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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보시 히마리는 사랑에 빠졌다.
아니, 이 표현도 사실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했다』――그렇게 형용하는 편이 좋으리라.
감정마저 마음속 깊이 숨겨버리는 비극의 미소녀. 겉으로는 평소처럼 행동하는 그녀지만 점차 그 격정을 안에 감출 수 없게 되어 간다.
육체와 정신 사이에 있는 가연성 높은 부분. 한번 거기에 불이 붙으면 그것이 불 붙은 들판처럼 번져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이글거리게 된다.
자신의 병약한 신체에 대한 부담감과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의 경계에서 몸부림치고 괴로워하는 그녀. 그리고 언젠가 그의 앞에서는 그저 소녀로서――천재도, 완벽하지도 않은, 단지 『아케보시 히마리』로서 사랑해줬으면 좋겠다고――그렇게 생각하게 되어 있었다.
이것은, 그런 한 소녀가 사랑에 빠질 뿐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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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표현도 사실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했다』――그렇게 형용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실로 감정의 격류였다. 날뛰는 격정이었다. 사랑에 굶주리고, 그리움에 애타며, 몸을 불사르는 마음이었다.
키보토스의 온갖 정보를 관측하며, 밀레니엄 최고봉의 두뇌를 가졌다고 호언장담하는 그녀로써도 알 수 없었던 감정. 몽롱하며 형체를 갖지 못했던 마음이 갑자기 연정이라는 또렷한 형태가 되어 그녀 안에서 굳어졌다.
과연 언제부터 그 감정을 품고 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그녀도 알 수 없다. 그와 함께 작전을 했을 때부터 였을까, 그에게 발을 닦아 달라고 했을 때부터 였을까, 아니면....... 그를 만났을 때부터 였을까.
――단지 그것도, 이제와서는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어쨌든 그녀가 그 감정을 자각한 뒤부터는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실로 계몽되었다고 해도 좋다. 오감의 막이 박피 한 장 벗겨진 것처럼 평소의 광경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늘 올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헤일로가 떠오른 푸른 하늘이 갑자기 신선해 보이고, 늘 입에 담았던 차의 풍부한 향기가 후각을 간지럽혔다. 늘 어딘가 나른해야 할 몸이 묘하게 가볍고, 휘몰아치는 겨울바람마저 기분 좋다.
그의 얼굴, 상냥한 미소,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잔잔한 목소리, 남자다운 큰 손, 두꺼운 가슴팍, 듬직한 등――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이 뜨겁고, 불타오르듯 마음이 격해진다.
"아아, 이것이...... 『사랑에 빠진다』라는 거군요."
말로 하는 순간 납득했다. 이것이 『사랑』.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길 위대한 명군조차도 미희를 향한 여색에 빠져 나라를 멸망시켰다. 『경국지색의 완벽 미소녀』―― 그런 직함을 그에게 자칭한 적도 있었다. 그런 그녀가, 설마 빠져드는 쪽이 되어 버릴 줄은――쿡쿡 거리며 그녀의 입에서 조소가 새어나왔다.
"――그렇다고 해도, 아뇨.......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랑은 가슴 속에 간직하도록 하죠."
가슴에 생겨난 감정을 깊은 곳에 간직하고 엄중히 뚜껑을 덮는다. 그에게는 보여줄 수 없는 그녀의 일면. 그것이 있는 한 아케보시 히마리는 그를 향한 그리움을 봉인하기로 했다. 밀레니엄 최고봉의 두뇌를 가진 그녀에게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콜록콜록, 그녀의 입에서 기침이 나온다. 몸을 굽히고 마음속 깊은곳에서부터 괴로운 듯 길게 기침을 했다. 쌕쌕 거리며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온 가르랑 거리는 소리. 장갑에 묻은 선명한 적색. 그것을 씁쓸한 얼굴로 노려본다.
――두근, 히마리의 심장이 큰 소리를 냈다.
규칙적인 고동 속에 갑자기 끼어든 맥박. 이마에 땀이 맺히고 온몸이 뜨거워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심장의 제멋대로인 한 박자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전조도 없고 유예도 없다. 노크 소리조차 없이 그녀의 문을 두드려 부수듯 강제로 연다.
무음의 쓰나미 같은 것이 압도적인 기세로 밀려온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손발이 전부 저리고 주변의 공기가 희박해지면서 숨을 잘 쉴 수 없게 된다.
주위의 사실과 현상이 모두 자신과는 무연하게 되어 간다. 거대한 물의 벽이 그녀의 온몸을 집어삼키면서 세상이 어두워져 갔다. 그렇다고 해서 의식이 희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의식은 부분적으로는 오히려 예민해진다. 두려움은 없다. 하지만 눈을 뜨고 있을 수는 없게 되어 있었다.
눈꺼풀을 굳게 닫고 심장 주변을 혼신의 힘으로 쥔다. 주위의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가면서 눈꺼풀 뒤에는 늘 꾸는 악몽이 반복적으로 투영됐다. 몸 곳곳에서 뿜어져 나온 땀방울이 옷을 적셔간다. 겨드랑이가 축축해지는 불쾌감. 온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고동이 점차 빨라지며 커졌다.
"부장!!"
문을 차서 부술 기세로 부실에 쳐들어온 핑크 머리의 소녀――이즈미모토 에이미가 길게 늘어뜨린 땋은 머리를 흔들며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초조함을 그 얼굴에 드러내고 있었다.
휠체어에 붙어 달아둔 버튼을 눌러 수납공간에서 통 모양의 용기를 꺼낸다. 몸을 ㄱ자로 구부린 히마리의 입가에 그것을 가까이 붙였다.
"스읍――....... 스으읍――............ 후우, 하아아―――......"
통을 입에 물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땀에 젖은 얼굴에서 점차 험상궂음이 빠져나간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흘러 땀과 함께 턱을 타고 내려갔다.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듯 히마리는 깊은 호흡을 반복한다.
그런 그녀의 등을 에이미가 천천히 쓰다듬는다. 자애로운 손길이었다. 살갗이 약한 히마리의 피부가 짓무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부드럽게 손을 위아래로 움직인다. 마른 수건으로는 이마의 땀을 빨아들였다.
"――에이미. 이제 괜찮아요."
"응."
침착함을 되찾은 히마리가 살짝 쉰 목소리를 낸다. 에이미가 들고 있는 수건을 받아 직접 땀을 닦았다. 휠체어 수납공간에서 물수건 같은 것을 꺼내 목덜미에 댄다. 싸늘한 차가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축축히 피부에 달라붙은 옷이 불쾌감을 조장한다. 땀에 젖은 몸이 추위에 살짝 떨렸다. 내일은 땀띠가 날 거 같네요, 하고 남의 일처럼 중얼거린다.
"고마워요, 에이미."
"됐으니까, 이거 마셔."
히마리의 감사를 가볍게 받아넘기고 책상에 놓인 드러그 케이스에 손을 뻗는다. 『발작 후』라고 크게 적힌 그것을 히마리에게 건네자, 컵을 한 손에 들고 방 안쪽으로 사라졌다.
에이미에게서 받은 플라스틱 케이스를 연다. 안에 든 건 하얀 라무네 같은 것. 닮은 건 모양뿐이지 무기질적이고 맛도 없는 그것을 손바닥에 얹었다.
에이미가 미지근한 물을 컵에 담아 가져다 주고, 알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혀에 닿는 쓴맛. 좋은 약은 쓰다고 하지만 쓰면 쓸수록 건강에 좋다고 한다면 히마리는 오래전에 건강한 몸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질 수 없는 쓴맛에 얼굴을 찌푸리고, 데운 물과 함께 천천히 삼켜 간다. 순간 목에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 등을 에이미가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조금 더 알약이 작아지지는 않는 걸까. 히마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목구멍에서 식도를 빠져나가는 불쾌감이 가라앉기를 무심한 표정으로 기다렸다.
이것이, 그녀가 마음을 가슴에 간직하는 이유. 감정조차 마음속 깊이 숨겨 버리는 비극의 미소녀――이것은 그녀가 농담조로 표현하고 있는 것 뿐.......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혹시 만약....... 이 마음을 선생님에게 털어놓는다고 해도,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고 해도――점차 안정을 되찾고 있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히마리는 생각한다.
병든 몸을 앙상하게 여위었고, 평평한 가슴에는 갈비뼈가 드러나 있었다. 여성스러운 부풂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팔은 마른 가지와 같다. 힘을 주면, 선생님[신비를 가지지 않은 인간]의 완력으로도 쉽게 부러질 것 같을 정도. 평소 옷을 두껍게 입은 것은 이 추악한 육체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메이크업으로 속이기는 했지만 건강하지 못하고 창백한 피부는 바로 아래에 혈관이 비쳐 보인다. 몸에 밴 소독액 냄새는 늘 향수로 지워버리고 있었다.
――그런 제가 선생님과 맺어진다고 해도, 그를 괴롭게 할 뿐이죠.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추악하고 궁상스러운 몸. 발작에 시달리며 비참하게 헐떡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한심함. 가뜩이나 에이미를 고생시키고 있는데 그에게까지 불편을 끼쳐 버리는 건가. 그건 그저 오만이 아닌가.
이런 자신의 나약함을 그에게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 고상하고, 아름답고, 완벽한 자신만을 봐줬으면 좋겠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의 소원이었다.
"에이미. 폐를 끼쳤네요."
"――......그건 말하지 않기로 약속, 했었지?"
"우후후....... 감사합니다."
땀에 흠뻑 젖은 옷을 에이미가 잡는다. 하려는 대로 팔을 곧장 위로 뻗었다. 흉측하게 드러난 갈빗대가 눈에 들어오고 에이미가 건네준 수건으로 덮듯 몸을 닦아갔다.
이래보여도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다소 면역력이 약하다거나 운동은 할 수 없지만 밖에 나가거나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다.
다만 비정기적으로 신체를 덮치는 발작과 확실하게 육체를 갉아먹고 있는 병마가 그녀의 수명을 깎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와 함께 할 수 있었다고 해도, 자신이 먼저 가 버리는 일 따위, 그녀에게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자, 부장. 이것도 해 두자."
"아픈 건 싫은데요?"
"네네."
에이미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주사기를 꺼냈다. 히마리의 팔을 알코올로 가볍게 소독하고 천천히 바늘을 찔러넣는다. 그걸 대하는 히마리도 익숙했고, 바늘이 꽂히는 순간에도 미동조차 없었다.
이제와서는 아프다고 느끼는 일도 없다.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바늘을 찔러온 그녀의 팔은 검붉게 변색돼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녀가 항상 긴 소매의 복장을 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사실은 에이미와 치히로, 그리고 리오밖에 모른다. 히마리의 과도한 자기칭찬은 결코 연민을 느끼지 못하게 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자, 끝."
"고마워요, 에이미. 많이 늘었네요. 전혀 찔린 듯한 느낌이 없었어요."
명랑하게 웃는 히마리의 얼굴을 보며 아주 잠깐, 에이미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그걸 애써 못 본 척하던 히마리가 살짝 눈을 감고, 다시 떴을 때는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한 에이미가 주사기를 휠체어의 수납공간으로 되돌려놓고 있었다.
실언이었네요. 히마리는 그렇게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미는 너무나도 상냥한 아이다. 갑자기 떠맡겨진 환자를 돌보는 일을 군말 없이 헌신적으로 해준다. 오히려 병자 취급을 싫어하는 히마리를 우선으로 생각해 주고 있었다. 그녀의 적확한 서포트가 히마리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을 막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마리 자신도 에이미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녀와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가 히마리에게는 무엇보다도 마음의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그녀를 만난 것은 히마리에게 몇 안 되는 행운 중 하나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역시, 거칠어졌네요."
"부장, 빨리 벗어."
다음 날. 생각한 대로 땀띠가 생긴 신체에 연고를 바른다. 강한 가려움과 따끔거리며 피부를 찌르는 감각, 뜨거운 불쾌감에 눈살을 찌푸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질 수 없는 감각. 오늘은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 못하겠지. 아무리 옷 밑에 숨긴다고 해도 눈에 띄지 않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으니까.
몸을 덮치는 간지러움과 싸우는 히마리가 주의를 돌리기 위해 콘솔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다지 집중이 되지 않는지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고 머리를 흔들었다. 혀를 찰 정도로 기분이 나쁘다.
무심하게 얼굴을 찡그린 히마리가, 땀을 흘리지 않도록 에어컨 온도를 조금 낮췄다. 이마에 땀을 머금은 에이미의 표정이 살짝 풀린다. 평소와는 입장이 뒤바뀐 뒤틀린 광경. 평소 같으면 서로 주고받는 잡담도, 둘밖에 없는 방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히마리가 항상 생긋 미소를 짓는 것도 신체의 이상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괴로워하는 표정이나 감정이 새어나온 표정을 보여도 걱정을 끼칠 뿐이니까.
그것은 물론 그녀의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그리고 무리를 하며 얼버무리는 대가로 에이미와 단둘이 있을 때는 얹짢은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거나 가면처럼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털어놔서는 안되겠네요."
"부장. 뭐라고 했어?"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시금, 이 마음은 숨겨야 한다고 히마리는 결론 내렸다. 분명 선생님이라면 그 나약함을 포함해 그녀를 받아 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자긍심[프라이드]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의지해오는 것을 옳다고 여기는 자존심[프라이드]과 완벽을 바라는 오만함[프라이드]. 그것들이 안에서부터 몸을 태우는 강렬한 감정을 넘어버리는 그날까지.
나날이 강해지고 있는 그를 향한 마음을 억누를 수 있는 걸까――그런 불안을 안고 그녀는 그 몸을 계속 불사르고 있는 거겠지.
――마지막 순간의 발소리가, 바로 옆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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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다
존나 맛있는데
총알도 막아내지만 주삿바늘에는 뚫리는 키보토스인의 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