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후지 나기사는 현재 혼란에 빠진 상태였다.
선생의 대두와 카이저의 패배.
아비도스와의 협정으로 약속된 희귀광물로 인한 미래의 수익.
꼬여 있던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이아를 습격한 아리우스의 수색이 아직도 오리무중이라던가, 문제가 없진 않았지만 과거에 비하면 확실하게 개선되었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상황에서, 세이아의 사망 건으로 충격을 받고 칩거해 있던 미카가 갑작스레 밖으로 나왔다.
참으로 기뻐해야 할 일이었고, 진심으로 그러고 싶었다.
그녀가 뜬금없이 분파를 이끌고 자신의 뒤에 세워놓고 앉히지 않았다면 분명 그랬을 터였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미카 씨. 이게 이렇게까지 해야 할 상황이냐고요."
"별 거 아니야 나기 쨩! ......이라 하고 싶지만, 아하하. 확실히 이건 좀 심하긴 했지?"
천진난만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저 모습은 분명 자신이 알던 미카의 모습이 맞다.
그렇기에 나기사는 더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어째서? 어째서 지금의 그녀가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거지?
그녀는 분명, 마지막으로 미카를 봤던 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 내가... 내가 멍청한 짓을 했어.
-미카 씨.
-의심도 안 하고 믿어버렸어. 하지만 어째서? 나는, 나는 그냥. 잘못된 걸 바로잡고 싶었을 뿐인데. 그걸 어째서 방해하는 거야? 왜, 왜 세이아 쨩을......
-미카 씨, 제발...!
-아리우스, 게헨나...... 그래 그 뿔쟁이 자식들이, 감히. 그 악마년들이야. 그것들이, 트리니티의 평화를 망쳐버리기 위해서 그것들이!!! 아아아아아아악!!!!!!
-미카 씨! 미카 씨!!! 밖에 아무도 없습니까!! 구호기사단, 구호기사단 불러요!! 빨리!!!!
도저히.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 그 때 미카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눈 앞의 미카의 모습은 너무도 멀쩡하지 않은가.
그 때의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자, 자! 됐으니까 너희는 빨리 돌아가! 애초에 인사들 받아주느라 몰랐는데 왜 이리 많이 온 거야?! 이러면 내가 무슨 쿠데타라도 하러 온 것 같아보이잖아! 빨리 가! 훠이, 훠이!"
그 사이 자신 뒤에 세워놨던 분파들을 죄다 내보낸 뒤 '에휴~' 하는 숨을 몰아쉬고 앉아 손부채를 부치는 모습.
"아, 더워~ 이래서 인기인은 피곤하다니까."
"미카 씨."
진동하는 손만큼이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분노인지, 혼란인지, 무엇인지 모를 감정을 꾹꾹 눌러참으며, 나기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입니까."
"말했잖아 나기 쨩."
미카는 싱긋 웃었다.
싱그러운 미소. 그러나, 어째서인지 무언가 다른 것이 섞여 있는 듯한.
나기사는 이유 모를 불쾌감에 탁자 밑으로 숨긴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나 너무 오래 틀어박혀 있었고, 그만큼 민폐도 많이 끼쳤잖아? 세이아 쨩도 없는데 나기 쨩 혼자 고생시키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문제 없습니다. 이게 제 일인걸요. 미카 씨가 복귀했으니 더 수월해지겠죠."
아직은, 속단할 때가 아니다.
라는 안일한 생각은 미카의 너무도 노골적인 행동에 선택지로조차 오르지 않았다.
머릿속이 어지럽다. 하지만 이럴수록 티 내서는 안 된다. 그런 상황에서 다행스러웠던 점은, 키리후지 나기사는 누구보다 표정 관리에 능숙한 인간이었다는 것이었다.
"응응, 물론이지. 너무 많이 쉬었으니까...... 이제, 제대로 일을 해야 할 때지."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우리가 해야 할 그 '일'이라는 것이......"
찻잔을 탁, 내려놓으며 나기사가 미카를 똑바로 응시했다.
"왜인지, 조금 차이가 있을 거란 생각이 기분탓이면 좋겠는데요."
"무슨 뜻이야 나기 쨩."
고개를 갸웃하며, 너무도 당연하다는 태도로 내뱉는 말-
"배신자와 침략자를 쓸어버리는 거 외에 우리가 할 일이 더 있었어?"
나기사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역시나.
세이아를 향해 쏘았을 아리우스의 총격은 그녀뿐만 아니라 미카의 어딘가를 망가뜨린 게 틀림 없었다.
바로 그 대답을 확인한 시점에서, 나기사는 느닷없이 나타난 미카에 대한 대처 방법을 굳혔다.
"......우선, 확실히 설명이 좀 많이 필요하겠군요."
고함 대신 한숨만 내쉬는 것으로 속을 가다듬고,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선생이 머리를 다친 뒤에 정신을 차린 건 알고 계시겠죠."
진실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숨긴다.
지금의 그녀는 티파티의 일원이 아닌, 세이아 건으로 여느 때보다 기세를 높이고 있는 파테르 분파를 이끄는 수장으로 보아야 옳았으니.
"그리고 아비도스에서 일어난 일로 게헨나와 협력하는 과정에서 악화일로를 걷던 두 학원이 협력할 여지를 찾았다는 것도요."
"그건 모르겠지만 나기 쨩이 그 뿔쟁이들을 두둔하는 성명을 냈다가 두들겨 맞고 있는 건 알고 있지."
"필요한 일이었으니까요 미카 씨. 저희에게 필요한 건 전쟁이 아닙니다."
세이아의 암살로 인해 대다수의 트리니티 학생들이 혐오하는 게헨나에 대해 나기사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냐고 묻는다면......
딱히 별 생각 없었다. 그것보다 빨리 화해나 하고 서로 제 갈 길 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티파티의 호스트로 과로에 시달리는 것도 죽을 맛인데, 게헨나와 싸움이 난다면 그건 안 그래도 쌓여가는 일더미에 삽도 아닌 포크레인으로 추가 업무를 퍼담아 덮는 일이었으니.
그 때문에 어떻게든 총학생회장의 실종으로 파기된 에덴조약을 이어나가려 했으나...... 게헨나의 수장 마코토의 후원으로 아리우스 분교의 암살자가 세이아를 습격하며 모든 것이 파국으로 치달았다.
세이아가.
세이아는-
"......으윽."
"나기 쨩?! 괜찮아?"
"괘... 괜찮습니다."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혹시, 세-"
"거기까지."
심호흡을 몰아쉬며 정상적인 호흡을 되돌린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그녀의 흐릿한 시선에 대경실색해서 걱정하는 미카의 표정이 보였다.
그 옆은 비어있다.
채워져 있어야 할 것이 사라져, 분명 두 사람이 있어야 할 시선 끝엔 한 사람만이-
"......그년들 때문이구나."
미카가 속삭이듯 되뇌이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친구를 꼭 끌어안았다.
"그거야. 너도 알고 있잖아 나기 쨩. 우리가 할 일은, 복수야."
"복... 수."
"세이아 쨩을 그렇게 만들고, 내 순수하고 순진했던 호의를 악의로 되갚아준. 그래서 트리니티의 혼란을 노리는 배신자들."
미카는 천천히 팔을 풀더니, 나기사의 어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했다.
나기사의 흐트러진 정신은, 미카의 홍채에서 발하는 빛을 응시하는 순간 다른 것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트리니티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쓸어버려야지. 안 그래, 나기 쨩?"
숨이 턱 막혔다.
공포, 경계심, 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광기.
친애하는 소꿉친구의 목소리는 너무도 달콤해서, 그 안에 숨길 생각도 없이 드러나는 독을 나기사는 너무도 명확히 인지할 수 있었다.
"뿔쟁이들이 우리 학교에 들어와서 아리우스 수색에 손을 보태고 있다며? 자기들 수장과 내통한 확증을 잡겠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미카 씨-"
"아무것도 안 해. 내가 바본줄 알아? 그럴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 녀석들이 실마리라도 찾아준다면 오히려 좋은 상황인거 나도 알거든? 나도 괜히 걔네들 건드리고 싶진 않아."
말하는 것만 보면 불안정해보이기 짝이 없지만, 사실 객관적으로 따지고 보면 합당한 반응이기도 했다.
게헨나에 대한 적대감보다 세이아를 쏘고 게-트 두 학원 간 사이를 악화시킨 직접적인 원흉 아리우스에 대한 적대감을 불태우고 있는 듯한 모습.
그래도 게헨나를 향해 두서없는 증오를 불태우는 것보단 그래도 낫다고 할 수 있었지만.
"미카 씨."
"안 한다니까 나기 쨩."
"그 끝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고 싶은 겁니까."
미카는 크게 뜬 두 눈을 끔뻑거렸다.
뒤이어, 무슨 질문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는 듯 아아, 하는 소리를.
건조한 소리를, 덤덤한 표정으로 내뱉고 이어 말했다.
"글쎄, 전쟁이라도 할까? 게헨나를 쓸어버리는 건? 걔들, 기분 나쁘잖아."
"미카 씨."
몇 번이고 부른 이름에 힘을 주어 단언한다.
"머리 다친 선생 덕분에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었죠. 들었겠지만 샬레와 아비도스, 게헨나 간의 비밀회담을 진행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들었어. 그럭저럭 잘 풀렸다면서?"
"적어도 지금까지 팀플레이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고 할 수 있겠죠.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던 카이저의 기세를 꺾고 동네북으로 만들어버린 건 분명 성과라고 할 수 있을테니까요."
"응응, 그 녀석들도 한 번 손봐줬어야 했는데. 잘 된 일이지."
"그렇게 생긴 활로를 또 다시 포탄을 터뜨려 막아버리겠단 말씀이십니까?"
"뭐야, 전쟁한다고 하는 말 때문에 그런 거야? 농담이야, 농담! 아무렴 나도 한 학원의 수장인데, 학원생들 다 이끌고 전면전을 하잔 말을 진심으로 내뱉을까!"
꺄르르 웃으며 손을 내저은 미카를, 나기사는 눈에 들어간 힘을 풀지 않고 노려보았다.
그래, 그들은 소꿉친구이기 이전에 한 학원의 수장들이었다.
정치인이고, 대통령이고, 군을 통솔하는 최고 지휘권자였다.
파테르 분파를 이끌고 예고 없이 자신을 만나러 온 것은, 친구끼리 복귀를 환영하는 티타임 따위를 하기 위함이 결코 아니었다.
"Si vis pacem, para bellum......"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티파티의 호스트에 오를 때 가슴에 품은, 오래된 고서에 적힌 내용을 되뇌인 나기사의 눈동자가 맑게 빛났다.
미카의 눈에 품은 스산한 광기에 맞서려는듯이.
"그럼에도, 당신이 손에 든 총을 내릴 일은 없다고 보는 게 좋겠군요."
"응, 맞아. 그건 진심이야 나기 쨩. 세이아 쨩이 그렇게 된 건...... 우리가 빈틈을 보여줬기 때문이었어."
"트리니티는, 아니 작금의 키보토스는 태풍의 눈 한가운데 있는 상황이나 다름 없습니다. 폭풍은 우리의 의지와 관계 없이 움직일테고, 대비해도 모자랄 시간을 긁어 부스럼 만들 일 늘리는데 쓸 순 없어요."
"안일해. 안일하고 해이한 생각이라고 나기 쨩. 내가 언제 키보토스를 정복하잔 식의 허무맹랑한 말을 했어? 태풍에 휩쓸리는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대피소를 만들자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치적인 발언.
미카가 이토록 직접적으로 쏘아붙인 적이 있던가.
"평소처럼 빙빙 돌아가지 말고 그냥 편하게 물어도 돼, 나기 쨩. 내가 저 애들 데리고 쿠데타라도 일으킬까 걱정되는 거 아냐?"
"당신...!"
"틀렸어. 나는, 우리는 네 힘이 되어주기 위해 온 거야. 나기 쨩, 나기 쨩의 성급한 게헨나 두둔으로 나기 쨩은 많은 적을 만들었어."
사실이었다.
선생의 계략에 휘말린 카이저가 열차포 셰마타와 카이저의 주요 시설들을 반파시킨 대도적 파우스트의 배후로 게헨나를 헛지목하고 공격할 때, 적대 학원인 자신이 게헨나에 대한 지지성명을 냄으로서 카이저를 더욱 궁지에 몰 수 있었다.
악화된 두 학원의 관계에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신 역시 리스크를 감수하고 승낙한 일이었다.
분명 성과도 있었지만 게헨나를 향한 수많은 날선 창끝이 자신에게 돌아선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힘을 쌓을 때야 나기 쨩. 오기 전에 봤는데, 아비도스에서 나오는 희귀광물에 대한 수익 비중이 게헨나 쪽에 더 쏠려 있더라?"
"가서 땅 파준 것도 게헨나고 저쪽에 들어가서 아비도스에 없는 채굴 인력을 보충해주고 있는 것도 게헨나니까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아니지 나기 쨩. 그럼 저 뿔쟁이들이 더 많은 걸 가져가는 게 되잖아."
"억지로 뺏어오잔 소리라도 하는 겁니까? 그 파우스트도 감탄해서 기립박수 할 소리를 진심으로 하려는 건 아니라고 믿겠습니다, 미카 씨."
"저쪽이 더 많은 일을 해서 그만큼 많은 성과를 가져간다. 응, 알아. 당연하지. 당연한 진리고 말고 나기 쨩. 그런데...... 거기서 멈추는 게 우리 할 일은 아니잖아."
"그만하세요."
"뺏어와야지. 억지를 부려서라도 떡 하나, 광물 하나 더 움켜쥐고 돌아왔어야지.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었다고 나기 쨩."
"잠시 쉬죠."
"그 선생에게 접촉해볼 생각이야."
"잠시 쉬자고요."
"개망신 당하고 웃음거리가 됐다던데, 그거 사실 아니지? 나기 쨩이 그런 인간을 믿고 뿔쟁이들이랑 회담한 걸 밀어붙일 리가 없잖아? 분명 아비도스나 게헨나와도 연줄을 유지하고 있을테니, 그 사람을 먼저 확보하면 앞으로의 전망에 도움이-"
"그만하자고요!!!"
나기사는 거칠게 대화를 끊어냈다.
좀 더 많은 것을 가져오고 싶었단 욕심이 나기사라고 없었을까.
이 결정이 훗날 게헨나와의 머니게임이 일어날 시 치명적인 실책이 될 수 있을거란 가능성을 그녀가 고려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그녀는 믿음을 선택했다.
두번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는 게헨나와의 협력 체계를 굳히며, 서로 잡은 손을 떼버릴 수 있을 변수를 멀리하는 쪽을 택했다.
언제 마음을 바꿔 원래 그들이 아는 쓰레기 어른이 될 지 모를, 그리고 애초에 '선생'이라는 직함 자체에 게헨나의 마스코트 격 되는 아이를 건드렸다는 혐의가 있어 엮여봤자 두 학원 간 이미지에 하등 도움 안 될 선생을 배제하다시피 하면서까지.
"서로 생각할 시간을 좀 갖고...... 그 때 다시 대화하는 게 낫겠어요.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 제발......"
"나는 괜찮지만, 나기 쨩이 그렇다면야."
싱긋 웃으며 미카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잊지 마, 나기 쨩. 세이아 쨩이 없는 지금, 티파티의 수장은 우리 둘 뿐이야. 우리들이 트리니티를 이끌어야 해. 그리고 나는, 언제나 나기 쨩의 편에 설 거야. 날 봐."
미카는 손을 내밀었다.
잘 관리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손이었다.
길게 정돈된 손가락이 우아함을 움켜쥐려는 듯 부드럽게 움직이지만.
미카의 눈은 그 손 끝에 끈적이는 무언가가 묻어있는 듯 차게 굳어 있었다.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어. 세이아 쨩의 피가 튀긴 거야. 그리고 자비를 베풀어 내민 손이 총에 맞아 꿰뚫린 흔적이야."
"미카 씨, 제발......"
"이 손에 묻은 피는 씻을 수 없어, 나기 쨩. 그렇다고 놓치지 않은 것을 잡을 수 없다는 건 아니지."
아아, 대체 어쩌다 우리는 이렇게-
나기사는 끝내 참지 못하고 표정을 일그러뜨린채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누구도 믿을 수 없어.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나기 쨩 뿐이고, 나는...... 반드시 나기 쨩을 지켜낼거야. 아리우스를, 게헨나를, 트리니티가 무너져도 상관 없어. 내겐 이제 나기 쨩 뿐이야."
뺨에 느껴지는 감촉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떨쳐낼 수 없었다.
올라가는 손가락이 질끈 감은 나기사의 눈꺼풀을 부드럽게 올린다.
미카가 웃고 있다.
얼굴을 내민 그녀와의 거리가, 조금만 앞으로 움직여도 입술이 닿을 듯 가깝다.
무서웠다. 그리고, 참혹했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세이아가. 어딘가 망가져버린 미카가. 두번 다시 행복했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을 자신이-
'어떻게든.'
그런 와중에도 머릿속은 맹렬하게 돌아가고 있다.
미카가 선생을 확보하게 둘 순 없다.
어째서인지 설명할 순 없었지만, 나기사의 본능이 그렇게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이미 손을 쳐낸 내가 어떻게...?
그 상황을 뒤집으려면, 대체 어떤 변수를-
나기사는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어느 것도 보고 싶지 않고, 어느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티파티의 호스트인 그녀는 선택하고, 나아가고, 책임져야 했다.
어른이 아닌 자신이 어른의 그것을 넘어서는 짐을 짊어져야 하는 현실이.
그녀는 참혹하고 혐오스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 * *
그렇게, 일 주일 뒤.
"마카롱이라."
선생은 휴게실에서 접시 위에 올려진 마카롱 하나를 두고 묘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현재 그는 흔치 않게 혼자인 상황.
이따금 히마리와 교류하던 케이는 밀레니엄을 방문하고 있었고, 거의 고정 당번으로 찾아오다시피하던 유메도 오늘은 샬레로 오지 않았다.
듣자하니 두통이 너무 심해서 앓아 누웠다고 하던가.
자신의 4시간 압축 스파르타 강의가 너무 빡셌나, 하는 후회가 뒤늦게 스멀스멀 올라오는 선생이었다.
-흐, 흐흑... 말도 안 돼...... 이렇게...... 난폭하게......
-......선생님?
-그, 그거 아니야! 오해라고! 오해니까 총 꺼내지 말아줘! 유메 너도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귀가가 늦어지는 유메를 데리러 왔다가 비참하게 쓰러져 흐트러진 모양새를 본 노노미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을 땐 얼마나 무서웠던가.
그 때의 공포가 떠올라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한편으론 울먹거리면서도 그럼에도 꾸준히 찾아와 공부하는 유메가 기특한 마음이 더 컸다.
'생각보다 잘 따라오고 있단 말이지.'
학생회장을 폼으로만 하진 않았다는 게 선생이 학생으로서 유메를 보며 내린 판단이었다.
공부머리가 있냐고 하면 솔직히 아닌 쪽이었지만 그렇다고 센스가 없는 쪽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학생회장이 되기 전인 신입생 때를 포함한 그녀의 저조한 성적은 그녀가 공부 대신 학교를 살릴 수 있는 외부 활동에 전념하느라 소홀한 탓이 컸다.
그 때문에 배워온 것에 구멍이 많던 그녀가 선생의 과외에 가까운 1인 수업을 그럭저럭 따라오는 것으로도 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고 선생은 생각했다.
그가 온 세계의 기준에 대입해 유메의 역량을 평가하자면, 이대로만 간다면 인서울은 몰라도 수도권 대학도 노려볼 만 하지 않을까...... 하는 정도의 희망이 보일 정도로.
'그것보다, 마카롱이라......'
거기까지 생각하던 선생의 시선이 다시 눈 앞의 마카롱 한덩이로 향했다.
마카롱 하나에 무슨 의미부여를 그리 하며 빤히 내려보고 있냐 묻는다면, 답은 간단했다.
이것은 하루 세 끼 챙겨먹기도 어렵던 선생이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맛보는 달다구리였으니까.
엔젤 24가 입주해있지 않은 이 세계 샬레에서도. 보급 상황이 여유롭지 않던 아비도스에서도 간식 타임을 가지기엔 빠듯했으니, 노노미가 챙겨와준 이 마카롱을 보는 선생의 시선이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거 보니까 빵디부 애들 생각나네.'
장난식으로 그런 식으로 줄여서 부르는 선생에게 빽빽대던 요시미와의 장난이 그리웠다.
밴드 때 이후로 왠지 모르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아이리도, 늘 수수께끼 같은 발상으로 선생에게도 고찰의 시간을 주는 나츠와의 시간도.
그럼에도 마카롱을 보니 그 중에서도 늘 그걸 입에 달고 살던 학생의 이미지가 강하게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카즈사...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생각지도 못했던 기적으로 호시노를 다시 만난 이후로 부쩍 자신의 세계에 대한 향수가 짙어졌다.
그 장소가. 그 세계에서 겪은 모든 일들이. 거기서 만났던 모든 인연들이.
어느 날엔 잠에서 깨어난 와중에 베개가 눈물에 젖어 있는 걸 알고 깜짝 놀랐던 때도 있던가.
'누구든 막 불러와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지. 그럴 순 없고 말고. 느닷없이 불러온 애들한테도 민폐일 수도 있고.'
이 세계의 아로나는 선생에게 저 쪽의 세계에서 학생을 불러오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도 설명해줬다.
지하생활자 때문에 두 세계의 연결이 막혀 카드를 써서만 학생을 24시간 불러올 수 있고,
그리고 특히나. 자신이 몰랐던 다른 조건......
'호시노처럼 그 조건에 맞는 학생이......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 조건이라면...... 어.'
맞는 학생이 한 명 있어 선생은 거기서 잠시 멈칫했다가.
이내 힘을 풀었다.
그렇다고 괜히 그 학생을 여기 부를 일도 없었으니까.
"보고 싶긴 하지만 말이야."
진심이 담긴 말을 내뱉으며 피식 웃은 선생은, 남은 마카롱을 미련 없이 입에 털어넣었다.
마카롱을 좋아하던 그 학생과 같이 먹던, 바삭한 소리와 달큰한 향이 입 안 가득 찼다......
"......그래서."
거기까지 이어진 선생의 말을 경청하던 쿄야마 카즈사의-
이 세계의 카즈사가 아닌 선생이 알던 그 카즈사의 얼굴은 황당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거 때문에 내가 여기 불려온 거라고...?"
"그거 때문인진 모르겠는데, 아니 나도 카드가 거기서 발동할 줄은 몰랐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카롱이 올려져 있던 접시 바로 옆에 놓인 어른의 카드로.
방금 전까지 선생이 목 명찰에 같이 끼고 있던 카드로 내려갔다.
'아니 나는 그냥 진짜 생각만 한 건데...... 이거 끼고 학생 생각하고 조건만 맞으면 그냥 발동하는 거였어...? 보안 너무 허술한 거 아냐 아로나야...?'
-어, 저도...... 그게 그렇게 발동할 줄은......
슬쩍 쳐다본 싯딤의 상자 속 아로나도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녀조차 이 정도로 발동 조건이 느슨할 줄은 몰랐던걸까.
"그, 선생님."
"으, 으응 카즈사."
"불러준 건 고맙다 못해 기쁘긴 한데, 그......"
이런 말 해도 되나.
하는 표정으로 한 줄기 식은땀을 흘리며.
카즈사가 물어왔다.
"그 카드, 그렇게 막 남용해도 되는 거야?"
이 세계의 카드는 무엇을 대가로 지불해야하는지, 여전히 알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대답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문제.
무려 평행세계를 오고 갈 수 있는 능력을 마구잡이로 써도 되는가?
"아마... 안되지 않을까 싶은데......"
"......"
"......"
그렇게.
그렇게 바라지 마지 않던 재회였음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지 못하고 그렇게 한참을.
탁자 위 카드만 뚫어져라 내려볼 뿐이었다......
* * * * *
그으러게 사용설명서 잘 보고 썼어야져 선새니
쯔쯔쯔......
댓글 10
즉시 개추

그래도 얼굴 봐서 반갑겠네 서로

뭐 기왕 온거 떡이나 치고 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