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파티 다과회실
"찻잎을 넣은 주전자는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아야 한답니다? 후훗."
"우유는 꼭 차를 먼저 따른 다음에 넣어야 해요. 우유와 설탕은 다 같이 쓰는 것이니 사용한 이후 오른쪽 사람에게 건네주기~"
"식사가 아니니 냅킨은 무릎에 두기. 찻잔을 들 때는 두 손이 아니라 한 손만 사용할 것."
"......"
뜨거웠던 차가 미지근하게 식을 정도로 나기사의 교육은 끝을 모른다.
"따로 차를 따르는 서버가 없을 경우 티타임을 주관한 사람이 따릅니다. 오늘은 시범으로 선생님이 따라볼까요?"
주전자를 손에 들고 나기사의 찻잔을 채운다.
"이런이런. 너무 많이 따랐어요. 간식과 함께 먹는 애프터눈 티타임이 아닌 이상, 차는 컵의 절반 정도만 따릅시다."
"주는 대로 먹지..."
"쓰읍~! 나쁜 말~"
도대체 차 맛도 모르는 어린 애한테 뭘 가르치려는 건지 원.
유치원생에게 입시를 강제하는 극성 엄마들과 다를 바가 없다.
"나기사. 어린 선생에게 가혹한 과정 아닌가."
보다 못한 세이아가 절충을 시도하지만 그녀는 완고하다.
"선생님은 명석하신 분이니 전부 이해했을 겁니다. 그쵸~"
"......"
"자. 차를 따랐으니 우유랑 섞는 법이에요. 섞을 때는 티스푼을 원 모양으로 돌리지 말고 위아래로만 젓기. 따라해보세요."
"위아래로만 젓기"
"어머나 후후훗! 직접 해보라고요. 귀엽기는..."
부탁대로 티스푼을 잡고 위아래로 왕복 운동을 펼쳤다.
"방금 조금 튀었네요. 5점 감점. 자 섞고 나면 티스푼은 찻잔에 꽂아두지 말고 가로로 정리할 것. 간을 본다고 티스푼으로 차를 떠먹지 말 것."
"하아......"
"씁! 한숨 쉬지 말 것. 티타임은 카페에서 남편 욕하는 소모임 같은 게 아닙니다."
"나기사. 선생이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나기사가 1대1 도제식 교육을 이어가던 동안. 경비 업무에 자원한 코하루가 복도를 지나가고 있다.
"하아~ 이게 무슨 꼴이람..."
"진짜 따분해 죽겠어. 무슨 보안 때문에 핸드폰까지 제출하냐고"
모브쨩과 노가리를 까며 근무하는 코하루. 같은 학년 마시로는 저격수로 배정 받아 이런 잡무는 열외.
'이래서 사람은 기술을 있어야 해.' 코하루는 곧장 이렇게 생각하고는 또 망상을 하기 시작한다.
'발키리에서 만난 어린 선생님... 진짜 귀여웠는데'
밀레니엄에게 선생을 빼앗긴 일은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그 때 이치카 선배는 왜 내뺀 걸까. 츠루기 선배만 불렀다면 농농한 선생님하고...
"코하루 왜 그래?"
"어... 엇! 내가 왜?"
"얼굴이 빨개. 아픈 거야?"
"아니야! 멀쩡해"
티파티 다과회실을 지나간다. 언제나 여길 지나칠 때면 옆에서 호기심이 유혹하는 기분이다.
트리니티를 이끄는 삼두정치의 실체에 대해 언제나 궁금했다.
'힐끔'
어차피 대화는 들리지 않지만, 괜시리 훔쳐 본다.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는 나기사, 세이아... 그리고 어린이.
어린이? 코하루는 걷는 걸 멈추고 창문에 얼굴을 밀착 시킨다.
"우와앗!... 저, 저건!"
"무슨 일이야 코하루?!"
괴롭히고 싶을 정도로 무력한 몸, 무궁무진한 잠재력의 얼굴
무엇보다 지금 짓고 있는 애수에 잠긴 눈빛까지... 코하루는 고혹에 빠져버린다.
"어...어떻게 쇼타 선생님이 여기에?"
"응? 쇼타가 뭐야?"
이크 너무 뚫어져라 쳐다봐서였을까. 기척을 눈치채 나기사가 창문을 경계한다.
"윽!"
선생님에게 향하던 자애로운 얼굴이. 급작스럽게 차갑게 돌변한다.
'까딱'
고개를 옆으로 움직이며 저걸 치우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상을 감지한 티파티 호위병은 황급히 다과회실 밖으로 나간다.
"거기 뭘 보는 거냐!"
"히익! 죄송합니다! 애 코하루"
"아아... 미안..."
고양감이 감돌았던 코하루도 차갑게 식어버린다. 선생이 어째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를 가지는 특권은 역시 지배계층인 티파티가 독식한 것으로 파악된다.
코하루 같은 소시민은... 자격이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아아. 신경 쓰지 마세요 세이아씨. 불청객이 저희를 훔쳐보길래."
차 한 잔을 들이키며 자신이 느낀 불쾌함을 피력한다.
"그나저나... 근무 중에 딴짓이라니 허. 정의실현부도 걱정이네요. 3학년인 츠루기와 하스미가 졸업한다면 카리스마 있는 인재들이 부족하니"
"뭐 그 때는 우리들도 졸업 아닌가. 괜한 노파심일세"
그런데 가만... 방금 훔쳐본 분홍색 머리 어딘가 낯이 익다.
'아니겠지.'
엄청 가쁘게 숨을 쉬고 있던 터라, 창문에 김이 서려 있었다.
때문에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히후미와 함께 보충수업부로 편입 시켰던 정실부 학생이 연상된다.
'만약 정말 그 아이라면...'
설마 히후미에게 자신이 당한 수모를 떠벌리진 않겠지?
그래 정의실현부이니 입이 무거울 것이야. 나기사는 그렇게 믿으며 홍차를 전부 비운다.
***
"정말요? 진짜 어린 선생님이 저희 학교에 있다구요?!"
역시나 친구들에게 전부 불어버렸다.
"그렇다니깐? 밀레니엄에서 언제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땠나요 코하루쨩. 젖었나요?"
"응... 아니! 무슨 소리야! 밥 먹는 중에!"
"부정하지는 않는군요? 후훗"
하나코의 음담패설에 밥알이 코 쪽으로 넘어간다.
"어째서 티파티는 선생의 존재를 은폐하고 있는 것일까"
"음... 그야 위험해서 아닐까요? 안 그래도 신체가 약하신 분인데 어린이라니. 떨어지는 낙엽에도 긁힐 거에요."
"헛되도다... 헛된 저항이야... 어린이라면 위험과 함께 성장하는 존재 아닌가."
"아즈사쨩도 보고 싶으신가 보군요? 쇼타 선생님. 하긴 귀여운 거에 사족을 못 쓰시니까."
"무슨 소리야!... 귀여운 건 좋지만 사족까지는... 과장이다."
다들 어느 순간부터 어려진 선생의 상상도를 반찬 삼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럼 식사 시간이 끝나고 짬을 내서 보러 갈까요?"
"불가능해. 경비가 아주 삼엄할 것이다. 코하루가 사진이라도 찍어오는 게 아니라면"
"그것도 안돼. 티파티 건물은 핸드폰 제출에 교대 근무라 난 다른 곳으로 갈 거야."
"괜찮아요~ 우리에겐 히후미쨩이 있으니까."
"쿨럭 쿨럭! 제, 제가요?! 제가 어떻게 도움이..."
사래가 들릴 정도로 놀란 히후미는 자신에게 몰린 시선에 어쩔 줄 모른다.
"히후미쨩은 나기사씨와 친했죠? 이른 바 친구 찬스라는 거에요~"
"에에...... 글쎄요. 친구 사이이긴 하지만서도... 신분의 차이 때문에 그리 각별하진 않아요... 나기사 님에겐 미카님이나 세이아 님이 계시니-"
"히후미쨩. 오히려 신분의 차이 덕분에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랍니다? 물론 티파티 내에서 교류가 더 많겠지만, 잘 생각해보아요."
중요한 이야기인지 식판을 치워 버리곤 히후미에게 밀착한다.
"미카씨와 세이아쨩은 확실히 나기사님과 소꿉친구지만... 둘은 분파를 대표하는 수장들이에요. 짊어진 짐이 많기 때문에 공과 사를 그어야 한다는 뜻이죠."
"그으... 하나코쨩 저는 정치엔 문외한입니다만"
"축약하자면, 그 셋은 친하긴 하지만 서로를 견제할 수 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나기사씨에게 있어 허물 없이 다가갈 수 있는 히후미쨩은 가뭄 속의 단비 아닐까요?"
안그래도 더운 날씨에 밀착된 하나코의 가슴 때문에 땀이 내리기 시작한다.
"아... 안돼요! 그래도... 사실, 나기사님과 화해한 이후로 계속 어색한 느낌이라..."
"전화위복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기사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거에요. 왜 자식만 있다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잖아요?"
"어째서 선생님을 자식으로..."
"히후미 확신이 있다면 주저하지 마. 주도권은 너에게 있으니."
"난 딱히 상관없지만, 다들 선생님 보고 싶어하는 눈치니까... 한 번 가보던가!"
하나코를 필두로 모두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녀들이 전해준 것이 힘일지 아니면 족쇄일지 모르겠지만
히후미는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중요한 순간이 왔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럼... 한 번 얘기해 볼게요... 거절하면 어쩔 수 없는 거에요?"
"당연하죠~ 아무도 히후미쟝을 탓하지 않아요. 나기사씨를 욕할 뿐."
"으으... 나기사님도 욕하지 마세요. 분명 뜻이 있을 테니까"
***
"저어... 실례합니다."
"무슨 일이시죠?"
근위병에게 접근하는 히후미. 이미 얼굴을 알고 있는지 용무를 듣자마자 곧바로 길을 터준다.
"평소엔 평범하다 주장하지만, 역시 히후미는 범상치 않군."
"그렇죠? 분명 선생님을 탈환하는 임무도 무사히 완수할 거에요."
보안이 출중한 티파티 건물 내로 들어가는 것 자체가 이미 특권.
히후미는 걸음을 뗄 때마다 자신감 역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다과회실.
"좋아요. 다음은 애프터눈 티타임에 대해 알아봅시다. 귀족은 저녁을 늦게 먹기에 허기지는 오후에 차와 함께 간단한 음식을 먹습니다. 그것이 바로 애프터눈 티타임."
또 시작되는 장광설. 문득 선생은 고교 시절 처음 써 본 소설이 생각난다. 의욕이 너무 앞서면 독자는 뒷전에 두기 마련이다.
"여기 3단 스탠드에 있는 음식들이 핑거 푸드. 한 손가락으로 집기 좋게 만들어진 간식이랍니다."
1단에 위치한 샌드위치를 건넨다.
"먹는 순서는 덜 단 순서대로. 일단은 이 오이 샌드위치를..."
"윽! 오이 싫어!"
"어머. 선입견은 좋지 않아요~ 보기보다 깊은 맛이 있답니다."
오이 샌드위치라니! 김밥 속에 끼어 있어도 존재감이 느껴지는데 달랑 오이에 마요네즈 조합이라니.
구역감을 느낀 선생은 몸서리 치며 나기사에게서 도망친다.
"어머머. 술래잡기인가요? 그런 건 나중에 해드릴 테니 자. 어서 드셔 보세요"
"안돼요! 싫어요! 하지 말아요!"
그 외침이 하늘까지 닿았던 것일까. 다과회실로 다급한 노크 소리가 진동한다.
"나기사님. 갑작스럽지만 손님이 오셨습니다."
"...지금은 바쁩니다. 다음에 방문 하라고 전달해주시죠."
"저 그게... 아지타니 히후미 양입니다."
"히, 히후미!?"
갓 태어난 망아지 마냥 갈피를 못 잡더니 결국 의자에 앉아 떨기 시작한다.
"후우~... 그 때 이후로 오는 건 처음인데..."
"들어오라고 할까요?"
"네... 아뇨아뇨. 잠깐만요! 히후미씨에게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해주세요. 아, 마실 음료도 권하시고요"
"알겠습니다."
"자, 선생님은 잠깐 세이아 누나랑 같이 있으세요. 절대 나오면 안됩니다?"
다과회실 옆에 딸린 휴게실로 들어가자, 세이아가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
'이대로 기약 없이 갇혀만 살라고? 그럴 바엔 차라리 업무로 복귀하는 게 낫지!'
새장 속으로 들어간 흰오목눈이에게 손을 뻗는다. 녀석은 나름대로 공감했는지 손가락 위에 앉는다.
'그런데 히후미가 여기 왔다라... 단순 친목은 아닌 거 같은데.'
선생 다운 날카로운 추리. 그러나 나기사는 아직 간파해내지 못하였다...
"흥~ 흥~ 힛 힛 후 미 힛 힛 후미"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란 말이 있듯
갑작스럽게 거리를 좁히는 사람은 조심 해야 할 것. 정치의 기본조차 망각해버렸다.
그저 전신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가담을 뿐.
'어렵사리 구한 페로로 키링... 분명 알아채 주겠죠?'
벨트고리에 끼운 페로로 굿즈. 이걸로 히후미의 관심을 유도하고 자연스럽게 만남까지 잡는다.
"네. 저도 히후미씨 덕분에 관심이 생겨서요. 어울리나요? 훗 감사합니다."
"하루하바라 쪽에 팝업스토어가 열렸다는군요. 아, 역시 히후미씨는 벌써 가봤군요."
"그래도... 함께 가지 않으실래요? 이번 주말엔 일정이 비어서. 화해의 선물을 하고 싶은데요... 아뇨 사양하지 마시고"
거울 앞에서 한껏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히후미와의 대화를 설계한다.
"할 수 있어 나기사... 할 수 있다..."
자신을 쳐다보며 각오까지 다진 뒤에야 의상실에서 나간다.
"히후미씨를 들여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호위병이 밖으로 나간다. 곧 히후미가 이곳으로 당도한다.
나기사는 홍차도 입에 대지 않고 그저 심호흡으로 긴장을 누르려 노력한다.
"아... 안녕하세요 나기사님."
"히후미씨. 어서오세요."
"죄송합니다. 그 연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방문해서"
"아닙니다. 친구 사이에 그런 불편한 절차 따위 필요 없죠."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날씨가 참 좋죠? 하하"
아직까지 느껴지는 어색한 공기. 히후미는 쭈뼛거리며 의자에 앉아있는 나기사 주변을 맴돈다.
'맞다! 의자를 더 가져왔어야 했는데! 긴장해서 까먹었어'
홍차를 잡은 손이 떨리며 컵 안에서 파문이 시작된다.
너무 긴장했던 탓이었을까 히후미의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자기는 앉아 있고 히후미가 서 있으니 완전 주종관계 아닌가.
'지금은 급한대로 미카씨의 자리를... 아니야. 호위병이 보고 있잖아. 이걸 들킨다면 정치적으로 문제가'
온갖 암투가 벌어지는 트리니티에선 지도자의 사소한 실수도 가십거리로 발전한다.
'내 자리를 히후미에게 양보... 아니야 히후미 성격이라면 불편해 하겠지.'
결국 나기사는 이도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그나저나 히후미씨. 무슨 용건으로 방문하신 거죠?"
"에에...... 그냥 안부도 좀 묻고 싶어서 왔는데... 아무리 친구라도 귀찮게 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뿌득' 나기사의 찻잔에 금이 간다.
실수했다. 평소 공무에 임하는 말투가 입에 베어버려 이젠 친구에게 할 만한 일상적인 어투도 까먹었다.
"아뇨아뇨아뇨! 그게 있잖아요. 친구끼리 할만한 대화라던가?... 유희에 대해 물어보려 했던 것입니다. 흠흠"
바보인가. 그런 걸 상정해두지 않아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친구라는 것인데
"끄으응~"
히후미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팍을 손으로 두드린다.
만남을 가지기 전 하나코에게 본래 의도를 숨기라고 단단히 주의를 받았지만, 히후미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으... 나기사님!"
"끼약!... 네 히후미"
"사실 여기 방문한 건. 선생님과 만나고 싶어서 입니다!"
"ㅅ...선생님이요?"
차마 코하루를 팔 수 없던 히후미는 변명을 둘러댄다.
"아아... 그게... 사실 소문으로 들었는데, 어린 모습을 한 선생님이 여기 계시다고 해서. 정말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아, 그렇군요. 흠흠."
정의실현부에게 일을 맡긴 것은 실책이었나? 경비를 강화하려다 되려 보안은 허술해졌다.
"사실무근입니다 히후미씨. 선생이 어려졌다니 그런 불쏘시개 소설에나 어울리는 상황이 현실에 일어날 리가 없잖아요?..."
"하하... 역시 그렇죠~ 저도 참 팔랑귀-"
그 순간 돌발 사태가 벌어진다. 히후미의 목소리를 들은 선생이 SOS를 취하기 위해 휴게실 밖으로 나간 것이다.
"나기사 누나 화장실."
"히에엑!!! 선생님 밖으로 나오시면-"
".......에. 정말이잖아...!"
경탄에 빠진 히후미. 이렇게 보자마자 자신을 파괴하는 듯한 귀여움은 페로로 이후 처음이다.
"...호위병. 선생님을 화장실로 인도해주세요."
"넵"
"히후미씨... 죄송합니다. 사실을 숨겨서... 선생님이 어려졌단 걸 알면 혼란을 초래하기에-"
이미 나기사는 안중에 없고, 주머니에 반쯤 녹은 페로로 사탕으로 선생을 유인한다.
"선생님 저 기억나시나요? 아지타니 히후미입니다~"
"몰라."
"기억마저 어려졌군요!... 아아... 당을 먹으면 머리가 빨리 돌 거에요. 자."
사탕이라... 선생은 추억에 잠긴다.
'소아과에서 더 이상 사탕을 주지 않자 나는 비로소 어른이 뭔지 이해했지...'
히후미의 체온이 담겨 있는 사탕... 묘하게 여러 향이 나는 듯한 사탕을 먹자 기분이 좋아진다.
"헤헤... 맛있어"
"입에 맞다니 다행이에요. 헤헤"
"...!"
나기사는 모르는 표정. 행복에 겨운 선생을 보자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나기사님! 선생님과 산책을 해도 될까요? 분명 학교 여러곳곳을 둘러보면 저절로 기억도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요."
"송구스럽지만... 그... 역시 안전을 위해 이 곳에 머무르게 하는 편이 옳습니다..."
"그러지 마세요 나기사님. 저희 학교는 키보토스에서 가장 안전한 학교잖아요? 이대로 갇혀 있으면 선생님도 싫을 거에요."
"맞아! 여기 답답해!"
"보세요 나기사님! 잠깐 놀다가 다시 올테니깐"
"아아... 안됩니다. 죄송합니다. 이것 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요."
선생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마치 자신을 소유물로 여기고 있는 나기사의 태도.
어떻게 골탕을 먹여야 하나 고민하던 중. 자신의 제자인 히후미가 대신 나선다.
'나기사님에게 미안하지만... 강하게 나가야겠어요.'
하나코의 조언을 되새김질한다.-
"히후미쨩. 만약 나기사씨가 거절한다면 강하게 말해보세요."
"네?! 감히 제가 어떻게 티파티의 호스트님을..."
"둘은 친구잖아요? 사랑이란 서로의 치부까지 봐야 하는 것. 만약 억지를 부린다면 강하게 나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에요."
"으으... 그래도..."
"항상 끌려 다니고, 반발하지도 못한다면 그건 친구가 아닌 호구에요. 때로는 박아 보는 게 오히려 더 사이가 돈독해지는 기회라구요."
-
'다들 날 기대하고 있어...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갈 순 없다고!'
히후미는 각오를 다지고 선생님에게 맞췄던 자세를 곧게 핀다.
"나기사님. 정말 안되나요?"
"네. 유감이지만. 아, 히후미씨라면 특별히 여기에서 선생님과 같이 지낼 수 있게 허락할게요! 다른 분들은 어렵습니다."
"하하... 나기사님은 너무하세요"
"네?!"
나기사는 휘청거리다가 그만 홍차를 흘려버린다.
"아무런 직위도 없는 제가 여기서 선생님이랑 놀고 있으면... 얼마나 눈치 보이겠어요?"
"죄, 죄송합니다 히후미씨... 제 생각이 짧았어요."
"사과할 필요까진 없어요 나기사님. 사실은, 기대도 안했거든요."
"무...무...무슨 뜻입니까 히후미..."
"아하하... 역시 저만 나기사님을 친구라고 생각했나 보네요."
'쨍그랑'
트라우마로 박힌 웃음소리와 관계를 부정하는 발언까지 더해지자.
지고지순했던 나기사의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나버린다.
"에? 에에...? 저희 친구 아닌가요?... 히후미씨 왜 그런 말씀을-"
"친구라면 솔직하게 터놓는 사이 아닌가요? 저도 처음엔 숨기려고 했지만, 역시 친구에겐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솔직하게 어린 선생님을 만나러 왔다고 말했습니다."
"......아아..."
"그런데 나기사님은 저를 기만했죠. 그런 건 없다고."
"오해입니다! 전 그저 선생님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예전부터 줄곧 의문이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불편하게 서 있고, 나기사님은 앉아서 제 이야기를 듣죠. 전 아무래도 나기사님의 친구가 아니라 시녀 같은 존재 아니었을까요?"
"아니에요!!! 저도 일어설테니 이제 그만-"
"의문을 해소 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이런 불편한 관계 따위 청산하려고 해요."
매정하게 뒤를 돌자. 나기사는 체면 따위 전부 갖다 버리기로 결정. 무릎을 꿇고 히후미의 다리를 붙잡는다.
"히, 히후미씨...? 이걸 보세요. 한정판 페로로 키링... 저도 히후미씨에게 감화되어서 좋아하게 됐답니다? 이런데 친구가 아니라니..."
"그만두세요 나기사님. 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어요"
"아... 아..."
"정말 좋아 보이는 키링이네요. 프리미엄까지 붙어서 거래되고 있죠. 전 꿈에도 못 가지는 물건입니다. 혹시 나기사님은 정치로 인해 생긴 피로를 이런 식으로 푸는 건가요?"
"무슨 소리에요... 히후미... 전부 오해니까 제발 그만"
"평범한 학생인 절 우롱하면서. 우월감을 채웠던 것 아닐까... 이런 나쁜 생각까지 닿으니 전 나기사님이 불편하기 시작했어요."
"......아니야 아닌데..."
"죄송합니다. 설령 나기사님이 가진 호감이 진심이라도, 부족한 제가 당신의 친구가 되긴 힘들 것 같네요."
당신... 거리를 벌리는 단어가 나오자 이윽고 나기사는 완전히 무너져버린다.
"꺄아아아아악!!!"
자리에 철푸덕 엎드리며, 모든 걸 달관한 표정으로 히후미를 올려다본다.
"히후미씨... 제가 잘못했습니다... 선생님을 데려가세요."
"정말 그래도 되나요?!"
"네... 제 욕심이 지나쳤습니다. 반성할테니 제발 용서해줘요... 흐흑..."
그러나 그 간곡한 부탁은 닿지 않았다.
선생님을 탈취하는데 성공한 히후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과회실에서 빠져나간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나기사님! 그럼 이만."
"아아 히후미... 가지 말아요... 끄흑!..."
댓글 26
역시 나기나기는 울려야 제맛..
씹 ㅋㅋㅋㄱㅋ 음해의 끝을 달리고있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