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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기준 5916자
번역 피드백 대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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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오렌지색 빛이 수평선을 향해 가라앉아 가는 시간. 샬레의 옥상에서 홀로, 어딘가 쓸쓸함도 느껴지는 석양을 조용히 바라본다.
업무는 끝나 당번 학생도 돌아갔고, 오늘은 이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 전에 잠시 바람을 쐬고 싶어서, 서늘한 금속 울타리에 몸을 기댔다.
발밑을 내려다보니, 귀가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콩알만큼 작게 비쳐 보였다.
아스팔트 도로를 터벅터벅 걷는 아이, 즐거운 듯 웃으며 달려가는 아이.
거기다, 대로를 바삐 달려가는 자동차들 사이에 전차가 태연히 섞여 덜컹거리며 달려간다.
그런 소란을 조금 떨어진 높은 곳에서 바라보며, 느긋하게 바람을 느꼈다.
옆에서 보면, 사회에 찌든 피곤한 어른이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한때를 즐기고 있을 뿐.
객관적으로는 아마 그저 지친 인간일 뿐이겠지만, 어째서인지 지금 내 뇌내 필터를 거치자 사색적이고 애수에 잠긴 중후한 어른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한다.
지금의 나, 멋있구나, 라고.
음, 그래. 지금 나는 내게 취해 있다. 오늘도 하루가 끝났고, 선생이라는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 낸 어른이, 쓸쓸한 표정으로 저 멀리를 바라보고 있다.
뭐랄까, 그래, 멋있잖아. 간지나는 어른 같은 느낌으로.
이런 상황도 흔치 않고, 아무도 보고 있지 않으니 폼 좀 잡아도 상관 없겠지. 담배라도 한 개비 물면서.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담배를 못 피운다. 전자담배라도 뻐끔뻐끔 피우면서 분위기를 잡아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폼 잡겠다고 그만한 돈을 태울 정성은 없다.
어차피 폼만 잡는 거라면 닮은 걸로 때우면 되겠지 싶어서, 당장은 코코아 시가렛으로 대신하고 있다.
*코코아 시가렛: 담배 닮은 과자
지금 이곳엔 나 혼자뿐이다. 아무리 바보 같아 보여도 나만 좋으면 그만이다.
오늘치 업무도 끝냈고, 남은 건 돌아가는 것뿐. 그러니 학생이 갑자기 방문하는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들킬 리 없다. 나 말고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래서 의미를 모르겠다.
어째서 옆에 케이가 있는 걸까.
아니 아니, 진짜 뭔데. 오늘 온다는 연락은 없었잖아.
거기다 이미 업무는 끝냈기에 사무실 불도 끄고 왔다. 내가 여기 있다는 확증 같은 건 없을 텐데. 그런데 어째서인가.
이 다음엔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설 생각이었기에, 내가 폼 잡지만 않았어도 옥상에는 없었을 것이다.
"......"
내 당혹감은 꿈에도 모른 채, 아무 말 없이 내 옆으로 닿을 듯 말 듯 바짝 다가온 케이.
이쪽은 완전히 황혼 모드로 들어갔기 때문에, 케이 쪽으로 완전히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똑같이 석양을 바라보는 것 같다. 나를 보고 비웃거나 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비상, 뭔가가 시작된다.
보통 이럴 때는 "뭐 해요~?"나 "여기에 계셨네요~" 같은 말이 제일 먼저 나와야 하는 거잖아. 그런데 시작부터 뭐야 그게. 드라마의 한 장면인가?
애초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케이가 있는 걸 눈치채지도 못했었는데, 케이는 내가 벌써 눈치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목소리에 놀라서 소리라도 질렀으면 어쩔 생각이었을까.
"저는, 정말 하찮은 존재구나 하고"
어, 혹시 케이도 나처럼 폼 잡는 타입?
황혼을 느끼는 자신에게 취해버리는 타입?
아니면 정말 순수하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정말 그렇다면 그건 그것대로 멋있다. 케이 쨩은 뭐랄까, 그림이 된다. 지금도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서 예쁜 흰 머리칼이 부드럽게 휘날리고 있다. 어디선가 반짝반짝~ 하는 효과음이 들려올 것 같다.
하지만, 아쉽게도 케이 쨩과 달리 나는 가짜 황혼. 센스 있는 말 같은 게 나올 리 없고,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려 엉망이 됐다. 지금 여기서 케이가 어떤 말을 원하고 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모처럼의 이런 분위기. 케이도 맞춰주고 있으니, 이런 공기를 망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답하는 게 정답일까. 진짜 모르겠다. 케이 쨩 살아있어~ 라고 하면 되려나? 아니, 이건 아닌가. 이건 내가 들어도 놀리는 것으로 밖에 안 들린다.
그렇다면, 나는 죽어있어~ 인가? 응, 이거도 아니야. 농담이라 해도 의미를 모르겠고, 케이 상대로 말했다가는 화나게 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 뭐야, 하찮은 존재라니. 케이가 하찮은 존재라면 나는 존재를 파악할 수조차 없는 작은 사이즈일 것이다. 겸손은 때로는 사람을 상처 입힐 때가 있다.
떠올려라, 떠올려라 나 자신. 무언가 센스 있는 한 마디를.
여기에 어울리는, 멋있는 어른의 한 마디를.
"세상이라는 건, 살아있는 거야"
자아, 나는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걸까.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세상이 살아있다? 뭘 어떻게 표현해야, [하찮은]이라는 것의 대답이 되는 걸까.
비상, 지금 엄청 부끄럽다. 분명 얼굴은 새빨개졌을 것이다. 될 수 있다면 이곳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쥐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케이는 그 말에 웃지 않았다.
석양에 물들어 가는 거리를 바라보며, 마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듯 조용히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거짓말이지.
방금 말, 다음 말이 있는 타입의 대사였어? 내 말에 그렇게 기대하지 않아줬으면 하는데.
"저는, 이 세상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아, 망했다. 방금 말, 진짜 그걸로 끝나면 안 되는 녀석인 모양이다.
떠오르는 대로 던진 말을, 케이는 진지하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이제는 [아, 방금은 아무 말이나 던져 본 거야]라고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아무래도 황혼 모드는 아직 끝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대답을 생각해 보자.
우선, 케이의 말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그야 당연하다. 내가 던진 말의 의미도 아직 모르겠는데.
그러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최고의 답변은 케이를 긍정해주는 것. 즉, 케이 쨩도 이 세상의 일원이라는 것을 전달해주면 된다. 다음은, 그것을 어떤 말로써 전달해야 멋있게 들릴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 이 분위기에서, [당연하잖아] 한 마디로 대답하면 안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조금 돌려서. 그럴듯하게. 멋있게.
문학 작품의 주인공처럼.
...좋아.
"세상이 너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네가 세상을 어떻게 품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정해야 하는 거야. ...그 답은, 분명 네 안에 있을 거야"
음, 뭐랄까, 죽고 싶다. 부끄럽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넘었고, 지금은 그냥 죽고 싶다.
대체 어떻게 해야 맨정신인 사람의 대사 중 하나로 이런 게 선택되는 걸까. 내 어휘 선택 너무 기분 나쁘다.
그래, 이런 기분 나쁜 생명체가 살아가면 공감성 수치심 때문에 사회에 폐를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죽어 버리는 게 낫겠다. 단, 나의 발언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리기 위해 관측자인 케이도 함께 죽을 필요가 있다. 케이 쨩을 죽이고 나도 죽는다.
아아, 그렇구나, 드디어 케이 쨩의 기분이 이해된다.
"저는, 이 세상이 좋습니다. 당신이 있는, 이 세상이"
오글거리는 대사를 읊으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는 케이. 어느새 몸은 꽉 밀착해 있었고, 거기다 머리를 이쪽에 기대고 있었다. 이 반응으로 미루어 보아, 케이 쨩은 내 말에 어느 정도 만족해준 것 같다. 자결을 결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안심했다.
그건 그렇고, 케이는 어째서 이런 분위기에 익숙한 걸까. 장래희망이 혹시 여배우인 걸까? 케이 쨩이라면 될 수 있어, 선생님이 응원할게.
아니, 잠깐만. 좋은 느낌으로 페이즈가 끝나버렸는데. 이런 분위기로 끝나버리면, 이 다음은 어떻게 이어가야 좋은 걸까.
솔직히, 풍경은 충분히 감상했고, 내 황혼 중2병 마인드도 채워졌으니까 슬슬 가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나 달아오른 황혼 스위치를 갑자기 꺼버리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이어가기에는 더 이상 대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내게 기댄 케이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감고 있었다.
아아, 제기랄. 더는 무리다.
이제 폼 잡는 대사는 한 글자도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이렇게 침묵을 이어간다 해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입을 열면, 아마 [바람처럼 자유롭게] 같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뭔가가 튀어나올 것 같다.
이 이상 추태를 부리는 건 사양이다.
이럴 때는, 분위기를 깨부수는 쪽이 승자다.
나는 망설임 없이 케이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팔에 힘을 주어 강하게 껴안았다.
"아ー! 더는 못 참겠다!! 케이 쨩 귀여워!!!!"
"꺄악?!"
갑작스러운 습격에 케이는 당황스러운 듯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참을성이 한계에 다다른 나는 힘껏 껴안고 품속 케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잠깐만요!! 갑자기 껴안지 말아주세요!!"
"좀 전까지만 해도 감상에 젖어 계셨으면서,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에요?!"
"내 성격에 이런 분위기는 안 맞아! 케이도 알고 있잖아!"
이제 폼 잡는 건 끝이다.
방금 전까지 필사적으로 폼 잡던 나는 처음부터 없었던 듯이 평소 모습대로 말을 쏟아냈다.
아아, 엄청난 해방감. 너무 편하다. 배우 같은 건 나에겐 전혀 맞지 않는다.
"뭐, 뭐 선생님답지 않다고는 생각했는데요!"
어깨에 준 힘이 빠지자, 아까부터 신경 쓰였던 의문이 떠올랐다.
그 황혼 놀이는 내게 맞춰준 연기였을까. 아니면, 케이는 평소에도 그런 느낌으로 생각에 잠기는 타입인 걸까.
"케이 쨩은 혹시, 평소에도 이런 느낌이야...?"
"하, 하아?!"
"당신이 생각에 잠겨 있으니까, 일부러 맞춰준 거라고요!"
내 질문을 듣고 자신의 발언을 뒤돌아 본 걸까, 큰 목소리로 변명을 댄다.
이 반응으로 보아, 아마 본심이었던 것 같다. 뭐, 연기라고 해도 귀여웠으니까 상관은 없나.
"이제 됐어요! 선생님이 한 말, 모두에게 말하고 다닐 거니까요! 코코아 시가렛으로 폼 잡고 있었던 것도!!"
"뭣?! 케이 쨩?! 그것만은 절대 안 돼!!"
위험, 그건 진짜 눈감아줬으면 좋겠다. 그런 추태를 다른 학생들이 알게 되는 날, 내 인생은 끝난다.
벗어나기 위해 버둥대는 케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팔에 힘을 주었다.
"이거! 놓으세요!!"
"싫어! 절대 안 놓을 거야!!"
이렇게 황혼 모드는 완전히 해제되었고, 옥상에는 평소와 같은 시끌벅적함만이 남았다.
폭주하는 케이를 안아든 채, 우리는 샬레를 뒤로하고 활기찬 귀갓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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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죽나죽


이거 진짜 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