다.
미야코는 그간의 경위를 숨김없이 솔직하게 설명하며 조용히 사과했다.
미야코 「스파이 같은 행동을 해서 죄송합니다.」
니코 「괜찮아. 교정국에 수감되어 있어야 할 내가 이렇게 버젓이 선생님과 함께 행동하고 있으니까. 내가 미야코의 입장이었더라도 당연히 신경 쓰였을 거야.」
미야코 「그런데 선배, 제 미행을 어느 타이밍에 알아채신 건가요?」
니코 「미야코에게 전술적인 실수는 거의 없었어. 철저하게 훈련받은 전문가가 경계할 만한 감시 포인트를 교묘하게 잘 피했고, 평소 늘 착용하던 헤드셋을 벗어둔 것도 FM이긴 하지만 제법 훌륭한 위장술이었지.」
미야코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머리에 꾹 눌러쓰고 있던 야구모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미야코 「정말로 완벽하게 실수가 없었다면.... 들키지 않았어야 했을 텐데요.」
니코 「맞아, 그러니까 내가 방금 『거의』라고 말한 거란다.」
선배의 그 단호한 한마디에 미야코는 지금까지 자신이 취했던 은밀한 행동들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되짚어 보았다.
방금 전 이 나무 벤치에 접근하기 직전까지는 분명히 나름대로 상당히 신중한 안전거리를 유지했을 터였다──
아니, 어쩌면 저 멀리 편의점 유리창 너머로 두 사람을 관찰하고 있던 바로 그 첫 순간에,
이 무시무시한 선배는 이미 제 기척을 눈치채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워낙 직감과 동물적인 촉이 날카롭기로 유명한 선배였으니까.
미야코 「역시 니코 선배님에게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네요.」
분한 기색과 깊은 존경심을 담아 그렇게 털어놓았지만,
니코는 어딘지 모르게 완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니코 「그렇게 생각해?」
미야코 「네, 그렇고말고요. 언제나 꼼꼼하게 주변 전황을 관찰하고, 다른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냥 무심코 지나칠 만한 사소한 위화감을 가장 먼저 포착해 내서 다른 대원들을 완벽하게 커버해 주시죠.
저도 소대장으로서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고 늘 생각은 하지만, 니코 선배님이 수준에 도달하려면 제게는 아직 한참 부족한 것들이 많은 모양이에요.」
니코 「후훗, 갑자기 그렇게 대놓고 칭찬을 늘어놓으니까 왠지 조금 간지러운 기분이네.」
내심 쑥스럽고 부끄러운 건지 니코의 목소리 톤이 방금 전보다 살짝 위로 수줍게 들떠 있었다.
미야코 「죄송합니다. 하지만 전혀 과장이 없는 제 솔직한 본심이에요.
그런 완벽한 선배님이니까, 소대원들이 무심코 의지해 어리광 부리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겠죠.」
입가에 붉은 입술을 끌어올려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미야코는 자연스럽게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말을 이어갔다.
니코 「어리광이라니…… 다른 소대원들이?」
미야코 「네. 그리고 소대원들 이외에는──」
약 2초 정도 묘한 침묵의 공백을 두던 미야코는,
슬그머니 대각선 뒤쪽으로 시선을 흘려 저 멀리 자판기 앞에서 무슨 음료를 마실지 고민하며 서성이고 있는 선생님을 제 시야에 가만히 담았다.
미야코 「예를 들면, 지금 샬레에서 함께 동거하고 계시는 '선생님'이라든가 말이죠.」
그 결정적인 대사를 툭 던짐과 동시에, 미야코는 제 등 뒤에 온 신경을 날카롭게 집중시켰다.
선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주 미세한 감정의 동요와 모든 기척을 신중하게 엿보기 위해서였다.
미야코 「어떠신가요, 선배님?」
미야코가 오늘 일부러 위험을 무릅쓰고 두 사람의 뒤를 집요하게 밟은 진짜 이유는, 오직 이 치명적인 질문을 선배의 정면에 내던지기 위해서였다.
냉정하게 말해, 왜 교정국에 수감되어 있어야 할 선배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자유롭게 있는가라는 의문보다 이 질문의 중요도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높았다.
선배들이 자신들에게조차 철저히 비밀로 한 채 가석방되어 움직이고 있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연방학생회와 얽힌 극비 비밀 임무 때문일 터였다.
동기인 특수부대원으로서 약간의 서운함은 있을지언정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 질문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문제다.
니코의 답변 내용에 따라 현재 선생님을 향해 은밀하게 실행 중인 『유혹 작전』의 전술 구도를 완전히 초장부터 새롭게 뜯어고쳐야 할 급박한 필요성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니코 「함께 살고 있다니……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거니?」
언제나와 다름없이 다정하고 친근함이 묻어나는 부드러운 목소리.
하지만 미야코는 방울을 굴리는 듯한 그 청아한 목소리 밑바닥에서 은밀하면서도 농밀한 『여자의 기척』이 고요하고 촉촉하게 차오르는 것을 감지해 냈다.
하지만 그것은 아마 지금의 자신에게서도 똑같이 흘러나오고 있는 열기일 터──
미야코는 선배가 발산하는 거대한 압박감에 기세가 꺾여 삼겨지지 않기 위해, 조용히 아랫배에 힘을 주며 숨을 내쉬었다.
미야코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닙니다. 선생님의 오늘 업무 스케줄 동선으로부터 역산해서 추론해 보았을 뿐이에요.
선배님과 외부의 어떤 장소에서 우연히 합류해서 이동했다고 가정하기에는 강변을 따라 이 공원까지 걸어온 동선이 지나치게 매끄럽고 자연스러웠거든요.」
니코 「선생님의 개인 스케줄을 평소에 그렇게까지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거니?」
니코가 조금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이런 식의 방어적인 반응이 돌아온다는 시점에서 이미 동거 사실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확신하며 미야코는 고개를 깊게 끄덕였다.
미야코 「네. 아주 철저하게, 분 단위로 전부 파악하고 있습니다.」
니코 「그건 뭐랄까…… 선배의 눈으로 보아도 조금 무겁다고 해야 할지, 무섭지 않을까?」
은근히 미야코의 스토커같은 집착성과 소유욕을 힐난하는 말이었지만 고작 그 정도에 동요한다면 사키와 매일같이 벌이는 치열한 설전 속에서 진작에 패배해 울었을 터였다.
미야코는 오히려 당당하게 가슴을 활짝 편 채 거침없이 대답했다.
미야코 「역으로 여쭙겠습니다만, 선배님은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계시지 않나요?」
니코 「나는 뭐랄까, 선생님의 곁을 밀착 지키는 경호 역시 소중한 작전 임무 중 하나이니까,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뿐이야.」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뻔뻔하고도 여유만만한 말투.
미야코 「그렇다면 저 역시 완벽하게 똑같은 이유입니다.」
니코 「어라, 내가 알기로는 연방학생회장도, 샬레도 우리 RABBIT 소대에게 선생님의 사적인 경호 같은 공식 의뢰는 일절 내리지 않았을 텐데?」
역시 이 선배도 자신들의 최신 동향과 스케줄을 실시간으로 샅샅이 조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후배로서는 무척 든든하고 기쁜 일이었지만, 동시에 같은 남자를 마음에 품은 여자의 입장으로서는 이 무시무시한 정보 수집 능력이 엄청난 위협이자 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미야코는 그 숨 막히는 불안감을 겉으로 아주 조금도 들키지 않기 위해, 단호하고 당당한 톤을 필사적으로 유지했다.
미야코 「제 개인적인 독단이자 전술적 판단입니다.
지금의 저희 소대가 온전히 발을 붙이고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선생님의 헌신 덕분이에요.
그런 위대한 은인에 대해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신경을 쓰는 것은,
SRT의 정의를 논하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당연한 도리이자 야박하게 굴지 않는 사람의 예의잖아요.」
니코 「확실히 부정할 수 없는 아주 구구절절 맞는 말이네.」
등 뒤에서 어깨를 가볍게 으쓱하는 미세한 옷자락의 기척이 느껴졌다.
니코 「그럼, 우리 미야코 쨩이 선생님의 일거수일투족을 집요하게 신경 쓰는 건, 오직 그 사람이 소중한 『은인』이기 때문인 거니?」
살벌하게 대치하던 공기가 잠시 느슨하게 풀렸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니코가 폐부를 찌르는 듯한 치명적인 질문을 송곳처럼 기습적으로 날려왔다.
학창 시절 SRT 특수학원의 심문술 수업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배웠던,
상대방의 심리적 방어선에 생긴 찰나의 빈틈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무수한 실전 방법들이 새삼스럽게 미야코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미야코 「……니코 선배님이야말로, 선생님을 챙기시는 게 오직 임무 때문이 맞으신가요?」
순간 흔들리는 동요를 절대 보여주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이성을 붙잡았지만, 아주 미세하게 목구멍 근육이 단단하게 강직되어 목소리가 굳어버렸다.
니코 「상대방의 질문에 똑같이 질문으로 답하는 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란다?」
니코는 여전히 상냥하고 밝은 어조를 유지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등 뒤에 감추고 있던 무시무시한 프레셔를 추호도 숨기지 않은 채,
사냥감을 몰아붙이듯 무자비하게 추격을 개시했다.
니코 「하지만 그렇게 필사적으로 대화의 화제를 돌려서 방어막을 치려고 하는 행동 그 자체야말로,
미야코 쨩의 진짜 솔직한 속마음이 고스란히 반영된 명백한 증거라고 볼 수 있겠지.」
그리고 간발의 틈도 주지 않고, 니코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귓가에 소름 돋도록 은밀하게 속삭였다.
니코 「어떠니, 미야코? ……숨기지 말고 어서 대답해 보겠니?.」
옛날에 유키노 선배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자기 소대 대원들 중에서 진심으로 화를 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다름 아닌 니코 선배라고.
당시에는 그 경고가 피부로 전혀 와닿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가 현재 등 뒤에서 온몸으로 들이받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프레셔는,
그 어떤 생사의 갈림길에 선 가혹하고 끔찍한 작전 임무를 수행할 때조차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종류의 압도적인 중압감이었다.
미야코 「윽…………」
하지만 여기서 허무하게 기세가 꺾여 패배를 선언할 수는 없었다.
똑같은 선생님의 소중한 『학생』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당당한 여자로서.
설령 상대가 우러러보고 존경해야 마땅할 위대한 대선배일지라도 이번만큼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적당히 꼬리를 내리고 양보한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만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미야코는 단전 부근에 힘을 꾹 주어 쥐고, 나약함에 지배당하려던 마음을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진정시키며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미야코 「하, 하지만──」
니코 「하지만?」
미야코 「하지만, 니코 선배님이 그렇게까지 제 사적인 감정을 들추어내고 싶어 하시는 것 자체가……
오히려 질문자 본인의 심리 상태가 불안정하게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지 않나요?」
질렀다. 어떻게든 목소리를 떨지 않고 전부 내뱉었다.
미야코의 그 날카로운 반격 이후, 니코의 대답은 한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미야코는 등 뒤의 살벌한 침묵 속에서 슬그머니 저 멀리 자판기 쪽의 선생님의 동태를 살폈다.
양손에 페트병 음료수를 두 개 가득 든 선생님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것이 보였고, 그와 동시에 등덜미를 타고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니코 「………흐응」
감탄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다른 뒤틀린 불순한 독점욕인지. 도무지 속내를 읽어내기 힘든 기묘한 「흐응」였다.
미야코는 부디 이 평화로운 공원 한복판에서 선배와 살벌한 CQC 훈련으로 돌입하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만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만약 그렇게 육체 언어로 충돌하게 된다면, 자신의 승률이 도대체 몇 퍼센트나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니코 「미야코.」
감정이 완전히 배제되어 서늘하기까지 한 평탄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왔다.
미야코 「ㄴ..네...」
목소리의 미세한 떨림을 완벽하게 억누르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미야코는 간신히 대답했다.
니코 「이대로 계속 입씨름을 해봤자, 서로 평행선만 주구장창 달리겠네.」
미야코 「그건……… 그렇네요.」
도대체 선배는 여기서 무슨 전술적 전개를 노리고 있는 걸까. 진정해야 한다.
여기서는 소대장으로서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현재의 전황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한다.
니코 「그런 고로──」
갑자기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의 활기차고 밝은 목소리로 휙 돌아오더니, 니코는 즐거운 듯 양손을 짝 쳤다.
니코 「여기서 내가 작은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들어볼래?」
미야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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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가 하필 구형이라 전자 결제를 지원하지 않는 바람에 동전 지갑을 찾느라 한참 애를 먹어 예상보다 훨씬 더 오래 걸려버렸다.
「금방 사 올게」라고 해놓고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어찌 보아도 든든한 어른으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하기는 민망했다.
그런 멋쩍은 생각을 하며, 나는 양손에 두 사람이 마실 시원한 페트병 음료수를 든 채 서둘러 벤치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얼굴과 대면하게 되었다.
선생님 「미안, 좀 늦었── 미야코!?」
벤치에 니코와 나란히 어깨를 맞대고 앉아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RABBIT 소대의 소대장.
설마 이 두 사람이 지금 이 타이밍에 대면해도 괜찮은 걸까──
덜컥 걱정스러운 마음에 두 사람의 안색을 세심하게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표면적인 동요의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니코에게 시원한 스포츠음료 페트병을 건네주었다.
니코는 고맙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미야코 역시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미야코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 「아, 응…… 안녕, 미야코.」
미야코 「FOX 소대의 선배님들과 함께하고 계셨던 거군요?」
어딘가 의미심장한 표현으로,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올려다보는 끈적하고도 무거운 시선.
선생님은 미야코가 심통이 난 진짜 이유를 필사적으로 추리해 내며 어떻게든 기분을 풀어주기로 결심했다.
선생님 「말 안 하고 숨겨서 정말 미안해. 다만 여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미야코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응?」
미야코 「방금 니코 선배에게 대략적인 사정은 전부 숨김없이 전해 들었으니까요.」
진짜 괜찮은 건가. 선생님이 확인하듯 다급하게 니코를 쳐다보았지만, 니코는 무척이나 차분하고 평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니코 「네. 이 상황에서는 오히려 사실대로 솔직하게 전부 털어놓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전에 선생님께 먼저 동의를 구했어야 했는데 제 독단으로 처리해 버렸네요. 죄송합니다.」
니코가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해 오자, 선생님이 깜짝 놀라 서둘러 양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선생님 「아니야, 아니야! 니코가 그렇게 판단해 준 거라면 난 전혀 상관없어!
오히려 이런 돌발 상황을 미리 예측하지 못한 내 책임이 크지.
게다가 미야코는 입이 무겁고 믿음직한 아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전적으로 신뢰받고 있다는 사실이 기뻤던 모양인지 미야코는 살짝 뿌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미야코 「네. 소대의 다른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전할지 말지는
샬레의 정식 허가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얌전히 마음속에 묻고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천만다행이다. 예상외로 큰 마찰 없이 대화가 잘 풀려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깊이 안도한 바로 그 찰나,
미야코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선생님의 오른쪽 팔을 와락 힘차게 껴안아 왔다.
선생님 「뭐..뭐야!?」
미야코 「……그건 그거고요.」
미야코는 입가의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았지만 대신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끈적한 프레셔를 급격하게 끌어올리며 선생님의 몸에 자신의 신체를 바짝 밀착해 왔다.
미야코 「FOX 선배님들과 샬레에서 동거를 하시고, 심지어 침대까지 함께 쓰며 한 이불을 덮으셨다는그 파렴치하고 음란한 건에 대해서는……
이따가 조용한 곳에서 선생님께 아주 상세하고 꼼꼼한 설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미야코는 팔을 안는 데 물리적인 완력을 거의 쓰지 않았다.
하지만 팔꿈치 부근에 교묘하게 자신의 팔을 얽어맴으로써, 아주 미세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무시무시한 압박 관절기를 걸고 있었다.
격투술에 관한 지식이 전무한 선생님은 그 고난도 기술을 완벽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미야코를 감싸고 있는 오라가 대단히 위험하고 살벌하다는 것만큼은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 이것은 마치 미야코와 단둘이 있을 때 눈치 없이 사키의 이야기를 조금 많이 꺼내버렸을 때 느껴지는 그 섬뜩한 공포의 감각과 완벽하게 똑같은──
선생님 「하, 한 이불이라니, 말이 너무 와전됐잖아! 그렇지, 니코?!」
일단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은, 이 소대장의 엄청난 오해를 풀어주는 것이었다.
그때 침대 위에 누워있던 건 오직 나 혼자뿐이었고, 니코는 내 곁에서 하소연을 들어주었을 뿐이니까.
현장 당사자인 니코가 직접 증언을 해준다면 내 결백은 깨끗하게 증명될 터였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원을 요청하는 간절한 눈빛을 벤치에 앉아있는 니코에게 보냈다.
하지만 니코의 대답은 한참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 「니, 니코……?」
FOX 소대의 부소대장은 두 눈을 싸늘하게 가늘게 뜬 채 붉은 입술을 꾹 다물고 미야코가 끈적하게 밀착해 있는 팔을 향해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시선을 내리꽂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녀가 화가 난 진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저격총의 총구가 등 뒤를 조준하고 있는 듯한 오싹함에 부르르 떨었다.
그 공포에 질린 떨림은 팔을 잡은 미야코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을 터였지만,
미야코는 안색을 살짝 굳히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몸을 한층 더 과감하게 밀착시키며, 니코를 향해 도발적인 비웃음을 살며시 흘려보냈다.
두 명의 학생이 내뿜는 시선의 압박감이 실시간으로 더욱 강력해졌다.
영하를 넘어 그야말로 절대영.도.
이대로 방치했다간 불과 몇 분 안으로 내가 소중한 학생 두 명의 눈앞에서 바지에 지도를 그리고 한 명의 어른의 존엄성(그런 게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을 안드로메다로 사출해 버릴 것이 확실했다.
그렇게 절망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니코가 스윽 자리에서 일어나 무척이나 매끄럽고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보폭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제,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
선생님이 그렇게 외치며 목숨을 구걸하려 했지만 입안이 바짝 말라붙어 혀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문득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방금 전까지 완벽하게 자유롭던 왼쪽 팔에, 오른쪽과 똑같이 부드러운 여성의 살결이 와락 느껴졌던 것이다.
조심스레 눈을 뜨자, 니코가 미야코와 자로 잰 듯 똑같은 완벽한 대칭 구도로 내 왼쪽 팔을 빈틈없이 껴안고 있었다.
선생님 「니, 니코 씨?!」
니코 「후훗…… 무슨 일 있으신가요, 선생님?」
소름 돋을 정도로 평소와 완벽하게 똑같은,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
방금 전까지 공간을 얼려버릴 것 같던 그 차가운 시선이 마치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무시무시한 전환 속도였다.
어쩌면 방금 전의 살벌한 살기는 허상이나 착각이었고, 그녀는 처음부터 언제나처럼 상냥했던 걸지도 모른다.
선생님 「아니, 무슨 일이 있냐는 것보다, 이 상황은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
두 명의 어여쁜 학생에게 양팔을 꽉 붙잡힌 채 꼼짝달싹 못 하는 샬레의 선생님이라는 기묘한 구도.
기분 탓인지 방금 전보다 공원을 지나다니는 일반 시민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급격하게 험악하고 무거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참으로 체신머리없고 면목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친숙한 시선 중 하나였다.
물론 이런 시선에 익숙해지면 절대로 안 되는 거지만 말이다.
니코 「이런 상황을 아마…… 『양손에 꽃』이라고 하던가요?
남성분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이상적인 시츄에이션이라고 오토기 쨩이 만화책을 보며 조잘거렸던 기억이 납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를 조금 놀리듯, 붉은 입술을 가늘고 얇게 끌어올리며 니코가 매혹적으로 미소 지었다.
선생님 「으, 응…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건전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아…….」
내심 동의를 구하는 눈빛으로 오른쪽의 미야코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몹시 심통이 난 뚱한 표정이었다.
미야코 「선생님, 저는 바람기 다분한 어른이 싫습니다.」
선생님 「그게 무슨소리야. 난 딱히 학생들과 그런 부도덕한 관계는──」
해명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고, 미야코는 말을 자른 채 이번에는 왼쪽의 니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미야코 「선배님. 선생님의 밀착 경호는 역시 저 혼자서 전담하는 것으로 맡겨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니코 「미야코 쨩.」
니코는 한없이 자애롭고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제 후배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 얼굴에는 단 한 톨의 험악한 압박감도 섞여 있지 않았음이 분명한데,
신기하게도 나는 내 오른쪽 팔뚝을 통해 미야코의 단단한 근육들이 순간 굳어버리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니코 「우리 방금 전, 분명히 공평하게 『협정』을 맺지 않았었나?」
미야코 「하지만──」
니코 「확실하게 맺었지? 약속을 깨트린다는 게 어떤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미야코 「…………알겠습니다.」
미야코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며 힘없이 고개를 숙여 선생님의 어깨에 자신의 머리를 툭 기댔다.
그는 이 고집 센 학생이 그 어떤 최악의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고 끝까지 관철해 내는 강인한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기에,
이토록 무력하게 굴복하는 그녀의 나약한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인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왼쪽의 니코만큼은 절대로 화나게 만들지 않겠노라고 마음속으로 깊이 맹세했다.
니코 「그럼, 슬슬 출발해 볼까요?」
무척이나 즐겁다는 듯 생긋 웃으며, 니코가 내 왼팔을 당기며 경쾌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야코 「양호.」
미야코 역시 순순히 그 뒤를 따랐고, 두 명의 소녀 사이에 꼼짝없이 샌드위치처럼 낀 채 황급히 다리를 움직이며 선생님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기, 두 사람 다? 출발한다니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니코 「사실은 아까 자판기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는 동안 미야코 쨩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정했답니다.
간만에 선후배가 뜻깊게 재회했으니, 이 좋은 날씨에 가볍게 서로의 『체력 측정』이라도 해보자고요.」
선생님 「체력 측정……?」
도무지 대화의 문맥과 전후 사정이 파악되지 않아 의아한 얼굴로 오른쪽의 미야코를 바라보자, 그녀 역시 진지한 표정으로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야코 「네. SRT의 오랜 전통 같은 실전 훈련입니다. 모처럼의 좋은 기회이니, 선생님께서도 옆에서 꼼꼼하게 참관 및 감독을 해주셨으면 해서요…… 괜찮으시겠죠?」
과연, 그런 거였나. 내가 알던 세계의 군대에서도 가끔 몸의 대화(육체 언어)를 통해 대원들끼리 친목을 다진다고 하였기에 나름대로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는 해도──
선생님 「애초에 내 의견이나 의사를 확인하기도 전에 이미 몸부터 움직여서 강제로 끌고 가고 있으면서 새삼스럽게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던지는 건 의미가 없지 않을까?」
미야코 「죄송합니다…… 역시 안 되는…… 걸까요?」
미야코가 눈꼬리를 살짝 내린 채 간절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빤히 쳐다보았다.
요즘 들어 이 영악한 토끼는 자기가 예쁘게 생겼다는 사실을 무기 삼아 조종하려는 고난도 전술을 확실하게 마스터해 가고 있었다.
선생님이 항복이라는 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선생님 「뭐,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니코 「참고로 최종 승자의 판정은 오직 선생님께서 직접 내려주셔야 한답니다?」
돌연 니코가 왼쪽 귀밑 부근에 입술을 바짝 밀착시킨 채 요염하게 속삭여 왔기에,
선생님은 척추를 타고 짜릿하게 타고 올라오는 묘한 쾌감에 움찔하면서도, 그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조용히 숨을 내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 「나, 스포츠나 격투기 같은 신체 운동 계열 지식은 잘 없는데 심판을 봐도 괜찮을까?」
니코 「걱정 마세요. 딱히 복잡하고 전문적인 스포츠 규칙이 요구되는 시합은 아니니까요.」
미야코 「선생님도 금방 기분 좋아질거에요.」
승자를 판정하는 시합인데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고? 도대체 무슨 해괴한 훈련이길래 그러는 걸까.
머릿속이 온통 의문부호로 가득 찼지만, 어찌 됐든 이 기묘한 체력 측정을 통해 두 사람이 선후배로서 보다 끈끈하고 좋은 관계를 구축하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샬레의 선생님으로서 끝까지 헌신적으로 동참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정하고 가던 중, 문득 떠오른 또 하나의 의문점.
선생님 「그런데 말이야, 이쪽 길로 가면 온통 호텔들밖에 없고 운동 시설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쪽이 맞아?」
니코 「후훗,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 선생님. 그동안 무수한 실전 임무를 수행해 온 덕분에 이 부근의 은밀한 동선에는 해박하니까요.」
미야코 「니코 선배님의 공간 지각 및 작전지 파악 능력은 완벽합니다. 그 건에 대해서는 저 역시 소대장으로서 보증할게요, 선생님.」
마치 자로 잰 듯 완벽함 타이밍에 두 소녀가 환한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동시에 대답했다.
뭐, 저렇게까지 두 사람이 자신만만하게 장담하는 걸 보니 정말로 숨겨진 훈련 시설이라도 있는 모양이겠지.
선생님은 혼자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 했다며 쓴웃음을 지으며 긴장을 풀고, 자신을 이끄는 두 소녀의 유도에 온몸을 온전히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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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라 좀 시간이 걸렸는데 오타있으면 얘기해주세요
이쁜이가 둘이나

댓글 12

미친섹스한년들
스포츠 체력 기분좋 흐으으음
오냐.이년들.죽어보자.
무수한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