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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핫산) 이로하가 선생님과 새해 첫 참배를 하러 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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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84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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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 밤. 평소에 이래저래 바쁜 학생들도 이날만큼은 각자의 집이나 친구네 집에 모여서 저마다의 생각에 잠기는 시간대다. 나도 예외는 아니라 이때만큼은 일을 내려놓고 평소에는 잘 가지 않는 집으로 돌아가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있다. 동결건조 튀김이 올라가서 일반적인 것보다 조금 비싼 편이지만, 여기에 저녁 마트에서 사 온 새우튀김을 얹으면 참기 어려운 맛이 난다.

“이런 보잘것없는 사치를 아무 걱정 없이 부릴 수 있는 것도 어른의 특권일까…”

5분이라는 대기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4분만에 컵라면을 뜯어 먹는다 하더라도 뭐라 할 수 없다. 이것 또한 어른의 특권이다. 갓 튀겨내어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새우튀김을 따끈따끈한 국수 위에 올려놓으니 튀김옷에 국물이 점점 스며든다. 새우튀김을 다 먹은 뒤 원래부터 들어 있었던 동결건조된 튀김을 먹는다. 이게 도대체 무슨 튀김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맛있으니까 뭐 상관없다. 여기에 만약 코토리가 있었다면 이것에 대해서도 설명받을 수 있었으려나.

“아아… 맛있다…”

후루룩, 한 모금 들이키니 허기진 뱃속에 온기가 서서히 스며든다. 쯔유의 이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짭짤한 맛과 냄새가, 좋든 싫든 생물이라면 피할 수 없는 식욕이라는 것을 자극한다. 튀김을 한 입 베어물자 쯔유에 잠긴 튀김옷의 부드러운 식감과 새우의 탱글탱글한 식감이 입 안에서 진한 맛과 함께 어우러진다. 다소 비싸기는 해도 이런 맛을 즐길 수 있다면 돈을 낼 만한 가치가 있다.

“이야… 극락이네 극락…”

평소 격무에 쫓기다 보니 식사도 느긋하게 할 기회가 없다. 혼자서, 그것도 내 집에서 천천히 음미하면서 식사를 해본 지 얼마나 됐더라. 평소 먹는 음식에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혼자서 내 페이스에 맞게 식사를 하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힐링이라는 건 그런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딱히 티비에서 뭐 재밌는 것도 안 하니까… 12시 지나면 잘까…”

언제부터 개그 프로를 봐도 웃기지 않게 된 걸까. 멍하니 생각에 잠긴다. 책상 위에는 이미 다 비워진 플라스틱 팩과 컵, 그리고 끝부분이 젖은 젓가락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어느 때보다 포만감과 만족감에 젖어들어 멍하니 누워 있었는데 충전기에 꽂아 둔 핸드폰이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누구지…? 무슨 일 있나?”

핸드폰 화면에 나타난 것은 ‘나츠메 이로하’. 틈만 나면 나를 땡땡이의 길로 끌어들이려 하는, 게으르고 어딘가 여유로운 분위기를 지닌 만마전의 전차장. 만마전 차고 내에 있는 이로하의 비밀 공간으로 나를 끌어들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와중에도 일 자체는 성실하게 잘 해내고 있으니 요령이 좋다고 할 수밖에. 그 재빠른 두뇌 회전 속도를 내게도 좀 나눠 줬으면 하는 심정이다.

“이미 저녁은 먹었는데…”

평소보다 더 부풀어 오른 배를 두드리면서 핸드폰을 집어 들고 ‘응답’을 누른다. 아마 연말연시를 같이 보내지 않겠냐는 권유일 것이다. 그런 권유는 오늘만 해도 몇 차례 받았지만 샬레라는 조직의 특성을 생각했을 때 쉽사리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안녕하세요, 이로하예요.’

“이로하. 무슨 일이야? 이런 시간에.”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다. 연말연시 분위기라 학생들 대부분이 아직 잠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다소 늦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로하의 목소리는 여느 때처럼 어딘가 나른한 느낌이 숨어 있는 듯 하다. 무슨 업무라도 생긴 걸까?

‘아~. 선생님 지금 바쁘신가요?’

“딱히 바쁘지는 않은데… 기숙사까지 방문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짐작해 보았지만 빗나갔다. 그랬더니 더욱 더 알 수가 없게 되었다. 말을 잘못 꺼내서일까, 이로하의 목소리에 약간 유쾌함이 묻어났다.

‘혹시 저를 만나고 싶으셨나요? 선생님도 은근히 열정적이시네요~.’”

“아니거든!?”

‘그렇게 격하게 부정할 필요는 없잖아요…’

하아, 하는 한숨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방금 전에는 강하게 부정해 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제가 이렇게 전화를 드린 건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께 용건이 있어서인데요…’

“무슨 용건? 말해 봐.”

‘내일 시간 괜찮으세요? 첫 참배, 같이 가실래요?’

예상 밖의 말이었다. 설마 섣달 그믐날부터 새해 첫 날을 예약할 줄이야. 아니, 잘 생각해 보면 그게 효율적일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키보토스의 학생들은 당일 예약이 기본인 모양이라 나도 모르게 새해 첫날 예약은 새해 첫날에 하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첫 참배? 나야 좋지? 근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이로하.”

‘아니, 혼자 신사에 가면 인파에 휘말려서 피곤할 것 같아서요. 길동무로.’

“길동무는 사양하고 싶은데~.”

한동안 첫 참배라는 것을 가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일도 그리 많지 않으니 충분히 갈 수 있는 범주겠지.

“그래. 약속 장소는 어디로 할까?”

‘그러게요. 신사 도리이 앞은 분명 혼잡할 테니 적당히 편의점 앞에서 9시에 만나죠.’

“편의점 앞에서 9시, 알았어.”

20분 전까지는 도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시에 도착해도 되기는 하지만 만약 이로하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온다면 추운 날씨에 그녀를 기다리게 만든다는 것에 마음이 쓰였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아, 선생님.’

“응?”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슬슬 전화를 끊으려던 참에 이로하가 나를 붙잡으려는 듯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작년 한 해 동안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올해도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올해는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스피커 너머로 이로하가 정말 즐거운 듯이 웃는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일부러 실수한 게 분명했다. 하여튼 방심할 수 없는 아이다. 그래도 웃어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로 간에 실수 없이 인사를 나눈 뒤 전화를 끊었다.

“자,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겠다…”

그렇게 덮은 이불은 조금 먼지가 많았다.

“아,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아, 이로하.”

편의점 앞에 나타난 이로하는 화려한 일본식 옷… 을 입은 게 아니라 평소처럼 군복 스타일의 교복에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뭔가 좀 아쉬워하는 표정이시네요. 기모노가 아니라서 불만이신가요?”

“그런 생각 안 했는데!?”

“학생이 그런 근사한 기모노를 가지고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거 비싸다구요.”

“그건 그렇지…”

하늘은 겨울다운 하늘빛으로 물들어 있어 새해 첫 참배를 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 탓인지 도시 전체가 왠지 모르게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자, 추우니까 얼른 가 볼까요, 신사.”

“그래. 가자가자. 노점 같은 거 하고 있으려나.”

“뭔가 좀 드시고 오셨나요?”

“가볍게 빵 하나 먹었어.”

“그런 걸로 괜찮으신가요…”

상점가를 지나다 보니 여기저기에 ‘근하신년’이라 쓰인 현수막과 문패가 눈에 띈다. 아직 아침인 만큼 셔터가 닫힌 곳도 많지만 분명 안쪽에서는 개점 준비가 한창일 것이다. 인파는 적어도 사람들이 움직이는 열기를 느낄 수 있다.

“춥다, 추워. 장갑을 껴고 올 걸 그랬어.”

“방한 대책은 철저히 하셔야 한다구요? 아, 아니면 손이라도 잡아 드릴까요?”

“아니아니, 그 정도는 아니야!”

“그렇게 필사적으로 거절하지 마세요. 슬퍼진다구요… 꺼이꺼이…”

이로하가 내 등에 체중을 싣는다. ‘으이으이…’ 하는 이제는 울음소리인지 아닌지도 모를 목소리가 진동하는 것이 등 너머에서 전해져 온다.

“손은 안 잡을 거야!”

그렇게 말하자 이로하는 재미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내 옆으로 돌아왔다.

“쉽지 않네요…”

“아무리 그래도 손을 잡으면 안 돼. 그래도 걱정해 줘서 고마워.”

“아뇨 뭘, 대단한 것도 아닌데요.”

신사에 가까워질수록 인파가 몰려든다. 왁자지껄하고 떠들썩한 가운데 우리 둘은 사람들의 흐름에 휩쓸려 간다.

“역시 걷기가 힘드네요. 신사가 문을 막 여는 타이밍을 노리고 온 건데.”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지.”

인파 속에서 학생들의 목소리도 들린다. 친구들과 함께 첫 참배를 하러 온 걸까. 이런 특별한 행사 속에서의 별 거 아닌 시간들이 언젠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기 자신을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나는 경험해 보아서 알고 있다.

“이로하도 친구들이랑 왔으면 좋았을 텐데.”

“...에, 그러시기예요?”

말에 담긴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라는 듯이 나를 올려다본다. 그 표정이 상당히 격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혔다. 견딜 수 없는 느낌에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전화한 거 말인데 좀 신기했어. 평소에는 모모톡 보내잖아?”

“...기분이라는 게 있어요, 저한테도. 모모톡으로 보내면 왠지 느낌이 안 살잖아요.”

“아, 문장으로만 전달한다면 말이지. 그렇긴 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도리이를 지날 즈음에는 사방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참배객들의 느린 발걸음에 맞춰 우리도 본전으로 향했다. 연석에는 예전에 이 신사에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아마 10만 엔을 기부하면 이름이 새겨진 제등도 달아주었던가.

“이름이 이런 형태로 남는 게 기쁘게 느껴지려나요.”

“그럴지도. 로망이야, 로망.”

“그거 누구한테 들은 말이에요?”

“어? 아, 그렇겠다. 로망이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학생이 있어서 말야.”

흐응 하고 콧방귀를 뀐 이로하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며 계단을 오르자 제비뽑기 상자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이 신사는 어찌나 넓은지 사람들이 오가는 사이에 자칫하면 이로하를 놓칠 것 같았다.

“선생님, 떨어질까 좀 불안해요.”

“아, 그래? 그럼 내 옷자락을 잡아.”

“소매 잡아도 될까요?”

“좋아.”

이로하가 내 소매 안쪽의 오른팔을 꼬옥 움켜쥐었다. 체온이 옷 너머로 전해져 온다. 행렬의 맨 뒷줄에 서서 우리 둘은 잠시 동안 잡담을 했다. 올해 목표라든가, 연말연시에는 무엇을 했는지, 오늘 저녁 만마전에서 파티가 있다든가 하는…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신기하게도 나는 더 이상 추위라는 것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선생님도 오실래요, 파티.”

“아냐, 사양할게.”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그래도 나중에 이부키한테 개인적으로 인사는 남겨 주세요.”

그렇게 아쉬운 기색도 없어 보이는 이로하의 뺨은 붉었고, 추위 때문인지 그 미소도 왠지 모르게 어색했다.

“안 추워?”

“그냥저냥 괜찮아요. 저는 보시다시피 방한 대책을 제대로 하고 왔거든요. 핫팩도 있어요.”

“핫팩을 가져올 걸 그랬네. 깜빡했어.”

그러자 이로하가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용 핫팩을 꺼내어 내 손에 꼭 쥐여 주었다. 그 손은 이런 겨울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뜨거웠다.

“이건 이로하 네 거 아니야?”

“두 개 있어서 괜찮아요. 봐요, 쥐고 있으면 따뜻해요.”

“정말이네. 그럼 고맙게 받을게.”

손에 든 핫팩을 더플 코트 안에 넣자 오른쪽 허리가 따뜻해진다. 화학반응이라는 것은 참 감사한 존재다. 새전함이 가까워진다. 나와 이로하는 각자 지갑에서 5엔짜리 동전을 꺼낸다. ‘인연이 있기를’ 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가.

“선생님은 어떤 소원을 비실 건가요?”

으레 할 만한 질문이지만 말문이 막혔다. 첫 참배를 하러 왔으면서 아무것도 생각해 두지 않았다. 뭐, ‘선생’이라는 직업상 내가 빌어야 할 소원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학생들 모두가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이겠지.”

“선생님 본인의 행복 같은 소원은 빌지 않으시나요? 5000조 엔만 주세요, 같은 건 어때요?”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서. 이로하는?”

그렇게 되묻자 이로하는 살짝 시선을 피했다. 이로하 자신도 무슨 소원을 빌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걸까. 그러던 끝에 나온 대답은 역시나 이로하다운 대답이었다.

“땡땡이 칠 시간이 더 많아지기를… 이겠죠.”

“아하하, 이로하답네.”

“그리고 선생님이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이것도 같이 빌어 둘게요.”

“오, 감동이네. 고마워.”

새전함 앞에는 굵은 삼베 줄이 매달려 있다. 이 밧줄을 흔들면 위쪽에 달린 방울이 흔들리며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구조다.

“왜 있는 걸까요, 이 방울은.”

“글쎄…?”

5원짜리 동전을 집어넣은 뒤 눈을 감고 두 차례 고개를 숙인 뒤 박수를 두 번 치고, 다시 고개를 숙인다.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학생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기를’ 이라며,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신에게 빌었다. 그렇게 숨을 한 번 내쉬고 눈을 뜨자 먼저 소원을 빈 듯한 이로하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지해 보이시던데요.”

새전함 앞을 떠날 때 이런 말을 건넸다.

“진지해. 혹시나 이렇게 해서 너희들이 정말 평온무사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야.”

“평온무사라니, 키보토스와는 거리가 먼 사자성어네요.”

“뭐어, 그거야 그렇긴 한데.”

본전을 나서고 보니 아까 전까지 줄을 서 있던 행렬이 점점 더 길어지는 것 같았다. 맨 뒤에서부터 여기까지 오려면 20분 정도는 걸릴 것 같다.

“일찍 오길 잘 했네. 고마워, 이로하.”

“아뇨 뭘요, 계획대로 잘 돼서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이로하는 왜인지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면 감사 인사 대신에 제비뽑기 할 돈 좀 주세요.”

“그래, 100엔이었나?”

선생님도 뽑으세요, 라는 말을 들었지만 원래부터 나도 뽑을 생각이었다. 여차하면 꺼려 하는 이로하를 설득할 준비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딱 좋은, 올해 한 해의 운을 점쳐볼 수 있는 기회다. 운세 제비뽑기는 뽑기 상자 안에 담겨 있었고, 손에 쥐자 묵직한 무게와 함께 가늘고 딱딱한 무언가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100엔 동전을 넣고 단숨에 상자를 거꾸로 뒤집어 흔든다. 나온 번호를 창구에 있는 신주에게 말하자 해당하는 서랍에서 점괘가 적힌 종이를 꺼내 주었다.

“그럼 선생님, 100엔 동전 하나만 주세요.”

“예이, 이걸로 힘내.”

“운세에 ‘힘내라’ 같은 게 있던가요?”

그리고 이로하도 마찬가지로 점괘를 받아 든다. 묶여 있는 점괘 종이는 풀기가 쉽지 않다. 물론 건네받았을 때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말이다. 내가 매듭을 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이로하가 먼저 풀어낸 듯했다. 표정을 보니 좋은 게 나왔나 보다.

“선생님, 제가 풀어 드릴까요?”

“아냐, 잠시만, 다 풀었어… 됐다!”

구겨진 얇은 종이를 팔락 소리를 내며 펼쳐 보니 ‘대길’이나 ‘소길’처럼 그 해의 운세가 한시와 함께 쓰여 있다. 나는 올해 운세가…

“저는 길이었는데요… 우와.”

“대흉…!?”

가장 최악의 운세가 나왔다. 즉 올해는 액년*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최악 수준이라는 뜻이다.

*운수가 사납기로 여겨지는 해. 나이에 따라 이 해에 해당되는 경우 근신하면서 지낼 것을 권함

“질병…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데, 낫지 못할 수도 있다? 잠을 안 잔 대가인가 이건.”

“대인, 오지 않는다. 연애, 사랑받지 못함… 굉장한데요 이거, 안 좋은 말만 써 있어.”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올해는 배에 총을 맞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빨리 묶어 두죠. 저도 묶을게요.”

“응… 그래야지…”

“묶으면 운수가 좋아진다는 말도 있잖아요, 네?”

이로하가 부드럽게 등을 토닥여 준다. 마치 아기를 쓰다듬는 듯한 손길이다. 다 큰 어른 상대로.

실망스럽다. 지금 당장 얼굴을 가리고 싶다. 이런 운세 뽑기에 대흉은 없다는 이야기는 미신이었나 보다. 살면서 한 번도 뽑아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불길한 예감이 밀려온다. 가늘게 접어서 전용 막대에 묶은 뒤, 이 운이 반전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재앙이랬죠, 선생님.”

“응… 올해는 얌전히 지내야겠어.”

“선생님이 얌전하게 지내실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크윽…!”

이로하가 재미있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길’이었던 건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이로하 건 어떤 내용이 적혀 있었어?”

“음? 아뇨 그냥 평범했어요. 병은 오래 걸리지만 완치된다, 사업은 서두르지 말 것, 학문은 성취한다…”

“잘 됐네. 연애 칸 같은 건 어땠어?”

그렇게 묻자 이로하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 그에 맞춰서 걷던 내 걸음걸이도 몇 걸음 늦게 멈춘다.

“...그걸 물어보시려구요?”

“아, 미안. 민감한 주제였지.”

“완전요. 성희롱이에요, 성희롱.”

“미안미안, 진짜로 교정국에 보내지니까 그만해!”

정말로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여자를 대할 때 주제라는 것을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집에 돌아가면 깊이 반성하자.

“...하아, 정말. 선생님한테는 특별히 알려드릴게요.”

“어, 그래도 돼?”

“네. 알려드린다고 탈 나는 것도 아니구요.”

그러더니 이로하는 한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자신이 먼저 다가갈 것, 그렇게 쓰여 있었어요.”

“호오, 그런 말도 써 놓는구나.”

“저도 의외였어요. 구체적인 것도 있고 그러네요.”

신사를 나서자 참배하러 가는 길은 점점 더 붐비는 것 같았다. 이제부터 점심시간, 사람들이 더욱 활발해질 시간대다.

“하아, 뭐 이번에는 수확이 있었다고 해 두죠. 선생님의 풀죽은 표정도 봤으니까요.”

“그야 대흉이 나오면 우울하잖아…”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이로하는 이제 파티를 하기 위해 사러 갈 것이 있다고 했다. 나는 샬레 업무가 기다리고 있다. 정월이라고 해서 일을 내려놓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새해 전야에 일이 적었던 만큼 그 이후는 난장판이 될 것이 확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귀찮네요, 라며 투덜거리는 이로하는 평소보다 더욱 다운되어 보였다.

한동안 둘이서 걷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오늘은 이쯤에서 헤어질 듯하다.

“그럼 쇼핑 잘 하고.”

“선생님도 일 열심히 하세요… 아, 죄송해요. 하나만 더.”

“응?”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수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선생님. 올해도 잘 부탁드려요.”

그러고 보니 편의점 앞에서는 분명 이로하가 인사를 건네지 않았던 것 같다. 나도 조금 자세를 가다듬은 뒤 올해도 잘 부탁해,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자리에서 헤어졌다. 이 뒤에 기다리고 있을 일을 생각하니 우울해졌지만, 종이를 묶어 두었으니 어떻게든 될 거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가장 먼저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뒤에서 희미하게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보자 저 멀리, 이로하의 붉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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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4.03.20번역

소설핫산) 이로하가 선생님과 새해 첫 참배를 하러 가는 이야기

#나츠메 이로하#선생#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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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P
自産自消작가
게시물 14개
슬DC
슬로보단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4.03.20 12:18
조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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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나
ㅇDC
ㅇㅇ124.03.20
디시콘
ㅇDC
ㅇㅇ24.03.20

개추좀 놓고가거라..

ㅇDC
ㅇㅇ224.03.20

캬 달다

ㅇDC
ㅇㅇ324.03.20

더 가져와!

ㅇDC
ㅇㅇ424.03.20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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