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 밖으로 나온 게 언제부터였더라.
건물 사이에 답답하게 끼어 있는 듯한 하늘을 멍하니 올려보며 시로코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대로 있다간 답답해 죽을 것 같았던 감정은 확실히 기억나긴 했다.
방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데서 나온 답답함이 아닌, 그 안에서 찌질대고 있어봤자 선생이 돌아올 일은 없다는 걸 알아버려서 였을까.
설령 그래서 밖으로 나온다한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뭐란 말인가.
그냥 거창하게 포장할 필요 없이 답답해서 나온 거 아닌가.
선생님을 구하지도 못한주제에뭐잘한게있다고뻔뻔하게깨끗한공기를마시려해감히-
"윽, 우욱...!"
순간 구역질이 치솟아 벽을 짚고 어지럼증이 가실 때까지 버텨야 했다.
뭘 제대로 먹은 기억도 없는데도 기어코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 질척거리는 액체가 입술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흐릿한 시야 안에 들어왔다.
속에 든 것을 전부 쏟아내고 소매로 입 주변을 슥 닦은 시로코는 비틀거리며 골목 깊숙히 들어갔다.
사람들이 많은 도로변은 안 된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시선 하나하나가 자신을 책망하며 찌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거기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해-
그런 생각으로 호시노에게 억지를 부렸고, 총학생회에서 개최한 비상대책회의까지 참석했지만 결과적으론 최악의 선택이 되어버렸다.
차원을 넘어갈 방법 따위는 없었고, 선생을 잃어버렸다는 죄악감만 연거푸 자극당해 발작까지 일으켰고, 깨어보니 아비도스 고등학교의 보건실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자신의 자취방에서 짐을 한가득 가져온 호시노는 자취방 근처에 재수 없게 폭발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구할 수 있는 짐만 간신히 추려서 나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평상시처럼. 하지만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채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자신이 지금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지...... 사실 그건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일상에 들어와 소중한 동료들의, 자신의 공간에 새로운 빛을 가득 채워준 사람을.
손이 닿지도 않는 가슴 속이 괜시리 간질거릴 때마다 자전거를 끌고 우연히 들린 척 샬레로 갈 때마다 피곤한 낯을 가리려는 듯 따뜻하게 웃던 얼굴이.
그리웠다.
그리워서 미칠 것 같았다.
더 이상 자책하며 흘릴 눈물도 없을 정도로 말라버려 쓰라리기만 한 두 눈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그리웠다.
언젠가부터 자신이 선생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것이 존경할만한 어른에 대한 동경인지, 여자가 남자에게 느끼는 연모로서의 감정인지는 몰랐다.
사실은 제대로 마주하게 되면 왠지 돌이킬 수 없게 될 것 같다는 직감으로 회피했어도, 어느 쪽이든 자신이 선생을 좋아한다는 건 변함 없으리라 생각했다.
색채의 침공 당시 처음 만난 다른 세계의 자신이 선생의 죽음을 언급했을 때, 눈이 돌아갔을 정도로 격한 분노가 치솟아올랐던 것도.
동시에 잃어버린다는 것에 대한 공포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느낀 것도.
전부 그 때 겪은 감정의 파도였다.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야 했을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 지금의 자신이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게 사정없이 내리치고 있는 것이었다.
텅-
텅그르르......
머리를 친 빈 깡통이 쓸데없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굴렀다.
깡통을 멍하니 내려보던 시로코는 충격이 느껴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케반들이었다.
문득, 부원들이 요 근래 외부에서 아비도스를 습격해오는 빈도가 늘었다는 걱정을 하는 걸 귀동냥한 게 기억났다.
나를 노리는 건가. 아니면 나를 명분삼아 학교에 훼방을 놓고 싶은 건가.
깡통을 던진 듯한, 자신에게 적대적인 눈빛을 보아 이번 경우엔 전자인 것으로 보였다.
뭐라뭐라 떠드는 소리가 멍하니 울린다.
선생님, 선생님의 이름만은 확실히 들렸다.
자신을 욕하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냥 자리를 피하려 발걸음을 돌렸던게 오히려 그들을 자극했던걸까.
그리고, 그 와중에도 본능은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리 많지 않은 수의 스케반들 손모가지 꺾는 건 원래부터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시로코는 평소 컨디션의 반도 올라지 않은 상태로도 순식간에 반격해 전부 쓰러뜨렸다.
그렇게 적당히 상대하고 자리를 피하려 했는데.
'선생님을 죽인 살인자가!'
마지막까지 남아 저항하던 헬멧단 소녀의 말이 어딘가에 꽂혀 무언가를 끊어냈다.
뭐가 살인이라는 건진 몰랐다.
그냥 악에 받혀 되는대로 내뱉은 말이었겠지.
그러나 그게 무슨 의미였든간에.
정신을 차리고보니 자신은 상대의 헬멧이 깨져 안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때려눕혀버렸다.
그리고,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증오와 저주가 섞인 습격이 언제나 시로코를 덮쳤고, 시로코는 그것에서 오는 분노, 후회...... 무엇이든 연료로 삼아 태우듯이 덤벼드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때려눕혔다.
그리고......
"끔찍하네요."
뒤에서 들려온 말에 시로코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뭔가 꿈을 꾼 것 같은 아득한 느낌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딱히 달라진 건 없었다.
자신을 습격했...... 아니, 자신이 습격해서 전부 때려눕힌 스케반들.
거기서 시로코는 위화감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복장이라던가 주변 환경이라던가 다른 느낌인데.
"사, 살려줘...!"
바로 발 밑에서 들리는 소리에 내려다보니, 피투성이가 된 불량배 하나가 소리가 들린 쪽을 향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이 미친년이,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 갑자기 쳐들어와서! 히, 히이익!!!"
자신과 눈이 마주친 불량배 소녀가 자지러질듯한 비명을 지른다.
공포와 더불어 분노가 깃든 눈망울.
나 저거 무슨 뜻인지 알아.
어떤 의미로 보는 건지 알 것 같아. 너무 자주 봤거든.
너 때문이야.
너가 다 망쳐놓은 주제에 왜 우리한테 화풀이나 하고 앉아있냐는-
탕!
퍽-
"커, 억."
그 뒤로 연거푸 방아쇠를 당기는 시로코의 눈빛은 공허할 뿐이었다.
탕! 퍽-
탕! 퍽-
탕! 뻐억-
타앙-!
마지막 총알은 자신이 쏜 게 아니었다.
자신의 발치에 쏴진 총격에 튄 흙과 불씨에 기계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려던 손이 잠시 멈칫했다.
"머리에 대고 그렇게 쏴대면 사람 진짜 죽는답니다?"
"......그쪽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저라도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지키고 있거든요. 누구와는 다르게 말이죠."
빈정거리는 소리에 벼려진 감정의 날이 그쪽으로 향한다.
자신을 노려보는 눈에는 지금까지 쓰러뜨려온 적들 못지 않게 강한 증오와 원망이 담겨 있었다.
* * *
선생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은 소문도 아니고 총학생회 명의를 통해 긴급 속보로 전해진 사항이었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명백한 현실을, 마음의 준비도 할 새도 없이 때려박는 폭거에 무너져내린 것은 시로코 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선생의 실종에 당황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몇몇은 아예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와카모의 경우는 그래도 현실부정의 단계는 아니었지만.
재액의 여우로 불리던 범죄자이자 선생이 신경쓰던 학생이던 그녀는 자신의 편이었던 어른이 사라진 순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한낱 범죄자인 자신이 선생을 찾기 위해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뒷골목에서 선생의 흔적을 찾는답시고 쓸어버렸던 건.
자신조차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지 않는 거짓말로 스스로를 속여가며 선생이 칭찬해줄 '뭐라도' 한 것은, 그러지 않는다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그녀는 오늘 연모하는 이를 수렁으로 밀어넣었을 터인 원흉을 마주해버렸다.
"요 근래 뒷골목에선 스케반 무리들에 쳐들어가 만신창이를 만드는 괴한의 습격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었죠. 당연히 제가 하던 짓거리를 가리키는 걸로 알고 대수롭잖게 넘겨왔습니다만...... 제가 폐인이 되었다고 온 키보토스에 소문난 당신보다 실적이 뒤쳐질줄은 몰랐네요."
시로코는 가면 너머로 번들거리는 증오 어린 시선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아비도스는 무슨 목적으로 들어온 거야, 재액의 여우. 스케반들이 학교를 습격한 것도 네 짓거리야?"
"착각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네요. 당신이 이 며칠 사이 자경활동이랍시고 해왔던 짓거리가 제가 먼저 했던 일이었으니까요. 아니, 당신과 비교되기도 소름 돋을 정도랍니다? 저도 여기저기 많이 때려잡고 다니긴 했지만 그쪽처럼 피를 보진 않았으니까요. 정말 미치기라도 한건가요, 당신?"
"자경활동 같은 거...... 한 적 없어."
"그렇겠죠. 그냥 화풀이에 불과하겠죠. 서방님을 그렇게 보내버린 당신이라면."
무언가 걸리는 느낌을, 애써 밀어넣었다.
자신을 향한 적대감은 익숙했으니까.
도저히 익숙하고 싶지 않은 시선이었지만, 자신은 그런 대우를 받아도 싼 위치에 있었으니까.
그러고보니까 저 사람, 선생님 보고 서방님이라 부르고 다녔던가.
괜히 기분 나쁜 예감에 바다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기분 나빠 무심코 쏴버린 건...... 아니, 전부 옛말이다.
지금의 시로코는 별로 친해지고 싶지도 않은 누군가와 대화하고픈 기분이 아니었다.
아직도 할 말이 남은 와카모 대신 시로코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다고 서방님은 돌아오지 않아요."
"나도 알아."
"아무 의미도 없는 짓거리만 하는 거라고요. 그냥 당신 속 편하자고 하는 짓이겠죠. 뻔뻔하게도."
"......알아."
지끈거린다.
뾰족한 무언가에 찔리는 것처럼 아려오지만, 애써 무시하고 자리를 피하려 했다.
"당신이 샬레에서 지금 불량배 때려잡는 기세의 반의 반만 더 노력했어도, 서방님이 그렇게 끌려갈 일은 없었을텐데 말이죠."
"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제에."
어째서인지.
거기서는 발걸음이 떼지지 않았다.
와카모의 가면에서 꾸며진 비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서 뭘했든 상관 없겠죠. 결과는 같으니까. 결국 당신이 서방님을 버린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무, 슨...... 헛소리야."
"서방님이 끌려갈 때 사실 손가락 빨고 구경만 하고 있던 거 아니냐고 물었답니다. 정신이 나가서 귀까지 멀어진 거면 다시 들려드릴까요? 당신은 서방님 바로 옆에 있던 주제에 아무것도 못한, 있느니 못한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학생이라고요."
"네가...!"
무언가, 다른 쪽으로 찔러들어온 자극에.
꺼졌다고 생각한 불꽃이 튀어버린 시로코가 감춰뒀던 늑대의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핏발 선 눈의 안광에서 저릿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세가 피어오른다.
그것이, 와카모는 오히려 기뻤다.
"네가 뭘 알아...! 거기 있던 게... 너였다고 달라졌을 것 같애...!"
"아니었겠죠. 네, 당신은 운이 안 좋았을 뿐입니다. 근데 어쩌라고요? 사람 하나 나락으로 보내놓고 운 없었다고 하면 문제 끝나나요? 서방님이 죽어!! 시체가 됐는지도 안 됐는지도 영원히 모를 수도 있는 짓을 저지르고도 감히 그리 뻔뻔할 수 있냔 말입니다!!"
코사카 와카모.
통칭 재액의 여우. 키보토스에서도 손꼽히는 범죄자 일곱 죄수들 중 하나.
알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선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공허함과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시로코와 같은 짓을 해왔던 자신에게나 할 말인 것을.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그저 억지스러운 말일 뿐인 걸.
하지만 그게 지금, 지금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어쩌라고?
눈 앞의 저 무쓸모에 가증스러운, 자신이 사모하던 이를 독점하는 척한 주제에 제대로 지키지도 못한 '년'에 대한 증오를 태우지 않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천하에 쓸모없는데다 무책임하기까지. 당신은 사실 서방님의 위중은 안중에도 없는 거에요. 그냥 본인이 괴로우니 날뛰고 다니는 짐승새끼나 다름 없다고요."
"아니야."
"당신은 서방님을 배신한 겁니다. 당신을 믿은 서방님의 기대를, 학생에 대한 믿음을 배신한 거나 다름 없다고요!!!"
"아니야...!"
"내가 서방님이었다면 당신만 생각하면 무덤 속에서도 이가 갈릴 겁니다. 상상해보셨나요? 간절히 뻗은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상대가 바로 코 앞에 있었는데, 그거 하나 못 잡아서 끌려 들어간 꼴이라니!"
"아니야아아아아!!!!!!!!!!!"
뻐억-
빠각!!!
쓰고 있던 가면을 부숴버릴 정도의 주먹에도 와카모는 피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거기서 버티고 서야만 상대의, 저 증오스러운 낯짝에 똑같이 한 방 먹여줄 수 있지 않는가.
서로에게 크로스 카운터를 꽂고 맞은 두 소녀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깨진 가면 파편이 박혀 피가 나는 것도 아랑곳않고 와카모는 검날이 달린 총을 악에 받혀 휘둘렀다.
날카로운 바람이 와카모에게 달려들던 시로코의 볼을 스치고 지나갈 때, 그녀는 아랑곳 않고 자신의 총을 견착도 않고 한 손으로 쥔 채 방아쇠를 눌렀다.
엄청난 악력으로 쥐었지만, 달려들 때 균형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에서 악력이 약해진 총끝에서 눈 먼 총알들이 연거푸 튀어나와 근거리에 있던 와카모를 난도질하듯 때렸다.
와카모는 결정적인 총알이 가슴팍에 박히기에 앞서 시로코의 배에 총끝을 겨누고 발사했다.
신음과 폭음, 그리고 비명.
신음은 온 몸에 연속된 공격을 얻어맞은 와카모의 것이었고, 남은 것들은 신비가 담긴 총탄에 직격돼 벽에 박힐 정도로 세게 날아간 시로코의 것이었다.
시로코가 첫번째로 일어서려던 시도에 실패하고 쓰러져버렸을 때, 와카모는 그녀의 몸상태가 생각보다도 정상이 아님을 눈치채고 승리를 확신했다.
그 작디작은 틈에서, 시로코는 자신의 드론을 조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순식간에 전장으로 하강한 드론에서 전탄이 발사되고, 와카모는 얼굴을 찌뿌리며 뒤로 뛰쳐 물러났다.
한 발 한 발이 큰 충격을 입힐 수 있었지만, 그녀에겐 피하기 어려운 공격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이 그녀의 두 번째 방심.
몇발의 초탄이 두 소녀 사이 지면에 박혀 흙먼지가 일어난 틈을 파고든 시로코가 드론의 튀어나온 부분을 잡더니, 그대로 둔기처럼 휘둘러 와카모의 머리를 몸에서 분리시킬 기세로 후려쳤다.
빠악-
콰앙!!
쇠와 뼈가 부딪히는 듯한 둔탁한 소리와 날아간 와카모가 시로코가 그랬던 것처럼 반대쪽 벽에 처박혔다.
곧바로, 아무렇지 않게 시로코를 노려보며 몸을 일으키는 그녀의 몸에서 콘크리트 부스러기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시로코는 와카모가 반격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고, 와카모는 시로코가 다시 공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정신은 전부 배재된 채, 오로지 상대에 대한 증오를 불태우며 두 사람은 격돌했다.
격발음, 타격음, 무언가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먹먹해진 귀에 울렸다.
엄폐할 곳 따위 없는 빌딩숲 깊은 곳의 공간.
오로지 상대에게 총알 한 방, 주먹 한 방 더 꽂아넣는 것에 몰두하는 둘은 애초에 은폐 생각 따위 염두에도 두고 있지 않았다.
철컥, 철컥!
신의 장난이라는 듯이 두 사람의 방아쇠에서 공허한 걸림음이 동시에 울린 순간.
와카모는 주저 않고 자신의 총을 던졌다.
햇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나는 칼 끝이 빛의 원을 그리며 맹렬히 회전했고, 그 기세에 순간 당황하면서도 시로코는 자신의 총을 둔기처럼 휘둘러 와카모의 총을 쳐냈다.
그러나 제대로 먹지도 못해 힘이 빠질대로 빠진 시로코는 무기를 놓쳐버렸고, 방어태세를 갖출 틈 따위 없이 훤히 열린 그녀의 배에 와카모의 주먹이 정통으로 꽂히려는 순간-
"응, 둘 다 적당해 해둬."
콰당탕!
시로코와 와카모는 동시에 무언가에 잡힌 채 땅에 엎어져버렸다.
"이... 이이익...!"
"응, 그 정도 힘으론 못 빠져나와. 그냥 포기해."
익숙한 목소리에 움찔한 시로코와 달리, 와카모는 자신을 누르는 손아귀를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며 경악하고 있었다.
키보토스의 대악당으로 살아가며 수많은 승리만큼 적지 않은 패배 또한 겪어왔다.
그러나 이 정도로 단번에 제압당한 것은.
그 이전에 이 정도로 기습의 기척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은 처음이었다.
'...무슨 힘이...! 아니, 힘 뿐만이 아니라 이건... 대체......!'
강자라서 알 수 있는 상대의 격.
저항하려는 의지를 압도하는 기운에도 와카모는 이를 악물고 어떻게든 저항했고, 결국 습격자는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들어야 했다.
"응, 악의는 없지만 잠깐 진정...... 아닌가, 있었나? 애초에 이 녀석 선생님을...... 응, 상관 없겠네 그럼."
퍽.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게 저항이 끝났다.
와카모의 의식이 완전히 날아가버린 것을 확인한 시로코는 와카모를 가격하느라 잠시 떼었던 다른 쪽 손으로 잡고 있던 자신을.
와카모와는 달리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엎어진 또 다른 자신을 내려다봤다.
원래도 그랬지만.
"응. 정신 좀 차려봐, 나."
"......"
비척비척 일어서는 어린 자신에게 이전까지 넘쳐 흐르던 생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참으로 작았다.
작아보였다.
어쩌면, 자신의 모습이 저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던 무언가가 겹쳐지는 느낌에 시로코는 무심코 숨을 삼켰다.
어린 자신의 눈에 담긴, 모두를 잃고 떠돌던 시절의 자신이 가졌을 죄책감, 피로함, 두려움...... 두려움?
"응, 저기...?"
무심코 당황해서 부르는 말에, 땅을 짚은 시로코의 손의 미세한 떨림이 온 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이전에 호시노로부터 그녀의 발작 사실을 전해들었던 것이 기억나서, 시로코는 황급히 어린 자신의 어깨를 붙잡았다.
"진정해, 나. 괜히 너를 탓할 생각 따윈 없어."
"어째서?"
"응?"
"어째서 그런 생각이 없는 건데?"
"......응?"
"나, 나는."
순간 대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해 눈을 껌뻑이던 시로코는, 고개를 든 어린 자신의 눈에서 공포와 더불어 혼란이 뒤섞인 시선을 읽어냈다.
"나는 선생님을 구하지 못했는데......"
......아아, 그런건가.
시로코는 어린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인지 깨닫고 속으로 탄식을 내뱉었다.
동시에, 어째서 그걸 지금까지 자각하지 못했는지 살짝 의아해지기도 했다.
지금 이 세계의 자신이 겪고 있는 악몽은,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이 겪은 것과 다르지 않을테니까.
선생 뿐만 아니라 호시노, 세리카, 노노미, 아야네...... 소중했던 모든 이들을 잃어버린 자신의 지옥이, 얄궂게도 이 세계의 자신에게 재현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 세계의 자신이 고통받고 있는 죄책감의 원천은 선생 뿐만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자신에게도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아직도 악몽 같은 기억의 재현을 보는 것이나 다름 없는 자신은, 어째서 아무렇지 않은 것인가.
큰 시로코는 그 와중에도 살짝 당황하게 되었다.
방주에서 처음 이 세계의 자신과 선생을 마주 했을 때는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애써 무시하고 밀어내다가, 이 세계의 대책위원회를 보자마자 끝끝내 무너져내린 금 가고 부서진 감정의 폭풍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세계에서 저지른 죄악의 업보를 어찌 잊고 살겠는가.
그런데도 지금 그때보다도 망가져 있는 어린 자신을 보는 감정엔 그런 것은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쓰러뜨린 와카모보다도 이 세계의 자신을 원망해야 할 이는.
그럴 권리를 지닐 이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일수도 있음에도.
그것을 지금 어린 자신으로부터 지적받기 전까지 자각하지 못했다는 것은.
"응, 상관 없어."
"......뭐?"
"너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따위 들지 않아."
죄에서, 슬픔에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자신을 얶매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완전히 찾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족쇄처럼 가지고 다니던 동료들의 유품을 정리한 이래.
수렁에서 빠져나와 한 발을 내딛은 자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성장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희망이 있는 쪽으로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버렸다.
'세상에 동일한 존재가 있어서는 안 되'는데도 '선생님'의 의지를 기꺼이 이어받아, 자신을 이 세계에 받아준 선생이 격려해준 것처럼......
"진정하고 들어, 나. 선생님을 구할 방법을 찾았어."
"......뭐?"
그저, 그녀의 고통을 끝내주고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며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게 하고 싶을 뿐이었다.
"당장은 아니야. 하지만 할 수 있어. 내 힘과, 선생님이 쓰던 싯딤의 상자의 힘. 그리고 지금 밀레니엄의 전지가 시도하고 있다른 다른 세계선과의 연결......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합치면, 응. 분명 찾을 수 있어. 선생님을-"
"구해줘."
언제 주저앉아 있었냐는 듯 벌컥 일어난 어린 자신의 손에 팔을 잡혔다.
와카모와 싸우는 과정에서 없던 힘도 빠진 듯 애처롭게 파들거리는, 악력이라곤 느껴지지도 않아 간신히 버티다시피하는.
그런 상태로 눈 앞에 닥친 최초이자 최후의 희망에 기어서라도 닿으려는 눈으로.
"선생님을 구해줘."
"응, 구할 거야."
"할 수 있지? 응? 너라면 할 수 있는거지?"
"할 수 있어. 할 거야."
"제발. 제발 구해줘...!"
시로코가, 온 힘을 쥐어짜듯 외쳤다.
"네가... 나보다 강하잖아......!"
"...!"
"그러니까, 제발......"
빛조차 찾지 못하고 억지로 일어나 헤메기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희망을 마주한 순간, 힘이 빠져 무너져내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손끝을 그곳에 뻗으며.
같은- 사실은 그것보다도 더 큰 고통을 겪으며 너무 빨리 성장해버린 다른 세계 자신의 품에 얼굴을 묻고, 두 눈으로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오는 무언가를 쏟아내며.
"제발 선생님을 돌려줘......"
어째서 구해주지 않았냐고 원망받아도 좋아.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폐급같은 학생이라고 매도당해도 좋아.
선생님을 이 세계에.
다시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제발......"
"응, 걱정하지 마."
울음을 꺽꺽 쏟아내는 자신을 안아주며, 시로코는 부드럽게 말했다.
"꼭,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자신에게 말해주듯이.
* * *
"......선생님."
"응, 쿠치나시 양."
우선, 아비도스 고등학교로 돌아오고.
회담한 내용을 정리하러 간 아야네에게 양해를 구하고 유메를 옥상으로 데려온 선생은 사막의 차디찬 밤바람과 여기로 올라오며 탄 따끈한 커피잔의 온기를 느끼며 대답했다.
당연했지만, 유메의 손에도 자신이 탄 커피잔이 들려 있었다.
그 온기마저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던지 차가운 태도로, 그러나 동시에 머뭇거리는 눈치로. 유메가 말했다.
"뭐라고 말하셔도 받아들일게요."
"응?"
"할 말이 많으실 거란거 알아요. 전부 말하셔도, 아니. 전부 쏟아내셔도 괜찮아요. 당신은,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 저는...... 그럴만한 짓을 했으니까요."
"......그러면."
심각한 유메의 태도와 달리, 뚱한 표정으로 뒤통수만 긁적이던 선생이 조심스레 웃으며 말했다.
"네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네?"
"생각해보니까 여기서 내가 학생들 상대로 제대로 된 상담을 한 기억이 없는 것 같아서."
선생으로서 직무유기나 다름 없는 짓인데 말야.
라고 유메 귀엔 농담 같이 안 들리는 소리를 내뱉으며 선생은 말을 이었다.
"전부...... 는 아니더라도. 여기서 좀 풀고 가자, 우리."
그렇게, 이 세계에서의 첫 상담이 시작되었다.
* * * * *
하와와......
연약한군대갔다온성인남성블붕이는 여자들끼리 찐으로 긁어대는 대화 같은 거 쓰기 너무 힘든거시에요......
더워서 그런지 원래 안 돌아가던 머리가 더 안 돌아가서 쓰는데 진짜 힘들었다......
와카모 심리묘사 밀도도 저것보다 좀 더 빽빽하게 쓰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지금은 이게 한계인 것 같다.
안 그래도 유메 심리묘사 구멍 난 것도 메꿔야 하는데......
다들 정말 더위 조심하시길......
댓글 14
캬
으 캣파이트 너무 무서워요
제발 더 주세요
어쩌다보니 유메와 선생의 관계가 데자뷰처럼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