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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제가 고깝게 보인다면, 그건 백 번 지당한 말씀일 겁니다. 뻔뻔하고, 이기적이고, 역겹다 여겨도 할 말은 없겠죠. 하지만 지금 이 이야기는 부디 들어주세요. 지금 베아트리체를 막지 못한다면 키보토스에 있는 모든 이들이 위험해질 겁니다. 오늘 일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말 겁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어느새 반말은 전혀 내뱉지도 않고 있었다. 자존심같은 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 모든 걸 다 내던지는 한이 있더라도 소녀는 선생을 설득해야 했다.
"베아트리체는 이제 모두에게 걸려있는 저주를 원래대로 되돌리려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생님을 죽임으로써 이루려고 할 것입니다."
"....? 선생님을 죽여서 저주를 원래대로 돌린다니, 무슨 소리야?"
새로운 사실에 아츠코가 의문을 가지고 묻자, 소녀는 바로 그 해답을 말해주었다.
"저주의 본질인 '발광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던 건, 베아트리체가 억지로 저주의 대상을 선생님으로 삼아 증오를 집중시켰기 때문이었어. 그러니까, 선생님은 모두의 증오를 떠안은 유리상자와도 같은 거야. 만약 그게 깨져버린다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설마."
"선생님이 죽는다고 해서 저주는 멈추는 게 아니야, 그저 증오의 대상이 자신 이외에 모든 사람들로 바뀔 뿐. 그러면 키보토스는 살육이 난무하는 지옥으로 변해버릴 거야. 그리고 동시에 키보토스는 멸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냐. 에덴조약 때 우리가 벌였던 짓은 그저 애들 소꿉장난에 지나지 않을 걸."
".......!"
선생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다. 또다시 밝혀진 새로운 사실은, 모두에게 한 번 더 거대한 충격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소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우리한테 선생님을 데려오라 한 것도 그런 이유야. 선생님을 죽여서 키보토스의 멸망을 이룩하는 게, 진정으로 복수를 성공시키는 일이라 여긴다면, 그건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하고 싶었겠지..."
"그 괴물들이 우리를 노렸던 것도..."
"같은 이치지, 너희들도 똑같이 죽이고 싶어해."
"........"
베아트리체는 복수를 꿈꿨고, 그것은 결코 허황된 소망이 아니었다. 만약 소녀들의 변심이 없었다면 그녀의 복수는 최상의 형태로 이루어졌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축복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 당신들은 이대로 돌아가라 할 리는 없겠죠.."
히요리의 말대로다. 분명 소녀들은 선생에게 도와달라 했다. 그렇다면 분명 선생에게 원하는 것이 있을테고, 그것이 결코 '도망쳐달라'라는 부탁은 아닐 것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다시 한 번 쾅 소리가 나도록 머리를 박았다.
"...그게, 미친 소리같지만 들어주세요. 선생님, 지금 한 번만 잡힌 척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건 명백히 미친소리가 맞았다.
"야, 잡힌 척이라는 게 무슨 의미야. 선생님을 베아트리체한테 보내겠다는 거야?"
"...그렇지."
그리고 그 말은, 미사키 입장에선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누가 들어도 어처구니가 없을 것이었다.
"네 입으로 선생님 죽으면 다 끝이라면서."
"그랬지."
"베아트리체 녀석은 선생님을 죽이려 한다며."
"..맞아."
"근데 선생님을 베아트리체한테 데리고 가겠다고? 네 입으로 말하고 있는 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거야?"
"알아, 아주 잘 안다고."
친구를 구하기 위해선 베아트리체에게 선생을 데려가야 한다. 그리고 그건 스스로 사형대로 걸어 들어가달라는 것이기에, 소녀는 당연히 선생은 이 부탁을 들어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생판 모르는 자신의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아달라는 부탁을 누가 들어주겠는가. 애초에 선생 혼자서만 끌고 들어가려 한 것도, 친구 구출 작전에 강제로 끼어들게 만들기 위해서였지 않은가. 사오리에게 영혼을 흘려넣은 것도, 몸을 강탈해서 강제로라도 작전에 참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애초에 소녀는 이들의 협력가능성을 0%로 보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이유가 있어."
그러나 이미 하나의 가능성을 제 손으로 버리지 않았는가. 이렇게 된 이상, 모든 걸 사실대로, 또 고백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사실, 베아트리체는 우리가 선생님이나 너희 스쿼드를 잡아올 거라곤 기대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어. 오늘 축제에 뿌려진 녀석들도 쓸모가 없다고 판단한 녀석들을 '폐기'하기 위함이었고.. 그러니까 애초에 선생님을 자신의 손으로 처형한다는 건, 그 녀석도 가능성을 높게 잡지 않은 일이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 녀석이 설마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언제 죽을 지도 잡혀올 지도 모르는 선생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겠어? 이미 베아트리체는 그 가능성을 집어치웠어."
"?"
"이미 그 녀석은 저주를 원래대로 돌릴 다른 방법을 가졌고, 이제 그걸 사용하려 하고 있어. '의식'이 끝나는 순간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을 거야."
".....의식은 또 뭔데. 얘기할 때마다 뭐가 자꾸 새로운 게 튀어나와?"
"새로운 건 아닐 거야. 분명 색채라고 했으니까..."
"색채?"
지금, 결코 넘겨짚을 수 없는 키워드가 선생의 귓가에 들려왔다. 색채는 또 무슨 소리일까.
"그게 무슨 소리야?"
"솔직히 말하면 모든 걸 다 알진 않습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가 내뱉은 말이니 확실하긴 할 거에요. 다 죽어가던 몸을 색채를 이용해 복구하고, 또 우리들을 이렇게 만들어낸 거나, 지금의 저주도.. 색채를 이용했다고.."
"........"
"색채로부터 떨어져 나간 조각이라던가 편린이라던가..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여기에 대해선 정확히 알진 못합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가 그걸 '의식'을 통해 완전히 흡수하고자 하고... 최초로 저주를 걸었을 때와 똑같은 일을 벌이려 한다는 것이..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느닷없이 등장한 색채와 의식. 배경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이 없으니 이해하기에는 힘들다. 직접 보지 않으면 이게 다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를 것이었다.
"근데, 꽤나 상세히 알고 있네? 베아트리체가 그걸 일일이 부하에게 이야기하는 성격이었던가..?"
"...엿들었습니다. 웬 목각 인형하고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목각 인형?"
또 새로운 정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선생은 왠지 이번에도 뭔가 알 것만 같았다. 분명 그가 알고 있는 목각 인형이 하나 있지 않은가.
"혹시 머리가 두 개 달리거나 하지 않았어?"
"네, 머리 두 개에, 조금 부서져 있고.. 그런 상태로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생전에 한 번 봤던 것도 같았습니다."
"마에스트로? 그 녀석은 대체 왜 또 거기 있는 거야?"
대체 림보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듣기만 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파악할 수 없으니 이보다 답답한 것이 없다.
"결국 내가 직접 확인을 해봐야 뭐가 어떻게 된 건지 확실히 알 수 있겠구만... 나쁜 길인 걸 알면서도 걸어들어가야 한다는 게 참 힘들어. 하아..."
선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몸에는 힘도 없고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다시금 몸을 일으켰다.
"혹시 지팡이같은 거 없니? 그냥 걸어가기에는 무릎이 후들거려서 말이야."
"네?"
소녀는 무릎을 꿇은 그 상태로, 고개만 빼꼼 들어올리고 있었다. 왠지 지금 상황이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듯, 얼떨떨한 표정으로 선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베아트리체에게 같이 가야지. 친구 구하려면 내가 필요한 거 아니었어?"
"그, 정말 우리를... 도와줄 건가요..?"
소녀의 말에, 선생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겠어? 샬레에서 돈 받는 건 다 이유가 있단다. 그리고 말이야, 부탁을 할 땐 그렇게 비굴하게 굴 필요도 없어. 학생이 선생님한테 함부로 무릎 꿇는 거 아니야."
"어... 예?"
그렇게 말하고 있는 선생의 상처투성이 얼굴은 너무나 온화하고 평온했다. 그리고 이내 선생은 그녀에게 자신의 왼손을 내밀어주고 있었다.
"일어나. 언제까지 무릎 꿇고 있게."
"........??"
소녀는 이런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다. 분명 당연히 의심의 눈초리부터 건넬 것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그렇기에 이 이후에 펼쳐질 건 설득, 체념. 협박, 이런 부정적인 일들만 가득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소녀 눈 앞의 이 사람은 이런 결정을 하는데 그 어떤 흔들림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그, 선생님아. 지금 이야기 잘 들은 거 맞음?"
"잘 들었어. 한 쪽 귀는 멀쩡하거든."
".일단 설명을 더 해야 하겠지만, 당장 목숨을 내놔야 할 수 있는데.. 진짜 괜찮은 거 맞음요?"
혹시나 무언가를 착각한 것은 아닐까, 금발 소녀가 되물어보지만 선생은 그 무엇도 착각하지 않았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생활이었는데 뭐 어때. 왜, 나한테 지금 거짓말 중이야?"
"이 판국까지 와서 거짓말을 칠 이유는 하나도 없음요."
"...됐네, 그럼. 하지만 아직 설명이 덜 된 부분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조금만 더 설명해줄 수 있겠니?"
"............"
소녀들은 완전히 얼떨떨해진 채 다시 한 번 선생을 쳐다보고 있었다. 차 안에서 '선생'에 대해 나눴던 대화가 어땠던가.
-야, 자기 죽일려고 한 사람을 돕는다면 그건 미친 호구거나 헤까닥 돌아버렸거나 둘 중 하나야. 제정신으로는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고.
하지만 눈 앞에 있는 남자는, 제정신으로 이 말을 하고 있었다. 모든 걸 자포자기해서도, 돌아버려서도 아니었다.
"........"
소녀들은 지금,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를 선의로 돕는 '어른'을 만났다.
***
소녀들은 계속해서 선생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전달하는 데는 그 어떤 거짓도 가식도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을 데리고 간다고 해서 반드시 제 친구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선생님을 데리고 와도 그냥 그 쓰임새를 다했다고 하고 저희들을 치워버릴 수도 있습니다. 제 친구를 풀어준단 것도, 그저 허울 좋을 거짓말일 수도 있죠."
"...글쎄, 아무리 베아트리체라 해도 그렇게까지 할까? 가장 큰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했다간 세상 그 누구도 따르려 하지 않을 걸. 같은 방식으로 당해놓고 또 같은 실수를 하려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설령 치워지더라도, 선생님만큼은 최소한의 안전이 보장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베아트리체는 당신을 굉장히 신경쓰고 있는 만큼, 절대로 한 번에 죽이진 않을 겁니다. 분명.. 이런 말도 했었으니까요."
'내가 이겼다는 걸 선생 그 녀석한테 똑똑히 보여줄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내 복수의 완성이자, 내 숭고의 완성이다!'
"확실히, 그렇긴 하겠네. 사형수를 사형 날짜까지 죽이지 않는 것처럼..."
사형수나 다름없기에 목숨이 보장된다는 이 모순적인 말은, 역으로 합당한 말이었다.
"...그리고 분명 선생님을 살려둔 채 의식을 진행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마지막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타이밍이기도 하죠. 의식을 방해하는 것을 넘어, 어쩌면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맡을 게 사오리라고?"
"네, 그렇습니다. 본래라면 평범한 이들은 림보에 들어가기도 전에 죽겠지만, 제 영혼을 흘려넣었으니 이야기는 다릅니다. 림보에 퍼져있는 독기(毒氣)도, 경비병력의 감시망도 분명 피해갈 수 있겠죠..."
"결론적으로, 베아트리체를 속여보자는 거네?"
"그렇습니다. 실패하면 다 죽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 제 이야기를 태연히 들어줄 수 있는지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소녀는 여전히 지금의 상황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선생은 그저 태연했다.
"학생 이야기 들어주는 게 선생의 역할이니까."
"오늘 처음 만났는데도?"
"그런 건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아. 나에게도 너희에게도 중요한 일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미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소녀 입장에선 미친 것이든 뭐든 좋았다. 어쨌든 자신의 친구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에, 소녀는 다시금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너희들하고 사오리뿐이라고?"
"...선생님도 일단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헤일로를 가진 자가 림보에 들어간다는 건 거의 자살이나 마찬가지. 가기도 전에 죽어버릴 겁니다."
"그런 구조가 가능하긴 한 거야?"
"원래 주인도 손만 빨고 보고 있을 정도니... 이건 직접 보셔야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말에 선생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이내 고개를 다시금 스쿼드 쪽으로 돌렸다.
"그래, 일단 백문이불여일견이랬지.. 일단 내 눈으로 봐야 알 수 있겠네. 얘들아, 일단 가보..."
-화악!
그리고 그때, 선생의 팔이 확 잡아채여졌다. 갑작스레 몸이 뒤로 쏠린 선생은 당황했고, 이내 그 장본인이 사오리임을 알고 더 당황했다.
"사오리?"
그리고 선생이 사오리의 얼굴을 보았을 땐, 그녀는 초조한 얼굴빛을 띄고 있었다. 숨까지 갑자기 급하게 내쉬는 모습은 한눈에 봐도 정상같지 않아 보였다.
"사오리, 왜 그래? 사오리?"
"...더이상 들어줄 가치가 없다."
"응?"
그리고 이내, 사오리는 곧바로 둘의 앞으로 다가가고는, 살벌한 눈빛으로 소녀들을 노려보았다.
"아직도 모르겠어? 지금 저 녀석들은 선생을 속이려 들고 있어! 전부 거짓말이다..!"
"뭐?! 우리가 무슨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선생을 꾀어내서 베아트리체한테 갖다 바치려는 속셈을 모를 줄 아냐! 저리 꺼져라!"
헤일로가 눈에 보일 정도로 지직거리는 동시에, 사오리의 육체에는 다시 영체가 스멀스멀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사오리는 스쿼드에게 소리쳤다.
"선생을 데리고 빠져나간다! 이 불길한 곳에 더이상 있을 수는 없어, 철수한다!"
"...리더?"
"뭘 우물쭈물거려! 빨리!"
하지만 그 명령을 듣기엔, 명령을 내리는 당사자의 모습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 파들거리는 입술, 그리고 눈에 보일 정도로 떨고 있는 목소리와 육체. 무엇 하나 정상이 아니었다.
"사오리, 침착해. 거짓말이 아닐 거야."
"난 침착하다. 그리고 저들은 지금 선생을 꾀어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침착하지 못한 쪽은 사오리였고, 역으로 침착한 쪽은 선생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오리의 얼굴을 보고 천천히 그녀를 설득하고자 했다.
"만약 거짓말이었으면 이상하지. 진작에 전부 다 납치해서 들어가면 그만일텐데 왜 굳이 이런 과정을 거치겠어?"
"...그, 그건."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선생을 속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그냥 기절한 그들을 베아트리체에게 갖다 바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 편이, 그녀들의 목적을 이루기도 수월했을 것이었다.
"분명 사실일 거야. 친구가 붙잡혀 있다는 것도, 그동안 말했던 이야기들도..."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설령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결코 선생을 보내줘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해."
"어?"
하지만 그것이 거짓이든 아니든 사오리에게 중요한 이야기는 되지 못했다. 애초에 그녀에게 중요한 건, 선생이 지금 저들과 함께 가는 것을 막는 것뿐이었으니까.
"지금 저 녀석들의 말이 뭐냐. 선생더러 그냥 나가 죽으라는 소리다. 베아트리체가 선생을 결코 살려둘 리 없어. 용암에 몸을 던져놓고 살기를 바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사오리."
"안 된다. 이건 미친 짓이야. 선생의 말이라면 뭐든지 따라도, 이것만큼은 따를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짓이라고. 선생이 간다고 해도 난 보내주지 않을 거야."
-콰악!
하지만 그때, 사오리의 팔에 검은 촉수가 순식간에 휘감겼다. 적발의 소녀는, 사오리와 그녀를 노려보는 것처럼 사오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거 놔라...!"
"아니, 못 놓겠는데. 이쪽도 절박해서 말이야."
"그래서, 네 친구의 목숨을 대신해 선생더러 목숨을 바쳐달라는 거냐? 부탁이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그래, 그거 참 맞는 말이네, 정말 이기적이야. 어떻게 비난하든 간에 할 말은 없지.. 그 말을 하는 장본인이 너만 아니었다면 말이야."
"뭐?"
그리고 적발의 소녀는 아까보다 더 눈빛이 살벌해졌다. 어느새 이곳의 분위기는 험악함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래, 너. 네가 하카리 아츠코를 구하려 했던 건 숭고한 행동이고, 내가 내 친구를 위해서 이러는 건 이기적인 행동이냐..? 너와 내가 대체 무엇이 다르냐?"
순간 사오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지금, 적발의 소녀는 한이 맺힌 듯 계속해서 사오리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 그럼 뭐 어떻게 하란 말인데. 어떻게 하면 착하게 굴면서 내 친구를 구할 수 있는 거지? 누군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줄 알아?! 나는 뭐 씨발 존나 나쁜 새끼여서 이러는 줄 아냐고! 애초에, 이런 이기적인 방식이 아니고서야 내 친구는 구할 수도 없어! 내 목숨을 바쳐서 그 녀석을 구해낼 수 있다면! 진작에 하나도 남기지 않고 바쳤을 거라고!! 그런데 그런 방법이 없으니까! 쓰레기같은 년이어야지만 내 친구를 구할 수 있으니까 쓰레기처럼 부탁할 수밖에 없다고..!"
"시끄러, 시끄러워..! 닥쳐! 선생은 안 돼..!"
하지만 그건 사오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의 소중한 사람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면, 결코 들어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태도를 보이면 보일수록, 소녀의 눈빛은 어두워져만 가고 있었다.
"그럼 씨발 뭐 어쩔까..? 우리는 도움도 청하면 안 되는 거냐? 이대로 그냥 가만히 뒤져주는 게 모두를 위한 거라면, 그래야 되는 거냐..? 씨발 그런 삶이 어디 있어. 내 삶은 하찮을 지 몰라도, 그 녀석의 삶은 아니란 말이다..."
"누가 그래. 그 누구의 삶도 하찮지 않아."
그리고 그때, 다시 선생의 말이 들려왔다. 모두가 갑작스레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며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에도, 선생은 이를 그저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내뱉은 말은 지켜야지, 도와줄 거야. 도와줘야지.."
그리고 이내, 선생은 다시 사오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선생은 다시 한 번 그녀에게 말했다.
"사오리, 저 애들에겐 이게 최선이었을 거야. 애초에 바로 데려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포기했을 거고."
"....제발. 안 된다. 이건 아니란 말이다. 저건 그냥 헛소리고, 거짓말일 뿐이란 말이다.."
선생의 팔은 더 세게 옥죄어지고 있었다. 얼굴은 가면 갈수록 일그러져 갔고,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선생의 이 숭고한 결심을, 사오리는 막고 싶었다.
"제발. 그러지 마. 그러면, 그러면.. 안 돼. 이건 단지.. 단지...."
하지만 사오리는 목이 막히기라도 한 듯, 목소리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손아귀의 힘도, 눈동자도 점차 풀려가고 있었다. 꽉 쥐어야 했지만, 가지 못하게 해야 했지만 그럴 힘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왜일까, 무엇이 그녀의 힘을 빠지게 만드는 것일까.
"...사오리."
"......"
차갑다. 선생의 눈빛은 차가웠다. 사오리 자신이 아츠코를 구하러 왔을 때도 그 눈빛은 따뜻했는데, 지금은 그런 눈빛이 아니었다.
"너한테는 언제나 고마워. 정말... 나는 네 진심을 알아. 나를 걱정해주는 마음은 분명 헤아릴 수도 없겠지. 하지만 저 애의 진심을 부정한다면... 돕지 않아야 한다면..."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왜 힘이 점차 사라져가는지.. 왜 몸이 이렇게나 떨리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인지.
"그때의 너도 의심하고 돕지 말았어야 했니? 그런 게 올바른 길은 아닐 거야."
"........."
저 아리우스 소녀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과 선생의 인연 그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것이었기에.
"그리고 그런 길을 선택해 버린다면, 나는.. 두 번 다시 선생으로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아."
그리고, 그건 선생이 선생이 아니게 만드는 일이었기에. 소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었기에.
"으..."
"사오리, 놔 줘."
"아으...."
그렇기에, 그녀는 힘을 쓸 수 없었다.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끅... 끄흑..."
손아귀에 힘이 풀리고, 영체 역시 사라졌다. 다시 한 번 하염없이 나오는 건 눈물뿐이었다. 대체 무엇이 서러운 것인지, 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끄흐으윽.... 으으윽..."
그리고 다시 한 번 연못에는, 그녀의 슬픔만이 울릴 뿐이었다.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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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오리가 도게자하고 있는 순간에, 호시노가 옆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당장 샷건 쏘면서 꺼지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늘 화는 그런 생각에서 만들어봤습니다!
댓글 14
왔다 내 섹스
선생 개입하니까 2부~3부 초반 느낌나고 좋네 존나 맛있다

역시 인성은 대 선 생
마참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