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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아카이브소설 핫산) 사랑과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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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비 #M #순애 #오토기

원본 by haito

======================

<1> ~ <3>

<1>

“안녕, 오토기. 죽는 건 조금만 기다려 줄래?”

유령이 된 그는 웃고 있었다.

심야의 외곽, 폐건물 옥상.

눈앞의 난간을 넘는다면 아스팔트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터였다.

역시나 두려워서 문득 뒤를 돌아본 그 찰나.

“선, 생님?”

그곳에 서 있었던 건, 다리가 보이지 않는 그리운 사람.

지난달에 세상을 떠난 선생이었다.

샬레의 선생, 그의 장례식을 기억한다.

조문객이 건물 밖까지 줄을 이었는데도 겨울 하늘에는 야속하게 비가 내렸다.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고, 그것이야말로 생전의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상징했다.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자, 멋진 ‘선생’이었던 사람─이렇게 젊은 나이에 떠나서는 안 됐다는 분노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였다.

“…하하. 좋은 사람, 이었으니까.”

꼭 구두 상자 같았다.

화장터로 운구되는 그를 오토기가 멍하니 내려다보았을 때.

다정한 그가 잠들기에는 그 상자는 너무나도 쓸쓸해 보였다.

소대원들 모두 분명 그랬을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어딘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그가 다시 일어나 주지는 않을까, 모든 게 꿈은 아닐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주말, 12월 28일! 9시에 만나기로 한 거 잊지 마?』

모모톡 메시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오래된 알림.

지난주에 그와 나누었던 이제는 지킬 수 없게 된 약속.

그것이 혹시라도 이루어지지 않을까 소녀는 기도해 보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당일, 역으로 향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기대하고 있었던 수족관 데이트에 그는 나타나 주지 않았다.

“뭐야, 정말. 글렀잖아. 여자를 기다리게 하면…….”

한껏 멋을 부리고, 설레서 잠도 못 잤기에 밤을 새우고 왔다.

그런데도 해는 무정하게 저물어 갈 뿐이었다.

유명한 만남의 광장.

‘충견’이라는 소리를 듣던 그 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오지 않을 것은 물론 알고 있었다.

그의 유골함은 작았으니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믿고 싶었다.

“…그치만, 그치만. 약속, 했단 말이야.”

아침 해가 기울어 점심때가 되고, 그마저 지나 황혼이 찾아왔다.

주황빛으로 물든 동상 옆, 바람 맞은 소녀는 홀로 남겨졌다.

샬레의 선생.

그 길었던 장례식 행렬처럼 그는 언제나 인기인이었다.

학생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며, ‘좋아해요’라는 말조차 미소로 받아넘기던 사람.

남몰래 연모하던 그 사람은 신기루처럼 멀기만 했다…….

그래서.

『─괜찮, 아?』

수족관 티켓이 남았다는 뻔한 권유가 통했을 때, 소녀는 죽을 만큼 기뻤다.

왜 고개를 끄덕여 주었는지 이유는 이제 알 수 없다.

마침 그도 가고 싶었던 걸까,

우연히 일정이 비었던 걸까…….

“아니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답해 줄 그는 없다.

차가운 묘비는 응답이 없고, 앞으로의 영원만이 흐를 뿐.

깨져버린 약속의 끝.

완전히 져버린 석양을 등지고 흘러나온 것은 건조한 한마디였다.

“미안. 역시 무리야, 난.”

그렇게 생각하니 행동은 빨랐다.

멋을 부린 차림 그대로, 빈속을 채우지도 않은 채…향한 곳은 외곽의 폐건물,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옥상.

한시라도 빨리 슬픔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혼자 남겨질 미래가 싫어서.

메마른 미소를 지으며 펜스를 넘으려던 그 찰나.

“안녕, 오토기. 죽는 건…조금만 기다려 줄래?”

유령이 된 그는 웃고 있었다.

문득 돌아본 그곳에서, 반투명한 두 다리를 가리키며.

십중팔구 환각일 것이다.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혼란스러워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

영원 같은 찰나의 순간, 부질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만, 설령 환영이라 할지라도─그렇다면 그가 사라지기 전에.

줄곧 전하고 싶었던 말을 오토기는 입 밖으로 꺼냈다.

“좋아해요, 선생님.”

그뿐이었다.

그 한마디를 소녀는 줄곧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뚤어진 형태일지언정, 죽기 전에 미련은 털어냈다.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고 생각하며 오토기는 곁눈질로 구름을 바라보았고…그대로 환영이 사라지기를 기다렸지만.

“그, 저기. 오토기……. 음,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선, 생님?”

시간이 지나도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진짜 유령인 모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시야에 확 생기가 돌았고─조금 전의 고백이 떠올라 오토기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버렸다.

이별의 날로부터 한 달 남짓, 올해가 끝나기까지 조금 더.

에필로그의 겨울이 온다.

끝의 끝,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흘이 시작된다.

<2>

정말 선생님인지, 어쩌다 유령이 된 건지─.

그 다리는 어떻게 된 건지, 사후 세계는 어땠는지.

쉴 새 없이 질문이 떠올랐지만, 소녀의 본심은 하나뿐이었다.

그렇다,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다.

배꼽시계가 울리기 전에 서둘러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믹스 피자와 도리아 나왔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유독 빠른 말투로 중얼거리며 오토기는 오랜만에 식사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치즈가 마른 혀를 감싸고, 올리브 향이 콧등을 간질일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벅차올라 눈물마저 쏟아질 것 같았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눈앞의 그는 역시나 먹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아냐, 신경 쓰지 마. 난 누가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게 좋거든.”

“…그래?”

창가 쪽 구석 테이블.

빈자리에 걸터앉아 반투명한 그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 말고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물도 식기도 세팅되지 않았고, 카운터석을 거절하는 데도 애를 먹었다.

그런 상황들이 첫 직감이 진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말 유령이 돼버렸네, 선생님.”

“응, 그런 것 같아. 그렇다고 해도 딱히 기억나는 건 없지만.”

만질 수 없는 식기, 마주치지 않는 시선.

평소와 같은 정장 차림으로 남자는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의 기억 또한 소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죽었다고 생각한 다음 순간─눈을 떴을 때는 키보토스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사 같은 건 보이지 않았지만, 저세상으로 가는 도중이었을까.

멍하니 생각하다가 아래 세상을 유심히 살펴본 순간이었다.

“그랬더니 네가 보였거든. 그래서 서둘러 날아온 거야.”

“…그렇구나. 응, 고마워.”

그는 그 나름대로 안심한 모양이었다.

몇 초만 더 늦었어도 그녀는 분명 뛰어내렸을 테니까.

책상에 턱을 괴려다 손이 쑥 빠져버린다.

유령 생활에는 익숙하지 않은지 조금 당황하는 그의 눈앞에서…오토기는 스푼을 내려놓으며 문득 물었다.

“근데 말이야, 왜 ‘오늘’이었어?”

49재라고도 하지만, 조금 애매한 타이밍이었다.

시간은 꽤 흘렀다.

죽은 날로부터도, 장례식으로부터도. 눈을 뜨자마자 온 거라면 깨어난 건 바로 오늘이었을 테고─그래서.

하나의 답을 구하며 소녀가 기대 섞인 시선을 보내자.

“…데이트. 나도 기대하고 있었거든.”

수줍게 웃으며 그리운 사람이 말해주었다.

기뻤다, 울 것 같았다…….

그만큼 역시나 죽고 싶어졌다.

다시 만난 건 기쁘지만, 결국 데이트는 이루어지지 못한 채 끝났으니까.

그리고 오토기도 알고 있었다.

이런 순간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저기. 선생님도 잘 모르겠지만, ‘언제까지’ 있을 수 있는 거야?”

어떤 이야기든 마찬가지다.

유령은 성불하기 마련이니까.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밖의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소리 없는 한숨을 내쉬고는 손가락을 펴 보였다.

셋.

반투명한 손가락 너머로 씁쓸한 미소가 비치고 있었다.

“왠지 알 것 같아.

사흘 뒤. 올해가 끝나고 새해가 밝는 동시에 난 아마 사라질 거야.”

“…그렇구나.”

그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신에게 따지고도 싶지만, 그것이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현재도 미래도 산 자의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사라져 버린다면, 역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도중에 식욕도 사라져 버려 콘수프는 식어만 갔다.

그런 그녀를 생각해서인지 유령 선생은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오토기, 사흘이나 있잖아. 그렇다면─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것은 분명 흔한 ‘옛날이야기’.

이별의 날로부터 한 달 남짓, 올해가 끝나기까지 조금 더.

남겨진 마지막 시간에 그는 그녀를 유혹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그래도.

“─데이트하자, 오토기.”

창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사라지고, 시계의 초침이 딱 멈춘다.

얼어붙은 시간 속에서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을 대신할, 전하지 못한 마음의 연장선을.

두 개의 소망이 겹치며 ‘오토기의 이야기’가 막을 올린다.

“그럼 선생님? 후훗, 어디로 갈까.”

어디에나 있을 법한, 기적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부족한─.

서로를 생각하는 두 사람의 평범한 나날들.

<3>

첫째 날은 수족관이었다.

티켓은 원래 가지고 있었다,

유효 기간도 아직 넉넉했다.

하지만 굳이 쓰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이 추억을 덧칠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저기요, 선생님. 이 수조에는 뭐가 들어있을 것 같아……?”

“게라고 적혀 있네. 왜 드럼통 같은 디자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희한한 전시물 앞에서 두 사람은 소박하게 웃음을 나누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유리창에도 폐쇄회로 TV에도 찍히지 않는다.

혼잣말을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우려 따위 소녀는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사흘이란 시간은 눈 깜짝할 새 지나가 버릴 테니까.

“저기, 선생님. 선생님은 좋아하는 물고기 같은 거 있어?”

관람로에서 벗어난 벤치, 어둠 속에 단둘이 남았다.

잠시 생각하더니 그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린란드상어─이곳에는 없지만, 말 그대로 상어의 일종이란다.

왜냐고 물어보니 대답은 단 하나였다.

“…오래 산다고 하더라고. 백 년, 아니 이백 년도 넘게.”

쓸쓸한 미소.

그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그 또한 소녀와 마찬가지였다.

죽고 싶지 않았고, 더 살고 싶었다.

본심을 드러내지 않는 건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마지막 시간을 ‘슬픈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담담하게 깎여 나가는 타임 리미트.

미련도 후회도 삼킨 채, 예쁘게 차려입은 소녀는 웃어 보였다.

“가자, 선생님!”

사실 오토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수족관에 오는 것도, 이렇게 누군가와 데이트하는 것도.

그리고…마지막으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서, 다른 누구도 생각할 수 없어서─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이 또 있을 거라 생각되지 않았으니까.

둘째 날은 놀이공원이었다.

데이트 코스로는 너무 뻔한가.

둘 다 걱정했던 모양이지만, 뒤집어 생각하면…그렇다, 절대 ‘실패할 리 없다’.

머리띠는 씌워줄 수 없었지만, 츄러스는 혼자 먹기에 너무 컸지만.

조금 붐비는 놀이공원에서의 한 걸음 한 걸음이 꼭 동화 같았다.

“다, 다녀왔어……. 선생님, 그렇게 돼버리는구나.”

“…응. 왔어, 오토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올라탄 롤러코스터.

그는 둥둥 ‘떠 있는’ 상태라 출발 지점에 고정된 채였다─그런 그와 재회하니 역시나 조금 웃음이 났다.

그렇다면, 하고 같이 타 본 관람차.

이번에는 대성공이었다.

흐르는 시간은 사랑스러웠다.

영원하길 바랄 정도로 보이는 노을이…원망스러울 정도로.

“시간상 이제 하나 남았나. 저기 선생님, 마지막은 어디로─”

둘만의 시간을 마치고 서둘러 달려가던 도중.

소녀가 발걸음을 멈춘 건 사람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은 조금 높이 뜰 수 있고, 오토기는 누구보다 눈이 좋다.

그렇기에 그 중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깜짝 프러포즈가 진행 중인 모양이었다.

“…후훗, 다행이다.”

거절당하면 어떡하지─둘이 눈을 맞췄지만, 다행히 대성공이었다.

막 맺어진 커플은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흩어지는 군중 곁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무언가 말하고 싶어서 소녀가 입을 열려던 찰나.

“…오토기. 너도 언젠가 멋진 사람을 만나렴.”

무슨 말을 돌려줘야 했을까.

쓸쓸한 미소에, 반투명한 몸 너머로 보이는 노을에.

작별 선물로 건네는 마지막 말.

진의를 알지 못한 채 마지막 날이 시작되고 만다.

12월 31일.

영원 같았던 올 한 해가 이제 곧 끝난다.

셋째 날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샬레와 백귀야행 구석구석을 돌았다.

서로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길을.

점점 옅어져 가는 그의 곁에서 작아지는 목소리를 들었다.

만남은 이른 아침이었는데, 아침밥도 아직이었는데.

눈물을 참고 있는 사이 해는 속절없이 저물어 갔다.

작별 인사 대신할 말은 찾지 못했다.

“저기, 선생님. 안 된다는 거 알지만.”

다시 돌아온 D.U., 까마귀가 우는 대로변.

그가 그로 남아있을 수 있을 때, 아직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

소녀가 중얼거린 것은 숨김없는 진심이었다.

먹구름 낀 미래에 바치는 단 하나의 기도였다.

“역시 말이야. 나도 죽으면 안 될까?”

소녀는 분명 미래로 가고 싶지 않았다.

슬픔은 가라앉았고 소중한 추억이 되었지만, 당연하게도 곧 내년이 온다.

새로운 나날이 오고, 그가 없는 매일이 지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기억은 모두 희미해질 뿐이다.

“오토기. 유감이지만 넌 앞으로도…….”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잊어버리는 게 무서운 거야.”

투명한 손을 잡으려 해도 자신의 손만 맞닿을 뿐.

그래도 상관없다며 체념하고 움켜쥔 손은 기도하는 형상이었다.

오토기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어

딘가 냉정하고, 좋든 싫든 강인해서 저 동상처럼 되지는 못한다.

그림자만을 그리워하며 살지는 못하고 새로운 누군가를 찾아낼 것이다.

그를. 언젠가는 분명 가장 사랑했던 그를…앨범 속에 가두어 버릴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뿐이야. 그러니까 제발. 가장 좋아하는 채로 끝내고 싶어.”

열일곱 살인 지금, 첫사랑을 간직한 소녀인 채로.

놀이공원에서 말했던 ‘누군가’ 따위 찾지 않고 그와 함께 끝내고 싶다.

그렇게 바라지만…역시 선생의 대답은 하나뿐이었다.

“안 돼, 오토기. 난 네 마음에는…답해줄 수 없어.”

내일이 온다.

어느덧 하루도 끝나가고, 두 사람의 갈등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로변은 시끌벅적해졌다─

이유는 단 하나, 한 해가 끝나기 때문이다.

끝나버린다.

모든 게 아직 그대로인데─그 시간은 기어코 오고야 만다.

“…싫어. 싫어요, 선생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들뜬 숫자들이 스크린에 비치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밤공기에 울려 퍼진다.

새해맞이 카운트다운,

새로운 나날이 시작되려 한다.

그러니, 하지만, 그전에, 그래도.

─5!

어두운 밤의 끝자락, 점점 옅어져 가는 수척한 남자.

그 손을 소녀는 잡고 싶었다.

허락된다면 역시 안아주고 싶었다.

그런데도 손과 팔은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남자 또한 마지막으로 만지고 싶었지만…죽은 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현재도 미래도 산 자의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마음도 손가락도 겹쳐지지 않은 채.

─4!

끝은 이제 곧 다가온다.

영원 같은 찰나의 순간, 영구히 풀리지 않는 겨울밤.

슬프지만, 미련투성이지만…다시 한번 만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그러니 적어도…웃고 있자.

그렇게 생각하며 소녀가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여우 귀가 흔들리고 연녹색 눈동자가 빛난다.

다음 숫자까지의 찰나, 아무래도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미안, 좋아했어.”

“…어?”

─3!

이야기의 갈무리, 에필로그의 끝자락.

죽음의 공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련한 눈동자 때문이었을까.

남자가 흘린 것은 줄곧 숨겨왔던 단 하나의 진심이었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선생’으로 남으려 애썼고 다른 모든 유혹은 거절해 왔는데.

어째서.

그녀의 권유에만 그는 고개를 끄덕였던 것일까?

─2!

“어째서. 왜, 인제 와서…….”

무책임한 고백에 소녀의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분명 짝사랑이었다고, 동경이었을 거라고 믿었다면 그렇게 끝났을 텐데…….

그런데.

줄곧 마음이 통해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 그것은 사랑의 성립이 된다.

앞으로 몇 번의 겨울이 와도 절대 풀리지 않는 저주가 된다.

─1!

“…미안해.”

만화나 애니메이션과는 다르다.

편리하게 시간이 늘어나 주지는 않는다.

일 초─단 일 초.

대사도 마음도 입 밖에 나오지 않는다.

묻기에도 대답하기에도 너무나 짧은 시간.

그 ‘세 글자’는 무슨 뜻인지,

사실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묻고 싶어도 시간 초과다.

올 한 해는 이제 끝이니까─그러니, 그러니까.

허락된 시간 동안, 수천수만 마디 말 대신.

사라져 가는 남자는 무릎을 굽히고, 울 것 같은 눈으로 웃어 보이며.

─0!

유령인 남자는 키스를 했다.

입술은 겹쳐지지 않았고 어깨에 얹은 손은 투명하게 지나갔지만.

눈물을 흘리는 소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입맞춤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저 그뿐인 사흘이었다.

─Happy new year!

불꽃이 터지고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선명한 빛에 녹아들듯 유령인 그는 사라져 버렸다.

기적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고 마법 같은 건 실현되지 못했다.

꽃다발 하나 남지 않은 채 소녀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현재도 미래도 산 자의 것이다.

그녀가 무엇을 선택할지─그것은 분명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해피 뉴 이어, 선생님.”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된다.

그가 없는 백 년이 시작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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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6.09.09번역

소설 핫산) 사랑과 영혼

#소설
좋아요 0댓글 5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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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X
haito_0419작가
게시물 34개
고DC
고관위번역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X
게시일2026.09.09 00:02
조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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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나
ㅇDC
ㅇㅇ126.09.09
디시콘
ㅇDC
ㅇㅇ226.09.09

아

ㅇDC
ㅇㅇ326.09.09
디시콘
ㅇDC
ㅇㅇ426.09.12

잠만 화상 입은 오토기랑 결혼하고 바로 뒤진거임???

고DC
고관위작성자26.09.13

평행이겠죠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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