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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31화/공공의 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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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메 선배가 많이 수척해진 것 같더라고요."

선생에게 상담을 요청하며 이것저것 이야기하다 그렇게 본론을 꺼낸 아야네의 모습은 이제 제법 편안해보였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오해와 환란을 거쳐왔는가.

선생은 감개무량한 감정을 밀어넣고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을 유지했다. 실제로 진지해야 들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그거라면, 응. 나도 알고 있었어. 대놓고 말하진 못했지만은......"

"이제 세워둔 계획의 거의 끝까지 왔으니까요. 선배도 내색만 안 하지 속이 타들어갈 거에요."

"오쿠소라 양은 괜찮아?"

"......사실 저도 안 괜찮은 것 같아요."

아야네는 쓴웃음을 지었다.

유메가 자신을 괴롭히는 환상을 보고 있는 걸 알 리가 없는 그녀도, 학생회장으로서 그녀가 짊어진 짐이 어느 정도일지 아야네는 감히 느낄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었다.

본인부터가 매일 편히 잠에 드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였으니.

조금이라도 삐긋한다면 끝없는 수렁으로 빨려들어갈, 그런 미래가 확정될 살얼음 봉 위를 걷는 느낌.

"하지만 지금까지 저희에겐 이런 희망도 없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그런 봉 위를 걸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버텨봐야죠."

"할 수 있을거야. 내가 오기 전에도 너흰 잘 해왔으니까."

"말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선생님. 하지만......"

약하게 웃어본 아야네의 입가에서 금세 미소가 사라졌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선배 상태가......"

아야네는 말하다말고 누가 밖을 지나가다 들을세랴 잔뜩 목소리를 낮춘채 재차 말을 이었다.

"너무 불안하게 안 좋아보여서요."

선생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었다.

아비도스 학생회는 선생의 지휘 하에 지금도 간간히 주변을 돌며 주요 거점을 점거한 불량배들을 쫓아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 붙어다니는 학생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들을 지휘하는 선생이라고 유메의 상태를 모르진 않았으니.

이따금 멍한 상태로 빈 공간을, 특히 구석진 어둠 속에 뭐라도 있는 것마냥 뚫어져라 보고 웅얼거리는 그 모습은 아마도......

'환각과 환청......'

선생은 아득한 심정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는 희미하게 기억나는 예전 자신의 교생 실습 당시, 담당 학급에 배정된 장애우를 맡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청소년 조현병이라고 했던가?

어딘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아무 이유 없이 겁에 질리고, 아무 말 없이 지나치던 학우들에게 왜 욕을 하냐며 거칠게 달려들며 반을 수시로 뒤집어놓던 아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특수학교로 전학을 갔다.

아이의 증상이 경미하다 주장한 학부모와 어른들의 안일한 오판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었지만, 그럼에도 혹시 모를 기적을. 학생의 적응을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선생은 당면한 당연한 결과 앞에서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선생에게 있어서 아픈 실패의 경험이었던 그 아이의 모습이 훨씬 미약하지만 유메의 현재와 겹쳐지는 상황에, 그는 지금 그 때의 두려움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주로 혼자 둘 때 그런 증상을 보였기에 선생이나 다른 학생들이 눈치 빠르게 붙어줄 땐 그나마 괜찮았지만......

"오쿠소라 양, 혹시 예전에도 쿠치나시 양이 비슷한 증세를 보인 적 있었니?"

"전혀요."

아야네는 고개를 저었다.

"전혀 없었어요. 하다못해 선생...... 그러니까 예전 선생 일이 수면에 올라와도 저 정도 기색을 보인 적은 없던걸요."

"그렇구나. 그럼 최근에 갑자기 증상이 나타났단 소린데......"

호사다마라고 해야 하나 이걸.

선생은 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하필 중요한 상황에 이런 일이 터졌다는 이유보단, 학생의 고통이 이렇게 갑자기 터진 것에 대한 걱정과 자책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혹시, 선생님 때문에......"

"응?"

"아, 아니에요!"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은 아야네가 황급히 부정했다.

감정과 별개로 당사자를 앞에 두고 배은망덕한 것도 정도가 있지. 엄청난 결례를 저지른 아야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게 아니라 이건 그냥...!"

"오쿠소라, 괜찮으니까 솔직히 말해줘.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거라면 반드시 고쳐야 될 문제니까."

"...서, 선생님한테 문제가 있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었어요."

진지한 선생의 눈빛을 마주한 아야네는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상황이 안정되니까 심리적인 안정감이 아니라 밀려둔 자책감이나 죄책감 같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자세히 고찰하거나 휘말릴 여지가 많아졌다고 할까. 그런 의미에서......"

"음. 걱정하지마,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으니까."

심리적 안정감이 되려 부정적인 생각에 몰입할 시간을 주고, 그것이 심리적인 불안 증세를 촉진시켰다는 말.

실제로 수영복 복면단으로 대대적인 깽판을 치기 전까지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도 벅차던 아비도스엔 여유 같은 걸 가질 시간 따위가 없었다.

수영복 복면단 해체 이후 불량배 세력을 몰아내는 것 외엔 마지막을 대비한 개인정비로 채워진 시간.

그로 인한 상대적 여유에서 유메는 오히려 고요 속의 부정적 목소리에 침식되었다는 말은 분명 신빙성 있는 추측이었다.

"좀 더 신경을 써줬어야 했나......"

"그동안 선생님도 바쁘셨잖아요."

선생이 신경써야 할 건 아비도스 학생회만이 아니었다.

열차포 건을 명분으로 아비도스에 머무며 상황을 보고 있는 게헨나 선도부.

자신만을 믿고 적진 한가운데서 치명적인 일격을 넣을 틈을 재고 있을 아루.

자신의 세계에서 넘어올 다른 연락을 받기 위해 샬레를 오가는 케이와 은밀히 도움을 주는 히마리.

조금 애매하긴 했지만, 지금 당장은 분명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총학생회 방위실장 카야는 물론 기만 대상인 카이저 내부 인사들과도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으니.

그들 모두와 합을 맞추며 작전을 시행하기 완벽한 배경을 준비하기 위해 선생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해내고 있었다.

자신의 세계에선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일상이나 다름 없는 일이었지만, 선생이 익숙치 않은 이 세계 학생들이 보기엔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지 걱정될 정도의 영역을 펼치고 있었으니.

"무리하지 마세요. 여기서 선생님이 쓰러지면 모든 게 끝나는 거니까요."

"걱정해줘서 고마워, 오쿠소라 양. 내 몸은 확실히 챙길테니까."

아니, 이건 걱정하는 말이 아니잖아.

아차 싶던 심정으로 아야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선생님이 걱정된다는 그 흔한 격려의 말 하나 없는 인사치레라니.

이젠 벽을 허물어도 무방할 것 같은데도, 계속해서 선생과 벽을 치게 되는 심정에 아야네는 미약한 자책감을 느꼈다.

노노미도, 세리카도, 심지어 본인이 누구보다 노력하고 있는 유메도...... 여전히 선생과의 심리적인 벽을 허물지 못하는 모습.

이 얼마나 우습고 황당한가. 이 망할 벽을 허물려면, 대체 얼마나 더 받아먹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유메 선배님은, 저희도 더 신경써서 챙겨볼게요."

결국, 현실을 대처하는 원론적인 말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응, 아마 나보다 너희가 봐주는 게 더 편할테니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요......"

"아아, 물론 나도 되는만큼 챙겨줄거니까!"

'그냥 되는만큼으로 될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자신의 추측이었지만.

유메가 선생을 보는 시선에 담긴 것이 점차 달라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원래부터 헌신하는 어른에 대한 동경을 가진 그녀가, 지금의 선생을 보는 속마음은......

아야네는, 그 추측까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선생의 호의가, 결과적으론 선생이 온 이후로 이상증세가 생겨버린 유메에게 대체 어떻게 작용될지.

그 결과에 대해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분명, 아직은 너무도 막막한 것들이 많았다.

'어디서 지원군이라도 더 와주면 좋으련만......'

기적을 바라는 심정으로 서로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아야네와 선생은 나란히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 * *

"드디어 이 날이 왔네요."

거대한 원형 기계를, 차원 이동 장치를 앞에 둔 히마리는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선생이 사라진 이후 그를 데려올 방법을 찾다 관리 따윈 포기해버려 산발이 된 머리칼은, 언제 그랬냐는듯 단정히 정리되어 평소에 자칭하던 청초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무렴 당연한 일이었다. 친애하는 선생님 앞에서 리오 방처럼 초토화된 방구석에서 비듬 낀 머리 벅벅 긁는 개백수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으니까.

"......"

"무슨 일이신가요 리오 님? 표정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만."

"아니야... 아무것도. 누군가에게 그런 원망을 듣는다한들 그 또한 내 업보겠지. 응."

"...?"

무언가를 느끼면서도 자신의 업보라 여겨 감내하려는, 하지만 그 대상이 히마리인 걸 알았다면 당장 에어컨을 해킹해 강풍 최대로 틀었을 그녀를 영문 몰라 멀뚱히 보는 토키를 제외한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이 히마리와 같은 표정, 같은 심정이었다.

모든 일을 진두지휘 해왔던 히마리와 리오.

그들을 보좌하는 에이미와 토키.

장치와 기술 개발에 협력한 베리타스의 부부장 치히로와 엔지니어부 전원.

그리고...... 직접 차원을 넘어 선생을 구해 올 다른 세계의 시로코까지.

실패 시의 후폭풍을 대비해 계획을 강행할 최소한의 인원만을 모아둔 현장에서, 모인 이들 모두가 거대한 기대와 동시에 막대한 불안을 품고 있었다.

"우타하 선배, 괜찮을까요?"

"......괜찮을거라고 믿는 수 밖에"

코토리의 걱정과 같은 심정에도 우타하는 애써 걱정하는 후배들을 다독였다.

"가는 것도, 돌아가는 것도 제대로 작동하는 거 확인했잖아? 시뮬레이션도 몇 번이고 돌렸으니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보낸 건 종이학이었고, 유기체를 보내는 건 처음일텐데......"

"그것도...... 저쪽에서 괜찮다고 했으니까."

엔지니어부의 시선이 히마리 옆에서 기계를 응시하고 있는 검은 드레스의 여성으로 향했다.

아비도스의 시로코를 닮았지만, 그녀보다 훨씬 더 성숙하고 이지적인 분위기의 여성.

그녀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포탈로 세계 안의 어디든 오갈 수 있는 초능력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선생님을 데려오기 위해 희망을 걸 수 있는 것도 그것 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야."

인류의 역작이라 해도 될 업적을 해낸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차원 이동이라는 기술을 구현해낸 건 히마리와 리오를 포함한 자신들의 온전한 능력 덕이 아니었다는 걸.

고대의 기술을 습득한 덕이고, 그럼에도 부족한 기술적 한계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를 다른 세계의 시로코의 능력으로 메울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확립한 덕이었다.

무엇보다 시로코의 손에 쥐어진 싯딤의 상자.

총학생회장이 남겼다고 전해지는 그 오파츠와 어른의 카드로 선생이 몇 번이고 기적을 일으킨 것을 본 적 있었다.

때로는 소소한, 때로는 전장에서 전황을 뒤집는 수준의 기적을 일으킬 힘을 지닌 두 개의 오파츠 중 하나라면 분명 현실의 이론을 넘어서는 힘을 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었지만.

결국, 제대로 실험을 해보지 않은 탓에 불안정한 변수가 아직도 많이 남은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

우타하는 막막한 심정을 애써 밀어냈다.

평소라면 이 자리 자체를 완강히 거부할 상황이었다.

아무리 선생의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라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중히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 자신의 신념에 가까웠으니까.

그러나 최소한의 실험으로도 거둔 성공과 광기와 집념으로 밤을 새워 연구와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고 진행했던 히마리의 확신으로, 그리고 사실상 이 계획의 최중요인물인 시로코의 강한 주장으로 차원이동은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시점에 준비되었다.

조급해서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나온 주장만은 아니라고, 우타하는 판단했다. 아니, 어쩌면 본인부터가 급박한 상황에 몰려있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다시는 선생님을 볼 수 없다는 것에서 나온 두려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녀 또한 알고 있었으니.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고,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상황에서 최대한 완전을 추구하는 것 뿐.

"할 수 있을 거야."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에 가까운 우타하의 중얼거림에 코토리와 히비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시 후.

모든 준비를 마치고 모든 이들이 보호벽이 처진 방으로 들어가고, 홀로 남은 시로코만이 원형 기계 앞에 섰다.

[시뮬레이션대로 하면 됩니다, 시로코 씨.]

자판을 두드리며 화면에 눈을 고정시킨 히마리의 목소리가 벽면의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컨디션은 괜찮으신거죠? 능력 사용에도 문제 없고요?]

"응, 물론이야."

강화유리 너머로 보이는 히마리를 보며 시로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싯딤의 상자 속 AI란 분들도 준비 되신 거 맞죠?]

"그렇다는데, 어때?"

[네, 완벽하게 준비 됐어요!]

[긍정, 어떤 변수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유일하게 두 AI와 소통이 가능하던 시로코는 확답을 받고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있을 히마리에게 보내는 신호기도 했다.

[좋네요. 마지막으로 확인해보겠습니다. 계획의 요지는 확실히 이해하신거죠? 아직 질문이 남았다면 지금 해주셔야 합니다.]

"걱정 마. 전부 이해했으니까."

[네, 저희도요! 히마리 씨의 차원이동장치에 저희의 힘까지 더해지면, 충분히 시로코 씨의 힘을 증폭시킬 수 있을 거에요. 선생님이 계신 세계에 닿을 정도까지...!]

[정확한 좌표도, 왕복할 에너지도 충분히 준비되었습니다.]

시로코는 끄덕이며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한 하나의 기계를 매만졌다.

일반적인 보조배터리로 보이는 그 물체는 완충 시 다른 세계에서 복귀할 때의 에너지까지 충전시킬 수 있을, 엔지니어부의 또 하나의 역작.

시로코가 자신들이 만든 초용량 배터리에 손을 올리는 것을 본 우타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무모한 무대책인 계획이었다.

저쪽 세계로 넘어가도 싯딤의 상자가 제 기능을 할 거란 확신이 있나?

만약 기껏 넘어간 시로코가 선생님과 함께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래서 둘 중 하나만 돌아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난다면?

아니, 만약 모든 것이 뒤틀려 누구도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이 모든 힘을 다해 만든 것들이 되려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

"우욱...!"

헛구역질이 올라온 우타하는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돌렸다.

개발자로서 누군가의 목숨이 걸린, 실험도 아닌 실전을 강행하는 상황의 부담감에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선배...?"

"잠깐 사레 들려서. 별 거 아니니까 소란피지 마."

가까스로 입 밖으로 꼴사납게 쏟아버릴 뻔한 것들을 억지로 밀어넣고 히비키를 다독였다.

이럴까봐 아침도 최대한 간단히 먹었는데 이런 꼴이라니.

"리오, 기계 상태는?"

"장치 자체는 아직 안정적이야. 가동시킨다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치히로, 마지막 시뮬레이션 결과와 비교해주세요. 예상 오차는?"

"4%나 벗어나 있어. 차원을 잇는 과정에서 어떤 예측 불가 현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확률이지. 정말로, 이대로 강행하는 건 미친 짓거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불가합니다. 저희에겐, 아니 선생님에겐 더 이상 시간이 없어요."

한 달.

방황하고, 가까스로 빛을 찾고, 확실치 않은 실험을 '어쨌든 기동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강행하며 계획을 마련하는데 그 정도 시간이 들었다.

선생이 자신들의 메세지를 찾아, 걸어둔 비밀번호까지 풀고 전송시켜준 걸로 생존 확인은 됐지만 그로부터 벌써 일 주일이 지난 시기에 그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을지 알 수도 없는 상황.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요. 더 이상 지체할 순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이 최선의 무기에요. 이걸로 반드시 선생님을 데려와야 합니다. 해야 하는 일이고, 가능하다 판단하고 강행한 거에요. 밀레니엄 베리타스의 부장이자 최고의 초천재병약미소녀해커의 이름을 걸고!"

"......마찬가지야."

히마리의 눈에서 번들거리는 광기를 본 치히로가 입을 다물었다.

그 자리의 다른 이들까지 압도해버리는 박력이었음에도, 우타하는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동료를 위해 입을 열었다.

"최소한의 납득. 그건 시험의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 있어서 긍정적으로 볼 게 아닌 게 맞아. 평소 같았으면 그런 식으로 확률에 의존하는 건 도박이나 다름 없는 짓이지. 오늘 우리가 모인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촉박해서도 있지만......"

"......"

"그 낮은 확률이란 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검토하며 도박판에 뛰어드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우리 모두가 납득해서야. 우리 모두 같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지만, 충분히 할 수 있을거라 믿고 있어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라고 생각해."

"...우타하."

치히로는 깊을 한숨을 내쉬며 뺨을 쳤다.

"...미안해. 내가 초를 쳤어."

"아뇨, 이런 상황에서 정확한 지적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말했듯이 저희 모두 같은 심정이니까요. 사과할 필요는 없습니다, 치히로."

그 이후로도 몇 번의 확인 끝에.

모든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한 히마리는 유리벽 너머에서 대기 중인 시로코를 응시했다.

"시로코 씨, 모든 점검이 끝났습니다. 싯딤의 상자를."

[...응.]

위잉-

도우미로 남은 아방가르드군 한 채가 차원이동장치와 연결된 코드를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시로코에게 건네주었다.

시로코가 충전기를 꽂듯 코드를 타블렛에 연결하는 것을 확인한 히마리가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연결 확인. 카운트다운, 시작하겠습니다. 5-"

각자의 자리에서 대기하던 모두가, 자신이 봐야 할 화면과 조작해야 할 버튼 등에 못 박힌 듯 굳었다.

"4- 3- 2- 1- 차원 연결, 시작합니다! 리오!"

"에너지 주입 시작했어. 현재 상황 보고해."

"출력 상승, 편차는... 허용 범위 안이야!"

위잉-

시로코는 눈 앞의 기계에 빛이 감도는 것을 보며 싯딤의 상자를 꽉 쥐었다.

[숙지. 지정된 좌표까지 포탈을 열 수 있을 정도의 에너지가 충전되기까지 20초 전입니다.]

[시로코 씨는 포탈을 여는데 집중해주세요! 부하는 저희가 감당하겠습니다!]

"응... 알고 있어!"

평소처럼 능력을 발휘하려는 순간.

시로코는 자신이 딛고 있는 장치로부터 막대한 힘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시로코 씨, 상태 보고하세요!]

"응, 괜찮아. 상정 내야!"

평소처럼.

평소처럼, 이동하려는 장소를. 그 공간으로의 좌표를...!

위잉-!!!

위잉-!!!

"상황 보고!"

"안정화 회로 반응 지연, 한계 수치 넘어갔어...!"

"아직 괜찮아요! 그 정도는 예측 내입니다! 시로코 씨가 판단하기 전까진 멈추지 말고 강행하세요!"

무리가, 온다.

자신에게 힘을 넣어주는 것 같은 압력이 강해지며 오히려 억누르는 느낌이-

"쿨럭!"

[시로코 씨!]

[시로코 씨?!]

"괜찮아, 계속... 계속해!"

검붉은 피를 토해내면서도 시로코는 입 안쪽을 강하게 깨물며 눈을 부릅 떴다.

할 수 있어.

힘이 더 들긴 하지만, 평소와 같은 느낌이다.

이대로라면 순조롭게 길을 낼 수 있다.

뭔가에, 막히지만 않는다면......

"......어?"

[무슨 일이신가요?! 시로코 씨! 시로코 씨, 대답하세요!]

"아, 안 닿아......"

[네? 무슨 소리를-]

시로코는 대답하지 않고 더욱 강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포탈을 열려고 애썼다.

"좌표까지 내 힘이 닿아야 하는데 벽에... 벽에 막힌 것 같아!"

[그게 무슨-]

"뭔가에 막히고 있다고!!!"

푸슉-

푸슉-!

시로코의 눈 위로 올라온 실핏줄이 연이어 터졌다.

그녀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시로코 씨!!!]

"마치, 이쪽에서 오는 힘을 막아내는 것처럼...... 연결되는 걸 거부...!"

[시로코 씨! 됐으니까 그만하세요! 무리하지 말라고!!]

"아니야!!! 쿨럭, 쿨럭...!"

외치다 연이어 피를 토했다.

검붉은 액체가 철퍽, 철퍽 소리를 내며 기계 바닥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할 수 있어.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계속 에너지 주입시켜...! 아로나!"

[안 됩니다! 이대로면 시로코 씨가...!]

"이익..."

이년이나 저년이나 이 상황에 누굴 걱정하는 건가.

격앙한 시로코가 소리질렀다.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망할 포탈 여는 거에나 집중하라고!!!!"

콰직!

파지직...!

시간이 지나치게 소요된 탓에 과열된 기계에서마저 불길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출력 임계점 초과...! 장치 과부하! 안정화 불가!]

[이대로면 폭발이야, 당장 멈춰야 해!!]

[긴급 차단! 전원 긴급 차단! 빨리!!!]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멍청이들아!!! 제발...!"

시로코의 절박한 외침에도 몸에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터질 기세로 불꽃이 튀던 기계의 불빛이 꺼졌다.

자신의 힘은, 차원 너머의 보이지 않는 벽을 뚫지 못했다.

패배감과 자책감을 느끼며.

시로코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철퍽-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녀가 쏟아낸 피 위로 쓰러진 탓이었다.

[시로코 씨!]

[시로코 씨, 정신 차리세요! 시로코 씨!!!]

"시로코 씨!!!"

"빨리 신고...! 이대로면 죽...!"

두 아로나의 외침과 반파된 실험실로 뛰쳐들어온 이들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정신을 잃기 직전의 시로코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미안해. 미안해, 선생님......'

겨우 한 방울의 눈물이 핏빛 호수에 빠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벽 너머의 히마리도 괴성을 지르며 조작판을 내리쳤다.

"어째서야!!!!!"

"히마리!!"

"부장!"

"어째서냐고!!!!!"

쾅!!!! 쾅!!!!

자해를 하듯 격렬하게 주먹을 내리치던 히마리를 토키와 에이미가 붙잡았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히마리!"

"할 수 있었잖아...! 잘 되고 있었다고! 전부 완벽했는데, 어째서 연결 과정에...! 어떤 개자식이!!!"

"다시 하면 돼! 시로코가 회복되면, 지금보다 보완해서-"

"대체 언제요!!!"

귀기 어린 시선이 자신에게 돌려졌다.

"저걸 봐요. 저게 하루이틀 재우면 회복될 상태로 보여요?! 망가진 기계는. 다른 학원들에 구걸하면서 절약한 에너지는! 그걸 언제 다 모아서 오늘처럼 준비해놓냐고!!!"

"히마리!!"

"다시 하면 된다고? 츠카츠키 리오, 제정신이야?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고!! 우리가 왜 이렇게 급하게 시도했는지 벌써 잊었어? 오늘밖에 없었어!!! 벽인지 지랄인지로 차원연결도 막아놓은 존재가 저편에 있는 게 확실한데, 그딴 게 있는 세계에 떨어진 선생님이 내일 죽지 않을 거란 보장이 있어? 그 개자식이 우리가 다시 시도하기 전까지 선생님을 가만 둘 거란 보장이 있냐고!!!"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리오의 합리성은, 눈 앞에서 미친 사람처럼 쏟아내는 히마리의 절규 중 어느 하나 틀린 게 없다고 하고 있었기에.

선생님을 구하지 못했다.

그리고, 선생을 차원 너머로 납치하고 자신들의 이동마저 가로막는 주적이 있는 것이 확실한 이상.

그런 적이, 자신들이 차원이동을 시도했음을 알아채고 한 번 막아낸 이상......

오늘과 같은 기회는, 더 이상 만들 수 없을 확률이 높았다.

털썩-

"리오 님!"

"윽, 부장...!"

현실을 마주해버리고 마찬가지로 힘이 빠져 주저 앉은 리오를 부축하느라 반사적으로 토키가 튀어나갔다.

양 쪽을 부축하던 한 쪽의 힘이 사라지며, 히마리도 휠체어에 주저앉았다.

갑자기 가해진 충격으로 휠체어가 뒤로 넘어갈 뻔한 것을, 에이미가 간신히 막아냈다.

"다 끝났어."

"부장......"

"다 끝났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아무 것도 없어......"

완전히 넋이 나가 주저 앉은 밀레니엄의 두 천재 앞에서, 토키와 에이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실험실과 연결된 문이 열리며 시체처럼 늘어진 시로코를 매고 하얗게 질려 뛰쳐나오는 치히로와 엔지니어부를 본 순간 에이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도.

끔찍한 날이었다.

* * *

......큰일날 뻔했네.

히, 히히히! 하지만 이겼다!

나의 승리다. 완벽한 나의 승리! 히히, 히히히!!!!

히히히, 왜 지금까지 안 넘어오나 싶었잖습니까.

너무 늦었잖아요. 그래서 바보 같이 방심해버렸지만......

이제 끝났다.

두 번은 없다.

너희의 선생은 영원히 이 세계에서 말라 죽을 운명이고, 이 세계는 앞으로도 그런 선생의 목을 졸라 죽일 운명......!

신뢰받지 못하는 선생 따위, 그런 평범한 버러지 따위가 너희의 세계에서 일으킨 기적을 이 세계에서도 일으킬 수 없다!

자아, 슬슬 이 게임의 끝이 보인다...!

지금까지는 술술 풀린다 생각해 웃고 있겠지만, 물 없이 사막만 건너다 죽게 하는 게임 따위에 재미가 있을소냐?

그건 내가 바라는 캠페인이 아니다.

희망을 앞에 두고 무너져 내리는 절망...!

그 절망이 최고의 미식이며, 내가 이 캠페인에서 얻을 승리의 보상, 트로피인 것이다!

자, 선생이여. 그리고 신비의 정체를 거론하기도 하찮을 정도의 엑스트라들이여- 플레이어의 장기말들이여!

호루스의 신비와 공포, 그것을 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비슷한 대체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으니.

죽음, 과연 그 죽음을 마주하게 될 엑스트라와 그런 엑스트라를 구하고플 플레이어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

나에게 보여다오!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죽으며 패배하는 광경을.

승리를 갈구하다 무너지는, 가장 찬란한 절망을 내게 보여달란 말이다!

히히히.

히히히히히히.

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히!!!!!!

* * *

컨디션 문제로 내일 올린다 하고 이틀 뒤에 올려버려서 죄송함다.

많은 분들이 기대하셨던 쿠로코 개입도 틀어막아버려서 정말 죄송함다.

킹치만 얘가 넘어오면 난이도 너무 이지모드 돼버리고

이지모드 되다못해 혼자서 카이저고 지생자고 다 뚜까팰게 뻔하고

이쪽 키보토스 꼬라지 보면 바로 그냥 '아누비스' 해버릴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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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5.08.17창작

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31화/공공의 적(3)

#선생#소설
좋아요 0댓글 13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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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C
Baksam작가
게시물 65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5.08.17 23:38
조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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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나
ㅇDC
ㅇㅇ125.08.17
디시콘
ㅇDC
ㅇㅇ25.08.18

왔구나 내 삶의 활력소

ㅇDC
ㅇㅇ225.08.18
디시콘
ㅇDC
ㅇㅇ325.08.18

왔구나 내 마약섹스

ㅇDC
ㅇㅇ425.08.18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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