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토스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이 개인화기 못지 않게 거의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물품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인이어로 대표되는 무전 통신 기구가 그것.
수많은 동아리와 단체들이 존재하며, 그들 모두가 각자의 '작전'을 수행하고, 지나가는 학생들조차 허구한 날 터지는 교전 상황에 휘말리는 게 일상인 키보토스에선 전화기를 들 수 없을 정도의 긴급 상황에서 같이 다니다 떨어지게 된 친구나 같은 팀원과의 원거리 통신이 가능한 커스텀이어폰은 총기를 소지하는 소녀들에게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도구였다.
이 자리에 있는 흥신소와 아비도스 학생회 또한 각자의 인이어를 귀에 꽂고 있었고, 선생으로부터 인이어를 받은 케이와 임전 상태인 호시노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싯딤의 상자를 손에 쥔 선생이 지휘에 있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다.
싯딤의 상자의 능력으로, 선생은 학교와 동아리의 구분을 넘어 모든 학생 개개인의 인이어 통신을 전부 단일한 주파수로 묶어내고, 그것들을 단 하나의 동일한 회선으로 동기화할 수 있었으니까.
"동기화 완료. 마이크 테스트 원 투, 다들 통신에 이상 없지?"
[문제 없어.]
[이상 없습니다!]
그런 류의 대답이 이 자리에서 멀리 떨어진 선생의 인이어에서 들려왔다.
저렇게 물어보면 진짜 안 연결된 애들은 어쩌고, 하는 의문을 품는 이도 있었지만 문제 없었다. 선생은 싯딤의 상자에서 아로나가 고개를 끄덕여준 것으로 이상 없음을 확인한 뒤였으니.
[따로 주파수를 맞춘 것도 아닌데 모든 통신이 하나로 연결되다니...... 역시 무시무시한 타블렛이네, 그거.]
[갑자기 없던 물건이 난데없이 나타난 것도 이상한데 말이지.]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긴 하지만...... 호기심을 해소하는 건 저걸 쓰러뜨린 뒤로 미뤄두자고. 그럼 빠르게 말할게. 호시노, 몇 번이나 겪어봤으니까 자세한 설명은 필요 없지? 미안하지만 네가 전위에서 최대한 막아줘야 해."
[으헤~ 잘 알고 있지. 맡겨 달라고 선생.]
유메가 리타이어한 이상 앞에서 세트의 공격을 막아줄 수 있는 학생은 호시노가 최적격이었다.
하루카가 비슷한 역할을 맡을 순 있었고 충분히 세트의 맹공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여겼으나, 선생은 이 전투에서 그녀의 역할을 따로 분류하고 있었다.
"오쿠소라 양과 이구사 양은 후방에서 보조! 오쿠소라 양이 메인 오퍼레이터를 맡고 이구사 양이 보조한다."
[알겠습... 네?]
[제, 제가요?!]
[지금 뭔 소리 하는 거야 선생?]
경악하는 목소리와 반발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터져나온다.
예상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아직 정월 참배용 유카타를 입은 적이 없을 이곳의 하루카에겐 자신의 신비의 특성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을테니, 그들에겐 자신이 학생의 특기도 모르고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야.]
문제가 살짝 있었다면, 선생이 달래기도 전에 멀리서 듣고만 있는 그조차 소름이 돋는 기세의 무서운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는 것.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해. 저런 거 앞에 두고도 일일이 토 달고 싶어?]
멀리 떨어져 있어 그녀들의 표정은 보이지 않아도 현장의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으헤, 거리며 여유롭던 표정을 싹 바꿔 모두를 압도하고 있을 호시노의 표정까지도.
속으로 옅은 한숨을 내쉰 선생은 마음을 가다듬고 서둘러 말했다.
"호시노, 진정해. 그리고 이구사 양, 갑자기 그런 식으로 지시해서 미안한데 설명할 시간이 없어. 오퍼레이터 자리에서 신비로 보조하는 방법은 내가 알려줄테니까, 우선은 지휘에 따라주지 않을래?"
[아... 알겠습니다 선생님.]
"케이, 지금의 너라면 호시노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버틸 수 있다고 판단했어. 미안하지만 최대한 버텨줘."
[전혀 문제 없습니다. 선생님의 지휘에 따르겠습니다.]
빠르게 판단해 지시를 내렸지만 왠지 2% 아쉬운 느낌이었다.
싯딤의 상자과 어른의 카드라는 백업 수단까지 갖췄으니 승산 없는 싸움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세계에서의 교전 경험들을 토대로 만든 최적의 부대 구성과는 적지 않은 괴리감이 있는. 그야말로 있는 학생 없는 학생 다 끌어모아 간신히 분대 하나를 만들어놓은 식인 '총력전'으로서의 구성.
이쪽의 노노미가 수영복을 입고 교전을 치룬 적 있었다면 설령 요시미나 히나가 없더라도 더할 나위 없는 이 분대의 핵심이 되었겠지만, 그럴 일이 없었으니 자신의 지원으로 충당해줘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수영복 복면단 활동 때 진짜로 수영복을 입혀봤어야 했나, 하는 맞아 죽을 생각을 서둘러 머릿속에서 지워 없애버리고 선생은 곧바로 남은 학생들의 자리를 하나하나 배치해줬다.
그래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선생은 그렇게 확신했다.
"그럼 마지막 브리핑이야. 말했지만 저 놈의 이름은 세트. 번개로 시도 때도 없이 범위 공격을 하면서 정신 없게 하겠지만 안심하시라. 너희 앞뒤엔 내 최강의 조력자와 지휘의 스페셜리스트가 있으니 걱정할 필요 전혀 없을거야!"
[지금 본인 입으로 자기가 지휘의 스페셜리스트라고 지칭하는 거야...? 아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뭔가 열 받는데......]
[으헤~ 분위기 띄운 거니까 그러려니 받아들여 그냥. 그리고 틀린 말도 아니니까 안심해도 된다고?]
[선생님.]
선생이 잔뜩 띄워준 덕인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들뜬 목소리의 호시노가 아루를 달래는 동시에 아로나의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10초 후 완전히 현현합니다.]
"좋아, 모두 위치로! 10초 후 첫 공격이 올 거야."
[10... 9......]
철컥!
싯딤의 상자가 비치는 전장에서 호시노가 전개시킨 방패를 강하게 쥐는 모습이 보였다.
케이가 변화 없는 덤덤한 무표정으로 레일건을 겨누는 것도.
든든한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선생은 두 사람 뒤의 다른 학생들처럼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3, 2, 1! 옵니다!]
-!!!!!!!
지하생활자의 공간과 현실 공간 사이의 경계를 불안정하게 오고 가던 세트의 형체가 마침내 완전히 현현했다.
* * *
완전히 현세에 제 형태를 끼워맞춘 세트가 강림한 순간, 학생들은 자신들이 서 있는 장소가 바뀐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모래 밖에 보이지 않았을 사막 한가운데서 세트를 중심으로 오래된 유적 같은 공간이 펼쳐졌고, 세트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양 옆을 포함한 정체불명의 첨탑들까지 세워져 있었다.
그 공간 위에서 세트가 날개를 펼친 그 순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광채와 굉음이 어둠을 밝혔고, 검은 구름 사이를 찢은 거대한 은빛 불꽃이 갑자기 분출된 기세에 움츠러든 학생들을 향해 내리쳐졌다.
그런 기습적인 공격은, 맨 앞에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끝까지 하늘 위를 응시하던 한 명의 학생이 치켜든 방패에 직격했다.
가장 강력했을 일격이 방패에 막혔음에도 전격의 여파는 호시노의 뒤로 빠져나가 나머지를 스쳤고, 광역기에 맞은 학생들은 일제히 신음을 뱉으며 몸을 떨었다.
[정신들 차려!!]
호시노가 일갈하며 방패 옆으로 치켜든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신비를 담아 쏜 호시노의 공격이 세트에 명중한 동시에 마찬가지로 자세가 무너지지 않은 케이가 레일건을 발사했다.
콰앙!
콰과광!
머리와 가슴으로 보이는 부근에서 두 사람의 총격의 여파가 터졌다.
총격이라기보단 대포가 터진 것이라 해야 될 거대한 폭음이 아군의 공격으로 발생한 굉음이 세트의 주변으로 계속해서 내리쳐지는 천둥소리를 일순간이지만 묻어버렸다.
[똑바로 봐! 소리만 크지 아무것도 아니야.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잖아!]
사실이었다.
천지를 찢을 듯 내리치는 번개의 기세에 움츠려들었던 학생들은 자신의 몸이 본 적도 없는 괴물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전격을 굉장히 잘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그들 역시 교전 상황이라면 둘째가라도 서러울 전문가. 머리로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방아쇠에 올린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빠르게 무너지는 몸을 수습한 아루를 필두로 모든 학생들의 총이 일제히 불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선생 역시 싯딤의 상자로 보이는 전황을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오쿠소라, 이자요이 양 중심으로 지금 바로 지원해줘! 그리고 이구사 양은 집중! 저놈 가운데 심장부에 동그랗게 떠 있는 원 보이지?"
[네, 네! 보여요!]
"그게 새해 해 뜨는 일출이라 생각하고 여건 될 때마다 총 말고 폭탄에 신비를 담아서 던져! 앞자리가 아닌 뒷자리에서 느껴지는 감이 다를 거야, 신경쓰지 말고 바로 신비를 방출시키면 돼!"
[해... 해보겠습니다! 네!!]
아야네의 드론이 학생들의 중심을 향해 출격한 동시에 하루카가 내던진 폭탄들이 세트의 중심부에 닿는 순간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쾅, 콰앙, 콰아앙-!
폭발 위에 폭발이, 폭음 위에 또 다른 굉음이 겹쳐지는 모습이 퍽 장관이었다.
선생은 즉시 싯딤의 상자로 하루카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이구사 양?"
[괘, 괜찮습니다!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애요! 그런데 저 아까부터 신비가 묘하게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인데요, 저 뭐 잘못한 건가요? 죽으면 되겠죠? 죽을게요, 죽겠습니다!]
"안 돼! 죽지 마! 너 없으면 우리 망해! 그거 아주 멀쩡한 현상이고 지금 그 느낌이 핵심이니 계속 유지시켜! 알았지, 네가 이 부대 핵심이야!"
[네, 네?! 제가요...! 아, 알겠습니다!]
선생의 응원에 무언가 감을 잡았다는 표정이었고, 그녀가 후방 포지션에 설 때 변형되는 신비의 능력 또한 제대로 발동되는 듯 했다. 그렇다면 안심이다. 이따금 봐주기만 하면 문제 없이 돌아가리라.
선생은 훈련도 없이 다짜고짜 낯선 자리에서 시간이 필요했을 하루카를 배려해 그쪽으로 쏠리던 신경을 다시 전장 한복판으로 분산시켰다.
맨 앞에서 세트가 정면으로 퍼붓는 대부분의 공격을 홀로 막아내고 있는 호시노의 모습이 보였다. 굳이 하루카를 비슷한 역할로 앞에 세울 필요는 없다는 자신의 믿음대로 든든한 모습이었다.
콰앙!
투다다다!
다다다다!
[선생, 우리 쪽으로 무슨 붉은 구슬 같은게 오는데!]
"리쿠하치마가 저격한다! 근데 그거 세트가 자기 강화하려고 만든 거라 부수면 오히려 좋은 거거든! 세트에게 닿기 전에 너희 쪽에 다다르면 쏴서 터뜨리면 돼!"
콰과과과광!!!
타다다다당!!!
[그런데 아까부터 묘하게 신비가 회복되는 게 빠른 것 같은데? 이거 뭐지?]
"그거는 나중에 이구사 양한테 고맙다고 말해주면 돼!"
[제, 제가요? 뭐 했는진 모르겠지만 죽을까요?]
"아니야, 칭찬한 거야! 잘 하고 있어 다들!"
전격, 총격, 폭격.
거대한 인외의 존재에서 들릴 수 있는 모든 소리가 선생의 귀를 찢어버릴 듯 울리고 있었다.
선생은 싯딤의 상자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늘 그렇지만, 앞에서 모든 것을 감당하며 싸우고 있는 학생들과 자신은 비할 바가 못 되었다.
투두두두두두!!!
콰과과광!!!
타다다당!!!
굉음, 소음, 폭음.
머릿속의 뇌를 잡고 뒤흔드는 충격에도 선생의 부릅 뜬 눈은 싯딤의 상자와 전장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완벽한 타이밍에 맞춰 지휘를 내릴 순간을 재고 있었다.
아루가 쏘아 터뜨린 구체에서 뿜어져나온 붉은 기운이 학생들의 위로 덧씌워진 기점으로 발사되는 총알의 크기와 소리, 위력까지 확연히 올라간 것이 보였다.
버프의 위력을 제대로 체감한 아루가 구체가 출몰하던 기둥 쪽으로 무의식적인 눈길을 주던 것을, 선생이 자신이 보고 알려주겠다 외쳐 다시 세트 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게 했다.
호시노의 방패만으로 막기 너무 큰 범위 공격이 후방을 쓸고 지나간 순간 다급해져서 드론을 띄우려던 아야네를 진정시켰다.
총탄, 폭탄, 광선.
학생들의 총에서 불을 뿜으며 나오는 모든 것들이 하나의 방향으로, 하나의 적을 향해 쏘아진다.
멀리서 보는 선생에게 그것은, 쏘아지는 것보다는 흘러가는 것으로 보였다.
섬광과 불꽃의 강.
각각이 발하는 빛이 겹쳐지고, 그 빛의 끝에서 세트를 무너뜨릴 기세의 더 큰 광휘가 터져나온다.
그 시점에서 처음 그녀들을 압도시켰던 수 많은 번개와 천둥 소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재앙의 신화를 재현하고자 강림한 원초의 존재는, 현실에서 기적을 만들고자 신화를 거부하는 이들의 저항에 점차 마모되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을 향해 내리쳐지는 번개의 양이 줄어들고, 전격의 위력 또한 그들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방어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선생의 외침에 세트가 기어오르듯 하면서까지 쓰러뜨리고자 했던 호루스의 소녀는 들고 있던 방패를 접어버렸다.
방어를 포기하고 오로지 공격에 모든 신비를 쏟아붓는 그 순간, 그녀가 발사하는 공격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위력으로, 총구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폭격으로 세트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고 내리치던 번개 같은 공격은 더 이상 세트가 펼칠 수 있는 수단이 아니게 되었다.
"어째서어어어어어어!!!!!!!!"
신화의 존재가 그렇게, 일개 학생들의 공격에 스러져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던 지하생활자는 현실을 거부하며 발광하고 있었다.
튀어나올 기세로 기괴하게 솟아오르는 눈동자들로 가득한 얼굴을 마구잡이로 긁어대던 기괴한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던 여성마저 얼굴을 찌뿌리며 고개를 돌려버릴 정도로 추악하기 그지 없었다.
"어째서야!!!!!! 어째서 이딴 엔딩이 나올 수 있는건데에에에!!!!!! 안 돼, 안 된다고...! 일어나라, 당장 일어나라고!!!!!"
모든 패를 까버린 그에게, 기적을 이룰 수 있는 수단 따위 남아있지 않았다.
빛 속에서 고통스러운 괴성을 토하며 소멸해가는 세트를 응시한 선생은 싯딤의 상자를 쥐어뜨릴 기세로 강하게 쥔 손에 힘을 풀었다.
힘이 풀려 내려버린 손에 쥐어진 오파츠의 화면이 세트가 최후로 내뱉은 빛에 반사되어 빛났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암약하며 사악한 음모를 꾸미던 실패자를 조롱하듯이.
* * *
사막의 차가운 바람에 섞여 흩날린 모래가 뺨을 때린다.
세트를 소멸시킨 순간, 그녀들은 다시 정체불명의 유적에서 평범한 아비도스의 사막 한복판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비도스도, 흥신소도, 심지어 싯딤의 상자를 쓴 선생의 지휘를 처음으로 받아본 케이까지도 마치 꿈을 꾼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무기를 내려보고, 서로를 쳐다보고 있었다.
분명 자신이 쓰러뜨린 적이 맞는데, 자신이 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싯딤의 상자와 카드가 선생의 손에 쥐어진 순간 컨디션, 무기 상태, 누구보다 스스로가 잘 아는 개인의 기량을 한참 뛰어넘게 한 기적의 힘.
쓰러뜨릴 수 있을거라 생각도 못했던 적의 몸체를 차근차근 갉아가던 순간의 쾌감.
무자비한 적의 공격에도 단 한 차례도 아군의 흐름을 끊지 않게 하며 공격을 퍼붓게 한 지휘를 겪은 것에 대한 전율.
누구도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흥분이 지나치게 쌓여버린 탓에 곧바로 터뜨리지 못하는 상황.
그녀들에게 조금만 시간을 줬다면 누군가 입을 연 순간이 곧바로 환호성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아비도스와 흥신소의 구분 없이 서로를 마구 얼싸안는 훈훈한 장면이 펼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모래 위를 밟기 시작한 단 한 사람의 발걸음이 달아오르던 모두의 감정을 한순간에 눌러버렸다.
세트가 사라지고 장소가 바뀌기 전까지, 최선봉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를 치룬 이답지 않게 덤덤하게 적이 있던 공간을 올려보던 호시노는 상황의 완전 종료를 확인하자마자 즉시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케이도.
움찔하며 슬쩍 뒤로 물러서는 흥신소도.
조심스레 처음 보는 선배의 눈치를 보는 다른 세계의 후배들마저도 지금 그녀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오로지 두 사람.
이렇게 시끄럽게 한바탕 했는데도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이쪽에서도 못미더운 건 마찬가지인듯한 선배와,
근처에 눕혀뒀던 선배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선생.
선생의 입가에 흐르다 굳은 피가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지고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세트를 마주하고도 느끼지 않았던 두려움이 순식간에 소녀의 마음을 잠식했다.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 싶어서.
이 기적이 갑자기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렇게 마침내, 단번에 도달한 발걸음을 가까스로 멈춰세웠다.
무릎을 꿇고 앉아 유메의 상태를 살피던 선생이 고개를 들었다.
"호시노."
"선생."
다시금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이 서로를 응시했다.
여전히 할 말을 찾지 못한 호시노의 입술이 떨릴 때, 선생이 먼저 선수를 쳤다.
"완전히......"
"?"
"히어로 그 자체가 됐구나, 호시노 쨩. 엄청나게 멋졌어."
"으헤...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렇게 히어로라고 놀렸으면서, 설마 아저씨를 못 믿은 거야?"
"그럴 리가. 내가 호시노가 와줘서 얼마나 든든했는지...... 너도 모를걸? 하하하......"
"하하......"
"......"
다시 대화가 끊기고.
호시노의 입가에 떠 있던 미소가 점점 흐려지며 굳어졌다.
"선생."
"......호시노."
"선생... 선생, 선생님...!"
와락-
연거푸 선생의 이름을 부르던 소녀가 끝내 참지 못하고 품으로 뛰어들었다.
호시노를 받는 순간 선생의 얼굴은 두 가지 감정이 섞여 기묘히 일그러져 있었다.
자신의 학생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기쁨과 동시에. 자신을 향해 뛰어든 학생이 품은 괴로움을 읽었기에.
"왜...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호시노."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얼마나...... 얼마나 무서웠는데!"
신화의 재현을 노리고자 한 초현실 앞에서도 당당했던 히어로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유메와 선생의 상태를 보고자 따라왔던 이들이 눈을 의심할 정도로.
누구보다 강했고, 강해보였던 호시노가 아빠를 잃어버렸다 찾은 딸처럼 울음을 터뜨리며 절규하는 모습은 그들에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아비도스의 히어로, 대책위원회의 부장, 학생회의 학생회장. 그리고 후배들을 지키는 모두의 선배.
직책과 명칭을 가진 것은 아직 성장하지 못한 학생이었다. 선생이 아는 호시노는, 그러한 직책을 홀로 감당하려다 무너진 적도 있을 정도로 강박적인 책임감을 지닌 소녀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어른의 온기를 여전히 필요로 하는, 불안정한 소녀였다.
"또......"
가슴에 얼굴팍을 묻은 채 바로 말을 잇지 못하는 호시노의 어깨가 들썩였다.
옷깃을 파고드는 거친 숨결과 소녀의 눈물로 젖어가는 감촉을 느꼈다.
선생은 그녀의 작은 몸을, 자신을 안는 힘에 지지 않을 정도로 꽉 안아주었다.
"또 잃어버리는 줄 알았단 말이야......"
울음 섞인 목소리가 선생의 귓가를 파고 들었다.
학생의 울음과 떨림이 제 것인 것처럼 아팠다.
히어로인 그녀가 얼마나 여린 속을 가진 아이인지 알고 있었기에.
작별인사를 할 기회도 없이 누군가를 잃었던 것이 쓰라린 상처로 남았을 그녀가, 또 같은 고통을 입으며 고통스러워했을 것을 알았기에.
"괜찮아."
말 없이 떠나지 않을 거니까-
그렇게 위로해주며 힘을 주어 안아주자 흐느끼는 소녀의 등이 파르르 떨렸다.
선생은 호시노가 진정할 때까지, 한참을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줘야 했다.
한참 동안을.
* * * * *
(+오타 수정 완료. 다른 학생들과의 레벨 및 육성도 차이로 신비속성 만렙MMMM조력자 임시노, 만렙MMMM케이를 메인 딜러로 쓰는 경장갑 세트...... 라는 상황으로 구상하고 썼는데 수노미도 아닌 노노미를 서브딜러로 놓는 겜안분식 서술을 써놔버린 걸 뒤늦게 발견해서 수정했음)
뇌피셜로 쓰지 않고 인게임 설정에 최대한 맞춰보려 노력했는데, 잘 됐을지 모르겠네......
참고로 선생 세계에서 요시미는 세트 메인딜러 자질이 있으니 아비오도스로 같이 가야 한다는 선생 말에 처음엔 진심으로 기겁했다나 뭐라다나
아마 시로쿠로 시즈코라던지 제해결 코코나라던지 스스로를 비전투요원이라 생각했던 학생들도 선생 눈에 들어 대규모 임무에 소집되면 한 번 정도는 이게 맞나 생각하지 않았을까...... 멋대로 생각해봤음
* * * * *
이 밑은 동시 연재 중인 노벨피아에서 과분하게도 후원을 여러번이나 받게 되어서 올린 감사 공지. 쓴 김에 처음 연재를 시작한 이곳에서도 올리는 게 맞다 생각해 함께 올렸슴다. 부족한 작품 봐주시는 모든 분들께 그저 압도적 감사만 드릴 뿐...! 앞으로도 열심히 달리겠슴다!
* * * * *
이 소설을 쓰면서 후원칸 쪽으론 사실 눈길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막 연재를 시작한, 그것도 게임 2차창작 패러디를 쓰는 하꼬작가가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후원 받을 가능성을. 그런 가능성 자체를 상정 안 했습니다. 연재를 이어가며 아이디어라던지,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는 지문이나 대사 쓰는 것도 벅찼고, 참고한답시고 보는 다른 2차 창작들도 소재고 필력이고 벽을 느끼게 하는 훌륭한 작품들 뿐이고...... 이건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그런데 어느 날 후원이 진짜로 들어왔습니다.
그 뒤로도 후원이 몇 번이나 더 들어왔고, 원래 쌓이던 댓글들도 점점 많아보이는 게 눈에 보이더군요. 작가들이 댓글 보려고 글 쓰는 거구나, 실감까지 제대로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느 날부터 든 생각입니다만, 어라-
이렇게 되면 나 하는 일에 비해 받은 게 너무 많아지는 거 아닌가?
아니 그보다도 그렇게 되면, 이제 이 시점에서, 여기서 그만두게 되면......
사전적인 의미로 '먹튀'가 된다...... 그런 말인가......?
미리 말해두자면 현생의 저는 대학원생입니다.
대학원생이긴 한데 휴학하고 워킹홀리데이로 튀었다 돌아온 대학원생이라 내년 복학이에요. 덕분에 일 주일에 부족한 필력 쥐어짜서 최대 2~3편 연재는 가능할 정도의 시간이 있는건데, 아마 졸업논문이라는 곶통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내년엔 지금의 페이스로 연재가 힘들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예측이라는 건 논문 쓰다 멘탈 터져서 소설로 대피할 가능성도 없잖아 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 그런 상황이 일어날 경우 높은 확률로 제 현생은 망한 상태겠죠. 하하 제기랄.
사ㄹ... 아니 대학원생 살려.
그래도 끝까지 달려보겠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아니지만 제가 한 편 올리면 하루이틀 만에 300 이상의 조회수가 찍히던데, 제가 앞으로 언제 제 인생에서 300명 모아볼 일 할 수 있겠습니까. 꾸준히 써서 400, 500, 계속 늘어날 수 있을 정도로 필력이 늘어난다면 정말 기쁘겠지만, 그것도 타인에게 부탁할 수 없는 제 노력의 결과에 달린 일이겠죠.
스스로도 여전히 벽을 못 뚫었다 노리는 부족한 사람의 작품이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도 너무 기뻤지만, 제 작품이 엄청나게 많은 사이트에서 더 많은 소설을 보고 있을 독자 리스트들 중 하나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작가이기 이전에 독자로서 더할 나위 없이 큰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원작 흐름에 기댈 여지가 많았던 아비도스 스토리가 끝나가는 시점이고 이제는 정말로 제 역량이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될 단계를 앞두고 있어 두렵지만, 소설을 쓰는 이 일은 상당히 고통스러우면서도 너무도 기쁜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습니다.
이 고통과 기쁨을 잊지 않고 설령 엄청난 대작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럴 일 없게 노력하겠지만 가다가 구멍이 크게 뚫려서 메꿔야 되는 일이 생기더라도.
우선은 이 마라톤의 완주를 목표로 달려보겠습니다. 그렇게 끝까지 달린다면 그래도 제 인생의 자랑거리 하나는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면서.
부족한 작품 사랑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만, 꺾이지 않고 완결까지 전진해보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7
인게임 요소 활용하는 거 너무 좋아용
코스트 버퍼는 중요하지 ㅋㅋ
아니 복학이 얼마 남지않은 대학원생이라니 이게 무슨소리요
그럼 올해 빨리 100화 채우도록
인겜 드립 섞는거 존나 웃기네 ㅋㅋㅋㅋㅋㅋ 수노미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