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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약피폐)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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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XX월 XX+80일 20:02

선생 치료 시작 80일째, 키보토스 연방 권역 의료 센터 8층 야외 테라스

"해가 다 졌네."

"네. 정말 그렇네요."

"춥진 않아?"

"네 이 정도는..."

"으음..... 다리는 어쩌다 그렇게 된거야?"

".... 평소에 운동을 더 해두었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이리저리 바빴겠구나. 하긴, 트리니티를 이끄는 위치에 있는 나기사니까. 고생하고 있네."

"아......"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역시 그 쪽인가요.'

나기사의 표정변화에 아차 싶었던 선생이었다.

'물론 올라올 때부터 유난히 축 처져있던 것은 봤지만....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

"....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지만..."

"....... 안 그래도 궁금했어. SRT의 헬기에서 나기사가 내린 것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니까. 혹시 무슨 일이 있는거야?"

"아.... 그것이 사실은...."

나기사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분명, 지금 그녀는 일종의 임무를 받고 공무를 수행중인 몸이었다. 선생의 정확한 용태를 파악하고, 이를 미카, 세이아와 공유한 뒤, 이에 대한 학교 차원에서의 대응을 준비하는 것.

그러나, 트리니티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들었던 그녀의 고뇌 역시도 분명히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저는....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둘 중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은 욕심인건가요...'

그런 나기사의 모습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선생에게도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무언가 꺼내기 쉽지 않은 고민이구나."

"....... 그렇네요. 정말로..."

"음.. 나기사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 될 것 같아. 지금만큼은 어떤 격식도 절차도 의미없는 시간이고, 어쨌든 내가 업무 시간 이후에 사적으로 부른... 그런 느낌이잖아?"

"사적으로...."

"그... 음.... 뭔가 사적으로를 대체할 좋은 표현이 없을까... 요즘 안 그래도 소라가 나를 쳐다보는 표정이 점점 더 이상해지다보니.... 어.... 그런.... 음...."

"저는 좋습니다. 그 사적인 만남."

"엑. 그치만..."

"가끔은 이런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에요."

'물론 선생님께서는 내켜하지 않으시겠지만요...'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약간의 체념을 무릅쓰고 사적인 만남을 좋아한다고까지 말해버린 나기사였다.

"음.... 좋아한다니 다행이...네? 지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거... 맞는거지?"

"제가 선생님의 허를 찌른 모양이군요.... 후훗."

어안이 벙벙해진 선생의 얼굴을 보며 나기사가 오랜만에 미소를 짓는다.

"어,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굳이 격식이랄까, 아니면 이야기의 흐름이랄까,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어.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일단 업무는 아니잖아?"

"그런가요..."

선생의 당황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잠깐의 '유희'가 끝이 나고,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올 차례. 한기를 머금은 밤바람이 그 차가움을 더한다.

"...... 선생님께서는.... 선생님께 저는 어떤 학생인가요?"

업무가 아니라는 선생의 말에 용기를 얻었던 것일까. 나기사가 우선 꺼낸 카드는 얼핏 보기에 업무와 다소 거리가 있어보이는 주제였다.

"어떤 학생일까 나기사는....."

그러나 그 주제를 받아들이는 선생의 마음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았다.

'나기사가 이런 말을 꺼냈던 적은 없었는데.....'

걱정의 감정은 서로 다른 출발점에서 교차한다. 하나는 가장 중요한, 나기사의 평소와는 다른 행동에서 느껴지는 걱정. 다른 하나는, 만에 하나 그것이 상당한 정신적 압박을 주는 것일 때 그것을 마주해야 하는 자신에 대한 걱정이었다.

'모쪼록 심각한 일이 아니기를... 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나기사... 어떤 아이일까. 대단한 아이?"

"대단한... 아이요."

"당연하겠지만, 트리니티의 대소사를 처리하고 있기도 하고. 게헨나, 밀레니엄과 함께 가장 큰 학교인 트리니티가 지금껏 큰 무리없이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나기사의 공이 크지 않았을까. 자신감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

"그런가요......"

"항상 트리니티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러니 스스로를 조금 더 믿어봐도 좋을 것 같아. 너무 걱정하지 말고."

"............."

평소와 같은 선생의 대답. 그러나 이번만큼은 선생 역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어?'

나기사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감정은 여러가지였지만, 그 중에서도 논란의 여지 없이 보편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들은

낙심. 무기력. 자조.

와 같은 것들이었다.

"......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구나."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할 따름... 입니다."

"..... 이쪽을 잠깐 봐줄래?"

고개를 이쪽으로 돌린 나기사. 얼굴 진 그늘이 선명하다.

그런 그녀에게 선생은 솔직히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내가 아무래도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아. 미안해."

"............ 선생님."

"으, 응?"

"어쩌면 제가 질문을 모호하게 드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다시 한 번 여쭈어도 괜찮을런지요?"

선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조금 더 긴 침묵이 지나고 나서 나기사가 입을 연다.

"선생님께..... 키리후지 나기사는 어떤 사람인가요?"

'....... 그런... 말이었구나.'

이제 선생 역시 질문의 요지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기사가 진정 원한 것은 티파티의 호스트로서의 자신도, 트리니티를 이끄는 핵심으로서의 자신도 아니었다는 것을.

그저 선생의 학생, 키리후지 나기사는 어떤 사람인가에 관한 질문이었다는 것을.

"대답하기 전에.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어. 질문을 조금 더 일찍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나기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다만 앞선 질문에서의 상심이 컸던 것일까, 눈을 좀처럼 마주하지 못하고 자신의 발끝을 쳐다볼 뿐이던 그녀였다.

".... 나기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게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

".... 스스로 말씀이신가요."

"서로의 생각이 같을 수도 있으니까."

"...... 저는 아마 실망스러운 학생이겠지요."

".........음."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한 행동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요. 마음의 상처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는 말을 조금 더 일찍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

"저 역시도 선생님께서 저를 못미덥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보시는 전.... 그저 구제불능의......."

"....... 그랬구나."

"..... 허나 이것은 제가 지고 가야 할 책임이고. 설령 선생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한들 제가 그 어떠한 이의도 제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네..... 그런....."

나기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나기사를 바라보는 선생은 이제서야 이 모든 질문의 내막을 파악할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한 자책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었다. 절대 본인은 그러지 않았노라 해명하고 싶었으나, 그녀의 말대로 마음의 상처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 내 앞가림에 눈이 멀었구나....'

자책이 혐오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요, 그 혐오의 방향성이 스스로를 향하는 것은 자명했다. 그 발상은 이제 다시 그의 자격을 시험하고자 한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감정. 바닥 밑에 바닥이 있음을 알려주는 경험. 상실감만이 남는 폭풍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의식이 점차 감정 속에 파묻히기 시작한다. 주변의 소리보다 자신의 심장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한다.

분명히, 지금 상황을 방치했다간 다시 한 번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생.

하지만 지금은 이미 반쯤 잠식된 부정적인 감정보다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것이 존재했다.

'내... 학생.... 내 학생이..... 그래선 안 돼.....'

설령 그 폭풍에 자신이 휩쓸린다고 해도.

'설령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해도.'

그 댓가로 자신의 학생이 미소지을 수 있다면.

'...... 반드시 해야 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 홍수를 버틸 수 있는 의지가 아직 꺾이지 않았기에.

"...... 아마 대답이 두서없을지도 몰라. 이해해줄 수 있겠니?"

".......... 네."

나기사의 승낙을 받은 선생이, 위태로운 가운데 이제 자신의 턴을 시작한다.

"...... 처음 본 나기사는 품위있었지 아마. 어떻게 보면 우아하기도 했고."

'......?'

움찔하던 나기사를 잠시 바라보다 선생이 말을 이어나간다.

"우아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네. 그 전까지 내가 보아왔던 아이들과는 달랐거든. 어딘가 모르게 격식있고, 품위있고, 그런 느낌이었달까."

"그랬... 군요."

"그리고 나에게 도움이 아니라 협력을 요청한 첫 학생이었다는 점에서, 유능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지. 뭐랄까, 나와 같은 시선에서 함께하고 싶다는 이미지였을까?"

".......... 칭찬받을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쪽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굳이 많은 부분을 도와주지 않아도 이미 혼자의 힘으로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해내고 있었다는 점이 대단하고, 또 대견하다고 생각했던거야."

"............"

"그리고.... 세 번째로 놀랐던 부분은... 뭐랄까. 같은 나이대의 학생에게서 찾아볼 수 없던 신중함이라고 해야할까?"

"의심...에 관한 이야기군요."

나기사의 목소리가 한 층 더 낮아졌다. 그러나,

"의심...... 꼭 그렇게만 생각했던 것만은 아니었어."

".... 아?"

나기사의 목소리의 저점은 갱신되지 않았다.

"물론, 나기사가 생각했던 방향은 나와 달랐었지. 하지만.... 언제였더라?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어느새 고개를 들고 선생을 빤히 쳐다보는 나기사. 그녀의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섞인 시선을 체크하며 이어나갈 말을 꺼낸다.

여태 홀로 끙끙 앓고 있었던 마음 속 어두운 면의 이야기. 그 이야기의 가장 겉부분을 차지하는 단편을.

"어쩌면.... 내가 걸어왔던 그 선택들이 옳았던 이유에는 크든 작든 운이 따라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

"운...... 허나 그럴지언정 제 실패가 불변의 영역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결과만 해석할 때면 그럴 수도 있을거야. 하지만... 내가 걸어온 길을 스스로 돌아보건대, 그 길이 정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매 순간순간 나에게 함께했던 행운 혹은 기적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어.

"중간에 여러 요소들이 날 돕지 않았더라면, 순간순간의 판단에서 단 한 번의 실수라도 있었다면 나는 결코 여기에 있지 못했을거야. 다행이었던 건 그 선택과 판단의 기로에서 내가 맑은 정신으로 너희들이 웃을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는 점이겠지."

"다시 말해, 내가 실수를 하는 상황이 여태 없었더라도, 언젠가 그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걸까ㄴ..... 음?"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도중 나기사의 표정을 본 선생이 잠시 말을 멈춘다. 그가 본 나기사의 표정은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기에.

분명히 원망은 아니었다. 되려 안도감과, 서러움과, 그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이 혼재된 그녀의 표정을 보자 이제 그녀가 어째서 이런 질문을 했었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 많이 신경쓰고 있었구나."

"........ 네."

"....... 그렇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나니, 나기사가 했던 행동을 어떠한 면에서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어."

"..... 아?"

"그 때 나기사에게 주어진 정보가 내가 아는 모든 것이었다면 과연 나는 지금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을지 고민했을 때, 그럴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조금은 높았다고 생각해."

"선생님......"

"나는 친구를 잃어본 적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나를 죽일 것이라는 압박에도 시달려본 적이 없어. 하필이면 비슷한 시기에 들어오는 정보의 성격마저도 그랬었고? 무엇보다 에덴조약이라는 가장 큰 과제를 앞둔, 그러나 아직은 학생인, 나기사가 받았을 스트레스를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

"그랬군요...."

"..... 그래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은.... 미안하다는 이야기였어."

"......ㄴ, 네? 미.... 미, 미안.....미....."

"미안해. 너무 늦진 않길 바랐는데."

"아...... 아.."

미안하다는 말. 선생의 사과.

나기사가 결코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치 못했던.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가장 듣고 싶었던 말.

"변명일 뿐이지만, 항상 품위있는 모습으로 학교를 이끌어나가는 나기사의 모습은 어른스럽다고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매순간이 기쁘지만은 않았을텐데 그마저도 스스로 해내는 점을 본다면 아마 다른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선생이 별안간 쓴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나마저도 나기사의 그런 어른스러운 모습에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나기사를 어른으로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자신마저도 은연중에 망각했던 사실. 그녀도 아직은 도움이 필요한, 그리고 자신이 지켜야 할 학생이었다는 불변의 명제.

그 명제에 대한 소고를 너무나도 늦게 밝힌데 대한 후회와 씁쓸함의 출력값이 쓴웃음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 꼭 듣고 싶었습니다."

침묵 끝에 떨리는 목소리로 나기사가 입을 연다.

"알고 싶었습니다. 선생님께 제가 어떤 학생인지... 정말로 저를 선생님의 학생으로서 보고 계신 것은 맞는지..."

"그 힘든 시간을 내가 감히 예단할 수는 없지만.... 확실히. 그랬겠네."

"우스운 이야기지만 가끔은 미카 씨가 부러울 때도 있었습니다. 선생님과 만나 보냈던 시간을 그저 정무적 판단을 내리는 지표로서만 소비할 것이 아니라 미카 씨처럼 세상 티 없이 맑게 하루를 보냈어야 한다는 후회도 많이 들었습니다."

"..............."

".......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요 몇 달은 누군가에게 신경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내게 큰 고역이었단다.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고, 그러다보니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의 생각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일들도 많았고. 아마 그 과정에서 내가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더 많을지도 몰라. 뭔가 계속 변명만을 하게 되는 것 같아 나도 마음이 무겁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일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지금 그가 맡고 있는 선생이라는 자리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다만 더 이상의 목격자 생산은 안된다는 판단이 직접적인 묘사를 감춘다.

"...... 선생님께서도 그런 고민을 하실 때가 있으시군요."

"부끄럽지만, 응. 그런 생각은 아직도 머리에 빙빙 돌고 있고. 아마 미카는 눈치챘을지도 모르겠네."

미카의 이야기가 먼저 나오자 나기사는 순간 움찔한다.

'분명.... 오늘은 이 이야기를 듣고자 온 것이었죠....'

".... 미카 씨와 얼마 전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들킨건가."

"추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미카 씨가 선생님의 용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 정도는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듯하여 이야기를 꺼낸 것이고요."

"그랬구나..."

이제서야 선생은 깨닫는다. 자신의 상태와 관련하여 미카와의 연결점이 생겼다는 사실은 어쩌면 오늘 나기사가 방문하게 된 이유와 큰 관련이 있다는 것을.

"미카가 뭐라고 이야기했는지 알려줄래?"

"...... 이번만큼은 그 어떤 정치적 계산도 들어가있지 않다는 사실을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선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나기사가 조용히 입을 연다.

"선생님의 몸상태가 궁금합니다. 분명 무리하고 계시다는 사실 정도는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잠은 잘 주무시는지, 식사는 제 때 하시는지, 그리고 말 못할 고통이나 상처가 있진 않으신지. 단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샬레에 찾아뵈고자 하였던 것이고요."

나기사는 선생의 표정을 살핀다. 아직까지 큰 표정의 변화는 발견되지 않는다.

"........ 미카 씨는 선생님께서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는 한계까지 몰린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저와 세이아 씨 역시 같은 생각이고요."

"..... 그렇구나. 그것 외에 별다른 이야기는 없었니?"

"선생님께서 미카 씨와 만났을 때 잠시 자리를 비우신 적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우연찮게 두 사람의 동선이 겹친 시점에서 미카 씨가 선생님께 편찮은 증세가 나타나고 있음을 알았지 않나 생각하고 있고요."

"음......."

나기사의 진심어린 걱정은 선생의 마음을 잠시 동하게 만들었다.

저 단순히 자신의 상태에 대한 걱정으로 말미암아 샬레에 홀로 찾아오고, 헬기를 빌려타는 임기응변까지 발휘한 것을 정치적인 계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매몰찬 생각이었으니.

"나기사도 내가 진심어린 답변을 해주길 바라겠지?"

"더해서, 선생님께서만 동의하신다면, 티파티의 명의로 총학생회에 선생님의 휴가를 추가로 승인할 것을 요구하는 행정적 절차를 밟고 싶습니다. 이 점은 저희 셋 모두가 같은 생각이에요."

"느끼는 거지만 가끔은 티파티가 무서워."

"저희의 진심이 닿을 수 있는 첨단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확실히 요즘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긴 했지."

"그렇군요."

"그리고 그 여파로 여러가지 잔병치레랄지,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날들이 있던 것도 맞고."

나기사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다.

"..... 정말 버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시기가 오면 그 때는 알려줄게. 그거면 될까?"

선생 나름의 타협안이었다. 나기사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세이아의 이름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볼 때 세이아의 특출나게 좋은 '감'이 도출해낸 결과를 듣고 왔을 것이기에.

그리고 어떠한 면에서는 그의 상태에 대한 직관적인 표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선생을 보며 나기사는 조용히 왼 손을 내민다.

"... 약속해주세요."

"ㅇ, 응?"

"어렸을 적에 미카 씨는 약속을 할 때 꼭 새끼손가락을 내밀곤 했었답니다."

"어렸을 적의 미카가 새삼 궁금해지네."

"그럼, 약속.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끄러미 나기사의 왼손을 바라본다. 이어서 나기사의 눈을 바라본다. 밤이 늦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지금의 나기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티 없이 맑은 눈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눈을 보며 어쩌면 선생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그 눈의 맑음을 가린 것이 아닌가를 생각한다.

"..... 도장도 찍어야 해?"

나기사의 진심에 이번만은 용기를 내기로 한다.

".... 후훗. 네. 찍어주세요."

부디 그 약속이 실행되지 않길 바라며.

~~~

20XX년 XX월 XX+80일 20:25

선생 치료 시작 80일째, 키보토스 연방 권역 의료 센터 8층

선생과 나기사가 한참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던 무렵의 병실

어느덧 해가 지고 난 뒤의 하늘을 달이 은은히 비춘다.

'................'

'................'

'................'

'................'

유난히 밝은 달빛이 무색하게도, 지금 이곳에서 달빛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끙.....으윽.."

정정. 이제 한 명이 생기려 한다.

"여긴.....으음......안경이...."

잠든 상태에서 방해가 될까 선생이 벗겨 옆 탁자에 둔 안경을 손을 더듬어가며 찾는다.

"......찾았다."

달빛이 훑고 지나가 잠시 은은한 광택이 도는 안경테를 귀에 얹고, 아야네가 정신을 차린다.

".... 병원?"

어둠이 내려앉아 디테일까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누워있던 병상과, 옆에 누워있는 다른 대책위원회의 아이들, 그리고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가습기. 모든 것이 이 곳을 병실이라고 어필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거죠."

"일어났구나 아야네 쨩."

그런 아야네의 뒷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건다.

어딘가 여유로움이 사라진 목소리였지만, 같이 지낸 시간은 목소리의 주인을 바로 떠올릴 수 있게 했다.

"호시노 선배....?"

"...... 몸은 괜찮아?"

"네.... 그보다 지금 무슨 일이.... 저희는 분명 사막에서..."

"응.... 맞아. 아저씨도 중간의 기억은 없어. 다만...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온 사람이 있을텐데 그 사람이 안 보이네."

"일단... 병원은 맞죠 이곳...?"

"아마 그런 것 같네. 몸은 좀 괜찮아?"

".....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 빼고는요."

"아저씨도 일어나고 나서는 한동안 그랬어. 곧 괜찮아지겠지."

".....선생님은요?"

가장 중요한 질문. 아야네의 질문에 호시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찾아봐야지 이제."

~~~

원래 어제 올라왔어야 했던 회차인데, '그 사건'이 터져버리고 서버도 같이 터져버리니 업로드가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일단은 지연 사유가 국가비상사태이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나기사의 나락간 이미지를 어떻게 돌려볼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유독 선생이 나기사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유는 무엇일지 같은 생각도 많이 했고요.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나기사는 스토리 내내 선생의 도움을 요청했다기보단 미리 판을 짜놓고 선생에게 협조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나기사는 선생과 어느 정도 대등한 상태에서 자신의 비전 혹은 계획을 진행시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일종의 주체성을 가지고 행동했다는 이야기이죠. 물론 그 계획이 보충수업부였다는 점이 선생과의 대립각을 세우는 동인이 되었지만, 만일 선생과 뜻이 맞았다면 둘은 꽤 잘 맞는 협력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다음 화는.... 일단 이번 주 일정이 좀 타이트합니다. 슬슬 종강 시즌이 다가오니 시험감독도 들어가야 하고 기말보고서도 하나 써야 하고, 무엇보다 내년에 있을 학술교류회 때 제출할 원고는 지금부터 당장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현생의 피폐농도가 확 짙어지는 이벤트가 발생해서 한 글자도 못 나가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타이트하게 조여질 예정입니다. 아마 일요일 저녁에 업로드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세상은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흘러가고, 일상 역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잠깐의 소란을 딛고 되찾은 여러분의 일상이 하루하루 소중하고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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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4.12.04창작

소설)약피폐)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69)

#선생#소설#피폐
좋아요 0댓글 33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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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DC
슈퍼물라매작가
게시물 77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4.12.04 22:13
조회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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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3

나
ㅇDC
ㅇㅇ124.12.04

삭제된 댓글이에요

슈DC
슈퍼물라매작성자24.12.04
디시콘
ㅇDC
ㅇㅇ24.12.04

나기나기나기나기나기나기나기나기

슈DC
슈퍼물라매작성자24.12.04
ㅇDC
ㅇㅇ224.12.04

ㅅㄱㅊㅎㄱㅅ

ㅇDC
ㅇㅇ224.12.04
디시콘
슈DC
슈퍼물라매작성자24.12.04

정말고 마워요 선샌니

ㅇDC
ㅇㅇ324.12.04
ㅇDC
ㅇㅇ324.12.04

너무 맛있어요 선샌니

슈DC
슈퍼물라매작성자24.12.04

충분히 맛있게 만들었으니 이제 슬슬 떨굴 때가...

ㅇDC
ㅇㅇ324.12.04

준비단디해야겠네요...

ㅇDC
ㅇㅇ424.12.04

"저희의 진심이 닿을 수 있는 첨단" 제가 알고있는 어휘선에서는 의미파악이 안되서그러는데 혹시 어떤 의미인지 여쭤보는걸 허락받는걸 여쭤볼 수 있을까요?

ㅇDC
ㅇㅇ424.12.04

'뾰족한 끝부분/첨단산업 에서의 첨단' 이라는 의미로밖에 아는바가 없어서 파악이 안되가지구

슈DC
슈퍼물라매작성자24.12.04

첨단이라는 말이 대개 과학기술의 용례로 많이 쓰이는데, 다른 용례로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뾰족한 끝을 의미합니다. (EX: 국가방위의 첨단 등) 즉 티파티가 보여줄 수 있는 진심의 가장 끝부분, 다시 말해 그들의 가장 솔직한 진심 정도라고 이해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ㅇDC
ㅇㅇ424.12.04

오옹 그런 표현이었군욤 가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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