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S #배신 #쿠로코
원본 by 古代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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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장막이 내리고, 사람도 짐승의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침묵.
달빛이 어스름하게 길을 비추고 있었다.
가로등은 곳곳에서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명멸을 반복하고, 밤바람이 목덜미를 스칠 때마다 찌르는 듯한 냉기가 느껴졌다.
―키보토스에서 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 거리는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그곳에 존재했다.
"그립다…? 아니……."
내가 없어도 세계는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돌아오지 않았더라도 학생들은 자립해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돌아오는 것을 택했다.
그저 돌아와야만 한다는 초조함에 떠밀려 돌아왔다,
아니…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이곳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는지 측정할 방법은 내게 없다.
싯딤의 상자조차 없다.
나는 지금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일단 샬레로 갈까."
혼잣말을 내뱉으며 어둠 속을 걷는다.
나아갈수록 가로등도 줄어들고, 마침내 비추는 것은 달빛뿐이었다.
사람이 적은 길을 택한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모래 먼지 휘날리는 아비도스의 구시가지.
사막화는 내가 알던 시절로부터 그리 진행되지 않은 듯 보였다.
홀로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샬레를 향하던 중, 다시금 조금 밝은 장소로 나왔다.
지형도 대략적으로만 기억하고 있었기에, 문득 발견한 계단을 타고 고지대로 올라가 볼까 생각했다.
밤이라고는 해도 앞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이래 봬도 예전에는 지휘까지 맡았던 몸이다.
오래 떨어져 있었다 한들, 지리적 감각 정도는 금방 되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계단을 올라갔다.
그 꼭대기 너머, 조금 트인 광장 같은 곳에 벤치가 있었다.
그리고 키보토스 땅에 돌아와 처음으로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누구?"
내 발소리를 들었는지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흐릿한 빛에 비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이쪽을 일별한 그녀는 그대로 경직되었다.
"이런 심야에 산책? 학생이 너무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면…….
아니, 지금의 내게 무언가 말할 자격은 없나."
아무 말도 없이 떠났던 내가 뭐라고.
자조와 기피가 스쳐 지나가, 자기 말을 겹쳐 부정했다.
"…진짜야? ….유령, 아니지?"
그녀는 목소리를 떨며 가냘프게, 쥐어짜는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짜야. 적어도, 나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나를 증명할 수단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나는 분명 나를 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나일까?
이곳에 있는 나는 누구지?
그렇게 자문하고 있었다.
이미 "선생님"이라는 자리에서는 내려왔다.
그럼에도 돌아오는 것을 택했다.
아니, 택해 버리고 말았다.
조금 간격을 두고 숨을 가다듬은 뒤, 말을 내뱉었다.
"…오랜만이야."
너무 담백한 것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이상의 적절한 말을 나는 알지 못했다.
"…윽!!"
그녀는 숨을 삼켰다.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응…오랜만이야……. 선…생…님…“
"오랜만, 이네.“
"…응…오랜만이야…"
그녀는 내 말을 반추하듯 곱씹었다.
기쁨, 슬픔, 분노, 불안 그 무엇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표정이 찰나 사이에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곧 평정을 가장했다.
"…선생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결코 내가 "없었던" 시간은 언급하지 않은 채, 그녀는 "평소처럼" 행동하려 애썼다.
알기 쉽게 나를 배려해 주고 있었다.
"…조금, 밤바람을 쐬러."
허세 섞인 대답이었지만, 사실이 아닌 것도 아니다.
여기서 학생과 마주친 것은 뜻밖의 오산이었으나, 시로코…또 한 명의, '테러'라고 불리는 쪽의 시로코였던 것은 요행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급한 일은 아니지?"
온화한 말투로 책망하는 기색 없이 그녀가 묻는다.
힐문당하는 것보다 마음이 불편하다.
혼나는 쪽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급한 일은 없어. …그저 샬레로 향하던 중이었으니까."
그렇게 답했다.
둘 다 사실이다.
조금 더 그럴듯한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내게 그럴 여력은 없었다.
"응, 옆에 앉아."
그녀는 벤치에 걸터앉아 한쪽 자리를 비워주었다.
통통, 벤치를 가볍게 두드리며 시선을 보낸다.
거절할 이유도 없었고, 거절할 수도 없었다.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
하지만 지금 여기에 선생님이…당신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적어도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해."
그녀는 내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시선을 돌려 보니 어깨도 가냘프게 떨리고 있었다.
"추워?"
나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힘을 주어 쥐자 그녀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괜찮다고 말했어야 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응, 춥지 않아. 추위에는 익숙하니까.
…선생님, 선생님은 춥지 않아?"
책망하지 않고 그저 감싸 안듯, 온화한 어조로 묻는다.
왜 그녀는 나를 탓하지 않는 걸까.
그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고 아무 말 없이 떠났던 나를 왜 지금도 여전히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는 걸까.
"춥지 않아. …식어버린 건 내 마음뿐이야."
무심코 한 말이었다.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늦어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말았다.
"…괜찮다면 대답해 줘. …많이 힘들었는지, 그것만 알려줄래?"
달빛 아래에서 그녀가 고요하게, 조금은 슬픔이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다.
"…응."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쉰 목소리를 쥐어짜 내듯 대답했다. 그 이상은 답할 수 없었다.
"그렇구나.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아도 돼.
…살아 있었어.
…일단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좋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
우울함을 머금은 미소를 띄운 옆얼굴.
선생님과 학생이 아니었다면 사랑에 빠졌을 정도로 미려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비애가 너무나도 짙었다.
그녀는 원래 세계에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이곳 키보토스에서 소동을 일으켰으며, 그쪽의 "선생님"마저 잃었다.
그럼에도 홀로 살아남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내가 사라졌다.
죄책감은 막대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 선생님, 지금 정말 괴로워 보이니까."
내 마음을 꿰뚫어 본 듯한 말이었다.
"이거 참. 독심술이라도 공부했어?"
메마른 웃음과 함께 그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면을 모두 읽히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지금의 내게는 거절이나 심문, 증오가 훨씬 편하게 느껴진다.
허용과 자애가 더 고통스러웠다.
"…아마 선생님은 왜 탓하지 않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탓해봤자 괴로울 뿐이야.
…지금뿐이라 해도 돌아와 줘서 고마워."
두 손을 살며시 맞잡으며, 그녀는 고개를 숙인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은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
그래서 지금 '고마워'라고 말한 거야."
그녀의 미소는 조금 전과는 달랐다. 비애보다는 충족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책망해 주는 편이 차라리 마음이 편할 텐데."
불쑥 진심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배려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탓한다고 해서 잃어버린 것이 돌아오지는 않아.
…과거는 돌아오지 않아.
나아가기 위해서 받아들이는 거야. …선생님이 이런 건 더 잘할 줄 알았는데."
맞잡은 두 손을 그녀가 꽉 쥐었다.
이래서야 누가 선생님인지 알 수 없겠다는 자조가 든다.
"…그렇네. …나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이 계속 나온다.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것이 내 마음 깊은 곳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니, 그렇지 않아.
…옛날의 선생님은 좀 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자신조차 의심하고, 스스로를 탓하는 것처럼 보여.
…맹신하고 돌진하다가…죽어버릴 것 같지는 않게 되었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나아가고 있어.
선생님이 원하는 방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내 손을 잡은 채 일어선다.
"…샬레 가는 거지? 같이 가도 될까?
…선생님, 예전에 갖고 있던 태블릿도 없고, 총도 없잖아. 맨몸으로는 위험하니까."
한 손으로는 내 손을 꽉 잡고, 다른 한 손에는 그녀의 총을 어느샌가 들고 있었다.
"…이런 심야에는 아무도……."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녀가 내 입술에 검지를 대어 말을 가로막았다.
"방심은 금물. …그런 점은 지금도 내버려 둘 수가 없네."
조금 부루퉁한 표정이었지만, 화보다는 걱정에서 우러나온 표정이었다.
"…그렇네. 그럼 부탁할게.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나는 그저 불안함을 입 밖으로 냈다.
"…나는 아직 '선생님'일까. …다시 '선생님'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자격 따위는 없다고 어딘가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곁에 있는 학생에게 물었다.
"…? 선생님은 선생님이잖아?"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하는 바람에 맥이 빠졌다.
"…선생님은 선생님이야.
…선생님은 분명히 여기에 있어.
어디에 있었는지, 무엇을 했는지는 몰라.
하지만 여기에 있는 당신은 나의 선생님이야.
…은행이라도 털었어?"
마지막 한마디와 함께 그녀가 후후,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니, 강도질은 안 했어. 성실한 시민이라고.“
"…변하지 않았네."
뭐라 말할 수 없는 신비로운 안도감을 얻고 말았다.
은행 강도라는 단어로 마음이 놓이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변한 건 나뿐인가."
문득 그렇게 읊조리자 그녀가 손을 끌어 고지대 난간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조금 전의 나랑 똑같은 말을 하네.
아비도스는 변하지 않았어.
아비도스의 모두도 그래.
모두 살아있고, 평범하게 지내며 행복해 보여.
…아비도스의 빚도 그대로지만.
…변한 건 나뿐.
모든 것을 잃고, 그럼에도 맡겨져서 여기에 있어.
세계에 홀로 남겨졌다고 생각했어."
후우, 숨을 내쉬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변한 게 나와 선생님뿐이라면 나쁘지 않아.
선생님은 혼자가 아니야.
적어도 둘은 있잖아."
아주 조금 기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고했다.
"…지금의 나는 '선생님'조차 아닐지도 몰라.
아주 오랫동안 키보토스를 떠나 있었어.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는 바라고 있어.
하지만…지금의 나는 교육자로서 너무나 파탄 나 버린 기분이 들어."
갑자기 불안감이 몰려든다.
고지대에서 내려다보는 아비도스의 거리,
희미하게 켜진 가로등.
그것들은 예전과 다름없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것은 변해버린 두 사람뿐.
마치 세계에서 버림받은 이물질 같다.
"응, 파탄이라면 예전부터 그랬어.
과도한 자기희생.
자신의 가치에 대한 과소평가.
자신의 자유에 대한 부정.
그러니까 파탄 따위는 이제 와서 새삼스러워."
듣고 보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면 신경 쓸 필요는 없나…? 라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선생님은 선생님이야.
당신이 선생님이 아니게 된다고 해도, 나에게는 선생님이야.
이제 더는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
"…그렇구나. 갑자기 사라져서, 미…"
말을 마치기 전, 다시 한번 그녀의 검지가 내 입술을 막았다.
"사과 금지.
…사과할 거라면 다른 아이들에게 해.
모두 걱정했으니까.
…나는 당신이 살아있다면 그걸로 됐어."
맞잡은 손을 강하게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키더니, 어느샌가 팔짱을 끼고 있었다.
"가자, 선생님. 샬레로.
…선생님이 없어도 당번 아이들은 매일 왔었으니까.
내일 아침에 온 아이에게 서프라이즈를 해 주자."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그녀가 말했다.
죄책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조금 어깨의 짐이 내려간 기분이 들었다.
"…동트기 전에는 도착하면 좋겠네."
천천히, 세계로부터 소외된 두 명의 이물질은 팔짱을 낀 채 걷기 시작했다.
댓글 5

무슨내용인가 했더니 선생이 잠시 키보토스를 떠났다가 돌어온거구나
다음편 넘 기대되는데 뭔가 단편같아...
다음화있어??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끝내도 여운 있어서 좋지 말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