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히메키 메루(16),
소속은 붉은 겨울의 지식해방전선,
직업은 만화가,
사람의 인생을 만화로 만드는 것(동인)을 주로 다룬다.
어째서 만화가가 만화가 아닌 글로 이야기를 전하는지 궁금한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해선 가장 프로스럽지 않으면서도 가장 프로스러운 답변을 남기겠다.
슬럼프가 왔다.
슬럼프라는건 종종 오는 법이지만 나의 케이스는 좀 특별하다.
이 이야기는 남기고는 싶지만 지금 펜이 전혀 잡히지 않는 상황이기에 글의 형태로 이야기를 전해 볼 생각이다.
독자 여러분은 『막대한 힘』을 마주한 경험이 있는가?
질문이 이상하군... 하지만 내 미약한 물리학 지식을 동원해 설명을 보충하겠다.
E=mc^2
물리학에 인연이 없는 나도 아는 유명한 공식이다.
질량과 에너지는 서로 변환이 가능하다.
그 말인 즉슨 에너지, 힘은 곧 질량.
이제 질문을 바꿔 다시 묻겠다.
당신은 『막대한 질량』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
아마 우리 부가 게임을 취급했다면 그런 모습일 것이다.
밤샘의 흔적을 증명하는 에너지 드링크 캔과 캔커피,
키가 조금이라도 커지길 바란다면 끊으라 권유하고 싶지만 끊지 않을걸 알기에 언급하지 않았다.
사방에 흐트러진 게임팩들,
쓰고 바로 치우면 편하다는걸 알지만 나도 그렇게 하지 않기에 굳이 언급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할 말이 없는건 아니였다.
아니, 오히려 한 가득이었다.
"이 히메키 메루가 돈이나 남의 칭찬을 받고자 만화를 그리는줄 아나!"
나의 일갈에 사이바 미도리, 아니 사이바 모모이가 움찔했다.
"하, 하지만 테일즈 사가 크로니클2의 동인지를 그린건..."
"그건 단순히 그리고 싶어서 그린거야!"
테일즈 사가 크로니클2, 나는 그 인디 게임의 동인지를 만든 적이 있었다.
동인 작가로서 여러 종류의 서브컬쳐 작품을 접하는건 일종의 의무라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자신이 파는 장르만 파는 걸 나쁘게 보는 편은 아니다만 처음 동인계에 발을 들이고서 생긴 일종의 고집이였다.
테일즈 사가 크로니클2도 마찬가지였다.
똥겜일 것이 뻔했어도 난 플레이를 했고 엔딩도 봤다.
엔딩을 본 순간 똥겜임을 제차 인정하고 제작자보다도 플레이한 나 자신을 욕했지만 동인지를 그렸으며 팔았다.
몰론 수익은 메루리라는 필명의 오점 수준이였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했었으니까.
"잠시만! 그러면 임금을 두 배로...."
"돈은 상관 없다니까! 그리고 두 배여야 봤자 화당 2000엔이잖아!"
이쯤이면 내가 화내는 이유가 궁금한 독자가 있을 것이기에 간단히 설명하겠다.
저 일이 있기 며칠 전, 나는 밀레니엄의 게임개발부에게 공식 만화 연재 제의를 받았다.
화 당 1000엔 이라는 고료를 약속 받았고 어이없지만 난 밀레니엄까지 갔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기대를 했었다
물론 한다는건 아니지만 난 선생의 알몸 그림 하나만 그려도 20000엔을 벌 수 있는 몸.
그에 비해 한 화에 1000엔, 너무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비효율에서 로망이 나오는 법,
나는 그 로망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밀레니엄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지만 내 로망은 그들과의 대화 한 두마디만에 부서졌다.
이 녀석들, 단순히 부비가 필요한 것이었다.
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 부실에서 1초도 더 있을 생각이 없었다.
짐을 챙기고 돌아갈 준비를 했다.
문 앞에 선 순간 나는 뱃속에서 더러운 기분이 들끓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시원하게 토해야만 할거 같았다.
"선배 창작자로서 한 마디 하지! 창작은 고통의 연속이야! 좀 굶어봐야 명작이 나오는 거라고!"
"좋은 말이네."
그 순간 내가 느낀 것은 오싹함 그 이상의 감정이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기 전, 나는 게임개발부원들을 바라보았다.
현실 인물보다 한 차원 아래의 인물들을 더 많이 봐서일까?
왜 나는 이 부실에 들어왔을 때 그들의 얼굴에서 불안함을 읽지 못했을까.
등 쪽에서 마력, 막대한 힘이 느꺼졌었다.
막대한 두 살덩이가 풍기는 마력의 편린에도 나는 압박감을 느꼈다.
그 중압감에, 그 힘에,
그 질량에.
콰득!
~~~~~~~
내가 눈을 뜬 곳은 밀실이었다.
벽에는 밀실의 전 주인의 절규의 흔적인지 광기의 흔적인지 모를 낙서가 있었다.
막 일어난 순간에는 눈 앞이 어른거렸고, 이명이 청각을 대신해 내 뇌를 자극하고 있었다.
안경을 쓰고 있는게 느껴지지만 시야가 벗은 것마냥 흐렸다.
그럼에도 나는 내 눈 앞에 있는 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저 뽀얀 두 살덩이, 터무니 없는 질량이 담겨있는 허벅지
"일어났네?"
나는 이 여자를 알고 있었다.
아니, 그 허벅지의 모양을 알고 있었다.
"하야세... 유우카..."
하야세 유우카, 밀레니엄 세미나의 회계.
양갈래로 묶은 푸른 머리카락과 허벅지가 인상적인 여자다.
"모를 수가 없겠지."
하야세 유우카는 내게 회지 한 권을 던졌다.
'이렇게 기분 좋은건 계산 밖이야!'
푸른 머리의 소녀와 하얀 머리의 소녀가 혀를 섞고 있는 표지,
아니 하얀 머리의 소녀가 일방적으로 희롱하는 표지.
내 그림체다.
"뭐, 복수라도 할 생각이야?"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진 않았지만 난 아마 웃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우스움에 비웃고 있던건 아니며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내가 웃고 있었는지 자체가 확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웃었다고 회고하는 이유는 그 직후 내 입꼬리가 내려갔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야가 돌아오자 모든게 선명하게 보인다.
허벅지, 얼굴, 미소 그리고,
눈동자(Hitomi).
무엇보다도 순수한 감정이 담긴 눈동자.
정욕.
"메루리 씨, 난 전혀 화가 나지 않았고 복수 할 생각도 없어."
가장 순수하지 않은 감정이 응축되어 가장 순수한 형태로 집약된다.
"단순히 의뢰를 하러 온거야."
그녀는 내 귀쪽으로 입술을 가져다 대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내가 XXXXXX하는 만화"
수십 번이고 들어본 제의다.
하지만 그 막대한 정욕이 그것만을 요구 할 리가 없었다.
"XXXXXXXX, XXXXXXX, XXXXXXXXXX, XXXXXXXXXXX, XXXXXXXXXX, XXXXXXXXXXXX, XXXXXXXXXXXXXX........"
수십 개의 소재가 귀에 박힌다.
그녀의 왜곡된 성욕과 집착이 만들어낸 괴물적인 아이디어들이 내 뇌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혹한 소재가 한둘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좋아할 상황은 아니였다.
"모두 기억했어? 다시 불러줄까?"
"미안하지만 당신의 그런 변태 행위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어."
객기보다도 만화가로서의 소신이었다.
"모에라는건 말이야, 맥락이 필요하다고. 맥락이. 게다가 난 큰 쪽이 더 취향이라."
그 때 그냥 순종적으로 행동했어야 했을까.
"그래?"
그녀는 생긋 웃더니 나에게로 접근하였다.
"아까 창작은 고통의 연속이라 했지?"
쾅!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그녀가 발자국을 움직일 때마다 온 밀레니엄이 흔들리는 듯한 무게감이 엄습한다.
"그렇다면 고통을 준다면......"
엄청난 질량이,
콰득!
나를 구속한다.
~~~~~~~~~~
그 뒤의 일도 설명하고 싶은게 많지만 이쯤에서 끊겠다.
요약하자면 나는 거기서 59편의 만화를 그려야했다. 반려당한 12 편까지 포함하면 71편. 초기 의뢰는 50편 이였지만 갑자기 9 개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59편의 만화를 그리고 나서야 그녀는 나를 풀어주었고 나는 도망치듯 밀레니엄에서 뛰쳐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의 문구 하나를 인용하고 이 글을 마무리 짓겠다.
이 사건 이후 인식이 약간 달라졌기에 인용하는 것이며 일단 슬럼프 극복에 최선을 다하겠다.
"자네는『인력』을 믿는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18876343&page=1
댓글 4
두려워져요


진짜 부동로한 시리즈같은 감성이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