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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피폐?) 선생님이 며칠 뒤에 죽는 이야기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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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icDGuppXoi0

* BGM 반복재생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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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 역시, 그 카드의 한계는 알 수 없습니다."

검은 양복의 사나이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어떠한 매커니즘으로 작동하는가? 일상과 비일상은 어떻게 구분짓는가? 사용자의 삶을, 시간을 어떻게 깎아나가는가? 그 종착점은 어디인가? 그 힘의 근본적 원천은 대체 무엇인가? 당신과 우리는 어떤 차이가 있기에, 그 카드의 소지 여부가 갈리는가?"

그는 양팔을 익살스레 펼쳐 보인다. 자신들은 결단코 이해할 수 없을 메타포적인 무언가를 향한, 그 나름대로 경의의 표현일 것이다.

"...마에스트로가 그런 말을 했었던가요? 근원도, 한계도 알 수 없는, 그런 불가해한 힘이라고. 네. 딱 맞는 표현입니다. 저희는 이 키보토스가 멸망하는 날까지도, 그 카드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불가해한 힘을 쓰는 불가해한 존재. 선생을 향한 그의 말은 확신에 물들어 있었다. 그래, 마치 미래라도 보고 온 것처럼.

"하지만,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연구는 또한 흥미로운 법입니다. 관찰 도중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하기도 하니까요."

관찰자이자 탐구자이면서 연구자인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세를 고쳐 앉고는, 이내 아무 말 없이 선생의 얼굴을 바라 볼 뿐이었다.

"-안녕, 하십니까?"

잠시간의 침묵을 뒤로 한 채 꺼내어진 것. 그것은 어찌 보면 당혹스러울 정도로 상황에 맞지 않는 인삿말이었다.

"...멋대로 남의 꿈에 들어와놓고는 사과도 없군. 연구자라는 놈들이 이렇게 경우가 없진 않을텐데."

"큭큭큭......실례했습니다. 지금의 당신에게 제 말을 전하기엔 이런 무례한 방법 밖에 없는 점, 부디 양해해주시길."

어찌보면 당연한, 어찌보면 냉정한, 어찌보면 날이 서 있는 선생의 말을, 그 연구자는 기분나쁜 웃음과 함께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렸다.

"이게 꿈이라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감으로. 내 학생 중에 요즈음 감이 날카로워진 아이가 하나 있어서 말이야. 그 아이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그 또한 흥미로운 주제로군요. 학생의 영향이 있다 하더라도, 낮선 꿈을 그대로 믿을 수 있다니. 이 곳이 키보토스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죠."

그의 능청스러운 대꾸가, 선생은 그닥 마음에 들질 않았다.

"......단순한 인사치레로 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협력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 미소짓는 그를, 따지자면 선생은 그리 내켜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때로는 비윤리적인 방법마저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어른. 세상을 책임질 필요가 없을 학생들마저도 기꺼이 장기말로 쓸 수 있는 어른. 오직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전념하는 어른.

선생이 가장 지양하며, 가장 혐오하며, 가장 기피하는, 자신과는 절대 섞일 수 없는 부류.

선생에게 있어서 그는 그러한 존재였다.

"큭큭큭...그렇습니다. 이건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닙니다."

그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듯 안 들릴듯 거슬리게 울려퍼진다.

"...정말로, 안녕하긴 하십니까? 선생."

그의 말대로, 이것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다.

학생들을 지키겠다는 시덥잖은 이유 하나만으로 목숨을, 삶을, 시간을 지불하고야 마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에 대한 진심어린 질문이었다.

"어른의 책임을, 선생의 의무를 위해 모든 것을 쏟는 당신은, 정말 안녕하신 겁니까?"

"무슨 말이지?"

검은 양복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 카드를 계속 사용한다면, 저희와 같은 결말을 맞이할 거라고."

실제로, 그는 이미 선생에게 수 차례 경고했었다.

선생은 학생들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카드를 사용했다. 그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카드를 사용하는 데에 전혀 망설임이 없었고, 그는 그렇게 숱한 기적을 일으키며 지금까지 나아왔다.

검은 양복의 연구자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선생은 그 카드를 계속 사용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카드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까지 그 카드를 얼마나 사용하셨는지는, 혹시 기억하십니까?"

선생은 고개를 저었다. 즉답할 수 있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그 카드의 대금을 결제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가 자세를 고쳐 앉는다.

"선생. 그 카드의 대금은 무엇으로 치릅니까?"

고개를 갸우뚱해보이는 그는, 기분나쁜 미소를 지어보이며 선생을 바라본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장난치는 사람처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를 하는 것마냥, 그는 그렇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런 그가 영 내키질 않는 것인지, 선생의 목소리에는 장미의 줄기같은 가시가 돋아 있었다.

"......삶과 시간."

"맞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신의 삶을, 당신의 시간을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라고."

고개를 끄덕거린 검은 양복은, 불량품을 파는 허풍쟁이같이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가설이 어긋나버립니다."

"......무슨 말이지?"

"어째서 색채의 인도자는, 이미 죽어버렸음에도 그 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는가? 어째서 우리는 명확히 살아있음에도, 그 카드를 가질 수 없는 것인가?"

그가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어른의 카드를 갖지 못한 그 어른은, 조금씩 선생을 향해 다가오더니, 그의 한 발자국 앞에서 멈춰선다.

"......당신의 세계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음에도, 어째서 당신은 벌써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가?"

헛소리로 치부할 수 없는 말을, 그 연구자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말처럼 내뱉어놓았다.

"......뭐?"

"역시, 자신의 귀를 의심하시는군요. 안심하십시오, 선생. 어째서 제가 그걸 알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제대로 들었습니다."

불쾌할 정도로 경쾌한 발걸음으로,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선생은 그의 마지막 말을 곱씹어볼 수 있었다.

카드의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죽는다.

"10일입니다, 선생."

짧고 간결한 결론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그는 그의 의자에 다시 편안하게 기대어 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이번에도 심히 거슬리게 들려온다.

"10일 뒤에, 선생은 죽습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말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뱉는 그의 얼굴이, 말 그대로 꿈처럼 느껴지고 말아, 저도 모르게 경계심조차 풀어진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만다.

"어째서 제가 그것을 알게 되었는지도, 카드의 대가에 대한 의문도, 그리고 당신에 대한 의문도......이걸로 모두 알 수 있게 되겠군요."

검은 양복은 누군가가 죽어버린다는 사실이 썩 즐거운 것인지, 보는 이가 불쾌해질 정도로 흥미진진해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면 금방이라도 흉흉한 일이 터질 정도의 싸늘한 분위기에도, 그는 그러한 만행을 멈추지 않는 위인이었다.

선생이 다른 이를 신경쓰지도 못할 상황이 되어버렸다는 것이, 그의 입장에서는 행운일 따름이었다.

"생각이 많아지신 모양이로군요. 큭큭큭...당연합니다. 갑자기 10일 뒤에 죽는다니, 그런 이야기를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전혀 관심없는 주제로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기분나쁜 사람처럼, 검은 양복의 관찰자는 시종일관 즐거운 듯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이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요. 슬슬 꿈 밖으로 보내드려야겠군요."

선생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그는 이 기분나쁜 공간을 정리하려는 듯했다.

"...하나만 여쭤보겠습니다, 선생."

그 기이한 공간을 정리하기 전, 검은 양복의 탐구자는 마지막 의문을 해소하고자 그를 잠시 붙잡는다.

"...당신이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게 되는 것들을, 당신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죽음.

의무, 책임.

그 어느 것도 끝마치지 못할 작별.

"......대비해야지."

"대비? 어떻게? 무얼 하실 생각입니까?"

뜬구름과도 같은 답변에, 검은 양복은 실소에 가까운 되물음으로 화답한다.

"당신은 죽게 될 겁니다. 당신이 대비한다고 한들, 미래가 바뀔 수 있습니까? 당신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것은 압니다. 입증되었습니다. 허나, 당신은 당신 사후의 미래도 바꿀 수 있다는 겁니까?"

"...몰라."

"모른다구요? 그럼에도 대비 운운하는 것입니까? 대체 뭘 어떻게 대비한다는 것입니까?"

검은 연구자는 마치 어린 아이를 질책하듯이, 생각없는 어릿광대를 비판하듯이, 끊임없이 말꼬리를 잡으며 늘어져간다.

"...대비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그걸 묻는 겁니다. 당신의 사후를 대비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것도 가족이 아닌,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이들의 미래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걸 묻는 겁니다! 명확한 방안을 이야기하십시오. 계속 대화가 빙빙 돌고 있지 않습니까. 제대로 된 아이디어가 있습니까? 설마, 그냥 그럴 수 있겠다는 느낌 뿐입니까?"

선생은, 그렇게 끊임없이 물어오는 그 검은 연구자에게서,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단호한 표정으로 등을 돌리고 말았다.

"...말해도, 너는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같은 어른이지만,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생각도, 신념도, 그 어느 무엇도 같지 아니하다.

...이해할 수 없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이해할 생각도 없다.

의문 투성이의 검은 연구자는, 마침내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

"큭큭큭큭큭...좋습니다. 피차 입만 아프게 이야기하느니, 제게 직접 보여주십시오."

검은 양복의 그 말과 동시에, 선생은 의식이 점점 몽롱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자아, 꿈의 끝입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아마, 아득해지는 의식 속 마지막 남은 말은, 저 말이었을 것이다.

* *

"......생님! 선생님!"

두 눈이 서서히 떠진다. 베고 잔 팔이 아려오기 때문인지, 아니면 의자에 앉아 자느라 고통을 호소하는 허리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다.

금방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기억의 조각도 서서히 맞춰진다. 코 앞까지 닥쳐온 서류의 마감들과 맞서 싸우느라 밤새 야근이었고, 그러다가 잠깐 몸 좀 풀자고 책상에 엎드렸다가 그만......

생각해보니 잠자리가 어수선했구나. 그래서 꿈자리가 뒤숭숭했는지도 모른다.

"......아, 유우카구나."

반쯤은 어안이 벙벙한, 반쯤은 걱정이 가득 서린 하야세 유우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다음이었다.

턱- 하고, 긴장이 풀려버린다.

"어제도 야근하셨어요?"

"유우카......어른은 대체 왜 일을 해야 할까...?"

"......네?!"

유우카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어간다.

"책임 없이 쾌락만을 누리는 어른이 될 수는 없을까......?"

"그게 선생님이 하실 말씀인가요?!"

대경실색하는 그녀를 바라보던 선생이, 엎드렸던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켠다. 몸 여기저기가 '이제 나도 일어났다' 면서 아우성이다. 음, 좋아.

"하아......성실하게 일하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도, 혼자 감당할 업무량은 아니니까......"

복잡미묘한 표정의 유우카가 한숨을 내뱉는다.

샬레의 비정상적인 업무 강도로 계산할 때, 그나마 이 정도로 유지되는 게 신기하다는 답이 나온다. 말은 그렇게 할지언정, 굉장히 성실하게 매달리는 선생 덕분이겠지.

이러저러해도, 이 사람이 선생이라 다행이다.

"그래도 당번 아이들이 도와주러 오니까 괜찮아. 특히 유우카한테는 신세를 많이 지고 있어. 언제나 고마워."

"ㅁ, 무, 무슨, 갑자기 그렇게 칭찬하셔도 아무 것도 안 나오니까요!"

......조금만 더 솔직해져도 괜찮을텐데.

"그래서,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유우카는 오늘 당번도 아닐텐데."

"...역시. 선생님께는 휴식이 필요하겠어요."

눈 앞의 이 잠 덜 깬 남자는, 아무래도 일정을 잊을 정도로 피로가 쌓인 게 맞는 듯하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의 선생을 보며, 하야세 유우카는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목소리로 일정을 상기시켜준다.

"총학생회 서류 마감이 코앞이니까 하루만 도와달라고 하셔서 온 거잖아요?"

"...아, 아아. 그랬구나. 내가 대체 언제 말했더라?"

"......바로 어젯밤에요."

...어젯밤? 선생이 벙찐 얼굴을 숨기지 못한다. 보아하니 자신이 참다참다 유우카에게 구원 요청을 보낸 모양인데, 바로 어젯밤의 일이 기억이 나질 않으니.

하기사, 요즘 들어 종종 뭔가를 까먹는 일이 잦아지긴 했던 모양이다. 정시퇴근을 해 본 것이 언제인지조차 까먹게 생긴 마당에, 몸에 이상이 없길 바라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인지도 모른다.

"......정말로 괜찮으신 거, 맞나요?"

감이 좋은 그녀이니만큼, 선생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는 일은 당연한 것이겠지. 선생이 무언가를 까먹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지만, 자기 자신이 바로 어제 말한 것조차 잊은 적은 처음이니까.

피로가 쌓인 모양이겠거니 싶다가도, 걱정이 되는 게 사람 마음인가보다. 이번 마감만 지나면 당번들에게 이야기해서, 며칠 쉬게 해야 할 지도 모를 일이다.

"뭐......특별히 이상한 건 없는 것 같아."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런 것인지, 바로 어젯밤에 이야기했던 것을 잊어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인지, 선생의 머릿속도 괜시리 복잡해진다.

평범한 꿈이었다면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만한, 아주 사소하고 기분나쁜 악몽에 불과했을 터였다.

그러나 꿈에 나타났던 녀석도 검은 양복이고, 10일 뒤에 죽는다는 말도 그렇고, [ 어른의 카드 ] 의 대가 운운하던 말도 그렇고, 무엇보다 정말로 건강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말도.

......하나하나가, 불안에 빠질 만한 요소 뿐이었다.

"...유우카,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네? 뭔가요?"

선생은, 유우카를 향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곧 죽는다고 한다면, 유우카는 어떻게 할 거야?"

시계의 초침이 멈추고, 은은하게 돌아가던 에어컨의 숨이 멎고, 규칙적으로 두근거리던 심장이 입을 닫는다.

...정확히는, 그 모든 것들이 멈췄다고 생각될 만큼, 하야세 유우카의 표정이 일순간 얼어붙어버렸다.

한 3초 남짓 되었을까. 유우카는 자신이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내려두었다.

"......선생님. 오늘은 일하지 마세요."

"어?"

"들어오는 일은 제가 다 보류나 반려 처리할게요."

예상치 못한 유우카의 말에, 선생이 벙찐 얼굴로 그녀를 올려다본다.

유우카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두웠고, 심각했고, 그리고 또 진지했다. 아마 금방이라도 울어버리거나 이성을 잃어버려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그런 생각이 들 것만 같았다.

"오늘 선생님, 아무리 봐도 일하실 상태는 아니에요. 어제 말씀하신 걸 잊으신 것도 그렇고, 지금 그런 말씀하신 것도 그래요."

"...아, 아니, 난 그냥 궁금해서--"

"--정시퇴근하신 게 언제셨죠? 어제 몇 시까지 일하셨나요? 식사는 하셨나요? 제대로 침대에서 주무셨나요?"

선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기억이 나질 않거나 본인 과실인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저렇게 조용히 화내는 유우카 앞에서는, 아마 그 누구라도 대답을 할 순 없을 것이다.

"......대답 못 하시잖아요."

평소처럼의 '제가 아니면 안되겠네요' 나 '제가 없으면 누가 챙기겠어요' 따위의 풋풋한 느낌이 아닌, 명백히 화내고 원망하는 목소리의 하야세 유우카는, 언성만 높이지 않았을 뿐이지 거의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방금 그 말씀, 저는 지금 전혀 농담으로 안 들려요. 일이고 뭐고, 어디가 되었던간에 선생님의 몸상태를 체크해보지 않으면 안되겠어요."

"......저기, 난 진짜 괜찮아. 왜, 그런 거 있잖아. 갑자기 쓸데없이 궁금해--"

"--곧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 거냐면서요? 뭘 어떻게 해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대책을 찾아야죠!"

유우카의 발치에 자그마한 물방울이 하나 떨어진다. 자기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진다. 아마 유우카 자신도 '이러면 안되는데'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도 알 정도로 최근 들어 폭증하는 샬레의 일거리, 며칠 연속으로 몰려오는 날짜 바뀌는 야근, 쪽잠의 연속과 제법 짙어진 눈가의 다크서클. 부쩍 잦아진 건망증. 의도치 않았다 하더라도 불길한 농담.

...선생의 그 모든 요소 하나하나가, 하야세 유우카의 신경을 건드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안. 미안해, 유우카."

선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꼭 안아준 것은, 그런 그녀의 마음을 십분 짐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미안해. 아무리 농담일지라도 너무 질나쁜 농담이었어. 이런 농담은 앞으로 절대 하지 않을게. 약속해."

아무리 똑부러지고 능력있는 사람일지언정, 그녀 역시 마음여린 고등학생일 뿐이다. 그러니 사과를 속삭이는 선생의 품 속에서, 괜시리 그를 꼭 끌어안는 응석 정도는 자연스러운 것이겠지.

"......진짜 다신 그런 농담하지 마세요. 돌아가신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응, 유우카. 미안해. 그런 농담 안 할게."

"약속해요......진짜 다시는 그런......"

"...응. 약속할게."

자신을 끌어안은 두 팔의 힘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자, 선생이 유우카를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진정은 시켰지만서도, 여전히 유우카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아 조심스러워진다. 이런 농담이라면 두 번 다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죄악감도 느껴진다.

...단순한 농담이었다면, 이지만.

"...정말로, 어디 안 좋으신 건 아니죠?"

"그럼! 아주 거뜬하다니까?"

짐짓 익살스런 웃음을 지어 보아도, 유우카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그야 당연하겠지. 짧은 시간동안 너무나도 큰 불안요소들을 마주했을 테니까.

"아, 그리고 이건 깜빡하고 유우카에게 말을 못 했는데, 괜찮을까?"

"......뭔데요."

반쯤 뾰로통해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건, 생각보다 더한 고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류 마감이 타이트한 건 맞는데, 오늘은 어디 외근이 있어서 말이지. 유우카 혼자 샬레에 있는 것도 미안하니까, 오늘은 먼저 돌아가도 괜찮아."

"싫어요."

하야세 유우카는, 즉답했다.

"저도 갈게요. 어디라도 상관없어요."

"......그, 유우카의 심정은 알겠는데-"

"싫어요. 저도 갈 거에요."

비록 이상이 없다고 확답받았을 지라도, 아직 놀란 가슴이 진정되었을 리는 만무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디 외근이 있다며 먼저 돌아가라니.

그러면 '네, 알겠습니다' 하고 속편하게 돌아가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을까?

그렇기에 하야세 유우카는 억지로 떼를 쓴다. 코유키나 할 법한 짓을 본인이 하고 있다는 것도 썩 코미디스러운 일이지만, 어쨌든 그녀는 떼를 쓴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선생을 혼자 보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일지도 모른다.

"진짜로 괜찮아. 학생을 같이 데려갈 일이 아니어서 그래."

"...그래도-"

"유우카에게 이 이상 폐를 끼치는 것도 못 할 짓이어서 그래. 선생님이 유우카에게 이 이상 미안해하지 않게 해 주겠니?"

...이 어른은, 교활하다.

"......진짜 최악이에요, 선생님."

그런 식으로 말하면, 누가 이 이상 떼를 쓸 수 있을까.

"......알겠어요."

"고마워, 유우카. 오늘 일은 우리만의 비밀이란다."

그렇기에 하야세 유우카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책상 위에 어질러진 서류를 깨작깨작 정리하는 것은, 그녀 나름의 걱정일 것이다.

"가 볼게요. 무슨 일 있으시면 꼭 연락주세요."

"조심히 가, 유우카! 헛걸음하게 해서 미안해."

찔끔찔끔. 결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유우카가 어거지로 뗀다. 마음같아서는 오늘따라 특히 걱정되는 그의 곁에 찰싹 붙어있고 싶지만, 그만 미안하게 해달라는데 어떡하겠는가.

사무실 문까지의 그 짧은 거리를 네 번 정도 돌아본 끝에, 마침내 하야세 유우카가 샬레 사무실을 나섰다.

......문이 닫히고 사무실에 정적이 찾아온다. 검열을 끝마친 공무원처럼, 사열을 끝낸 군인처럼, 선생이 의자에 털썩 하고 주저앉아버렸다.

(죽는다, 라......)

아마도, 누군가가 어느날 갑자기 듣게 된다고 해도 실감나지 않을 이야기. 자신의 죽음.

과연 사실인가? 그의 말을 믿을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그 꿈을 진짜 꾼 것이 맞는가? 피로에 찌들고 불편한 잠자리에 데여, 그런 꿈을 꿨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선생이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본다. 요근래 들어 무언가를 까먹는 일이 종종 생기고,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도 나름 체감하게 되었다곤 한다만, 그렇다고 금방 죽어버릴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도 제 자신의 두 눈으로 들어오는 손이, 곧 죽어버리고 말 산송장의 손이라고는, 쉽게 받아들일 수준은 아니었다.

(...병으로 죽는 건 아닌가?)

뇌리를 스쳐가는 하나의 가능성, 한 줄기의 기억.

...쓰러진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오리. 조마에 사오리. 그리고 총을 든 그녀가......

...부들거리는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 저도 모르게 각인되었을 지라도, 선생이 학생을 믿어주지 못해서야, 선생 명찰을 벗어던져야 할 터이라.

생각이 잠깐 샜지만 어쨌든, 그렇다면 물리적인 공격이 있나? 아로나와 프라나마저도 이겨낼 수 없는, 단 한 번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치명적인 무언가가?

(......아니, 그건 너무 랜덤성이 강해.)

카드의 대가 운운하기엔,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공격이 정말 가해진다면, 그건 아무래도 이번 일과는 전혀 관련없는 랜덤성 이벤트일 것이다.

선생이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잠금을 풀고, 전화번호부 어플에서 누군가를 찾아내어, 초록색의 '통화'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멈춘다.

(......린에게, 알려줘야 할까?)

이미 그녀에게는 한 번 곤혹을 치르게 한 적이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닐 지라도, 어쨌든 나나가미 린을 큰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다.

......색채.

침공 징후를 그녀에게 알려주고, 린이 선생의 말을 믿으며 비대위를 소집했으나 정작 선생 자신이 습격을 당해 불참하고, 엉망이 된 비대위 속에서 월권 및 기타 논란으로 불신임당하고...

휴대폰의 잠금 버튼을 눌러버린다.

(...확실치도 않은 사실로 곤경에 빠뜨리는 건......)

제법 그럴 듯할 정도로 기분나쁜 꿈이지만, 그렇다고 대응하자니 물증이 없는 것이 문제가 된다. 애초에 꿈에 나온 사람이 그 녀석만 아니었더라도 이렇게까지 고민할 일 없는 일이다. 단순한 에피소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그 꿈이 사실이라면. 아니, 사실이 아니더라도, 만약 자신이 죽게 된다면.

샬레의 선생이라는 직책은 절대 가볍지 않다. 그것은 선생 스스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점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부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 후의 계획을 알아 둘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 꿈을 100%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꿈이 등을 떠밀어 준 덕을 보는 것도 괜찮겠지.

잠금 버튼을 눌렀던 휴대폰을, 다시 켜 본다.

(......잠깐, 떠 보기만 할까.)

---------------

약 1년 정도 묵혀뒀던 소재인데, 어느 정도 스토리라인이 잡혀서 다시 끼적거려봄

아마 12~13편? 그 정도 나오는 짧은 이야기가 될 것 같음

다만 내가 지금 현생이 바빠서 굉장히 비정기적으로, 긴 텀을 두고 연재될 가능성이 높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생각날 때 한 번씩 찾아보면 좋지 않을까?

이 정도 분량을 매일 적어내려가기엔...고속버스 기사라는 직업에겐 시간이 없다;;

한 편이 2~3주만에 올라올지도 몰라

장담 못함ㅋㅋ

그래도 유기 없이 끝까지 가보겠음ㅎ

이번 편은 프롤로그라서, 대충 이런 느낌의 스토리겠구나 싶은 생각으로 읽으면 될듯

기약없는 기다림이지만 재밌게 읽어줬음 좋겠어

디시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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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5.03.01창작

소설, 피폐?) 선생님이 며칠 뒤에 죽는 이야기 [프롤로그]

#선생#소설#피폐
좋아요 0댓글 16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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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DC
데스/모이네스!작가
게시물 51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YouTube
게시일2025.03.01 23:46
조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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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6

나
ㅇDC
ㅇㅇ125.03.01

맛잇다

ㅇDC
ㅇㅇ225.03.01

이 시간에 야한 이야기라니, 매우 행복!

ㅇDC
ㅇㅇ25.03.02

다음화 언제나옴 진짜급함

ㅇDC
ㅇㅇ325.03.02

빨리 다음화

ㅇDC
ㅇㅇ425.03.02

10일 뒤에 죽는 센세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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