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XX월 XX+29일, 11:00
선생 치료 시작 29일 째
심야 작업자들이 있다면, 그들만이 깨어있을 시각. 아비도스와 맞닿은 블랙마켓 변두리 어느 술집. 너무나도 이질적인 두 남자가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큭큭...정말로 선생이 제게 먼저 연락을 주다니. 험한 꼴이지만 살아있을 가치는 조금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러게. 나도 네 깨진 대가리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놓이는군."
진심이었다. 꿈속에서의 검은 양복은 분명 머리가 봉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체로 나 자신이 꿈 속에 있음을 알려주는 토템이자, 동시에 다음에 일어날 일들이 끔찍한 악몽이었음을 알려주는 전조곡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걱정 정도는 해줄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다른 쪽 머리도 뚫리고 싶다고? 네 머리를 깨버린 아이가 아직 이 세계에 살아있다는걸 아는 사람이 왜 그러신대?"
"큭큭... 농담하실 여유가 없다는 것 정도는 잘 알겠습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 역시 사실이다. 지금으로서는 내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안 좋은 것이라면 배제할지, 안고 갈지를 빠르게 결정해야 한다. 이런 감정이 드러나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저를 굳이 먼저 보자고 하신 이유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어른의 카드."
"네?"
검은 양복은 이 말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눈에서 비치는 흰 빛에 약간의 떨림이 보인다.
"어른의 카드를 사용한다면, 분명 대가를 치른다고 했었지?."
"벌써 그것도 꽤 시간이 되었군요? 분명 그리 말씀드렸죠."
"그렇다면 그 '대가'라는게 정확히 어떤건지 설명해줘."
".....대가...말입니까?"
"... 대가에 대한 대가를 치뤄야한다 뭐 이런 뉘앙스로 들리는데?"
"크크큭... 좋을대로 생각하시죠. 대가라... 어른의 카드에 대한 대가..."
"내가 줄 수 있는 대가는 이 세계의 시로코가 너의 남은 반쪽 머리를 박살내지 않는다는 것...이랄까..?"
"선생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그러실 수 있었다면 진작에 그러셨겠죠. 아비도스의 호시노를 데리고 온갖 실험을 자행하려 한 '나쁜 어른'이라고 말입니다. 그럼 다른 세계의 죽음의 신이 저를 박살내기 전에 이미 저는 박살나지 않았겠습니까?"
잠시 숨을 고른 검은 양복은, 어느덧 바닥을 드러낸 맥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는 말을 이어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저로써도 잘 모른다'가 되겠습니다."
"... 사장님, 여기 생맥 1500cc 한 잔 더 주세요. 닭도 한마리 더 튀겨주시고요."
"선생? 제가 술을 더 주문한 적은 없습니다만...?"
"먹고 싶은거 다 시켜."
"호오... 확실히... 게마트리아 해산 이후에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하던 빈도가 훨씬 줄어들긴 했습니다만... 그나저나 이렇게까지 여유가 없을 까닭은 또 뭡니까? 평소의 선생답지 않습니다. 뭐, 물론 그것이 학생과 연관되어 있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것이 어떻게 보면 선생답다 할 수도 있겠군요. 크크큭..."
"하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큰 문제라곤 없었을텐데요."
".........."
"...문제가 생기셨군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저쪽에서 패를 까지 않는다면 이쪽의 패를 한 장이라도 먼저 오픈하고 상대의 반응을 지켜보는 것이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대답은, '모릅니다'입니다. 선생께서 주신 대가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어른의 카드를 사용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 모든 사례에 동일히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범주화'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나타날 증상은 그럼 너도, 나도 모른다는 말이군."
"그것이 관측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한숨을 내쉰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명확해지지 않는다. 지금의 내 상황이 진정 어른의 카드로 촉발된 문제인지 여부를 명확히 가려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행동에서 어른의 카드가 어떠한 변수가 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건녀편의 검은양복도 생각보다 표정은 심각했다. 게마트리아는 비록 잠정 해산 상태이나, 최소한 검은양복에게는 선생을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선생이 보여주었던 파급력을 생각한다면 되려 유화적으로 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큰 위협'에 대항할 조커로서 보존할 가치 역시 충분했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고, 그가 키보토스에서 보인 행적으로 인해 생긴 그에 대한 '호기심'이 더더욱 지금의 그가 다시 '그'로서행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라... 확실히 흥미롭군요. 허나 그런 연유로 저까지 찾아올 정도라면 분명 예사롭지 않은 상황일 터, 그럼에도 결정적인 카드는 아직 열지 않고 침묵한다라... 꽤나 협상가로서의 수완도 뛰어난 것 같습니다. 크큭...'
한숨과 침묵을 먼저 깬 것은 검은 양복이었다.
"다만..."
"...?"
"그것을 범주화하진 못한다 한들, 각각의 사례들을 통해 무엇인가를 도출해낼 수 있으실 것이라 생각하신다면 제가 그동안 보아온 것들을 말씀드릴 순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어느새 앞에 놓인 맥주와 통닭으로 시선이 향한다.
"그리고 이 술값, 안주값 정도는 해드려야하지 않겠습니까? 큭큭..."
~~~
"제가 보아온 어른의 카드를 사용하던 사람은 여럿 있었습니다. 특히나, 그것이 만들어내는 작은 기적, 때론 인과율마저 무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물건을 손에 넣은 사람들이 그것을 활용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었죠."
"처음으로 보았던 사람은 운동선수였습니다. 그는 어른의 카드를 통해 자신의 운동능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데 성공했고, 은퇴할 때까지 돈과 명예를 모두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파였을까요, 은퇴한 지 2년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납니다. 가족이 없어 그의 돈과 재산은 경매에 부쳐졌고, 세상은 너무도 빨리 그를 잊어버리고 맙니다."
"다음으로는 한 군인이 어른의 카드를 손에 넣습니다. 그 군인은 자신의 아픈 할아버지가 너무나도 걱정되었습니다. 자신이 전역하기 전에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죠. 그는 인과율을 거스르는 힘으로 할아버지의 수명을 늘리기로 했죠. 그 효심에 감응한 것일까요, 할아버지는 게마트리아가 관측한 예상 수명보다 무려 7년을 더 살다 떠났습니다. 손자가 전역하고, 임종을 지키기엔 충분한 시간이었고요. 그러나 어른의 카드는 그 수명을 건강하게 보내는 것까지 허락하진 않았습니다. 죽음을 앞둔 병든 늙은이가 받는 고통을, 그저 7년이나 연장했음을, 그는 할아버지를 화장하고 나온 부속물 중 심장에 박은 무수한 다발의 인공혈관을 보고서야 깨달았습니다. 그 뒤로 군인이 어떻게 했는지까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매일매일을 기일처럼 보내다 결국 쇠약해져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만 무성했습니다."
"...어째 하나같이 무섭고 끔찍한 이야기 뿐인데."
"이런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당신과 같은 선생이었습니다. 그는 어른의 카드로 학생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마치 당신을 연상케 하는, 성심을 다한 가르침은 뭇 학생들의 존경을 받기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는 알아버렸죠. 어른의 카드가 있다면, 모든 것을 선물해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어느덧 성심은 어른의 카드면 뭐든 된다는 마인드가 되어버렸고, 학생들은 그의 선물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더는 예전과 같은 성심을 느끼진 못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선생이 선물한 것이 아닌, 어른의 카드가 선물한 것이죠. 결국 어느 순간 더 이상 학생들을 위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권고사직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그래도 운이 좋았죠. 그 만능의 카드를 온전히 가지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엄청난 부를 과시하고 다녔다는 후일담이 남아있으니까요."
"...그것도 배드엔딩 같은데."
"그렇습니까? 뭐, 일단 목숨은 붙어있으니 상대적으로는 해피엔딩 정도로 해두는 건 어떨런지요, 크큭"
"아무튼, 듣다보니 무언가 이상한 것 같은데."
"무엇이 말입니까?"
"운동선수의 가장 큰 자산은 체력이었어. 그리고 자신의 피지컬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돈과 명예를 가졌지. 그러나 그걸 온전히 즐긴 시간은 채 2년이 되지 않았을거야.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치열하게 살았어야 했으니. 그리고 죽어버렸지."
"군인도, 다른 선생도 마찬가지야.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혹은 갖기 위해 어른의 카드를 사용했지만, 그 댓가로 자신이 가진, 혹은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을 이유가 되는 존재들을 빼앗아가는 것 같은데?"
"역시 선생은 저희 게마트리아에 들어오시기에 적합한 인물임에 분명합니다. 큭큭큭"
"반대쪽 머리도 날아가고 싶다고?"
"진정하시지요 선생, 아직 닭다리가 남아있잖습니까?"
"이럴줄 알았으면 술만 사주는 거였어."
"어쨌든, 선생의 문제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까?"
말을 마치고 그는 닭다리를 소금에 찍어 뜯기 시작한다.
"....아마도."
"어오...흐믜로우요."(오오... 흥미롭군요.)
"입에 있는건 좀 먹고 말해줄래?"
"아무튼 흥미롭게 되었습니다. 큭큭 그걸 해쳐나갈 모습도 기대하지요 선생."
~~~
20XX년 XX월 XX+30일, 01:00
선생 치료 시작 30일 째
"오늘은 즐거웠습니다."
"내 생각도 좀 물어봐줄래?"
"뭐, 선생께서도 의미없는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해답을 찾으신 것 같다고도 하셨으니..."
"그건 인정할 수밖에. 그것만은 고맙다."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선생, 요즘 이상현상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더군요. 데카그라마톤의 사도가 부활했다느니, 헤일로가 깨진 학생들이 보인다더니."
"뉴스에도 나오더군. 헤세드와 같은 공장들이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야. 헤일로 건은 아마 색채와의 결전 이후로 발생한 여파 같고."
"아무튼, 모쪼록 또 뵙기를."
검은 양복이 뒤돌아 어둠 속으로 사라지려는 그 때, 문득 하지 못한 말이 있어 그를 부른다.
"이봐."
"...네?"
"...분명 실례가 될 말인건 아는데 말야."
"...?"
"너 그 머리 당분간은 안 고치면 안되냐?"
"......??"
검은 양복의 표정은, 나를 만난 이후 가장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에 비견될 정도의 당황은 키보토스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하겠노라 말한 나를 보았을 때 정도가 아닐까.
"아니다. 실없는 소릴 또 해버렸군. 잘 가라."
"아직 저희가 선생을 이해하긴 먼 것 같습니다. 큭큭"
그렇게 진짜로, 검은 양복은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가 사라진 뒤에야 큰 한숨을 내쉰다.
"하아........."
~~~
20XX년 XX월 XX+30일, 02:30
선생 치료 시작 30일 째
사무실로 돌아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정리한다. 다행히도, 약을 먹는 중에는 술을 자제하라는 의사의 권고가 있어 술을 마시지 않았기에, 머리는 비교적 맑은 상태이다.
어른의 카드가 나에게 적용하는 기전이 있는지 여부는 여전히 미궁이다. 사람마다 그 특질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면, 나의 그것 역시 내가 그것으로 인해 본래의 나에서 일그러지고 뒤틀리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진짜로 나에게 어른의 카드의 여파가 영향을 미친다면, 정신이 쇠약해지는 지금의 이 상황이 어쩌면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하지만 어째서?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만드는 요소가 정신력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존재하게 만드는 기전이 정신력은 아니다. 그저 나는 선생일 뿐이고, 아이들에게 행복한 세계를 선물해주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어른일 뿐이다. 만일 정신력이라는 소재로 묶는다면 그것은 어디에나 묶일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다.
"선생... 아이들이 행복한 세계... 책임..."
그렇게 샬레의 사무실은 늦게까지도, 고뇌에 빠진 청년의 번뇌로 한동안을 계속 켜져있었다.
~~~
20XX년 XX월 XX+30일, 01:30
선생 치료 시작 30일 째
[이 통신에 접근할 권한이 없습니다.]
[복호화 코드 입력 완료. 무결성 검사중]
[54%.....61.%......79%.....88%......100%]
[무결성 검사 완료. 복호화 코드 이상 무]
[환영합니다. 사용자 'Black Suit' 님]
"내가 아는 당신이라면 이 시간에도 깨어있을 겁니다."
남자는 조용히 발신 버튼을 누른다.
[뭐지? 이 회선은 비상시에만 사용하는 회선일텐데, 혹시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군요. 다만 지금은 위급성보다는 신속성이 담보되어야 하는 일이기에, 부득이하게 이쪽으로 연락드립니다."
[그렇다고도라니... 만일 내가 개입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나는 가기 어렵네. 지난번에 바꾼 다리 부품이 그새 박살나버렸어.]
"저런, 형태는 별 의미가 없다고 하셔서 아무거나 주워왔는데, 괜시리 죄송스러워지는군요."
[어차피 원래 몸이었어도 슬슬 바꿀 시기가 되어서 큰 문제는 없다만, 그래서 무슨 일인가?]
"...선생에 관한 일입니다."
[...뭐? 선생과 접촉했나? 그에게 갈채를 받은건가?]
"그렇다기보다는, 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 오시기 어렵다고 하니, 이 이야기는 나중ㅇ..."
[말부터 해보게.]
"선생이, 저보고 '고맙다'라고 하더군요. 이제 좀 구미가 땡기시는지요?"
[...당장 가겠네]
한동안 블랙마켓에서는 목각인형이 한쪽 발로 콩콩거리며 뛰어다녔다는 괴담이 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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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XX월 XX+30일, 01:00
선생 치료 시작 30일 째
"아니다. 실없는 소릴 또 해버렸군. 잘 가라."
"아직 저희가 선생을 이해하긴 먼 것 같습니다. 큭큭"
악우인 두 사람이 헤어지는 그 시간을 목격한 이들은 생각보다 적지 않았다. 물론 대다수는 키보토스의 일반 시민들이었고, 개중 70%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다만 진정한 문제는 두 사람의 접선 장소는 아비도스와 인접한 곳의 술집이었다는 것과...
"...으헤, 이 아저씨가 뭔가 봐선 안될 것을 봐버린 것 같은데."
아비도스의 호루스가 두 사람을 정확히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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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양복 파트는 너무 어렵네요. 현생에 치여 살다보니 캐릭터 묘사를 어떻게 하지 고민하다가 그냥 나사빠진 게이마트리아가 된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됩니다.
여튼 마지막에서 보셨듯이 호시노는 선생과 검양의 회동을 일부지만 목격했습니다. 물론 둘이 나눈 이야기라곤 대가리 고치지 말라 수준의 잡담이었지만 적어도 선생이 검양을, 그것도 외곽 술집에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호시노에게 큰 동요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음 화는 일단 언제 올라올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사실 현생의 압박으로 인해 업로드가 늦었던지라... 일단은 이번 주말에 올리는 것으로 목표를 잡고 올려보겠습니다. 그래도 수요일이라는 약속은 지켜서 뿌듯하군요. 아무쪼록 행복하게 하루 마무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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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6


정말고 마워요

창작탭으로 올렸으니 살려만다오...

아니 누가 내 개추 뺏어감
헉
올렸다
뿅뿅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