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들 있겠지만 카이저가 게헨나를 의심하게 하면 안 돼."
눈탱이가 밤탱이가 돼버리고서야 자신이 앞뒤 다 떼고 본론부터 꺼내며 폭주했다는 걸 깨달은 선생은 거의 처음 만났을 때 급의 불신을 풍기는 학생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물론 저쪽이라고 열차포 폭파 시점과 온천개발부가 난동 피우는 시기가 겹쳤다는 걸 수상하게 안 여길 리는 없겠지. 그러니까 여기선 머리 복잡하게 제3세력을 끼워넣아야 해."
"그게 여고생한테 수영복 입고 은행 털게 한다는 선생님 더러운 망상이랑 대체 무슨 상관이죠?"
"그, 수영복은 안 입긴 했는데 은행 터는 건 진짜 있던 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작작하라는 소녀들의 무시무시한 시선을 받고서야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뒤에서 세상 한심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던 케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아무튼 진짜 필요한 일이야! 딱 2주일, 온천개발부가 광물을 캐러 아비도스에 들어오기 직전까지만 하면 되니까!"
"아무리 봐도 사심 채우려는 것 같은데......"
"드디어 본성을 드러내는구나, 이 망할 어른이...!"
"그냥 광물 캐고 메꿀 때 같이 묻어버리죠?"
"하... 하하하......"
아이스 브레이킹 잘못했다 타이타닉 침몰시킨 빙하급 충격에 얻어맞게 생긴 선생이 아무리 봐도 진심인 따가운 눈초리에 식은땀을 뻘뻘 흘리던 와중.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 유메가 냉정을 찾은 덤덤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래서요?"
"응?"
"수영복을 입고 활보하든, 은행을 털든...... 단순히 소란을 일으키는 것만이 선생님의 목적은 아닐 거 아니에요? 설마 진짜 여고생 수영복 입은 거 보자고 그런 말 꺼낸 건 아닐 거 아니에요."
"그거 맞는 거 아냐, 유메 선배? 그 쪽이 진심 맞는 거 같은데?"
"맞으면 그냥 쏴버리고 발키리에 넘기면 될 일이니까 여기선 일단 넘어가자 세리카 쨩."
"...그렇구나!"
환한 표정으로 납득한 세리카가 적의를 가라앉히고 진정했다.
......이제부터 잘못 말하면 진짜 총 맞을 것 같은 분위기에 선생은 속으로 벌벌 떨었으나 어디까지나 본인의 자업자득, 사필귀정이었다.
"아무튼, 음... 말했듯이 온천개발부가 작전에 들어가기 전에 카이저의 이목을 끌, 정확히는 그 이전부터 그들의 경계대상 안에 들어야 할 네임드가 필요해."
유메의 말대로, 당연히 그저 관심을 끄는 용도로 분탕을 치는 것만은 아니었다.
"상황이 터지고 나서, 난 그 단체 명의로 열차포 테러를 자신이 했다고 밝히는 메일을 카이저 쪽에 보낼 계획이야."
"...아아."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게헨나나 저희가 1순위로 용의선상에 오를 확률을 줄이겠다는......"
이해했다는 표정들 가운데서, 아야네가 모두를 대표해 정리했다.
"나쁘진 않네요. 아니, 카이저의 시선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에서 아주 효과적인 계획이라 봐요."
"그 정도로 효과적일까?"
"네, 세리카 쨩. 오히려 열차포를 거론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카이저 머릿속엔 게헨나고 저희고 싹 사라질 게 확실해요. 대외적으론 저희는 열차포의 존재조차 제대로 아는 게 아니니까요."
"내가 선생님과 아루 씨와 만났던 자리에서 이사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아비도스에 숨겨진 보물이 거론된 적이 있는 게 좀 불안하긴 한데......"
"그러네요, 선생님은 제너럴한테 가서도 뇌제의 유산이라는 좀 더 확실한 대명사를 거론하셨다고 했잖아요."
확실히, 제너럴에겐 좀 더 구체적인 정보를 주긴 했다.
샬레의 데이터베이스와 아루의 뒷세계 연줄을 부풀려서 거짓을 진실인 것마냥 포장했지만, 어쨌든 뇌제의 유산이라는 단어를 특정시켰다는 부분에서 거론될 위험성은 존재했으니.
"그것도 괜찮아. 정보가 새어나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태가 최근에 있었잖아?"
선생은 샬레 내부가 엉망이 될 정도로 폭동에 가깝게 된 시위를 블러핑에 이용할 계획이었다.
하드까지 전부 부숴진 마당이니, 거기서 정보가 빠졌다한들 이상할 건 없을테니 절묘한 한 수나 다름 없었다.
다만, 그 경우......
"선생님한테 책임이 가는 거 아닌가요?"
"오히려 그렇게 할 생각인데?"
"네?!"
"그야, 학생들 의심하게 하는 것보다 내 쪽에서 정보가 나갔다 하는 게 훨씬 이상적인데다 앞뒤도 더 잘 맞으니 쓰기 좋잖아."
"그걸로 불이익이 온다면요?"
"불이익이라 해봤자 그거 갖고 외부 협력업체에 불과한 날 죽이길 하겠니 뭘 하겠니. 무능하다고 팽하는 게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텐데, 그래주면 나야 오히려 땡큐지."
합리적이긴 했다.
그들이 생각해도 카이저가 정보 유출의 출처를 찾는 과정에서 저것만큼 유력한 가정은 없었으니까.
이 일로 기억상실증 상태의 선생의 쓸모를 평가절하 할지라도, 껍데기 뿐이지만 여전히 생텀 타워의 컨트롤타워란 위상을 지닌 샬레에 위해를 가하기까진 않을 터.
좋은 방법이었다. 좋은 방법이긴 했는데......
무언가, 가슴을 쿡쿡 찌르는 느낌에 그들은 차마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저, 그런데요."
그런 와중에 노노미가 손을 들었다.
"저희가 아무리 분장을 잘한다해도 특정될 위험이 아주 없다고 할 순 없지 않나요? 예를 들어서 인원수라던가."
"맞아. 사람 수만 세서 우리인지 눈치챌 수도 있잖아?"
"그 부분은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거기서 갑자기 끼어든 케이에 모두가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모습에, 선생은 망설이다 옅은 한숨을 뱉으며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런 이유들로 카이저가 우리를 지목할 일은 없을 겁니다. 인원수로 혼란을 주는 동시에 이목을 집중시킬 '진짜 흑막'을 함께 투입시킬 계획이니까요."
"케이 쨩, 설마...?"
"애초에 <수영복 복면단>은 카이저 시선에서 헬멧단과 별 다를 바 없는 패거리 취급 받을 겁니다. 카이저가 찾아야 할 진정한 대적자는 갑자기 나타나 복면단이라는 그룹을 급부상시킨 베일 속의 리더. 키보토스 뒷세계의 폭군......"
케이는 따로 빼두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것을 집어꺼내 보이며 선언했다.
"<파우스트>가 될겁니다."
* * *
그렇게 2주 동안, 블랙마켓에 상주하는 모든 이들은 악몽을 맛봐야 했다.
"수, 수영복 복면단이다!!"
"파우스트, 파우스트가 떴다...! 전부 도망쳐!!!"
"근데 쟤네 수영복 안 입었는데 왜 수영복 복면단이라 부르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하냐 멍청아! 털리고 싶지 않으면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터엉!
"전부 꼼짝 마."
연막탄을 터뜨리고 일갈하는 차갑기 그지 없는 유메...... 가 아니라 1호의 목소리.
지금껏 겪었던 분노와 핍팍을 끌어모아 연기하라 지시한 선생의 디렉팅에 힘입어, 이 자리에 있는 그녀는 험악한 조직폭력배로서의 모습을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었다.
애초에, 이곳은 카이저의 은행이었으므로 분노를 내다못해 증오를 불태우는 건 그녀에겐 딱히 어려운 주문도 아니었을 터.
"무기 전부 바닥에 내려놔. 손 끝 하나라도 움직이면 바로 쏜다."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음에도 낮고 차가운 목소리는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움찔하게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유메의 옆으로 나서는 한 소녀가 있었으니.
"파우스트, 명령을."
"여기까지 와서 지시할 것도 없잖아?"
복면을 쓰고 있는 다른 조직원들과는 달리 빵봉투를 뒤집어 쓰고 있는 소녀가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며 카운터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카운터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벌벌 떨고 있던 매니저에게 총구를 겨누자 로봇 기체의 떨림이 더욱 강해졌다.
"다... 당신이 파우스트...!"
"잘 아네? 나 대신 자기 소개 고마워."
1호 복면을 쓴 소녀와는 달리 같은 반 친한 친구처럼 친근한 말투.
그러나, 곧바로 로봇의 얼굴 한가운데에 총구가 들이밀렸다.
그 행동에 장난기 따윈 없었다.
"그럼 이 다음에 뭘 해야 할지도 알겠지?"
"으, 으아아...!"
"뭐해? 총 맞기 싫으면 당장 돈 여기 담아."
벌벌 떨며 안쪽으로 움직이는 종업원을 뚫어져라 노려보는 파우스트가 대놓고 등을 보였음에도 함부로 움직이려는 이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반격을 노리는 움직임이 없진 않았고, 파우스트와 1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신고하려 품 속의 전화기로 손을 가져가려는 경호원이 있었으나-
철컥!
"재밌는 짓을 하네요?"
"허, 허억...!"
"좋은 말 할 때 가만히 계세요. 저희도 소란 피우긴 싫거든요."
"우, 웃기고 있네...!"
카이저 소속 경호원은 자신에게 총을 겨눈 3호 단원에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악을 썼다.
"카이저 화약 보관소까지 터뜨린 주제에, 뭐 잘났다고 얌전한 척이냐고...!"
"어......"
거기서 3호는 어째서인지 땀을 삐질거리며 머뭇거렸다.
"그거는, 노린 게 아니라 사고-"
[3호.]
그 때, 그녀의 귀에 낀 인터폰에서 들려오는 통신음.
[듣기만 해. 오해 받은 김에 그것도 사전에 노리고 한 걸로 가자. 그걸로 파우스트가 카이저에 적대한단 느낌을 풍기면 오히려 좋은 거니까.]
"......그런데 그걸 왜 저희한테 따지는 거죠? 애초에 불침번 엉망진창으로 서고 있던 당신들 잘못 아닌가요?"
"이, 이 새끼들이...!"
욱해서 올라오려는 감정은 이마에 닿는 총구의 차가운 감촉에 너무도 쉽게 사그라들었다.
그 뒤로도 소녀들은 각자 몇 번의 통신을 받았다.
[4호. 우측에 있는 0호 기준으로 5시 방향. 외부에서 들어온 경호원들이 뒤 노린다. 0호는 가만히 있고, 4호가 움직여서 뒤를 포위해!]
"헉! 우, 우리 움직임을 어떻게...!"
"손 들어! 내가 가만히 있으라 했을텐데!"
[파우스트, 시간은?]
"거의 다 됐어. 왜, 더 빨리 하라고 엉덩이를 걷어차버릴까?"
[현장에서 판단은 리더 재량대로 하면 돼. 2호, 주변 상황과 현재 위치 보고해줘!]
"어젯밤 세워둔 2호차 안입니다. 시민들의 시선은 우리가 처음 타고 온 1호차에 몰려 있으니, 카이저의 지원도 그쪽으로 우선적으로 올 겁니다."
"좋아, 전부 끝났어! 다들 후퇴! 후퇴!!"
돈가방을 챙긴 파우스트는 외치자마자 들고 있던 스위치를 꾹 눌렀다.
퍼엉, 콰앙하는 요란한 소리가 터지며 피어나는 흙먼지에 은행 안의 모두가 경악해 엎드리는 사이 각자 자리에서 사주경계를 하던 복면단 일원들은 일사분란하게 퇴각했다.
"이번에는 돈가방 가지고 타랬지?"
"네, 1호 선배. 타기 직전에 버리지 말고, 중간에 버리고 오랬어요. 수사 혼동에 도움이 될 거라면서요."
"저번에 턴 은행보단 양이 좀 적긴 하네. 충분히 다 갖고 갈 수 있겠어!"
은행을 턴 강도 소녀들은 능수능란하게 대기하고 있던 봉고차 안으로 몸과 가방을 던졌다.
시동을 켜놓고 기다리고 있던 2호, 아니 케이는 문이 닫히기도 전에 액셀을 눌러 차를 출발시켰다.
"후우... 미리 퇴로로 쓸만한 구석에 연막탄을 설치해둔 보람이 있었네요."
"그것도 선생이 지시한 대로였지. 아니 진짜 이런 거 해본 경험이라도 있는 거야 뭐야, 우리 일 주일 내내 이러고 있는데 왜 잡히지도 않는 건데?!"
"세리카 쨩, 우리가 잡히면 큰 문제라고요?"
"아, 알아! 아는데 뭔가 석연찮은 기분이랄까, 어른한테 놀아나는 기분이랄까...!"
뒷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떠드는 동안, 빵봉투를 벗은 그들의 리더가 한숨을 내쉬었다.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 상황을 살핀 뒤, 그녀는 무전기를 들어 지금껏 외부에서 지휘했던 진짜 리더와 통신했다.
"좋은 지휘였어, 선생."
[현장 지휘가 더 고생했는걸 뭘. 수고했어, 리쿠하치마 양.]
"하하......"
아루는 실소를 내뱉으며 차 시트에 머리를 푹 기댔다.
"더러운 돈을 터는 정의의 강도라니. 이 웃기지도 않은 짓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이걸 흥신소도 아닌 아비도스와 같이 할 줄이야."
"우리가 할 말이거든?! 그리고 이거 가지고 동료라도 된 것처럼 굴지 마! 아직 그쪽에 대한 앙금 전부 풀린 것도 아니니까!"
"그걸로 따져온다면 나도 할 말은 없지만."
아루는 진심이 희석될 태도임을 알면서도 싸늘하게 얼굴을 굳히며 백미러로 복면을 벗고 따져온 세리카를 차갑게 응시했다.
"일 주일 내내 그런 태도면 나도 좀 힘들거든? 복면단 리더 파우스트가 여기서 제일 위험부담이 큰 역할인데, 그걸 맡아준 시점에서 빚이 조금 차감된 걸로 쳐주면 안 되는 건가?"
"그런 태도가!"
"세리카 쨩."
연기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서늘한 유메의 목소리에 세리카가 흠칫했다.
스산하게 세리카를 쳐다보던 유메는 곧장 아루를 돌아봤다.
"미안해 아루 씨."
"아니, 누누히 말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여기서 더 노력해야 하는 건 내 쪽이니까."
아루는 적대감 없는 시선으로 세리카를 돌아봤다.
"거슬렸다면 미안해. 작전 직후라서 신경이 좀 날카로웠나봐."
"아, 아니야."
완전히 납득한 건 아니어보였어도.
냉정을 찾고 자신이 갈등의 전조를 만들었다는 걸 받아들인 세리카도 순순히 고개를 숙였다.
"나야말로 갑자기 그래서 미안해. 익숙해져야 하는데......"
유메는 세리카의 마지막 말에 노노미의 표정이 지그시 구겨지는 걸 볼 수 있었다.
가슴이 답답했다.
선생의 계획과 아비도스의 미래를 생각하면 아루는 확실히 중요한 전력이 되어줄 인재다. 그걸 부정할 사람은 학생회 인원들 중에서도 없을 터였다.
하지만 그녀 역시 선생 못지 않게 아비도스의 파멸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친 자.
그 일로 인해 시로코까지 잃어버린 상처를 지닌 후배들에게, 그 날의 원흉을 바로 받아들이게 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듯 했다.
어떻게든 나아가면서도 삐그덕거려 불안하기만 한 가조립 마차에 올라탄 기분.
진탕에 박혀 나오지도 못하던 과거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었건만.
유메는 자신들끼리 있었을 땐 느껴보지 못한 불길한 공기에서 불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 * *
[그래서, 이 세계 밀레니엄의 기술력을 맛 본 소감은 어떠셨나요?]
"말해 뭐해. 언제나 믿고 쓸 수 있는 법이지."
근래 뒷골목에서 떠오르는 신흥 강자. 수영복 복면단의 리더 파우스트마저 카게무샤로 쓰는 극악무도한 뒷세계 대부, 선생은 기술 지원을 해준 히마리와 통화하며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나 때는 싯딤의 상자로 주변 상황을 한 번에 파악할 수 있었는데, 여기선 그게 없었으니...... 히마리가 기술력을 지원해줘서 싯딤의 상자만큼은 아니라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지.'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아니면 역설이라 해야 했던가.
제 세계에서 수영복 복면단의 범죄행위(?)를 진두지휘하고, 그 뒤로도 시도때도 없이 강도짓을 시도하는 시로코를 말리고, 그 밖에 발키리를 들락날락하는 일부 문제아들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선생은 저도 모르는 사이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스케반 집단도 우습게 만들 정도의 범죄 컨설턴트로서의 잠재력을 기르게 되었다.
수영복 복면단 창설 1주일만에, 이틀에 한 번 꼴로 카이저 산하 은행, 거점, 작전구역 등을 탈탈 털며 순식간에 악명을 높일 수 있던 배경엔 선생의 부탁으로 합류한 아루로 인해 학생회의 전투력이 상승한 것과 더불어 선생의 지휘력과 전략안이 뒷받치고 있었다.
다만, 치트 능력이나 다름 없는 싯딤의 상자의 유무로 인한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기에 그에 대한 지원을 히마리에게 부탁하니 선뜻 나서준 것.
"혹시라도 들키면 샬레로 전부 뒤집어 써. 알고 있지?"
[걱정 마세요. 설령 선생님이 초를 쳐도 초천재병약미소녀가 겨우 카이저 따위한테 뒤를 잡힐 일은 없을테니까요.]
자신만만한 목소리가 그 말을 끝으로 끊기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할 말 다 해서 끊을 타이밍을 찾고 있던건가 싶었지만 이내 다시 히마리의 말이 들려왔다.
[선생님.]
"응, 아케보시 양."
[전에 선생님 쪽 세계의 저와 리오는 이미 화해한 상태라고 하셨죠.]
"응, 확실히 그랬지."
* * *
'그, 혹시 리오랑 아직 화해 안 했니?'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그쪽 세계의 저는 용케 그 여자랑 화해란 걸 했나보네요.'
* * *
분명 이 세계에서의 첫 날에 히마리와 그런 대화를 나눴다.
안 그래도 그 말이 신경 쓰였던 참이었다.
자신이 알던 바론 그 전에도 두 사람 간 사이가 그렇게 좋진 않긴 했지만, 아리스와 에리두가 엮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서로 경쟁하는 악우 정도의 사이라고 칭해도 무방하다 생각할 관계로 보였었는데.
그런데 이 세계에서 그것이 언급되었을 때 히마리는 '화해'라는 표현을 먼저 쓰고 그것이 이뤄졌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한테 아직 말해주기 어려운 것까지 안 가도 되니까 이것만 말해줘. 혹시 너희 둘, 심하게 싸웠니? 서로 얼굴도 보기 싫어할 만큼?"
[심하게 싸웠다고 해야 할지, 어떨지......]
왜인지 거기서 주저하던 기색의 히마리가 이내 말을 이었다.
[선생님이 제게 그 외에도 아리스와 에리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 것, 그것도 기억나시나요?]
기억 났다.
이 즈음에 요새도시라 쓰고 횡령도시라 해야 할 존재가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이 세계의 히마리와 유우카가 뜨악했던 표정까지.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결과가 확실히 밝혀졌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해 그럴듯한 과정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죠. 사실 선생님이 알려준 정보를 토대로 제가 뒤를 밟은 것처럼 에리두를 찾아 그 여자 앞에서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이게 뭐냐고.]
"만났다고? 리오... 츠카츠키 양을?"
[네, 의외로 순순히 인정하더군요. 아, 아비 에슈흐와 아스마 토키에 대해선 아직 못 물어봤어요. 대화를 시작할만한 자연스러운 행적을 아직 못 잡아냈거든요.]
"잘했어. 완전히 네가 알아낸 것처럼 확실히 말할 수 없는 정보는 숨기는 게 낫지. 아무튼, 그래서? 에리두에 대해선 어떻게 한다고 했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도 에리두의 개발을 멈출 수 없다고 항변하더군요. 우선 올스톱 시키긴 했는데, 아마 지금쯤 노아와 유우카한테 달달 볶이고 있진 않을지.]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이전 선생의 시체를 처리할 때 급으로 들떠 있다고 생각되면 착각인걸까.
끙, 하고 한숨을 내쉬며 선생은 계속해서 말했다.
"혹시, 츠카츠키 양이 케이에 대해서. 그 유적에 대해서 알 가능성은?"
[몇 번 우회적으로 찔러보긴 했습니다만 모르는 눈치더군요. 하지만......]
"알고 있겠지."
[알고 있겠죠, 그 여자라면.]
방금 전과 달리 잔뜩 조소하는 그 말투에서, 선생은 히마리가 리오에 대해 품고 있는 분명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랬기에 조금 더 심란해졌다.
"그쪽에서 먼저 케이를 강제로 데려가려는 눈치는?"
[그 부분은...... 그 여자가 속내를 다 드러낸 건 아니라 저도 확신을 못 하겠군요. 선생님 쪽 세계에서도 존재를 알자마자 납치하려 들었던건가요?]
"그건 아냐. 리오가 아리스를 납치하려 든 건 아리스가 모종의 이유로 폭주한 이후로 위험한 병기 운운하면서 데려가려 한 거였으니까."
그 일이 아니었더라도 직전에 아리스를 키보토스를 멸망시킬 병기로 확신했던만큼 어떻게든 아리스의 헤일로를 파괴하려 들었겠지만.
뒷사정까지 모르는 선생은 자신이 아는 선에서 설명할 수 밖에 없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이대로 문제없이 지내기만 하면 그래도 경계하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을까 싶어. 직접 피해를 입히지 않는 이상 극단적인 수를 쓰진 않을 거라 생각해."
[......글쎄요.]
전화기에서 미약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직 이 세계의 저희를 잘 몰라서 그런지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군요. 제 생각엔 그 여자는 케이의 정체를 모르는 지금도 0순위 경계 대상에 넣고 있을 게 확실합니다.]
"그 이유는?"
[뭐긴 뭐에요. 선생님 때문이지.]
"아."
납득했다.
자신은 인망이 없는 걸 넘어 거의 범죄를 저지르는 독재자 취급까지 받는 최악의 어른.
리오가 자신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진 것도, 그런 그녀가 자신이 샬레로 데려온 케이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리가 없었으니.
하지만 거기서 생기는 새로운 의문점.
"그럼 아케보시 양도 위험한 거 아냐? 츠카츠키 양이면 이즈미모토 양까지 셋이서 그 장소를 같이 갔던 행적까지 전부 파악했을 것 같은데?"
[그게, 이상한 점입니다. 분명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을텐데 선생님과 동행한 저나 에이미를 힐난하지도 않고, 모른채 시치미 떼고 있다는 건......]
대체 뭘까.
선생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 침묵하고 있는 히마리도 비슷한 표정이라 생각되었다.
어쨌든 존재가 밝혀졌으니 자금이 투입되더라도 단기간에 더 개발되진 않을 에리두.
케이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리오.
아직 케이의 정체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시점일지라도 그 사람이 키보토스 최악의 인간인 선생과 한 지붕 아래 사는 인물이라면 경계 리스트에 진작에 올려두고도 남았을 상황인데.
대체 진의가 뭐지?
움직이지 않고 있는 이 세계 리오의 생각은, 대체......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선생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선생님?"
"아아, 쿠치나시 양. 잠깐만 기다려줘."
[괜찮아요 선생님.]
곧바로 히마리의 음성이 들려왔다.
[할 말은 다 했으니까요, 저도. 뭔가 새로 감지된 움직임이 있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늘 고마워, 아케보시 양. 부탁할게."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지금 할 일부터 하자.'
문을 열고 나서자 유메 뒤에 서 있는 일행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선생과 눈이 마주친 케이는, 자신을 보자마자 선생의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이 스친 것을 감지하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것이 온천개발부가 아비도스에 들어와 작전을 실행하기 1주일 전의 일.
남은 일 주일마저도 수영복 복면단은 카이저와 뒷세계의 거점 곳곳을 탈탈 털고 다니며 악명을 크게 높였다.
떠오르는 신흥 범죄 조직이자 그런 조직을 단기간에 부각시킨 정체불명의 리더 파우스트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진 때.
그러나 카이저 내 수사관들은 그들이 화약 같은 물자들은 터뜨릴지언정 돈이나 금괴 같은 화폐류는 털지 않고, 털고 나가도 은행 문 앞이나 근처에 대충 버려두고 가는 행각에 의아함을 보였다.
마치 실력을 자랑하며 카이저를 조롱하는 듯한 그 행태에.
프레지던트마저도 소식을 듣고 인상을 찌뿌린 게 극대노했다는 식으로 와전되어 카이저 지부에서 수영복 복면단에 대한 경계심이 순식간에 극에 달했다.
싯딤의 상자가 없는 선생도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고 작전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될 정도였지만, 상관 없었다.
이미 목적은 달성했으니.
[당신들이 찾던 아비도스의 보물을 가져간 것은 나, 파우스트다.]
찌익!!
"감히...! 감히!!! 범죄자 주제에 감히 우리들의 보물을!!! 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광물의 유무와 범위를 확인하고 온천개발부가 물러난 뒤.
사고 현장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의 폭발을 감지한 카이저가 그들이 그토록 찾던 보물 앞에서 보게 된 것은, 이미 다 파괴되어 보물이었던 것이 되어버린 잿더미와 그나마 형체를 유지하던 작은 격납고 안에 남겨진 한 장의 쪽지 뿐.
프레지던트의 극대노를 소문이 아닌 진실로 만들어버린 파우스트의 목에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그 때.
그들의 관심에서 잠시 멀어진 아비도스 고등학교에선 수영복 복면단 해체식과 함께 조촐하지만 간만에 웃음기가 넘치던 작은 축하연이 열린 뒤였다.
* * * * *
오늘부터 가족여행 가는 날이라 다음 업로드는 좀 늦어질 것 같슴다.
아비도스 편 절반 이상을 넘긴만큼, 재충전 잘 해서 돌아오도록 하겠슴다.
다들 더위 조심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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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컷다 여행
히후미 파우스트 아쉬워요
하루빨리원래세계에서넘어온시로코(호시노첨가되면더맛있음)를보고기뻐서우르르몰려간아비도스일행이보고싶구나그곳에는선생을지키려고선생에게서떨어지지않는시로코가있었고그광경을보고아비도스일행들은절망에빠지는거임..
ㄹㅇ 시로코때문에 자책감드는 유메 보고싶어
그렇게 파우스트가 된 아루라 산타가 된 아이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