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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고 기반 번역

에덴조약 2장까지의 스포일러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그럼에도, 그녀는 말했다.

에스프레소의 향기가 휴게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반구형으로 파여 컵에 놓인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뜨거운 커피와 만나 녹아 섞인다. 숟가락을 찔러 한 입만 맛본다. 당분과 카페인이 지친 뇌를 달래주는 듯했다. 시시한 회복에 이용하다니, 분명 이 『교재』를 전수해준 그녀가 알면 화를 내겠지.

아포가토. 그 사색적인 로맨티시스트가 극찬한 단맛과 쓴맛의 융합. 분명 어디에나 있는 지극히 평범한 1학년생이 하나의 이상으로서 말한 경지가 이것이다. 그녀가 어떤 뉴스를 보고 마음이 아팠는지 헤아리긴 어렵지만 나에게 있어서, 『선생님』이라는 『어른』에게 있어서 그녀가 아포가토를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한 건 분명 기뻐할 사실이었다.

"... 낙원에 도달한 자의 진실을,"

금속색으로 둔하게 빛나는 수저를 휘젓는다. 하얀 아이스크림에 짙은 갈색의 궤적. 섞이지 않는 색채. 불가능한 증명.

"... 그만두자."

녹아내린 그것은 확실히 맛있었지만, 아이스크림이 너무 녹아 버린 것 같았다. 커피 머신에 손을 뻗은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아주 조금 쉴 생각이었는데 시곗바늘은 크게 움직이고 있었다.

큰일을 하나 정리하고 오늘은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예정이었다. 사무실과는 거리를 두고 휴게실에서 멍하니 있다가 뭔가 생각이 나면 외출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책상 위에는 서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창문으로는 석양이 비치고 있다. 이제 외출하기에는 늦은 시간이다. 아침에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같이 산 쿠페빵이 아직 남아있으니 저녁은 그걸로 결정했다. 내일, 그래. 내일 제대로 된 걸 먹으면 되겠지. 아직 구호기사단에 신세를 질 만큼 지치지는 않았을 터. 키보토스에 온 이후 자신의 체력적 한계를 넘는 일은 많이 있었기에 왠지 과로 라인은 체감할 수 있게 되어 버렸다. 린이나 히나 같은 일상적으로 바쁜 학생은 당연하게 가지고 있는 스킬이겠지. 나도 선생님으로서 약간의 무리는 제어할 수 있게 될 필요가 있었다.

서류를 한 다발 들어 올린다. 클립이 고정된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지금까지의 경험중에서도 새롭고 조금 씁쓸한 기억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낙원 ―― 수다를 좋아하는 그녀가 떠오른다. 수영장에서의 밀담이 먼 과거의 일처럼 여겨졌다. 체육관에서의 소동은 조금 전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말이다. 꾸깃. 서류에 주름이 잡혔다. 아무래도 힘을 줘버린 모양. 천장을 올려다보며 길게 숨을 내쉰다. 결국 빙글빙글 도는 사고가 거기에 빠져드는 것 같았다.

팔할은 녹아버린 아포가토를 내려다본다. 숟가락을 휘적이자 뜬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작은 조각이 소용돌이를 그리듯 회전했다. 이런 디저트가 있어. 그렇게 말하면 그녀는 어떤 얼굴을 할까? 냉소할까? 세상을 질척거린다고 말한 아이는, 이것 앞에서도 공허함과 추함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낙원 ―― 헛된 울림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미소노 미카? 헤에. 티파티와도 인연이 있군요. 선생님."

착실하게 느껴지는,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귀에 닿는다. 황급히 뒤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내가 키보토스에 온 첫날 만난 아이 중 한 명. 검은 재킷, 흰색을 바탕으로 한 점퍼, 가슴에는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의 휘장. 푸른 넥타이가 오늘도 시원스럽게 보인다. 투사이드 업으로 한 머리가 산뜻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황혼과도 닮은 듯한 색의 두 눈이 빤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언제나 성실하고, 노력가이고, 그렇기에 조금 괴롭히는 거로 느껴질 수 있는, 손해 보는 역할의 소녀. 나의 소중한 학생 중 한 명.

"안녕, 유우카. 샬레에 용무라도?"

"안녕하세요, 선생님. 상태를 보러 왔을 뿐이에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또 서류를 쌓아둔건가요? 정말이지, 라며 유우카는 호들갑스럽게 한숨을 내쉬고 나를 노려본다. 도와주지 않을 테니까요, 라는 압력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유감이다. 총학생회에 제출해야 할 것들은 이 책상뿐만 아니라 샬레의 책상 위에도 대량으로 흩어져 있다. 이제 슬슬 손대지 않으면 큰일인데.

"왜 사무 일이 이렇게까지 되나요?"

"아하하. 어쩌다 보니 말이야. 다른 일이 있으면 쌓이기 쉬워서."

"선생님은 어른이시니까 어른답게 계획적으로 일하세요."

"응. 명심할게."

"너무 가볍게 대답하시는데요. 정말이지..."

유우카는 가볍게 서류의 산에 시선을 보내고 나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트리니티랑 관련된 것밖에 없잖아요. 정말로 도와드릴 수 없어요. 밀레니엄과 제휴한 데카그라마톤 관련 보고서라도 있다면 별개였겠지만..."

"나는 유우카라면 봐줘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안 돼요! 저, 세미나니까요. 알고 계시는건가요?"

"물론. 회계잖아."

"맞아요. 이 미묘한 시기에 세미나의 사람이 샬레까지 트리니티 관련 문서를 뒤지러 왔다는 소문이 나면 어떡해요? 선생님도 정보통들에게서 약간의 의심을 받는 상황이라구요. 샬레는 중립일 텐데 트리니티를 편들었다고."

"잠깐 공부 좀 봐줬을 뿐이야."

"물론 그렇겠지만! 선생님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런 착각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짓을 하고 있어요! 자각해 주세요."

히나에게도 한소리 들었던 기억이 난다. 유우카에게도 걱정을 끼치고 말았다. 그래도 일단 믿어준다니 기쁘다.

"하아. 설교하러 온 게 아닌데..."

또 귀엽지 않은 모습을... 하고 유우카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언제나 유우카는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말하면 진지하지 않다, 경박하다고 혼날 것 같아서 생각으로만 그친다.

"공부를 가르치러... 라고 했나요? 잠시 트리니티에서 합숙하고 있었다고 가볍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만, 또 맹활약했죠?"

"난 거의 아무것도 안 했어."

"겸손... 이라는 느낌도 아닌 것 같네요. 신기하네. 별로 기분 좋지 않은 표정이에요."

보충수업부를 둘러싼 일련의 소동에서는 정말 나는 큰일을 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모두를 위해 준비한 건 히후미였고 공부도 진심이 된 하나코가 엄청나게 잘 가르쳤다. 아즈사도 코하루도 그렇게 낮은 성적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누구도 불평하지 못하게 고득점을 따냈다. 마지막 하룻밤을 위해 준비한 건 아즈사고, 물론 그 새벽의 시나리오를 그려낸 것은 하나코다. 다들 정말 잘해냈지. 보충수업부가 한 마음으로 고난을 이겨내는 모습은 나는 거의 지켜보기만 했다. 모의시험 준비의 도움이나 수업, 소동 때 지휘 같은 걸 조금 도와주긴 했지만 정말 사소한 일이다. 보충수업부는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그 일은 어떤 것도 내 마음을 우울하게 만드는 게 아닌, 오히려 기뻐해야 할,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 그럼 선생님은 누구의 편이야?

―― 지금은 좀, 선생님으로부터는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조금 가슴이 아프다. 끝나버린 사건, 그때는 닿지 않았던 목소리와 손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든다. 지금은 유우카가 모처럼 와주었으니 너무 어두운 생각에 잠기면 안 되겠지.

"맞다. 유우카, 아이스크림 많은데 하나 먹을래?"

"... 아이스? 가리가리군인가요?"

"아니, 하겐다즈야."

"하겐다즈를... 많이?"

선생님, 하고 유우카가 이쪽을 노려본다. 좋지 않아.

"이번 달은 말랑말랑에도 과금 안 했고, 장난감도 안 샀어."

"나중에 가계부를 봐도 될까요?"

"윽..."

"역시 낭비하고 있었죠!"

애당초 가계부를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하면 더 혼나겠지. 지적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무적인 일은 아무래도 늦기에 십상이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려면 아무래도 몸을 깎아가며 하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게 된다. 총학생회에도 여유가 없고, 내가 샬레의 고문이 된 이후로 이는 더 어려운 문제다. 고양이 찾기 같은 작은 일까지 주워 온다고 쓴소리를 들은 적도 있지만 역시 지금의 스타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은 나였다.

―― 고양이 찾기, 동네 청소, 택배 배달 등등 편리한 심부름센터 샬레의 대활약!

"하아, 정말이지. 오늘은 선생님도 피곤하신 모양이고, 못 본 걸로 할게요. 하나 주실 수 있나요?"

"물론. 유우카도 세미나 일로 피곤하지? 단 건 분명 힐링이 될 거야."

"그건, 네. 그렇네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고 유우카는 휴게실의 냉동고를 열고, 바닐라만 잔뜩! 하는 놀람의 소리를 낸다.

"싫었어? 바닐라."

"좋아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많이..."

"그냥 먹거나 아포가토로 해 먹거나 해서 말이야."

"아포가토.... 아아, 그건가요? 녹아버렸는데요."

하겐다즈의 바닐라 맛을 하나 가져온 유우카가 내 컵에 시선을 보낸다. 아이스는 완전히 형체를 잃고 걸쭉해진 연갈색 액체가 감돌고 있다.

"끔찍하게 됐는데요. 맛있나요?"

"나는 좋아하려나."

"그러면 제대로 먹어줘야죠."

"... 응. 확실히 그렇네."

컵을 기울여 조금 차가운 액체를 전부 목구멍 속으로 흘린다. 달콤하면서도 확실히 입안을 자극하는 쓴맛. 바닐라와 커피가 섞인 향기. 피로가 쌓여서 그런지 녹았어도 확실히 맛있다고 느껴졌다.

"녹기 전에, 라고 말하고 싶지만... 뭐, 낭비하지 않는 것도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네요. 커피머신 빌려도 될까요? 커피죠, 끼얹는 거."

"내가 준비할게."

"아뇨, 여기꺼 쓰는 건 익숙하니까요. 신경 쓰지 마세요."

흥흥거리는 다소 맥 빠진 콧노래와 함께 유우카는 척척 준비를 진행해 나간다. 이왕이면 지금 저녁을 해결하자고 나도 쿠페빵을 챙겨왔지. 개봉하고 한 입 베어 물자 익숙한 맛에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설마 그건 아니겠죠. 저녁밥."

"......"

"선생님!"

유우카가 두 손을 허리에 짚고 이쪽을 노려본다. 조금이지만 귀엽다고 생각해버렸으려나. 게임개발부 아이들을 상대할 때도 생각했지만, 유우카는 보살핌이 많은 구석이 있다. 냉혹한 산술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편의점에서 뭔가 탄수화물 말고도 사 와야죠. 식사를 소홀히 하는 건 선생님의 나쁜 버릇이에요. 다른 애들도 말하지 않던가요?"

"무심코 말이야."

"무심코가 아니에요. 정말이지 진짜. 자, 일어나주세요!"

그대로 겨드랑이에 손이 들어와 억지로 세워져 버렸다. 키 차이 때문에 발돋움하고 있는 유우카가 귀엽다. 가까이에서 시선이 교차한다. 유우카의 올곧은 눈동자는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움직이긴 해야 할 모양이다. 조금 전까지 쿠페빵으로 한 끼 때우려고 했는데 신기했다. 급양부의 후우카에게도 최근 혼난 지 얼마 안 됐고, 확실히 슬슬 제대로 된 밥을 먹을 때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는 해도 모두 편의점에서 해결하게 되겠지만.

"어른의 카드는 챙겼나요?"

"응, 괜찮아."

"네. 그러면 천천히, 넘어지지 않게 사오세요. 저는 준비되면 알아서 먹을 테니까요."

"고마워. 갔다올게."

"네, 다녀오세요."

팔랑팔랑 손을 흔드는 유우카의 배웅을 받으며 휴게실을 나선다. 조금 늦은 시간이다. 샬레 거주구는 조용했다. 복도를 벗어나 샬레 근무의 든든한 아군 엔젤24로 향한다. 닭가슴살이 듬뿍 들어간 샐러드와 야채수프, 그리고 영양 음료와 에너지 드링크를 구입한다. 소라는 오늘도 조금 긴장한 모습으로 계산을 마무리해 주었다. 슬슬 마음을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꽤 어려운 모양이다.

짧은 귀갓길, 밖을 보면 해는 거의 지고 있었다. 황금빛 해질녘은 짧은 시간밖에 볼 수 없다. 오늘이 끝나 버리는 것에 조금 적막감이 든다. 오늘은 일단 휴일이었는데. 내일부터는 또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나날이다. 일은 산적해 있다. 기를 쓰고 임해야 한다. 뺨을 한 번 두드리니 조금 기력이 회복된 듯했다. 이러면 또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을 기분이 든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휴게실의 문을 열자 방에는 커피 향이 가득했고 마침 유우카가 커피를 컵에 따르고 있었다.

"아, 어서 오세요. 선생님. 음, 잘 사 오셨나 보네요."

"난 어른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렇다면 어른답게 더 정신 차려주세요."

가볍게 웃으며 유우카가 컵에 숟가락을 꽂는다. 나도 의자로 돌아와 탁상에 사 온 식사를 늘어놓았다.

"헤에. 야채 위주네요. 아, 에너지 드링크."

"사면 안 됐나?"

"아뇨. 밀레니엄에서는 물 같은 거니까요."

"그것도 어떨까 싶은데."

"확실히."

키득키득 유우카와 웃는다. 상시음용 중인 하레가 잠깐 떠올랐다.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 ―― 매우 좋은 배움터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비교적 얕지만 트리니티, 게헨나와 나란히 서 있는 3개 학원 중 하나. 그래서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지금의 여러 역학관계가 위태로운 시기, 분명 세미나 또한 뭔가 생각이 있을 것이다. 시원스런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하고 있을 유우카의 업무량도 굉장해져 있을 게 틀림없다.

"유우카 요즘 힘들지 않아?"

"아뇨. 누군가가 나쁜 아이들을 인솔해서 세미나를 털러 오거나 하는 일도 없고?"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괜찮지만. 정말 큰 일이었거든요."

그 결과 얻은 G.Bible의 알맹이가 그런 것이었다는 건 유우카에게는 영원히 비밀로 하는 게 좋겠지. 이후 게임개발부의 노력을 보면 거짓말은 아니었다는 게 기분 나쁘다.

"갑자기 힘들지 않냐니, 이거랑 관계 있는건 금방 알 수 있어요."

유우카가 책상 위의 자료를 손가락으로 두드린다.

"아무리 평화조약이라고 해도 무방비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럼 역시 바쁘구나."

"트리니티만 편드는 선생님에게는 알려주지 않을 거예요."

"유우카..."

"농담이에요. 조금 부럽긴 하지만."

그녀는 아포가토를 한입 물었다. 그 표정이 살짝 풀린다.

"음. 실패하기 힘든 조합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역시 맛있네요. 어떤 소재라도 괜찮다는 것도 있지만."

"맛있어?"

"네, 엄청. ... 왠지 꽤 기쁜 거 같네요? 선생님, 그렇게 좋아하나요? 이거."

밀레니엄 학생도 그렇게 말해주는 것에 약간의 구원이 있는 기분이 들었다.

―― 나는 정말 진심으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게헨나가 싫어.

나도 수프를 데우면서 샐러드를 먹는다. 채소를 제대로 섭취하는 건 오랜만이네.

"다른 사람에게 들은 걸 인용하는 거지만, 커피랑 바닐라 아이스크림. 대극에 있는 것 같은 둘이 합쳐져 하나의 맛에 도달하는 건 멋지지 않을까 싶어서."

"아아. 과연, 그건 뭐랄까, 엄청 달짝지근하네요. 로맨틱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 애가 들으면 좋아할지도 모르겠네."

"헤에... 별난 아이네요. 음, 맛있어."

유우카는 즐거운 표정을 지은 채 조금씩 에스프레소를 끼얹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입으로 옮겼다. 기분이 좋아 보여 다행이다. 내가 먹는 밥도 삼할정도 맛있게 느껴진다.

"선생님이 그걸 걱정한다는 건... 트리니티에서 게헨나 같은 건 싫다는 애라도 봤나요?"

"... 노코멘트로."

시선을 돌리면 알기 쉬우니까요, 라고 유우카는 어깨를 떨며 가볍게 웃었다.

"어른들은 다 그런가요? 여유 있는 척해도 좋을 거 없을 텐데."

"하하. 선생님이니까 말이야. 모두를 이끄는 어른이 허둥대면 안 된다고 할까."

―― 앞길(先)을 산다(生)고 쓰고 『선생님(先生)』... 즉, 『이끌어주는 역할』이라는 거지?

기억을 자극하며 스쳐지나가는 금빛 눈동자. 분홍빛 머리.

"어쩔 수 없죠. 엄청 오래됐으니까요. 게헨나와 트리니티가 사이 나쁜 건."

"그러려나.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해도 되는 걸까. 나는..."

―― 나는 게헨나를 키보토스에서 지워버리고 싶어. 정말 단지 그것뿐이니까.

"나는, 그래도 ――"

"선생님."

아름다울 정도로 착실하게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돔을 중간에서 반만 먹은 유우카는 컵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까지 다가와서 ――

"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하셨나요?"

"... 어?"

해가 지고 황혼이 찾아온다. 그 따스한, 어둠을 살짝 닮은 눈동자가 나를 붙잡고,

"오늘 만났을 때부터 선생님은... 엄청 ――"

부드러운 것이 뺨에 닿는다. 그게 손바닥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유우카의 따스한 두 손.

"―― 엄청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문득 주위가 어두워진다. 어두운 피부색. 손가락으로 시야를 가린 것 같다. 눈꺼풀에 부드러운 것이 닿고 있다.

"자각했죠? 그래서 여기 틀어박힌 건가요? 걱정끼치지 않으려고."

뺨을 주물러진다. 안 돼요, 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아니, 요즘 바빴으니까. 오늘은 느긋하게 지내려고 했을 뿐이야."

"네, 알겠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일 안색이 아니니까요, 선생님."

눈위에서 손가락이 치워진다. 정말 지근거리에 유우카의 눈동자가 있었다. 올곧게, 의지를 관통하는 두 눈. 아주 눈부실 정도로.

"선생님의 칠칠치 못한 점은 저는 질릴 정도로 보고 있어요. 새삼스럽게 강한 척해도 소용없으니까요."

"아하하. 아무렇지도 않아. 진짜로."

"고집쟁이."

툭툭, 하고 가볍게 이마를 부딪혀온다. 서로의 앞머리가 자연스럽게 얽혔다 풀어진다. 유우카는 쓴웃음을 짓고 있는 듯했다.

"그럼 선생님은 괜찮다는 걸로 됐어요."

"그래?"

"네, 제가 착각했으니까요."

으음, 하는 의문의 목소리를 유우카는 무시했다. 잠깐 나에게서 거리를 뒀다가 답답해진 듯 발만 사용해서 솜씨 좋게 신발을 벗고는,

"소파 등받이, 젖힐게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뒤로 젖혀지는 등받이. 끼이익, 하는 김빠진 소리. 거의 누워있는 모습이 된 나에게,

아주 천천히. 다시 모든 시야가 가려진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반신 전체에 부드러운 무게감을 느낀다. 유우카가 눌러오는 것이라고 뒤늦게 이해한다.

"――"

뭔가 말하려고 해도 얼굴이 가슴으로 압박받고 있어서 우물거리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다. 실내 공기와는 확연히 다른 포근한 몸의 따스함을 느낀다. 초조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도 감각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대신 온몸의 긴장감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온천을 독점해도 이 정도로 피로가 풀리지는 않을 듯한, 미지의 감각. 팽팽했던 것이 단번에 느슨해져 버릴 듯한 느낌. 이건 위험해.

"선생님. 손, 등뒤로 해주세요."

허공을 헤매던 자신의 손이 천천히 들어가야 할 곳에 들어간다. 가늘다. 그런 건 알고 있었을 텐데 유우카의 몸은 왠지 슬플 정도로 가냘팠다. 딱딱한 정장과 셔츠 너머로 따스한 부드러움을 느낀다. 유우카의 냄새. 그런 것을 느끼며 걸쭉하게 생각이 녹아드는 기분이 들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갑게 얼어 있던 것에 비로소 열이 닿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선생님은 거짓말쟁이예요. 선생님에게는 전에도 포커로 속았었죠."

몸을 90도 굴려 옆으로 누운 모습이 된다. 유우카도 내 등과 뒤통수에 손을 둘러 꽉 껴안아 왔다.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건 정말로 좋지 않은 일이라고. 가볍게 유우카의 등을 두드린다. 그녀는 어깨를 작게 떨며 웃고 있는 듯했다.

"이거. 다른 애들이 보면 큰일 나겠네요. 선생님, 찔릴지도?"

손질하듯 머리를 쓰다듬는다. 정말 좋지 않다. 유우카가 이 방에 들어온 것처럼 누군가가 올 가능성은 있다. 나는 오늘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기에 볼일이 있는 아이가 찾아올 가능성은 0이 아니기는커녕 높다. 이런 걸 보여주면 여러 가지로 끝나 버릴지도 모른다. 나는 어떻게 된 걸까. 평소에는 이렇게까지 방심하지 않았을 텐데. 역시 상대가 유우카였기 때문일까. 완전히 신뢰하고, 안심해서, 무방비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고.

―― ... 마음의 내용 같은 건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밀레니엄의 귀재인 그녀라면, 슬픔도 분노도 모두 인수분해 해주겠다는 따위의 이상한 말을 하는 이 아이라면, 그 말에도 정면으로 증명해내려고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버린다.

"힘. 빠졌네요. 편하게 있어 주세요. 선생님은 억지로 안겼을 뿐이니까요."

"――"

"10초예요. 그것뿐이라면 분명 괜찮을 테니까."

조용해진 휴게실에 유우카의 여유로운 카운트다운이 울린다. 하나 셀 때마다 가볍게 등을 두드린다. 1초보다 훨씬 긴 1초. 나는 유우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마치 떠나기 싫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자기 행동의 의미를 이해한 것은 움직인 뒤의 일이었다. 유우카는 내 머리를 꽉 껴안았다.

"5, 4―― 잊어주세요. 사실은..."

빙글빙글 어지러웠던 마음이 멀어져간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질투가 조금 났어요.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마음을 써준다는 게."

평소보다 맑지 못한, 그러면서도 열기를 품은 목소리. 농담이에요, 하고 유우카는 말을 취소했다. 그 속마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 유우카의 포옹이 더 강해지고...

"―― 1, 0 ......"

서로의 팔에서 힘이 빠진다. 마지막은 조금 빠른 느낌이 들었다. 팔을 풀고 나서도 잠깐, 정말 조금이지만 유우카에게 몸을 맡겼긴 해도.

"... 안 돼, 유우카. 이러면."

나는 쓴웃음을 짓고 있었을까? 몸을 일으켜 어떻게든 그럴듯한 말을 던져본다. 유우카는 가만히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재미있다는 듯 살짝 웃었다.

"... 네. 그렇네요. 선생님은 역시 괜찮았던 것 같고. 제 착각이었어요."

나를 바라보는 유우카의 눈동자는 올곧고, 말과는 달리 잘못은 하지 않았다는 듯 맑고 투명한 게 뭔가 치사하다고 느껴졌다.

"자, 선생님. 저녁이 아직 남아있어요. 건강에 신경 쓰셔야죠. 제대로 드시지 않으면, ―― 아! 아이스크림 녹아버렸어..."

완전히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유우카를 뒤로 하고 나는 소파 등받이를 다시 올렸다. 그 삐걱거리는 소리는 조금 전과는 달리 유난히 얼빠진 느낌으로 울리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가장 가까운 지하철 앞까지 유우카를 배웅했다. 그녀는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나도 바깥바람을 쐬고 싶은 기분이라고 전하자 순순히 배웅하는 것을 양해해 주었다. 가는 길에 유우카는 기분이 좋은 듯 이상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슨 노래? 하고 묻자 자신만만하게 오리지널 곡입니다. 라고 말해 버렸다. 귀엽네, 라고 해줬더니 오늘의 여유로운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얼굴을 붉혀버려서 정말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의 D.U.를 천천히 걸어 지하철에 도착한다. 헤어지기 전에 유우카는 집게손가락을 세우고 한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적에게 소금을 보내는 것 같아서 싫지만요. 선생님."

그 표정에는, 미소에는 확실한 신뢰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설령 모든 게 엉망이 되더라도, 선생님은 눈을 떼지 말고 지켜보다가 그래도 손을 뻗어주세요."

"응. 그렇네. 무조건 그렇게 할게. 약속이야."

"... 그리고, 너무 트리니티만 편들지 마세요. 밀레니엄도 아주 좋은 학교니까요!"

"물론. 밀레니엄도, 유우카도 말이야."

역의 시끄러움이 더해진다. 다음 전철이 찾아온 모양. 내가 그쪽으로 눈을 돌린 그 순간.

꼬옥

부드러운, 한순간만의 포옹. 시선을 황급히 되돌렸을 때 유우카는 이미 춤추는 듯한 걸음으로 전철에 올라탄 후,

"선생님! 다음에는 밀레니엄 사이언스 스쿨에서 봐요! 그럼 또 다음에!"

닫히는 문에 멍하니 대답도 해주지 못한 채, 함박웃음을 지은 유우카를 태우고 전철은 달려갔다. 나는 그 모습을 배웅하며 잠시 서 있었고,

"애인이신가요? 사이가 좋은 거 같아 다행입니다."

역무원이 미소를 띠고 싱글벙글하며 말을 걸어올 때까지 완전히 얼어붙어 버렸다.

"아닙니다, 저는 선생님이고 ――"

"아뇨아뇨. 말씀하시지 않아도 압니다. 그도 그럴게,"

역무원은 내 뺨을 가리키며 말했다.

"눈물 자국이 남아 있잖아요. 그 정도로 헤어지기 힘들었겠죠."

완패했구나, 하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나는 비로소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소설모음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2463136

원본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6537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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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2.10.20번역

스포) 소설핫산) 하야세 유우카는 위로하고 싶다

#하야세 유우카#소설
좋아요 0댓글 14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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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P
yokitimeira작가
게시물 12개
ㅇDC
ㅇㅇ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pixiv
게시일2022.10.20 21:02
조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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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4

나
ㅇDC
ㅇㅇ122.10.20

위로 하고 싶대서 기승위일 줄

ㅇDC
ㅇㅇ작성자22.10.20

올라타긴 했지

ㅇDC
ㅇㅇ22.10.20

좋다 이런 분위기

ㅇDC
ㅇㅇ222.10.20
ㅇDC
ㅇㅇ322.10.20
디시콘
ㅇDC
ㅇㅇ4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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