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기준 3,225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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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도스 학생회장의 귀환
감사의 교자
-아리스-
"슬슬 갈까요, 아리스."
"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오라는 유우카의 배웅을 받으며, 케이와 둘이서 장을 보러 향한다.
케이가 세미나 업무를 끝낼 때까지 기다렸기에,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세미나의 대외 협력으로서 유메 선생의 일을 돕고 있는 케이지만, 하루 종일 샬레에 틀어박혀 있는 것은 아니다.
샬레에 발걸음을 옮기는 것은 일주일에 사흘로, 그 외에는 밀레니엄에서 보낸다.
같은 기숙사에서 눈을 뜨고, 수업을 듣고,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손에 넣은 일상을 소중히 여기며 만끽하고 있었다.
"역까지 갈 필요는 없는 거죠, 케이?"
"네. 조금 걸어가면 마트가 있으니까요."
오늘은 밀레니엄 모두에게 보답을 하기로 했다.
케이의 몸을 함께 찾아주어서 정말 기뻤으니까.
수주한 퀘스트는 오늘의 저녁 식사였다.
"자, 케이."
"...어?"
둥그레진 눈으로, 내가 내민 손을 바라보는 케이.
"괜찮은 건가요?"
"좋고 나쁘고는 없습니다. 아리스가 케이와 손을 잡고 걷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하고 케이는 답했다.
하지만 다음 말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케이가 싫다면 거두겠습니다만?"
"잠, 잠깐만요! 잡고 싶습니다! 저도 아리스와 손을 잡고 싶단 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당황한 기색으로 케이가 내 손을 꽉 쥔다.
"아리스의 손, 따뜻하네요."
"케이는 조금 차갑네요."
"아무래도 수족냉증이 있는 모양이라서요. 앞으로의 계절에는 더 차가워질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또 아리스의 손으로 따뜻하게 해줄 테니 안심하세요!"
손을 잡은 채 걷다 보니 목적지인 마트에 도착했다.
장바구니를 손에 든 케이는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우선 배추와 부추군요."
그런 중얼거림과 함께 채소 코너로 돌진한다.
뒤처지지 않도록 케이의 뒤를 쫓아간다.
"뭘 만드는 건가요?"
"교자가 좋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만……"
"교자?"
"네. 피부터 제대로 만드는 교자입니다."
"피부터요?"
"아주 맛있답니다?"
부추 한 단을 손에 든 케이는 꼼꼼히 살핀 뒤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어서 배추를, 이 또한 정성스럽게 고르며 신선해 보이는 것을 바구니에 담아갔다.
"피를 만드는 방법을 얼마 전에 후우카 씨에게 배웠거든요."
이번에는 정육 코너로 이동한다.
"역시 만두에는 다진 돼지고기죠."
큰 팩을 몇 개나 바구니에 담는 케이.
그리고 계산대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나는 아까부터 케이의 등만 쫓고 있었다.
그것이 쓸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뻤다.
필요한 장보기를 마친 우리는 계산을 하고 마트를 나왔다.
"짐, 그쪽 것도 들게요?"
"아뇨, 하나 들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대답하는 케이는 웃고 있었다.
"양손이 다 막혀버리면, 손을 잡을 수 없게 되잖아요?"
이번에는 케이 쪽에서 손을 내밀어 온다.
"그렇네요!"
그 손을 꽉 맞잡고, 노을빛 길을 걸었다.
케이의 작은 손이 밀가루 반죽을 치대고 있다.
나는 기숙사 식당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가 꾹꾹 밀가루 반죽을 누를 때마다 진동이 팔꿈치로 전해져 온다.
손바닥에 얹고 있는 턱으로도 전해져 온다.
그나저나 케이는 앞치마가 참 잘 어울린다.
"정말 잘하네요."
내가 말하자 케이는 기쁜 듯이 웃었다.
"뭐, 이런 건 빵 반죽을 치대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까요."
"케이, 빵도 구울 줄 아나요?"
"빵은 간단해요. 대충 치대서 구우면 어떻게든 되니까요."
요리를 싫어하지도 않고 서툴지도 않지만, 케이가 훨씬 더 잘한다.
그래서 나는 그저 앉아서 케이에게 전부 맡겨두고 있었다.
왠지 그런 게 조금 행복하기도 하다.
케이가 함께 있고, 상냥하고, 모두를 위해 요리를 해주고 있다.
자세히 보니 케이의 속눈썹은 꽤 길다.
나보다 긴 게 아닐까.
고개를 숙이면 그런 속눈썹이 눈가에 드리운다.
무척 예쁘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케이는 밀가루 반죽을 소프트볼 크기 정도로 만들어 손바닥으로 둥글게 굴리더니, 준비해 둔 은색 볼에 차례차례 담았다.
그리고 각각의 위에 면포를 덮어 냉장고에 넣었다.
"20분 정도 발효시킵니다."
손을 씻으며 그렇게 말한다.
"그다음에 피 모양으로 둥글게 빚을 겁니다."
"대단하네요. 피부터 수제라니."
"잘 되어야 할 텐데요."
후우, 하고 크게 숨을 내쉬며 케이가 맞은편에 걸터앉는다.
조용한 기숙사 안, 둘이서만 마주 보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케이의 눈치를 살피고 있으려니, 똑바로 눈이 마주쳐 버렸다.
후훗, 하고 케이는 웃었다.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지만, 그것조차 우리에게는 소중한 것이었다.
가늘고 가느다란, 마치 실 위에 만들어진 듯한 길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온 것이다.
"케이."
"왜 그러시죠?"
"지금 행복한가요?"
질문의 답은 5초 뒤에 돌아왔다.
"덕분에요."
케이는 웃고 있었다.
그래, 아주 상냥하게 웃고 있었다.
"슬슬 피를 만들어 볼까요?"
이윽고 케이가 일어섰다.
"아리스도 도와주세요."
"아리스도 할 수 있나요?"
"할 수 있어요, 분명히."
"그럼 열심히 하겠습니다!"
둘이 나란히 서서 만두피를 만들었다.
케이는 엄청나게 능숙해서 밀대를 가볍게 굴리는 것만으로 둥근 만두피가 차례차례 완성되어 갔다.
그에 반해 내가 만든 것은 찌그러진 모양뿐이었다.
밀레니엄의 학생 기숙사치고는 드물게, 오늘 밤은 식당이 대성황이었다.
"이쪽에 2인분 추가! 그리고 밥도!"
"케이 쨩, 여기도 3인분 부탁해!"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프라이팬에서 만두가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내고 있다.
물만두처럼 찌듯이 구워낸 교자에는 전분물이 날개처럼 펼쳐진다.
그 바삭바삭한 부분을 젓가락으로 쪼개듯 나누는 것이 무척 즐거운 모양이다.
평소에는 젓가락을 쓰지 않는 학생도 오늘만큼은 어설프게나마 흉내 내며 젓가락을 쓰고 있다.
구운 교자를 한 입 베어 물면 안에는 육즙이 가득한 돼지고기.
그대로 먹으면 잡내가 날 법도 한데, 마늘 덕분에 신경 쓰이지 않는다.
"케이 쨩, 밥 한 공기 더 줄 수 있어?"
"나도 한 그릇 더 받을까. 그리고 교자도 추가로."
일찍 업무를 마치고 들러준 호시노와 히나에게도 호평이었다.
방에서 다시 데워 먹으면 되기에 포장해 가는 학생도 있다.
그런 아이에게는 소분한 양념장도 챙겨주기로 아리스가 결정했다.
그 아리스는 계속 주방에 틀어박혀 피를 밀어주고 있다.
치댄 소를 피에 싸면서, 나는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억누를 수 없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모두가 맛있게 먹으며 기뻐해 주고 있다.
"잘됐네, 케이 쨩. 대인기야!"
"감사합니다, 유메 선생님."
유메 선생님도 오늘의 업무를 일찌감치 끝내고 식당으로 달려와 주었다.
"이제 완전히 요리 명인이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자신 있게 처음부터 만들 수 있는 요리의 종류도 맛도, 후우카 씨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나하나 과제를 극복하며 자신의 실력을 더욱 갈고닦고 싶다.
"노력가라고 해야 할지 고집쟁이라고 해야 할지, 케이 쨩은 요리가 아니더라도 대성할 그릇이네."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 기세야, 그 기세. 앞으로도 응원할 테니까 말이야."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생님~"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왜 그러니~" 하고 유메 선생이 대답한다.
빙글 돌아설 때, 긴 머리가 흔들리며 내 코끝을 간지럽혔다.
자, 내일 점심은 뭘 만들까.
식단을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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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기준 8,159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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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도스 학생회장의 귀환
소꿉친구
-나기사-
기분 전환을 하러, 조금 어두워진 트리니티를 걷기 시작한다.
태양은 이미 건물 너머로 사라졌고, 하늘은 희미한 어둠으로 물들어 있다.
서쪽은 아직 하얗게 빛나고 있지만, 동쪽은 이미 밤 그 자체다.
평소의 활기를 되찾은 자치구를 걷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산책길은 대개 같다.
작은 집들이 늘어선 골목을 걸어, 창고 문에서 꺾는다.
곧장 나아가면 상점가가 나온다.
여러 사람이 미소 지으며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
그렇게 게헨나와의 경계에 만들어진 다리에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다리는 크고, 아름다웠다.
쭉 뻗어 있는 점이 좋다고 생각한다.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길 같다.
강물을 타고 불어온 강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든다.
바람에는 짙은 바다 내음이 섞여 있었다.
다리 중간에 멈춰 선 나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강이라고 해도, 이 근처는 이미 바다와 가까워서인지 파도가 꽤 거세게 친다.
그 파도에 닿을 듯 말 듯 한 곳을 갈매기가 휙 날아갔다.
지금의 나에게 저런 가벼움은 없다.
에덴조약 때의 일 이후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내가 소속된 티파티는 트리니티의 학생회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단 세 명이라는 소수임에도 자신과 긍지를 가지고 직무를 완수해 왔다.
하지만 멤버 중 한 명이 빠지고 나서는, 기운이 빠졌다는 소문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실제로 그 말대로였다. 부정할 생각은 없다.
큰일이군요, 라고 나는 생각했다.
역시 신경이 곤두서 있는 모양이다.
이런 시시한 생각을 하다니.
떠오른 것은, 미카에 대한 것이었다.
"잠깐 나가지 않을래?"
열네 살의 겨울, 저녁 식사를 마친 뒤에 미카가 그렇게 제안했다.
그 시절, 우리는 같은 기숙사에서 지냈다.
"지금요?"
그럼 당연하지, 라며 미카가 웃었다.
"게헨나랑 경계가 되는 다리가 있잖아? 거기의 제방에 가보자."
"제방?"
"지금 저쪽에 엄청 큰 빌딩을 짓고 있거든."
미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미카가 벌써 현관을 나가버렸기에, 나는 허둥지둥 그 뒷모습을 쫓았다.
사실은 공부를 해야 했다.
남들 위에 서는 자로서 최소한으로 필요한 지식을 쌓고 있었으니까.
방해를 받은 셈이지만, 나에게는 전혀 귀찮지 않았다.
미카의 제안이라면 언제든, 무슨 일이 있어도 OK였다.
애초에 갓난아기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니까.
제방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미카도 왠지 침묵을 지켰다.
제방에는 곳곳에 철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 계단을 다 올라가자 미카가 탄성을 내뱉었다.
"와아, 예쁘다."
돌아보며 기쁜 듯이 웃었다.
주변에서는 엄청난 독설가라고 생각하지만, 미카는 어린아이처럼 웃는다.
그 모습에 내 얼굴도 절로 풀어졌다.
미카와 함께라면 어린아이처럼 웃을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트리니티 학구와 게헨나 학구를 가르는 커다란 강이다.
맞은편 기슭에는 고층 빌딩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에게 대안의 풍경은 별세계 그 자체였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이고, 거리를 따지면 1km도 안 될 것이다.
다리를 건너면 몇 분 만에 도착한다.
그런데도 아무리 손을 뻗어도 고층 빌딩의 빛은 닿을 것 같지 않았다.
미카의 말대로 새로운 빌딩이 건설 중이다.
작업은 계속되는지 뼈대 곳곳에 조명이 켜져 있었다.
"가까운데 말이야, 사실은."
미카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의미를 나는 온전히 이해했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네요,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1km도 떨어져 있지 않아요. 지금 당장 다리를 건너면 5분도 안 걸려 도착할 거예요."
"응, 고작 5분이지."
바람이 불었다.
바다 내음이 났다.
커다란 배와 작은 배가 상류를 향해 나아갔다.
"저기, 나기 쨩, 가보자."
미카가 말했다.
"네? 가자니, 어디를요?"
설마 맞은편인가.
게헨나에 가서 뭘 하겠다는 건지.
하지만 미카가 가리킨 곳은 맞은편이 아니라 바로 앞의 제방이었다.
"위로 걷자."
"네, 뭐 하러요?"
"의미 같은 건 없어. 알고 있어? 등산가는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른다잖아. 우리 앞에는 제방이 있어. 훌륭한 이유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요."
"됐으니까, 가보자."
시시한 논리를 펼친 뒤, 미카는 난간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제방 위는 의외로 좁은데도 멋지게 착지했다.
어쩔 수 없이 나도 뒤를 따랐다.
미카처럼은 안 돼서 신중하게 난간을 넘어섰다.
그렇게 올라선 제방 위를 조심조심 걷는다.
다음 계단까지 50미터 정도일까.
바람이 불 때마다 나는 초조해졌다.
등에 식은땀이 배었다.
"미카, 돌아가요."
중간에 호소했지만 미카는 가볍게 웃을 뿐이었다.
"이런 거 식은 죽 먹기야."
실제로 미카는 여유가 넘쳤다.
그 자리에서 빙그르르 돌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양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균형을 잡고 있는데도 말이다.
"미카, 천천히 걸어주세요."
"너무 빨라?"
"음, 네, 조금요."
"못 말리겠네."
그렇게 10미터 정도 더 나아갔다.
어떻게든 따라갈 수 있었다.
이윽고 미카가 말했다.
"나기 쨩은 말이야, 트리니티의 정점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해?"
"어……."
어째서 지금 그런 걸 묻는 걸까.
여러 생각이 떠올랐지만, 균형을 잃을 뻔한 탓에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기 쨩이라면 괜찮을 거야. 단연 머리도 좋고. 근데 말이야, 힘으로 밀어붙이면 좀 위험하겠지."
"분하지만 부정할 수 없네요."
"어라, 드문 일이네. 인정하다니."
"야만적인 수단을 쓰지 못하게 잘 처신할 뿐이에요."
힘들겠네, 라며 미카가 웃었다.
네, 힘들죠, 라며 나도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바람에 날아가 금세 사라져 버렸다.
"나기 쨩, 괜찮아? 갈 수 있겠어?"
"상당히 위험해요."
"만약 떨어지면 내가 구해줄게. 걱정 마."
그런 대화를 나누며 제방 위를 걸었다.
왼쪽에는 게헨나 학구가 있었다.
오른쪽에는 트리니티 학구가 있었다.
"구해준다니, 어떻게?"
"휙 날아서, 휙 받아내고, 휙 착지하는 거지."
바람이 휘몰아쳤다.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강물에 파도가 일었다.
"나기 쨩만큼은 반드시 구해줄게."
돌아본 미카의 얼굴에는 미소가 있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나는 열일곱 살이 되었다.
트리니티 종합학원의 학생회인 티파티에 소속되어 있다.
트리니티 3대 분파 중 하나인 필리우스 분파의 리더이기도 하다.
미카와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아리우스 분교와 공모하여 트리니티의 평화를 위협한 벌로, 티파티를 이탈했기 때문이다.
유메 선생의 노력 덕분에 퇴학만은 간신히 면했지만.
근신 중인 그녀가 어떤 풍경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에게 미카는 특별한 존재였다.
트리니티 3대 분파의 중요 인물끼리기도 하고, 같은 해에 태어났으니 0살 때부터의 인연이었다.
내가 미카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주변 사람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한쪽은 트리니티 제일의 수재.
한쪽은 트리니티 제일의 무투파.
미카는 그랬다, 터무니없이 강했다.
트리니티 종합학원에 입학한 지 반년 후, 즉 1학년 가을에 3학년 중 가장 강하다고 불리는 녀석을 때려눕혔다.
그때 일을 나는 기억한다.
왜냐하면 미카와 함께 체육 창고로 끌려갔으니까.
"너, 무슨 생각이야?"
3학년은 네 명이었고, 미카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1학년 주제에 미카는 다소 건방졌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3학년답게 상대는 미카보다 덩치가 컸다.
"무슨 생각이냐니, 뭐가?"
미카는 불손한 태도로 물었다.
잠깐, 미카, 라고 나는 생각했다.
솔직하게 사과하라고.
왜 도발하는 거야.
"인사 정도는 제대로 하라는 거잖아."
"그럼 선배님, 실례합니다."
미카는 짐짓 과장되게 고개를 숙였다.
말은 정중했지만 말투는 건성건성했다.
"가자, 나기 쨩."
"잠깐 기다려."
"뭐? 인사했잖아?"
"재미있네, 이 녀석."
3학년 중 한 명이 웃었다.
여유를 부린 것이다.
그게 리더였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에서 가장 강하고,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
바보 같은 이야기지만, 그런 지위를 얻고 지키는 것에 필사적인 녀석들이 있다.
"너무 재미있으니까, 손 좀 봐줄까."
3학년이 미카의 어깨를 잡고 돌려세웠다.
힘이 센 건지 미카의 몸이 빙그르르 돌아갔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미카가 바닥을 차고 3학년에게 달려든 것이었다.
상대의 멱살을 잡은 미카는 오른팔 팔꿈치를 턱에 꽂아 넣었다.
미카가 덤벼들 줄은 3학년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그때의 광경이 슬로 모션처럼 떠오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3학년의 멍한 얼굴.
입술을 굳게 다문 미카.
턱끝을 정확히 노린 팔꿈치.
간단한 일격이었지만 3학년은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었다. 축 늘어져 있다.
그 광경에 나머지 3학년 세 명이 정신이 팔린 사이, 미카는 다음 행동으로 옮겼다.
미카가 보기에 앞쪽에 서 있던 두 명을 갑자기 때린 것이다.
정면으로 주먹을 맞은 두 명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걸로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가도 될까, 선배님?"
멍하니 서 있는 한 명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멍하니 미카를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후, 당황한 기색으로 고개를 몇 번 위아래로 흔들었다.
"가자, 나기 쨩."
이후 미카에게 손을 대는 학생은 없어졌다.
3학년들은 다시는 얽혀오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치면 순순히 도망갔다.
그리고 동시에 미카에게 다가오는 학생도 없어졌다.
미카는 언제나 혼자였다.
나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유메 선생님이 트리니티를 방문했기 때문이었다.
학생을 위해 키보토스 곳곳을 누비는 그녀는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이다.
만나기로 한 곳은 앤티크한 카페였다.
"나기사 쨩, 여기야 여기."
가장 안쪽 테이블에 유메 선생님이 앉아 있었다.
홍차를 즐기며 얼굴도 익힐 겸 서로의 근황을 보고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집까지 데려다줄게."
가게를 나온 뒤 유메 선생님의 차에 올라탔다.
하늘은 동쪽에서 서쪽까지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크게 숨을 내쉬었다.
"나기사 쨩, 수고했어."
"확실히 조금 피곤하네요."
"요즘도 바빠?"
"아뇨, 그렇게까지 밀린 건 아니지만요."
"아니면 미카 쨩이 신경 쓰여?"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역시 그렇구나, 라며 유메 선생님이 중얼거렸다.
"나기사 쨩."
"네, 네."
"합숙소에 들러도 될까?"
"보충수업부가 쓰던 별관 시설 말씀인가요? 네, 상관없습니다만."
본 교사에서는 꽤 멀지만 차로는 10분도 안 걸린다.
합숙소에는 아무도 없었고, 고요함만 감돌았다.
유메 선생님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빛을 반사하며 한밤중의 수영장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영차."
갑자기 옆에 서 있던 유메 선생님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서, 선생!? 왜, 벗으시는……!?"
"아하하, 너무 당황하지 마. 안에 수영복 입고 있으니까 괜찮아."
게다가, 라며 즐거운 미소를 띠고는,
"이제부터 수영할 건데, 안 벗으면 의미가 없잖아?"
망설임 없이 옷을 벗어가는 선생의 대담함에, 어이가 없기보다는 백기를 들고 싶어졌다.
"자자, 나기사 쨩도 이리 와. 기분 좋아."
벌써 수영복 차림이 된 유메 선생이 수영장에 뛰어들며 웃는 얼굴로 손짓한다.
압도적인 가슴 볼륨에 수수한 수영복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아뇨, 수영복을 가져오지 않았고……."
"괜찮아. 내가 준비해 뒀으니까."
"네? 그게 무슨……."
"저기 있는 아타셰 케이스 열어봐."
말하는 대로 선생이 벗어 던진 옷에 파묻힌 아타셰 케이스를 연다.
트리니티 지정 스쿨 수영복이 한 벌 들어 있었다.
유메 선생님, 하고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저 가도 될까요?"
"기각할게."
웃는 얼굴 그대로 즉답이었다.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놀랍게도 딱 맞는 사이즈였다.
"어째서죠?"
풀사이드로 돌아와 물 위에서 둥둥 떠서 기다리던 유메 선생님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제 사이즈를 아시는 건가요?"
"그 정도는 보면 알지?"
"……하아?"
너무나 예상 밖의 대답에 무심코 멍청한 소리를 내고 만다.
"그럼, 위에서부터."
시선만 이쪽으로 향한 채 선생은 두 자릿수 숫자 세 개를 가볍게 입에 담았다.
"뭣……!?"
그것은 내 쓰리사이즈였다.
세 곳 모두 정답이었다.
"푸핫!?"
충격으로 멍하니 서 있다가 얼굴에 물을 맞았다.
"빨리 오라니까. 같이 놀자."
수영장 안에서 이쪽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드는 유메 선생님.
"너, 너무하시네요!?"
나도 모르게 외치고 말았다.
"복수예요!"
화가 치밀어 수영장에 뛰어든 나는 선생에게 마음껏 물을 뿌려댔다.
"아하하, 진짜 화났네."
"화나죠! 화나는 게 당연하잖아요!?"
"에이, 그러지 마."
"왜 달래는 거예요!"
결국 기진맥진할 때까지 유메 선생과 물놀이를 했다.
밤의 수영장은 조금 차가웠지만, 한참 움직여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에는 딱 좋았다.
"후우, 실컷 놀았네."
"네, 정말 즐거웠어요."
풀사이드에 유메 선생님과 둘이서 나란히 앉는다.
"오늘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유메 선생님은 온화하게 웃고 있다.
힘이 빠져 있고 가벼워 보인다.
나도 저렇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만나보는 건 어때?"
나직하게 유메 선생이 말했다.
"네, 누구를요?"
"미카 쨩."
잠시 뜸을 들이고 유메 선생은 말을 이었다.
"나기사 쨩 마음대로 하면 돼. 계속 숨 막혀 보였거든. 이제 슬슬 제멋대로 굴어도 되지 않을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유메 선생님, 하고 간신히 입을 뗐다.
"왜?"
유메 선생님은 태평하게 하품을 하더니 그대로 옆으로 굴러 누웠다.
"별이 예쁘네요."
입 밖으로 나온 것은 감사의 인사가 아니었다.
유메 선생님은 다시 하품을 했다.
"응, 그러게."
대놓고 고맙다는 말을 할 수 있을 만큼 솔직해지지는 못해서.
그래서 별것 아닌 이야기만 나누고, 시시한 농담에 크게 웃으며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계속 바라보았다.
약속 장소는 게헨나의 경계에 만들어진 다리였다.
오랜만에 만난 미카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나기 쨩!"
마치 어제도 만난 것처럼 미카가 다가왔다.
"건강해 보이네요, 미카 씨."
"지금은 그냥 이름으로 불러도 되잖아? 다른 사람도 없는데."
"……그렇네요, 미카."
바로 곁까지 다가온 미카가 갑자기 어깨를 때렸다.
힘을 조절해준 걸 텐데도 찌릿찌릿했다.
나도 때려주었지만 미카에게는 전혀 효과가 없는 모양이다.
바람이 불어왔다.
바다 내음이 풍겨 왔다.
구름이 흐르고 달빛이 비쳤다.
미카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둘 다 침묵했다. 3초나 4초 정도. 그 정도의 시간.
"정말 오랜만이네, 나기 쨩."
"네."
웃으면서 미카가 또 어깨를 때렸다.
물론 나도 때려주었다.
"요즘은 얌전히 지내고 있는 모양이네요."
"근신 중이니까. 제대로 자제하고 있어. 근데 나기 쨩, 알고 있어? 나한테 현상금을 건 학생들이 있다는 거."
"현상금?"
"나를 쓰러뜨린 아이한테 나한테 졌던 아이들이 1만씩 준다나 봐. 농담 같은 거고 실제로 도전해오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나는 무척, 무척 슬퍼졌다.
현상금 같은 건 미카의 말대로 농담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아니, 상대방은 실제로 농담으로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약 나에게 힘이 있었다면, 미카만큼 강했다면 그런 말을 하는 녀석들을 한 명씩 때려주러 갈 텐데.
"무시하는 게 좋겠네요."
"그렇게 하기로 했어."
"도발에는 넘어가지 마세요."
"응, 알고 있어."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카는 그 상태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래도 정말 힘들 때가 있어."
고개를 숙인 소꿉친구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에게는 알 수 없었다.
몹시 안타까웠다.
만약 지금 미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줄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내어줄 텐데.
주변에서는 우등생으로 보이고 있지만 지금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문득 미카를 안아주고 싶어졌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전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카, 저곳에 가지 않을래요?"
대신 말이 흘러나왔다.
"저곳이라니, 어디?"
3년 전 당신이 소중한 말을 해주었던 장소예요.
마음속으로만 말하고 나는 걷기 시작했다.
"저기, 나기 쨩, 어디 가는 거야?"
"따라오세요."
어슬렁어슬렁 걸었다.
그동안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만 했다.
이윽고 게헨나와의 경계에 있는 다리의 제방에 도착했다.
3년 전과 같은 장소다.
"맞다. 생각났어."
미카가 말했다.
"우리 제방을 건넜었지."
"기억하고 있어요."
"또 하자."
"네, 제정신인가요?"
"제정신이야. 아주 온전한 제정신이라고."
웃은 직후 미카는 난간을 뛰어넘어 있었다.
툭 하고 제방 위에 착지했다.
폭은 50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기억보다 훨씬 좁았다.
어떻게 3년 전의 우리는 이런 곳을 건넜던 건지.
제방은 높아서 4, 5미터는 된다.
떨어지면 어느 정도의 부상은 피할 수 없다.
"자, 나기 쨩."
하지만 미카는 웃고 있었다.
어린아이 같았다.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잠깐 기다려 주세요."
3년 전과 똑같이 난간을 조심스럽게 넘어섰다.
막상 서보니 제방의 폭은 더 좁게 느껴졌다.
"있잖아요, 미카."
"응?"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상대는 미카뿐이에요."
"나도 그래. 나기 쨩뿐이야."
서로 웃은 뒤 서로 쑥스러워졌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미카였다.
"무슨 사랑 고백 같네."
"정말."
"말해두는데, 나 여자끼리 연애에는 관심 없거든."
"저도 마찬가지예요."
묵묵히 제방 위를 걷는다.
3년 전과 같았다.
미카는 여유만만하게 그 자리에서 빙글 돌기도 하지만 나는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어느새 몇 미터나 떨어져 있었다.
"느려, 나기 쨩."
"미카가 너무 빠른 거예요. 조금만 천천히 걸어주세요."
"괜찮다니까. 떨어지면 구해줄게."
"어떻게?"
"휙 날아서, 휙 받아내고, 휙 착지하는 거지."
전과 똑같은 말이다.
그런 건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미카라면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떨어지면 부탁할게요."
"맡겨둬."
"미카가 떨어지면 제가 구해줄게요."
"나기 쨩, 할 수 있겠어?"
"네, 할 수 있고말고요."
확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미카의 뒷모습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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