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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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노랫소리만이 흘러나오는 차 속에서 이번 여행의 그 어느 때보다 촉각이 곤두서있다.
눈길 고속도로 운행이라니.
타이어에 체인을 끼웠다고 극적으로 무언가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타이어에 체인을 끼우지 않은 게 너무나도 후회된다.
'자 잘 가고 있었는데.. 어어어~!'
'0대 100입니다~'
잘못해서 사고라도 나면 출발하기 전에 체인을 깜빡하고 안 끼운 내가 잘못인 것 같잖아.
긴장을 풀려면 누군가랑 이야기를 하는 게 제일 좋은데 말이지. 조수석이 존재하는 이유 중에 하나기도 하고.
그런데..
"그럴 수 있긴 한데.. 다들 너무하네.."
앞에 코너도 없고 가까운 거리에 앞서가는 차도 없는 걸 확인한 후 오른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려보았다.
평소와는 정반대의 모습으로 헤헤하며 즐거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아가 보였다.
.. 푹신한 등받이에 온몸을 맡기고, 눈은 감겨 있으며, 헤일로는 꺼진 상태의 노아가 말이다.
확인해 보기 위해 고개를 180도 돌리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인지라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특별히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뒤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선생님은 외로워요. 선생님은 외로우면 죽어버린답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가 봐. 사실 외롭다고 죽지는 않아요. 그리고 얘네 내려줄 곳까지 5km도 안 남았고.
그래도 몇백 km를 혼자서, 오디오 하나에만 의존해 운전해 오는 것은 도저히 사람이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휴가를 나올 때 당시와는 다른 게, 그때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어서 도파민이 마구 뿜어져 나왔다. 졸음과 피로는 첫날 잠실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야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도파민 그런 거 없고, 그때는 없던 여독이 쌓인 채로 나를 으흐흐흐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앞으로 졸음쉼터도 없단 말이다.
하아. 나는 쎄빠지게 운전하고 있는데.. 다들 편하게 자고 있네?
'그냥 블랙마켓에 던지고 가버리자! 하루나는 선도부한테 배달해 주고!'
스멀스멀 나쁜 생각이 떠오르자 내 마음속의 악마가 말을 걸어왔다.
'너 선생 아니야? 기자들 피하려고 미리 해산할 장소까지 생각해 뒀던 선생님은 어디 간 거야?'
어디서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럴 때만 나타나서 양심의 가책을 더해주는 마음속 천사도 나타났다.
내비게이션에 떠 있는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5.. 4.. 3 이렇게 줄어드는 동안 내 마음속에서는 천사와 악마가 서로 한판승부를 벌였다. 평소라면 악마가 쨉도 되지 않는 싸움이었겠지만, 지금 상황의 특수성은 마치 기울어진 링과 같아서, 오늘만큼은 악마가 할만한 싸움이 펼쳐졌다.
".. 그래도 내 학생들인데."
물론 해볼 만하다고 했지 악마가 이겼다고는 하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을 보니 이제 애들을 내려주기로 한 장소까지는 1km도 남지 않았다.
장소는 아까 네비 찍으면서 즉석에서 정했다. 3대 학원으로 갈 수 있는 교통편이 5분 거리에 있는 시라토리구 교외의 모텔. 3대 학원으로 가려면 환승을 여러 번 해야 해서 시간은 차를 끌고 다니는 것보다 많이 걸렸지만 그래도 이만한 곳이 없어서 내가 자주 애용하는 곳이었다.
총력전 같은 연합작전 끝난 날 술 마시고 뻗었을 때라던지 술 마시고 뻗었을 때라던지 술 마시고 뻗었을 때라던지 말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찾아가는 것도 아닌, 꽤 훌륭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서 애들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기도 했고 말이다.
푹 자고 다음날 알아서 들어가라고 해야지.
[목적지 부근입니다.]
"다들 일어나~"
"으응.. 어? 여기가 어디에여?"
창문 너머로 네온사인 입간판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모텔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내비게이션에서도 다 도착했음을 알리는 내레이션이 흘러나왔다.
나는 애들을 깨우기로 했다. 조명을 켜고 일어나라는 말을 하자 제일 먼저 답한 건,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해 비몽사몽 한 채로 눈을 비비고 있는 유우카였다.
"시라토리구 교외 모텔."
나는 여기가 어딘지 묻는 유우카를 위해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모텔 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켜 주었다. 유우카는 무언가 의문점이 있다는 투로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전에 있었던 일로 미루어 보아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알것 같긴 한데..
굳이 말하지 않는게 좋겠지.
"근데 왜 모텔로 온 거에요?"
어. 너희도 일어났구나. 어느새 잠에서 깨어난 노아와 하루나도 유우카의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의문점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자. 지금 상황을 정리해 보자. 내가 휴가를 나갔다가 복귀한다는 게 만천하게 까발려졌지?"
"그렇죠."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쥐어짜 낸 머리는 내 학생들의 철저한 포위망을 빠져나갈 '출구 전략을' 그대로 입으로 전달했고, 내 입은 속사포처럼 그 전략을 유우카, 노아, 하루나 셋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스키장에서 있던 일을 떠올려 보자고. 우리는 스키장에서 '우연히' 만나서, 당일 해산할 것처럼 보이는 사진을 찍었어.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거기서 다 끝내고 헤어졌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뭐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지만 말이지? 그 상황에서 유우카, 노아, 하루나 너희 셋이랑 같은 차를 타고 복귀하는 게 포착된다? 가뜩이나 내가 갈만한 곳에 이미 기자들이 쫙 깔려있을 텐데?"
"아."
"큰일인데요."
"큰일 수준으로 끝나면 다행이지. 응. 진짜 다행인 게 여기는 잘 몰랐던 것 같아."
더군다나 주변에 사람이 숨어있을 만한 구조물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길가에 헤일로의 광휘를 뿜으며 '나 여기 있어요!'라고 광고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기에 안심이 되었다.
"그러니까 말을 좀 맞춰야 할 것 같아."
"말을 맞춰요?"
"뭔가 범죄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드는걸요.."
순간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하루나..? 네가 그런 말 할 처지니? 뭐 어쨌든.
"자. 우리는, 스키장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자지 않고 그날 폐장 시간에 헤어져서 갈 길 간 거야."
"솔직히 누가 믿어줄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말이 꼬이는 일은 없어야지."
"그건 그렇죠."
셋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우리 학생들에게 아주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어른의 말 맞추기'를 속성으로 가르치고 실전에 적용시키는 가르침을 주고야 말았다.
"자! 그럼 다들, 이번 휴가동안 수고했어! 푹 쉬고 나중에 보자!"
"선생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며칠 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나중에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후훗."
셋은 각자 마지막으로 본인들 다운 말 한마디씩을 남기고, 각자 트렁크에서 본인들의 짐을 빼서 모텔 입구로 들어섰다.
나는 창문을 내린 채로 애들이 들어가는 걸 보며 손을 흔들어 주다가, 셋이 보이지 않게 되자 창문을 천천히 올리고 차를 출발시켜 시라토리구에 있는 내 집으로 돌아왔다.
예상대로 집에 들어가기 500m 전부터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트리며 진을 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미 출구전략을 칼 갈듯 제대로 준비해 온 내게서 얻어낼 수 있는 군침 도는 사실들은 하나도 없었다.
"으앙! 선생님!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세요?"
"아. 선생님. 돌아오셨습니까? 정말 많이 기다렸단 말입니다.."
"아로나..? 프라나..? 아! 미안해!!"
깜빡하고 놓고 간 우리 귀여운 AI들도 만나고,
"나가서 게임개발부를 만났는데 말이지.."
"그래서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보채지 마세요. 아로나 선배."
침대에 누워 휴가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로나, 프라나와 함께 얘기하며 되돌아보다 보니 어느덧 시간은 새벽 3시를 훌쩍 넘겨 있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운전으로 쌓인 피로와 여독, 그리고 짧은 수면시간의 후폭풍이 나를 덮쳤지만 이상하리만큼 다음날 나는 개운한 아침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커피가루가 다 떨어졌네. 오늘 들어오는 길에 하나 사 와야겠는걸."
다음 날 아침 모닝커피를 홀짝이며 휴대폰으로 뉴스를 슥슥 훑어내려 가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단독] 샬레 선생님, 휴가 복귀날 심야 시간에 교외 모텔 앞에서 학생 3명 배웅해 줬다
"푸흡-!"
분명히 완벽했던 내 계획이 보기 좋게 무너진 모습과..
"선생님! 안에 계시는 거 다 알고 있습니다!"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어떻게 된겁니까!"
.. 앞으로 마주해야 할 후폭풍뿐이었다.
"끼야아아악!!"
<완>
아.. 정말 긴 여정이었습니다.
작년 8월에 최종편 3장에서 아리스가 빛이여-! 를 쏘는 걸 보고 뽕이 차올라서 이 게임에 입문했던 저는 스토리를 정주행하면서 정말 큰 감동과 울림을 받았고, 원동력을 받아 2차창작이라는 가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의 기획 동기를 준 건 다른 작품이 따로 있긴 하지만 말이죠. 그것도 블아 2차창작 소설입니다.
그건 드랍된 채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걸 보고 창작을 시작한 제가 작품 하나를 끝내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어쨌든 정말 달려오면서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슬럼프를 겪기도 했고, 소재가 떨어지기도 했으며, 현생의 압박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후반부에 연재 주기가 크게 느려졌던 이유기도 합니다. 항상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서도 제가 이렇게 작품 하나를 끝낼 수 있었던 건 이런 못난 작가놈과 작품을 응원해주신 여러분들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2차창작에 대한 의지가 꺾이지 않았기 때문에 후속작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장편이 될 가능성은 솔직히 좀 낮고 언제 올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그리고 그동안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셨던 점을 대답해드리는, Q&A 시간도 짧게나마 가져보고자 합니다.
댓글로 저한테 하고싶었던 말들이나 궁금해하셨던 점들을 써드리면 모두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완결까지 응원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댓글 35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드디어 왔구나 다시 정주행해야지
소설쟁이는 죽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안떠오를땐 어떻게 하시는지요
리겜하거나 다른 스토리 있는 컨텐츠 보면서 영감얻기
감사함다 글고 완결 ㅊㅊ
잊을법도 한데 봐주고 댓글써주고 너무 고마웠음 다들
뭐야 그새 한편 더 나왓었잖아
생명유지장치 달았지만 죽은적은 없다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