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 1부 - 블루 아카이브 마이너 갤러리 (dcinside.com)
20XX년 XX월 XX+76일 11:55
선생 치료 시작 76일째, 샬레 업무 공간
"딸깍."
"타다다다닥. 타닥. 탁."
"딸깍딸깍."
"쓰스슥, 사각사각."
오로지 타자를 치는 소리와 펜촉이 종이를 긁고 지나가는 소리만이 들리는 오전의 샬레는 평화로움보다는 적적함으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조용했다.
오늘의 당번은 세미나의 회계, 하야세 유우카. 평소라면 이따금씩 졸고 있는 선생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혹여나 그것이 약 때문이 아닌지 걱정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소소한 일상 이야기로 샬레의 빈 공간을 채워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유우카는 그럴 수 없었다.
~~~
"유우카 쨩. 다음 당번이 3일 후였나요?"
"응..."
"그 때 선생님의 약 한 봉투만 빼내와주세요."
"뭐? 그건ㅡ"
"마지막 당번 때 청소하다 봤어요. 병원을 얼마나 자주 가시는 지는 모르지만 그걸 감안해도 조제 일자가 오래된 약봉투가 몇 개 있었던 걸요. 아마 약을 종종 잊으시는 걸지도 몰라요. 그거 한 봉투면 돼요."
"그래서... 그 다음은...?"
유우카의 한 마디에 노아는 잠시 침묵하다, 이내 입을 연다.
"........마이스터의 몫이죠. 그 다음은."
~~~
'어쩐담... 기회가... 기회가 있을텐데...'
그러나 유우카의 기대와는 달리 오늘의 선생은 샬레 부임 이후 한 손에 꼽을 만큼의 집중력을 보이고 있었다. 오직 그녀가 타온 커피를 받기 위해 잠시 의자를 움직인 것을 제외하면 마치 졸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부동 자세였다. 오직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와 이따금씩 들리는 마우스 소리만이 그가 깨어있는 채로 업무중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그렇기에 유우카의 심리는 더더욱 초조해지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스케줄대로라면 오늘의 선생은 외근이 없는 날이다. 다시 말해, 오늘 유우카가 퇴근하기 전까지 언제고 저 자리에서 계속 업무를 본다는 뜻이었다.
'역시... 뭐라도 해야...'
그렇기에, 유우카는 지금 공간을 가득 점유하고 있는 고요 속에서 하나의 작은 파동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저... 선생님...?"
".........."
그러나 그녀가 부르는 대상은 말이 없었다.
"선생님...??"
".........."
"선생님?!"
"어으얽ㄱ..... 유우카...? 무슨 일 있니...?"
그제서야 몰입하고 있던 선생이 반응한다. 투병 이후 간만에 보여주는 집중력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깬 것에 대해서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는 유우카였지만, 지금은 '대의'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스스로를 변호한다.
"저... 그게... 사실...."
그러나 다음 순간 유우카가 깨달은 본인의 실책은 2단계를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
'이런 빡통... 주제를 생각도 않고 말을 걸면 어쩌자는거야...'
"응...? 유우카?"
"아, 저, 그게... 오늘은 이상하게.... 배가... 좀 고프네요... 아하하..."
"요즘에 다이어트한다고 열심이더니,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에ㅇ... 잠시만요. 제가 다이어트 한다고 말씀드린 적은 없었는데...?"
"에...어...그랬던가...?"
"선. 생. 님.? 지금 들은 말의 출처는 어. 디. 일. 까. 요?"
"살려만다오..."
아주 오래간만의 푸닥거리였다. 유우카가 선생의 병세를 알아차린 이후에는 좀처럼 먼저 이런 류의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선생에게 있어 자신의 잔소리로 시작되는 티키타카마저도 일종의 스트레스를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지만, 그것 외에도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도저히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유우카의 반응은 선생에게 있어서도 아주 오래간만에 느끼는 감정이었다. 비록 자신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사단이지만, 유우카의 표정을 보니 이미 반쯤은 용서한 것이 '평소'대로의 유우카만 같았다.
"그래서 누구한테 들은거에요..."
"아니 뭐...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거라고 누가 그러더라....고?"
"에휴... 분명 코유키나 마키 중 한 명이겠죠? 저도 다 알아요."
"아하하... 그래서... 배고픈거니 유우카?"
"음... 조금이요?"
"그래...? 그럼 오늘 점심은 유우카가 먹고 싶은걸로 먹자. 어때?"
"선생님께서는 드시고 싶으신 게 없으신건가요?"
"글쎄... 요즘 식욕이 통 없어서..."
"그래도......"
"응?"
'여기서까지 잔소리를 할 순 없어...'
"아니에요. 그래도 끼니는 3번 다 챙겨드셔야 해요?"
최대한 밝게 이야기하려는 유우카였다. 이내 본인의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려 빠르게 메뉴 선정이라는 주제로 분위기를 전환하고자 한다.
"선생님. 오늘은 무난하게 백반 어떠신가요?"
"좋은 선택이야."
"메뉴는... 이렇게 설정하고... 주소도... 완벽해."
그렇게 점심을 결정하고 얼마나 지났을까, 샬레의 직통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네. 연방수사동아리 샬레입니다."
"앗. 선생님이구나! FOX 4인데 오늘 음식 갖고 갈 니코가 아직 손이 온전하지 않아서 급히 비번인 내가 갈 예정이야. 조금만 늦어도 이해해줘! 그럼 이만ㅡ!"
"뚝."
목소리에서 이미 엄청난 다급함이 전해졌기에 선생이 무어라 말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 짧게 한숨을 쉬며 전화를 내려놓는다.
"선생님? 무슨 전화였나요?"
"아. FOX 소대 아이들이 배달을 주문하면 가끔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오곤 하더라고. 근데 오늘은 담당인 아이가 아직 다친 곳이 낫지 않아서..."
"다쳐요...? SRT의 최정예가요...? 별일이네요..."
"그러게... 별일이지...?"
짐짓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는 하고 있었지만 선생의 머릿속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니코...'
이미 보고가 된 내용이지만, 여전히 니코의 부상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SRT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아니기도 하고, 매사 침착한 니코와는 특히나 거리가 있던 부상이었다.
그런 니코의 부상이 포장음식을 잡지 못할 정도로 회복이 더딘 것은 그 역시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후우....'
어느새 그의 의식의 흐름은 다른 샬레 '직속' 부대원들에게 향한다.
'사오리... 미야코...'
사오리와는 그 때 이후로 만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당번의 날짜도 아직 시간이 꽤 남았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가 샬레 내부를 돌아다닐 때 사오리와 동선이 겹친 적은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오리... 꼭 이야기해야 하는데...'
한편으로 미야코의 상태 역시 신경써야 했다. 분명 휴가의 마지막 날 찾아왔던 그녀는 무언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다. 문 밖에서 자신에게 이야기할 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무엇인가 그가 캐치하지 못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후우....."
"선생님...?"
"아, 아니야. 잠시 딴 생각을 했어. 그럼 슬슬 정리하고 밥 먹을 준비하자."
~~~
20XX년 XX월 XX+76일 12:40
선생 치료 시작 76일째, 샬레 업무 공간
"식사는 어떠셨어요?"
"나쁘지 않았어. 새로 주문한 가게지?"
식사를 마친 둘은 어느새 업무공간에 놓인 쇼파에 나란히 앉아 식후 커피를 즐기고 있었다.
"네 맞아요. 혹시 너무 맵거나 짜거나 하진 않으셨죠?"
"음... 조금 싱겁다는 생각은 들기도 했는데... 뭐 그래도 나름 괜찮았어."
"으음... 그렇군요."
'분명... 같은 백반을 주문했는데... 분명 생각보다 짭짤했어... 고기완자는 고추가 들어가서 매운 편이었고...'
"왜 그래 유우카? 맛이 별로였어?"
"아, 아니에요! 하하... 그냥...음.... 선생님이 잘 드시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조금은 놓여서요..."
'이건 확실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 오묘한 표정을 짓는 유우카를 선생이 쳐다본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에, 항상 해주고 싶었던 말을 해주기로 한다.
"유우카."
"ㄴ, 네?"
가벼운 느낌으로 사뿐사뿐 건너가던 대화는 선생이 유우카를 부르는 목소리에 잠시 내려앉는다.
".... 항상 고마워."
".....네?"
"그리고 미안해."
"아니... 갑자기..."
"내 상태를 처음으로 알게 된 아이가 너다보니, 그러면 안 되는건데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많이 의지하게 되는 것 같아. 유우카에게도 분명 마음의 짐이 있을텐데, 내 것까지 같이 짊어지게 되는 것 같아서 그게 미안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어줘서 그게 고마워."
예상치 못한 공세였다. 물론 선생이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이런 이야기를 단 둘이 있는 공간에서 들을지는 전혀 몰랐던 유우카였다.
유우카의 가슴 속에서 응어리진 무엇인가가 솟는다. 뜨겁고, 붉은 기운이 이내 가슴을 시작으로 상반신에 퍼지기 시작한다.
"......알면 빨리 나으란 말이에요."
"응. 노력은 하고 있어. 그래도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적응하지 말라고... 그런 상태는 익숙해지면 안된다고... 바보 같은 사람아..."
".....미안해. 이런 글러먹은 어른이라. 웃게 해주고 싶었는데 또 울게 만들었네."
"누가 울어요... 그냥... 눈이 좀 따가운거지... 글러먹었다는 말은 하지 마요 진짜 한 번만 더 그래봐..."
"...알았어. 더 노력할게. 알았지?"
조용히 유우카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도 알고 있다. 말로는 투정을 부려보지만 선생은 이미 자신과 충분히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그것을 버티는 것 자체도 대단한 것임을.
그렇기에 거기다 대고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기보다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그녀가 생각하기에 더 '합리적'인 결론이었다.
그런 유우카의 머리를 선생이 천천히 쓰다듬는다.
"유우카도 나중엔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거야. 그런 마음이면 충분해."
'그리고 언젠가 내가 없는 키보토스에서도.... 잘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어.'
"삐리리리리리리, 삐리리리리리리"
"네 전화받았습니다."
[선생님. 수석행정관입니다. 잠시 시간 되십니까?]
"응.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아. 혹시 무슨 일 있을까?"
[다름이 아니라... 재무실장이 잠시 선생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가능한 빨리요.]
"아오이가...?"
[네. 원래대로라면 재무실장이 샬레로 직접 찾아가는 것이 온당한 일이나, 부득이하게...]
말끝을 흐리는 린에게서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점을 감지하는 선생이었다.
"괜찮아. 오후에는 일단 일정이 없으니까. 정리만 하고 바로 나갈게."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동편으로 헬기가 곧 옥상 헬리포트에 착륙할 예정이오니 오시는 길 편히 모시겠습니다.]
"그래. 좀 이따 보자."
"뚝."
돌발상황이었다. 선생에게도 유우카에게도.
선생은 아오이가 자신을 긴급히 부를 이유는 아마 예산과 관련된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가령 샬레의 예산과 관련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최근 샬레 직속이라는 타이틀을 붙인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었기에 분명히 이것으로 어떠한 조치를 강구하고자 긴급히 그를 불렀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예상은 했지만 너무 빠르게 치고 들어오는 것 아닌가 싶은데...'
한편 유우카에게 이것은 하나의 기회와도 같았다. 비록 그가 좋아하는 어른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확실히 그녀에게 아쉬운 것이었으나, 이번만큼은 그녀에게 걸린 '대의'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학생회의 호출은 그녀에게 천금같은 기회였다.
'항상 학교 예산안을 가지고 잔소리만 하더니, 이럴 때 도움을 주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든지...훗.'
"저기 유우카?"
"ㄴ, 네 선생님?"
"정말 미안해. 아무래도 오후에는 외근을 나가게 될 것 같아. 예정에 없던 일이긴 한데..."
"...괜찮아요 선생님. 다녀오세요."
"응? 같이 다녀오지 않아도 괜찮아?"
"얼핏 듣기로 총학생회 재무실에서 찾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예산으로 얽히다 보니 개인적으로 대면하고 싶지는 않은 것도 있고... 여기서 끝낼 것만 끝내고 퇴근해볼게요!"
"으음... 그럴래? 하긴 그게 유우카에게는 더 편하겠네. 그래 그럼 알았어. 다녀올게."
늘상 외근에 따라오겠다고 말하는 유우카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 잠시 의아함을 느끼는 선생이었지만, 린의 전화에서 느껴지는 여유 없는 목소리는 그런 생각을 잠시 접어두기엔 충분했다.
"조심히 다녀와요."
그렇게 유우카는 조심스레, 페이즈 2를 준비하고 있었다.
~~~
20XX년 XX월 XX+76일 13:38
선생 치료 시작 76일째, 총학생회 옥상 헬리포트
"어서오십시오! 선생님!"
"린 쨩 반가워! 어후 이거 바람이 원..."
"누, 누가 린 쨩...아닙니다! 일단 내려가시죠!"
옥상까지 마중나온 린의 모습을 멀찍이 헬기에서부터 지켜보던 선생은 이 일이 생각보다 중대하고, 긴급한 사안이었음을 직감했다.
'대체 아오이가 어떤 트집을 잡은거지...'
엘리베이터에 타자 옥상을 휘감던 돌풍이 더는 느껴지지 않았고, 다시 주변은 고요해졌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두 사람의 침묵을 깬 것은 린이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그래도 휴가가 나름 도움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약 먹고 있으니까..."
"그렇습니까..."
"그보다 린 쨩. 무슨 일 있어?"
"그 건으로 재무실장이 잠시 선생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응...?"
"아시다시피, 총학생회에는 인사 관련 업무가 명확히 분장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휴가는 봉급 지급의 건과 밀접하다는 결론 하에 재무실장이 휴가와 관련된 검토를 하는 것으로 임시로 분장되었고요."
"그랬구나."
"네. 그리고 아마 그 건에 대해서 추가로 무엇인가 급하게 여쭐 것이 았다고 합니다. 본래는 찾아뵈어 말씀드리는게 맞지만 예산 마감이 오늘까지인지라..."
"괜찮아 이해해. 뭐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았는데."
"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리고 누가 린 쨩입니까."
"이번에도 넘기기는 실패인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엘리베이터는 재무실이 있는 층까지 도달했다.
"선생님. 설령 당황스러운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그저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바를 솔직하게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응."
"끼이이익..."
"아오이?"
"아, 선생님. 그리고... 대행까지 왔네. 뭐, 있어서 나쁠 건 없지만. 어서 와 앉아. 오는 길에 불편함은 없었고?"
"날아온 입장에서 불편한 건 없었지."
"역시... 그런건가..."
"그래서... 오늘 나를 급하게 부른 이유는 뭐야?"
".... 선생님 요즘 어디 아픈 곳 있어?"
"응?"
예상 외의 질문이었다. 분명 휴가와 관련된 질문이 먼저 나올 것이라 예상한 선생이었다. 그렇기에 어디 야프냐는 말은 의도야 어쨌건 그의 허를 지르기엔 충분한 말이었다.
'아니야...총학은...총학생회에는...아직 없....'
'린...?'
순간 그의 생각이 다다른 곳은 린이었다.
'설마.... 아니야 린... 그럴 필욘 없었다고.... 젠장 이건 아니란 말이야...'
'어째서... 어째서...'
"선...생님?"
"으, 응?"
'침착해...침착해...침착해...'
"어디... 아픈 곳 있는거야...?"
'침착해침착해침착해침착해침착해침착해침착해침착해침착해'
"선생님...? 진짜야...?"
이제 그에게도 결단의 시간이 왔다. 총학생회의 증인을 하나 더 만드는 선택지와, 여느 때와 같이 자신이 받고 있는 '혐의를 부인'하는 것. 정말로 버튼을 눌러야 할 시기가 찾아왔다.
'으윽.....'
고개를 돌려 린을 쳐다본다. 린은 애써 시선을 회피하고 있다.
'젠장, 린. 여기선 정답을 좀 알려주면 안 되는 거였어...? 어디까지 이야기한건지 정도는 알려줘야지...'
여기서 선생은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야 했다. 린이 일단 어디까지 이야기한 것인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가능성은 낮지만 아예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경우 역시 일단은 선택지에 놓기로 한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 선택지는... 하나.... 증거가 없는 선택지는...'
짧은 시간 계산을 마친 그의 두뇌의 결정은
'하아....'
"아니...? 늘 있는 만성 피로 정도를 빼면야..."
'익숙한 맛으로 가야지 어쩌겠어...'
결국 선생의 선택은 여느 때와 같았다. 모든 것을 이야기한 경우가 아니면 완벽한 증거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단 하나라도 린이 누락한 부분이 있다면 그 허점을 어떻게든 찾아서 비집고 들어간다는 전략이라면 최소한 본전치기는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선생이었다.
"음.... 그래....?"
"대행.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별 일 없으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럼 대행이 올린 협조 요청 공문의 근거는 어떤 거야...?"
"그게... 그...."
아오이의 물음에 선생 역시 다시 고개를 돌려 린을 바라본다. 당혹스러움이 가득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아니 린 네가 거기서 그런 표정을 지으면...'
선생의 두뇌가 다시 복잡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분명 린이 아오이와 어떠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검증의 대상은 자신과 자신의 몸상태였다.
'설마....'
일단은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자 하는 선생의 임기응변은 아오이를 향한다.
"아오이. 혹시 무슨 공문인지 알아봐도 될까?"
"아.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의 휴가를 연장시켜달라는 공문이었어. 그런데 선생님의 증상에 대해 물으면 끝까지 답변을 회피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직접 묻고 싶었던 거야. 자세한 설명도 없이 대뜸 물어봤구나. 상처받았다면 미안해."
"아니야. 그런 건. 오늘이 재정 마감일이라며. 이해해."
"아무튼... 그럼 이 건은 그냥 원안대로 갈게. 물론 나도 마음 같아서는 추가적으로 휴가를 주고 싶지만, 병가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의시의 진단서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그럼. 나는 괜찮아."
이제서야 모든 퍼즐이 하나 둘 맞춰지고 있었다. 선생이 생각하는 그림이 완벽히 그려졌다.
다만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은 것은
"그럼 린."
"ㄴ, 네.... 선생님."
린이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잠시 나가서 이야기할까."
"......네. 알겠습니다."
~~~
20XX년 XX월 XX+76일 14:21
선생 치료 시작 76일째, 샬레 업무 공간
"없어... 여기에도... 도대체 어디에 숨겨두신거야..."
한편, 선생이 막 재무실에서 린을 끌고 나오던 그 순간 유우카는 여전히 선생의 약을 찾느라 고군분투중이었다.
'분명 노아가... 여기 어딘가에...'
노아가 알려준 자리는 물론 거의 모든 책상의 서랍을 다 뒤져가는 유우카였다. 비상한 기억력으로 원래 있던 배치대로 서랍을 정리하느라 시간이 다소 지체된 것을 빼면 이제 단 하나의 공간만이 남아있었다.
'저 강철제 보안 캐비닛...'
샬레에 입주하자마자 총학생회에서 선물해준 캐비닛이었다. 캐비닛의 세팅을 모두 도와준 유우카였기에 각 층의 배치 정도는 꿰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단 한 가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은 캐비닛에 걸린 자물쇠의 비밀번호. 분명 자신의 생일로 맞춰두었지만, 그새 언제 바꾸었을지 모르는 일이었고, 그렇게 되면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러다 선생님이 돌아오시면...'
선생이 돌아오는 것은 정말로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결과였다. 언행 불일치는 둘째치고 캐비닛을 기를 쓰며 열려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선생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유우카였다.
'그래... 일단 해보자...'
천천히, 자물쇠의 다이얼을 하나씩 돌려가며 이를 맞춘다. 손에 묻은 땀때문에 헛돌던 두 번째 바퀴를 겨우 맞추고, 다시 세 번째, 네 번째로 향한다.
[0314]
식은 땀을 흘리는 유우카. 그녀의 손이 이제 버튼으로 향한다.
"딸깍."
"철컥."
".......에."
샬레의 보안이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 것인가 진심으로 고민하던 유우카였다.
'아니야... 정신차려... 일단 약...'
제일 아래 칸부터 살핀다. 요새 마주치는 일이 잦은 게헨나 선임행정관이 선물해준 것으로 추정되는 권총이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차고 있던 권총이랑 똑같은 디자인이었기에.
'진짜 600mm 박격포를 먹여줬어야 하는건데...'
다음으로 두 번째 칸으로 향한다. 약의 흔적은 없었다.
'제발.... 제발...!'
다음으로 가장 윗 칸을 뒤진다.
"부스럭"
'이건...!'
종이봉투의 질감과 소리다. 급하게 그것을 집어올린다.
[U-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찾았다!.....아...."
순간 환호하던 유우카의 목소리가 급히 가라앉는다. 선생이 이를 악물고 살아가기 위해 먹는 이 약을 찾아낸 것이 뭐가 그리 기쁜 일인가. 오히려 슬퍼하고 분노해야 할 일이었는데.
'내가 미쳤지...'
다시, 천천히 봉투를 잡는다. 그러나 유우카는 다음 순간 또 다른 위화감에 휩쓸린다.
'약이.... 말도 안 돼...'
그리고 다음 순간, 유우카는 그제서야 첫 번째 칸의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이내 그 자리에 주저앉고야 만다.
"아.... 안 돼.... 안 되는데 이러면...."
~~~
결국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멀쩡한 정신으로 이번 화를 올리고 월요일에 예정대로 교수님께 탈곡당하러 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매를 먼저 맞느냐 나중에 맞느냐의 차이겠지만 어쨌든 성공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월요일의 일은 월요일의 제가 알아서 해주겠죠 뭐
진행을 하다 보니 아오이가 계속 빌런행동을 하는 캐릭터로만 그려지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립니다. 물론 어느 집단 어느 공동체를 가든 꼬장꼬장한 FM은 간혹 악역을 맡기도 하지만 아오이는 지금까지 2번이나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미 공식에서도 최종편, 그리고 토끼 4장의 아오이의 모습을 보신 분들께서는 조금이나마 위화감이 덜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소모하지는 않을 생각이고요, 다른 활용방법도 여러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 인생이라는게 쉽지 않습니다. 요 며칠 기분이 이상하리만치 좋았던 것이 전조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하게 행복한 일이 있으면 그냥 마음 놓고 좋아하기보다도 '세상이 또 무슨 나락에 나를 집어던지려고 이렇게 아주 찰나를 행복하게 만들지'라며 의심하는 것이 먼저가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혹자는 그 찰나의 행복을 맛보기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견딘다고는 하지만 저는 요즘에 그게 퍽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작년에는 이상하리만치 일이 풀리지 않아 사주를 보러 갔는데 분명 올해는 더 좋아질 거라고 했단 말이죠. 아무래도 사주도 믿으면 안 되나 봅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다음 화는 2차 세미나 준비로 인해 언제 올라온다고 확답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이번 주중에 올라오도록 노력하겠다는 불확실성 담긴 공약으로밖에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2차 세미나 뒤에는(월요일 교수님께 좀 덜 탈곡된다는 전제 하에) 진도를 팍팍 뺄 수 있을 예정이므로 그 때 가서 벌충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말이네요. 요즘 이 동네는 무슨 축제다 뭐다 해서 많이 시끄럽습니다. 이번엔 무슨 막걸리 축제를 한다는군요. 가서 한 사발 퍼먹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현생이 바쁨이 아쉽습니다. 여러분들만은 주말을 맞이하여 잠시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가지실 수 있길 고대하겠습니다. 그럼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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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 아오이가 나쁜 의도로 그러는 것도 아니니 별 수 없지...

바로 그 지점이 아주 맛도리가 될겁니다
유우카도 그렇고 린도 그렇고 저 사실 아는 애들도 보고 있으면 뭔가 슬퍼
굳이 묘사를 하자면 마치 터질 것 같은 물풍선을 아슬아슬하게 잡고 있는 모양새나 다름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어떻게 보면 총학생회가 트리니티를 뛰어넘는 음습함을 보여주는 것 같단 말이지 심지어 사석에서는 다 친한 애들이 저러는 걸 보면 뭔가뭔가임...
현실 대한민국 정치의 때가 순수한 학생들한테 묻은 것 같아서 항상 저런거 보면 기분이 안좋음,,
어쩌다보니 음습함을 연출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보다도 하나의 연방정부 역할을 하는 총학에서 공과 사를 명확히 구별하는 '이상적인 공무원'의 모습을 구현하고자 했던 부분이 컸습니다. 근데 다시 읽어보니 진짜 정무적인 판단에 다들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쨌든 오늘도 재밌게 봤습니다 이 글이 올라오는 날은 항상 행복하게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아오이가 최종장 때도 그렇고 진짜 악의가 없다는게 알아서 더 비참하네...
하지만 거기서 타협을 하지 않는 것이 아오이의 캐릭터성이겠죠
니코가 다쳐서 오토기가 오니까 기분이 좋아졌어... 난 쓰레기야...
선샌니 방금 개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