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토스.me
홈모음집마이페이지
SUBSCRIBED
EXPLORE
BA블루 아카이브BR봇치 더 록!ZZZ젠레스 존 제로GI원신HSR붕괴: 스타레일모든 채널 보기문의하기
블루 아카이브
블루 아카이브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25화/디데이를 앞두고(3)
/블루 아카이브
광고

"내일이네요."

"그래, 내일이지... 크헉."

말하다말고 선생은 쑤시는 허리를 잡았다.

그런 선생을 보는 유메의 표정엔 걱정 따윈 일체 담겨 있지 않았다.

당할 놈이 당한 자업자득이라는 것처럼 한없이 냉랭한 눈길만 줄 뿐이었다.

"거 참,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쓰읍."

"어떤 미친 인간이 장난을 성희롱으로 쳐요......"

방금 전의 악몽이 다시금 눈 앞에 아른거렸다.

연약한 어른 주제에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처럼 빛의 속도로 풀어제낀 와이셔츠 단추.

그 사이로 보이던, 단단한 질감의 살색...... 6개의......

'으, 으으으으......'

또 다시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에 유메는 손에 얼굴을 파묻고 부르르 떨었다.

그 전에 자신의 꼴을 들키지 않도록 먼저 선생의 종아리를 걷어차는 것도 잊지 않았다.

"크헉!? 어, 어째서...?!"

"몰라요 인간아......"

유메가 복잡한 심정으로 한숨을 토하는 동안 주춤주춤 일어난 선생.

한 동안 대화가 끊긴 채 두 사람은 멍하니 옥상 난간을 잡고 보이는 눈 앞의 아비도스 정경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냥 가끔 올라와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 좋았던 공간에 또 다른 사람이 추가되어 있다는 사실에.

유메는 여전히 낯섦을 느꼈다. 이미 나름대로 적응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쿠치나시 양."

"왜요."

"나 사실, 내 세계에서도 너와 이야기를 나눈 적 있어."

유메는 대화 소재가 없어서인지 느닷없이 그런 말을 꺼낸 선생을 의아한 듯 돌아봤다.

"거기 저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렇긴 한데 그게 뭐랄까. 죽기 직전 주마등이라 해야 할지, 사실 정신 날아가고 꿈 속에서 대화한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내 세계에서 유메와 이야기했던 게 뇌내망상으로 상상한 건 아니었다는 기분이야. 절대로."

"뭐에요 그게."

황당한 표정인 유메 앞에서 머리를 긁적거릴 수 밖에 없었지만, 정말로 설명하기 애매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랬지만.

테러화한 호시노의 공격에 휘말려 꿈인지 무엇인지 모를 과거의 아비도스에서 유메를 만난 것은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 때 내 세계에서 난 자칫하다 호시노를 잃을 뻔한 상황에 처해 있었거든."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준.

유메의 격려로 절망을 딛고 일어나, 과거가 아닌 현재를 위해 싸울 힘을 얻어 호시노를 구해낸 건 부정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으니까.

"내 세계에서 호시노를 구할 수 있던 것도 네가 격려해준 덕분이었으니까."

"호시노 쨩은 강해요. 저 같은 것보다도 훨씬."

말하면서도 유메는 문득 의문을 느꼈다.

자신이 호시노에 대해, 선생 세계 쪽에 멀쩡히 살아 있다는 호시노에 대해 여태껏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위험에 빠졌다는 거에요?"

"글러먹은 어른들의 꾐에 빠져버렸달까."

유메는 조용히 선생을 응시했다.

난간에 올린 주먹에 지그시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자마자 선생은 황급히,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 아니고...!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학생 앞에서 배 까는 어른이면 충분히 글러먹은 어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리액션 좋은 어른을 놀려먹는 것에 재미라도 든 것일까.

이래도 되나 싶은 약간의 죄책감과 더불어 소악마적인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며, 유메는 다시 대화를 이었다.

"대충 알겠네요. 호시노 쨩은 뭐랄까, 안 그런 척해도 정이 많고 착한 아이니까요. 자신에게 해가 되는 건 상관도 안 쓰겠지만...... 다른 사람이, 소중한 동료가 위험에 빠졌다는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려 했겠죠. 그쪽 세계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빠졌을 테고요."

"......그렇지."

학생을 학생이 아닌 실험 대상으로만 보던 비틀린 어른.

결과적으론 어른의 탈을 쓴 애새끼나 다름 없었지만, 그 힘만은 진짜였던 괴물.

그들에게 호시노 정도 되는 능력자가 휘둘렸던 것은 전부 그녀에게 소중했던 기억이, 사람들이 인질로 잡혔던 상황이었기에.

"선생님."

"응, 쿠치나시."

"호시노 쨩이, 그러니까 이 세계에서 호시노 쨩이 어떻게 됐는지. 제가 그 때 말했던 거 기억하시나요?"

"당연하지."

웃음기가 사라진 진지한 얼굴로, 선생은 마찬가지의 표정인 유메를 응시했다.

회담 때 옥상에서, 어쩌다보니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듣게 된 진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가 웃어버린 것도 기억하시겠네요."

"잊을 수가, 없지."

"네. 잊을 수가 없죠."

그 때의 기억이 떠올랐던 유메는 허무한 조소를 흘렸다.

"선생님이 알고 있던 저의 최후나, 제가 겪은 호시노 쨩의 최후나...... 별 다를 게 없었으니까."

유메가 알고 있는 호시노는 넓디 넓은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메다 아사해버렸다.

모래폭풍에 전파까지 끊기며 무전을 칠 방법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선생 세계의 자신 또한 같은 방법으로 죽어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땐 허탈한 웃음 말곤 나올 반응이 없었다.

이 무슨 황당한 아이러니란 말인가.

그러나 유메는 데칼코마니처럼 겹치다시피하는 상황에 처했기에 안면도 모르는 저쪽 세계 호시노에게, 왠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힘들었겠네요."

아팠을 거야.

"버티느라, 자책하며 버티느라...... 많이 힘들었을 거에요."

아팠으니까.

버티느라, 자책하며 버티느라...... 너무 힘들었으니까.

문득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다.

세월의 흐름에 상처가 마모되어서, 일 리는 없었다. 지금도 애써 누르며 참고 있었는데.

당장 그 때, 회담 직후 선생과 옥상에서 이야기할 때 호시노의 이야기가 나왔을 땐 이렇지 않았는데.

선생을 쳐다봤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땐 결코 장난기를 담지 않고 웃으며.

괜찮다며 위로해주는 듯한 미소를 한 없이 진지하게 띄워주며 눈을 마주하다 적당한 타이밍에. 너무 빤히 봐서 부끄럽단 생각이 들 때 쯤 고개를 돌리는.

그런 순간을 맞출 수 있는 이 어른이.

'쿠치나시 양.'

'쌓인 게 너무 많아서, 그래서 버티기 힘들다면 오늘처럼. 괜찮으니까 참지 말고 언제든지 풀어줘.'

'괜찮아. 학생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건 선생의 의무...... 라기보단. 익숙하거든. 익숙한 나의, 일이니까.'

신기했다.

자신이 적절하지 않은 순간에 감정이 터져 뺨을 날렸음에도 결코 화를 내지 않는.

가면을 쓰고도 결코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대할 수 없던 일임에도, 학생의 고민을 눈치채지 못한 선생으로서의 자신을 먼저 돌아볼 수 있는 어른이란 존재가 실존한다는 것이.

소년만화에나 나올 법한 자신의 이상향이, 정말로 실재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선생님."

"응, 쿠치나시 양."

"그 때 까먹고 못한 말인데요. 이번 일이 제대로 끝나서 서로 수다라도 떨 시간이 난다면......"

유메는 선생을 돌아봤다.

"호시노 쨩의 이야기를 해주세요."

불신과 죄책감으로 물어보지 못한, 물어보고 싶었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상처에만 꽂혀 있어 보지 못했던 이상적인 어른의 일면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욕구에.

유메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제가 없는 세계에서 호시노 쨩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극복했는지...... 듣고 싶어요. 저와는 관계 없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도."

선생은, 유메가 예상한 것처럼.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웃었다.

"물론이지."

그 미소에 자신이 혐오했던 가식이 없음을 이젠 알았기에.

유메는 울분에 차 선생의 뺨을 쳤을 때와는 다른 쾌감에 심장이 떨리는 것 같았다.

* * *

"별 일 없었다니까. 얼굴만 같은 다른 사람이고, 얼굴 같은 게 기분 나쁜 거 빼면 무고한 사람이라고. 애초에 힘도 못 쓰는 어른이 부장 앞에 두고 뭘 할 수 있다고 그래."

[아뇨, 전 어른이란 작자들 못 믿어요! 이전의 그 새... 그 인간도 능숙하게 가면 쓰고 와서 전부 헤집어 엎고 갔잖아요! 그것 때문에 부장님이 얼마나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하아... 뭐, 그런 부분에 대해선 걱정 마. 나도, 부장도 선생을 온전히 믿지는 않으니까."

트리니티 쪽에서 조사 중인 아코와 상황 공유를 위한 통화를 하는 내내 카요코의 표정은 떨떠름하게 굳어 있었다.

[애초에! 이럴 때일수록 부장님 곁에서 보필해야 할 제가 어째서 현장을 뛰고 있는거죠! 신입이나 다름 없는 카요코 씨를 놔두고 대체 뭘 믿고!]

"애초에, 신입인 내가 아니라 최측근인 그쪽을 더 믿어서 중요한 자리에 보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당연한 말씀을! 저야말로 부장님이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오른팔! 당신이 아무리 날고 기었다한들 입부 시기에서 밀리는 후배라는 사실은 변동이 없을......]

잠도 충분히 잤는데 왜 이렇게 피곤한걸까.

카요코는 잠시 전화를 귀에서 떼고 미간을 꾹꾹 눌러야 했다.

[아무튼, 이제 어떡할 거래요?]

"응? 뭐라고 했어?"

[하아, 선배 말에 이렇게 집중을 안 해서야. 부장님께서 어떻게 하기로 결정하셨냐 물었잖아요!]

"떼고 있어서 몰....."

멍 때리는 와중에 무심코 말해버리려다 괜히 꼬투리를 잡혀 시간을 뺏길까봐 카요코는 황급히 본론으로 들어갔다.

"선생이 아비도스에서의 일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 를 보고 결정하겠지."

[아비도스를 총알받이로 쓰겠다는 뜻인가요?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하지만.]

"글쎄, 부장은 아비도스를 일회용 방패막으로 쓰려는 건 아닌 것 같았어."

[틀린 생각은 아니긴 한데, 머리로 갈 지능이 가슴에 몰려 있는 아비도스 뇌 텅텅 학생회장이 부장님이 밀어준다 해서 그만큼 수완을 낼 수 있는 인물이던가요?]

"그러겠어? 그 쪽 말고 선생, 그러니까 변수 밖에 되지 않을 다른 세계에서 온 선생을 믿고 베팅하는 거겠지."

[하아?]

"......나도 이전 선생한테 당한 피해자라 그 심정은 아주 잘 알겠지만. 새로 온 선생의 신분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단 가정 하에 해 볼만한 도박은 맞아. 이전 선생도 머리 놀리는 것 하나는 뛰어났잖아?"

[선생은 다 머리가 좋다는 초등학생이나 할 법한 가정법을 하는 건 아니겠죠 설마? 아비도스 꽃밭뇌 학생회장보다 멍청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우리가 회담에서 만난 어른이 겨우 그 정도 그릇이었다면 애초에 부장이 아비도스를 지원하겠다는 결정조차 안 꺼냈겠지. 무엇보다 카이저의 압박 때문에 티는 잘 안 나지만 선생의 합류 후 아비도스는 나름 안정을 되찾고 있어. 그 쪽도 정보 받아봐서 알잖아?"

[그건 그렇지만...... 하아! 내키지 않는다고요, 정말!]

"카요코 쨔앙!!!"

"윽?!"

툴툴대는 상관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주려던 카요코는 뒤에서 덮쳐지는 충격에 신음을 토했다.

[뭐, 뭔가요?! 습격?! 드디어 선생이란 작자가 본색을 드러낸건가요!]

"선생이 무슨 텔레포트 능력자냐고......"

이 정도면 만물선생설을 종교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자세를 바로 잡은 카요코는 뒤에서 껴안은 감촉을 떨치지 않고 한숨만 쉬며 답했다.

"그냥 친구야."

"응? 아, 통화 중이었구나? 미안미안! 안녕, 카요코 쨩의 친구!"

[누가 친구라는 거에욧! 하아, 아무튼 할 이야기는 다 한 것 같으니 나중에 이야기하죠.]

"알았어. 정보가 업데이트되면 바로 전달해줄테니까."

[카요코 씨.]

"응."

[부장님 잘 부탁드리고,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마지못해 나오는 듯한 어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몸 조심하세요. 선생도 끝까지 경계하는 거 잊지 말고.]

"응, 걱정 마. 선배 말이니까 유념해둘게."

[흐, 흐흥...! 당연하죠! 부장님께 인정받은 오른팔인 제가 하는 말이니까! 선도부에선 후배가 다름 없는 카요코 씨는 아직도 배울 게 많으니, 제대로 부장님을 모시려면 정진하셔야 된다고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쿠후후~"

힘겹게 아코와의 통화를 끝내고 십 년은 늙은 듯한 카요코를 무츠키가 재차 껴안았다.

"행정관 쨩 눈치 보느라 힘들어 보이네 카요코 쨩!"

"뭐... 얼추 익숙해졌어."

그렇게 말하며 무츠키를, 정확히는 무츠키가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보며 카요코가 말을 이었다.

"너야말로 만마전에서 일하는 건 괜찮은 거야?"

"뭐야 카요코 쨩? 그 못미더운 사람 보는 눈초리는?"

"그것보단 네가......"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말할 수 밖에 없었다.

"흥신소 말고 다른 곳에서 이렇게 길게 일할 줄은 몰랐으니까."

"뭐, 그렇긴 하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무츠키였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한 카요코는 친구의 그 미소가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쉽사리 눈치챌 수 있었다.

"흥신소에서 일할 때만큼 재밌진 않긴 해."

"그럼 왜......"

"카요코 쨩이랑 같은 이유."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보는 무츠키의 표정에, 그 순간만큼은 억지로 짓는 미소마저도 없었기에.

카요코는 입을 다무는 수 밖에 없었다.

"......미안."

"뭘 미안하고 그래? 함께 공유하는 상처잖아? 분담하고 있는 책임이기도 하고. 하하...... 에이, 안 웃어지네."

쯧, 하고 가볍게 혀를 찬 무츠키가 벽에 몸을 기댔다.

"흥신소에선 안 웃으려 해도 웃기는 일, 재밌는 일 밖에 안 일어나니까 참 좋았는데."

"......"

"카요코 쨩."

"응."

"선생에 관한 말, 사실이야?"

섬찟한 감각이 무츠키와 가까운 어깨를 스쳤다.

카요코는 혹여나 친구가 폭발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레 말했다.

"사실이야."

"하하하."

"우리가 알던 선생은 옛날 옛적에 머리에 총 맞고 뒈졌고. 지금 있는 사람은 얼굴만 비슷한 무고한 평행세계 사람이야."

"하하하! 아하하하하!"

원수나 다름없는 이가 죽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것일까.

그런 것치고는 왜인지 공허한 웃음을 터뜨린 무츠키는 하아, 하고 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렇구나. 그렇단 말이지."

"......"

"속 시원하네. 근데 그렇게 뒤질 거면 일찍 좀 뒤지지."

"...그러게."

"아루 쨩과 하루카 쨩이, 그렇게 되기 전에...... 천벌 맞고 빨리 좀 뒤지지, 구질구질하게."

"......응."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다.

이윽고 몸을 일으킨 무츠키는, 평소대로의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 주말에도 같이 갈 거지?"

"가야지."

"아루 쨩도 오면 좋을텐데, 꼭 연락을 회피한단 말이지~"

"시간을 주자고 했잖아. 사장, 아니 아루가 언제까지나 피할 사람은 아니니까. 추스리고 일어날 시간이 필요할 거야."

"응, 응. 아루 쨩이라면 금세 털고 일어날테니까!"

털고 일어나는 정도가 아니겠지.

카요코는 회담장에서, 선생이 제안한 아루를 구제할 방법을 떠올리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섣불리 말을 꺼내 무츠키를 실망시킬까봐 말을 참고 있지만, 만일 성공한다면......

"아아, 배고픈데 점심이나 먹자 카요코 쨩! 아, 근데 오늘 급식실 가도 급양부장 있으려나?"

"괜찮을걸. 미식연구회 최근에 뭐 했는지 카이저한테 잡혀서 엄중하게 감시받고 있다더라고."

"......걔네 괜찮은 거 맞아? 다시는 테러 못 일으키게 되는 몸으로 만들어지는 거 아냐?"

"안 그래도 급양부장도 걱정하더라. 무사히 나왔으면 좋겠다고."

그런 세계였다.

부당한 통제와 억압이 게헨나를. 아니 키보토스를 억죄는 형국.

카요코는 이런 세상에서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선생의 존재와 그런 선생에게 도박을 걸어보기로 한 히나 선도부장의 결단이 보답받길 원할 뿐이었다.

* * *

"많이 치웠다고 들었는데도 여전히...... 갈 길이 멀어보이네요."

"어차피 괜찮아질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괜찮으신 거에요? 선생... 님은 그렇다쳐도 케이 씨 머무는 곳이잖아요?"

"제가 치우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떱니까."

쿵

철컥

위잉

철컥......

잔해를 치우던 한 대의 오토마타가 절묘하게 케이의 뒤쪽을 지나갔다.

케이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눈으로 자신을 보는 아야네의 시선을 슬쩍 피했다.

"아무튼 여기 오는 건 저만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어떻게 아비도스에서 여기까지 혼자 오게 해요. 선생님이라던지 누구랑 같이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와 같이 있기도 어려운 환경일뿐더러 오히려 선생님과 같이 다니는 게 더 위험할 겁니다. 아군이 없는 선생님 옆에서 제가 최대한 존재를 숨기면서 같이 있어주는 게 좋긴 합니다만......"

그것도 이번에 부득이한 사태 때문에 못 써먹을 일이 되겠지.

케이는 FOX 소대를 떠올리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선생을 경계하며 자신을 잘 대해준 그들의 행동은 가식보단 진심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어쨌든 선생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선생의 큰 계획에서 잠재적인 적군이 될 카야와 손 잡은 이들.

하물며 키보토스 최고의 특수부대나 다름없는 그들에게 존재가 노출된 것은 결코 긍정적인 상황이라 할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들이 자신의, 정확히는 왕녀의 힘에 대해 잘 모를 거란 것뿐인데......

케이는 무심코 자신의 허리춤을 내려봤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선생의 세계에서 자신의 왕녀가 지녔다는 레일건이 아닌, 왜인지 쓸데없이 블루투스 결제 기능이 탑재된 권총이었다.

엔지니어부를 직접 방문할 시간이 없었기에 히마리로부터 우회적으로 전달 받은 임시 무기였다.

왕녀의 힘이라면 선생 하나 지키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무기가 형편없어서야 선생을 물어뜯을 기회를 노리는 괴수들이 득실거리는 키보토스에서 목적을 이루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선생으로부터 '빛의 검'에 대한 정보를 듣고 엔지니어부에 문의해보겠다고 히마리가 말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딱히 소식이 없는 걸 봐선......

"케이 씨?"

"뭡니까."

"혹시 샬레에 이런 것도 있었나요?"

귀찮은 기색을 풍기며 무심코 고개를 돌린 케이는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케이 씨?"

"잠깐 비켜주세요."

고개부터 들이밀고 오는 케이의 기세에 놀란 아야네가 황급히 물러났지만, 케이에겐 지금 그것을 신경 쓸 기미는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한쪽 다리가 부러졌음에도 용케 버티고 서 있는 컴퓨터 책상 위, 온갖 잔해들이 널브러진 사이에 이질적일 정도로 깨끗한 정사각형 물체에 꽃혀 있었다.

조심스레 다가온 아야네도 이게 왜 여기 있나 싶어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이거, 종이학인가요......?"

"네. 겉으로 보면 평범한 종이학으로 보이는군요."

"그런데 뭔가 투명한 정육면체에 둘러 싸여 있는 것 같은데요."

"다차원 배리어."

"네?"

그렇게 말하는 케이의 표정은 믿을 수 없다는 데서 온 경악으로 일그러져 있어, 한 박자 늦게 그녀의 표정을 확인한 아야네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이걸... 대체 구현을 어떻게...?"

"저, 저기."

물을 수 밖에 없는 질문을 하기 위해, 아야네가 눈치를 보다 적당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그... 다차원 배리어라는 게 혹시 제가 아는 다세계, 아니 다차원해석을 기반으로 한 이론으로 만들어진 물건 맞나요? 그게 기술로 구현이 가능한 거였어요?"

"무리입니다. 과거에는 가능했지만, 현시대의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기술이란 말입니다. 어디서 보고 모방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 순간 떠오른 또 다른 가능성에, 케이는 두 번째 충격에 빠졌다.

모방.

어디서 보고...?

초현실적인 기술을 직접 경험해본 세계가 있다면?

그리고 재앙과도 같았을 초현실의 침입에 기적적으로 승리를 거둬, 결과적으로 훌륭한 샘플이 되어버린 기술을 모방할 수 있다면,

설령 원본과 비교하면 한없이 조악한 프로토타입이라한들 그렇게 완성된 기술로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그 기술을 써야 할 세계의 목적은......

"케이 씨! 정신 차려요!"

멍하니 육면체에 쌓인 종이학을 내려보며 굳어버린 케이의 어깨를 세차게 한 번 흔든 아야네가 전화를 들었다.

"우선 선생님께 연락할게요! 아마 그 사람이라면 뭔가-"

"안 돼."

"네?"

콰직!

아야네가 말릴 틈도 없이 케이는 주먹으로 종이학을 내리쳤다.

그녀가 깃들고 있는, 한 세계를 멸망시킬 목적으로 만들어진 신체의 괴력은 조악하게 형태만 유지하는 배리어 '따위'와 그것으로 보호되던 종이학까지 무참히 짓눌러버렸다.

"무슨 짓이에요?!"

경악한 아야네가 케이의 팔을 끌어당겼지만 이미 늦었다.

형체도 남지 않은 미지의 물체였던 무언가를, 케이는 차갑게 내려볼 뿐이었다.

그 눈빛이 자신을 향한 순간 아야네는 흠칫 놀라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그, 그게 뭔지도 몰랐잖아요......"

그럼에도.

그 종이학이 대관절 무슨 물건인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케이가 손 댈 권한이 있는 물건이 아닌 것은 확실했기에 할 수 밖에 없던 반론.

"......몰라도 됩니다."

차갑게 내뱉으며 케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외부 세계에서 비집고 들어온 물건이, 우리 세계에 득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연구한답시고 재앙을 일으키는 버튼을 누르느니 그냥 빨리 처리하는 게 오히려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아, 아니......"

케이는 더 이상 듣지 않겠다는 듯이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저게 재앙을 일으키는 버튼이라고?

그럴 리가.

아야네도 속을 리 없고, 케이 자신도 저것이 무엇인지 예감할 수 있을 물건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안 돼.'

심장이 억죄는 듯한 감각.

이것이 죄책감이라는 감정일까?

자신이 지켜야 할 어른, 불합리한 재앙 속에서도 늘 자신을 먼저 걱정하며 웃어주는.

마치 <왕녀>가 그리던 <용사>와도 같은 그 어른을 속였다는 것에서 오는.

'이 세계를...... 왕녀가 살아야 할 세계를 아직 지키지도 못했다고......'

콰앙!

자신의 몸에 진짜로 뛰는 심장 따윈 없을텐데도.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겁게 끓어오르는 것을 억제하지 못한 케이는 분을 못 이겨 벽을 쳤다.

어느 순간에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두뇌일텐데.

그 머릿속이 헝클어지는 느낌을 받는 것은 대체 어느 정보와 데이터들이 얽히고 섥혀서 그런 걸까.

"......지킬 겁니다."

그래서, 케이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를 결심하듯 내뱉을 수 밖에 없었다.

"<왕녀>도...... <선생님>도."

지켜야 한다.

"이 세계를, 구원할 때까지."

오로지 그 생각 뿐이었다.

* * *

"하아...... 역시 쉽게는 안 되네요."

"쉽게 될 리가 없지. 모래 사막에 뿌린 바늘 하나 찾는 일이나 마찬가지잖아."

"일본이라 했던가요. 다른 세계의 이세계인들을 우리 세계로 넘어오게 한 기술력의 원천, 색채의 침공 때 얻은 데이터에 다른 세계의 시로코 씨의 연구 협력으로 구현하는데 성공한 연산장치...... 그런데도 선생님의 위치를 특정조차 못하다니, 어째서...!"

"좌절하지 마, 히마리. 애초에 나와 다른 사람들이 협력했다고 한들 우리 차원 밖으로 신호를 전송할 수 있는 기술을 그 시간 안에 개발한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라고."

"이 판국에 기술력에 대한 칭찬을 받는들 뭐가 달라지냐고요! 아아, 안 되는데...! 시간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케이가 그러하듯.

여전히, 모래보다도 광할한 우주 속에서 소중한 사람을 구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었다.

삐익-

삐익-

삐익......

"......하루카."

"......"

"나, 제대로 된 직장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벌이는 지금보단 시원찮겠지만 걱정 마. 아무리 내가 망했다한들 친구 병원비 하나 못 낼 정도로 말아먹진 않았으니까! 무엇보다 믿을만한 뒷배도 생겼고, 잠깐 힘들고 말면 돈도 확실히 더 벌 수 있을 것 같고......"

"......"

"그러니까, 버텨줘. 내가 당당하게 너를 볼 수 있을 때까지. 미안하지만, 친구 하나 지키지 못한 못난 사장이라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버텨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비참한 과거에 대한 후회를 뒤로하고, 소중한 이를 위해 다시 일어나보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유메."

"네, 선생님."

"아아, 그러니까 그... 쿠치나시 양."

"네. 말씀하세요."

"......지지 말자."

그 모든 학생들의 노력에 부흥하고자, 거대한 불합리에도 의무를 다하려는 어른이 있었다.

"......네, 반드시!"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진정으로 믿어주는 이를 위해.

싸우려는 이들의 등을 떠밀듯 빠르게 시간이 지났다.

D-day.

아비도스의, 키보토스의 운명을 결정지을 날은 그렇게 빨리 찾아왔다.

* * * * *

잘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총격묘사대인전다대다전투씬 묘사가 하꼬작가를 덮친다 크아아아아악

광고
BA블루 아카이브·25.07.24창작

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25화/디데이를 앞두고(3)

#선생#소설
좋아요 0댓글 11저장 0
광고
BDC
Baksam작가
게시물 65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5.07.24 01:18
조회0
광고

댓글 11

나
ㅇDC
ㅇㅇ125.07.24
ㅇDC
ㅇㅇ225.07.24

슬슬 재밌어지네

ㅇDC
ㅇㅇ325.07.24

잠만 내가 이해력이 딸리는데 그럼 저 종이학에 베리어 쳐진거 방주랑 동일한 매커니즘이라는거?

ㅇDC
ㅇㅇ425.07.24

내가보기에는 동일하고 아마 쿠로코랑 히마리가 만든 신호기의 신호발사 메커니즘같은데?

ㅇDC
ㅇㅇ525.07.24

뭔가 좀 바뀌어나가는 모습이 보이니까 좋네.. 소설 너무 재밌게 잘보고 감

ㅇDC
ㅇㅇ625.07.24

케이 그걸왜부셔......

광고

Baksam님의 다른 게시물

전체 보기 ›
창작
소설)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66화/새드 엔딩
BBaksam09
TEXT
창작
소설)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53화/변수는 고양이가
BBaksam010
창작
소설)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52화/변화하는 상황
BBaksam08
TEXT
창작
소설)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49화/괜찮아진다 - 1부 完
BBaksam011
창작
소설)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48화/그 꿈이 남기고 간 흔적
BBaksam09
TEXT
창작
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47화/그 꿈으로 이어진(3)
BBaksam013
TEXT
창작
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46화/그 꿈으로 이어진(2)
BBaksam010
TEXT
창작
소설) 학대파 선생 세계선에서 살아남기 - 45화/그 꿈으로 이어진(1)
BBaksam010

비슷한 태그의 게시물

TEXT
번역
[소설핫산] 선생님이 샬레를 그만둔다고 거짓말 했을 때 학생들의 반응
Mmirato_bruaka070
창작
(소설피폐) 아코에게 장난치는 쓰레기 선생
ㅇㅇㅇ1107
번역
3
선생님 피규어 가지고 노는 유우카
ㅇㅇㅇ6108
창작
5
선생님과 사쿠라코 만화
114.43382
창작
27
선생을 2년 일찍 만난 호시노 만화(manhwa) 6화
잼잼토참1110
번역
18
럭키 도스케베 체질 선생님 3.manhwa
Nnamuru121355
창작
3
선생님과 에이미
114.43596
창작
9
ntr당한 퐁퐁남 선생과 무서운 아로나 만화
그그림판연구부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