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6LIViHCFB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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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거라곤 구름, 구름, 시커먼 먹구름.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이 보이지 않았다.
잿빛과도 같은 하늘이, 오늘 하루도 심히 고단할 거라고 호언장담하는 것만 같아, 우시오 노아는 그만 기가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자마자 샬레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자신이 있었다.
친구 유우카는 아침 업무 분류를 위해 학교로, 자신은 선생의 용태를 확인하기 위해 샬레로.
( ......불안하네요. )
선생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분명 휴대폰을 충전하는 것은 잊지 않았을 것이고, 어디 멀리 떨어진 곳으로 휙 던져놓았을 리도 없다.
그러한 사실이, 노아 자신의 발걸음을 더욱 더 재촉하고 있었다.
선생 생각 한 번에 반 보 빠르게.
또 한 번 생각에 반 보 더 빠르게.
선생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유우카에게도 일러두었다.
그녀 역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해 안절부절해하는 목소리로, 업무 분류만 마치고 갈 테니 먼저 가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어떨지도 모르는 선생의 상태를 혼자서 확인한다는 것이, 막연히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 ...별 일 아니라고...해주세요. )
부탁. 간절한 기도. 애원.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되는 마음.
만약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다면. 그리고 그 모습을 자기 혼자서 봐야하기라도 한다면.
엘리베이터는 답답했고, 복도는 스산했다.
구태여 오늘만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이런 불쾌한 느낌을 몇 번이나 느껴야 할 지.
샬레 집무실의 문을 열었다.
거대한 창밖으로 더욱 거대한 먹구름만이 보일 뿐, 선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소처럼 일에 열중하다가 자신을 반겨준다거나, 태산같은 서류더미 너머로 손만 내민다거나, 농땡이피우다가 걸려 멋쩍은 웃음으로 무마시키려 든다거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계신가요, 선생님...?"
메아리조차 들려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무거운 침묵을 이겨내보고자 입을 열어보았다.
대답 없을 인사를 건네는 것은 썩 비참한 일이라지만, 그 말조차 꺼내지 않는다면 긴장감으로 머리가 녹아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를 찾아 헤메인다거나 하진 않았다.
수면실의 문이 부자연스럽게 열려있는 것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으니까.
그 성격에 제법 정리정돈을 하는 구석은 있는지라, 수면실을 쓰지 않을 때는 문을 꼭 닫아 두는 사람이다.
그런 수면실의 문이 스리슬쩍 열려있는 채라면...선생은 그 곳에 있을 것이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딛는 것이 무서울지라도 확인하지 않으면 안돼.
세상에 큰 변고라도 생길법한, 악의적일 정도로 무거운 공기를 이겨내며, 우시오 노아가 수면실 앞에 다가간다.
저 문을 열었을 때 선생이 있을 것인가.
그저 자다가 알람이나 전화를 듣지 못했을 뿐인가.
아니면, 그가 예고하던 비극의 서막이 펼쳐질 것인가.
많은 가능성들이 기념일의 폭주족마냥 머릿속을 마구 헤집었다. 불안함이 폭주하고, 불길함이 폭발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가능성일 뿐.
두 눈으로 확인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정말로, 정말로 아무 일 없을지도 모르니까......
"...안에 계신가요?"
공허한 부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일어나실 시간이 지났어요. 전화도 안 받으셔서...유우카 쨩도 걱정하고 있어요."
마치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어린아이처럼, 노아는 망설이고 머뭇거리는 것처럼 대답없을 이야기만을 내뱉어두고 있었다.
"...정말, 안에 계신거죠? 대답 좀 해주세요......"
아주 조금 열려있는 그 문을 열기 위해선, 노아 나름대로의 용기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겐 용기를 낼 수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라면 이렇게 장황하게 혼자 면벽 대화를 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들어갈게요, 선생님."
마침내 우시오 노아는 용기를 낸다.
문 손잡이를 잡는 대신, 문으로 갖다 댄 손에 조심스럽게 힘을 준다.
문은 힘없는 고목처럼 천천히, 불길할 정도의 '끼이익' 하는 소리를 낸다.
흐트러진 이부자리.
닫혀진 그대로 컴컴한 아침을 보여주는 작은 창문.
꺼져있는 불.
침대 머리맡의 책상에 놓인 휴대폰과 싯딤의 상자.
바닥에 엎어진 채 미동조차 안 하는 선생.
"...서, 선생님......?"
놀람과 당혹스러움으로 눈이 휘둥그레해지고,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진다.
머리가 그 반사신경을 따라가지 못해, 제 목에서 나온 목소리는 맥빠지고 김샌 얼빵한 목소리였다.
한 1초나 지났을까.
그녀의 머리가 마침내 상황판단을 끝낸다.
...선생이 쓰러졌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정신 좀 차려보세요!!!"
머릿속 어딘가에서 초시계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느낌.
1초.
1초.
1초.
소중한 시간은 흘러간다만,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애타게 발을 구르며 그를 흔드는 것밖에 없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그를 붙잡았다.
오직 그것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선생님!!! 선생님!!! 대체 이게 무슨...선생님!!! 제 말 들리세요?!"
이대로 선생님이 깨어나지 않는다면?
거짓말. 10일 뒤라며? 오늘 기준으로 8일이라며?
그럴 리가 없어.
안 돼. 절대 안 돼.
머리를 강타하는 수많은 생각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것들을 해야 할 지, 어떤 일부터 해결해야 할 지 필사적으로 찾아낸다.
전화를 해야 할까?
누구한테? 유우카한테? 아니, 린 행정관한테?
아니, 부른다면 우선 구급차를.
구급차를 부른다면, 그 다음에는?
...생각의 폭풍을 멈춰주겠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쓰러진 선생의 몸이 미약하게 꿈틀거린다.
그 자그마한 움직임에, 잔뜩 커졌던 노아의 눈동자 역시 움찔거리고 말았다.
"서, 선생님?! 정신이, 정신이 드세요?! 제 목소리 들리세요?!"
그러한 노아의 말에, 선생이 대답한다.
그러나 그 대답은 말이라기엔 너무 뭉개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다 죽어가는 노인의 외마디 비명과도 같았다.
자그맣고,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 답답하며, 놀람과 절망이 한데 뒤섞인, 다 찢어져가는 절규가 선생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서......선생...님...?"
그 자그맣지만 공격적인 절규에, 우시오 노아는 저도 모르게 그를 붙잡았던 양손을 슬그머니 떼 버리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해졌다기보단, 그저 기이함과 괴이함을 동반한 공포에 잡아먹힌 것일지도 모른다.
"......다리......"
"...네?"
선생이 중얼거리듯 내뱉은 외마디에, 노아는 자칫 보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자칫 보면 맥락없는 말에 맥이 빠진 목소리로, 실없이 대답했다.
간신히 의식을 되찾은 선생은, 허탈함 가득한 목소리로, 또 한 번 그녀의 기억에 쓰라린 생채기를 남겨놓는다.
"......다리가, 안 움직여."
* *
"것 보세요, 카호. 밥 안 먹고 오길 잘 했죠?"
결과적으로 점심 식사를 하지 않고 회의실에 온 것은 타당한 선택이었다고, 아마치 니야가 옆자리의 카호를 향해 싱글싱글 웃으며 재잘거렸다.
정말 평소대로의 니야 그 자체였기에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었으나, 단 하나의 특이점 하나가 그녀를 유독 특이하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니야 님, 지금은 그런 말을 하실 분위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다름아닌 이 곳이 총학생회 대회의실이고, 지금은 비상대책위원회 개회 대기중이며, 이 회의실 전체가 미묘한 긴장감 속에 빠져있다는 것.
그 사실이, 쿠와카미 카호로 하여금 옆에서 조잘거리는 니야를 당혹스럽게 바라보게 하고 있었다.
"냐하하~ 원래 이런 상황일수록 즐기는 편이 좋은 거 아니겠어요?"
그런 카호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니야는 시종일관 싱글벙글 웃으며 장난감......대화 상대를 찾는 모습이었다.
"안 그런가요, 체리노 서기장님~?"
"뭐?! 니, 니야 님, 대체 무슨--"
전혀 예상치 못한 목적지에 쿠와카미 카호가 소스라치게 놀라 니야를 제지하려 드나, 니야의 말은 이미 반대쪽에 성공적으로 도달한 모양이었다.
붉은겨울 학생회장, 렌카와 체리노는 괜시리 자신의 멋들어진 흰 콧수염을 만지작거렸다.
"거리낌이 없군, 니야 부장!"
"죄, 죄죄, 죄송합니다! 니야 님이 워낙--"
"--아니아니, 상관없다! 이런 상황일수록 아이스 브레이킹은 중요하니 말이야!"
학생회장이면서 미화부장 겸 서기장 겸 체육부장 겸 선도부장 겸 급식부장은 심히 관대하게도, 당혹스러워하며 사과하는 카호를 제지한 뒤, 자신의 옆에 앉은 토모에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자리에서 저러는 것도 크나큰 용기이지. 토모에! 백귀야행 쪽으로 체룐카 한 박스나 보내줄까 싶은데."
"알겠습니다. 백귀야행 음양부 앞으로 한 박스 보내겠습니다."
아무래도 니야의 마이페이스적인 능글맞음이, 내심 회의장의 메스꺼운 공기를 꺼림칙해하던 체리노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어때요, 키류 키쿄 양. 이 정도면 꽤나 수완이 좋지 않나요?"
"...나한테 묻지 말아 줘, 음양부 부장님."
키류 키쿄는 자신에게 불똥이 튀는 것 자체를 피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기사, 이런 상황에선 이름이 오르내린다고 하등 좋을 것이 없다는 점 정도는 아주 가볍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니까.
"......그대들은, 이럴 때도 참 활기차서 좋군."
산해경 현룡문의 문주 류우게 키사키는, 이 곳의 모두가 의식하고 있는 것조차 신경쓰지 않는 그녀들을 향해 반쯤은 어이없다는 듯 실소했다.
"키사키 문주! 얘기나온 김에 그 쪽에도 체룐카 한 박스 보내주지! 이 몸께선 키사키 문주를 꽤 좋아하니까!"
"...이 분위기에서 할 대화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체리노 서기장의 호의니까 감사히 받도록 할까."
묘하게 몸을 옥죄어오는 긴장감 속에서 재잘대는 것은 썩 취향에 맞지 않다만, 키사키는 체리노의 호탕한 호의를 받기로 한 모양이다.
아이스 브레이킹이라.
그것이 제법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고, 큰일을 앞두고 긴장을 적당히 덜어내는 것이 유효하다고, 그녀는 그렇게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 그건 그렇고..."
류우게 키사키는, 힐끔힐끔 자신을 쳐다보는 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호스트님?"
그녀는 트리니티의 호스트를 향해, 슬그머니 웃음을 지으며 속삭이듯 말을 꺼낸다.
그것이 어떤 의미의 미소였는지는 물론 키사키 본인만이 알 터이지만, 키리후지 나기사에게 있어서는 썩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애초부터 키리후지 나기사에게는 '검은 군주' 란 여간 껄끄러운 인물이 아니었다.
트리니티의 정보력으로도 한계가 있을 정도로 베일에 싸여 있으면서, 뒤떨어진 체계의 산해경을 어떻게든 끌고 가고 있는 인물.
...그래.
류우게 키사키는, 썩 만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티파티의 현 호스트는, 그녀를 내심 신경쓰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번 질문에 답한 것은 나기사가 아니었다.
"...후후, 실례했습니다. 워낙 존영으로만 뵙던 분인지라, 실제로 뵈니 신기했나봅니다."
유리조노 세이아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표정으로, 태연하게 대답의 포문을 열었다.
"...호오. 유리조노 세이아였지, 그대는."
예상치 못한 대답이라는 듯 잠시간 세이아를 바라보던 키사키가, 이내 다시 한 번 미소를 머금었다.
"너무 무례한 어투로 느껴졌다면 사과하마. 나 개인에 대한 호기심이라면 염두에 두지 않는다만, 산해경을 바라보는 그 눈빛에 한심함이 담겨 있진 않은가, 그것이 우려스러웠을 뿐이네."
"그 정도까지는 아니니 안심하셔도 되겠네요. 이래뵈도 저희는 제법 가까운 친우여서, 눈빛만 봐도 생각을 알 수 있는지라."
짐짓 겸손해보이는 그 말 속에는 '제법 공격적으로 말하는구나' 따위의 속뜻이 있다는 사실을, 유리조노 세이아 역시 모를 리 없었다.
그렇기에 더불어 던져진, 자신들이 마냥 무르지 않다는 으름장에도 태연자약하게 너스레를 떨 수 있는 것이리라.
세이아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대꾸한 채, 옆에 앉은 나기사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그렇죠, 나기사?"
"네에. 그저 신비주의에 쌓이신 분이, 다른 학교 수뇌부와 편히 담소를 나누시는 게 신기했을 뿐입니다."
아마도 세이아는 나기사의 껄끄러움을 지레짐작하여 자칫 날카로울 수 있는 스타트를 끊어냈을 것이고, 이 대화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그녀 쪽으로 넘겨준 것이겠지.
시종일관 공격적일 수 있는 언행임에도 나기사가 이 선택지를 받아 든 것은, 양쪽이 모두 '트리니티' 와 '산해경' 이라는 거대 집단의 대표이기 때문이요, 세력 간의 회담이라는 것은 마냥 부드럽게만 대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피차 양쪽이 다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변하지 않으면 도태될 뿐. 우리 쪽에서도 슬슬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와서 말일세. 현룡문의 문주로서, 사소한 것이라도 솔선수범하여야 하지 않겠나?"
"맞는 말씀이지요. 문주님의 고견이 그러하시니, 미래의 산해경이 꽤나 기대되네요."
진심어린 응원인지 비아냥인지는 역시나 나기사만이 알 법한 말.
키사키가 고른 대응책은, 그저 슬며시 웃어 넘기기였다.
아슬아슬한 줄타기같은 대화에 귀기울이던 회의실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굳게 닫혔던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총학생회장 대행 나나가미 린 외 몇 명의 임원진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리라.
"...아쉽지만, 그대와의 담소는 조금 뒤로 미뤄야겠지."
"네. 모쪼록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키사키와 나기사도, 지금이 대화의 흐름을 끊을 적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우선,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자리해주신 여러분께 송구함과 감사를 전합니다. 혼란스럽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만,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나나가미 린은 탁자 위에 서류철을 올려놓고는, 모두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뒤 곧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이번 비상대책위원회의 주 안건은, 샬레의 고문 선생님과 관련된 사항입니다. 어제 드린 공지로 말씀드렸던 사항이니, 이 점에 대해선 다들 어렴풋이나마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어제 띄웠던 공지.
샬레의 선생과 관련된 중대한 사태가 진행중이며, 비대위를 소집해 논의하고자 한다던 그 공지.
...각 학교의 중진들을 심히 당혹스럽게 했던 공지. 그러나 일단은 두고 보자는 심정으로 협조가 잘 된 덕에, 일반 학생들은 모르고 있는 그 공지.
"...잠깐 기다려라, 대행. 우선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채 본론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누군가 린의 말에 제동을 걸었다.
모두가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그녀는 다름아닌 만마전 의장 하누마 마코토였다.
"그 쪽에 비대위를 개최할 권한은 있나? 비대위는 방위실의 영역이고, 현 방위실장은 교정국 신세일텐데? 아, 방위차장 정도는 아무 신경 쓸 것도 없다는 건가?"
마코토는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면서도, 생각보다 날카로운 정론을 들이밀었다.
'남을 곤혹스럽게 하는 데에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라던 아마우 아코의 말은 과연, 틀린 것 하나 없는 명답이었다.
"흥! 저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 운 좋게 넘어갔었다만, 역시 대행 당신이 권력을 잡아--"
"--이번 비대위 개최 전, 행정위원회 임원회의를 거쳐 비대위 개최가 정당하다는 내부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방위실의 동의도 얻었으니, 절차 및 권한 면에서는 오류가 없습니다. 현임 방위차장이 실장 권한을 대행하고 있으니까요."
허나, 린 역시도 지난번 사태로 배운 것이 있었다.
아무리 시급한 안건이라도 최소한의 절차는 밟아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어느 순간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아마, 기세등등하다가 어안이 벙벙해진 하누마 마코토의 표정이 이를 증명해주리라.
"뭐......?"
"마코토 의장이 걱정하는 일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만약 그러한 합의를 도출해 낸 총학생회 전체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다 무시하시고 이 곳을 나가셔도 좋습니다."
린의 태도는 사뭇 강경했다.
그것은 저번 비대위 때의 그녀 모습과는 썩 다른 모습이었다.
우물쭈물 빙빙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닌 직설적으로.
불안에 휩싸이는 대신 '에라, 모르겠다' 라는 듯 굳게 마음먹은 입.
한 마디 한 마디 혼란스러운 듯 떨기 대신, 수많은 중진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눈.
그러한 그녀의 태도를 신기하면서도 기이하게 여기는 것은, 이 곳에 모인 모두가 동감하는 부분이요, 그렇기에 괜시리 마른침만 한 번 삼키는 것이었다.
"......흥. 어떤 헛소리일지 들어나 봐야겠군."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마코토 역시 한 발 물러선다.
상대가 이렇게 단호하게 나온다면 필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고, 더 트집잡아봐야 본인에게 득 될 것이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샬레의 고문 선생님께선...매우 위중하신 상태입니다."
가히 폭탄발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말을, 나나가미 린은 초장부터 던지는 쪽을 선택했다.
각 학교의 중진들 뿐만이 아닌, 총학생회의 일반 행정원들마저도 금세 수군거리기 시작할 법한 그 말은, 한 마디만으로 회의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리기 충분했다.
"당신.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알고 있는 건가요?"
"네. 아주 확실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아오모리 미네의 적대감과 놀람이 뒤섞인 말에도, 나나가미 린은 이미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었어. 우리가 그 말을 어떻게 믿지?"
나지막한 목소리의 타카나시 호시노는, 허튼 소리를 지껄이면 험한 꼴을 볼 거라는 투로 린을 노려본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도 정도가 있어. 그 쪽이 색채 침공 때 제법 애를 썼다는 건 알겠는데, 그게 아무 말이나 내뱉는 데에 대한 면죄부가 되는 건 아니라--"
"--어른의 카드."
"......뭐?"
적개심으로 타오르던 호시노를 향해, 나나가미 린은 마침내 그 카드를 입에 올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그 말에, 회의장 가득 수군거리던 웅성거림이 일순간 잦아들었다.
그 카드의 존재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선생은 실제로 그 카드를 학생들 앞에서 몇 번인가 꺼내들었고, 학생들 사이에선 '그런 대단한 게 있다더라' 하는 소문이 알게 모르게 스리슬쩍 나돌았으니까.
"...지금부터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릴 것들은, 다름아닌 선생님께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지경이 되었으니 무엇을 더 숨기랴.
당사자인 선생이 털어놓기로 결정한 이상, 린 자신이 꽁꽁 싸매고 있어봐야 아무 쓸모가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한 나나가미 린은, 길고 긴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선생님이 쓰시는 그 카드는 사용자의 삶과 시간을 대가로 지불합니다. 선생님은 그 카드를 산적한 큰 현안들을 위해 망설임 없이 사용해오셨고, 그 덕에 실제로 많은 위기를 극복해오셨죠.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색채가 침공해왔을 때도 말입니다."
나나가미 린이 고개를 살짝 돌려, 트리니티 쪽을 바라본다.
"미카 씨. 당신도 보셨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카드를 사용하셨던 모습을."
"어, 나?! 그, 그게......으음, 뭐라고 할까~~~"
자신의 이름이 불릴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미소노 미카는 썩 당혹스러워하며 말꼬리를 늘린다.
"...으응. 그렇지. 맞아. 선생님이 카드 쓰는 거 봤어. 밥 사주거나 하는 게 아니고, 싸우는 용도로."
"세부적으로 묻지는 않겠습니다. 당신 혼자서는 극복하기 힘든 상황이었죠?"
"......응. 그게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지도 몰라. 아니, 없었을거야."
그 미소노 미카가 저런 나약한 소리를 순순히 내뱉는다는 사실이, 수많은 중진들에게는 썩 충격적으로 다가온지도 모를 일이다.
아까보다는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를 뒤로 한 채, 나나가미 린은 다른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로코 씨. 당신도 눈 앞에서 보셨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카드를 사용하시는 모습을."
"...응. 봤어. 선생님이 아니었으면......응. 위험했어."
아비도스 대책위원회, 스나오오카미 시로코 역시 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시로코 역시도 선생이 '나람신의 왕좌' 에서 카드를 사용하던 모습을, 코 앞에서 바라봤었으니까.
"이외에도 더 계시겠지만, 시간 관계 상 줄이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카드를 사용해 학생들을 구해오셨다는 건 이미 충분히 입증된 모양이니."
나나가미 린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쉼표를 콕 찍었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만, 선생님께선 그 카드의 대가를 치를 때가 온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카드의 대가가 대체 뭔가요? 삶과 시간이라는 개념은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 싶은데요?"
"......뭐, 아직은 추측에 불과합니다만......"
아마치 니야는 아까와는 전혀 다른, 낮게 깔린 목소리로 세부 설명을 요구한다.
누군가는 '그녀의 실눈이 조금 뜨인 것 같다' 라고 할 법한 그 표정에, 나나가미 린은 역시나 초연한 얼굴로 잠시간 뜸을 들였다.
"...죽음, 아닐런지요."
쉼표 뒤에 달라붙은 그 말에, 회의장은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선생이 대가를 치를 때가 온 것 같다고 판단한 근거는?"
류우게 키사키는, 복잡미묘한 감정 속에 살며시 숨어든 '불신' 을 구태여 숨기려 들지 않았다.
선생과 그 카드의 관계는 어느 정도 알겠으나, 결말까지 치닫기에는 중간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럴싸한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붕 뜬 느낌을 쉬이 지울 수가 없구나. 그대는 선생이 그리 판단한 연유를 설명할 수 있겠나?"
"최근 들어, 선생님의 몸상태가 급격하게 이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쪽에 대해선 다른 쪽에게 설명을 요청드리는게 낫겠군요.
나나가미 린이 바톤을 넘긴 쪽은, 단 한 명만이 참석한 밀레니엄이었다.
세미나 회계 하야세 유우카는, 그녀가 지칭한 것이 유우카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렇기에 말이 끝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말꼬리를 이을 수 있었다.
"...대행의 말대로, 선생님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어. 무언가를 종종 까먹기 시작한 데다가,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우도 잦아졌으니까. 그런데...그저께부터 그 증세가 좀 심해졌어."
아무래도 그 때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지, 유우카의 두 목소리가 작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평소 그녀를 자주 보아왔던 이들이라면, 아마 유우카가 제법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겠지.
"본인이 죽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보더니, 갑자기 쓰러져서 하루 종일을 내리 기절하시고...정상적인 업무가 가능한 지의 문제가 아니야. 상태가 급격하게 안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
나나가미 린은 그녀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정도면 됐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판단은 하야세 유우카, 당신 개인의 판단인가요?"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우타즈미 사쿠라코는, 유우카를 향해 넌지시 질문을 던진다.
그녀 특유의 분위기와 낮은 목소리, 회의장의 긴장감이 겹쳤는지 제법 신랄하고 날카롭게 들리는 듯했다.
"...응."
"그렇군요. 그렇다면 저희가 그걸 믿을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계시겠군요."
당최 믿을 수가 없는 총학생회의 현 수장.
항상 선생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는 세미나 회계.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는데, 주장하는 바는 선생의 위중함.
근거는 자신들이 봤다던 선생의 용태.
구태여 우타즈미 사쿠라코 뿐만이 아닌, 이 곳에 있는 그 어느 누구라도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전개였다.
"...여러분이 어떤 생각이신지는 잘 알겠습니다."
유우카와 사쿠라코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나가미 린은, 무언가 결정을 내린 듯 이야기의 허리를 잘라내버린다.
"그렇다면, 더욱 믿기 힘든 이야기들을 아예 지금 싹 털어놓는 편이 좋겠군요. 시간이 더 흘렀다간 제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실 테니."
"...뭐라고?"
타카나시 호시노는 여전히 냉랭하고 살벌한 눈초리를 하고 있었다. 헌데, 목소리 한 구석에 숨어들어있는 어안벙벙함을 완전히 가리진 못 한 모양이다.
그녀의 반쯤 어벙한 목소리를 뒤로 한 채, 나나가미 린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래. 막막할 정도로 재미없는 상황이라면, 아예 보질 않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오늘 기준으로......선생님은, 8일 뒤에 돌아가실 겁니다."
"......네?"
그 말의 뜻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데에 정신팔려, 키리후지 나기사의 입에선 상당히 어벙한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를쏘냐. 각자 아까보다도 더욱 어안이 벙벙해하고, 당황하고, 당혹스러워진 얼굴로 그저 나나가미 린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 근거는, 선생님께서 꾸셨다던 꿈입니다."
"...대체 무슨......"
류우게 키사키 역시, 이런 무거운 안건에서 저런 시덥잖은 소리가 나오리란 것을 단 하나도 예측하지 못 한 모양이었다.
입을 '헤' 벌리고 있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 할 정도로, 아마 여간 어이없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아마치 니야는 재미있는 건지 어이가 없는 건지 피식 실소를 터뜨려버렸고, 렌카와 체리노는 할 말이 없는 것인지 연신 콧수염만 만지작거렸다.
와카바 히나타와 이오치 마리는 안절부절해하며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았고, 키류 키쿄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뿐만이랴.
총학생회 행정원들마저 자신들의 수장이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내뱉으리라 생각치도 못했던 것인지, 목소리를 낮춰 저들끼리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그저께 선생님께서 꾸신 꿈 속에서, 자신이 10일 뒤에 죽을 거라며--"
"--더 이상은 못 들어주겠군!"
흥미가 없어져버렸다는 듯, 하누마 마코토는 앉았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렸다.
"얼토당토않은 헛소리에 어울려 줄 시간은 없다! 혹시나 싶어서 구태여 참석한 것이 이딴 헛소리 듣자는 거였다고? 같잖은 미신에 휩싸여 수많은 이들을 고생시킨다니, 그래서야 한 집단의 지배자라고 할 수 있겠나!"
나츠메 이로하는 자신의 선배에게 이목이 쏠리는 상황 자체를 달갑지 않아했으나, 그녀를 제지할 마땅한 명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눈을 감은 채 길고 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린 대행. 꿈 하나만 믿고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게헨나의 의견에 동조하는 것도 그림이 썩 웃긴다만, 아오모리 미네 역시 그러한 견해를 부정치 못하고 있었다.
"저번에도 비대위 개최를 강행했다가 실각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여파가 가셨다기엔 아직 이르지 않나요? 대체 무슨 속셈이신 겁니까?"
"뻔한 이야기지! 이 참에 흔들리는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해 보겠다는 이야기 아닌가? 샬레를 명분 삼아 우릴 총학생회의 정치 놀음에 들러리 세우겠다는 소리 같다만, 우린 그 정도로 한가하지도 멍청하지도 않아! 이로하! 사츠키! 치아키! 준비해라! 돌아간다!"
그 때와 같은 상황.
그 때와 같은 반응.
그 때와 같은 결말.
격렬한 반응을 예상하긴 했어도, 막상 그 모습을 실제로 마주하게 되니 굳게 다잡은 마음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나나가미 린이 속으로 길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비대위가 파행으로 마무리되었던, 그 때 그 날과 같은 한숨이었다.
"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았어. 자리에 앉아 주겠어?"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끼어 든 쪽은, 재무실장 오키 아오이였다.
"...재무실장인가. 이런 허튼 소리를 더 듣고 있을 이유가 있나?"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네. 저번 비대위가 파행되었던 건 린 선배의 주장에 논리가 없었다고 그랬던 게 아니야. 당신들이 멋대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간 바람에 그렇게 된 거지."
색채 침공 때와는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그 때는 나나가미 린 혼자서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나섰던 것이었으니까.
불완전하게나마 총학생회의 모두에게 사실을 고하고, 도움을 청하고, 결론적으로 지지를 얻은 지금과는 달랐으니까.
총학생회장이 입었던 '독선' 이라는 옷은, 그녀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제 자신의 방식대로, 제 자신의 뜻대로 나아가려는 린의 발걸음은, 무의식 속에 머물던 총학생회장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이제 막 내딛은 셈이다.
"선배가 실각했던 것도, 단순히 비대위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니야. 총학생회와 사설 기업의 유착 정황. 그 배후로 의심받았던 데다가, 비대위의 안건 역시 그 연장선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탄핵되고 실각했던 거지. 그리고 그 사건은 선배가 아닌, 방위실장의 일탈이었던 것으로 종결되었어."
오키 아오이는, 하누마 마코토의 눈을 또렷이 마주보았다.
"총학생회장 대행은 색채의 침공과 그 이후의 수습 과정에서 모범적으로 대처했고, 그렇기에 총학생회에서 재신임 투표를 가결시켰기에 문제는 없어. 그리고 지금 제기된 안건 역시 임원회의에서 내부적인 동의를 얻은 채 상정된 거야. 그러니, 자리에 앉아."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로 이 모든 사람들을 불러모은거라면, 그거야말로 월권--"
"--정상적인 절차와 합의를 통해 통과된 안건이야. 그 과정에 월권 행위는 없었어.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 하더라도 이미 비대위는 열렸고."
아오이는 단호했다.
절차 상으로도, 권리 상으로도 아무런 하자 없는 상황에서의 그녀는, 그 어느 누가 오더라도 꺾을 수 없는 철벽이었다.
"가결시키던 부결시키던, 자리를 이탈하지 말고 정상적으로 회의를 통해 결정해. 정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번에도 파행시킨다면...총학생회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는 못 해.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대응하겠어."
아오이의 심경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린이 제시했던 근거들을 눈으로 확인했던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만큼은 그녀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색채가 침공해왔던 때에도, 그 이후의 복구 작업을 진두지휘했던 때에도, 나나가미 린은 묵묵히 맡은 바 소임에 집중해왔고, 이후로도 이빨 빠진 호랑이인 총학생회를 어떻게든 끌고 왔다.
또한 이전과는 달리, 린은 먼저 총학생회에게 양해와 협조를 구했다.
그것은 '총학생회장이 했던 것처럼, 앞장서서 무언가를 해야한다' 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녀 나름의 '존중' 이었다.
'총학생회장 대행' 이라는 직책의 방점을 '대행' 에 찍느냐, '총학생회' 에 찍느냐의 차이었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고.
그렇기에 린의 정치적 도박만큼이나 위태로운, 정치적 모험을 걸어보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키키킥. 아주 똘똘 뭉쳤군."
하누마 마코토는, 제법 의외라는 듯 실소했다.
"좋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들어주지. 허나 이번 비대위도 부결된 채 끝난다면, 만마전은 총학생회에 대해 그냥 넘어가진 않을거다."
뭇 사람들에게 있어 의외라면 의외겠지만, 만마전 의장 하누마 마코토는 생각보다 사리 구별이 되는 위인이었다.
행동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도, 이유와 타당함이 있다면 잠시 물러서야만 한다는 것도, 사람의 분위기라는 것도 제법 읽을 줄 아는 편이다.
그렇기에, 오키 아오이의 으름장에 순순히 물러나는 쪽을 선택한 것이리라.
"계속 해, 선배."
대놓고 '강짜' 를 부리던 마코토가 뜻을 굽히자, 그녀처럼 당당하게 나서려는 이는 쉬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었다.
회의실이 잠시 소강 상태로 접어들자, 아오이는 린을 향해 아무렇지 않은 듯 회의를 이어나가길 권한다.
"......정리 고맙습니다, 재무실장."
나나가미 린이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다.
"여러분의 이러한 반응도 모두 예상했습니다. 당장 저조차도...처음부터 믿었던 건 아니니까."
슬그머니 휴대폰을 단상 위에 내려놓았다.
아오이와 마코토의 대치 속에서 받았던 모모톡이, 아무래도 이 상황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만한 근거도 준비했습니다. 조정실장, 회의실 문을 열어드리세요."
린의 지시에, 문 옆에 서 있던 아유무가 회의실의 육중한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고 나자, 회의실 전체는 일순간 충격 어린린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침묵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으면서 누구 하나 예외랄 것 없이 모두를 잡아먹었고, 숨을 내쉬는 것조차 함부로 행할 수 없을만큼 무거웠다.
나나가미 린 역시도 문 쪽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키고, 이내 무거워진 입을 뗀다.
"...샬레의 고문 선생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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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다
D-8 파트도 이 이야기도...
일단 글자수제한 또 걸릴까봐 아예 적당히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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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타고 왔나
전적이 있어서 그런가 다들 린에게 엄청 까칠하게 나오네

더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