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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어른이란 존재는 타인에게 귀감이 되어야 하는 법. 이 사실은 그 어느 곳에서라도 통용되는 만고불변의 진리이지만, 학생들로 넘쳐나는 학원도시 키보토스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른. 좋든 나쁘든 성장의 끝에 도달한 존재. 세상에 대해 책임을 질 의무가 있는 존재.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의 무게를 느껴야만 하는 존재.
그리고 선생. 학생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줘야 할 믿음직한 어른. 언제나 올곧은 진심으로 학생들을 대해줘야 할 책임감있는 어른.
......같은 소리는, 지금의 나에겐 [ 해당없음 ] 이다.
* *
계기는 멍청할 정도로 단순했다.
그 날은 유달리 폭발적인 양의 서류가 쌓여있던 날. 유별날 것도 없던 철야작업 중 문득 돌아가버린 뇌가 발단이었다.
이 정도의 서류라면 일하다가 죽어버릴지도 몰라. 내가 일하다가 죽어버리면 아이들이 슬퍼해줄까? 어라, 궁금하니까 한번 죽은 척을 해볼까? 아냐, 다음 날 당번인 학생이 기분좋은 아침 댓바람부터 졸도해버릴지도. 어쨌든 죽음이란 건 키보토스에선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법이니까. 응, 이건 안되겠다. 주변 사람이 무너져버리는 데에 트라우마가 있는 아이들도 있으니까. 그럼 심각도를 낮춰서, 선생 그만 두는 걸로 할까? 평범하게 일하다가, 당번인 학생에게 '나, 선생 그만 두기로 했어' 라고 무덤덤하게 이야기하고 반응 보기. 나야 뭐, 그저 단순한 선생님일 뿐이니까 학생들의 충격도 덜할거고...좋아, 이 정도면 괜찮겠다.
대충 이런 흐름이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되돌아보면, 역시 그 시점에서 대충 불 끄고 누워 잠이나 잤어야했다.
어디 보자, 내일의......아니지, 날짜가 바뀌었으니 오늘이지. 오늘의 당번은......아코, 인가.
책상 위 달력의 메모를 보며 당번인 학생을 확인했다. 선생 사직 몰래카메라, 대망의 주인공은 아코.
아마우 아코. 게헨나 학원 선도부 선임행정관. 정신차려보면 항상 시덥잖은 자존심 싸움으로 틱틱대는, 참으로 알기 쉬운 3학년. 내 별 것 아닌 도발에도 연신 발끈해대며 승부욕을 불태우는 그녀는, 과연 내가 선생을 그만 두겠다고 말하면 어떤 자세로 나올 것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점점 무거워지던 눈꺼풀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치욕의 패배에 부들거리는 그 푸르른 눈동자를 마주할 생각에 연신 콧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그 생각에 필요 이상으로 잡아먹혀버린 것인지, 1층에서 올려다보는 생텀 타워같던 서류 뭉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잠이 확 달아나버렸던 그 시간에 서류 타워의 한 층이라도 더 줄였어야했다.
* * *
"고마워, 아코. 덕분에 어느 정도 줄어들었네."
"별 거 아니에요."
정말 별 것 아니라는 듯. 아코는 이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 만마전-샬레 우호 동상 건립 요청서 ] 를 반려 처리하면서 대답했다.
......어라, 저거 내용 읽어보지도 않고 반려 처리한 것 같은데.
"정말......만마전의 너구리들은 항상 이딴 쓸데없는 것들만...!"
"뭐, 게헨나스럽잖아. 게헨나에서 제일 게헨나스러운 만마전이니까 할 수 있는 제안이지."
"--하아?! 뭔가요, 그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은! 게헨나스럽다니, 의미 모르겠거든요!"
반쯤은 농담삼아 던진 말에 아코가 발끈. 책상을 타앙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것이 만화책의 한 장면이었다면, 지금 책상 건너편에서 날 내려다보는 아코의 이마 위에는 '빠직' 이라는 효과음이 적혀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서류 업무를 게헨나 학생에게 떠넘겨놓고서는 게헨나 학원의 뒷담화를 까다니,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심히 게헨나스럽지 않나요?!"
"어라, 그럼 아코도 [ 게헨나스럽다 ] 라는 개념 자체에는 이의가 없는건가?"
"-엣,"
발끈했던 아코의 입에서 새어나온 김 새는 소리. 뒤늦게 자신의 실책을 알아차린건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는다. 지적할 것은 그게 아니었음을 그녀가 알아차린 것은 이미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그리고 떠넘긴 것도 아니지. 아코가 도와주고는 있지만, 어쨌든 나도 일하고 있으니까."
"그건...그렇지만!"
"게다가 [ 이런 방대한 업무를 선생님 한 분께 몰아던져놓다니, 총학생회는 대체 뭐하는 것들인가요! ] 라며 노발대발해준건, 다름아닌 아코잖아?"
"그것도......그렇지만......!"
"무엇보다 샬레 당번표는 당사자들 전원 동의잖아? 특히 아코는 묘하게 바쁜 시기 당번이 잦던데."
"으...그, 그것도......그렇ㅈ, 잠, 잠깐만요, 마지막 말씀은 ㅇ, 오 ,오해의 소지가......!"
아, 역시 재밌다. 분노, 당황, 당혹, 부끄러움이 한 데 섞인 아코의 얼굴.
뭐라 반박은 하고 싶은데 딱히 반박할 거리를 찾지 못한다. 얼굴을 붉히고 쩔쩔 매던 아코가, 결국 한숨을 내뱉으면서 털썩, 자리에 다시 앉는다.
"정말이지. 선생님만 만나면 휘둘리는 느낌이네요."
"미안해. 아코랑 있으면 나도 모르게 즐거워져서."
"......정말이지......"
반쯤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는 아코. 뭐, 아코랑 있으면 즐거운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곧 굉장히 즐거운 일도 있을 테니까! 언제지? 대체 언제 시작해야하지? 분위기는 어느 정도 그런 분위기가 된 것 같은데?
"...아, 선생님. 이 서류는 직접 보셔야겠습니다."
"응? 어떤 서류길래?"
"아비도스 고등학교 관련 서류인데, 대책위원회 쪽에서-"
아코가 제 앞의 서류 하나를 집어들고 일어나 내게 건네주러 온다. 또각거리는 굽 높은 로퍼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거사' 의 때도 가까워지고 있다는 판단이 선다.
"어디, 한 번 볼까-"
푸르른 장갑으로부터 서류를 받아들었고, 오른손으로는 책상 위의 펜을 집어들었다. 물론 [ 샬레 서류의 저승사자, 총학생회의 누군가 때문이라도 제대로 검토는 해야한다 ] 라는 대의명분도 있었지만, [ 오늘 준비된 거사를 위해서라면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무덤덤함을 보여야 한다 ] 라는 음흉한 목적도 있다. 계산대로, 완벽해.
"......아아, 그러네. 아비도스는 어쨌든 규모가 작으니까 자체적으로 뭔가를 추진하긴 힘들지. 정식으로 승인된다고 해도 상황이 이 이상 나아지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그 소수의 인원으로 버티는 걸 보면, 솔직히 놀랍네요. 대형 학원인 저희를 상대로도 전혀 물러서질 않았고......"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좋다, 지금이다!
"그러니 도울 수 있으면 가능한 도와야지. 마지막이니까."
"아무리 놀기 좋아하는 선생님이지만, 그래도 할 때는 하는......"
자연스레 나를 깎아내리던 아코의 목소리가 느려지더니, 이내 쥐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시궁쥐처럼 사라져버린다.
"......네? 마지막......?"
안된다! 지금 그녀를 바라보면, [ 아무렇지 않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덤덤하게 그만 둔다고 이야기하는 완벽한 계획 ] 이 무너져버린다! 혼신의 힘으로 눈을 서류에 고정하고, 오른손에 든 펜으로 서류 속 글자덩어리 어딘가에 죽죽, 밑줄을 친다. 미안하다, 아야네. 서류는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볼테니까!
"...선생님, 마지막이라니......"
"어라, 말을 안 했었나? 나, 선생 그만 두기로 했어."
우와아, 저질렀다. 나 저질러버렸어!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을 다시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야, 정말이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몸이 못 버티겠더라. 하루하루 몸이 말라가는 게 느껴지는걸. 아니아니, 몸도 몸인데, 정신이 피폐해져간달까, 이제 안되겠더라구......아, 이 서류는 아오이도 직접 만나서 논의하는 게 빠르겠네. 여튼 그래서 말야. 이번 달 말까지만 하고 정리하기로 했어."
혼신의 힘을 다해 아코 쪽을 의식하지 않으면서, 내 스스로 생각해봐도 중얼중얼 잘도 말하고 있었다.
아코의 얼굴 대신 싯딤의 상자를 힐끗 바라본다. 내 계획을 들은 아로나는 [ 상상도 하기 싫다 ] 라면서 극구 반대하다가, [ 자기는 모르겠다, 얻어맞는 한이 있어도 못 지켜드린다 ] 라며 토라져버렸다. 무심하게 현재 시각만 띄워놓고 있는 화면 너머 어딘가에서, 귀여운 OS는 여전히 토라져버린 채 숨어버렸으리라.
"그렇게 된 거야. 어쨌든간에 아코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기도 했고, 집무실 정리할 때 같이 파티라도 할까 하거든. 그만두는 마당에 뭐 맛있는 거라도 사 줄 테니-"
"-못 들었어요."
한참 잘 나가던 내 말을 끊어버리는, 평소와는 다른 목소리. 부들거리는 떨림 가득한 목소리라는 건 대번에 알 수 있었는데,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목소리는 아니었다. 뭐라고 해야할까, 내가 예상한 건 10할 중 슬픔이 한 2할 정도였는데, 막상 닥쳐 온 건 슬픔이 한 7할, 아니, 8할.
"......아코?"
도저히 참지 못하고 결국 고개를 돌린다. 아마 내 눈 속에 담긴 감정은 [ 일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 ] 라는 당혹감일 것이리라.
그야 당연하다. 붉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 명백히 동요하는 듯 지진이 일어나버린 그녀의 눈동자에는 서운함, 그리고 분노가 담겨있었으니까.
"못 들었다구요, 그런 제멋대로인 이야기!"
뭔가가 뚝, 하고. 그런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듣자듣자하니 대체 뭔가요! 아까부터 뜻모를 헛소리나 중얼중얼, 그만 둔다는 게 무슨 조기퇴근 따위랑 동급인건가요?! 뭐가 그리 태연자약하신건데요!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건지 그 머릿속에 자각이 있긴 한건가요?!"
잔뜩 치솟은 눈썹, 찌그러진 미간, 귀를 찌르는 듯 날카로운 목소리. 눈 앞의 아코는 명백히 화를 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까지 화를 낸 적이 있었나 싶었다.
"우리를 위해 선생님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잘 알아요. 제대로 자는 날도 손에 꼽을 정도고, 제대로 챙겨먹는 밥도 헤아릴 수 있을 정도고, 허구헌날 업무 전화로 불타오르는 일정도 알고, 때로는 그 나약한 몸에 상처를 입어가며, 심지어 사경을 헤매이는 때도 있었다고, 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도와드리고 있잖아요!! 얼마나 많은 일이 있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최대한 도와드리고 있잖아요!!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짐작만 하는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덜 힘드시게요!!! 그래도 부족했었나요?! 그래, 그랬을 수도 있어요, 우린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무거웠다. 귀로 듣는 소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 소리라서 더욱 그러한 것 같다.
"근데...근데 당신은 그렇게 힘들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한 적도 없었잖아요!!! 밀레니엄의 그 회계도, 만마전의 그 여우같은 전차장도, 트리니티의 간호사도, 백귀야행의 여우 닌자도, 심지어 언제나 눈코뜰 새 없이 바쁜 히나 부장님도!!! 수많은 학생들이 모두 할 거 없는 백수들이라서 여기 붙어있나요?! 오직 당신을 위해서 여기까지 오는 거잖아요!!! 버틸 수 없이 힘드면 이야기를 했어야죠!! 저도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당신의 힘든 점을 케어하는 거, 그게 제 일이라구요!!!"
아코가 내 어깨를 꽉 붙잡는다. 분명 엄청나게 세게 붙잡았을 텐데도, 붙잡힌 어깨보다 가슴 한 구석 어딘가가 더욱 아려왔다.
"......우리에게 [ 선생님 ] 이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그런 직책이 없더라도 [ 당신 ] 이 어떤 존재인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없나요? [ 학생을 믿어주는 게 선생의 역할이야 ] 라구요? [ 어른은 책임을 지는 존재야 ] 라구요? 아뇨!! 지금 당신은 그 어느 것도 지키지 못했어요!!! 학생을 믿지 못해서 선생으로서의 고충도 털어놓지 못했고, 이젠 어른의 책임마저 헌신짝처럼 내버리잖아요!!! 그동안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몸소 실천했던 것들이 이런 거였나요?! 우리가, 제가 당신을 잘못 이해했던 건가요?!"
"......아코, 그게-"
그러나 내 말은 이어지지 못한다. 차마 그녀의 눈을 마주볼 수 없어 시선을 떨구면, 방울방울이었던 물자국은 아주 자그마한 웅덩이로 번져 있었다.
"-솔직히, 당신에게 틱틱거리고 마냥 투정부렸던 건, 제가 이렇게 어린 어리광을 부려도, 선생님이라면 받아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제가 아무리 억지를 부리고 선생님을 놀리듯 해도, 선생님이라면 이런 저라도 편이 되어주고 위로해 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구요. 선생님이라면 제 험담을 하지도, 비난을 하지도, 괴롭히지도......배신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깨를 붙잡았던 두 손은 어느덧 힘이 빠진 채로, 바람에 날아가는 마지막 잎새처럼 툭, 내 몸에서 떨어진다.
"......싫어하지 않았어요. 좋아했어요."
아코는 이제 완전히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갑 낀 두 손은 힘없이 처진 채로 자그맣게, 아주 자그맣게 부들거렸다.
...이내 그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그런데도......"
"아코, 나는-"
"-이건, 배신이잖아요."
다시 나를 올려다보는 아코의 얼굴. 화사하게 빛나던 그녀의 얼굴에는 눈가로부터 한 줄기의 어두움이 드리워 떨어지고 있었다. 눈가의 아이라이너를 번져버리게 했을 그 한 줄기의 어두움을, 지금도 닭똥같은 물방울들이 따라 내리고 있다.
"...배신이잖아요!!! 누가 봐도 평생 우리와 함께 있을 것처럼 굴고, 제멋대로 친절하게 대해줘서 사람 헷갈리게 만들고, 당신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그런 게 아니야, 아코."
"아니긴 뭐가 아닌데요!!! 맞잖아요!!! 당신을 사모하고, 다른 여자애들한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고, 그러면서도 당신한테 지기는 괜히 자존심상하고, 그래서 어떻게든 당신 곁에 붙어있으려고 노력했다구요!!! 근데, 근데 이렇게 갑자기 떠난다니, 이게 배신이 아니면 대체 무-"
"그게 아니야, 아코!!!"
절규에 가깝게 일그러지던 얼굴의 그녀를 마침내 멈춰세울 수 있었다. 이 이상은......안된다.
"......미안. 사실은-"
* * * *
밝았던 창밖에도 어느덧 밤이 내려왔다.
붉은겨울의 겨울바람보다 더 차갑고 서늘한 공기. 한 마디라도 잘못 꺼냈다간 곧바로 베여버릴 것 같은 분위기. 마치 한 마디 한 마디 나를 원망하는 것만 같은 키보드 타이핑 소리.
......그리고 누구 하나는 반드시 지옥에 보낼 것만 같은, 손대면 팡 터져버릴 것 같은 아코의 숨소리.
"...저기, 아코. 아직도 화났어?"
"......"
아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모니터 너머로 힐끗 보니, 그 곳에는 매서운 도끼눈을 한 아코가 모니터만을 바라보고 있다. 어째서인지 키보드 타이핑 소리가 조금 더 커진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키보드야, 미안하다. 조금만 더 버텨주라.
아코가 마침내 폭주하기 시작하던 그 때, 이대로는 수습이 불가능해질 것만 같아 두 어깨를 꽉 잡으며 그녀의 말을 끊었고, 이내 이 상황이 몰래카메라임을 밝혔다.
...가만히 날 바라보며 격해진 숨을 고르던 아코는 이내 [ ......정말, 인가요? ] 한 마디를 던졌고, 긍정의 답을 얻은 그녀는 잠시 뒤 당번 자리로 돌아갔다.
그 이후로 아코는 아무 말 없이 업무를 처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정말로 아무 말 없이, 오히려 내가 미쳐버릴 지경으로 아무 말도 없었다. 그렇게 해가 져 버린 참이었다.
"...아코?"
"......"
"아~코~"
"......"
"우리 귀여운 아......커윽?!"
정강이에 느껴지는 강한 통증.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코가 제 발로 날 걷어찼다!
"쓰읍, 아야야......난 너희들보다 약해서 진짜 죽는다니까..."
"그럼 그대로 죽으시던가요!"
아코의 목소리에는 한껏 날이 서 있었다. 그 날카로운 말이 비수처럼 내 가슴 한 구석으로 날아와 도려내버린다. 장난으로 출발했을 이 이야기는 너무나도 무거워져서, 아코가 내뱉었던 고백을 장난삼으려던 나는 그걸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후회가 밀려왔다.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나는, 생각보다 의미가 큰 존재인 모양이다. 그렇다면...나는 절대로 해선 안 될 농담을 해버린 것이겠지.
"......이만 가 볼게요. 오늘치 업무 협력은 끝났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코를 마주본다. 여전히 화가 나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진이 다 빠져버린 듯 초췌한 모습이었다. 화장은 반쯤 지워지고, 윤기흐르던 푸른빛 머리카락은 생명력을 잃고 푸석푸석해보이기까지 하며, 보란듯이 항상 당당하던 두 어깨는 평소보다 명백히 힘이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오늘 분의 업무를 끝마쳤다. 어른조차도 분노와 당혹, 원망으로 도망가버렸을 그 상황에서조차.
"...고생 많았어, 아코. 그......미안했어."
"......아뇨, 됐어요. 괜찮아요."
어쨌든 사실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듯 덧붙인 아코가 가볍게 짐을 싸고, 터덜터덜 문 쪽으로 걸어나간다.
"아코!"
그리고 난, 그런 그녀를 아무 말 없이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코에게 항상 도움받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야. 오히려 진심 100퍼센트야."
"......"
"항상 고마워. 아코가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거야. 아코랑 함께 있으면 나도 모르게 즐거워져서, 이런저런 장난을 함께 치는게 너무나도 즐거워서......정말로 큰 힘이 되었어."
"......"
"그리고...앞으로도 내게 큰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어."
털썩, 하고 아코의 가방이 떨어지는 소리. 그 다음에 내 가슴팍에 달려들어 얼굴을 묻어버리는 아코. 그리고 그 다음에는......어떤 감정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는 자그마한 목소리.
"......두 번 다시는...하지 말아주세요...이런...악몽같은 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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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아코는 심한 장난을 치면 멘탈 나가서 평소처럼 못 받아칠 것 같음
그렇게 생각했더니 너무 귀여워
시발 그래서 난 왜 아코 없?

댓글 53
번역탭이네요 이건

아코 상상하면서 직접 썼다...

번역기 성능좋네
창작임 흑흑
이건 창작탭이 아니라 번역탭을 가야겠노ㅋㅋㅋㅋ


재밌게 잘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