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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피폐?) 선생님이 9일 뒤에 죽는 이야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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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6LIViHCFBVg

* BGM 반복재생 추천

(PC 반복재생 : 화면 우클릭 -> 연속 재생)

(모바일 반복재생 : 톱니바퀴 모양 -> 옵션 더보기 -> 연속 재생)

*

눈을 떴을 땐, 창밖은 칠흑이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곤 생각할 수 없는 거대한 적막 속에서, 선생은 저도 모르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정오 즈음에서 50분이 지나봐야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해가 중천이다' 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수준이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밖으로 펼쳐진 어둠은 머리 속 생각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선생으로 하여금 썩 괴이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이 곳은 샬레의 수면실 따위가 아니었다.

몇 개의 침대.

침대 자리마다 구비되어 있는 칸막이용 커튼.

밋밋하디 밋밋한, 삭막한 인테리어.

자리마다 놓인 선반. 공용 TV 한 대와 냉장고 한 대.

자신의 왼팔에 꽂혀있는 링거.

선생이 침대에서 조심스레 몸을 일으킨다. 왼팔에 꽂힌 링거가 신경쓰여, 저도 모르게 왼팔을 거의 쓰지 않은 채로 힘겹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텁텁한 공기가 심장을 억누른다.

공기청정기가 돌아가는 무미건조한 소리가 생기를 앗아간다.

낮선 공허함에 저도 모르게 몸이 오싹해진다.

자신의 상태가 신경쓰여, 두 눈이 정처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그래.

이 곳은 아마도 병원일 것이다.

"......선생님......?"

익숙한 목소리.

그 앙상한 떨림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우시오 노아.

그 아이는 멍하고 공허한 눈빛으로, 선생을 향해 시선을 고정한 채로, 생각이 멈춰버린 듯 입을 헤 벌린 채로 이 쪽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3초나 될까. 아니, 5초는 될까. 어쩌면 10초.

선생도, 우시오 노아도, 칠흑뿐인 창밖도.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느 소리도 내지 않았다.

당혹스러움. 놀람. 막연한 공포. 의문.

쉬이 정의할 수 없을 단어들만이 머릿속을 맴돌아, 어떤 단어라도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간신히 무언가를 이야기하려고 해도, 무겁고 당혹스러운 공기에 짓눌려 나오지도 못 한 채로, 그저 망각 속으로 빠져들어버렸다.

그 침묵을 먼저 이겨낸 것은 노아였다.

"......의사 선생님 모셔올게요...그, 잠시만요--"

"---노아, 노아. 잠시만. 잠깐만."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치는 우시오 노아를, 선생이 무턱대고 붙잡으려 든다.

우시오 노아는 떨리는 눈동자로, 마른침을 삼키며 여전히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완전기억능력이 없더라도, 노아가 저렇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은 그 누구라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아, 아뇨아뇨, 불러 올게요. 그...그러니까, 지금은..."

선생은 더는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그녀가 필사적으로 이 곳을 벗어나 문을 닫고 나가자, 그녀를 향해 뻗었던 오른손만이 공허 속에 덜렁 남겨져버리고 말았다.

어째서?

어째서 내가 병원에?

어째서 노아가 이 곳에?

혼자가 되어 버리자, 멈춰 있던 의문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다.

간신히 막았던 둑이 일순간 터져버리기라도 한 듯, 의문들은 공포의 파도가 되어 선생을 덮친다.

분명 자신은 50분의 낮잠을 청했을 것이고, 프라나가 그 시간에 정확히 알람을 맞춰주었을 것이다.

자신은 50분의 낮잠으로 피로를 어느 정도 해소한 채 일어나, 제법 맑아진 머리로 이후 업무를 소화했을 것이다.

모종의 이유로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어쩌면 소용이 없었던 것일지도.

낮이었던 시간은 밤이 되었고, 어째서인지 본인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으며, 우시오 노아는 그런 자신을 보고는 급히 의사를 찾으러 갔다.

노아.

떨리는 목소리. 동요하는 눈동자. 간신히 삼켜넘긴 마른침.

우시오 노아.

어쩔 줄 몰라 안절부절. 당혹. 의문의 공포. 그저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의사.

노아. 우시오 노아.

쓰나미를 맞은 것처럼, 머리가 초토화되어 어느 생각도 결론내지 못한다. 팔에 꽂힌 링거가 차가워 몸이 떨려온다.

대체, 어째서?

"--서, 선생님!"

병실 문을 급히 열고 들어온 사람은 노아가 아니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릴대로 질려버린......하야세 유우카였다.

"...아, 유우카--"

"--뭔데요, 대체?! 왜 이러시는 건데요!!!"

선생을 보자마자 참아왔던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하야세 유우카의 두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오른다.

저도 모르게 선생에게 매달리려던 몸이 전기라도 맞은 듯 움찔거리며 멈춰서버린다.

그러면서도 행여나 링거에 지장이 갈까, 몸에 무리라도 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해한다.

"이상하잖아요!! 아침에 하셨던 말씀도 그렇고, 이렇게 쓰러져버리신 것도 그렇고, 대체 뭣 때문에 그러시는 거냐구요--!!"

"......쓰러져?"

어안이 벙벙해진 채 되묻는 선생. 이러니 하야세 유우카 입장에서는 더욱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이걸...! 아, 자, 잠시만요...저도 지금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 지......"

"...일단 진정해, 유우카. 진정하고 이야기해줘."

"제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던 유우카가 스스로 놀라 입을 틀어막는다.

"아, 그, 죄, 죄송해요! 제일 혼란스러우신건 선생님이실텐데, 제가 이래서는......"

"괜찮아. 괜찮으니까 일단 숨 쉬어. 숨."

유우카가 크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한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숨결에도 떨림이 전해질 정도로, 하야세 유우카 역시 혼란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

맞아, 특히 유우카라면 더욱 그럴거야.

선생의 생각이 아침의 그 때에 다다른다. 그녀 입장에서야 여러모로 불안해 할 일 뿐이겠다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 진정한 것인지, 유우카가 긴 한숨으로 심호흡을 끝맺는다.

"...선생님 휴대폰으로부터 SOS가 왔어요. 아무 내용도 없이, 그냥 [ SOS ] 라고 적힌 문자요."

"......SOS?"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던 기억은 없는데.

선생이 머릿속으로 커다란 물음표를 그렸다. 누군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SOS를 보냈다는 이야기인데, 그럴만한 위인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가능성을 따지자면 아마 아로나와 프라나일 것이라고, 선생의 생각이 그 곳에 미친다.

자신이 알람을 듣지 못하고 실신했다고 하면, 그 아이들은 그런 이상현상을 빠르게 캐치해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휴대폰을 해킹하던지 해서 문자를 보냈을 것이고, 샬레에 자주 드나들던 유우카가 그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능성' 의 이야기겠지만.

"...하여튼, 마침 노아랑 샬레 근처에서 만났거든요. 그래서 급하게 왔더니 수면실에 선생님이 누워 계셨고, 깨워도 아무 반응이 없으셨어요......네에. 이상하리만치......"

유우카가 말끝을 흐린다. 아무래도 그 때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그, 그래서 급하게 119를 부르고, 그래서--"

"--아, 아아, 오케이. 알겠어. 일단 상황은 잘 이해했어."

순식간에 또 울먹거리려는 유우카를 급하게 진정시킨다. 상황 이야기는 빨리 마무리하는 편이 좋겠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고, 그렇기에 손사레를 쳐가며 유우카를 멈춰세웠다.

"그, 혹시 지금 몇 시야?"

"...지금요? 그러니까......1시 27분이요."

"새벽? 새벽 1시 27분?"

"네에......"

밤이 된 걸 넘어 날짜가 바뀌었구나. 선생이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럼--"

"--아, 선생님. 일어나셨군요."

얼마나 누워있었냐고 물어보려던 때에 병실 문이 다시 한 번 열렸고, 노아와 함께 들어 온 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로봇이었다.

아마도, 오늘 당직을 서는 의사이리라.

"느낌이 좀 어떠신가요? 불편하신 곳이라거나, 어딘가 이상한 곳이라거나."

"글쎄요......"

의사는 자연스레 환자의 몸상태를 물어왔고, 선생은 애매모호한 말로 답변의 포문을 열었다.

"몸이 조금 무거운 것 말고는, 딱히......"

"그것 말고는 딱히 불편하신 곳은 없으시죠?"

"네. 아픈 곳도 딱히 없네요."

의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검사 결과를 보니 딱히 이상 소견은 없네요. 신체적으로 문제될 곳은 딱히 없고, 극심한 피로 누적이 원인인 것 같아요."

"피로 누적......인가요?"

"네. 심혈관질환을 의심해서 종합적으로 검사해봤습니다만, 딱히 이상 소견은 없었구요. 선생님께서 평소 업무가 과중하시단 설명을 듣고 우선 링거로 영양제만 투여중입니다."

피로 누적.

평소였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만한 이야기이겠지만, 지금의 자신에게 있어선 마냥 흘려들을 이야기는 아니었다.

"바쁘시더라도 운동은 규칙적으로 하시구요. 너무 맵거나 짠 음식은 피하세요. 수면도 규칙적으로 하시고, 물 많이 드시고."

의사는 그렇게 '의사들이 제일 좋아하는 말' 을 내뱉는다. 그것이 하등 현실성 없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 말을 내어놓는 것이 마치 자신들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저기...제가 언제쯤 실려왔습니까?"

"그게 아마, 오후 3시 경이었을 겁니다. 그 때부터 계속 의식불명 상태셨다가 방금 깨어나신거죠."

"그렇습니까......"

대략 10시간 이상.

본인이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었던 시간.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무 이상 소견이 없는데 이 시간동안 의식을 잃는 사람은 처음입니다. 의사들끼리도 이런저런 논의를 많이 했거든요."

의사는 그렇게 말하며 곤란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보통 의식을 잃고 이송되는 사람들은 무언가 신체적 이상 소견이 발견되기 마련이라며, 선생이 특이 케이스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 일단 이상 소견이 없다면 저희가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시간이 늦었으니, 해 뜨고 오전 중으로만 퇴원하시죠."

"예. 감사합니다."

의사가 아무렇지 않은 발걸음으로 병실을 나선다. 아무 이상이 없는 환자보단 다른 환자들의 용태라도 살피는 것이, 야간 당직자로서 옳은 태도일 것이다.

세 사람만이 남은 병실은, 다시금 어색하고 곤란한 공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뭐라 형언하기도 힘들고 해명하기도 어려운, 가로등 없는 밤의 산길처럼 막막한 공기 속으로.

"...유우카 쨩에게 들었어요."

이번에도 그 무거운 침묵을 어렵사리 깬 것은, 우시오 노아였다.

"어제 아침부터 불길한 말씀을 하셨었다구요."

노아는 언제나처럼의 나긋나긋한, 허나 장미의 줄기처럼 가시가 잔뜩 돋아있는 목소리를 내뱉는다.

선생이 유우카를 바라본다.

어제 아침에 내뱉었던 그 말들 뒤에, 분명 '우리만의 비밀이다' 라고 못박았던 것이 기억났기 때문에.

노아를 차별하자는 것도 아니고, 모두에게 숨기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아직은 모든 것이 불확실했고, 가뜩이나 할 일 많은 아이들에게 이 소식을 털어놓았다간, 그 아이들의 일에 심대한 지장을 끼칠 것이 두려웠을 뿐이다.

"...분명, 우리들만의 비밀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노아에게 털어놓은 유우카를 향해, 아주 미약한 서운함을 섞어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비밀을 지켰다면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나요? 수습이 더욱 힘들어지는 게 아니고?"

유우카는 그런 선생의 목소리를 통렬한 정론으로 찢어발겼다.

"SOS 문자를 받고 나서야 이야기했어요. 분명 무슨 문제가 생겼을 거라고. 여기선 아무 것도 이야기해주지 않으셨던 선생님을 원망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선생의 목소리에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면, 유우카의 목소리에는 원망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하야세 유우카 스스로도, 자신이 선생을 원망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 감정은 '절대 그에게 품지 않겠노라' 다짐했었던 감정이고, 품는 것만으로도 마음 속에 쓰라린 생채기를 남기는 감정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원망스러웠다.

이제는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그렇구나."

선생 역시도 그녀의 원망스러움을 코 앞에서 목도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결국 학생들의 일상을 뒤흔들게 되었다는 죄악감 때문인지, 별다른 변명 없이 수긍해버리고 말았다.

"...지금 저희가 느끼는 이 감정을, 저는 무어라 정의해야 할까요."

노아는 그렇게 말하며 선생을 바라보았다.

그건, 질문의 형식을 띤 공격이었다.

또한, 물음의 형식을 띤 원망이었다.

결국, 자조의 형식을 띤 힐난이었다.

그가 상처입을 것을 알고도, 자신이 상처입을 것을 알고도 던지는, 양쪽이 날카로운 창이었다.

"--미안하지만 말이야. 한 가지만."

선생은 마침내 제 가슴 속 하나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살얼음판과도 같은 공간에 또 하나의 물음을 던진다.

"......싯딤의 상자, 지금 가지고 있니?"

"싯딤의...상자......말인가요?"

"응. 그게, 나는 그게 없으면 안 돼. 그러니 어디 있는지 알려줘. 이야기는 그 후에 해 줄게."

너무나도 맥락없는 부탁에, 유우카와 노아의 얼굴에 당혹감이 피어오른다.

지금 가장 중요한 화두는 그게 아니었다. 그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했으니까.

허나 선생은 달랐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미친듯이 싯딤의 상자가 필요했다.

싯딤의 상자는 그의 목숨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었다.

눈 앞에 총구가 들이밀어지고, 극복할 수 없는 규모의 폭발에 휘말리고, 예상치 못한 위협에 휩쓸리더라도, 싯딤의 상자는 언제나 그의 생명을 지켜주고 있었다.

아로나와 프라나의 보호는, 어느덧 키보토스에서의 그에게 있어 필수와도 다름없었다.

아마도 무의식 중에 그걸 '의지' 하고 있었다고, 스스로 그러한 결론에 다다랐을 것이다.

지금 가장 쓰라린 것은 그의 마음이었다.

소중한 학생들이 자신의 붕괴를 목도하고, 자신을 원망하고, 그러한 스스로의 감정에 또 한 번 상처입어가는 것은, 그가 절대로 용납하지 못 할 일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지금 선생에게 있어선 가장 위협적이며 불안한 요소이겠지.

그렇기에 그 상자가 필요할 것이다.

무너져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무너져가는 자신의 안정을 위해.

"그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유우카도, 노아도 아닌 제3자의 목소리.

그와 동시에 병실 문이 열리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한 손에 싯딤의 상자를 든 채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찾으실 듯하여, 직접 챙겨왔으니까요."

나나가미 린은, 언제나처럼의 무덤덤한 얼굴로, 싯딤의 상자를 챙겨든 채 선생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린 쨩도 있었구나."

"유우카 씨에게 왔다는 SOS가 저한테도 왔으니까요. 아마 유우카 씨와 비슷하게 샬레에 도착했을 겁니다."

무덤덤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린이, 선생의 얼굴에서 무언가의 감정을 읽어내버린 것인지, 짧은 한숨을 내쉬며 멈춰선다.

"...총학생회에선 저밖에 받지 못했습니다. 어딘가로 새어나갈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길."

"그래...그러면 됐어."

별다른 발뺌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선생에게, 린은 마침내 싯딤의 상자를 건네주었다.

그 태블릿을 받아 든 선생의 얼굴에 부쩍 안도감이 짙어졌다는 것을,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아차렸을 것이다.

아니, 설령 알아차리지 못했더라도, 한 층 부드러워진 그의 목소리에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고마워. 이건 항상 가지고 다녀야만 해서."

"......싯딤의 상자. 저 역시도 그 태블릿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허나, 다름아닌 그 총학생회장이 남긴 물건이니, 분명 선생님께는 유용한 것이겠죠."

싯딤의 상자를 건넨 나나가미 린은, 잠시 뜸을 들이는가 싶더니, 이내 닥쳐 올 것을 받아들이는 듯 무미건조하면서도 결연한 어투로 본론을 꺼낸다.

"...선생님. 이제 얘기해주셔야겠습니다."

마치, 죄에 대한 형량을 선고하는 재판관처럼.

"아침에 유우카 씨에게 하셨던 말씀. 그리고 제게 꺼내놓으셨던 말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누워계신 것. 이 모든 것에 대한 상황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선생이 깨어나길 기다리면서, 불안함과 당혹감 속에서 하야세 유우카와 나눴던 이야기들.

실로, 시종일관 불안한 일들 뿐이었다.

하야세 유우카에게 했다던 '죽음' 운운하던 말.

요새 무언가를 자꾸 까먹는다는 이상 증상.

자신에게 꺼내놓았던 '선생의 부재 시 벌어질 일'.

과다한 피로 누적 운운하며 벌어진 실신 사태.

"...말씀해주십시오. 선생님께선, 지금 어떤 상태이신 겁니까?"

우연이라기엔 너무 기묘하다.

돌발상황이라기엔 너무 무덤덤하다.

단순한 피로라기엔 너무...불안해하고 있다.

무언가.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

아마도,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조차 모르는 일들이 벌어졌다기엔, 그의 행적 하나하나가 마치 미래를 아는 사람과도 같았으니까.

뜬금없이 죽음을 운운하고, 부재 시를 걱정하며, 이에 대한 모든 것을 철저한 비밀로 부치려 드는 것은, 평소의 그라면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러니까, 그는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선생님께선...무엇을 알고 계십니까?"

나나가미 린의 그 한 마디는, 아마 모두가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 않던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한 마디는, 이 곳의 모두가 그토록 궁금해 마지않던 말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야,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이 소리들이 이토록 크게 들릴 리가 없지 않은가.

"...이 지경까지 왔으니, 적어도 너희한테만큼은 이야기해줘야겠네."

필시 그 말은, 모두가 듣고 싶었던 그 말.

참으로 기이하게도, 뻥 뚫리는 시원함보다는 이유모를 찝찝함이 몰려오고 말았다.

선생의 저 목소리, 그리고 무거운 표정. 짧은 한숨.

그에게서 느껴지는 '체념' 이란 쓰라린 감정을, 이 자리의 모두가 함께 깨달아버렸기 때문이겠지.

"...응. 뭐랄까, 이젠 그 꿈이 제법 현실성이 있어보이니까."

돌아갈 곳은 없다.

선생도, 학생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이야기를 해 주는 것도, 이야기를 청하는 것도.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아마도, 나는 10일 정도 뒤에 죽게 될 거야."

지나치게 무겁고 잔인한 바위 덩어리가, 세 사람을 순식간에 덮쳐든다.

"......아니지. 어제 꾼 꿈이고 날짜가 바뀌었으니...9일 뒤인가."

죽음을 고백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듣는 이로 하여금 미치광이처럼 펄쩍펄쩍 뛰게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리게 만드는 것일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한 번씩은 가십거리로 삼았을만한 그 고백은, 아마도 요란한 무엇인가로 회자되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화내며 엉엉 울어버릴 거라고 주장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정신을 잃거나 원망을 토해낼 거라고 주장했을 것이다.

구태여 따져보자면, 그 고백은 다름아닌 '침묵' 만을 남겼다.

이 주제를 가십거리로 삼았을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이 공간에 있는 모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너희한테 넌지시 물어봤던 거야.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 선생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어째서요?"

고요함에서 먼저 벗어난 것은 나나가미 린이었다.

그녀는 충격을 받았다거나, 울먹거린다거나, 냅다 화를 낸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그 자세 그대로 그런 질문을 던졌을 뿐이었다.

그건 하야세 유우카와 우시오 노아라도 다르지 않았다.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 그 두 사람의 표정도 방금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으십니까?"

현실성이 없다, 고.

세 사람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너희들이 납득할지는 모르겠지만......있어."

선생은, 자신이 꾼 꿈과 현재 몸 상태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더불어 '어른의 카드' 와 '싯딤의 상자' 에 대해서도.

'게마트리아' 와 '검은 양복' 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알게 된 것, 경험하게 된 것.

그 모든 것을.

* *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나가미 린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그 어느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는 게 아니었다.

그저 선생이 꺼내놓은 이야기들이 순식간에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아득하고, 비현실적이며, 말 그대로 '꿈만 같은'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따지자면,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쪽이 더 알맞겠지.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신 거에요?"

하야세 유우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와 함께 하면서 알게 된 건, 선생이라는 그 남자가 자칫 지나칠 정도로 이타적인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언제나 곤경에 처한 학생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몸을 버려가면서까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며, 그것뿐만이 인생의 유일한 낙처럼 보이는 사람이기까지 하다는 점이었다.

그의 그런 점이 싫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 구태여 따져보자면, 그의 그러한 면이 그가 학생들에게 신뢰받는 원천이라고 생각하며, 자신 또한 그런 그의 사람됨됨이가 썩 매력적이라고 여기고 있다 봐야겠지.

그렇지만.

자신의 남은 삶을 '깎아나가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가족도 아니고, 심지어 키보토스의 주민마저도 아니었던 그가?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자신들을 위해서?

처음으로, 의문스러울 정도의 의아함을 느꼈다.

......처음으로, 그가 낮설었다.

"모르겠어요, 선생님......어째서? 어째서 그렇게까지 하신 거에요?"

유우카의 목소리는 또랑또랑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마도, 작게 떨리고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그저...선생님이실 뿐인데."

"...그렇기 때문이야. 난 선생이고, 너희들은 학생이니까."

"네. 학생이에요. 그것 뿐이잖아요. 어째서 그렇게 본인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유우카 쨩, 너무 격해졌어요. 진정해요."

우시오 노아가 건 제동은 정확한 타이밍이었다.

하야세 유우카 스스로도 제 자신을 막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이해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조금씩 고양되어가고 있었으니까.

언젠가 반드시 후회하게 될 일갈을, 노아가 막아 준 셈이었다.

"......죄송해요. 제가 공격적이었어요."

유우카가 금세 그 기운을 죽이고 사과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본인 스스로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선생님. 유우카 쨩의 말처럼, 저희는 선생님께서 하신 그 이야기들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어요.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고 뜬금 없는 이야기니까요."

친우를 진정시킨 노아가 선생을 바라보며, 무덤덤한 것처럼 입을 연다.

...아니.

무덤덤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린이나 유우카 못지않게, 노아 자신도 선생의 말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건 삼류 저질 뉴스에서나 나올 법한 해괴한 말들이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고, 또 그것이 자신들과 시간을 보내 온 선생의 기억록이라고 한다면 더욱 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선생이 자신들조차 모르는 새에 그런 싸움을 해 온 것이었다고 생각하면, 그건 속이 메슥거릴 정도로 볼썽사납고 송구스런 일이겠다.

"그렇지만, 거짓말을 하신 건 아닌 것 같아요."

노아는 그렇게 말하며, 제 자신의 모든 의문점을 일단 묻어두었다.

"...노아의 기억력 덕을 보는구나. 거짓말을 할 때와 아닐 때가 확연히 차이날 테니까."

"아뇨. 그냥 믿어요."

우시오 노아는, 선생이 지어보인 쓴웃음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은 그런 거짓말을 하실 분이 아니라고 믿으니까요."

기억력. 징후. 사소한 차이.

그 모든 것들이 구태여 필요하진 않다.

선생을 믿고 있으니, 그 말을 믿는다.

그것 뿐이었다.

"저 뿐만이 아니에요. 유우카 쨩도, 여기 있는 린 대행도. 결국 선생님을 믿어요. 지금 당장 받아들이기엔 쉽지 않은 이야기일지라도......"

노아가 천천히 유우카와 린을 돌아보며 말한다.

지금 당장은 믿지 못 할 지도 모른다.

받아들이기조차 힘든 이야기에, 실감조차 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들은 그를 믿는다. 그것만은 그 어느 징후가 없더라도 단정지을 수 있다.

"......그리고, 선생님이라면 무언가 방법이 있으실 거라는 것도요."

그것은 순수한 바램이었다.

'죽음' 이라는 믿지 못할 이야기에서, '이별' 이라는 마주하기 힘든 재앙에서, 어떻게든 그가 돌파구를 마련해주었으면 하는 바램.

지극히 개인적인, 절대 품지 못 할 바램.

하지만, 분명 그라면 어떻게든 해결할 것이라는 바램.

"......죽음에서 도망칠 수는 없어. 그건 내가 사용해왔던 카드의 대가야. 어떻게든 지불해야 할 빚이니까."

선생은 단언했다.

어른의 세계에는,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할 당연한 법칙이 있는 법이다.

그것은 절대적이며, 때로는 불합리해보이고 부당해보일지라도, 어른인 이상 감내하고 책임져야 할 당연한 짐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직 남아있을지도 몰라."

아이들을 책임지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

자신마저 죽어버리면, 다시금 그러한 때로 돌아가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비틀 수 있다면.

다시 한 번만,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면.

"......아침이 되면 병원에서 퇴원할거야. 그러니, 정오 즈음에 샬레로 찾아와 줘."

죽기까지 남은 건 9일.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진다면, 남은 9일을 온전히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꾸물거릴 시간은 없다.

"......너희들이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

--------------

9일 전

한 편에 하루를 써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러니 이건 상편일 뿐이다

정작 이런 상황이 닥쳐온다면...믿을 수 있을까?

아직 단순히 쓰러졌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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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5.03.12창작

소설,피폐?) 선생님이 9일 뒤에 죽는 이야기 (상)

#선생#소설#피폐
좋아요 0댓글 7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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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DC
데스/모이네스!작가
게시물 51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YouTube
게시일2025.03.12 16:53
조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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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나
ㅇDC
ㅇㅇ125.03.12

9일은 인간적으로 너무 촉박하네 무슨 만화에 나오던 악어도 100일은 주던데

ㅇDC
ㅇㅇ225.03.12

학생에게 밝히고 같이 준비하는건 진짜 신선하네

ㅇDC
ㅇㅇ325.03.12

선개추 후감상

ㅇDC
ㅇㅇ25.03.12

선생이 너무 신중하지 않았네 저런 말 해봐야 좋을 것 하나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저랬다는 것은 호구나 다름 없는 짓인데 차라리 그냥 이렇게 쓰러질 때 밝히는 것이 낫지 괜히 애들 불안하게 만들면서까지 한 그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네 저건 이타적인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것인듯

ㅇDC
ㅇㅇ25.03.13

이건 너무 비약인데 소설에 아무전조도 없다가 꿈만으로 나 10일뒤 뒤짐 하는게 더 이상한데 쓰러지고 나서야 그 꿈이 예지몽인갑다로 바뀐거고 거기다 공식스토리에서도 카드 대가에 대해 애들한테 비밀로 하고 쓰고있는데

ㅇDC
ㅇㅇ4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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