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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호 페어는 병결을 얻어내기 위해 사무국으로 향한다.
아아, 혹독한 겨울에 눈물마저 얼어버린 것인가? 고통으로 땀범벅이 된 시구레를 보고도 나서주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정학을 먹은 주제에 사무국을 활보하는 둘에게 아니꼬운 시선이 모인다.
"체리노 회장님~! 체리노 회장님~! 큰일 났어요!"
한창 코코아 한잔 때리고 낮잠을 취할 시기이거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신경을 긁자 눈쌀을 찌푸린다.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서 무슨 소란인가! 제대로 절차를 밟으란 말이다 에로 꼬맹이!"
"하아? 누가 누구더러 꼬맹이라는... 아니다. 후우"
난방 아래에서 형성된 윤택한 피부를 볼 때마다, 노도카는 지난 간의 설움이 터지려 했지만 친구를 위해 참았다.
"회장님. 예를 갖추지 못해서 정말 송구합니다만, 제 친구 시구레쨩이 아파서-"
"짧구만"
"뭐, 뭐요?"
"이 몸이 맡고 있는 직책이 고작 학생회장 하나 같나? 제대로, 천천히. 내가 맡고 있는 중책들을 나열해보아라! 그러면 친히 요청을 들어주지"
이런. 저번에 꼬맹이라고 불린 걸 아직까지 마음에 품고 있나 보다. 노도카는 앙금을 풀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본다.
"그니까... 미화부장 겸 서기장 겸 청소부장 겸... 선도부장 겸... 이달의 직원 겸... 선수겸 감독..."
"떽! 완전히 지어내고 있구만! 불순분자를 베풀 정도의 아량은 내게 없다!"
"아앙~! 제발! 거의 죽어가고 있는 거 안보여요!? 통풍이라고요 통풍!"
"통풍? 그 간단한 걸 해결 못하는 건가?"
체리노는 토모에를 시켜 창문을 조금 개방하였다.
"짠~ 이걸로 통풍 해결이다."
"장난할 때냐고요! 그리고 구교사에선 24시간 통풍이라고!"
"왜 이리 극성인지 모르겠구만~ 잔병치레 같은 건 혹독한 붉은 겨울에서 일상 아닌가? 이 몸도 요즘 감기 기운으로 목소리가 변해버렸어."
"꾸륵! 꾸르륵...!"
승자 없는 줄다리기 도중, 소강기에 접어들었던 시구레의 통증이 재발되었다.
발작이라도 온 듯 쓰러진 뒤에도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그야말로 생체 로봇 청소기가 따로 없는 움직임
"께룱! 커흐흐... 커흑...!"
온 몸의 수분이 말라버려 눈물과 콧물 대신 마른 기침이 나오는 광경은 보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시구레쨩! 시구레쨩! 으아앙~ 어떡해!"
"아아...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왜, 왜 그래 시구레쨩?"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장이지... 하지만, 난 괜찮아. 이렇게 아픈만큼... 내가 노도카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었는지 알 수 있으니까. 평소엔 볼 수 없는 마음을 관측하였으니. 난 무가치하게 죽지 않아..."
반쯤 감긴 눈이지만 의연함이 묻어나 있었다. 시구레는 반복되는 고행 끝에 자신을 놓은 것 같았다.
"다들. 그런 눈으로 날 보지 말아줘. 자연의 섭리니까.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부모님들을 맺어 날 태어나게 해주었던 술이 이젠 날 죽이는 거니까. 전혀 슬퍼할 일이 아니지"
"저, 저건... 저 현상은!"
"아아. 맞아요 체리노 서기장님. 저건 중증이로군요."
무협인들의 회광반조. 헌터들의 사후넨.
이들과 동렬인 죽음에 대한 최후의 반발. 붉은 겨울 학생들의 특이.
암울한 상황일수록, 문학력이 급상승하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는 슬라브의 내력이다.
"보안위원장! 이 녀석을 당장 수송 차량에 싣게! 이대로 둔다면 학생들에게 우울을 전파한다!"
"네!"
그제서야 극한의 상황임을 인지한 체리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힘을 쓰기 시작한다.
빈털터리 신세인 특별반을 구제하기 위해 치료비 및 교통편을 지원하고, 용이한 치료를 위해 선생에게도 연락한다.
"마리나 위원장. 붉은 겨울의 여권은 영향력이 약하니 상급 의료 시설에 체류하기 힘들 수도 있을 겁니다. 샬레로 가 선생님의 도움을 요청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제게 맡겨주시죠."
차에 탄 뒤로도 시구레의 장광설이 계속 되어 마리나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감옥을 자유라 착각하니. 원죄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결국 삶은 순례의 길로 귀결되리라"
"머리가 어지러우니 정숙해주지 않겠나? 이 쪽은 초행길이라고... 으, 으앗!"
눈길이 사라지며 붉은 겨울에서 멀어졌나 싶었건만, 도로에 생긴 블랙 아이스 때문에 대차게 미끄러지며 가드레일을 박는다.
"다들 무사한가?"
"그래보여...?"
마리나는 차 밖으로 나가 파손된 범퍼를 확인하였다. 투페이스마냥 반쪽이 망가져 사무국의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이런... 간단한 임무도 제대로 수행 못한 걸 보여주면... 출세에 악영향이 생길 거야!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내 체면이!'
차에 올라탄 마리나의 표정이 방금과 상반된 걸 느끼자 노도카가 긴장하며 주시한다.
"저... 보안위원장님. 저흰 괜찮습니다. 출발해주세요."
"아아. 그래..."
허나 샬레로 나아가지 않고 핸들을 꺾어 U턴한다. 그녀는 회군을 결정한 것이다.
"저기요?! 방향이 반대인데!"
"알고 있다! 잠자코 내 작전에 동참해주도록!"
찐빠를 내 임무를 성공하고도 욕을 먹을 바엔, 차라리 혁명을 꿰한다.
그렇다면 실수로 생긴 트럭의 손상이, 반모를 노린 호랑이의 상처로 바뀐다.
어차피 붉은 겨울에서 쿠데타는 일상이니 이미지적으로 훨씬 낫다. 마리나치곤 날카로운 발상이었지만
'쾅!'
"께엑!"
생존을 위해 강해진 227호 특별반을 얕본 건 그녀다운 실수다.
총탄에 있는 화약을 꺼내 모닥불을 지피느라 맹수들의 습격을 백병전으로 상대한 둘이다.
노도카가 자기 덩치만한 망원경으로 머리를 가격하자 맥도 못추리고 눕는다.
'빠아아아앙~!'
엎어지느라 누르고 있는 크락션이 대신 마리나의 단말마를 전한다.
"잘했어...... 으윽!"
"조금만 참아줘 시구레쨩! 장롱 면허지만 일단 앞으론 갈테니깐!"
***
'쨍그랑!'
샬레 현관 유리문을 깨부수자 저절로 선생님이 호출되었다.
"또 무슨 일일까? 정말 신난다."
해탈한 표정으로 기어 나오지만 안색이 털색보다 파래진 시구레를 보자 총기가 돌아온다.
"특별반? 여긴 무슨 일이니?"
"선생님! 큰일이에요! 시구레쨩이 통풍에 걸렸어요!"
학생들에겐 관심 없는 소재이지만, 언제 희생자가 될 지 모르는 어른들에게 그 악마의 이름은 친숙했다.
더 이상 대화는 사치라는 듯 선생은 자신의 권한으로 키보토스 최고의 병원인 트리니티 종합병원으로 향한다.
"엄청 아팠겠네요. 발가락이 퉁퉁 부었는데 신발도 추위 때문에 굳은 상태라. 생고문이었을겁니다."
미네가 진찰을 할 동안 하나에가 의료 기구들을 가져온다.
"참기 힘들겠지만 얌전히 있어야 합니다. 하나에"
"내 이름은 시구레인데"
"아, 제 조수 이름이에요."
미네가 가르킨 곳엔 전기톱을 들고 각을 재고 있던 하나에가 서 있었다.
정말 여기가 키보토스 최고의 의료 시설이 맞는 걸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요산 수치를 낮추는 약을 처방해드리겠습니다. 저희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에요. 나머진 환자분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경고문을 건네준다. 요산에 안좋은 퓨린 과첨가 식품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제일 큰 글씨로 금주라 써있다.
"이건 날 두 번 죽이는 거라고 으으......"
"어머, 그러면 환부를 잘라드릴까요?"
"음... 삶의 낙을 위해서라면"
"시구레!"
"그만두시는게 나을 걸요. 엄지발가락을 자르면 균형 감각에 문제가 생기고 요산 결정이 다른 발가락 관절로 전이될 겁니다."
"히이잉..."
통증에 비해 위급하지 않다는 건 안도가 되었지만, 활력이 없는 시구레는 미소 없는 산타처럼 낯설어 마음이 걸린다.
"시구레. 이 참에 끊자. 학생이 음주를 하는 건 애초에 잘못된 거니까"
"알겠다구요......"
이렇게 축 처진 상태로 복귀하면 분명히 참지 못하고 또 술에 손을 댈 것 같은데.
결국 선생은 결단을 내린다. 각박한 삶의 즐거움을 잃었으니 그걸 대체해줘야 마땅하다.
"통풍이 호전될 때까지. 나랑 같이 샬레에서 지낼래?"
"으-응?! 정말?"
"진단서를 뗐으니까. 병결 신청을 도와줄게. 내 요청이라면 체리노도 승낙할 거야."
"흐음~ 정말 괜찮은 거야 선생님? 동침은 암묵적인 룰 위반인데"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이건 특수한 경우니까. 세이프 아닐까"
미네의 조언대로 침대에 시구레를 눕힌 다음 환부를 가슴보다 높게 매달았다.
"얼음 찜질이 효과적이라네"
"그 정도면 특별반에서도 가능한데. 역시 돌아갈게 선생님. 폐 끼치는 거 같으니까"
"아니. 자연 얼음이나 눈은 더러우니까. 여기서 제대로 받아야 해."
얼음팩을 발가락에 문지르자 진정이 된 듯 표정이 편안해진다.
"선생님~ 중요한 업무라고 말했잖아요."
"맞다... 잠깐 시구레가 하고 있어 볼래? 작성하던 서류가 있어서"
당번으로 온 유우카의 부름에 급히 사무실로 향한다.
"여기에도 사인 해주세요"
"선생니임! 끼야아앗!!!"
다시 펜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비명 소리가 휴게실에서 울려퍼진다.
황급히 달려가자 울상으로 바뀐 시구레가 있었다.
"손이 안 닿아서... 발가락이 아퍼!"
"아이고 미안해. 미처 그 생각을 못했네"
다시 뽀얀 발을 감싸 쥐어 찜질과 함께 마사지를 해주자 몸의 떨림이 완화되었다.
"......?"
걱정이 되어 쫓아온 유우카는 위화감을 느낀다.
시구레가 이상야릇한 표정으로 웃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기와 눈이 마주친 다음에
여성의 직감은 예리한 법. 그 위화감은 착각이 아니었다.
"아프지 마렴 시구레"
"으응..."
"하암~"
선생이 쓰다듬는 걸 멈출 때마다 살짝 손을 쳐 다시 쓰다듬게 만든다.
항상 잘 때마다 술을 마시던 버릇으로 생긴 불면증. 이라고 변명했으나 흑심이 가득해 보인다.
"시구레에~"
혹시나 몰라 망원경으로 염탐하던 노도카는 이를 갈았다.
선생이 곁에서 잠들자 힙플라스크에 담은 칵테일을 홀짝 거렸기 때문이다.
술냄새가 잘 나지 않을 정도로 가벼운 깔루아 밀크. 도수도 낮아서 발작의 염려도 없다.
"일부러 더디게 낫도록 하는 거지? 하여간 영악하다니깐!"
그래도 걱정하던 음주량이 확실히 줄어든 건 맞아서. 노도카는 특별히 눈 감아주도록 한다.
"일주일이 넘어도 안 돌아오면... 확 일러바칠 거니깐. 흥!"
이크! 시구레가 통풍에 걸려버렸어요. 完
댓글 14
상 다음에 하인데 왜 끝이 아닌거지?
선수겸 감독ㅋㅋㅋㅋ
근데 중편 아니고 하편임? 설마 하2 하3 이렇게 가냐
아 이게 완결이구나 짧은만큼 담백할지도

통풍보다 요로결석으로 하면 더 꿀잼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