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도스 고등학교 옥상.
모두가 잠에 든 늦은 시간에 이불 한 장씩만 걸치고 시원하게 사막의 밤바람 쐬러 나온...... 말로만 설명하자니 그냥 미친 사람 둘이 되는 유메와 선생을, 지켜보는 눈길이 있었다.
"어떤가, FOX 4."
"수상해보이는 움직임은 없어. 그냥 대화만 하는 것 같은데."
"분위기는?"
"아비도스의 학생회장이 선생 녀석을 불편해하는 분위기, 라고 할까나. 당연한 반응이지. 그리고......"
"그리고?"
"어두워서 확실히는 안 보이긴 한데, 선생 뺨 맞은 거 같은데."
"자세히."
"아까 선생이 주변 보겠답시고 핸드폰 켤 때 살짝 봤던 거라 확실친 않은데, 그래도 어렴풋 보이기에도 뺨이 좀 부어있기도 하고. 집적거리다 한 대 맞은 것 같은데? 쌤통이네."
"학교 안에 들어간 이후로 지금 처음으로 모습을 보인 거라 했나?"
"흐아암...... 맞아."
아비도스 고등학교를 계속 감시하고 있다가 사전에 지시받은 대로 유키노를 부른 오토키가 하품을 거하게 내쉬며 말했다.
"9시 전까지 선생이 보인 움직임은 없었어. 기껏해야 복도 왔다갔다 하는 정도랄까. 그런데 그 후로 시간이 한참 지난 새벽 2시에 느닷없이 옥상으로 올라와서 보고한 거였고. 그것도 아비도스 학생회장과 함께라니, 대체 무슨 속셈이람."
"방위실장은 선생이 의도적으로 아비도스와 손을 잡은 거라 했지. 무너진 권위를 회복하겠답시고 말야."
"말이 되나 그거? 아비도스에서 저지른 짓이 그 인간 제일 임팩트 큰 삽질이었는데 그걸 어떻게 만회해."
"그 말도 안 되는 작전이 지금까지는 성공적인게 놀라운 부분이지. 저 학생회장이 지금까지 선생을 살려두고 있는 걸 봐선."
"으... 음."
듣고 보니 맞는 말에 오토기는 반박하지 못했다.
오토기를 납득시킨 유키노는 그녀가 조준경을 통해 보고 있을 선생을 보듯, 학교 옥상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머리가 꽃밭인 멍청한 아비도스 학생회장이래도 선생에게 가장 호되게 당한 피해자인 그녀가 선생을 사지 멀쩡히 그냥 두고 있다는 건.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진 몰라도 정말로 선생의 수가 통했다고 봐야 했으니까.
"그런데 FOX 1."
"뭐지?"
"선생은 아비도스를 구해서 결국 뭘 하려는 걸까?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걸로 선생 이미지가 좋아진다한들 음식물 쓰레기가 일반 쓰레기 되는 정도일텐데, 그거 갖고 키보토스에서 뭘 할 수 있다고."
"......그 부분은 방위실장이 말 안 해줘서 나도 모른다. 아마 지금 시점에선 선생과 방위실장 둘만이 알고 있어야 할 계획이란 거겠지."
"높으신 분들끼리 알아서 할테니 밑에 것들은 뺑뺑이나 돌리라 이거구만, 쳇."
"정치 싸움에 관심 두지 마라, FOX 4."
그런 종류의 푸념은 가볍게 넘길 수 없던 유키노는 일부러 얼굴까지 굳히며 쏘아붙혔다.
"무기는 명령을 판단해선 안 된다. 우린 우리가 받은 임무에만 집중하면 돼."
"알지, 아는데......"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궁시렁대는 오토기를 진정시키면서도, 유키노 역시 스스로 그녀의 의문이 타당함을 은연 중 인정하고 있었다.
아비도스를 도움으로서, 선생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그들이 아는 선생이 아닌 선생의 목적은 당연히 아비도스를 시작으로 이쪽 세계의 정상화 작업을 밟는 것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유키노로선 카야가 완벽히 설명해주지 않은 부분에 대한 석연찮음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기억을 잃기 전엔 선한 성격이라 정말 개과천선이라도 해보이려는 건지......
"하, 말도 안 되지."
"응? 뭐가?"
"미안, 혼잣말이었어."
이제 와서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건가?
뱀의 혀를 놀려 자신의 뒤를 이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아끼던 후배를 재기불능의 폐인으로 만들어버린 빌어먹을 어른이.
유키노는 타오르는 분노를 조용히 억눌렀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임무를 망칠 자신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것은 SRT 특수학원의 존폐가 걸린 작전이었으니......
'......이것은.'
스스로가 생각한 SRT의 정의와 맞닿은 도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유키노는 거기서 카야와 손잡을 때부터 품어왔던 의심의 꽃이 다시금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만약 선생과 카야를 도와 부활시킨 SRT가 되려 정의를 핍박하는 이들의 노리개로 전락해버린다면.
미야코처럼 재능을 꽃피울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높으신 분들이 키우는 애완동물이 되어버린다면.
그런 것을 자신의 긍지를 둔 SRT 특수학원이라 할 수 있는가.
키보토스를 수호하는 무기로서 존재해야 할 SRT의 의의가, 권력을 잡으면 안 되는 이들의 탐욕에 휘둘리는 무기가 될 뿐이라면......
치익- 하고 순간 울리는 무전기.
유키노는 기다렸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것을 들었다.
서로가 제대로 통신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럼 보고해라, FOX 2."
[미안하지만 건질만한 건 딱히 없었어. 샬레 안이 시위대가 쳐들어와서 작살이 나버려서......]
"선생이 사용한 컴퓨터는?"
[하드는 확보했어. 이것도 이게 복구가 될까 싶을 정도로 망가졌긴 했는데.]
"우리가 샬레 안으로 진입했을 때 선생은 이미 노트북까지 들어간 개인 가방을 지참하고 있었어. 아마 중요한 내용들은 거기에 대부분 있겠지. 예상했던 대로다."
[골치 아프네. 어떡할까 FOX 1, 아까 FOX 3가 의견 냈던 대로 아비도스로 들어가서 선생 소지품 좀 뒤져보는 건?]
"우선 복구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복구하고 생각해보지. 아마 며칠 간은 선생도 아비도스에 머물 계획으로 보이니, 작전을 수립하고 행동으로 옮긴 시간은 충분히 낼 수 있을거야.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복구해보도록. 선생의 기억 잃기 전 계획이라던지, 모은 자료라던지, 하다못해 들어가본 뉴스 사이트 기록이라던지 전부 다. 남들이 모를만한 정보가 될 수 있는 건 많을수록 좋아."
[뭐, 그럼 그렇게 할게. 근데 선생은 지금 뭐 하고 있어?]
"바람 쐬러 나온 거 같은데."
[지금 밤인데? 그 사막에서? 머리 돌았어도 선생답게 미친 건 여전하긴 한가보구나.]
니코답지 않은 비웃음이 흘러나오자 유키노는 그 이유를 알면서도 이질감을 느꼈다.
[아무튼 복귀할게. 그리고 FOX 1, 이거 정말......]
"방위실장에 보고할 내용엔 포함시키지 말도록 해. 그냥 폭동에 휘말려 가루가 됐다고 하면 되니까."
[괜찮은 거 맞지? 그럴 일은 없지만 혹여나 문제가 생기면.]
"아직은."
선생이 있는 방향을 지그시 노려보며, 유키노는 말을 이었다.
"......누구도 쉽게 신뢰해선 안 돼. 어느 방향으로 가든 치즈가 올려진 쥐덫이 있을테니,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때야."
그렇게 무전을 끊고도, 유키노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는 확신을 굳혔다.
아직은 그들 모두,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니.
언젠가는 보다 확실한 결단을 내려야 하리라.
스스로의 정의를 재단할 자유마저 빼앗기고 여우의 목에 완전히 목줄이 채워지기 전에.
* * *
유메와 마주보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선생은 처음 키보토스에 왔을 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를 먼저 곱씹어봤다.
갓 부임한 자신이 샬레의 업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신없이 바쁘던 와중에도 성심성의껏 도와줬던 린과 총학생회 학생들.
처음 봐서 수상할지도 모를 어른이 갑자기 지시를 내리는데도 성실히 따라줬던 유우카, 하스미, 스즈미, 치나츠...... 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만난 학생들.
자신의 부임을 확인하자마자 주저 없이 자신들의 학교 일에 대해 도움을 청한 아야네와 그를 통해 만난 대책위원회.
몇몇 예외도 있었다만은, 그들은 대체적으로 선생인 자신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키보토스에 사는 이들과는 확연히 이질적인, 자신처럼 낯설고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사리 세계에 녹아들 수 있던 건지, 선생은 문득 신경 쓰였었다.
대놓고 누군가에게 그런 생각을 나눈 적은 없었지만.
만약 선생이 학생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면, 누군가는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며 마음의 짐을 덜어낸 경험을 떠올리고 작게 웃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작게는 고민이 풀렸던 일을, 크게는 답답한 무언가를 깨뜨리고 삶의 빛을 찾아주기까지의 여정에 기꺼이 참여해준 그를 떠올리며 심장이 재차 두근거렸을 것이다.
누군가는 선생의 얼굴을 한 1초 정도 뚫어져라 보다 제 얼굴이 못 버티고 벌개져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그것은 매우 확실하고 보장된 성능일테니.
다만, 학생들의 삶을 위해 전심으로 봉사했기에 이룰 수 있던 끈끈한 유대감은 선생이 지금 유메와 마주하기 위해 구해야 할 답은 아니었으니......
"선생."
"응?"
아루가 부르는 말에 선생은 며칠 전의 기억에서 깨어나 정신을 차렸다.
"피곤해보이네."
"수습할 게 한두가지가 아니더라고. 책임지고 할 일들이니까 뭐."
"당신의 업보라 할 것들도 아니잖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루는 쏘아붙였다.
"어차피 당신이 한 짓도 아니라면서."
"내가 버린 거 아니라고 쓰레기 못 본 척 지나치는 성격은 아니어서."
"대단한 성인군자 납셨네."
빈정거리면서도 처음 만났을 때 보였던 적대감은 없었다.
선생을 신뢰하게 돼서...... 라기보단, 회담 내용과 오늘 받은 최종결과를 아루에게 전해주기 전에 선생이 이미 자신의 정체를 밝혀서가 맞을 것이다.
"그냥 처음부터 그 쓰레기 시체 사진이나 보여줬으면 더 잘 풀렸을 거 아냐?"
"그 뒤에 이런저런 일 있다보니 말할 타이밍 놓친 것도 있었고, 내가 이 세계 선생이 아니란 건 최대한 숨기자는 주의여서. 대뜸 정체를 밝힌다한들 이전의 선생을 기억하는 학생들이 내 말을 바로 믿어줄 것 같지도 않고, 그럴 시간도 안 줄 것 같고."
"......참 뭐라 말하고 싶은데, 반박하기도 힘드네."
당장 다짜고짜 죽이려고 총을 쏜 자신의 행동부터 떠올라버려서 입맛이 썼다.
선생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남은 아루 입장에선 이 감정을 죄책감이라고 하긴 뭐했지만, 어쨌든 무고한 사람을 쏜 셈이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겨우 설득 과정이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정체를 숨기려는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당신 정말로 카이저들 뒤통수 칠 생각이구나."
"현 시점에서 '드러나 있는 위험' 중에선 가장 위협적이니까."
"드러나 있지 않은 위험은 얼마나 크길래."
"그 건은 트리니티와 게헨나 간의 문제가 얽혀 있어서...... 지금 내 입장에서 개입하긴 힘들어."
트리니티는 나기사에게 애초부터 개입 불가 마크를 받아버려 들어갈 틈이 없었고.
히나에게 암약을 허락받긴 했으나, 이전 선생의 악명을 끌고 가야 할 선생은 정작 게헨나엔 발도 못 붙히는 신세였으니 외부에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었다.
하다못해 아리우스, 사오리 쪽에 직접 접촉하는 루트를 뚫으려해도 최소한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넓혀야 했으니.
"무엇보다 카이저 전진기지가 될 판인 아비도스를 구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하니까. 우선은 이것부터 집중하고 보자고."
"알겠어. 마침 '미끼'도 오는 참이니까."
"지금 우리 뒤 언덕 올라오는 사람?"
"그 사람 말고 누가 있어 여기?"
그렇게 쏘아붙이며 자신만만하게 뒤를 돌아본 아루는 보았다.
당당하게 걸어오는 카이저 PMC의 제너럴을.
그리고 양 옆과 뒤에서 그를 호위하며 같이 올라오는 세 명의 경호원을.
자신을 빤히 보는 선생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무시하며, 아루는 만면에 과장된 비지니스적 웃음을 가득 띄우고 고개를 숙였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제너럴."
"수고가 많아, 리쿠하치마 양. 그리고...... 선생."
안광에 스치는 이채.
표정을 바꾼 선생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혹시 저희 구면인가요? 그렇다면 죄송합니다만, 저는 정말 처음 뵙는 입장 같아서요."
"걱정 말게. 이렇게 인사를 나누는 건 처음이니까."
선생이 자신들의 손아귀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전 세계에서 보여주지 않은, 딱히 보고 싶지도 않던 친근감 있는 태도에 선생은 진심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피차 바쁘니 본론으로 들어가지. 우리가 찾고 있는 보물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그렇습니다. 기억을 잃기 전엔 흔적도 못 찾은 게 이 상태가 되고나서 결실이 맺어지다니, 세상 참 별일이죠."
선생은 뭘 숨기랴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
"먼저 보물의 정체부터 알려드리죠. 게헨나의 뇌제를 알고 계십니까?"
"......설마."
"네, 그 뇌제가 만든 무기가 여러분이 찾는 보물의 정체입니다. 그녀는 그것을 아비도스의 모래폭풍 속에 묻어두고 숨긴 것으로 보입니다."
제너럴은 선생을 조용히, 압박감을 주려는듯 빤히 응시했다.
증거를 묻는 듯한 그 분명한 눈길에 선생은 아루에게 시선을 옮겼다.
미리 짜맞춘대로, 신호를 받은 아루가 말을 시작했다.
"제 이전 소속이 흥신소 68인건 알고 계셨겠죠, 제너럴."
"그렇다고 알고는 있다만."
"제가 비록 야망을 좇아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이전에 게헨나 내부에 갖고 있던 정보망은 계속 유지하고 있었답니다. 여기 선생한테 놀아나서 이상이고 야망이고 풍비박산나긴 했지만, 다행히 흥신소 시절 연결되었던 끈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고 어떻게든 붙잡고 있었죠."
"설마, 선도부에 들어간 오니카타 카요코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그 친구와도 물론 여전히 연락을 취하곤 있지만, 카요코가 제 뒷배라기엔 억지로 끼워맞춰도 안 맞죠. 흥신소에서 튕겨나간 카요코를 곧바로 선도부의 요직에 놓을 수 있는...... 그 정도의 인물, 이라고 할까요? 다른 누구도 아닌 뇌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정도로 말이죠."
"하, 재밌군. 그 정도의 인물과 끈이 닿아 있는 사람이 겨우 민간 군사 산업체 용병 역할이나 하고 있다?"
"자존심 문제죠."
아루는 자조하듯 픽 웃었다.
이 부분은 속임수가 일절 없는 진심이나 다름 없었다.
"저는 안정적일 수 있을 생활을 때려치고 무법자로서 살기 위해 게헨나를 뛰쳐나온 몸. 하지만 보다시피 처참히 실패해서,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되는 처지죠. 그런 와중에도 꼬리 만 실패자가 되어 나왔던 곳에 기어들어가긴 싫더군요. 차라리 제 힘으로 다시 일어나서 제 과오를 없애고 스스로 증명하는 길을 택하고 말죠."
"이상주의자시군, 리쿠하치마."
"그 이상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답니다. 제너럴, 당신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큭큭큭."
제너럴의 낮게 깔리는 웃음.
명백한 비웃음 소리였다.
"공감은 못해주겠지만 이해는 해주지. 분명 그 나잇대 어린애들만 가질 수 있는 치기란 게 있을테니 말야. 어쨌든 요는 네가 알고 있는 높으신 분이 뇌제에 대한 정보를 줬다, 이 말인가?"
"정확히는 무기의 존재 뿐이었습니다. 리쿠하치마 양의 정보원도 존재에 대한 확증만 줄 뿐, 정확한 위치는 몰랐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 일련의 정보에 샬레의 데이터베이스가 끼면 이야기가 다르죠."
대화에 끼어든 선생은 준비해온 한 장의 서류를 제너럴에게 건넸다.
"실종된 총학생회장에 의해 구축된 샬레의 데이터베이스엔 선생인 저조차도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방대한 양의 정보망이 펼쳐져 있습니다. 일단은 키보토스의 '학생'이었던 뇌제 또한 예외는 아니더군요. 지금 받으신 자료는 리쿠하치마 양이 정리한 무기의 대략적인 정보의 요약, 그리고 뇌제의 과거 움직임을 토대로 추정한 보물의 예상 위치입니다."
"다섯 군데라. 제법 압축은 잘 해 놨군."
당연하지만 네 곳은 셰마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구역들 뿐.
그나마 한 곳은 정말로 보물이 묻힌 지역이긴 했다.
그 희귀광물이란 게 카이저를 위한 보물이 아닌 아비도스를 위한 보물이긴 했지만.
'하지만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진다면 정말로 카이저한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된다......'
선생은 약간의 긴장을 느끼며 아마도 표시해놓은 문제의 구역을 빤히 들여보고 있을 제너럴을 응시했다.
자신이 할 일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제너럴을 희귀광물 구역으로 유도하는 것이었다.
"여기 화려하게도 그려놓은 쪽이 가장 유력한 후보라는 거지."
"뇌제의 이동 분포를 분석해 봤을 때, 그곳이 가장 유력하긴 합니다. 저는 낮게 잡아도 80%의 확률을 보고 있습니다."
"흐음......"
"도박, 이라고 할 것도 없는 간단한 작전이죠. 그냥 하던대로 병력들 보내서 조사하면 됩니다. 사실 작전이라 하기도 거창한 아주 간단한 일일 뿐이죠."
선생의 말대로 최악의 경우 보물이 없다한들 카이저는 병력을 부리는데 들 약간의 추가 지출을 제외하면 손해 볼 게 없었다.
아니, 오히려 없는 쪽이 좋을 수도 있다고 제너럴은 생각했다.
이걸로 되려 샬레에 목줄을 단단히 지을 수 있다면......
"그러고보니 리쿠하치마."
"네, 제너럴."
"전에 우리 쪽 이사가 가서 행패를 부렸다고 들었다만?"
"......제 지시불이행에 대한 꾸지람을 들었을 뿐입니다."
학대 당했다는 티를 팍팍 내며 아루는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까지 숙였다.
제너럴은 그런 아루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그 친구가 그 나이 먹고도 좀생이긴 해. 질투가 너무 많아. 유능한 부하는 포용할 대상이지 제 공적 깎아먹는 적으로 봐선 안 되는 데 말이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너럴."
"자네의 리더십은 나도 인상 깊게 보고 있네. 그 동안 부하랍시고 투입된 병력들이 많아서 고생 많았을테지. 미안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 자네에게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진 않았어. 그래서 폐급 좀 던져줬는데 그걸로도 그 정도 작전 성공률이라니...... 그 친구 욕할 것도 없이 나도 참 사람 보는 눈이 없던 셈이지."
저게 그 제너럴이 맞나 싶을 정도의 부드러운 목소리.
선생은 옆에서 황당함이 표정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무진 애를 써야 했다.
"곧 인사발령이 있을 거란 소식 들었겠지. 좋은 소식 기대해도 될 거야.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말이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야지. 선생 자네도, 짧지만 즐거운 대화였네. 미안한 말이지만 기억 잃은 쪽이 인상이 더 좋아보여."
"하하, 감사합니다."
이용해먹기 쉽다는 소리를 돌려 말하는 것에도 선생은 실 없이 웃으며 제너럴의 손을 잡았다.
그 뒤에도 좀 더 대화를 이어가다 제너럴이 떠나고, 선생은 옅은 한숨을 쉬며 아루에게 말했다.
"소리까지 잘 녹음됐겠지?"
"확인해봐야지."
그렇게 말하며 두 사람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있던 곳은 아비도스 사막.
다만, 일반적인 사막이 아닌, 근처에 다 묻히지 않은 폐건물이 듬성듬성 남아 있는 구역.
말하자면, 근처에서 누군가 그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해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의 장소라는 뜻이었다.
근처라기에 하긴 좀 멀고, 그럼에도 소리까지 적당히 녹음될 수 있을 거리의 잔해 속에 숨겨둔 낡은 캠코더를 회수한 아루는 영상이 제대로 찍혔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게 다른 쪽에 둔 캠코더까지 확인할 필요는 없겠네. 흔적을 지우려면 어차피 가져와야 하겠지만."
"소리도 적당히 잘 녹음됐어. 녹음기 소리를 편집하면 위화감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됐네."
사전에 히마리에게 부탁해 받은 녹음기 겸 셔츠 단추를 확인하는 선생의 얼굴은 말과는 달리 여전히 굳어 있었다.
이제 작전을 실행해야 하는 다음 단계에서 느끼는 짧은 긴장감이었다.
"캠코더랑 같이 보낼 편지는?"
"선생이 말한대로, 대충 우연히 찍었고 이사님을 돕고 싶고 어쩌구 하면서 써놨지."
선생을 빤히 보던 아루는 픽 웃었다.
"선생."
"응?"
"정신 차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그런 표정 지으면 어떡해?"
"...그래, 그래야지."
뺨을 가볍게 두드려 환기시키다, 문득 회담 직후 유메에게 뺨을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 세계 키보토스 학생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을 어른에 대한 반감.
거기에 더해 그 어른에게 놀아난 끝에 분노를 꺼뜨리게 하는 공포를.
그럼에도, 그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던 소녀의 일면을.
"......잘 해내야지."
선생은 그저, 학생이 상처를 극복하고 일어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니.
* * *
감당하겠다고.
고통받는 학생의 몸부림을 감당하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니, 설령 부조리한 상처를 입더라도 감당해주겠다고.
"......그게, 어른."
가면을 쓴 이전의 선생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지만, 적어도 그를 통해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을 체감한 유메는 믿을만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호시노 때처럼, 허무하게 잃어버리지 않는.
"내가 되고 싶던......"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이들을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가진...... 그런 어른.
동경의 일면을, 그 누구보다 증오하는 얼굴을 가진 이로부터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엄청나고 엄청난 아이러니였기에.
"하하."
얼마 전, 선생과 이야기를 나눴던 옥상에 홀로 올라와 있던 유메는 복잡한 기분으로 지금쯤 선생과 아루가 있을 사막 저 편을 응시했다.
"기분, 이상하네."
충동적으로 손을 휘두른 뒤의 충격과 공포.
어른에 대한 공포를 깼다는 환희와 폭력을 휘둘렀다는 데서 온 자책감.
그 모든 것을, 기꺼이 포용하겠다고 말한 어른.
두근거림...... 이유를 모를,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도 모를 느낌의 두근거림.
이상했다.
전부 다 이상해보였다.
자신도, 그 어른도, 이 세계도.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워진 기분이었다.
무언가, 폐부를 찔러 뒤트는 듯한 혼돈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느낌에 유메는 혼란을 느꼈다.
"모르겠어."
고개를 숙이고 난간을 짚은 두 손에 이마를 댔다.
"모르겠다고. 호시노 쨩. 나 잘 버티고 있는 거 맞아? 나 따위가 계속 이 자리에 있는 게 맞아? 너를 잃어버리고, 아비도스에 남아준 모두를 절망에 빠뜨리는 결정을 해버리고, 똑같은 짓을 하는 게 맞는 거야? 똑같은 상판대기를 한 선생을 믿어도 되는 거냐고...!"
몇 번의 숨을 토해내자 미약한 어지럼증이 느껴졌다.
그대로 주저 앉아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때.
하지만 그럴 때 주저 앉아버리면, 정말로 다시 일어나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버티고 서 있어 왔다 자신이 여기서 지금 쓰러져버리면 안 됐기에.
그런데, 그건 정답이 맞았을까.
'쿠치나시 양.'
선생이 했던 말이 거기서 떠오른 건 왜였을까.
'네가 무엇을 했든...... 아비도스를 위해 해 왔던 너의 고민들은, 네가 했던 모든 일들은 실패한 게 아니야.'
"내 꼴이 실패한 꼬라지가 아니면, 대체 뭐가 실패라는 건데......"
'달라.'
너는 한 번, 틀린 선택을 한 것 뿐이야.
그리고 그것만으론 아직 실패했다는 의미가 아니야.
착각하면 안 돼.
'아직 오답을 정답으로 바꿀 기회는 남아 있어.'
그것만은 확실했다.
감은 눈을 뜬 유메는 남은 번뇌를 전부 쏟아내려는 듯 긴 한숨을 토했다.
선생은 틀렸다.
자신은, 실패자가 맞다.
가장 아끼던 후배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럼에도 아비도스를 선택해준 후배들을 지키기 위해, 학생회장인 자신은 주저앉아 있어선 안 됐다.
멍청이에, 허수아비에, 리더로서의 능력은 자신이 생각해도 일절 없는 무능력한 자신이지만.
그래서 실패했지만, 아직 후배들은 버텨주고 있다.
자신의 실패가 그들의 실패로 이어져야 할 이유는 없었다.
실패자인 자신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바라건대 이젠 믿을 뿐이다.
다른 세계에서 온 어른다운 어른을.
그럼에도.
또 다시,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그것에서 오는 어둠을, 완전히 떨쳐버릴 순 없는 일이었다.
* * * * *
유키노가 그렇게 애정캐는 아닌데, 개인적으로 스토리 내에서 활용도가 너무 아쉽다고 느껴진 학생들 중 한 명이라 은근히 눈길이 갔음.
눈으로 보이는 활약도 외에도 와카모 잡았도르로 빛나는 과거와 카야 하수인이 되어버린 현시점 사이 간격의 설명이 부족하니 공감이 잘 안 되는 캐릭터라,
언제 실장될진 모르겠지만 나중에 나올 퐉스소대 스토리에서 신념이 변하는 과정 잘 풀어줬으면 하는 심정.
유메와의 대담은 쓰다보니 너무 늘어지는 느낌이라 그냥 진도부터 빼는 느낌으로 축약시켰음.
당연히 유메가 어른에 대해 가진 복합적인 감정 서술이라든지 이것저것 넣어서 저것보단 길긴 했는데, 써먹을 기회는 나중으로 미루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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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만큼은 제너럴이 등신 호구마냥 안 털렸으면 좋겠음 워낙 본편에서 병신 같이 두세번 털린거 보면...


유메와 선생이 나누었던 대화 그걸 나에게도 보여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