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서 한달 뒤, 지옥같은 더위가 펼쳐지는 8월에서 한달 전, 한창 장마철이 찾아오는 7월이었다.
행운의 숫자가 붙은 이 달에는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다가도 축축한 비가 한가득 쏟아지는데, 축축한 빗방울이 세상을 뒤덮을 때면 그간의 더위도 식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그칠줄 모르는 비에도 불구하고 시원하거나 춥기는 커녕, 습습한 공기 때문에 오히려 더울 때가 있다. 말하자면 바로 오늘이었다.
거리는 다른 이유도 아닌 오직 폭우 하나 때문에 한산하다. 이런 와중에 커다란 우산 하나로 무자비한 빗발을 뚫는 용사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또 사랑으로 보듬으며, 그녀들에게 '선생님' 이라 불리는 남자다.
뿌옇게 물든 하늘보다 하늘에 가까운 파란색의 우산 덕분에 선생은 온몸이 젖는 일은 면했다. 대신 정장 바지 밑단이 폭삭 젖는 것은 막지 못했다. 심지어 구두 안까지 젖을 지경이라서, 선생은 원망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슨 비가 이렇게 내리냐……."
쉬지 않고 빗줄기를 쏟아내는 하늘을 원망하는 것도 잠시, 선생은 고개를 몇 번 젓고는 다시 바쁘게 갈 길을 옮겼다. 혹자는 여기서 맞는 비도 지겨운데 달려가서 저 앞의 비까지 맞을 생각이냐고 했던가. 그는 문득 떠오른 우스갯소리를 곱씹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쨌든 선생으로서는 샬레에 도착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잔뜩 축축해진 양말에서 느껴지는 감촉은 그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했다. 한낱 미물이 어떻게 자연에 맞서겠는가.
'자연에 순응해서 샤워 후에 발 쭉 뻗고 잠이나 자야지.'
미지근하고 찝찝한 빗물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온수, 습습한 공기와 물기에 젖어든 옷 대신 건조기로 잘 말린 뽀송한 옷을 떠올린 그의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비록 현재는 고통 뿐일지라도, 미래에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샬레도 그리 멀지 않았다.
그렇게 한결 가벼워진 선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저 멀리 보이는 어떤 형체였다.
"응?"
거센 빗줄기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고, 뒷모습이었지만 선생은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머리 위에 보이는 헤일로, 뒤로 땋아내린 분홍 머리, 벗은 것과 다름 없을 정도로 어깨에 대충 걸친 코트까지.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1학년, 초현상특무부 부원 이즈미모토 에이미였다.
"에이미?"
비 내리는 거리에 서 있는 학생에게 선생이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하다. 하물며 항상 학생을 신경쓰는 그와 같은 선생이라면 더더욱 그랬다. 그러나 선생의 주의를 끄는 요소는 그 뿐 만이 아니었다.
"……선생님?"
쏟아지는 빗줄기 아래서, 에이미는 우산 하나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비를 걸치지도 않았다. 평상시처럼, 예의 '효율적인' 옷차림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네가 더위를 많이 타는 건 알지만……. 이렇게 비 맞으면 감기 걸린단다."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게 된 선생은 애써 한숨을 참으며 에이미의 머리 위로 우산을 드리웠다. 커다란 우산은 두 사람이 쓰는데에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런 질병에 걸리는 건 효율적이지 않겠지?"
선생이 한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에이미는 선생이 내민 우산을 거부하지 않았다. 대신 선생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일단 샬레에 있다가 갈래? 비가 그칠 때까지 있다가 가도 좋으니까."
"좋아. 그렇게 할게."
다행히 에이미는 별 다른 설득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서야 선생은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그건 그렇고, 더 큰일이구만.'
파격적인 노출을 자랑하는 의상 탓에, 처음 에이미를 만났을 당시의 선생은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곤란해했다. 지금에야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분에 얼굴을 붉히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비에 젖은 탓에 평소 이상으로 선생을 곤란케 하는 모습이었다.
'평소에도 엄청난 옷차림이지만, 아예 젖기까지 했으니…….'
푸욱 가라앉은 머리카락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효율적으로 어깨부터 가슴까지 드러난 맨살에도 물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흘러내렸다. 가슴을 가리는 천에 달린 지퍼 끝에 물방울이 맺히고, 젖어버린 흰색 스커트 너머로는 치마 속에 가려져야 할 색깔이 드러났다.
"파란색이야. 선생님. 체크무늬고."
"응?"
처음 선생은 에이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파란색? 내 우산을 말하는 건가? 그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은 것은 조금 뒤였다.
"딱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맹세컨데 선생은 그녀의 속옷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의 치마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일부러 그 쪽에서 눈길을 돌렸던 선생이었기에, 에이미의 뜬금없는 폭로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에이미는 그런 선생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마냥,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내가 알려주는 편이 더 효율적이지 않아?"
"그건 아닙니다."
학생을 아끼고 계도하는 선생에서 학생의 속옷을 궁금해하는 파렴치한 어른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그는 에이미의 말에 바로 태클을 걸었다. 살짝 뒤집힌 목소리라던가, 표정으로 봐서는 진심으로 하는 반박보다는 일종의 농담에 가까웠지만,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에이미는 멍하니 선생을 바라볼 뿐이었다.
"저번에 선생님과 함께 골랐던 속옷이니까."
그제서야 선생은 에이미의 의도를 반쯤 이해했다. 물론 반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여고생들은 이런가? 라고 생각하기에는, 정작 에이미도 그에게 '요즘 친구들의 대화를 따라가기 어렵다' 며 고민상담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에이미야말로 그 친구들이 따라가기 힘든 아이가 아닐까.
'이럴 때에는 어울린다고 해야 하는 건가?'
선생이 이상한 방향으로 고민에 빠지는 동안, 어느새 저 앞으로 걸어가는 에이미는 아까처럼 폭우 한가운데에서 온 몸으로 비를 맞고 있었다. 기겁한 선생은 어깨가 젖어드는 것도 아랑곳 않고 그녀를 쫓아 달렸다.
"에, 에이미! 비 맞으면 안된다니까……!"
우산이라도 씌워주려는 선생과 지금 비를 맞는 것을 효율적으로 생각하는 학생의 경쟁은, 두 사람이 샬레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결말이 났다.
***
"역시 집이 최고라고 해야 하려나. 샬레가 좋구나……."
온수에 샤워까지 마친 선생은 츄리닝으로 갈아입은 채로 소파에 편히 앉았다. 다행히 에이미는 아직 샤워를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에이미가 '효율적인 샤워' 를 마치고 사무실 한복판에서 옷을 갈아입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우려했지만, 일부러 샤워를 빨리 하기도 했거니와, 아무리 에이미라고 해도 그런 긴 머리를 감고 말리는 일은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비가 그칠 생각을 않네. 하루종일 오려나?"
굳이 창 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유리창을 연신 두들기는 소리가 현재 날씨를 알려주는 셈이었다. 그칠 줄 모르고 도리어 거세지는 빗발을 보던 그는 기지개를 폈다.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지만, 비 오는 날에 온 몸이 찌뿌드드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직 젊은데 말이지.'
애써 스스로를 변호하던 그는 샤워실 앞에 갈아입을 옷가지를 가져다 둔 스스로의 배려에 감탄하며 에이미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설마 이랬는데도 알몸으로 나오지는 않겠지. 선생은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기댔다.
'그런 럭키스케베가 세상에 있을까 보냐.'
"샤워 마쳤어. 선생님."
뒤쪽에서 샤워를 마친 에이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선생은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혹시 춥지는 않았으으으읏?!"
선생은 감전이라도 당한 것처럼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굴러 떨어졌다. 당연히 전기 감전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샤워실 내부와 온수는 체온조절에 적합한 온도였어. 몸에도 이상은 없는 것 같고……괜찮아. 선생님?"
당연하게도, 에이미는 갑자기 선생이 소파에서 굴러 떨어지자 다급하게 달려왔다. 하지만 선생에게는 그게 더 문제였다.
"에이미."
"음……?"
선생은 소파에서 떨어진 자세 그대로 에이미를 올려다보면서도 최대한 그녀의 눈동자를 보려고 했다.
"혹시 내가 샤워실 앞에 갈아입을 옷, 두지 않았어?"
선생의 말에 에이미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에 들고 있는 옷을 보였다. 샬레에서 종종 자고 가는 학생을 위해 마련해 둔 츄리닝이었다.
"이 옷 말이야? 있었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왜 탈의실에서 갈아입지 않은 거야……?"
야한 걸 보자마자 코피가 터지는 그런 나이는 지난 선생이었다. 그러나 눈 앞의 여체는 어른인 그에게도 부담스러웠다. 물론 눈 뜨고 보기 힘들다거나 하는 쪽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평상시 에이미의 노출에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절찬리에 깨닫는 중이었다.
하물며 가운 하나 걸친 차림도 아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을 드러내고 있으니, 온갖 해프닝에 익숙한 선생이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이미가 학생이 아닌 성인이었더라도 놀랐을 터였다.
"여기서 갈아입는 쪽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
"대체 어떤 부분에서 효율적인거야?!"
내가 아는 효율이라는 단어의 뜻이 달라지기라도 한 건가, 하고 선생이 생각하는 와중에 에이미는 소파의 팔걸이 너머로 슬며시 몸을 내밀었다.
"이런 부분에서."
아까 선생의 동공에 잠깐 스쳤던 광경은, 지금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가까이에 있었다. 조명 아래에서 빛나는 여체는 아웃도어파인 에이미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백옥처럼 빛나는 피부를 자랑하고, 물기는 전부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방금 봤던 비를 맞은 모습과 샤워를 마치고 나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촉촉한 기운이 겹쳐져서,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지 못할 농염함을 느끼게 하고, 건강하게 살오른 허벅지부터 골반 위로 유려한 곡선을 따라 그리다가도, 약간은 언밸런스하게 느껴질 정도로 잘록한 허리 위로는, 어깨 결림을 걱정하게 할 정도의, 절대적인 존재감을 발산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선생은 '그것' 을 보는 순간 많은 것들을 떠올렸다. 나란히 흔들리는 모양새는 푸딩 같고, 모양은 엎어놓은 넓다란 술잔 같고, 우아함은 어느 신화의 여신을 방불케 하며, 자연이 빚어낸 도자기 두 개가, 이름 모를 장인이 평생을 다해 빚은 세기의 예술품이 있었다.
그래도 선생은 선생.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한 그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는 대신 나지막히 말했다. 하지만 차마 눈을 감지는 못했다.
"……옷. 입어줄래? 부탁이니까."
순간 침묵이 흘렀다. 얼굴이 온통 새빨개진 선생과 달리, 에이미는 무표정한, 또는 평온한 얼굴로 선생을 내려다보았다.
"흐음……."
공교롭게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 해야 할지, 푸딩 위에 올린 건포도, 혹은 술잔 밑의 끝점이 살짝 흔들렸다. 결국 선생은 참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았다. 어떤 점에서인지는 몰라도, 그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선생님 말대로 할게."
그녀는 그 말과 함께 탈의실로 돌아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뒤늦게 눈을 뜬 선생은 에이미가 보이지 않자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에는 9할의 안도와 1할의 아쉬움을 담겨 있었다. 그와 동시에 소파에 반쯤 걸쳐 있던 몸이 주륵, 하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효율적, 이라……."
오랜만에 사전이라도 펼쳐볼까, 하고 중얼거린 선생은 방금 전의 광경을 다시금 떠올렸다. 그 즉시 그는 다시금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싸 쥐었다.
***
탈의실 거울 앞에 선 에이미는 거울에 선명히 비친 나신을 지긋이 바라봤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알면 분노하겠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매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외부 활동이 잦은 데다가 더위까지 타는 그녀의 기준으로는 전혀 효율적이지 않은 신체였다.
하지만 에이미는 자신의 신체가 효율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움직이는데 방해 되고, 위험에 노출 되는 부위도 많았지만, 분명 장점도 있었다.
거울 속의 에이미는 웃었다. 방금의 선생보다는 덜하지만 뺨에도 살짝 홍조가 돌았다. 덥다는 이유로 밖에서 옷을 벗으면서도 부끄럽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방금은 그녀도 조금은 쑥스러웠다. 여전히 선생은 그녀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한 듯 했지만, 괜찮았다.
그녀는 매번 임무를 완수했을 때처럼 더없이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증명 완료."

에이미의 ㅅㄱ가 생각나서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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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야스 안 함 꾸츄 터질라 그러는데

발기쥬지 책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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