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MTVVDxXAz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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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기사 님! 방금 총학생회에서--"
"--저도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다급하게 달려오실 필요 없습니다."
헐레벌떡 뛰쳐들어온 티파티 행정관을 향해, 키리후지 나기사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무심하고 단호하게 응대한다.
생각해보니, 이것은 과하게 쌀쌀맞지 않았을까 싶어, 그녀를 향해 뒤늦게나마 살짝 웃어주기로 한 모양이다.
"...공식적인 대응이 시급한 사항은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신경쓰실 필요 없어요. 특이사항이 있으면 지침을 하달하겠습니다."
"아...알겠습니다......"
업무 다 팽개친 채로 급행한 의미가 퇴색되어버리자, 아무래도 머쓱해질 정도로 김이 샌 모양이었다.
꾸벅 인사하며 발코니를 나서는 행정관을 보며, 키리후지 나기사는 짧게나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예상을 하나도 비껴가질 않는군요."
티 테이블에 내려놓은 자신의 휴대폰이 은근히 야속해지기 시작한다.
조금 전 도착했던 공지를 보자마자 '누군가 뛰쳐들어올 것이다' 라며 쓴웃음을 지었는데, 그 감이 심각할 정도로 정확했으니...
"그런 나기사야말로, 꽤나 당혹스러워하는 표정이었죠."
"......티가 많이 났나요? 저도 아직 멀었네요."
유리조노 세이아는 그런 그녀를 향해 슬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한 마디 툭 던져놓았고, 나기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두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샬레의 학생 상담 업무 일시 중단. 세이아 씨는 이 공지가 쉬이 믿어지세요?"
"확실히, 기분 좋은 오후 티타임에 곁들일 이야기는 아닙니다. 필시 선생님께 무슨 사정이 생겼겠죠. 조금 바쁘다고 그 쪽의 업무를 줄일 위인은 아니니까."
세이아는 그렇게 말하며, 제 앞의 찻잔을 들어 영롱한 붉은빚의 히비스커스 차를 한 모금 마신다.
"무슨 변고가 생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지금으로선 제가 느끼는 석연찮음 말고는 확정지을 것이 없네요."
"세이아 씨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후후, 농담입니다. 당혹스러워하는 나기사를 한 번 골려주고 싶어졌어요."
쌉싸름한 차의 맛에 동화된 것인지, 세이아는 작게 키득거리며 나기사를 바라보았다.
"나기사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토록 다망하신 분이니까요. 중요 업무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쪽이 피차 깔끔한 법."
"이렇게 공지까지 띄우는 건 제법 기이하지만...지금으로선 별 수가 없지요."
"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죠. 어느 누군가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마우련만."
세이아의 찝찝한 사족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행정관 때와는 전혀 다른 요란한 문 소리가 사방천지에 울려퍼진다.
"나기 쨩, 나기 쨩!! 이게 무슨 소리야??? 상담 업무 중단이라니, 이거 선생님 이야기 맞지???"
"...양반 되긴 글렀군요."
세이아는 그 요란법석한 목소리 쪽으로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자신 몫의 차를 한 모금 더 홀짝였다.
미소노 미카의 행동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건, 언제나 키리후지 나기사였다.
"미카 씨. 제발 부탁이니 문 좀 살살..."
"어라? 이거 나만 급한 상황이야? 선생님이 상담을 중단한 상황이라니까???"
미소노 미카는 이런 미적지근 무미건조한 반응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오히려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티파티의 호스트를 바라본다.
"저희도 방금 막 확인한 차입니다. 발신인도 총학생회 명의인 걸 확인했고, 어떻게 된 일인지 천천히 알아봐야죠."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냐? 선생님이 상담을 중단할 리가 있어? 그리고 그걸 왜 총학생회에서 공지하는 거야?"
"잊지 마세요, 미카. 샬레는 총학생회장 직속 기구입니다."
걱정과 의문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쏟아내는 미소노 미카를 향해, 유리조노 세이아는 당연한 사실을 타이르듯 나긋나긋하게 말을 꺼내둔다.
언뜻 보면 태평스럽기까지 한 그 모습이, 미카에겐 심히 아니꼽기 짝이 없었음은 당연한 이치이겠다.
"세이아 쨩의 말 배배 꼬는 습관이 또 나오려고 하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총학생회장 직속 기구가 총학생회장 권한대행과도 연관이 있음은 자명합니다. 당사자들끼리 합의되었을 그 사항을 그들이 공표하는 것도 이치에 맞다고 볼 수 있겠죠."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하면 안돼?"
"...샬레는 총학생회와도 연관되어있으니, 샬레 관련 공지를 총학생회가 올리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뜻입니다, 미카 씨."
세이아의 말을, 나기사가 간단히 정리해 미카에게 건넨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를 하고 있지만, 미카 역시 딱히 더 이상의 트집거리를 찾지는 못 한 모양이다.
"...직접 만나보면 속이 좀 편할 것 같은데......"
"당신은 티파티입니다, 미카. 경거망동을 지양하세요."
나기사나 할 법한 태클을, 기이하게도 세이아가 대신 행한다.
물론 일부러 그러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단어를 썼을 것이고, 그것이 또 한 번 미카의 속을 박박 긁었음은 당연하겠지.
"......나, 확 티파티 그만 둘까?"
"파테르가 또 한 번 신나서 날뛰었다간 나기사가 진짜로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그저, 그들을 억제하는 역할만 해도 충분합니다."
"그거, 그냥 뒷방 늙은이마냥 트리니티에 가만히 눌러앉아있으란 얘기지?"
"정확합니다. 드디어 당신도 발전이라는 것을 하는군요."
여기서 더 가만히 냅뒀다간 당장 이 곳부터 개판이 날 것이라고, 키리후지 나기사는 그렇게 판단한 모양이었다.
"--자아, 두 분 다 거기까지 하세요. 그렇게까지 맞붙을 사안이 아니에요."
"...선생님이 어떻게 된 것일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도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인거죠. 아직은 정보가 부족해요."
그러니까 미소노 미카를 저렇게 잘 타이를 수 있는 것이겠지.
"미카 씨의 말도 일리가 있어요. 선생님께 무슨 변고가 생겼을 수 있죠. 만약 그렇다면 정치적으로 어떤 영향이 미칠지 모릅니다. 그......저희 마음도 영 불편하구요."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붙이지 않았을 사족을 붙이며, 나기사가 세이아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렇지만 세이아 씨의 말도 맞아요. 근신 중이라지만 미카 씨 역시 티파티의 일원입니다. 무작정 움직였다간 후폭풍이 골치아플 수 있죠."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라는 이야기야?"
"상황을 먼저 파악하자는 이야기입니다."
키리후지 나기사가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아까 전에 수신된 공지 창을 다시 열어보인다.
"우선 총학생회 쪽에 신속한 상세 설명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겁니다. 동시에 가용 가능한 자원을 최대한 사용해서, 선생님의 신변에 변수가 생긴 것은 아닌지도 확인해야겠지요."
"...어떤 방법을 쓸 거죠, 나기사?"
"그...을쎄요. 선생님과 제법 친분이 있는 학생들을 은근슬쩍 샬레로 보내본다던가요. 당번표를 참고해도 좋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나기사는 가벼운 손짓으로, 문 바로 옆에서 대기중이던 행정관을 호출한다.
"총학생회 통괄실로 급편 공문을 보내세요. 어떤 상황이길래 상담 업무가 중단되었고, 중단 예상 기한은 언제까지이며, 이걸 선생님이 아닌 총학생회에서 공지한 연유도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아, 하스미 씨도 불러 주시겠어요?"
"하스미 부부장도요. 알겠습니다."
행정관이 고개를 살짝 숙여 지침을 하달받은 뒤, 티파티스러운 우아하고 절제된 동작으로 발코니를 떠난다.
"정의실현부는 왜?"
"샬레 쪽을 염탐시킬 생각입니다. 총학생회가 무언가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의 손에 들린 찻잔은, 평소처럼 전혀 요동치지 않았다.
"심히 당신다운 빠른 판단이로군요, 나기사."
"......살짝, 의심암귀 같았을까요?"
아무래도 신경쓰인다는 듯, 키리후지 나기사는 슬며시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정신적으로는 성장했을지언정, 뇌리에 박힌 그 네 글자만은 아직 단 한 획도 지어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유리조노 세이아는, 그 어느 차보다도 씁쓸한 미소를 짓는 그녀를 잠시간 바라보더니, 이윽고 언제나와 같은 얼굴로 찻잔을 다시 집어들었다.
"...저라도 그렇게 했을 겁니다."
* *
소라사키 히나는, 많은 것들이 신경쓰이는 듯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듯한 그 표정은, 분명 선도부의 모두가 필히 피하고자 하는 공포의 상징이요, 불안함의 극치였다.
영 불편한 표정의 아마우 아코, 무슨 말을 내뱉어야 할 지 망설이는 시로미 이오리의 표정이 그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리라.
물론, 히나 반대편에 앉아 있는 나츠메 이로하에겐 어찌되던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상담 업무 일시 중단......"
이로하가 내밀어 둔 휴대폰의 화면을 내려다보며, 히나는 벌써 그 말을 네 번째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슨 재미없는 농담인가 싶어 직접 휴대폰을 집어들어 가까이서도 봤지만, 총학생회에서 공식적으로 발송한 전자 공문임은 확실했다.
"...선생님에게 뭔가 일이 생긴 모양이네."
마침내 히나가 내어놓은 중얼거림에, 커피를 홀짝이던 이로하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다.
"이 공지, 확실히 오늘 온 거지?"
"네. 30분도 안 지났어요."
음식으로 친다면 아직 채 식기도 전일 것이라고, 이로하는 그렇게 덧붙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공지를 백날 우리가 받아봐야 뭐 대응이 되겠어요? 그래서 들고 온 거에요."
"...그건 그래. 마코토는 뭐라고 했는데?"
"샬레의 영향력이 약해진 지금이야말로 만마전의 이름을 드높일 때라면서 연설문 쓰고 있어요. 선생님마저 감화시킬 연설을 하겠다면서요."
"......그래. 마코토답네."
어찌 본다면 참 한결같아서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뭔 짓거리를 저지를 지 예상이 되기라도 하니까.
"이 사실, 바로 공표할거야?"
"아뇨. 일단은 저희 쪽에서 샬레로 넘겨줄 상담 신청만 보류 처리하려구요. 그거 서류 처리도 어차피 제 담당이라 처리하긴 쉬워요. 바로 공표했다간 어떤 피곤한 일을 겪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럼 마코토를 말려야 하지 않아? 연설한다며?"
"아마 근시일 내로는 완성 못 할 걸요? 오늘 이부키랑 어디 놀러가기로 약속했던 시간이 코앞이라서요. 그거 지나면 스리슬쩍 까먹을거고..."
이로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래도 마코토와 이부키가 했다는 그 약속에, 그녀도 멤버로서 끼어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전달할 것도 전달했으니 전 갑니다. 공문은 캡쳐해서 모모톡으로 보내놨어요."
"잠깐만. 근데 넌 만마전이고 난 선도부인데, 너희에게 온 공문을 왜 보여주는 거야?
정작 제일 중요한 사실이 이제야 떠올랐다는 듯, 소라사키 히나는 등을 돌려 나가려던 이로하를 멈춰세운다.
그녀는 딱히 선도부에 적대적이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도부와 만마전은 서로간의 공문을 공유할 정도로 절친하진 않다.
딱히 요청한 것도 아니었고, 이 공문의 존재 자체도 몰랐던 것이니만큼, 그녀가 보여주러 오지 않았다면 평범한 하루 삼아 지나갔을 지도 모르는 참이다.
그러니, 히나는 그저 궁금했을 뿐이다.
"...귀찮은 건 질색이지만, 이건 왜인지 빨리 해결을 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아서요."
이로하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발걸음을 마저 재촉하려는 듯 발을 떼기 시작한다.
"선도부장이라면 뭔가 대응책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마코토 선배 말고."
"......일단 알겠어. 알려줘서 고마워."
"천만에요. 하아...이런 일을 제대로 해결하는 선배들이 없으니......"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아코와 이오리에게 힐끗 눈길을 주던 이로하가 선도부실을 나가버렸다.
막혀있던 물길이 트인 것처럼, 그제서야 아코가 스리슬쩍 히나의 곁으로 다가온다.
"이상하네요. 그 사람, 학생 관련 업무를 중단시킬 사람이 아닌데요."
"응. 단순히 업무가 바빠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
히나가 아코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 사람은 제법 바보천치같은 사람이라, 하늘이 두쪽나는 한이 있어도 학생 관련 업무를 미루지는 않는 사람이다.
이로하가 보여 준 공지가 유독 의문스러워지는 이유였다.
"...다른 쪽들도 뭔가 반응이 나오겠지. 학생회들에 우선적으로 공지를 띄운 모양이니까."
"확실히 부장 말대로겠네. 선생님 이야기를 그냥 넘길 사람은 이 키보토스에 없을 테고."
시로미 이오리가 고개를 끄덕인다.
각 학교의 학생회들에 우선적으로 공지가 전달된 모양이고, 결국 각자 나름대로의 초동 대응을 의논할 터이니, 자신들이 당장 무언가를 할 형편은 못 되었다.
"......아, 그래.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 보는 건?"
이오리가 아무런 생각 없이 되는대로 내뱉은 그 말.
그 말은 다음의 행동을 고민하던 소라사키 히나의 양 뺨따구를 찰싹 때리는 것과 진배없었다.
전화. 전화.
그래. 맞아.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허나 히나의 그 생각은, 이윽고 찾아 온 다른 생각에 잡아먹혀버려 그 뜻을 이루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괜시리 선생님께 민폐가 되면 어떡하지? 만약 엄청 바빠서 그런 거라면--"
"--그걸 왜 부장님이 걱정하세요?"
또한, 히나의 그 근심은 아코가 덥석 잡아먹어버리려는 모양새였다.
"애초에 이런 쓸데없는 공지로 사람들 혼란에 빠뜨린 선생님 잘못 아닌가요? 부장님은 피해자잖아요? 그 사람이 걱정할 문제니까, 전혀 신경쓰실 필요가 없어요!"
"...언제나 느끼는 점이지만, 아코 쨩의 남탓하기는 정말 천부적인 재능인 것 같다니까."
"시끄러워요, 이오리. 다 들리거든요?"
마음의 소리를 참지 못한 이오리와, 그런 이오리를 향해 도끼눈을 흘기는 아코.
그 두 사람을 신경쓰는둥 마는둥, 히나는 영 고민이 되는 듯 그저 휴대폰만을 바라 볼 뿐이었다.
...그런 히나가 뭇 답답하다고 말하는 듯, 그녀의 휴대폰이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울기 시작한다.
발신인을 확인한 히나가 아코와 이오리를 향해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설마 선생님인가' 따위의 오해를 재빨리 뿌리쳐버리려는 사소한 배려일 것이다.
"...타이밍이 꽤나 좋네, 타카나시 호시노."
[ ......으헤? 이건 내가 생각한 히나 쨩의 인사가 아닌데...... ]
휴대폰 너머의 발신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인삿말에 썩 당혹스러워하는 모양이었다.
[ 으음...다름이 아니구, 히나 쨩이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져서 알려주려고 전화했지~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
"신경써줘서 고마운 걸. 선생님의 상담 업무 중단이라는 뉴스 말고 다른 이야기를 원했거든."
히나가 싱긋 웃으며 내뱉은 말에는, 은근히 무안스럽기까지 할 정도로 대답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아야네 쨩, 이 공지는 학생회한테만 온 거 아니었어?' 라는 소리가 들려오긴 했다만, 슬며시 못 들은 체하기로 결정했다.
수신인은 이 쪽이 아닌 모양이고, 남 몫의 대답을 대신 하는 악취미는 없었으니까.
[ 이것 참. 언제나 한 발 빠른 것 같네~ ]
"타카나시 호시노랑 친구하려면 기본 아니겠어?"
[ 으헤~ 완벽한 히나 쨩 모드에게는 이기기 힘들어. 그럼 다 치워두고 본론으로 넘어가볼까? ]
아무래도, 이번에는 판정승을 거둔 모양이다.
[ ...선생, 전화 안 받아. ]
"......전화를 안 받는다고?"
타카나시 호시노가 내뱉은 말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 끝이 날카로워질만한 말이었다.
아무래도 아비도스 쪽은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거는 쪽을 택했던 모양이고, 선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응답으로 일관했던 것 같다.
[ 그 공지, 우리도 받았거든. 곧바로 선생한테 전화를 걸었는데도 안 받았어. ]
"......단순히 바빠서 그런 건......아닌 것 같네."
호시노가 전해 온 그 사실이, 히나의 머릿속 생각을 일순간에 정리해버린 모양이었다.
[ 그래서 어떻게 할 건지 애들이랑 얘기하다가, 히나 쨩네는 알고 있나 싶어서 전화한거야. 뭐 반짝이는 아이디어 없어? ]
"...일단 두 가지 방법이 있어."
[ 두 가지? ]
소라사키 히나는 짧디막한 한숨을 내쉰다.
"첫 번째는 샬레로 찾아가보기. 두 번째는 총학생회로 찾아가보기. 어떤 게 마음에 들어?"
[ ...첫 번째로 할까. 총학생회로 찾아가봤자 쓸데없는 말만 늘어놓을 것 같거든. ]
아마 타카나시 호시노 뿐만이 아니라, 키보토스의 그 어느 누구라도 첫 번째 선택지를 골랐을 것이다.
그야 또 총학생회에선 쓰잘데기없는 이야기들만 꺼내둘 것이고, 문제의 본질로는 전혀 접근할 수 없을 것임이 분명하니까.
[ 아마 다른 녀석들도 움직이지 않을까 싶은데? ]
"다른 녀석들...트리니티나 밀레니엄 같은?"
[ 뿐만이겠어? 붉은겨울이고 산해경이고, 뭐 다들 득달같이 달려들지 않을까? ]
호시노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두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선생이, 다른 것도 아닌 학생 관련 업무를 중단한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가만히 있을 학생회 조직은, 전 키보토스를 뒤져본다고 한들 찾기 쉽지 않겠지.
"...즉, 누군가는 우리들보다 빠르게 초기 대응에 나섰을 수도 있다는 거네. 생각하긴 했던 건데...우리보다 느리단 보장도 없으니까."
[ 뭐~ 그렇지. 특히 트리니티 같은 곳은 벌써 뭐라도 하지 않았겠어? 자세한 이유를 내놓으라거나, 얍삽한 몇 명 뽑아서 침투시킨다거나. ]
선생 관련 공지로 부산한 것은 자신들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타카나시 호시노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소라사키 히나 역시 격하게 공감하는 바이고, 그렇기에 호시노가 펼쳐놓은 '아마도' 에 별 토를 달지 않은 것이리라.
"......만나서 얘기할래?"
뿐만 아니라, 히나는 전화 상대에게 즉시 만날 것을 제안한다.
[ ...으헤? 만나서? ]
"응. 그래야 샬레를 찾아가서 선생님을 찾던, 총학생회를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듣던, 뭘 하기에도 쉽지 않겠어?"
전화 너머의 타카나시 호시노는, 선도부장의 그 발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벽히 이해했을 것이다.
눈꼴사납게 전화로 떠드는 것보다는,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응을 찾아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호시노는 제법 옳은 판단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흐름에 따라서는...즉각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게 될 것이다.
[ 뭐어~ 나쁘지는 않은 생각이야. ]
"그럼 더 늦기 전에 만나. 아직은 해가 금방 떨어지니까--"
[ ---잠깐만. 히나 쨩, 잠깐만. ]
은근히 의욕적으로 밀어붙이던 히나의 제안에 일순간 제동이 걸렸다.
25톤 트럭마저도 그 자리에 멈춰세웠을 제동에 히나의 말도 그 자리에서 멈춰서고, 3초나 될까 싶은 기나긴 침묵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린다.
옆에서 가만히 귀만 기울이던 아코도.
안 듣는 척하며 힐끔힐끔 이 쪽을 바라보던 이오리도.
그리고 통화의 당사자인 히나도.
모두 숨을 죽인 채 그대로 멈춰선다.
침묵을 깨는 호시노의 목소리 역시도, 어안이 벙벙해진 모양이었다.
[ ......새로 공지가 올라왔어. ]
* * *
나나가미 린이 기나긴 한숨을 내쉰다.
( 주사위는......이미 던져졌군요. )
조금씩 주황빛이 감도려는 창밖의 풍경이, 괜시리 온몸의 뻐근함을 촉진시키는 것만 같아,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기지개를 켜 버리고 말았다.
제 자신의 휴대폰에 울렸던 두 번째 공지가 이 사태를 해결하는 첫 번째 발자국이 될 지, 자신의 숨통을 조여오는 첫 번째 갈고리가 될 지는, 아직 물음표 가득한 미지수였다.
그것만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거려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리라.
"......린 선배, 공지는 다 띄웠어요."
슬그머니 집무실의 문을 열며, 이와비츠 아유무가 지시 완수를 보고한다.
"고생했습니다, 아유무."
"아, 아뇨..."
아유무는 뭔가 물어 볼 것이라도 있는 듯 우물쭈물, 린의 기분을 살피며 잔뜩 망설이고 있는 모양새였다.
아무래도 린 자신이 먼저 운을 떼지 않으면 오늘 내로 못 들을 성 싶어, 평소대로의 말투로 입을 열었다.
"...뭔가요, 아유무. 무언가 용건이라도?"
"아, 아니! 그......선배, 다름이 아니고......"
자신이 너무 날카로운 말투였나 의문이 들 정도로, 화들짝 놀란 아유무는 뒤늦게 꺼낼 말을 찾느라 쩔쩔 매고 있었다.
...아무래도, 부드러운 말투를 연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공지를, 선배 명의로 띄운 이유가...있나요?"
조금 전에 막 발송을 완료한 그 공지를, 정확히는 공지의 맨 마지막 줄을, 아유무는 썩 기이하게 여기고 있는 눈치였다.
"...구태여 공지 맨 마지막 줄에 총학생회가 아니라, 선배 이름을 넣었다는 건......"
"......지금은 사태 파악 중. 그러나 샬레의 고문 선생님과 연관된 중대한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우선 판단. 이 건과 관련해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해 각 학교의 중진들과 긴히 논의할 계획이므로, 대외비 유지하며 기다려주시기를 정중히 요청드림."
나나가미 린은 차분한 어조로, 전송할 것을 지시했던 공지 내용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이야기한다.
"...자, 아유무. 이 공지의 내용은 전적으로 제 판단이었습니다. 행정위원회 임원회의에서 몇몇 분들이 쉬이 동의하지 않을 정도로 문제가 있는 상황이니까요."
린은 조금 전에 벌어졌던 임원회의를 회상한다.
선생의 요청대로 열렸던 임원회의에는 선생이 참석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참석조차 하지 못 할 정도로 컨디션이 저조했던 것이고, 참석을 강행코자 했던 그를 린과 유우카, 노아가 뜯어말렸던 참이었다.
세 사람을 남기고 먼저 복귀한 나나가미 린은 곧바로 임원회의를 소집했고, 선생의 상태가 그닥 좋지 않다는 것을, 유사 시를 대비한 방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정리하여 털어놓았다.
어른의 카드나 기타 많은 뒷이야기들은 아직 풀어놓지 않은 채로, '샬레의 고문 선생' 이 부재 시일 경우를 특히 강조하면서.
지나칠 정도로 건강하던 선생의 뜬금없는 소식에 대다수의 임원들은 그녀를 쉬이 믿지 못했다. '비대위 문제로 시끄러웠던 것이 얼마나 되었다고 또 이러느냐' 는 적나라한 의견마저도 표출되었을 정도니까.
회의론을 펼치는 그 몇몇 임원들은 린의 '권력욕' 을 비난했고, 정당한 증거 없이 소집하려 드는 비대위에는 찬성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나왔다.
"그래서 저는 제 직책을 건 겁니다. 스스로."
"선배......"
'또 비대위 운운하는 건 선 넘었지 않느냐' 라는 소리와 '그래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 라는 소리 가운데에서, 나나가미 린은 대놓고 승부수를 띄웠다.
'이번 사태가 아무것도 아니라면 수석행정관 직책과 총학생회장 권한대행직을 모두 내려놓겠다' 며.
이 정도까지 해야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으나, 선생의 그 진지한 눈빛을 또 한 번 믿어보기로 결심했고, 그러한 선생의 결심에 호응하려면 자기 자신도 무언가 각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저라는 사람이 책임을 지는 방식입니다. 총학생회장처럼 강압적이진 못하더라도, 저는 제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 볼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임원회의에서 제 직책을 걸었고, 공지에도 제 이름을 올려 둔 겁니다."
사실상의 '2인자' 인 재무실장 오키 아오이는 그녀의 비대위 개최를 동의했다.
린이 권력을 쥔 채 폭주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이전의 쿠데타 때 이미 증명되었으며, 사상 처음으로 직책을 걸고서까지 주장한 이상, 당장은 이야기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믿겠다면서.
덧붙여, 아오이는 만약 이번 사태가 별 일 아닌 쪽으로 흘러간다면, 더 이상 어떤 이유에서라도 린의 정치적 행보를 지지할 수 없다고도 못박았다.
재무실장 오키 아오이가 그렇게 나오자, 임원회의는 '일단 동의는 하겠는데, 최대한 빠르게 그 근거를 가지고 오라' 는 분위기로 흘러갔다.
"...선생님의 조언대로, 우선 비대위는 총학생회 내부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적어도 내부적인 명분은 섰죠. 아직 완전히 설득하기엔 눈에 보이는 근거가 부족하---"
"---솔직히 놀랐어, 선배."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 온 것은, 재무실장 오키 아오이였다.
"퇴임할 때까지 비대위 소리는 못 꺼낼거라고 생각했거든. 이미 한 번 큰 곤혹을 치렀으니까."
오키 아오이는 평소와 비슷한 무덤덤한 표정을, 허나 진심으로 놀랐다는 눈빛을 한 채 린을 바라본다.
"그런데도 비대위를 소집하겠다고 나선데다가, 그 전에 임원회의를 통해 총학생회의 내부 동의부터 얻겠다......뭘 준비하고 있는 거야?"
"아까 말한 그대로입니다, 아오이. 전 선생님이 부재중일 때를 준비할 생각입니다."
"준비......라."
린은 여전히 평소대로의 무뚝뚝한 어투로,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듯 아오이에게 대답했다.
오키 아오이는 그런 그녀의 말을 되짚어보듯 중얼거린다.
"...그 준비를, 이렇게 급작스럽게? 선배가 곤혹을 치렀던 비대위까지 소집해가면서?"
석연치 않다, 고.
재무실장 오키 아오이는 그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단순히, 저번에 선배가 곤혹을 겪게 한 게 미안해서 동의한 게 아니야."
아오이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라나가며 자신의 말을 완성시켜나간다.
"어쨌든 선생님이 부재 중인 상황도 있을 수 있어. 건강에 이상신호가 있을 수도 있어. 다 가능성은 있는 상황이야. 게다가 선배가 그 상태를 직접 봤다고 하니까 동의한 거지. 약간 무리수인 느낌이 없지않아 있지만..."
"네. 자각하고 있습니다."
"나야 선배가 그러는 게 무슨 이유가 있겠구나 싶거든. 선배가 주장하는 것들도 어쨌든 가능성은 있는 일이고, 실제로 선생님의 업무가 우려스러울 정도로 과중한 것도 사실이야."
임원회의에서도, 오키 아오이는 그 점들을 들어 린의 우려가 제법 타당하다고 주장했고, 선생의 부재 시를 논하는 문제는 비대위를 통해 각 학교 중진들과 논의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제법 그럴듯해, 아직 뜻을 정하지 못했던 임원들을 우물쭈물 찬성시키는 데에는 성공했다.
허나 반대파 임원 일부는 회의적이었고, 가부를 정하는 무기명 투표가 가결로 마무리된 데에도 꺼림칙해하는 눈치였다.
"백번 양보해서, 우리 임원들이야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그걸 다른 학교 학생회 간부들이 알아줄지는 모르겠어. 선배에게는, 그 모든 것들을 꺾을만한 명확한 무언가가 있는거야?"
임원들도 그 지경이었던 마당에, 과연 비대위에 소집된 각 학교 학생회들이 이 주장을 받아들일런지는......
오키 아오이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이 위태로운 상황을 뒤집을만한 무엇인가가, 그녀에게 있는가.
"...선생님의 말이 사실이라면, 곧 모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근거가 나오게 될 겁니다. 당장 내일이라도."
나나가미 린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추측성 대답을 던진다.
"어차피 선생님 말씀대로, 언젠가는 선생님 없는 키보토스를 맞게 될 겁니다. 조금 미리 준비한다고 가정해볼까 싶네요."
"...모험이야, 선배. 거대한 정치적 모험."
"압니다. 그러나 꼭 거쳐가야 할 길이죠."
정치적 모험.
혹은, 반드시 한 번은 지나가야 할 길.
그의 위태로운 고백을 믿는다면, 지금 이 순간은 언젠가는 닥쳐 올 위험천만한 상황이다.
어른 없이 맞이해야 할 상황을, 상태가 어떻든 어른의 지혜를 빌려 맞이할 수 있게 된 상황.
"......그거 알아? 나, 이렇게까지 단호한 선배는 처음 봐."
오키 아오이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름붙이기 어려운 갖은 감정들이, 길고 무거운 한숨을 타고 흘러나온다.
"준비 잘 해. 이번 비대위, 파행으로 끝나면 위험할 것 같으니까."
"...걱정해줘서 고맙습니다, 아오이."
나나가미 린이, 집무실을 나서는 아오이의 뒷모습에 감사인사를 전한다.
길고 길었던 하루의 태양이, 조금씩 노을로 바뀌어간다.
내일의 태양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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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것까지 포함해서 3화에 하루면 대체 언제가 되어야 완결이냐?;;
생각한 거에서 큰 틀은 벗어나지 않는데, 어째 점점 스케일이 커지는 것 같다?
책임과 신뢰가 이 시리즈의 메인 주제가 될 것 같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설정들을 건드릴 수밖에 없는 스토리고, 공식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설정오류도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이야기잖아
그냥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어떨까' 에서 출발해서 '그럼 이런 이야기도 가능하지 않을까' 에 도달하며 만들어진 글이니 재밌게 읽어줬으면 좋겠음
처음 잡아본 장편 주제가 하필......
요즘 현생이 특히 바빠서 자주 못 씀
이것도 운행이랑 운행 사이에 쓰다보니 되게 오래 걸렸고...그니까 이 정도 분량에도 소요시간이 꽤 걸린다
그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시간 날 때 읽으면 될듯
댓글 23
선개추 후감상
마참내
현생만 아니었어도......

끼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