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토스.me
홈모음집마이페이지
SUBSCRIBED
EXPLORE
BA블루 아카이브BR봇치 더 록!ZZZ젠레스 존 제로GI원신HSR붕괴: 스타레일모든 채널 보기
문의하기
블루 아카이브
블루 아카이브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24화/디데이를 앞두고(2)
/블루 아카이브
광고

게헨나와 트리니티 쪽과 말을 맞추고 온 선생과 유메는 2주 뒤를 임시 D-day로 잡았다.

작전 당일까지는 제너럴과 이사의 눈을 돌리는 동시에 최대한 다툼을 격화시켜보기로 한 아루가 내부에서 일을 벌릴 시기까지 맞춘 뒤의 결정이었다.

선생은 히마리로부터 새로 보낸 오토마타들 덕분에 샬레 내부 수리가 어느 정도 완료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뒤로도 일 주일 동안 아비도스에 머물었다.

유우카가 귀띔해주길, 밀레니엄 내부에서 한정되는 여론이긴 했지만 그런 선생을 두고도 뒷말이 많이 나온다고 했다.

선생의 속셈을 가늠해보려는 시도와 더불어 어차피 못 믿을 쓰레기가 쓰레기짓 할 거란 소리부터, 또 속아넘어가는 아비도스를 어리석다 손가락질하는 반응까지.

예상 못 할 반응들도 아니었기에 선생은 나름의 외부 현황 정도로만 취급할 뿐, 계속 아루와 밀담을 나누고 아비도스 학생회와 작전 회의를 거듭하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지금, 선생은 날짜에 붙은 임시 딱지를 벗기고 작전 실행일을 확정시키기 전, 마지막으로 만나야 할 이를 만나고 있었다.

"아비도스에서 생활은 괜찮으신가요, 선생님?"

"응, 제때 먹고 제때 잘 수 있긴 한 정도니까."

"생각보다도 수완이 좋으시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때도 살짝 반신반의하긴 했는데요."

"뭐, 계획 짠 나도 진짜 할 수 있을 줄은 몰랐으니까."

카야는 자신을 만나러 온 선생에게 커피를 대접하면서도 그의 외관을 유심히 살폈다.

조금 피곤해보이는 기색을 제외하면 정말로 아무런 이상도 없어 보이는 모습.

밖을 오갈 때도 목숨이 위협받는 것을 신경써야 할 이 어른이 아비도스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카야는 그를 높이 쳐 줄 수 있었다.

"내가 보낸 메일은 받았지?"

"네, 덕분에 제 위치에서 파악할 수 없던 현황까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이 보내준, 지금까지 있던 일의 요약본을 몇 번이고 확인했던 카야는 순수한 감탄을 토했다.

"제너럴과 PMC 이사끼리 알력다툼을 일으키는 데 성공하셨다니...... 어차피 일어날 일이긴 했습니다만, 상황을 앞당긴 것만으로도 굉장한 성과군요."

제너럴을 보물창고로 포장된 무덤으로 유도하고, 그와 나눈 대담 내용을 비밀 정보라는 양 PMC 이사 측에 흘린 것은 1주일만에 기대만큼의 효과를 낳았다.

두 사람 간에 말단 위치에 있는 아루도 감지할 수 있을 정도의 갈등 기류가 퍼졌다니, 내부 사정이 어떨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둘 원래 사이 안 좋은 편이었어?"

"꽤 유명하죠. PMC 이사가 아비도스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둔 걸 제너럴이 경계하면서부터 사이가 안 좋아졌다는데, 제가 보기엔 원래부터 두 사람 간에 감정의 골이라던가, 질투라던가 하는 기싸움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런 사이였나.

자신의 세계에선 들어보지 못한 차이점임에도 선생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아는 그 둘이라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잘 알겠지만, 시라누이 양은 상황이 커진다 싶을 때 키보토스 방위실장의 이름으로 개입하면 돼."

"저들이 전력을 소모해대다 서로 나가 떨어질 때 즈음, 말이죠."

"그래. 시라누이 양은 아직 카이저 내부 어느 쪽에도 정확하게 편을 든 적은 없다고 했지?"

"굳이 따지자면 제너럴 쪽과 가장 안면이 있긴 하죠. 카이저 쪽에서 전령으로 가장 많이 보냈고, 일적으로도 대화를 가장 많이 나눈 상대니까요."

"그렇구나."

"뭐, 그렇다 해도."

말하면서 카야는 씩 웃었다.

"역시 아는 쪽을 대하는 게 편하긴 하죠. 선생님이 PMC 이사 쪽을 버림패로 쓰신다니 저로서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선생이 카야에게 부탁한 것은 작전 이후의 수습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아비도스 학생회 내에서 총학생회의 지원을 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긴 했지만, 선생은 그렇게 쉽게 이뤄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직은 카이저와 완전히 척질 단계가 아니었고, 결과가 어떻든 작전 후 어그러질 게 뻔한 카이저와 나름대로 계속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선 카야의 중재가 반드시 필요했으니.

말하자면 여기서 카야의 협력을 받는다는 것은 뒤를 걱정하지 않고 카이저를 치는 작전에 돌입해도 된다는 의미에서 중요했다.

"저는 딱히 어느 쪽이든 상관 없습니다만, 제너럴 쪽 손을 들기로 한 이유가 있나요? 아무래도 이사 쪽이 떨어뜨리기 쉬워서?"

"프레지던트의 최측근인 제너럴을 이 정도 일로 떨어뜨리긴 쉽진 않긴 하니까."

"그렇긴 하죠."

"물론 무용하다는 것도 아니야. 아비도스 쪽이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제대로 놓을 작정이거든. 아마...... 프레지던트의 굳은 신뢰에 금까진 아니더라도 먹칠은 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훗날 희귀광물의 존재가 밝혀진다면, 그래서 카이저가 발 밑에 보물이 쌓인 걸 두고도 엉뚱한 데 삽질했다는 이미지가 박히면 겨우 금 정도나 가는 것도 아니겠지만.

그것까지는 모르고 있음에도 카야는 나쁘지 않게 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참 듣기 좋은 소리네요."

"......그렇지."

그렇게 그럭저럭 잘 풀리고 있는 듯 했음에도 무언가, 마음 속을 쿡쿡 찔러온다.

선생은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게헨나 쪽과 트리니티 쪽 동향은 어느 정도로 알고 있어?"

"선생님이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최악인 쪽으로 변함 없죠. 다른 학원들도 다 알 정도로 서로 헐뜯고 물어뜯기 바쁘니, 저도 참 고민입니다."

"밀레니엄을 비롯한 다른 학원들이 최악의 상황까지 번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들었어. 압력을 가하거나, 설득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그래봤자 카이저 그룹이 두 학원의 갈라치기를 위해 쏟아붓는 노력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일겁니다. 특히 그 자원 갖고도 대놓고 불을 지르려 하지 않고 조용히 장작만 넣고 있다는 게 더 무서운 부분이죠."

이 부분은 처음 듣는 소리다.

정보력의 한계로 파악하지 못한 정황을 알게 될 것 같은 느낌에 선생은 눈을 반짝였다.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을까?"

"물론이죠. 어디 보자...... 카이저가 키보토스 대부분의 군수 산업을 크게 장악한 부분은 설명 안 해도 알고 계시죠?"

"밀레니엄을 포함한 세 거대 학원이 그나마 경제적인 저항이 되어서 균형을 맞추고 있는 것까지."

"그렇죠. 그리고 밀레니엄보단 갈등, 그러니까 전쟁 상황까지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두 학원의 공멸을 노리는 카이저의 전략은 매우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그게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낮잖아? 두 학원과 접촉한 적 있는 쿠치나시 양 말로는...... 각 학원의 온건파들이 평화 협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같다던데."

회담 내용을 주워들은 것처럼 각색해서 말해도 상관 없을 부분만 추려내 알려주자 카야는 코웃음을 쳤다.

"제가 맞춰보죠. 그 온건파라는 사람들이 게헨나 선도부장 소라사키 히나와 트리니티 티파티 호스트 키리후지 나기사 맞죠?"

"맞아. 그 두 사람이면 권력과 인망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서, 조약을 실제로 맺을 능력도 충분하다 생각해."

"글쎄요,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만."

조소와 함께 손가락을 내저으며 카야가 계속 말했다.

"우선 그 둘 말고 각 학원 내에 온건파가 없다시피 하는 걸 고려해야 합니다. 트리니티의 다른 티파티 구성원, 유리조노 세이아의 사망에 게헨나가 배후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곤 두 학원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두 사람이 책임지고 퇴임하는 걸 각오하고 추진한다 한들 여론에서부터 막힐 확률이 높습니다."

"하지만 두 학원 모두 전쟁을 치룰 여력은 없어. 전쟁이 일어나면 공멸을 각오한다는 건데, 카이저가 노릴 게 뻔한 상황에서 서로 멸망하는 스위치를 누를 리가."

"상황을 너무 이상적으로만 보고 있고 계시네요. 두 학원에 각각 가서 카이저와 상대방 학원, 어디를 더 증오하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후자를 꼽을 겁니다. 이제 이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에요 선생님. 감정의 문제란 말입니다."

머리가 아파왔다.

선생은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트리니티는...... 게헨나와 아리우스가 내통한 실증이 밝혀졌으니 명확한 증오의 이유가 있다고 치고. 가해자 위치인 게 분명한 게헨나가 트리니티를 증오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지?"

"그것도 감정의 문제죠. 저는 피장파장이라 생각합니다만 그들의 논리로는 원래 게헨나가 트리니티에게 당하고 살던 와중에 수뇌부 한 명의 막장짓으로 싸잡아 욕 먹는 게 맞냐는 입장이더군요. 전부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게헨나의 대외적으로 안 좋은 이미지가 트리니티의 지속적이고 교묘한 가스라이팅 때문이란 말도 돌 정도니까."

자신의 세계에서도 강도는 낮을 지언정 비슷한 기류가 있었으니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성의 영역이 아닌 감성의 영역은, 논리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으니.

"......근데 유리조노 양의 사망 건 말인데, 정말 사실이라 보는 게 맞아? 트리니티 쪽 발표 말곤 사실 확인 된 게 없잖아."

"100% 확신을 묻는 거라면 사실 저도 선뜻 그렇다 하긴 어렵긴 합니다. 하지만 정황상 70, 아니 80%는 사실이라고 보고 있어요."

"만마전 회장, 그러니까 전 회장이 아리우스와 내통한 내용의 협약서는 조작 됐을 가능성이 없나?"

"아리우스 측이 잠적해서 조사중인 부분은 몰라도, 하누마 마코토의 인장과 친필 사인이 적혀 있는 시점에서 빼도 박도 못한 사실입니다. 그 권력욕에 찌든 인간이 발악할 틈도 없이 쫓겨났는데, 참 볼만 하면서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 싶더군요."

마음이 답답해져 왔다.

세이아는 정말로 사망한 것일까?

실각당한 마코토는 정말 아리우스와 내통해 세이아의 헤일로를 파괴한 걸까?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도무지 아비도스 밖으로 정보망을 뻗을 방법도 없었다.

자신이 주변에 일단 아비도스에 집중하자고 다독이긴 했지만, 되든 안 되든 작전의 끝이 보이는 상황에서 계속 발이 묶여 있는 건 곤란한데도.

대체 이런 상황에서 이 세계의 에덴조약 쪽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뭐가 있긴 한 건가?

"......시라누이 양."

"예, 선생님. 말씀하시죠."

"혹시 방위실 쪽에서 아리우스 잔당에 대한 추적에 힘 써줄 수 있을까?"

"세이아 씨를 암살한 요인이 누구인지도 제대로 확인이 안 된 상황인지라......"

"그쪽 말고, 게헨나랑 아리우스의 협약서에 싸인 했다던 이름 있었잖아."

"아, 그쪽 말이죠. 잠시만요, 거기 적혔다던 이름이......"

양해를 구하고 노트북을 가져와 무언가를 찾아보던 카야가 반색하며 말했다.

"아, 여깄네. 아리우스 학생회장... '하카리 아츠코' 말이죠."

그럴 리가 있나.

선생은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치솟아 오르던 분노를 떠올리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지금도 아리우스 분교 어딘가에서 암약하고 있을 베아트리체는 타인의 능력과 신비를 강탈할 수 있는 능력으로 학생회장 직까지 강탈해 활동했다.

여기라고 다를 바 있을까.

그런 그녀가 다른 이도 아니고 아츠코의 이름을 테러 배후자의 정체로서, 그것도 학생회장이랍시고 내세운 것은 그야말로 악의밖에 느껴지지 않는 인사였다.

"이쪽도 이름만 밝혀졌다지, 사실 오리무중이긴 합니다. 사실 아리우스 분교 자체가 총학생회도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지 않아서 말이죠. 혹시 샬레의 데이터베이스도 마찬가지 아니었나요?"

"......맞아. 찾아봤는데 업데이트가 전혀 안 돼 있다시피 하더라고."

"그것 보세요. 그렇게 쉬웠다면 저희 선에서 진작-"

"하지만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딘지는 알 것 같아."

"...네?"

"아비도스 아이들이 트리니티와 접촉했을 때 얻은 정보를 토대로 특정 위치를 파악할 수 있었어. 그 애들, 그렇게 안 봤는데 꽤나 수완이 좋았더라고."

당연히 선생은 베아트리체가 있는 곳을 직접 가봐서 알고 있었지만 그걸 또 곧이곧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

어차피 나기사와 회담을 나눈 것도 사실이니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면에서 신의 한 수나 다름 없는 명안이었다.

"좀 더 정리한 뒤에 자료를 보내줄게. 아무래도 나는 트리니티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들 것 같으니, 그 부분은 시라누이 양이 힘을 좀 써줬으면 해."

"확실히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맡겨주시죠. 마침 좋은 인선도 있으니."

"FOX 소대 말하는 거지? 안 그래도 그 때 도움 많이 받았어."

"네, 키보토스 최고의 특수부대 팀이나 다름 없으니까요. 목표물만 특정되면 찾아가 끌고 오는 건 일도 아닐 겁니다. 일이 쉽게 풀리겠네요, 흐흐흐."

카야의 실눈이 떠지며 그 사이로 번들거리는 안광이 보였다.

아리우스의 뒤를 밟게 되면 그것을 자신의 성과로 만들 욕심에 차 있는 거겠지.

다시금, 마음이 쿡쿡 찔려왔다.

그렇게 카야를 이용하는 것 같은. 아니, 이용하는 게 맞는 자신의 모습에.

"걱정이 많으신 표정이네요 선생님."

"......뭐, 그렇지."

선생은 고개를 갸웃하는 카야를 두고 말을 신중히 해야 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무언가 놓칠 것 같아서.

"시라누이 양."

"네, 선생님."

"시라누이 양의 목표, 아니. 꿈이랄까, 혹시 있어?"

"네?"

"뭔가, 진로라던가...... 그냥, 궁금해져서."

뭐지.

이 평범한 선생과 학생 간의 대화는?

카야는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과 이 선생 간에 이런 대화가 한순간 오고 갔다는 사실에 순간 위화감을 느꼈다.

"글쎄요."

뭐, 그렇다고 말하기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지만.

커피잔을 내려놓은 카야는 싱긋 웃으며 영문 모를 선생의 말을 받아주었다.

"굳이 말하자면 권력이랄까요."

"그렇, 구나."

"선생님을 보며 잡은 목표기도 합니다. 새삼스럽지만요."

"...?"

"알고 계시죠, 선생님? 작금의 키보토스는 혼돈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아비도스는 카이저 손에 무너지기 일보직전.

세이아의 암살 건을 둔 게헨나와 트리니티의 위태로운 관계.

그리고 배후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아리우스의 존재.

눈 앞에 드러나 있는 혼란만으로도 체계가 무너질지도 모를 굵직한 상태건만, 그 외에도 풀어야 할 문제는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혼돈은 선생님의 부임으로 한순간에 휘어 잡혔죠. 사실 저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아리우스가 게헨나와 트리니티 사이에 끼어들어 사이를 더욱 악화시킨 건, 사실 선생님이 아무리 신경 썼다 한들 제대로 대처하기도 힘들었을 내부 문제였으니까요. 그것만 아니더라도 혼란이 전역으로 뻗어갈 일도 없었겠죠. 중요한 건, 선생님이 부임하면서. 샬레가 활성화되고, 생텀 타워의 제어라는 것이 되고서부터 키보토스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걸 보면서 깨달았죠."

"...어떤 걸?"

"역시 키보토스엔 초인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총학생회장처럼.

키보토스가 자신이 바라던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돌아가던 시절을 떠올리며 카야는 재차 확신했다.

"규칙과 규범이란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면서도 실은 애매하기 짝이 없어서, 늘 허점이 발생하고 악용되는 법이죠. 교활하고 악한 이들이 이득을 얻고, 순수하고 순진한 이들이 피해를 입는 악순환을, 저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을 깨부술 강력한 힘이야말로 키보토스에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고, 우리 둘이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도 그것을 바라지 않았습니까?"

아마도, 이전 선생이 바랐을 수도.

그를 만난 적이 없는 선생은 키보토스의 혼란을 그냥 두고 오히려 부추긴 그가 어떤 진심을 가졌는지 알 수 없다.

그가 무엇을 원해 키보토스에 남고, 대체 왜 자격도 없을 선생이란 감투에 집착한 것인지.

어쩌면 그에 대한 답이 될 지도 모를 말을, 이전 선생과의 협력자였던 카야가 대신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잘 실감되지 않는다는 눈치시군요. 하긴, 기억을 잃으셨다 하셨으니. 이렇게 말씀드리니 죄송합니다만 지금의 선생님은 겁이, 아니 걱정이 생각보다 많은 분으로 보이시네요. 그게 본성이시라면 제 입장에선 참 곤란하답니다?"

맞지도 않는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한계가 찾아와 우물쭈물하는 자신이 답답해보였는지, 카야의 미간이 살짝 일그러진 것이 보였다.

"좀 더 결단력을 가지셔야 합니다. 기억상실증까지 무기로 이용해 아비도스로 쳐들어갔을 때의 과감함을 잊지 마세요, 선생님."

"그, 그래.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는 선생의 안색은 여전히 편하지 못했다.

카야는, 자신의 세계의 그녀와 다를 바가 없어보였기에.

오히려 그녀 입장에서 더욱 이용하기 좋은 환경에서 개의치 않고 폭주할 기색을 보인다는 점에서 더 불안했기에.

언젠가, 자신이 정체를 밝히는 날이 올 때 그녀는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자신을 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기 전까지 자신이 구원할 수 있는 학생의 대상에, 카야도 같이 낄 수 있을까.

선생은 여전히 답답한 속을 풀지 못한 채 식은 커피를 마셨다.

지금은 아비도스에 집중해야 하겠지만, 그 뒤는......

어떡해야 할 지 아직 모를 일이었다.

* * *

아비도스로 돌아오자마자 선생은 반가운 얼굴과 마주쳤다.

이 세계에선 그렇게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던 학생이라 더욱 그랬다.

"안녕, 이자요이 양."

"안녕하세요 선생님. 그리고......"

무뚝뚝하게 인사를 받아준 노노미의 시선이 선생의 어깨로 향했다.

"오늘은 아이스크림인가 보네요."

"그러게, 던질 거면 차라리 저번처럼 빵이나 도넛 같은 쪽이 빠는 데도 편한데 말이지."

아무렇지 않은 듯 너스레를 떠는 선생을 노노미는 빤히 올려봤다.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어른이었다.

평행세계의 비슷하지만 다른 인물? 그게 뭐 어쨌다는 건가.

저 어른도 가면을 쓰고 있을지 누가 안다고.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모습은......

"주세요."

"응?"

"그냥 두면 닦기 힘들어져요. 어차피 있다가 세탁소 가야 하니까, 같이 빨면 되니까요."

"어어, 그래주면 고맙지."

선뜻 자신에게 옷을 건네주는 꾸밈 없는 미소.

학교 밖을 나서는 것조차 저런 핍박을 감당해야 함에도.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온전히 믿지 못해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걸 매일 견뎌야 함에도.

이 어른은 늘 이렇게 웃었다.

이것도 가면, 이라기엔 무언가 이전 선생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에.

노노미는 무심코 담아주었던 질문을 꺼내버렸다.

"유메 선배와 무슨 일이 있던 건가요?"

"응?"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선생.

"처음 만났을 때 빼곤 딱히 아무 일 없었는데?"

"거짓말 하지 마세요."

노노미는 무슨 일이 없을 리가 없던 유메의 표정을 떠올리며 선생을 노려봤다.

"유메 선배가 계속 선생님을 피해 다니는 거, 제가 모를 줄 아셨어요? 그것도 이렇게 중요한 때에."

"......티가 좀 나긴 했지."

유메를 위해 숨기려 한 건지 선생은 금세 표정을 풀었다.

그러나 그 진심을 모르는 노노미는 그 모습에.

이전 선생처럼 자유자재로 가면을 쓰는 어른의 모습에 뭔지 모를 역겨움을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어요 선생님."

어른 때문에 나락으로 빠뜨린 자신들이, 이 어른으로 인해 없다고 생각한 기회를 잡은 건 외면해선 안 될 분명한 사실이었기에.

그것에 감사하지 않음을 안 된다는 사실이 자신이 품은 감정과 상반되는 상황에.

노노미는 혼란을 겪고 있었다. 그리고, 유메 또한 자신과 같은 혼란을 겪고 있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저희는 더 이상 배신당하고 싶지 않아요."

"이자요이."

"저희는 어리죠. 똑똑하고 영리해지고 싶지만, 결국 저희보다 많은 경험을 해서 더 똑똑한 어른에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아이에요. 그래서 이미 당한 거겠죠."

"......"

"선생님도 그렇잖아요?"

자신이 알고 있던 노노미와는 완전히 다른 미소를 짓는 소녀를 내려보는 선생은 그 눈에서 볼 수 있었다.

학생이 해서는 안 될 너무도 공허한 눈빛.

희망을 품는 것조차, 다시 빼앗길까 두려워 필사적으로 감정의 공간을 비워두고 있는 두 눈.

"선생님은 저희를 알고 있다고 했지만, 틀려요. 어차피 '저희'는 당신이 알고 있는 학생이 아니잖아요."

이전 선생의 패악질로 상처 입은 학생들로서 그들을 보았다.

하지만 유메와, 이 세계의 적지 않은 학생들을 만나보며 선생은 이제 그것만으로는 이들의 상태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음을 알았다.

"돌아갈 곳이 있는 선생님께는, 저희는 그저 남일 뿐이니까. 따지고 보면 선생님이 겪는 고난은 애초에 무시해도 상관 없는 일이겠지만......"

"그렇진 않아."

고개를 저으며, 선생은 말했다.

"너희를 배신할 일은 없으니까. 어차피 목적을 이룰 때까진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것도 있지만...... 원래 이게 내 일이기도 하니까. 고통받는 학생을 못 본 체 지나치는 선생은 없어."

"저희는 그런 선생 때문에 이 꼴 났는데요?"

"히포크라테스 선서."

"?"

키보토스엔 없는 이름이 나오자 노노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내 세계, 그러니까 키보토스에 오기 전에 있던 고향에서 의사들에게 지켜야 할 윤리를 정리해 만든 선서야. 모든 의사들은 생명을 살리고 봉사하는 정신을 몇 번이고 강조하는 그 선서를 낭독하고 가슴에 품고 살지만...... 사람이란 게 늘 그렇듯이, 모든 의사가 돈과 명예 같은 속물적인 요소들을 멀리하는 성인군자는 아니거든."

의사, 경찰, 선생......

타인을 위해 봉사한다는 숭고한 일을 해내는 이들을 대명사로 묶는다면, 사람들은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인식할까.

분명한 것은, 깨끗하고 청렴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겠다는 거겠지.

선생은 그것이 싫으면서도 공감되었고, 자신이 정말로 선생이 된 이후로는 안타까웠다.

"너희는 어른인 나를 의심하기도 하고, 기대하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난 누군가의 기대를 받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거든. 그냥 해야할 일을 할 뿐이야."

"카이저를 몰아내는 거 말인가요?"

"그걸 포함한, 키보토스의 유일한 선생으로서 해야 할 일."

학생들의 고민에 귀기울여주고.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을 도와주고.

자신이 키보토스에서 선생으로서 해왔을 뿐인 일을.

어른이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네 말이 맞아, 이자요이 양. 나는 어디까지 임시부임이란 느낌이니까. 언젠간 나를 기다릴 학생들이 있는 세계로 돌아가야겠지. 하지만 그건 지금은 아니야. 가까운 미래는 더더욱 아닐 거고. 그건 내가 당장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있는 곳에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이 있기 때문이야."

그것 뿐이야, 라고 말을 끝마치고.

제법 멋진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노노미가 이상한 사람 보듯 올려보는 눈빛이 가시지 않음에 선생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옥상에서 유메에게 비슷한 말을 했을 때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었지.

"노노미 쨩?"

유메를 생각하자마자 목소리가 들려와 화들짝 놀라버렸다.

그런 선생을 흘끗 쳐다본 유메는 노노미가 들고 있던 선생의 웃옷을 보고 의심스럽단 눈길을 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아뇨, 마침 선생님 웃옷이 더러워서 빨아드리려고 한 것 뿐이에요."

"앗, 지금 빨래방 가는 거야? 그럼 같이 가자! 나도 빨아야 할 거 많아!"

"네, 좋죠! 같이 가요 선배!"

환히 웃으며 유메를 맞아준 노노미는 선생을 돌아보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손을 저어주며 노노미를 보내려던 선생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거기서 유메가 갑작스레 가까이 다가왔다.

"...쿠치나시 양?"

"......이거."

선생의 목덜미 부근을 잠시 살펴보던 유메가 와이셔츠의 접힌 칼라를 펼쳐보이자,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온 노노미가 옅은 탄성을 내뱉었다.

"어라, 아이스크림이 그 안쪽에도 묻어 있었네요."

"아아, 그래서......"

"역시 유메 선배의 눈썰미, 그 부분은 저도 못 보고 지나쳤는데......"

선생 앞에서 자신에 대한 순수한 감탄을 토해내는 노노미에 유메의 어깨가 살짝 으쓱해졌다.

그 때문이었을까.

"뭐하세요, 선생님."

"응?"

"벗으세요."

"...응?"

와당탕!!

왠지 텐션이 올라가서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말이 나온 게 하필 물품을 옮기던 세리카와 아야네가 코너에서 튀어나온 시점과 겹쳐버린 소소한 불행이 닥친 것은.

손에 힘이 풀려버려 들고 있던 것들을 쏟아버린 것도 자각 못한 채 경악해서 굳어버린 두 1학년생들.

어머나, 하는 영혼 없는 리액션만 뱉고 있는 노노미.

그리고.

자신이 오해하기 딱 좋은 말을 해버린 것을 한 박자 늦게 인지하고 서서히 얼굴이 새빨개져가는 유메까지.

개그 치기 딱 좋은 상황이 되어버린 그 모든 그림이 그만, 억눌리고 있던 어른의 못써먹을 본성을 깨우는 불씨를 지폈으니......

"벗을게."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뭐, 뭐뭐하는거야 미친 인간아!!!!!"

씨익 웃으며 기다렸다는 듯 배 쪽으로 손을 가져간.

그리고 이오리 발 핥으러 신발 양말 벗기던 솜씨를 발휘해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네 개의 단추를 풀어버린 선생은 기대 이상의 리액션과 더불어 합당한 폭력에 휘둘리는 신세가 되었으니.

"괜찮아 유메! 학생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고 따르는 것 또한 선생의 의무크허헉?"

"의무겠냐고 미친 변태 어른아!! 죽어!! 그냥 죽어버려!!!"

"아, 거기 좀 더 밟아주세요 세리카 쨩."

"하하하하하하크헉 자, 잠깐만 얘들아 나 지금 뼈 맞은 거, 뼈 맞았다고끄어어어억?!"

"사, 살색이... 어버... 어버버버버......"

"유메 선배? 선배, 정신 좀 차려봐요. 선배님?"

인과응보.

자업자득.

제 세계에서 써먹었어도 밟혔을 소리를 태연히 내뱉은 댓가를 치루면서도 선생은 고통과 더불어 편한 웃음을 내뱉을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느껴본, 편안한 느낌이었다.

아이러니가 따로 없었다.

* * * * *

학생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진심을 내보이고 발품팔고 불합리한 폭력을 당하면서도 미소를 지어주고 맞지도 않는 연기하며 마음고생하며 동분서주하기 < 벗을게 '딸깍'

피폐물에서도 그 기운을 억누를 수 없는 의지의 대 센 평

광고
BA블루 아카이브·25.07.20창작

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24화/디데이를 앞두고(2)

#선생#소설
좋아요 0댓글 15저장 0
광고
BDC
Baksam작가
게시물 65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5.07.20 19:43
조회0
광고

댓글 15

나
ㅇDC
ㅇㅇ125.07.20
디시콘
ㅇDC
ㅇㅇ225.07.20

상황이 상황인만큼 선개추

ㅇDC
ㅇㅇ325.07.20

정치물 쓰느라 대가리 터지겟네

ㅇDC
ㅇㅇ425.07.20

센남 이 미친놈

ㅇDC
ㅇㅇ525.07.21

벗던 와중에 배에 총알 자국 봤으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ㅇDC
ㅇㅇ225.07.21

쓰레기 선생 먼저 연상할테니 별 생각도 없을듯

광고

Baksam님의 다른 게시물

전체 보기 ›
창작
소설)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66화/새드 엔딩
BBaksam09
TEXT
창작
소설)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53화/변수는 고양이가
BBaksam010
창작
소설)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52화/변화하는 상황
BBaksam08
TEXT
창작
소설)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49화/괜찮아진다 - 1부 完
BBaksam011
창작
소설)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48화/그 꿈이 남기고 간 흔적
BBaksam09
TEXT
창작
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47화/그 꿈으로 이어진(3)
BBaksam013
TEXT
창작
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46화/그 꿈으로 이어진(2)
BBaksam010
TEXT
창작
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45화/그 꿈으로 이어진(1)
BBaksam010

비슷한 태그의 게시물

창작
(소설피폐) 아코에게 장난치는 쓰레기 선생
ㅇㅇㅇ1107
TEXT
번역
[소설핫산] 선생님이 샬레를 그만둔다고 거짓말 했을 때 학생들의 반응
Mmirato_bruaka070
창작
10
만화) 선생님이 다치면 벌어지는 일
Mmonoa12140
창작
18
??? : 으헤~ 이 씨발년이 기어코 선생님에게 손을...
ㅇㅇㅇ091
번역
4
선생과 케이의 포옹을 봐버린 아리스
ㅇㅇㅇ666
창작
2
타자가 빠른(?) 선생님, 스피드퀴즈
ㅇㅇㄴㅂ068
창작
33
알라라크 선생님 - 《네 번째 예언자와 첫 번째 승천자》 외
ㄹㄹㅇㅅ5189
창작
4
그림) 키사키랑 사귀는 선생님
JJE_OMO7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