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63자
#후우카
원문 るび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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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사무실 냉장고를 들여다본 학생, 게헨나의 급양부장 아이키요 후우카가 놀라는 목소리가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린다.
"왜 그래?"
"저, 이건..."
"아아."
냉장고 안을 가르키며 이쪽을 바라보는 후우카의 시선에 나는 곧바로 이유를 짐작한다. 냉장고 안에 초콜릿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엄청 많지, 초코."
"네... 왜 이렇게 많나요 이거?"
"전부 화이트데이 때 받은거야."
"화이트데이. 그렇군요."
며칠 전 3월 14일.
나는 그 날 트리니티에 볼 일이 있었다. 3월 14일이라고 하면 화이트데이로, 일반적으로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받은 아이가 답례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이벤트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은 트리니티에서 여기저기 초콜릿이 즐비했고 달콤한 냄새가 풍겼던 기억은 신선했다.
나는 발렌타인에 초콜릿을 주지도 받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 이벤트와는 무관했을 테지만, 오가면서 본 거의 모든 학생들이 "선생님이다~", "초콜릿 줄게~", "남아서 말이야~" 같은 식으로 하나둘 건네줬고, 샬레로 돌아올 즈음의 나는 팔이 찢어질만큼 초콜릿을 들고 있었다. 냉장고에 넣는 것도 꽤 힘들었다.
아무튼 당분간 단 것 걱정은 없다고 기뻐하고 있었지만, 이내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이만큼 있으면 유통기한이 걱정이네요..."
쓴웃음을 짓는 후우카.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하려던 문제다.
"그 말이 맞아. 많이 먹었는데도 전혀 줄지를 않아. 버리는 것도 준 애들에게 미안하고. 혹시, 좋은 처리 방법 없을까?"
"음..."
넌지시 물어보자 후우카가 생각에 잠긴다. 그도 그럴것이 초콜릿의 처리 방법이래봤자 먹는 것보다 나은 방법은 없을 테니까.
"판초콜릿 같은거라면 카레의 조미료 등으로 쓸 수 있었을 텐데요."
"카레에 초코?"
"네. 감칠맛이 나서 맛있어져요."
"흐음..."
처음 알았다. 나중에 해달라고 하자.
"그 초코들은 양념으로 못 쓸까?"
"언뜻봐선 대부분 이것저것 섞여있는 기성품이니까요. 재가공해서 조리하기엔 부적합하고... 그냥 먹어줘야 맛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구나."
"아, 미식연구회에 떠넘기면 어때요?"
떠넘긴다, 라는 단어에서 후우카가 미식연구회에 가진 부정적인 감정의 편린이 엿보인 것 같았다.
"채용."
그런 수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카리가 순식간에 초콜릿을 먹어치우는 광경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이따가 모모톡을 보내놓기로 하자.
"간식 때인데, 초콜릿 먹을까."
벽에 걸린 시계가 3시 너머를 가르키고 있었다. 마침 출출하기도 하다.
"괜찮지만 조금만 드세요? 저녁을 못 먹게 되니까."
제안받은 후우카의 대답에 왠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곧바로 그게 무엇인지 기억할 수 있었다.
"엄마같네."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을 정도였다.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 아직은 엄마가 아니니까요!"
"아직?"
"아, 그게, 저기..."
후우카가 허둥지둥 얼굴을 붉히며 부정할 말을 찾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엄청 사랑스럽다.
"후우카 마마..."
"네에~ 가 아니라... 진짜 선생님, 그만 놀려요!"
"미안미안."
앙증맞게 화를 내는 후우카를 달래며 일어선다.
"그러면, 사과의 의미로 커피라도 끓여올까?"
"아, 그건 제가 할게요?"
"아니아니, 앉아서 일만 했더니 조금 움직이고 싶어서.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골라봐. 먼저 먹고 있어도 괜찮아."
"알겠어요."
다시 냉장고를 살펴보는 후우카의 모습을 보여 나는 기분좋게 사무실 문을 열고 탕비실로 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세 걸음 정도 걸었을 때.
"!"
왠지 모를 기분나쁜 예감이 나를 덮친다. 나도 모르게 발이 멈출 정도의 예감이다.
"..."
그 정체를 알기 위해 복도 한복판에서 필사적으로 생각에 잠긴다. 나는 무엇에 대해 그렇게 안좋은 예감을 느낀걸까? 후우카가 초콜릿을 고르는 것? 그 정도인가? 주리도 아니고 후우카는 급양부다. 음식을 고르는 데 있어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까지의 후우카와의 교제로 잘 알고있다. 그렇다면 이 예감은 도대체...
"... 아."
몇 초간의 사고 끝에 하나의 가능성에 도달한다.
"술이 들어간 초콜릿...!"
이것이다.
후우카는 술에 약하다. 미림에 포함된 0.00003%의 알코올에 취해버린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면 도대체 후우카는 평소에 어떻게 미림을 사용한 요리를 하는지 의문이 생겼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래도 좋았다.
냉장고에 집어넣은 초콜릿 중 술이 들은 것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트리니티 학생들에게 받은 초콜릿은 포장도 세련되어 있어 비싸보이는 것들이 매우 많았다. 술이 들은 것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후우카가 의식하지 않고 술이 들은 초콜릿을 고를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0은 아니다. 심지어 먼저 먹어도 된다고 말해버렸다. 난감하다.
후우카가 취해버리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왜냐하면 가뜩이나 귀여운 후우카가 더 사랑스러워지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나는 후우카땅 모에이고, 술에 취해 후와후와한 후우카가 바짝 다가오면 내 이성은 입에 넣은 솜사탕처럼 흐물흐물 녹아버릴 것이다. 후우카가 러블리 마이엔젤 후우카땅으로 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긴 하지만 그건 지금이 아니여도 된다. 업무 중에 그렇게 되어버리면 나는 오늘 직무를 내팽개치고 문을 닫아야 한다. 나는 그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성을 갖고 있다.
"후우카!"
발길을 돌려 사무실로 뛰어간다. 아직 늦지 않았을 것이다.
"술이 들어간 초콜릿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
유난히 느리게 열리는 자동물 사이로 끼어들며 사무실로 들어가 후우카에게 말했다.
그런데,
"딸꾹."
후우카는 이미 초콜릿 하나를 다 먹은 것 같다.
멍한 채로, 볼이 발그레해졌다. 아니, 아직 모른다. 그렇게 될 정도로 초콜릿이 맛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굉장한 만화를 본 적이 있다.
"... 후우카?"
조심조심 후우카에게 말을 건다. 그러자 후우카는 목소리에 반응해 천천히 이쪽을 본다.
"아, 선생니임..."
확신했다. 그 흐릿한 발음으로 확신했다. 늦었다.
그 확신을 뒷받침하듯 탁자에 놓인 초콜릿 포장에는 술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후우카와 나는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관계 이상으로 사이좋다고 생각한다. 그 계기는 내가 과로로 픽 쓰러져 후우카가 간병하고 밥을 해준 날인 것 같다. 언듯 본 솜씨좋게 음식을 만드는 그 어른스러운 옆모습에 내가 굉장히 끌렸던 기억이 난다. 농담으로 후우카의 밥을 매일 먹고싶다고 했을 정도다. 후우카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모르지만 그 날 이후 후우카가 나를 만나러 오는 빈도는 확연히 늘어났다. 같이 있는 시간이 늘고 밥을 해줄 기회가 늘었다. 급양부 일이 없다면 정말 매일 올 기세다. 오늘도 후우카는 나에게 손수 만든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온 것이다. 아무튼 그 정도로 어울리면, 서로가 서로의 깊은 부분까지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전제 하에서 후우카가 취해버리면, 이성의 끈을 놓치면 어떻게 되냐, 라고 한다면.
"선생니임..."
후우카가 돌아온 나에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껴안은 채 볼을 붉게 물들이고 촉촉한 눈동자로 바라보며 애틋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귀여워."
마음의 소리가 나온다. 뭐야 이 귀여운 생물. 풀악셀로 파고들어온다.
"조아해요..."
우는듯한 목소리로 속삭여서 무의식적으로 나도, 라고 대답하면서 같이 포옹하고 싶어졌다.
너무 강력하다. 지금의 나는 분명 굉장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귀여운 아이에게 사랑받는 것은 터무니없이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니임."
"왜, 후우카."
"선생님은 저를 언제 엄마로 만들어주실 건가요?"
"으엑."
이상한 소리가 나와버린다.
너무 너무 강력하다. 귀여운 학생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기쁘지 않을리가 없다. 하지만 안된다. 나는 아직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다. 그야 대답하면 죽는다. 나는 아직 이승의 공기를 마시고 싶다.
강인하게 죽음을 피하기 위한 이성으로 필사적으로 자신을 억누른다.
"후, 후우카가 어른이 되고 나서..."
겨우 그렇게 대답한다. 생각보다도 국어책 읽기였다.
"흥."
그러자 후우카는 저도 이제 어른인데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달래주는 것 밖에 할 수 없다.
보송보송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자 후우카는 기분좋은 듯 눈을 감는다. 그리고 나선.
"아, 아야야야, 아파 후우카, 아파!"
내 가슴에 얼굴을 묻으려고 한다. 당연히 후우카의 뿔이 나에게 확 다가온다. 온순한 후우카가 가진 유일한 날카로운 부분이다. 요컨대 아프다는 소리다.
"참아주세요."
"나도 참아주고 싶지만 참으면 내가 죽어!"
받아들리고 싶지만 받아들이면 몸에 구멍이 생긴다. 고슴도치 딜레마라고 할까.
"그런. 선생니임, 제가 싫어진 건가요?"
아. 그런 조금 귀찮은 여자같은 행동도 하는구나. 후우카가 그러니까 사랑스러운 느낌밖에 없다. 왜 그럴까. 후우카니까 그렇겠지?
"싫으면 진심으로 밀어냈을 거야."
"정말로요?"
"정말 정말로."
"그럼..."
후우카는 나에게 달라붙은 채 귓가에 속삭이려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조그맣게 중얼거린다.
"싫지 않다는 증거... 좋아한다는 증거... 보여주시겠어요...?"
"증거..."
그 말이 곤란하다.
후우카를 좋아한다는 증거는 있다. 후우카와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후우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그것은 내 입장 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선생님으로서 특정한 누군가의 편이 되는 것은 본래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미 밥을 해달라고 한 시점에서 그런 말을 할 입장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러니까 후우카. 이런 말로 납득할지는 모르겠지만, 들어줘 후우카."
"..."
여기부터 후우카의 표정을 읽을 수 없어졌지만 신경쓰지 않고 계속한다.
"때가 오면, 맞이하러 갈게. 기다려줬으면 좋겠어."
... 부끄럽다. 말하고 나서 굉장히 부끄러워졌다. 얼굴이 뜨겁다. 용서받을 수 있다면 지금 말은 무효라고 외치고 싶었다.
"후, 후우카, 뭐라고 말 좀 해줬으면 좋겠어."
아무튼 이걸로 후우카가 만족했을까. 한참동안 말이 없는 후우카의 반응을 살핀다.
"..."
"후우카 씨?"
"쿨..."
숨소리가 귀를 스친다.
"아니 잠든거야?"
지금 상황에서 만점을 받을 츳코미를 건 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잠들어버린 후우카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취한 뒤 취했을 때의 기억이 있는지 없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그렇게 취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런데 후우카는 취했을 때의 기억이 있는 타입인 듯 했다.
몇 시간 뒤, 내 품에서 깨어난 후우카는 모든 것이 기억났는지 얼굴을 붉히며 샬레를 뛰쳐나갔다. 과연 그것이 내가 한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를 껴안고 있던 부끄러움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모모톡을 보냈지만 읽기만 했을 뿐 답장은 없었다. 역효과였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선생님, 후우카 선배가 얼굴을 붉히면서 돌아왔는데 무슨 일인지 아시나요?』
라고 주리에게 메세지가 왔다. 안다. 알고 있어서 대답할 수 없었다. 무슨 대답을 할지 곤란하던 찰나에 내 배가 꼬르륵거렸다. 그러고보니 오늘 후우카에게 밥을 해달라고 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후우카의 밥은 바랄 수 없다.
오늘은 조금 남은 초콜릿을 먹으며 굶주림을 버틸 수밖에 없다.
초콜릿만으로.
... 말하지 말 걸 그랬다.
댓글 9
위스키봉봉 먹고 취하는 패턴 씹덕물에 참 많이 나온단 말이지...
바로 들어서
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