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XX월 XX+76일 18:32
선생 치료 시작 76일째, 트리니티 티파티 테라스
".......무슨 일이야."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세이아 쨩."
"....마음의 준비는 되셨습니까 미카?"
"....그건 준비되어있는데 말이지. 말을 빙빙 돌려서 할거면 10분 이따 올게. 다 말하고 결론만 내게 말해. 알았어?"
"....그럴 생각은 애초에 없었습니다만."
"......선생님한테. 무슨 일이 있는거야."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미카.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도 동요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렇게 동요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라면 일단 들어봐야겠어."
"나기사?"
세이아가 고개를 돌려 나기사를 쳐다본다. 나기사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 이야기는 저 역시도 티파티의 일원으로서 들어야 할 이야기입니다. 다른 분들께도 알릴 필요가 있다면 그리 해야겠지만, 당장은 저희부터 세이아 씨가 보신 것에 대한 공유가 필요합니다."
나기사의 말에 세이아는 미카를 다시 한 번 쳐다본다. 그리고 눈을 살포시 감는다.
"...세이아 쨩. 나 지금 인내심의 한계가 오려고 하는데?"
".........단지 스쳐지나가는 삽화와 같은 것들이 보였습니다."
"...뭐?"
"직설적으로 말씀해달라 하셨으니, 네. 기꺼이 그 삽화에 관한 기억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세이아. 나기사는 알고 있다. 세이아가 잠시 숨을 고르고 난 뒤 하는 말은 중대한 변동을 불러오는 이야기이곤 했다. 그것이 낭보인지 비보인지는 그 다음의 문제였다.
".....수많은 학생들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혹자는 피를 흘리고 있고, 누군가는 마치 죽은 것처럼 미동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홀로 선생님께서 서계셨습니다."
".......뭐?"
"잠시만요 세이아 씨. 주변 환경이나 이런 부분도 기억이 나시나요? 아니면, 쓰러진 학생들의 소속이라도ㅡ"
"모든 것이 부서진 폐허였습니다. 건물의 잔해와 간신히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유리궁전이 보였지요. 선생님께서는 그 잔해를 밟고 서계셨습니다."
잠시 테라스에는 정적이 흐른다. 추측컨대 세이아의 발언에 대한 각자의 정리가 필요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그게 단지 이미지 한 장이었다는 거야?"
"네. 아시다시피 예지몽과 관련된 능력은 잃은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다만, 지난 색채의 침공 당시 경험해보셨겠지만, 저조차도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삽화들이 제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일이 있곤 했습니다."
"견인포반의 좌표를 정확하게 유도한 것도 그렇다면..."
"맞습니다 나기사. 고백하건대, 저는 수학에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제 눈 앞을 스쳐지나간 것은 열 자리의 숫자였지요. 그래서 그 숫자를 있는 그대로 나기사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던가요?"
"그리고 저희 작전 보좌관이 돌연 그 숫자를 메모해갔고..."
"네. 그리고 해당 지역의 BDA* 결과는 우수한 수준이었죠. 얼핏 듣기로 재사격이 필요없는 수준이었다고 하던데."
*BDA(Battle Damage Assessment): 전투피해평가, 사전 결정된 목표에 치사성 또는 비치사성 군사력을 운용하여 획득한 적시적이며 정확한 피해 평가. 모든 군사 작전 및 무기 체계의 운용에 적용될 수 있으며, 물리적 피해 평가, 기능적 피해 평가 및 표적 처리 평가로 구성된다.
"그럼 그 숫자 역시 단순한 삽화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는 건가요 세이아 씨?"
"다른 말로 하자면 열 자리의 숫자를 읽어낼 수 있을 정도까지는 제 머리에 머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 거기 서있던 사람이 선생님이라는 건 어떻게 확신해?"
줄곧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미카가 질문한다. 그렇다. 10자리의 숫자를 읽어내는 시간과 하나의 이미지를 모두 확인하고 해석하는 시간에 차이가 있음은 분명하다.
"....선생님께서 당신 앞에서 기적을 일으킬 때 사용했다던 그 물건을 쥐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빛나고 있었지요. 시선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건.... 그건 어떻게 알고..."
"그걸 아마 '어른의 카드'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세이아 쨩. 오늘 선생님은 많이 힘들어하셨던거 알아? 이미 선생님은 무언가 힘이 부치는 모습이었다고. 근데 어째서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확신한거야."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던 미카가 반론을 제기한다. 확실히, 그가 들었던 선생의 상태는 이미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른의 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 이미지로 지나가고 있다한들, 그것과 선생의 고통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학생을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확실히... 그렇죠."
"설령 저희에게 실망하더라도 언제나 그 희망을 품고 계실겁니다. 언젠가 그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이죠. 사실 아리우스 스쿼드를 사실상 무죄방면한 것도 같은 이치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데?"
".........미카. 제가 선생님께서 미카로 인해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고 확신했던 것은........"
세이아의 다음 발언에 순식간에 테라스의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이것이 단지 노을이 꺼져가는 해질녘의 저녁이라는 점에서 기인하는 것만은 아님이 확실했다.
"..........선생님께서 저희에게 실망하셨다고 스스로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실 분은 절대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합니다."
"........................"
"........................"
"........그게 무슨 말이야 세이아 쨩? 나 지금 장난치러 여기 온 게 아닌 건 알고 있을텐데?"
"미카 씨. 세이아 씨의 말은ㅡ"
"세이아 쨩이 본 게 확실해?"
"미카..."
"확실하냐고 물었어. 대답해!"
미카의 언성이 높아진다.
삶의 의지를 놓는다. 이 얼마나 무겁고 차가운 말인가. 가뜩이나 죽음이라는 개념이 흔치 않은 키보토스에서 삶의 의지를 놓는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개념보다도 더 끔찍한 것임에 분명했다.
".......네."
".......거짓말이지, 응? 세이아 쨩. 지금까지 말 어지럽게 빙빙 돌리던 것도 가끔 독설로 나를 후들겨 패던 것도 다 그냥 넘어갈테니까, 아니 앞으로도 다 모른 척 받아줄테니까 그냥 거짓말이라고, 장난이라고 해줘."
".......미안합니다 미카."
세이아의 말에서 짧은 탄식이 섞여나왔다. 그런 세이아를 바라보는 미카. 미카의 눈에 비친 세이아는, 미카 그녀에게는 유감스러운 일이나. 몰래카메라를 준비해놓고 웃음이 새어나오는 표정이 아닌 침울함과 착잡함이 섞인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그동안 필사적으로 참아왔던 미카의 감정을 터뜨리는 뇌관이 되었다.
"........왜.....왜..... 왜 어째서야.....왜...."
"미, 미카 씨?"
"미카....."
나기사는 미카의 버릇을 알고 있었다. 미카가 무엇인가를, 특히 눈물을 필사적으로 참을 때에는 날개가 미세하지만 위 아래로 파들파들 움직이는 것을. 그리고 눈동자의 초점이 흔들리는 것을. 전자는 터져나오는 감정을 틀어막고 있는 미카 최후의 보루를 상징하고 있었으며, 후자는.
"어째서야......응? 어째서 그런 걸 본 거야 세이아 쨩...?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나오는 천사의 눈물에 굴절되어 일렁이는 미카의 눈을 의미했다.
"아니잖아.... 제발 아니라고 해줘.... 응? 나 정말 그동안 많이 노력했잖아. 이제는 내가 욕먹는 것조차도 선생님한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모범적으로 지냈잖아. 근신도 똑바로 잘 하고 있었잖아. 근데 왜? 왜 그러는건데? 대체 왜?"
".....미안하다는 말 외에 달리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미카."
"그런 표정 짓지 마.... 제발 본인도 그런 말을 하기 고통스럽다는 표정을 짓지 말란 말이야아아..... 제바아아아알!"
날개의 파들거림이 멈췄다. 슬픔이 멎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미
"왜애.....왜 어째서야.... 왜 우리 선생님을 데려가려는거야 왜애애....."
슬픔을 막던 최후의 보루가 뚫려버렸음을 의미했다.
"내가 정말 마녀였던거야? 정말 선생님이 이제 마녀의 저주에 걸려버린거야? 그래서 오늘도 그랬던거야? 그런거지? 마녀 옆에 서는 것만으로도 이미 온갖 안 좋은 효과란 효과는 다 받은 걸거야. 응, 그런거네. 맞지?"
선생 앞에서 보란듯이 자랑하려던 고친 화장 위로 여러 줄기로 나뉜 눈물의 강이 흐른다.
"역시 내가 문제였던거잖아.... 그런 말을 하고 싶었던거잖아 세이아 쨩...? 그런거지...?"
"ㅈ, 잠깐 미카 씨. 오늘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건가요? 분명 마지막으로 제게 모모톡을 보냈을 때에는......"
상황을 중재해보려는 나기사였지만, 미카의 감정의 격류를 막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나기 쨩...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
"......미카 씨...."
"나 정말로, 세이아 쨩이 봤던 것대로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면 어떻게 해? 나 그러면 더 이상 못 살아. 안 돼. 내가 어떻게 선생님 없이 살아. 나기 쨩은 살 수 있어? 나기 쨩도 미친듯이 힘들거잖아....!"
"......일단 지금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진정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털어놔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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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XX월 XX+76일 19:47
선생 치료 시작 76일째, 트리니티 티파티 테라스
어느새 저녁을 지나 밤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는 세 사람. 이미 그녀들을 보좌하는 수행원들은 세 사람의 회동에 앞서 모두 퇴근시켰기에 지금 이 이야기를 듣는 인원은 셋 이외에는 없다.
그리고 셋 이외 모든 사람을 내보낸 조치는 실로 현명한 조치였다.
미카가 오늘 보았던 선생의 상태를 하나하나 읊을 때마다, 나기사는 놀란 입을 애써 가리려 하고, 세이아 역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애써 모든 것을 내뱉은 미카는 이제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듯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엎드려있었다.
".........나기사."
"잠시만요 세이아 씨..... 우리 잠깐만. 아주 잠깐만 시간을 좀 가집시다.... 아주, 아주 잠깐만이면 되니까요..."
".........."
".........."
키보토스에서 가장 '정치적인' 학생을 꼽으라면 단연 나기사일 것이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 동안 너무나도 많은 정보가 들이닥친 것에 대한 혼란도 잠시, 미카로부터, 그리고 세이아로부터 수집한 정보를 하나하나 맞춰가기 시작한다.
'세이아 씨의 능력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것은 분명 확인했었죠. 하지만 어째서...?'
그녀는 알고 있다. 예지몽으로 인해 일을 그르칠 뻔했던 과거를 겪은 이후 세이아는 상대가 나기사일지라도 말을 최대한 아끼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이 모임을 주선하고 이야기를 꺼내기까지는 무수한 많은 고민과 내적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지난번과 같이 미래는 개변될 수 있는 것이었죠. 세이아 씨가 보았던 파괴도, 삶을 포기한 선생님도 바뀔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가서는 안 될 미래로 빠지지 않도록 투입할 수 있는 모든 제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
"....세이아 씨. 혹시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없었습니까."
"그 외의 것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너무나도 빠르게 지나간 것이라 그 두어 장의 삽화만을 건졌을 뿐이죠. 완벽하게 확인하지 못한 이미지는 말씀드리는 것이 드리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판단입니다."
"....그럼 그 완벽히 확인하지 못한 것 중에 세이아 씨가 가장 자신 있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에 대해 알려주세요."
나기사의 말을 들은 세이아가 눈을 감고 생각에 빠진다.
'즉각적인 대답을 받기는 어려울 것 같군요.'
나기사의 시선이 반대편을 향한다. 테이블에 엎어져 있는 미카가 더 이상 울고 있지 않다는 것 외에 그녀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미카 씨. 물론 지금은 참담한 마음이겠지만, 지금은 우선 당면한 과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잘 아시잖아요."
".........."
"하아... 일단 이 부분은 비밀리에 구호기사단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겠어요. 동의하시나요?"
"확실히, 지금은 다른 누구보다도 의학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눈을 감은 채 기억을 되짚던 세이아가 동의를 표한다.
"..........그래.... 그것 말고는 정말로 방법이 없는 거지 나기 쨩...?"
근심 섞인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나기사. 그런 나기사를 보고 미카는 얼굴을 파묻은 채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 부분은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저희 분파의 행정관이 겪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연방 의료 센터 원무과에 우리 학교 출신이 적잖으니 입원 내역 정도는 꾸밀 수 있을 겁니다."
"구호기사단이 캐묻을 때에 대한 대비도 해야겠지요."
"미네 단장에게 알리는 것은 확실하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큽니다. 일단은 미네 단장이 외근을 나갔을 때 휘하 단원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적합할 듯합니다."
이제 하나는 끝이 났다. 이제 다음 사안으로 넘어갈 차례.
"선생님은 제가 맡겠습니다."
".....어떻게 할건데..."
얼굴을 파묻은 미카가 힘없이 묻는다.
"........정면돌파입니다."
그제서야 미카가 고개를 들고 눈물범벅인 얼굴을 나기사와 마주한다.
"나기 쨩답지 않아. 나기 쨩은.... 아니다. 나기 쨩이 제일 잘 알고 있으니."
"그래서입니다. 그 어떠한 정치적 수사도 없이, 오로지 정공법으로 밀고 나갈 생각입니다. 선생님께서 진정 바라는 모습은 그런 모습일테니까요."
"정치적이지 않다는 스탠스를 표현하겠다는 그 모습이 제일 정치적으로 보입니다 나기사."
".....알아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전통적인 방법은 되려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할 수도 있죠. 선생님께서 이 일을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고, 미카 씨에게 지금 이 소식이 들어갔다는 것은 아직 소문이 많이 퍼지지 않았다는 뜻일겁니다. 어쩌면 저희 티파티가 유일한 목격작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해요."
"선생님께서 알리고 싶지 않아하시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군요."
"네."
"......제가 본 것을 하나 더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세이아가 마침내 눈을 뜬다.
"...권총이 하나 있었습니다."
"네?/응?"
"푸른 빛깔의 손잡이를 가진, 권총이었어요."
세이아의 말에 나기사의 머리는 더욱 더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20XX년 XX월 XX+76일 20:11
선생 치료 시작 76일째,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엔지니어부
"어서 와요. 유우카 쨩."
".....응.... 다른 부원들은?"
"많은 사람들이 굳이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선생님께서도 원하시는 바잖아요."
-위이잉!
순간 유우카가 들어온 바로 뒷편의 자동문이 열린다. 둘과 눈을 마주친 보랏빛 머릿결의 소녀는 한 손에 정체모를 장비를 들고 있었다.
"우타하 선배....?"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노아가 유우카 대신 찾아와서 각종 약제의 성분을 분석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어달라고 하더라고."
"제가 아는 우타하 선배는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것. 그것이 마이스터의 행복이니까."
노아의 띄워주기에 어깨를 으쓱하던 우타하였다.
"우타하 선배..."
"물론 예산안의 상한선이 없다는 이야기에 좀 더 혹한 것도 사실이지만, 덕분에 작업 시간이 빨라졌어. 여기, '시제형 플라즈마 분광기'야."
그 말에 잠시 유우카는 움찔했지만 이내 그것은 지금 이 일의 중대성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돈은 더 벌면 되지만, 건강은 돈으로 살 수 없으니까.
"그럼... 일단 어떻게 하면 되는거야?"
"응. 가운데 놓인 홈에 성분 분석을 원하는 물건을 올려다놓으면 돼. 이런 식으로."
말을 마친 우타하가 금속 조각을 올려둔다.
"소형 합금 큐브야. 지금부터 이 녀석을 '파괴'해서 성분을 분석할거야."
말을 마친 우타하가 뚜겅을 닫고 기계를 작동시키자 둔탁한 소음과 함께 푸른 빛이 발생한다. 30초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표시되는 금속 큐브의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샘플 0000001
분류: 금속성 물질
무게: 100g
주성분: 알루미늄(50%), 구리(20%), 마그네슘(30%)
"자. 이런 식으로. 큐브는 급조해서 가져온건데 그래도 작동이 잘 되는 것 같아 다행이다."
"급조...?"
"어...음... 그러니까.... 아하하... 이건 넘어갈까?"
절대로 시간에 쫓겨 급한대로 특제 소이탄 작업대에서 이것저것 섞다보니 소이탄의 성분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던 우타하였다.
"뭐... 일단 노아, 기록좀 부탁해도 될까??"
"준비중이에요 유우카 쨩."
'이건 필요 시...'
뚜껑을 닫고 버튼을 작동시킨다. 다시 30여 초의 시간이 지나고 표시되는 약의 구성은 다음과 같았다.
-샘플 0000002
분류: 비금속성 물질
무게: 0.125mg
주성분: 트리아졸로벤조디아제핀(100%)
'트리아졸로벤조디아제핀....벤조디아제핀은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은데요...'
약의 성분과 무게를 적어나가던 노아의 눈가가 약간 찌푸려진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유우카는 다음 약을 올려둔다.
-샘플 0000003
분류: 비금속성 물질
무게: 50mg
주성분: 트라조돈염산염(100%)
"노아. 이건 두 알이야."
-샘플 0000004
분류: 비금속성 물질
무게: 20mg
주성분: 파록세틴염산염수화물(100%)
"이것도 두 알."
".....네 모두 다 적었어요."
침착히 모든 내용을 받아적은 노아가 수첩을 닫는다. 그런 노아와 유우카를 번갈아 쳐다보는 유우카였다.
"그래서. 이제 이 기계를 하루만에 만들어달라고 부탁할만한 절박한 사정이 무엇인지 물어봐도 되는 거지?"
"노, 노아?"
"...네.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할 일이니까요. 우타하 선배 한 명만을 부른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에요."
노아의 말에 유우카도 납득하는 눈치였다.
"우타하 선배. 이 일은 부디 다른 쪽으로 이야기해주지 않아주셨으면 해요."
"물론 이미 몇몇은 짐작하고 있는 눈치같지만, 그래도 부탁할게."
"의뢰인의 비밀 정도야 지켜줄 수 있지. 아까 보니 약 같던데, 혹시 누가 아픈거야?"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우타하의 모습에 유우카가 불안하다는 듯이 노아를 쳐다본다.
'우타하 선배...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시각 노아.
'역시 약학에는 약하군요. 우타하 선배.'
크게 숨을 들어마신 뒤 노아가 조용히 입을 연다.
"네. 약이 맞아요. 그리고....."
"그리고....?"
".....그 약을 드시는 분은 선생님이세요."
'윽...이제 난 몰라...'
유우카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 노아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점이 유쾌하게 다가올리 없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 이 약을 드신다는거고. 그럼 지금 아픈건 선생님이라는거네?"
".....맞아."
"하긴... 선생님의 업무량이나 스케줄은 몇 번 당번을 다녀와서 알고 있으니 어디 한 군데 탈이 나도 이상하지는 않지."
'그게 한 군데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일까요...'
복잡한 표정의 노아를 제치고 이제 우타하는 유우카를 쳐다본다.
"혹시 내가, 아니 엔지니어부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알려줘.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선생님의 일인데 우리가 손 놓고 있는 건 다들 바라지 않을거야. 필요하다면 지금 만들고 있는 천둥이 MK.IIA를 샬레로 보내는 것도 검토해볼게."
"그...그거 기관총 달린 포탑 아니었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너무 억울한 거 있지...? 전천후만능 이족보행 전투형 의자라고. 음음."
"마음은 정말 고마워요 우타하 선배. 혹시 엔지니어부가 도울 것이 생기면 꼭 말씀드릴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우타하에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 세미나로 향하는 그들이었다.
"유우카 쨩. 다 잘 될거에요."
".....나 지금도 조금 찔리는 거 있지?"
"선생님의 것을 훔쳤다는 죄책감 때문인거죠?"
"그것도 있고...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알게 될 것을 바라지 않으셨는데, 물론 우타하 선배는 단순히 아프다 그 정도로 넘어갔지만...."
유우카의 말은 정론이었다. 사실 선생의 몸에 이상징후가 포착되었다는 말이 키보토스에 알음알음 퍼지게 되면 분명 마음이 무거운 아이들은 샬레로 달려가거나, 총학생회에 해명을 요구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방에 틀어박혀 울고 있을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저도 바라요. 이번은 저희가 약학 쪽의 지식이 전무한 수준이라 약 모양과 색만 보고 단번에 파악할 수 없었으니까요."
"하....부실이네. 이제 저 약 성분을 검색해보면 되는거지?"
"네. 성분 자체가 어떤 효과가 있는지, 적정량은 어느 정도인지만 확인해도 될거에요."
티파티의 테라스와 더불어, 오늘 세미나의 불은 아주 늦은 시간에 꺼질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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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티만 신경쓰다가 밀레니엄을 유기할 뻔했습니다. 유우카의 기합찬 긴빠이가 막 진행중인 상황이었죠. 어쨌든 이제 게헨나를 제외한 대규모 학교에서는 이미 선생의 이상징후를 천천히 포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것이 본격적으로 선생의 상태가 커밍아웃되는 계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 계기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야구는 역시 몸에 해롭습니다. 개삼성은 해체해야 합니다. 저는 어른의 카드를 쓰지도 않았는데 생명이 깎여나가는 느낌입니다. 차라리 쓰고나 그랬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거 안 보고 원고를 쓰고 다듬고 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주2회 연재 루틴도 지키고. 내일은 야구 안 하는 날이니 수명이 깎여나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다음 화는 다음 주 주중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벌써 주말도 절반을 지나치고 있네요. 주말이 지나가는 것은 언제나 아쉬운 것 같습니다. 다들 남은 주말은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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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3
선개추후감상
정말고 마워요
ㅅㄱㅊㅎㄱㅅ
오늘도 선개추 후감상

삼성팬은 아니지만 올해 코시를 챙겨보고 있습니다 끔찍합니다... Again 2013을 바랬지만 2024년의 삼성에는 돌부처와 스냅백의 철벽이 보이지 않네요 오늘도 재밌게 봤습니다! 슬슬 자이로드롭 떨어질 준비가...
긍정) 대구에서 트로피 들어올리는거 보지 않아도 된다 자이로드롭 아직 떨어지려면 한참 남았는데요...?
빌드업을 터트리는 큰일은 준비도 오래 걸리는 법이죠
아 생각해보니까 13 우승시킨건 차우찬이었지
이렇게 된 이상 시로코 콤비가 준비한 기합찬 키보토스 일주 코스로 선생에게 기합찬 아비도스 정신을 주입하는 방법을 쓰는 것은 어떻습니까.
제가 센남이라면 그대로 자동차에 치여서 입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