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메인스토리 #스바루
원본 by レ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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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것은 푸른 하늘이라든가, 따뜻한 이불이라든가.
떨어진 것은 먹어서는 안 된다든가, 다치면 반창고를 붙인다든가, 그런 말인 것 같다.
“..........”
잿빛 세계에 홀로 누워 있다.
머리를 스치는 것은 일하는 중에 들었던 오열과 성공 보수의 자릿수.
저만큼 있으면 몇 주는 살 수 있다.
지원이나 아르바이트도 한도가 있으니,
잡아서 대령하는 것만으로 보수를 받은 오늘의 의뢰는 괜찮은 편이다.
“음........”
졸음이 천천히 몸을 식힌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공기가 한층 침낭의 따뜻함을 강조하고, 숨을 내쉬면 하얗게 되지 않는 공기가 그저 흩어졌다.
침낭이라는 것은 매우 편리하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어디든 잘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바깥세상에서는 검소한 편이라고 한다.
검소. 그 단어의 의미를 나는 아직 파악할 수 없다.
“.........”
잠이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왠지 모르게 검색을 해 본다.
어두웠던 방이 푸른빛을 받으며 되살아나고, 내가 밝기를 낮추는 것에 맞춰 숨을 토해냈다.
‘검소’라고 글자를 입력하고, 사이에 공백을 넣어 ‘의미’.
이렇게 하면 쉽게 조사할 수 있다고 한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었다.
‘……차림새 따위에 꾸밈이 없고, 소박함.’
아니나 다를까 납득은 가지 않는다.
“.......음ー.”
일어나 확인한다.
색은 확실히 단순하다.
화려한 무늬도 없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흠집도 긁힌 자국도 있어 군데군데 보풀이 일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검소하다고 들으면, 아무래도 수긍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따뜻하다.
몸을 전부 감싸준다.
떨림을 숨길 수 있다.
밤을 넘길 수 있다.
그런 것이 ‘꾸밈이 없고 소박한 것’이라니.
바깥세상 사람들은 훨씬 더 푹신한 이불에 싸여 잠든다고 한다.
담요가 두 장 있는 집도 있고, 난방이 밤새도록 켜져 있는 집도 있다고 한다.
전부 듣기만 했을 뿐, 아직 본 적은 없다.
“.......”
표면을 살며시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장갑을 끼지 않은 탓인지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전해져 아주 조금 밤눈이 밝아졌다.
태그를 보니 낯선 영문자들.
중공 폴리에스터, 데니어, 필 파워.
간신히 의미를 알 수 있었던 것은 더블 지퍼 정도뿐.
바깥세상에서는 이 영문자들도 당연한 것일까.
─물어볼까요.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도 장소도 상관없다―고 본인도 말했으니 이것도 공부라는 것이다, 분명.
침낭 안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단말기를 꺼낸다.
손가락이 조금 떨리고 있는 것은 추워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신호음이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째 신호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연결되었다.
“여보세요. 웬일이야, 이런 시간에.”
졸린 듯하지만 다정한 목소리. 조금 갈라져 있어 깊은 밤에 딱 어울리는 낮은 톤.
“안녕하세요, 선생님....... 깨어 계셨어요?”
수면 중의 기습으로 곤란하게 하려 했는데, 먼저 그쪽이 궁금해졌다.
과로가 지나쳐 미네 단장이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새벽 세 시까지 깨어 있을 줄이야.
“급한 일이 좀 있어서. 곧 자려고는 생각했지만.”
말끝에 희미한 피로가 섞여 있다.
나무라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불안해진다.
지금까지 어른에게 걱정을 품은 적은 없었지만, 이 사람에게만은 다른 것 같다.
“선생님이 쓰러지면 곤란할 사람, 잔뜩 있어요. 어서 주무세요.”
많이 들었을 잔소리. 선생님은 놀란 듯 숨을 들이마신 후, 부드럽게 되받아쳤다.
“스바루는 그 잔뜩 안에 들어주는 거야? 그렇다면 기쁘겠는데.”
귀에 들려온 말에 몸에 열이 퍼진다.
뭉클 진지를 넓혀가는 그것은 마치 유동체 같아서, 전신이 화끈거린다는 표현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인식하게 한다.
입만 벌리면 작업 멘트. 나는 이 사람에게 휘둘리기만 한다.
“아, 아뇨, 그런 말....... 안 했어요. 문병 정도는 가 주겠지만....... 그, 그게 아니라....!”
반사적으로 부정했지만, 나온 목소리는 떨리고 있어 더욱 오해를 산다.
전화 너머로 들리는 웃음소리에 선생님의 미소를 상기해 버려 더욱 얼굴이 달아오른다.
“후후, 미안해. 너무 놀렸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잠이 안 와?”
그 목소리에 본래의 목적을 떠올린다.
흐트러뜨린 본인에게 궤도 수정을 당하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감각이다.
“저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응, 뭔데.”
그 음색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일까.
나는 이제 와서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되돌릴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묻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것 같기도 해서 일단 묻기로 했다.
“......침낭은, 검소한 건가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
순간, 공백이 지나간다.
문자 그대로 한순간이었을 터인데.
출처를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선생님의 꿰뚫어 보는 듯한 대답은 독처럼 나의 혈액을 돌며 가득 채웠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사람에, 따라.
“........그렇, 겠죠.”
그 목소리는 그렇게 말해주기를 바랐다는 것의 증명이었다.
시야가 일그러지고 눈물이 넘칠 것 같아서, 분명 선생님은 목소리만으로 눈치챌 테니 씹어 삼키듯이 참았다.
“.....선생님께는, 정말로 감사하고 있어요.”
“응.”
입이 저절로 마음을 엮어내려 해서 나 자신도 놀란다.
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다.
오히려 그렇게 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아리우스에서 통화료는 만만치 않은데도.
“추위를 견디는 것. 침묵하는 것. 원하지 않는 것.
고통을 숨기고, 약함을 부끄러워하는 것.......
그것이 아리우스의 당연함이었어요.”
당연함. 아리우스의 당연함.
선생님은 묵묵히 듣고 있다.
밤의 공기는 누군가가 무언가를 입 밖에 내기까지의 시간을 늘리는 데 능숙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서.
잠잘 때는 모두 침낭을 써요.
낮에는 밝은 곳에서 담소하거나, 공부하거나.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거나….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당연함. 지금의 아리우스의 당연함.
아무도 고함치지 않고, 아무도 빼앗지 않는다.
태양 아래에서 웃어도 책망받지 않는다.
정말로 꿈같은 세계.
────그러하기에.
“......선생님. 하나 더, 들려주세요.”
“......응.”
지금부터 할 질문에 분명 답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해석으로 결정될 테니까.
내가 내놓은 답으로밖에 메울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선생님의 답을 듣고 싶다.
“상냥함과 따뜻함이 세계의 당연함이라면...
허무함과 부조리가 올바른 세계가 아니라면.......”
선생님은 분명 답을 줄 것이다.
일그러지게 뒤틀려버린 그것에 내가 바라는 것을 덧대어 줄 것이다.
선생님, 가르쳐 주세요. 선생님이시니까요.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
이것이 세계의 진실이었을 때의 저는, 무엇이었던 건가요.....?”
전화 너머로 선생님의 호흡이 한 번, 깊게 떨어진다.
놀라움도 곤혹스러움도 아니다.
무언가를 결의하듯이 숨을 고른 그런 소리.
“스바루.”
밤의 공기가 흔들린 듯했다.
도망칠 길을 막은 것도 아닌데, 이름이 불린 것만으로 숨 쉬는 것조차 주저되었다.
그리고 살며시. 선생님은 나를 쓰다듬듯이─
“그때의 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어쩔 수 없이 다정한 목소리. 역시 내가 원했던 말이었다.
“추위를 견디는 것, 고통을 숨기는 것, 원하지 않는 것― 그것이 당연한 세상에서 스바루는 제대로, 살아남았어.
그건 잘못된 게 아니야.”
선생님은 말을 고르듯이 하나하나 내놓는다.
그 달콤한 말이 한편으로 속이 쓰라려 침낭 안에서 무릎을 끌어당긴다.
욱신거리고, 불안하다.
도망치듯이 눈을 감아도 선생님의 목소리는 떠나지 않는다.
겉치레. 위선. 그렇다, 이해하고 있는데도.
“좋은 경험이었다고는 하지 않겠어.
그건 절대로 긍정되어서는 안 될 고통이야.
하지만 말이야, 스바루가 느낀 아픔도 고통도 무가치하다고 잘라내 버릴 필요는 없는 거란다.”
너무 다정해서, 너무 무거워서.
목 안이 막힌 채로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맞다.
누군가의 검소함은, 누군가의 사치이고.
누군가의 당연함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적이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 따위, 용납되지 않는다― 용서받고 싶지도 않다.
“.....나는, 세상의 진실을 잃었어요.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것에 매달려 있는 동안은 편했어요.”
사람은 결국 죽는다.
언젠가 잃는다.
언젠가 이별이 온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소중한 것을 만들지 않으면 된다.
소중한 것이 없다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때는 그런 허무함만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편한 변명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침낭에 가라앉은 몸이 열을 띠고 있다.
추위를 견딜 필요 따위 없다.
고통에 떨며 움츠러들 필요도 없다.
여기에 있어도 괜찮다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듣는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사람은 산다고 합니다.
그것은 뒤집어 말하면, 살아갈 이유가 없는 상태로 산다는 것.......
그거, 이상하죠.”
말하는 순간, 가슴이 저렸다.
말이 죄처럼, 저주처럼 이어져 떨어진다.
전파를 향해 제멋대로 뻗은 손을 이제 맞잡아 주기를 간청할 뿐이다.
미래 같은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은, 저 아이들이 있어요.
아리우스의 복구도 아직 시간이 많이 걸려요.
하지만, 그 이후는요?
아리우스를 졸업하고, 모두 뿔뿔이 흩어져서 세상에 내던져진다면요?”
어둠이 발밑에서 천천히 기어오른다. 촉촉이, 말없이,
기척만이 공기를 침범해 간다.
넓은 공간에 버려져 있는 감각이 들어서, 나는 침낭의 지퍼를 끝까지 닫았다.
덥다거나 좁다거나 그런 느낌을 맛보지 않으면, 현실에 있다는 실감이 들지 않았다.
“다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공부하고, 일하고, 사랑하고...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연결고리가 있을수록 잃을 미래가 두려워진다.
따뜻함을 알수록 차가움의 기억이 송곳니를 세운다.
알고 있었는데. 알고 있었을 텐데.
“저 아이들이 없어진다면..... 혼자 걸을 자신이 없어요.......”
스스로 말하고, 한심했다.
어미 새 흉내를 내고 있으면서.
사실은 누구보다 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둥지를 떠나고 싶지 않다니.
“스바루.”
가슴속이 다시 조여왔다.
조용히, 그런데도 확실히 끌어안는 듯한 목소리로 선생님은 말했다.
“그건 의존도, 어리광도 아니야.”
심장이 철렁하고 뛴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아시는 건가요.
“두렵다고 생각하는 건, 그만큼 스바루가 모두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야.
지켜주려고 하고, 등을 밀어주고......
그러고 나서 혼자 남겨지는 게 두렵다고 생각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누구나 생각하는 평범한 일인 거란다.”
마치, 사실 확인이라도 하듯이.
똑바로, 흔들림 없이,
그것만이 유일한 절대적 정답인 것처럼 선생님은 나에게 새겨준다.
안 돼, 안 돼. 응석 부리고 만다. 도망쳐 숨어버리고 만다. 이대로는 나는─
“게다가 말이야.”
“스바루가 무서워서 발이 굳는다면..... 선생님이 있으니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도 돼.”
“기댈 곳으로 삼아도 돼. 의지해도 돼.”
“어른은, 아이가 날아오를 때까지의 횃대인 거니까.
스바루가 나를 이유로 살아가는 것을, 부끄럽다고 여길 필요 없어.”
“........하아.”
그 목소리가 새어 나온 순간, 몸의 중심에 들어 있던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
질린 듯한, 패배를 인정해 버린 것 같은.
줄곧 찾고 있던 것이 주머니에서 나왔는데, 그것이 보잘것없는 종잇조각이었을 때와 같은―이상한 감각.
치료가 아니다.
이것은, 마취다.
선생님이 나에게 계속 걸어주는, 불치병이다.
“정말....... 사람이 너무 좋으시네요.”
일부러 가시를 섞은 목소리.
달콤함에 짓눌리지 않도록, 자신의 중심을 잡기 위한 소박한 저항.
전화 너머로, 킥 웃는 기척이 난다.
“선생님이니까. 자아, 무섭지 않아―.”
“.......뭔데요, 그거. 멋대로 남의 마음을 가볍게 해 놓고, 제대로 책임질 수 있어요?”
아주 조금 진심인 비꼼과, 아주 조금 진심인 투정의 경계선을 걷는 몽.글몽.글한 말.
나는 땀을 흘리며 지퍼를 내렸다.
따뜻한 공기와 교체된 공기가 피부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조금 싸늘했기에 다시 살짝 올렸다.
과연. 더블 지퍼는 이렇게 쓰는 건가.
선생님은 한 박자 쉬고, 장난스럽게 웃는다.
“책임은 질게. 물론, 계속해서 말이야.”
알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 더욱 질이 나쁘다.
“듣기로는 잡은 고기에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는데, 금붕어 건지기 같은 감각이신가요?”
그것에 구원받는 나도 나지만,
도대체 몇 명이나 이 그물에 걸려 있는 것일까.
심장이 작은 붕어처럼 뛰고, 당하지도 않았는데 저리고, 뒤섞인 시선에 눈을 돌려버린다.
“그럴 리가......!? 꼬드길 생각도 없고.....!”
알고 있다. 그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더욱 질이 나쁘다.
준다는 것은 빼앗는다는 것이다.
먹이를 얻는 법을 모르는 채로 달콤한 씨앗만 받고 자라버리는 것처럼.
바깥세상의 바람을 모르는 채로 안전한 둥지의 의미만 기억해 버리는 것처럼.
선생님의 다정함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무자각하게 그렇게 해 버리는 것이 선생님이다.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부족할 뿐이다.
우리들이―제멋대로 자라 버릴 뿐이다.
“하아...... 이제 됐어요. 늦게 전화 걸어서 죄송했어요. 어서 주무세요.”
“응, 고마워. 또 언제든지 전화해.”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스윽 물러난다.
선생님 쪽에서 끊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마무리를 짓지 않으면 이대로 몇 시간이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안 된다. 폐가 된다. 게다가, 돈도.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선생님.”
“잘 자, 스바루. 푹 쉬렴.”
뚝 하고 소리 없는 단절.
부드러운 파장이 귓속에서 사라지고, 대신 그늘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가 휴우 하고 들어온다.
조용하다. 너무나 조용해서,
방금까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렀던 공간이 거짓말 같다.
단말기를 쥔 채로 작게 숨을 내쉰다.
[감사합니다.]
만약을 위해 제대로 인사를 보낸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내가 스스로 선을 다시 긋는, 그 작업을 알아주는 어른이니까.
돌아온 알림은―
“......이게 뭐예요.”
한눈에 메시지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스탬프.
이건…… 뭐지? 새? 하마? 혀를 내밀고 있다.
나이트캡을 쓰고 있으니, 잘 자라는 뜻일까.
“.........”
아니, 별로 화나지 않았다.
화나지 않았다. 화나지 않았어.
호인에, 둔하고, 사람 꼬드기는 어른이,
그렇게 깊은 이야기를 한 이후―스탬프 하나로 대화를 끝내려 한다는 것에, 화나지 않았다.
“................”
침낭 속에서 뒤척이며 자세를 바꾼다.
지퍼가 아주 작게 울렸다.
아무리 감싸도 가슴속만 욱신거려서 불안하다.
이게 뭐냐고. 하마잖아,
양 같은 것도 아니고. 왜 혀를 내밀고 있는 거야.
잘 자라는 말을 좀 더 평범하게 할 수는 없는 걸까.
저 사람은 그런 점이 정말 문제다.
마지막에만 갑자기 대충 얼버무리는 것처럼.
“...........윽. 아―.......읏.”
화나지는 않았다.
화나지는 않았지만.
가슴속이 답답하고, 지금까지의 여운을 정성껏 흐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진정되지 않는다.
선생님은 이런 짓을 한다.
게다가, 이것도 무자각이다.
계산이 아니라, 다정함인 양 이런다.
첫날부터 먹이를 안 주다니 지독한 주인이다.
“하아......... 자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자자. 잠들어 버리자.
수면은 뇌를 침묵시켜 준다.
아리우스에 있을 때도 수면만큼은 반드시 시간이 주어졌다.
의식이 떨어지면 아무리 최악인 하루도 강제적으로 마무리가 된다.
뇌의 전원을 끄고, 쓸데없는 생각을 전부 어딘가에 버리고, 일어나면 조금 나아지는― 그런 마법이다.
침낭을 가슴까지 꽉 끌어당긴다.
천의 냄새. 미세한 따뜻함. 좁지만 안심되는 갇힌 공간.
여기는 아리우스. 그리고, 아리우스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이 아니다.
체온만이 아군이었던 밤도 아니다.
침낭이 있다.
따뜻한 장소가 있다.
오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있다.
“안녕히 주무세요...........”
투덜투덜 중얼거린 자신의 목소리가 문득 느슨해지며 웃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눈꺼풀이 무거워지고, 시야가 검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며 세계가 조용히 가라앉는다.
“선생님..... 다음번에는..... 제대로........”
작은 불만을 말하려다 말고, 의식이 떨어진다.
아직 100%는 아니지만.
어차피 속을 거라면, 선생님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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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윽한 암컷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