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projectmx&no=10229047(1~100, 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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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아래 아스팔트 도로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정신을 잃었던 소녀는, 어두운 하늘 밑에서 풀바닥 위에서 정신을 차렸다. 너무나 확 변해버린 환경에, 조마에 사오리는 눈을 깜박여댈 뿐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보이는 것은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 느껴지는 것은 습기를 머금은 흙과 이파리들이었다. 눈을 비비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봐도, 그녀가 보고 느끼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숲?"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사오리는 그녀답게, 침착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더라. 그래, 분명 고속도로 위에서 발키리 녀석들하고 전투를 치뤘었지.'
Rabbit 소대와 발키리의 협공, 정체불명의 괴물의 출현. 이 모든 것들을 버텨내고 겨우 도주에 성공하나 싶었지만, 그런 그녀 앞엔 최악의 적이 나타나 버리고 말았다.
'소라사키 히나가 나타났어. 그리고...'
그건 감당할 수 없는 적이었다. 모두가 바닥까지 힘을 끌어내서 싸워봤지만 발광하는 소라사키 히나는 말 그대로 마왕이었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마왕 앞에선, 용사의 빛의 검 역시 소용이 없었다. 레이드는 실패했고, 남은 건 잔혹한 처형이었다.
"웁, 우에에엑...."
뼈가 박살나고, 근육이 뭉개지고, 어느 순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그 후유증이 정신에 제대로 남아 바닥에 내용물을 끊임없이 게워내었다. 정신은 원하지 않았지만, 한 번 열린 수도꼭지는 좀처럼 닫히지 않았다.
더이상 나올 것도 없었음에도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뜨겁고 쓰린 것으 계속해서 속을 태워버리고, 이건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문제였다. 몸이 멈출 때까지는 계속 이래야만 했다.
"끄허억.. 으억.."
그리고 1분 가까이 헛구역질과 구역질을 반복한 끝에, 소녀는 겨우 수도꼭지를 잠글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사오리는 다시 몸을 다스리며 진정해야만 했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고는 근처에 있었던 바위에 몸을 기대었다. 바위의 차가움이 들끓는 속과 정신을 식혀주기라도 한 걸까? 그녀는 다시 정신을 붙들 수 있었다.
"후우...."
사오리는 다시 생각에 빠졌고, 계속해서 상황을 되짚었다. 소라사키 히나를 막다가 정말 죽어가고 있었고, 의식도 감각도 흐려져갈 때쯤 마지막으로 본 것은 선생의 얼굴. 마지막으로 생각났던 것은 아리우스 스쿼드의 모습. 이제 자신도 끝이구나 싶어 눈을 감았었는데, 이렇게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사오리는 거대한 모순을 인지하였다.
"왜 몸이 멀쩡한 거지? 성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없었는데.."
온몸의 뼈가 부러지고 살이 뭉개졌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박살이 나버렸었다. 감각이 전부 사라져버렸을 정도로 심각하게 망가졌던 몸이었는데, 지금은 멀쩡했다. 팔도, 다리도 잘만 움직여졌고 얼굴을 만져봐도 상처 하나 없었다. 구역질을 제외하곤 모든 게 괜찮았다. 괜찮으면 안 되는데, 괜찮았다.
볼을 잡아당겨 꼬집어봤지만, 고통은 생생히 느껴졌다. 그렇기에 사오리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뭐야, 대체...'
살아있나, 아님 죽어있는 것인가. 꿈은 아니다. 그럼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계속되는 혼란에 머리가 다시 어지러워지고 있었다. 그래선 안 되었기에, 일어나 주위를 걸어보면서 파악하고자 했다.
'어두워.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다...'
-툭.
'?'
발밑에 뭔가 채이는 듯한 감각이 들자, 사오리는 바로 밑을 바라보았다.
'이건..?'
손에 쥐어 들어올렸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이 하이얀 태블릿, 그리고.. 그 위에 올려져 있는 노란색의 카드까지.
'이건 선생이 들고 다니던..? 아?'
이 순간, 사오리의 머리에는 벼락이 내리쳤다. 소녀는 지금 가장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가장 먼저 떠올려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선생...'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급해졌다. 그리고 이내 다른 이들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츠코, 미사키, 히요리!'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며, 여기 있는 전부가 들을 수 있도록 목청껏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선생!!! 아츠코!!! 미사키!!! 히요리!!!"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부르는 소리는 숲 안쪽으로 빨려들어갈 뿐이었다. 그래서 더 소리를 높였다.
"다들 어디 있나!! 들리면 대답해!!!"
-사아아아....
하지만 들리는 건 그저 바람소리일뿐. 목소리도, 울음소리 비수므리한 것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녀의 마음에 불안감이 커져만 갔다.
'다들 어떻게 된 거야.. 나만 여기에 있는 건가?'
혼란 속에서 사오리는 어느새 자신이 있던 원래 자리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어느새 눈이 암흑이 익숙해졌을까? 어둠 속에서 흐려져있던 것들이 다시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미사키!"
등잔 밑이 어두웠다. 불과 몇 m 되지도 않는 거리에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앞만 보고 가느라 정작 뒤를 보지 못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었지만 어떤가, 중요한 건 자신의 동생을 찾았다는 것이었다. 어깨를 붙잡고 세차게 흔들어대며, 사오리는 미사키를 깨우려 했다.
"미사키, 일어나봐라, 미사키!"
"으윽..."
다행히도, 헤일로가 선홍빛을 내며 떠오르고 있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소녀의 눈 역시 뜨여지는 것이었다.
"으... 뭐야.."
"미사키, 내 말 들리나?"
"아, 시끄러워.. 너 누구.. 어... 리더?"
"그래, 나다. 정신이 드나?"
사오리가 그러했듯, 미사키 역시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낯선 공간, 바뀌어진 시간대, 혼란스러운 정신.
"대체 여긴 어디... 으윽.."
하지만 다른 것이 있다면, 미사키는 부상의 후유증이 남아있었다. 팔과 머리에 가해졌던 총상도, 죽기 직전까지 졸렸던 목에도, 그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던 것이었다.
"더럽게 아프네, 꿈은 아니라는 건데.."
"괜찮은 거냐..?"
"내가 언제 괜찮은 적이 있었나..?"
"그래, 괜찮은 거 같군."
미사키를 완전히 깨우고 나자, 사오리의 눈에는 남은 두 명의 동생도 들어오게 되었다. 히요리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쓰러져 있었다.
"근데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설명 좀.."
"일단 그건 히요리하고 공주를 깨운 뒤에 이야기하자."
그 말에 미사키가 뒤를 돌아보았다. 암순응이 아직 되지 않아 실루엣만 보이긴 했지만 몇 년을 같이 지내서일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히요리, 잠 그만 자고 일어나봐."
"흐으으..."
"공주, 정신차려라."
"으응...?"
민트색과 은색의 빛이 소녀들의 머리 위에서 발하니, 이내 둘 역시도 의식을 찾았다.
"후, 후으... 리더, 미사키 씨?"
"...삿 짱? 그리고 모두..."
그렇게 아리우스 스쿼드 전원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이 모습에 사오리는 속으로 안도했다.
'전부 무사한 건가. 다행이다..'
그리고 지금 히요리가 고개를 계속 돌리며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표정이 조금 찡그러진 채 모두에게 묻는 것이었다.
"그, 그런데, 분명 우리는 도로 위에서..어, 어떻게 된 거였죠?"
"뭘 어떻게 돼, 당했었잖아. 소라사키 히나한테."
"그랬나요... 그랬죠. 여, 역시 당해내지 못했던 걸까요.. 그, 그럼 여긴 어디죠?"
"나도 몰라. 그리고 아무도 모를 걸."
미사키의 대답을 듣고나자 히요리는 눈을 몇 번 꿈뻑거렸다. 그리고 이내 소녀는 완전히 얼굴이 울상이 되더니, 그대로 빼앵 소리릴 지르는 것이었다.
"뿌에에에에엥!!!!! 우린 거기서 다 죽었던 거에요!! 제 인생은 거기서 끝나버린 거군요!! 아직 사지 못한 잡지도 많은데!!"
"뭐라고?"
"부질없는 인생이었어요!! 이제 우리는 다시 태어나든가 아니면.."
-까앙!
"악!"
헛소리에는 매가 약이다. 미사키응 히요리의 이마에 곧바로 알밤 한 대를 먹여줬다.
"죽긴 뭘 죽어?! 이상한 소리 마!"
"하, 하지만.. 그렇잖아요! 눈 떠보니 본 적도 없는 곳에 놓여있고! 그렇게 당했는데, 거기서 살 수 있을리가..."
"어떻게 잘 됐겠지 뭐! 재수없는 소리 마."
"자, 얘들아. 둘 다 진정하고... 윽?"
둘을 진정시키려던 아츠코가 오른팔을 부여잡으며 무릎을 꿇었다. 마스크도 없었기에 괴로움이 가득한 얼굴이 바로 드러났고, 둘은 바로 언쟁 아닌 언쟁을 멈추고 아츠코에게 다가갔다.
"괘, 괜찮아요?"
"...으흐으윽.."
아리스의 레일건을 튕겨냈던 발차기를 맞았던 바로 그 오른팔. 제대로 된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방치되었으니, 통증이 대단했을 터였다.
"공주... 잠깐만 기다려봐."
다행히 이곳은 숲, 부목으로 쓸 나뭇가지같은 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엮을 옷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히요리, 망토 좀 벗어봐라."
"아, 네..!"
히요리의 망토를 부목을 묶을 끈으로 사용해, 이내 사오리는 아츠코에게 처치를 마쳤다.
"그, 그런데.. 이런 상황이 됐는데도 왜 그 드론은 나타나지 않는 걸까요.. 공주가 위험할 때마다 항상 나타났었는데.."
"그러게, 못 본지 한참 된 거 같아..."
아츠코가 위급할 때마다 자동으로 나타나던 치유 드론, 하지만 어째서인지 선생에게 해주가 된 이후로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선생의 부상을 그 드론으로 치료해보려고 시도했지만,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여하튼 하나는 확실해졌네, 여기가 적어도 저승은 아니야."
"그, 그럼 우린 아직 살아있는 거군요.. 헤헤."
".........."
지금 아츠코는 사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주변을 정신없이 걸어다니며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는 듯 했다.
"삿 짱? 왜 그래?"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나왔다.
"선생, 선생! 어딨어!"
그리고 그 순간, 모두의 얼굴이 일순간 굳었다. 제일 먼저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왜 잊어버린 것이었을까.
"선생!!! 어디 있어!!"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다들 뭘 해야 할 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 행동으로 옮겼다.
"선, 선생님..! 어디 계신가요...!"
"어디 있어!"
"들리면 대답해 봐!!"
급작스럽게 진행된 선생 수색, 모두가 애타게 돌아다니며 찾기 시작했지만 선생은 찾을 수 없었다. 싯딤의 상자도, 어른의 카드도 남아있었지만 정작 그것들의 주인인 선생은 찾을 수 없었다.
"제발...."
간절함으로 선생을 찾을 수 있었다면 아마 지금 선생을 백 번은 찾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찾으면 찾을수록 '선생은 여기에 없다'는 사실만을 검증할 뿐이었다.
"잠깐만, 일단 다시 모여 봐. 이런 식으로는 못 찾을 거 같아."
미사키가 바로 모두를 다시 호출하지만, 한 명은 들리는 지 안 들리는 지 계속해서 혼자 수색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 어디야. 선생...! 선생!!"
자기도 모르게 더 깊은 곳으로 몸이 움직이려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사오리가 뒤를 돌아보자, 미사키의 얼굴이 보이고 있었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내 말 못 들었어? 모이라니까!"
"어...? 하지만 선생을..."
"이런 식으로 찾으면 우리까지 찢어져. 일단 와."
"어....."
"일단 와, 리더답지 않게 왜 이래?"
"..그, 그래야지..."
그렇게 미사키에 의해 사오리가 끌려나와지는 형태로, 아리우스 스쿼드는 다시 뭉쳤다. 그리고 소녀들은, 사오리가 꼭 쥐고 있는 싯딤의 상자와 어른의 카드를 보게 되었다.
"삿 짱, 그건 선생님 거였지..?"
".........."
"삿 짱?"
"리더..?"
"..............."
"언니!"
얼이 빠져있는 사오리를 보다 못한 미사키가 한 번 더 소리를 쳤다.
"어.. 무슨 이야기 중이었지..?"
"...아까부터 뭐하는 거야."
"미안하다."
"아니, 미안한 게 아니라.."
평소의 사오리라면 절대로 보이지 않았을 태도였다. 이미 정신줄을 거의 다 놓고 있었던 그녀는, 누군가 붙잡아주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러니까, 뭐였더라. 그래, 선생, 선생을 찾아야 하는데.. 어, 어디로 갔지?"
침착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녀에게 남은 건 조급함밖에 없었다. 머릿속엔 그저 빨리 선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이젠 안 돼, 내가, 내가 옆에 있어야 해. 그런데 어, 어디로 간 거야.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지금 무사하긴 한 거야..?'
남아있는 건 그저 공포감과 불안. 그리고 사그라들 줄 모르는 끔찍한 상상뿐이었다. 자신 앞에서 먼지가 되어 사라진 그 모습이 너무나 또렷하게 떠오른다.
'찾아야 해. 찾아야 하는데, 지금 이러고 있어선 안 되는데. 내가, 내가..'
당장 그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떠나갈 것만 같았다.
'빨리, 어디든, 어떻게든...'
"야!"
그리고 다시 한 번 사오리의 정신줄을 붙잡아 주는 건, 아리우스 스쿼드의 임시 리더였다. 사오리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그녀에게, 미사키는 한숨을 쉬었다.
"언니가 이러면 우린 어떡해.. 일단 진정해."
"............"
다시 한 번 정신을 찾게 되자, 사오리에게 느껴지는 건 자괴감이었다. 지금 가장 침착하고 냉정해야 할 자신이, 그 누구보다도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행동해봐야 결코 선생을 찾을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만, 이 불안을 도저히 통제할 수가 없었다.
"미안, 미안하다. 내가.. 못난 모습을 보였다."
"리, 리더. 괜찮은 거..죠?"
히요리가 걱정스러운 듯 물어보자, 사오리는 바로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동생들도 의연하게 있는데, 언니인 자신이 이래선 안 되었다.
"괜찮다. 이제.. 괜찮아. 정신 차려야지."
"삿 짱.."
"리더, 정신이 이제 좀 들어?"
"그래.. 덕분에. 그러니까, 일단 앉아서 이야기를 좀 해보자."
***
우왕좌왕하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아리우스 스쿼드의 면모를 되찾은 소녀들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일단, 우리는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는 거로군."
일단 다른 선생 일행에게 상황을 알리고자 했던 그녀들이지만, 너무나 기막히게도 모두의 연락수단이 먹통이 되어버렸다. 사오리는 분실, 아츠코는 세리카와 연락하던 당시에 파괴, 미사키는 고장, 그리고 히요리는 방전. 소녀들은 완전히 고립되버리고 말았다.
"뿌에에엥..! 이럴 줄 알았으면 선생님이 폰 바꿔준다고 했을 때 진작에 바꾸는 거였는데..!"
"그런 얘긴 됐어, 히요리. 아무튼, 일단 여기가 어디인 지도 모르겠는데.. 모르는 게 당연한 거겠지?"
이 장소가 어디인지는 당연히 그 누구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우린 아무래도 납치를 당한 모양이다. 그리고 선생 역시 그렇게 된 것이겠지. 이 태블릿과 카드를 보면. 분명 선생도 같이 끌려왔을 터.."
모두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차라리 같이 납치당했다면 사정이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선생만 없었다. 그리고 그건 모두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우리는 이렇게 버려두고, 선생님만 납치해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같이 납치하거나 처음부터 선생님만 납치하는 거면 몰라도, 이런 건 이상하지 않아..?"
아츠코의 말에 모두가 무언의 긍정을 표했다. 대체 무슨 목적인지 영 파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있지. 적어도 납치범의 정체가 분명 이 모든 일을 벌인 흑막일 거야. 그리고 지금, 그리 멀지 않은 것에 그 녀석이 있겠지."
자신들에게 선생을 증오하게 만들고, 발광 현상을 일으켜 키보토스를 혼란에 빠트리고, 정체불명의 괴물까지 만들어낸 녀석. 그리고 그 말은 반드시 해치워야 할 적이라는 말이기도 하였다.
-뿌드득...
생명의 은인을 자신의 손으로 공격하게 만든 장본인, 선생을 저주라는 고통 속에 빠트리게 만든 원인. 그런 자를 생각하니 사오리는 이빨이 뿌득뿌득 갈렸다.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잡아서 심판해야 할 자였다.
'내 반드시.. 죽여버리고 말 거다..'
방금 전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모습와는 다르게, 이제는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자신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소녀의 감정 기복이 거세어져갔다.
"..사, 사오리 언니..?"
하지만 이내 그 분노도, 히요리의 웅얼대는 소리와 함께 일단 다시 내려갔다. 다시 원래의 표정을 되찾은 사오리는, 이내 질문의 저의를 물었다.
"왜 그러나, 히요리?"
"생각해 봤는데.. 그 태블릿 있잖아요..? 우리가.. 쓸 수 없어요?"
"...이거 말하는 건가."
싯딤의 상자. 선생이 애용하는 키보토스 최고 수준의 방어 무기지만, 원래 용도는 태블릿. 만약 작동만 한다면, 분명 연락수단으로 쓸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때 분명 방전되지 않았나. 소용없을 거다. 그리고.. 애초에 이건 선생만 쓸 수 있었어. 무슨 구조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건드려도 어떤 반응도 없었다..."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생각해보니, 시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사오리는 그냥 전원버튼을 꾹 눌러보았다.
"뭐, 당연히 켜지는 일은 없..?"
-위잉...
분명 모든 전력을 다 썼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 사오리의 손에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태블릿을 쳐다보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켜, 켜지고 있어요!"
싯딤의 상자에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어안이 벙벙했지만, 상관없었다. 켜진다는 게 중요했다. 이내 화면은 검은 바탕에서 벗어나, 푸른 화면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걸로.. 어떻게 되는 건가?"
라고 잠시 생각했던 찰나, 가장 중요한 절차가 사오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패스워드를 입력해주십시오.
"패스워드?"
그랬다. 그때 선생이 싯딤의 상자를 킬 때도, 분명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나서야 작동할 수 있었다.
'그때 선생이 뭐라고 말했더라? 분명... 우리는 원한다고 했는데.'
너무 오래 전의 일이었다. 스쳐지나가듯 들은 패스워드를 기억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이건 중요했다, 어떻게든 기억해내야만 했다.
"우리는.. 우리는.. 그.. 우리는.."
-패스워드가 틀렸습니다, 다시 입력해 주십시오.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껏 작동을 시켰는데 이래서야 말짱 도루묵이었다.
'포기해야 하나..?'
-우리는 원한다, 일곱 개의 통곡을. 우리는 기억한다, 에리코의 화두를.
"?"
순간, 사오리의 머릿속에 선생의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사오리는 곧바로 이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그대로 베꼈다.
"우리는 원한다, 일곱 개의 통곡을. 우리는 기억한다, 에리코의 화두를!"
그리고 그 순간, 화면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올바른 암호를 외쳤으니 문은 열리는 법. 화면이 잠시 검게 변하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새로운 화면으로 변화하는 것이었다.
"교실...?"
-으아아아앙!!! 선생님!!! 이대로 영원히 못 만나는 줄 알았어요!!!
하늘색 머리의 소녀가 곧바로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기세로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펑펑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으아아앙.. 선생님..!
-선배, 진정하세요..! 지금 상황 파악부터 해야 합니다. 이 전력으로는 언제 다시 꺼질 지 모릅니다!
그리고 하얀 머리의 소녀가 바로 하늘색 머리의 소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이내 이럴 시간도 없다고 생각했는지 바로 화면 밖으로 고개를 들어올려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이십니까? 정말 다행입니다. 지금... 어떻게.. 응?
하지만, 소녀가 본 것은 선생이 아니었다. 푸른 머리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소녀가 선생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어..? 아로나 선배, 잠깐 여길 보십시오.
-으아앙.. 아로나는, 아로나는...
-뭔가 이상합니다.
-...네?
눈물과 콧물을 소매로 닦아내며 겨우 고개를 들어올린 소녀는 말 그대로 표정이 완전히 얼이 빠져버렸다. 분명 다시 전원이 켜졌다면 그 자리엔 선생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있는 건 다른 소녀였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선생님은?
사오리는 당황스러웠다. 분명 이 둘을 만난 적은 있다. 그리고 그때 그 자신에게 감사를 표했던 그 두 소녀가 분명했다. 하지만 그때와는 무언가 달랐다.
"왜..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네? 어라? 우리.. 말이 들려요?
"....그런 거 같은데."
아로나와 프라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서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다가, 이내 프라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사오리를 바라보았다.
-확인,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그리고 사오리는, 그녀들에게 바로 대답했다.
"잘 들린다. 매우 잘 들려.."
자격이 없는 자는 싯딤의 상자를 열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
-프라나 짱,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무래도,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네?
싯딤의 상자는, 지금 느닷없이 새 주인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후기-
https://novelpia.com/novel/230625
목요일 연재까지 한 뒤 시험기간이라 휴재에 들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댓글 25
오늘은 일찍 잘 수 있다
영혼 떡밥이 사오리의 싯딤의 상자 가동으로 이어지네ㄷㄷ
선개추후감상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겠네." 실현되는건가 ㅋㅋㅋ
선샌니 조각 들어가서 이제 싯딤상자 접근권한이 생겼나보네..너무재밌게 보고있음
사오리가 상처입어도 저주 풀리면 ㄹㅇ개꼴리겠노
와 시발 생각해보니 그럴수도있네
와 씨 이건 생각도 못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