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nC95BwtJjkM
* BGM 반복재생 추천
(PC 반복재생 : 화면 우클릭 -> 연속 재생)
(모바일 반복재생 : 톱니바퀴 모양 -> 옵션 더보기 -> 연속 재생)
*
미성년자에게 음주는 허용되지 않는다.
길 가던 아무나 붙잡고 그렇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묻는 자체로만 해도 미친놈 취급받으며 오해를 살 만한 상식이다. 당연한 진리다.
교사의 업무 공간에서의 음주는 금기사항이다.
한창 잠자고 있던 사람을 깨워서 묻는다면, 그런 쓸데없는 걸로 깨우지 말라고 뺨을 후려맞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당연한 사실이다.
남의 사적인 공간을 함부로 방문하지 않는다.
순찰하느라 바쁜 경찰관을 붙잡고 묻는다면, 묻는 의도 자체가 불순하다며 대번에 경찰서로 임의동행당해도 딱히 뭐라 할 수 없을 자명한 사실이다.
......그 세 가지를 합쳐놓은 듯한 실로 경악스러운 광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코 끝을 찡하게 찔러오는 강한 알코올 냄새.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 놓여진, 거진 절반씩들은 먹지 않았나 싶은 수많은 과자 봉지들.
열려진 채로 처참한 상황을 증언하는, 내용물을 폭탄 빼고는 다 털린 듯한 압수품 보관함.
...그렇다.
이제서야 막 토요일 오후 1시가 지나는,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는 백주대낮의 술판.
이 곳은 샬레의 집무실이었다.
".......어라아? 선생님이 여기 왜 있지이?"
원래의 얼굴색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붉게 물든 카제쿠라 모에는, 기겁하며 문을 열어젖힌 선생을 흐리멍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같이 취해버릴까봐 우려스러울 정도로, 그녀는 햇빛 쨍쨍한 이 백주대낮의 토요일부터 얼큰하게 취해 계시는 모양이었다.
"...아, 걸렸다."
미처 입에 넣지 못한 의문의 잔을 든 채로, 마요이 시구레는 '올 것이 왔구나' 싶은 표정으로 선생을 돌아보고 있었다.
'학생들이 샬레에서 술판을 벌이는 것 같다' 는 코타마의 충격적인 제보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확신하긴 했다. 술과 연관된 문제라면 마요이 시구레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직후 곧바로 학생을 의심하고 말아버린 자신에 대한 깊은 혐오와 후회를 동시에 느꼈지만, 애석하게도 그 감은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와아아아---!! 선생니이이이임---!!!"
냉혹 '했' 던 계산의 회계 하야세 유우카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헤실헤실 웃으며 선생에게 달려들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선생이 너무 좋아 달려들어버린 유우카가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얼굴을 비비고 끌어안고 난리부르스를 치기 시작하자마자, 맡는 것만으로도 눈이 질끈 감겨지는 알코올 향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 뭔...어우, 술냄새!!"
"히히...선생님 조아......히히힉..."
유우카를 몸에서 떨어뜨려놓으려던 손이, 저도 모르게 선생 자신의 코로 가 전력으로 입구를 막아버린다. 애초에 술에 강한 것도 아닌거니와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것도 아닌지라, 지금은 일단 자신의 숨을 지키는 것이 중요했다.
...으으, 술냄새.
아무래도, 일단 모에를 일으켜 세워서, 이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좋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를 혼내는 것은 그 다음이었다.
...였을텐데, 애석하게도, 카제쿠라 모에는 처음 느껴보는 알코올에 잡아먹히고 만 것인지, 어느새 앉아서 잠이 들어버렸다.
그 흐리멍텅한 눈이 단순히 알코올에 취한 것뿐만이 아니라, 알코올이 몰고 온 잠기운 덕분에 눈 뜨고 졸고 있었던 것의 증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니이이임---!!!!! 살려줘어어어-----!!!!!"
선생의 눈이 소리를 쫓아 구석으로 향한다.
방금 들려왔다. 이 개판 속에서 유일하게 제정신을 지키고 있는 듯한 목소리가.
그 소리는 저 너머 구석, 벽과 찬장이 마주대고 있는 모서리 중의 모서리.
...벌벌 떨며 구원을 청하는, 핑크빛 머리의 불쌍한 트리니티 1학년생이 있는 저 곳에서.
"뭐야! 코하루 너는 또 왜 여기 있어?!"
"와아아아아앙---!!!!! 얘들 다 이상해 선생님----!!!! 도와줘어어어!!! 살려줘어어어어!!!!!"
시모에 코하루는 유일한 구원인 선생에게 달려들고자 하였으나, 애석하게도 그 곳에는 이미 잔뜩 취기가 오른, 아니, 취기에 잡아먹힌 하야세 유우카가 있었다.
이미 선객이 있는 곳에는 들어갈 수 없다.
심지어 저 곳에 있는 건 공범이었다.
그것이, 시모에 코하루를 두 배 이상은 서럽게 만들고 있었다.
"코하루! 거기 잠깐 있......자, 잠깐만, 잠깐만 유우카!! 와이셔츠에 술냄새 밴다--!! 안돼애--!!!"
"으와아아앙---!!! 다들 사형이야!!!! 무기징역이야-!!!!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야아아아---!!!"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사건은, 아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
"서, 서서서, 선생님!!!! 영수증에 이 술 보관함은 대체 무슨--"
기겁한 얼굴의 하야세 유우카가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키보토스에서 술에 손을 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장 잘 알고 있을 그가, 무려 학생들과 함께 하는 샬레에서 술 보관함을 구매했다는 것이, 하야세 유우카에게 있어선 썩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게다가 그는 음주를 그닥 즐기지 않는 어른이었다.
키보토스에 오기 전에는 사회적으로 성인의 음주를 그닥 터부시하지 않았던 모양인지라, 완전히 금주인 것은 아니었던 듯하지만, 어쨌든 지금의 그는 술을 입에 잘 대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술을 보관하기 위한 보관함을 구매했다.
호들갑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가 협박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초지종을 따져 볼 문제였다.
....집무실에 선생은 없었다.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광경은, 다름아닌 트리니티의 시모에 코하루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그의 압수품 보관함에서 몇 권의 책을 꺼내들다가, 경찰에게 걸린 도둑같은 얼굴의.
"어, 아니, 어, 아, 아아, 그, 그게, 그그그그, 이건-"
그대로 얼어붙은 시모에 코하루는 말을 잇지 못했고, 그저 튀어나오다 말아버린 외마디 변명만을 되뇌이고 있을 뿐이었다.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모습에, 하야세 유우카도 덩달아 잠시간 같이 얼어붙어버렸다.
"......부, 분명...트리니티의......시모에, 코하루 씨......?"
유우카 딴에는 이 얼어붙어버린 어색한 공기에서 탈출해보고자 하는 발악이었겠다만, 악수(惡手)였다.
그것은 시모에 코하루에게 있어선 사형 선고였다.
정의실현부의 엘리트면서, 빼앗겼던 물건을 빼돌리기 위해 몰래 샬레에 잡입했고, 심지어 그 빼앗긴 물건은 그렇고 그런 '응큼한' 책이었으며, 결정적으로 그 모습을 다른 누군가에게 들켰으며, 설상가상 그 사람이 트리니티도 아닌 다른 학교의 학생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무언가 방법을 떠올려야 한다. 머리를 굴려야 한다.
멈춰버린 코하루의 몸과는 달리, 그녀의 머리가 필사적으로 구른다.
"아니, 그, 그러니까 이건, 제, 제, 제 물건이 아니에요!"
물론, 기껏 생각해 낸 방법은, 소유권 부정이었다.
"...대체 뭔데 그러세요? 책이 뭐가 문제라고-"
결과적으로 코하루의 악수도 부메랑이 되어, 최악의 결과로 돌아온다.
마침내 몸의 경직을 풀어낸 하야세 유우카가 다가와버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물론 하야세 유우카 입장에서는 긴장을 풀어주려는 과정이었다.
별 것도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자신의 방문 목적을 밝힌 뒤, 자연스럽게 선생의 부재를 확인하고 먼저 나가는 완벽한 계획이었으니까.
그렇다면 토요일 오전부터 부리나케 샬레에 들이닥친 것도 설명이 되고, 어쨌든 시모에 코하루의 방문에도 지장을 끼치지 않으며, 자신 역시 아무런 이상함도 없이 다시 샬레를 나설 수 있을 터였다.
그렇다. 실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비로소 책의 겉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마침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올 거리가 되자, 일순간 하야세 유우카의 두 눈이 점점 커지더니, 이윽고는 목소리를 절제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진다.
그녀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계획들은, 얻어맞기 전까지는 완벽하다는 것을.
"----R-18----?!?!?!"
"삐야아아아아아아악!!!! 아니야아아아아아아아----!!!!!"
R-18.
청소년 열람불가.
'그렇고 그런' 과정을 '응큼' 하고 '적나라' 하게 표현한 그것.
보는 것만으로도 낯뜨거워지는 그 제목에, 하야세 유우카의 머릿속이 꽈배기마냥 꼬이기 시작한다.
이 사람은 어째서, 토요일 아침부터 샬레의 압수품 보관함에서, 그렇고 그런 야한 책을 도둑질하는가.
"뭐뭐뭐뭐뭐뭐, 뭐하시는 건가요, 코하루 씨?!"
"아, 아니에요! 아니야! 저는 코하루가 아니라, 아니, 그건 아니라, 이, 이, 이건 제, 제 책이--"
"그러니까, 코하루 씨 것도 아닌 책을 왜 코하루 씨가 훔치고 있냐니까요?!"
"그, 그그그그, 그러니까, 이게 제 건 아닌데, 그, 뭐, 뭐라고 할까, 제 거나 다름없다고 할까-"
"그, 그럼 코하루 씨 책이 맞잖아요!"
"아니에요!!! 진짜, 진짜 제 책이 아니에요!!! 그, 맞긴 한데 아니에요!! 틀려요!!!"
시모에 코하루는 점차 이성을 잃어갔다.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발악은 하고 있지만서도, 차마 양심에 찔려 완전한 거짓말은 못 하겠고, 결과적으로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 올 뿐이었다.
이건 늪이었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난리를 쳐도 깊숙이 깊숙이 빠져드는 늪.
진실이라는 깊고 어두운 늪.
"뭐야, 뭔데 이렇게 토요일 아침부터 시끌시끌한-"
불행은, 전통시장의 인심좋은 아주머니와도 같다.
구매하고 싶은 만큼 구매하면, 그만큼을 덤으로 더 얹어준다.
단지 그것이, 이번에는 덤이 아닌, 카제쿠라 모에의 추가였을 뿐이다.
카제쿠라 모에에게 있어서도, 이는 사실 썩 반갑기만 한 만남은 아니었다.
원래는 그저 샬레 옆 옥외 소화전에 설치했다가 선생에게 들켜 압수당한 폭탄을 찾으러 왔을 뿐이었다.
물론 선생이 있어도 어떻게든 가져갔을 것이고, 선생이 없다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모에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선생은 부재중이었다.
다만, 그녀조차 생각치 못했던 선객이 두 명 있었을 뿐이었다.
"그, 그러니까 어쨌든, 저, 저저, 저는 이걸 가져가야만----!"
설상가상으로 한 명이 더 늘었다.
그것이 시모에 코하루의 위기의식을 드높임과 동시에 이성을 날려버렸고, 주인 여부를 따지는 것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으로 나머지 책을 집어들었다. 하야세 유우카가 어떻게 생각하던말던, 일단 이 정신나간 곳을 탈출하는 것이 중요했다.
......마지막 책을 집어들었다.
그 아래에 놓여있던 것은, 다름아닌 몇 개의 폭탄이었다.
"----폭타안?!?!?!?!?!?!"
"끼에에에에에엑---!! 이, 이이이이, 이건 진짜 내 거 아니야아아----!!!!!"
갑자기 확 뛰어버린 스케일에 하야세 유우카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뜬금없이 '폭탄마' 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생긴 시모에 코하루의 입에서는 괴성이 튀어나왔다.
"...아, 그건 내 거......"
카제쿠라 모에는 상황을 파악할 능력도, 그럴 의지도 없었다.
그저 빨리 폭탄을 찾고 돌아가, 코우사기 공원 근처 편의점에 토요일마다 하나만 남는다는 특별 한정 도시락을 폐기처리 찍도록 점원을 구워삶아야만 했다.
그녀가 간과했던 것은, 샬레를 선방문한 선객들이 이미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는 점 뿐이다.
뒤늦게서야 모에의 얼굴을 확인한 시모에 코하루는, 그녀의 얼굴을 인터넷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선생이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떠올렸고, 이내 그녀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워야 한다는, 심히 어리석고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
실로, 정의실현부의 엘리트다운 사고방식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 SRT의 폭탄마다-----!!!!"
......예?
카제쿠라 모에의 머릿속을 꽉 채우는 유일한 생각.
"당신 진짜 폭탄마였어요?!?! 컨셉이 아니고?!?!?!?!"
"아니아니, 그 쪽까지 그러면 진짜 조금 곤란해지는데."
귀찮지 않게 적당히 정리해 줄 거라고 믿었건만.
어쨌든 황륜대제의 실행위원을 맡기도 했었기에, 모에 역시 하야세 유우카에 대해 대강은 알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듯한 저 핑크머리와는 딱히 대화할 의미를 못 느끼기도 했고, 대충 유우카가 상황을 정리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알량한 생각을 잠시 품었다.
슬프게도 그녀 역시 혼란함과 어색함 속에서 점차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야세 유우카도, 이성을 잃은 코하루와 동화되어가는지도 모른다.
......잠깐만.
모에의 머리 속 무언가의 스위치가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쓸데없는 오해는 피할 수 있으면 좋다.
자신의 방문 목적도 목적이니만큼 불필요한 관심을 끌어서 좋을 것 없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자신이 여기서 폭탄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은 크나큰 오해를 살 것이다.
두 사람에 묶여 쓸데없는 추궁과 경멸, 우려의 눈초리를 받게 될 것이다.
도시락도 폐기처리를 하지 못해 놓칠 것이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소대원들이 오늘도 숙주나물 도시락으로 배를 채우게 될 것이다.
향후 자신의 대외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로 평판이 떨어질 지도 모른다.
"......쿠히히. 그렇다고 하면 어쩔거야?"
이 얼마나 카타르시스적인 파멸인가.
"선생님이 없을 때 집무실을 날려버려서 수많은 서류들을 증발시키고, 수많은 학생들의 땀방울도 허공으로 공중분해시켜버린다......참을 수가 없어......"
"끼야아아아아아아아---!!! 미친 사람이다----!!!"
그렇기에 카제쿠라 모에는, 그 파멸적인 혼돈 속으로 몸을 던진다.
"자아, 얌전히 그 폭탄들을 내놔. 너희들도 참을 수 없잖아?"
"아, 안 돼! 그건 진짜 안돼!"
정신을 차린 것은 하야세 유우카였다.
물론 그녀는 선생이 없을 때 집무실을 날리려는, 선생에게 직접적인 위해는 끼치지 않으려는 모양이었지만, 폭발한 집무실을 허망하게 올려다 볼 선생을 생각하면, 어쨌든 저 위험분자를 막아야만 했다.
그렇기에 하야세 유우카는 잽싸게 압수품 보관함의 폭탄을 집어들었다.
자신이 이 폭탄들을 모조리 압수해 처분해버린다면, 눈이 돌아 있는 저 폭탄마로부터 샬레는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이번에도 그녀의 완벽한 계획은 빗나갔다.
폭탄을 치우자 눈에 들어 온 것은, 가지런히 정렬된 몇 개의 술병들이었으니까.
"수, 수수수수수, 술?!?!?!"
"...어? 아니, 그 술은 내 게 아닌--"
"호와아아악----!! 주정뱅이 폭탄마다----!!!!!"
파멸을 원하긴 했다만, 이런 파멸을 원한 건 아니었다.
본인이 저지른 일로 맞이하는 파멸이 좋지, 누명을 써서 맞이하는 파멸은 불쾌할 뿐이다.
심히 재수 옴 붙은 것마냥, 이번에는 후자였다.
"아니, 진짜진짜 내 거 아니야. 난 그저 폭탄이 좋을 뿐이--"
"---아, 미안해. 그거 내 거야."
...내 거?
세 사람이 소리가 들려 온, 샬레 출입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곳에는 소리에 이끌려 방금 들어 온 듯한, 얼굴을 긁적이는 여자 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그녀는 혼란에 잡아먹힌 이 곳이 영 곤란하다는 듯,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압수품 보관함을 가리키고 있었다.
물론, 그 압수품 보관함에 남은 것은, 역시 가지런히 정리된 술들이었다.
"......다, 당신 거라구요?"
"응. 다 내 거라서 말이야. 선생님한테 빼앗겼거든."
마요이 시구레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태연자약하게 미소지어보였다.
다른 사람이 오해를 뒤집어쓰는 것은 좋지 않으니까, 얼른얼른 소유권을 확정짓자는 마음이었다. 물론 본인의 술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약간의 위기의식도 있었겠지만.
"......당신, 학생이잖아요......?"
그렇기에, 하야세 유우카의 당연한 질문을 신경쓰지 못했고,
"나? 응. 붉은겨울 2학년이야."
남들의 시선이 오해에서 경악으로 바뀔 것도, 잠깐 생각하지 못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이성을 상실한 코하루의 입이 열리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끼야아아아아아아아---!!!! 학생 주정뱅이야----!!!!!!!!"
* * *
"......실망이야, 코하루."
"어, 어?! 나, 나나나, 나 왜?! 난 안 마셨어!!"
코하루의 두 눈이 놀란 토끼눈처럼 휘둥그레해진다.
구조 요청에 가깝긴 했다만, 자초지종을 밝혀 선생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지만, 선생은 서글픈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기어코 야한 책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샬레에 침입하다니......이건 사형밖에는......"
"아, 아아아, 아니야아아아아-!!! 난 사형이 아니란 말야아아--!!!"
"히힉...히히힉......선생님...히히힉-"
끝도 없이 엉겨붙는 유우카를 쓰다듬는 선생에게, 코하루는 자신의 결백을 다시금 주장한다.
그 건에 한정해서는 딱히 결백한 것도 없지 않냐는 생각도 들었다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으니 무시하기로 했다.
"수, 술취한 여자 아이 쓰다듬지 마-!!! 사형!! 사형이야아-!!!"
이 상황에서도 그걸 지적하다니. 분명 그녀의 상황판단능력은 정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야한 책을 위해 침입하다니, 역시 시모에 코하루는 야한 것에-
"지금 그럴 때가 아니란 말야, 선생니이이임--!!!"
"히히히...선, 으, 아윽, 머리...머리가......"
-아, 맞아.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구나.
선생이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누군가에게 모모톡을 보내기 시작한다. 아마 만취한 유우카가 저 스스로 나가떨어졌기에 여유가 생긴 것이겠지.
그와 동시에, 그는 코하루를 향해 입을 연다.
"일단 너희들이 모인 연유는 알겠어. 그래서?"
"어......어?"
"그건 알겠는데, 술판이 벌어진 이유가 설명이 안 되잖아."
"...아."
그제서야 코하루가 수긍한다.
자신들이 샬레에 모인 이유는 알겠지만, 그 반대로, 아직 백주대낮의 술판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 그게 말이지......"
* * * *
"어쨌든, 내 용무는 이걸로 끝."
마요이 시구레가 미리 준비한 가방에 술을 옮겨담으며 생글생글 웃어보인다.
다름아닌 학생이, 다름아닌 책가방에, 다름아닌 술병들을 옮겨담는 모습이, 썩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꼴은 아니었다.
"그, 그런 게...좋아요......?"
"응? 그야 당연하지."
시모에 코하루의 의문을, 마요이 시구레는 너무나도 간단히 받아쳐버린다.
"애초에 붉은겨울은 추운 데다가, 내가 있는 곳은 특히나 더 춥거든. 이 친구들은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마법의 주스야."
그녀는 그렇게 궤변을 늘어놓으며, 술병 중 하나로 코하루를 가리킨다.
"그리고 애초에 술이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마. 그저 살짝 발효된 주스야."
"그, 그렇지만......그건 술병이잖아요."
제동을 건 것은 하야세 유우카였다.
시구레의 의견을 묵인해주기엔 그것은 너무 술병이었고, 발효된 주스 따위로 커버칠 비주얼은 아니었다.
"하아......이거이거, 역시 밀레니엄 아이들은 이 감성을 모르는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요이 시구레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냥 단순히 분위기를 낸 것 뿐이야. 이러면 마실 때 괜시리 있어보이잖아?"
"하...하지만 술에는 알코올이 들어가고, 발효된 주스라도 어느 정도의 알코올은-"
"붉은겨울은 추워서, 어느 정도의 알콜성 음료는 괜찮아. 실제로 큰 문제도 없잖아?"
그런 이야기, 들어 본 적은 없는데...
하야세 유우카가 혼란스러운 듯 팔짱을 낀다. 눈 앞의 이 붉은겨울 학생의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면 마냥 근거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실제로 기온이 낮을 때는 소량의 알코올은 몸을 고양시킨다고...했던 것 같기도 한데요."
"맞아! 그거야! 역시 밀레니엄이네. 과학 쪽으로는 독보적이라는 건가?"
잘 말했다는 듯, 시구레가 유우카를 바라보며 시원시원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하야세 유우카에게도 밀레니엄의 과학 상식이 타 학교생에게 인정받는 건 썩 나쁜 기분이 아니었기에, 괜시리 팔짱을 풀고 말았다.
그러한 유우카의 태도가, 이번엔 시구레의 욕망을 강제로 끌어올리는 모양이었다.
"...혹시 정 뭣하면, 실험해볼래?"
돌연 눈빛이 변한 채로 나지막하게 제안을 꺼내는 그녀를, '실험' 이란 키워드에 반응한 유우카가 바라본다.
"실험......이요?"
"그래, 실험. 미량의 알코올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말이야. 진짜로 열이 올라오는지에 대해서."
"안 돼애--!! 저얼-대 안 돼!!! 술은 안 돼!!!!"
돌연 게거품을 무는 쪽은 코하루였다.
"거 참, 술 아니라니까 그러네."
다 된 밥에 재를 드럼통 째로 붓는 꼴이긴 했어도, 약간 씁쓸해지긴 했어도, 마요이 시구레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대신, 완강하게 거부하는 코하루가 아닌, 슬슬 귀찮아하기 시작한 카제쿠라 모에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당신도 같이, 어때?"
"아......미안한데, 나는 이런 건 그닥 귀찮아서."
모에는 코하루 이상으로 단호했다.
시구레가 난입한 때를 기점으로 모에는 이 곳에 흥미를 잃었고, 놓칠 테였던 특별판 한정 도시락을 다시 노리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딱히 틀린 의견도 아니었다.
어쨌든 파멸과는 거리가 멀어졌고, 여기 모인 이들과 딱히 친분이 깊은 것도 아니었으며, 역시 소대원들이 시무룩한 채로 숙주나물 도시락을 여는 것은 그닥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흐응. 그래? 당신에게도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일텐데."
허나, 시구레는 그녀의 빈틈을 노리기라도 하는 듯, 모에의 귓가로 다가가 살금살금 속삭인다.
"...파멸적일 정도로 달콤한 이 발효 주스와, 정말 이렇게 평생 작별할 거야?"
...뭐라고?
카제쿠라 모에가 시선을 돌린다.
어느 새 한 병을 떠안겨진 것인지, 하야세 유우카는 그녀의 손에 들린 작은 술병을 복잡미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범인일 마요이 시구레는, 마치 사람을 홀려먹기라도 할 듯한 여우처럼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있었다.
술병 하나를 모에의 눈 앞에서 살랑살랑. 마치 최면을 거는 것처럼. 마치 유혹하는 것처럼.
"...술이 아니고 발효된 주스일 뿐이지만, 혹시나 술이면 어떡하지? 먹으면 분명 선생님께 혼나겠지? 위험천만한 일이 닥치겠지?"
"그, 그런-"
"발효된 주스일 뿐이라도, 당신의 몸이 극소량의 알코올에도 반응하면 어떡하지? 이제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짜릿하고 강렬한 파멸이 당신에게 닥쳐올 수도 있지 않을까?"
두 눈 앞이 흐리멍텅해진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끔찍하고 위대하며 화려한 파멸이, 그 어느 폭발보다 장렬한 파멸이, 자신의 눈 앞에서 자신을 유혹하고 있었다.
안 돼.
모에의 한 구석 어딘가에서, 그렇게 강하게 말려온다. 이번에는 정말 위험하다고, 정말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라고, 그렇게 끝없이 외친다.
......그렇기에, 저질러버리면 그만큼 더욱 더, 끝내주게 짜릿할지도 모른다.
그래.
자신은, 애초부터 질 싸움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거 봐. 역시 당신도 궁금했지?"
마침내 천천히 눈 앞의 병을 잡은 모에를, 시구레가 흐뭇한 눈을 지으며 치하한다. 결국 그녀 역시도 애초에 그물에 걸린 물고기였을 뿐이다.
"다들 안심해. 그저 '살짝 발효된' 주스일 뿐이라니까? 과일이랑 설탕도 들어갔으니 제법 달콤하고 맛있을 거야. 아, 이 참에 과자도 좀 꺼낼까? 어디 보자, 찬장 이 쯤에 있었는데."
드디어 다른 학원의 술친구를 '잡아들인' 덕분인지, 마요이 시구레는 근래 들어 제일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물론, 시모에 코하루는 그 모습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었다.
시구레의 술잔 대신 자신의 스마트폰을 잡으며, 코하루는 그 나름의 각오를 다진다.
이것은 정의실현부로서의 자신을 테스트하는 시험이다.
엘리트인 자신은 절대 이런 유혹에 굴하지 않는다. 과학 강자 밀레니엄도, 특수학원 SRT도 굴복했지만, 다름아닌 자신이 굴복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트리니티와 정의실현부에게 있어 큰 영광이리라.
그녀의 유일한 실책이라면, 자신에게 도취되어버리고 그 상상에 잠시 새어버려, 별안간 제 앞에 나타난 시구레를 너무 늦게 알아챘다는 것이리라.
"네에~ 이건 잠시 맡아둘게~"
정의실현부의 엘리트는, 그렇게 자신의 연락 수단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빼앗겼다.
"우리 트리니티 언니가 같이 즐기지 않는 건 좋아. 그렇지만, 여기서는 잠시 공범이 되어 주지 않을래?"
시구레는 넉살좋은 웃음을 지으며, 코하루의 스마트폰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고, 남은 두 사람 쪽으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자, 그럼 어디 맛을 보여줄까?"
아무래도, 텐션이 잔뜩 오른 그녀를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227호 특별반 특제 캄포트. 기대해도 좋아!"
* * * * *
"......역시, 시구레가 원인이었나......"
선생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초대형사고는 안 치는 아이라고 믿었거만, 마요이 시구레가 예상치 못하게 폭주한 게 사건의 원인이 된 모양이었다.
"선생님? 여자 아이를 앞에 두고 한숨을 내쉬는 남자는 감점이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시구레가 선생을 바라보며 키득거렸다.
그 한숨이 다름아닌 자신에 대한 지탄이라는 것은, 지금의 그녀에겐 큰 상관 없는 모양이었다.
"그......시구레. 시구레가 평소에 마셨는지 안 마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오늘처럼 많이 마신 건 처음이지?"
"아아, 뭐...확실히, 처음이랄까, 나도 이렇게 많이 모인 건 처음이라, 조금 신났던 건지도 몰라."
시구레는 악동같은 미소를 지으며 지금의 취기를 즐기는 모양이었다. 고대하던 술친구를, 그것도 다른 학교의 술친구를 사귀게 된 것이, 그녀에게는 꽤나 신선하고 기분좋은 경험인 모양이었다.
"집무실을 엄청 어질러놨네~ 이건 미안해, 선생님. 알코올 냄새도 꽤 배겠는데?"
"아아,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시구레의 애교섞인 머쓱한 웃음에, 예상 외로 선생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흔쾌히 대답하는 선생에게, 시구레는 다시 기분이 좋다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보였다.
"붉은겨울 사무국이다! 모두 움직이지 마!"
"......엑-"
애석하게도, 그 흔쾌함은 시구레에겐 좋은 징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예상치 못하게 들이닥친 이케쿠라 마리나가 아주 좋은 증거였다.
"...그, 선생님, 마리나 위원장이 왜 여기 있는지 물어봐도 될까?"
"아, 별 거 아니야."
선생은, 방금 전의 시구레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학생으로서의 금기를 저지르셨으면, 합당한 책임을 지셔야 하니까요."
"아아~ 이렇게 나오기야?"
"마요이 시구레 동지, 당신을 음주 및 무단 침입 혐의로 체포한다!"
'저질렀네' 싶은 얼굴의 시구레가, 자신을 포박하는 마리나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기사, 갑자기 튀어나온 마리나의 모습은 그녀의 입장에선 그닥 좋은 게 아니었으니까.
"마리나 위원장, 대체 어디서 나온거야?"
"화장실 청소에 좋은 세제가 나왔다길래 그걸 구하러 잠시 들렀다! 그러던 와중에 동지의 음주 소식을 듣고 이렇게 달려왔지!"
마리나는 언제나처럼의 호쾌한 미소와 패기로운 목소리로, 전혀 패기롭지 않은 방문 목적을 들었다.
아마 그 모습을 다른 학원의 치안유지부대가 봤다면, 필시 일주일 치의 점심식사 반찬거리로 오르내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잠깐잠깐, 그건 조금 이상한데?"
마요이 시구레는 전혀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그녀의 패기로움에 제동을 걸었다.
"마리나 위원장의 그 발언, 붉은겨울의 세제는 성능이 저열하다는 뜻 아니야? 숙청 감인 것 같은데."
"...뭐?! 헛소리다! 나는 절대 그런 불순한 생각을 품은 적...이......잠깐만, 이야기가 정말 그렇게 되나?"
심히 놀랍게도, 이케쿠라 마리나는 그러한 시구레의 태클에 정말 제동이 걸렸다.
"당연하지. 아니라면 이 먼 D.U. 시라토리 구까지 나올 필요가 없잖아? 그 발품을 팔 정도로, 마리나 위원장은 붉은겨울의 세제가 저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네."
"그런......나, 나는......이, 이렇게 되면...선수를 쳐서, 내가 체리노 회장을......"
믿을 수 없게도, 마리나는 정말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고, 충성심을 잃은 보안위원장은 떨리는 두 눈으로 선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떡하지, 선생? 내가 먼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게......"
"왜 그렇게 되는 거야?!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마리나가 속고 있는 거잖아!"
"칫. 선생님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빠져나갔을텐데......"
마리나의 성대한 자폭은 선생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아마 이 곳이 샬레가 아니고 붉은겨울의 구교사였다면, 붉은겨울에는 또 한 번의 쿠데타 바람이 일어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선생님, 나중에 잘 좀 말해주면 안될까? 노도카한테까지 피해가 가는 건 좀 그래서......"
"아, 그건 걱정 마. 문제 생기면 체리노한테 말해줄 테니까, 시구레는 시구레 몫의 벌만 받아."
"다행이네. 아니, 이미 이렇게 연행되는 것부터가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구레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족제비마냥, 그렇게 정신을 차린 마리나에 의해 집무실을 끌려나갔다.
어쨌든 교칙을 어긴 것은 어긴 것이었고, 나중에 체리노를 만나 그녀의 처분에 대해 논의하면 될 것이다. 퇴학까진 아니게 잘 커버쳐 준다면,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저지르지는 않겠지. 어쨌든 시구레는 생각이 깊으니까.
"니하하하-! 선생님, 이 쿠로사키 코유키가 놀러왔......우왓! 이게 무슨 냄새야?!"
어라.
들리면 안 될 목소리에 선생이 급하게 뒤를 돌아본다.
...쿠로사키 코유키가 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던 것인지, 토요일 백주대낮부터 샬레로 놀러 온 모양이었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에 대경실색해하는 그녀를, 선생이 어안이 벙벙한 채로 바라본다.
"...코유키, 너는 또 왜-"
"-와아아아앙--!! 코유키이이---!!!"
애석하게도, 쿠로사키 코유키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무언가를 이기지 못하고, 저 벽 너머 보이지 않는 곳으로 함께 내동댕이쳐졌다.
시야에서 사라진 코유키에 당황한 선생이 고개를 집무실 안으로 돌려보면, 아뿔싸, 하야세 유우카가 보이지 않는다.
"우웅, 코유키, 좋아--"
"히이이익, 히익, 힉, 히이이익, 유, 유, 유우카 선ㅂ, 대, 대체 무슨-"
머리가 아파온다.
아마도 잔뜩 취해버린 유우카에게는, 얼굴을 아는 모든 이들이 반가움의 대상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코유키, 체고야, 우웅--나는 너 없으면 몬살아---!!"
"서서서서서서서서서선생님, 저저저, 저저저저 좀, 사사사--"
미안하다, 코유키.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유우카를 말릴 수가 없다.
그렇게 술기운이 사라질 때까지, 잠시 유우카를 좀 붙잡고 있어주라.
...그렇게 코유키의 건투를 비는 선생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잔뜩 울상이 된 코하루였다.
"......넌 또 왜 그래, 코하루."
"선생님......히끅, 선생님......!"
아, 위험하다.
시모에 코하루는, 무언가 설움이 북받쳐 오르는 것인지, 이내 눈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아까 잡혀간...그 사람이......내, 내 휴대폰......."
"......뭐? 휴대폰?"
그렇다.
마요이 시구레가 이케쿠라 마리나에게 연행되어가면서,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뒀던 코하루의 휴대폰을 돌려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것은 코하루에게 있어 중대사고였다.
초장에 폰을 빼앗겨 신고조차 하지 못했던 그녀가, 마침내 정의실현부나 발키리에 연락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던 것인데, 그 기회 자체가 시구레와 함께 붉은겨울을 향해 급행중인 것이었다.
"서, 선생님---!!! 내 휴대포온----!!! 그게 없으면, 그게 없으면 하스미 선배에게----!!!!"
아득해지는 정신을 느낀다. 무언가가 자신을 잡고 흔드는 것 같다.
마음을 다 잡고 주변을 돌아본다.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
서류들이 쌓여있는 자신의 책상.
털려 있는 압수품 보관함.
열려 있는 간식 찬장.
널브러진 과자들.
나뒹구는 술병들.
계속해서 들려오는 유우카의 술주정.
코유키의 필사적인 구조 요청, 그리고 비명.
앉아서 이젠 코까지 골기 시작한 모에.
눈물을 쏟으며 도와달라는 코하루.
코 끝을 찌르는 알코올 냄새.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선생은 크게 심호흡을 한다.
선생이 지그시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들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마치 세상을 다 잃은 것만 같은, 허탈함 가득한 미소를.
"......술 마렵네."
--------------------------
브금 듣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하루만에 다 썼다
뇌 빼고 보는 코미디는 처음 도전해봄
선생 다음 가는 풍둔 아가리술이라면 역시 시구레다 이겁니다
브금 듣다가 삘타서 쓰는 단편들이 한 6~70% 되는 듯
브금 들으면 만화처럼 그 장면들이 후다닥 그려지는데, 내가 ㅅㅂ 그릴 능력이 안 되어서 글로 쓴다
근데 글도 그냥 옮기는 게 아니라서 시간이 좀 걸림;;
요즘 이런 밝은 이야기들 생각이 많이 나서 계속 끼적이는 중
일단 큰 틀 잡힌 것들이 한 5~6편 되는 것 같음
그것도 천천히 쓰면서 피폐도 조금씩 써야겠다

댓글 34
무지성개추
아주 담백한 일상개그물 너무 좋아

재밌다... 나도 저런 글 쓰고싶다...
선개추후감상
개쩌네 와 ㅋㅋ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