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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주황빛이 수평선 너머로 저물어가려 할 무렵. 샬레 옥상에서 홀로, 어딘가 쓸쓸함마저 느껴지는 노을을 조용히 바라본다.
업무가 일단락되어 당번 학생도 돌아갔고, 오늘은 이제 퇴근만 남은 상태.
그전에 조금이나마 바람을 쐬고 싶어, 서늘한 금속 펜스에 몸을 기댄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면, 귀갓길에 오른 학생들의 모습이 콩알처럼 작게 보인다.
아스팔트 길을 터덜터덜 걷는 아이나, 즐겁게 서로 웃으며 달려가는 아이. 게다가 큰길을 분주하게 달리는 일반 차량들 틈에 섞여, 전차가 태연하게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그런 소란을 조금 떨어진 높은 곳에서 바라보며, 느긋하게 바람을 맞는다.
남들이 보기엔, 사회에 치여 지친 어른이 자신 외엔 아무도 없는 조용한 한때를 즐기고 있을 뿐.
객관적으로는 아마 그냥 찌든 인간이겠지만, 지금 내 뇌내 필터를 거치면 왠지 모르게 우수에 젖어 애수가 감도는 중후한 어른으로 변환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 나, 좀 멋있는데, 하고.
응, 그렇다. 지금, 나는 나 자신에게 취해 있다. 오늘도 하루가 끝나고, 선생이라는 직분을 다해낸 훌륭한 어른이, 쓸쓸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뭐랄까, 봐봐, 멋있잖아. 중후한 어른 같은 느낌으로.
이런 상황, 흔치도 않고, 아무도 안 보는데 폼 좀 잡아도 괜찮잖아. 담배라도 한대 피워 물거나 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담배를 못 피운다. 전자담배 같은 걸로 분위기나 잡으며 뻐끔뻐끔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폼 잡겠다고 거금을 들일 이유는 없다.
어차피 폼 잡는 거니까 비슷한 거면 되겠지 싶어서, 지금은 코코아 시가렛으로 때우고 있다.
지금 여기엔 나 혼자뿐이다. 아무리 바보 같아도 나만 좋으면 그만이지.
오늘 일도 끝냈고,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 상황이니 학생이 갑자기 찾아올 일도 거의 없을 터.
누구에게도 들킬 일은 없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러니까, 영문을 모르겠다.
어째서 옆에 케이가 있는 걸까.
아니아니, 진짜 왜지. 오늘 온다는 연락은 없었잖아.
게다가,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나서 집무실 불도 꺼뒀다. 내가 여기 있다는 확증도 없었을 텐데. 그런데 어째서.
이 다음에도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갈 생각이었으니, 내가 똥폼을 잡지만 않았어도 옥상에 있진 않았을 텐데.
「……」
나의 당혹감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말없이 내 곁으로, 적당한 거리까지 다가온 케이.
이쪽은 완전히 황혼 모드에 들어가 있어서 케이 쪽으로 완전히 고개를 돌릴 수는 없지만, 보아하니 마찬가지로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나를 보고 비웃는 것도, 깔보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이 경치를 보고 있으면, 생각하게 돼요」
위험해, 뭔가 시작됐어.
보통 이럴 때 첫마디는 「뭐 하고 계세요~?」라든가 「여기 계셨군요~」 같은 말이잖아. 그런데 시작부터 독백조라니. 무슨 드라마의 한 장면이라도 되는 거야?
심지어 방금 전까지 케이가 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했는데, 케이는 내가 알아채고 있었다는 걸 전제로 깔고 있잖아.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서 꼴사납게 소리라도 질렀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저는, 참 보잘것없는 존재구나, 하고요」
어라, 설마 케이 짱도 나처럼 폼 잡는 타입인가?
황혼에 젖어 있는 자기 자신에게 취하는 타입?
아니면 정말로 본모습으로 이런 짓을 해내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건 그것대로 멋있네. 케이 짱이라면 뭐랄까, 태가 나니까. 지금도 바람이 꽤 불고 있어서 그 고운 은발을 살랑살랑 흩날리고 있고. 왠지 반짝반짝~ 하는 소리까지 들려올 것만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케이와는 대조적으로, 나는 사이비 감성파. 센스 있는 말 따윈 나오지도 않고, 머리칼도 바람에 날려 엉망진창. 지금 여기서 케이가 어떤 말을 바라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처럼 잡힌 분위기. 케이도 어울려주고 있으니, 이 공기를 와장창 깨뜨리고 싶진 않다.
그럼 뭐라고 받아쳐야 정답일까? 정말 모르겠다. "케이 짱 엄청 커~"라고 하면 되려나? 아니, 이건 아니지. 나 같아도 놀리는 걸로밖에 안 느껴질 거다.
그렇다면, "난 이미 죽어있다구"인가? 응, 이것도 아니야. 뭔 소린지 모르겠고, 케이한테 그런 소릴 했다간 혼날지도 모른다.
애초에 뭐냐고, 보잘것없는 존재라니. 케이가 보잘것없으면 나는 존재조차 파악할 수 없을 만큼 작은 크기일 텐데. 겸손은 때로 남에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해라, 생각하는 거야 나 자신. 어쨌든 센스 있는 한마디를.
이 자리에 걸맞은, 멋들어진 어른의 한마디를.
"세상은 말이지, 살아 숨 쉬고 있는 거야"
자, 저는 지금 무슨 소릴 지껄이고 있는 걸까요.
전혀 의미를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살아 있어? 뭘 어떻게 표현해야 『보잘것없다』는 말의 대답이 저딴 말이 되는 거냐고.
망했다, 지금 엄청 부끄러워. 분명 얼굴이 새빨개졌을 거야. 할 수만 있다면 여기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케이는 그 말을 비웃지 않았다.
노을빛에 물든 거리를 바라본 채, 마치 무언가 다음 말을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조용히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
어, 거짓말이지?
방금 거, 다음 말이 있는 타입의 대사였어? 내 말에 그렇게까지 기대하진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저는, 이 세계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아, 안 되겠다. 방금 거, 진짜로 다음 말이 있는 녀석이었어.
즉흥적으로 내뱉은 말을 케이가 진지하게 받아들여 버린 모양이다.
이제 와서 「아니 방금 건 대충 한 말이야」 따위의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아무래도 센치 모드는 아직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답변을 생각하자.
일단 케이가 한 말은 전혀 와닿지 않는다. 그야 당연하겠지. 자기가 던진 말의 의미도 모르고 있으니까.
다만 분위기상 모범 답안은 그녀에 대한 긍정. 즉, 케이 짱도 이 세계의 일원이라는 걸 전하면 된다. 남은 건 그걸 어떻게 말해야 멋있게 들릴까다.
지금 이 분위기 속에서, 「당연한 거 아니겠어」라고 한마디로 퉁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조금 에둘러서. 그럴듯하게. 어른스럽게.
문학 작품의 주인공처럼.
……좋아.
"세계가 너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가 아니야. 너가 세계를 어떻게 끌어안고, 어떻게 살아가기로 결심하느냐지. ……그 답은 분명 네 안에 있어"
응. 뭐랄까, 죽고 싶어졌다. 부끄럽다는 감정을 이미 지나쳐서, 지금은 그저 죽고 싶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어야 맨정신의 인간의 대화 중 한 갈래로 저런 말이 튀어나올 수 있는 걸까. 내 어휘 선택이 너무 징그럽다.
좋아, 이런 끔찍한 생명체가 살아 숨 쉬면 공감성 수치로 사회에 민폐를 끼치게 되니 죽어버리자. 단, 내 이 발언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말살하기 위해 관측자인 케이도 함께 죽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케이 짱을 죽이고 나도 죽는다.
아아, 그렇구나. 드디어 케이 짱의 마음을 알았어.
「저는, 이 세계가 좋아요. 당신이 있는, 이 세계가」
낯부끄러운 대사를 치며 살그머니 거리를 좁혀오는 케이. 정신을 차려보니 몸이 바짝 닿아있고, 심지어 머리를 이쪽에 기대고 있다. 이 반응을 보니 내 말에 케이는 꽤나 흡족했던 모양이다. 자결을 결심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왜 이 아이는 이렇게나 분위기 잡는 데 익숙한 걸까. 장래 희망이 배우라도 되려는 걸까. 케이 짱이라면 할 수 있어, 선생님이 응원할게.
그보다 잠깐만. 그럴싸하게 한 페이즈가 끝나버렸잖아. 이 분위기 그대로 끝나버리다니, 이다음엔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 건데.
솔직히 이제 이 경치도 실컷 감상했고, 내 쓸쓸한 중2병 마인드도 꽉 찼으니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제대로 켜진 감성 스위치를 갑자기 끄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계속 끌고 가자니 더 이상 나올 말도 없다.
내게 기댄 케이는 만족스럽게 눈을 감고 있다.
아아, 젠장. 이제 한계야.
이제 폼 잡는 대사는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지금 여기서 침묵을 이어가 봤자, 그럴듯한 분위기만 질질 끌릴 뿐이다.
그렇다고 입을 열었다간, 아마 「바람처럼 되어라」 같은 나 자신도 이해 못 할 무언가가 튀어나오고 말 것이다.
더 이상 꼴불견을 보이는 건 사양이다.
이럴 땐 분위기를 박살 낸 사람이 이기는 거다.
나는 주저 없이 케이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끌어안듯 꼬옥 팔에 힘을 주었다.
"아─! 이제 한계야!! 케이 짱 너무 귀여워!!!!"
「으냣!?」
갑작스러운 습격에 케이는 당황하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참을성의 한계를 맞이한 나는 온 힘을 다해 껴안아 품 안의 케이를 놓아주지 않는다.
「잠깐!! 갑자기 끌어안지 마세요!!」
「방금 전까지 감상에 젖어 있었으면서, 대체 왜 이러시는 건가요!?」
"내 성격상 이런 분위기는 안 맞아! 케이도 알잖아!"
이제 폼 잡는 건 끝이다.
방금 전까지 필사적으로 꾸며대던 내 모습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평소의 말투로 말이 마구 튀어나온다.
아아, 엄청난 해방감. 이젠 그저 편안하다. 배우 노릇 따위 나에겐 전혀 맞지 않는다.
「ㅁ, 뭐 선생님답지는 않다고 생각하긴 했지만요!」
어깨에 힘이 빠지자, 아까부터 마음에 걸리던 의문이 떠오른다.
"그건 그렇고, 케이 짱 님아"
「뭡니까, 새삼스럽게. 케이 짱 님 아닙니다」
아까 그 센치한 모습은 내게 맞춰준 연기였을까. 아니면 케이는 평소에도 저런 식으로 깊은 생각에 잠기는 타입인 걸까.
"케이 짱 혹시, 평소에도 그런 느낌인 거야……?"
「네? ……하, 하아!?」
「아니에요! 선생님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길래 일부러 맞춰준 거란 말이에요!」
내 질문에 자신의 발언을 되돌아봤는지, 케이는 목소리를 높이며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 반응을 보아하니 아마도 본모습이었던 걸까. 뭐, 연기였다고 해도 귀여우니 아무래도 상관없나.
"그렇구나 그렇구나, 그럼 명연기였네. 당신이 있는, 이 세계가~ 하는 부분이 특히!"
「잠깐! 들추지 마세요!!」
「이제 됐어요! 그렇게 나오신다면 선생님 대사, 모두에게 다 까발릴 테니까요! 코코아 시가렛 물고 폼 잡고 계셨던 것도!!」
"뭣!? 케이!? 그것만은 제발 안 돼!!"
망했다, 그것만은 진짜 봐줬으면 좋겠다. 그런 꼴불견을 다른 학생들에게 들키는 날에는 내 인생이 끝나버린다.
도망치려고 발버둥 치는 케이를 놓치지 않으려 더욱 팔에 힘을 준다.
「이것 봐요! 놓으세요!!」
"싫어! 절대 안 놔줄 거야!!"
이렇게 분위기 잡는 모드는 완전히 해제되었고, 옥상에는 평소의 소란스러운 티키타카만이 남는다.
버둥거리는 케이를 껴안은 채 샬레를 뒤로하고, 우리는 시끌벅적한 퇴근길에 오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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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
진지잡다가 왈랄랄루 하는게 케이의 좋은 점 같아유
짱귀엽당....
https://m.dcinside.com/board/projectmx/18986237
본거같다 했더니만 다른 핫산이 예전에 한거였구만
@모모모모모모미도

@모모모모모모미도 이게 사고가 나네
개쳐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