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78자

5 콜래트럴 대미지
저, 키리후지 나기사는 각오를 다지고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평온했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화약 냄새와 온갖 비명소리로 물든 열차 안에서 저는 평소에는 사람에게 겨눌 일이 없었던 총을 쥐고 있습니다.
창 밖의 풍경만이 아까 전처럼 평온하게 흘러갈 뿐입니다. 네모난 창틀 속에 펼쳐지는 광경은 오히려 방금 전보다 더욱 찬란하게 보입니다.
그리고 밖에서 본다면 이 열차 내의 광경은 액션 영화에 나오는 어느 장면이 아닐까 싶겠지요.
“이제 곧 선두 칸이야. 나기사, 앞쪽은 나를 방패로 삼아도 돼. 후방만 주의해 줘.”
“아, 알겠습니다.”
다행히 아즈사 씨에게 도움을 구했던 제 판단이 틀리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전투력은 물론이고 게릴라전이 특기인 그녀에게 이런 상황도 적절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발목을 잡는 저에게 내리는 지시도 정확하고, 낯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헬멧을 쓴 학생들을 하나씩 쓰러뜨리고 있습니다.
왜인지 처음부터 곳곳에 설치해 두었다는 폭발물 건만 제외한다면 이보다 더 믿음직한 호위는 없을 겁니다. 적으로 돌리게 되면 최악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제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적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아. 지금 상태로 봐서는 나기사를 납치하려는 것 같지는 않네.”
“그렇다면 화물이 목적일까요.”
“그럴지도 몰라. 어느 쪽이든 우리가 먼저 앞쪽 칸을 제압해서 열차를 멈춰 버리면 해결돼.”
“비상 버튼이 작동하지 않는 게 마음에 걸리네요.”
“응. 전투원들 숙련도가 별로 높지도 않은데 그런 부분만큼은 확실하게 처리했어. 그런 점을 보면…”
그때 앞쪽 문이 열리고 헬멧을 쓴 교복 차림 학생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숫자는 여섯 명입니다.
“우르르 몰려오네. 끈질긴 녀석들이야.”
말하기가 무섭게 아즈사 씨는 뛰쳐나갔습니다.
바닥을 박차고 뛰어 좌석 등받이를 발판 삼아 천장에 닿기 직전까지 튀어오릅니다. 재주 좋게 공중에서 몸을 옆으로 회전시키자 긴 치마도 그에 따라 넓게 펼쳐졌습니다. 그녀의 가늘고 새하얀 다리의 아슬아슬한 부분까지 드러났습니다.
“검은색…”
그때 보였던 그것에 저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총알 낭비야.”
차가운 목소리로 그런 말을 했을 때 아즈사 씨는 앞쪽 차량 문 근처까지 이동해 있었습니다.
양손에는 무디게 빛나는 검은색 나이프가 두 자루.
방금 전에 살짝 보였던 저 나이프는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벨트로 고정되어 있었던 모양입니다.
“걱정 마. 피가 묻으면 청소하기 귀찮으니까.”
여섯 명의 쓴 헬멧이 쩌적 갈라지더니 땅바닥에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연이어 쓰러지는 불량학생들.
그 중에 한 명만이 쓰러지지 않고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드러난 그 맨얼굴은…
“! 당신은…!?”
“!? 설마 키리후지 나기사!?”
탕.
“아. 미안. 아는 사람이야?”
총구에서 연기를 내뿜으면서 약간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아즈사 씨.
“아뇨… 칼을 다루는 솜씨가 훌륭하시네요.”
“사람을 상대로 쓰는 건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제대로 쓰러뜨리지 못했어. 역시 이쪽이 더 빠르고 확실하네.”
그러더니 이번에는 쑥스러운 듯 웃으면서 총을 꼭 껴안습니다. 저렇게 웃는 얼굴만 놓고 보면 무척 사랑스러운 소녀에 지나지 않는데요.
다시 치마 속에 숨긴 저 검은 나이프 두 자루의 출처는 일단 제쳐두도록 하죠.
“그보다 저들의 목적을 알 것 같아요.”
“정말? 역시 아는 얼굴이었어?”
네. 범인 중에 그 사건으로 처벌받았던 트리니티 학생이, 파테르 분파 사람이 있어요.”
☆
“흠. 그래서 파테르 분파라는 게 뭔데.”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게헨나에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들입니다. 본인들이 옳다고 믿는 나머지 타인에 대한 배려를 등한시하는 점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호오. 뭐 그렇다면야 나는 뭐라 할 입장이 못 되겠네. 이제 와서 달라질 것 같지도 않지만.”
“그건 또 어떨까요. 적어도 당신은 본인이 해 왔던 것들이 나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 않았나요?”
“알고 있었다라. 꼭 내가 지금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처럼 말하네.”
“맞아요. 적어도 이 자리에서는 그렇겠죠. 저희는 같은 레일 위를 달리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니, 딱히 그럴듯한 말은 아니거든 그거?”
“그렇죠. 저도 그다지 말솜씨가 좋은 편은 아니기 때문에.”
“뭐? 그럼 나까지 말솜씨가 서투르다는 말로 들리는데?”
그렇게 미네와 나 사이에 오가는 대화, 그리고 옆에서 쿡쿡 웃는 수수녀.
이야기를 해 보니 미네도 은근히 재밌는 여자 같다.
소문으로는 뭐든지 다 박살내고 다니는 바보라는데, 이 녀석은 그래도 이 녀석 나름대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머리 회전이라든가 판단을 내리는 속도는 충분히 빠르다. 그렇지 않으면 단장이고 뭐고 되지 못했을 테니까, 구호기사단이라는 게 치료만 하는 시시한 단체라며 얕보이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바보같이 정직하다는 의미라면 딱 맞을지도 모르지만.
“자, 그럼 아즈사한테 연락해 볼까?”
“네. 정보를 공유하도록 하죠.”
미네에게 간단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물론 내가 보상을 목적으로 돕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도.
밧데리인지 파스텔인지 뭔지 하는 녀석들 이야기는 미네가 들어올렸던 카쿠카쿠 C가 잔뜩 쫄아서 술술 털어놓은 모양이다.
‘나야. 라브, 지금 몇 번째 칸이야?’
내가 모모톡을 스피커폰으로 바꿔서 연결하자 아즈사가 짧게 말했다.
“시라스 아즈사 씨. 오랜만, 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오모리 미네입니다.”
“나도 있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지금은 거의 꼬리 쪽에 있어.”
‘...잠시만 기다려. 나기사도 들을 수 있게 할게.’
어떻게 짐작했는지 아즈사도 곧바로 스피커폰으로 바꾼 모양이다.
‘미네 단장? 어째서 당신까지 이 열차에 계신 거죠?’
“구호가 필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운임은 이후에 사죄와 함께 치를 생각입니다.”
‘라브, 미네 단장. 나와 나기사는 열차를 덮친 녀석들의 목적이 게헨나에 이 열차를 충돌시키는 거라 판단했어. 비슷한 정보는 없어?”
“이견 없습니다. 파테르 분파의 어느 학생이 자백했습니다. 방법을 알아내기 전에 기절해 버린 탓에 전진해서 다른 학생에게 물어보려던 차에 라브 씨와 합류했습니다.”
‘알겠어. 이제부터는 내 추측인데, 아마도 화물 칸에 폭약이 대량으로 실려 있을 거야.’
“켁, 진짜로?”
“역시 그랬군요. 저는 지붕을 타고 여객 칸까지 오느라 맨 뒤에 있는 화물 칸은 확인해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선두 차량을 제압할 거야. 조금 위험하지만 나기사는 반드시 지킬 테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아즈사 씨. 단도직입적으로 여쭙겠습니다만, 나기사 님과 아직 갈등이 남아있지 않으신가요.”
‘없어. 나는 의뢰를 받았어. 나기사를 끝까지 호위하는 게 내 일이야. 그리고 만약 의뢰가 아니라고 해도 내 친구를 지킬 수 있을 만큼 훈련은 해.’
“...실례했습니다. 나기사 님께도 불쾌감을 드려 죄송합니다.”
‘아, 아뇨. 저도 방금 그 말을 듣고 각오했어요. 파테르 분파가 연루된 일이라면 티파티 호스트로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아즈사 씨와 함께 이 열차를 멈추게 만들겠습니다.’
“뭔가 막 분위기 타는 와중에 미안한데. 시간 별로 없잖아? 내가 뭘 하면 되는지 좀 알려줄래?”
이 녀석들이 지금까지 뭘 어쨌는지는 내 알 바가 아니다. 그게 나한테 이득이 된다면 모를까. 그저 기차가 쾅 갖다박아서 나기사 호위가 실패하는 것만큼은 피해야 할 뿐이다.
‘그래. 라브 말이 맞아. 어떤 수단을 써도 상관없어. 맨 뒤쪽 꼬리에 있는 화물 칸에 폭약이 있다면 처리해. 그쪽은 맡길게.’
“오케이. 그 대신에 보상은 얹어 줘. 그럼 끊는다.”
나는 핸드폰을 터치해서 끊고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목적은 분명합니다.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죠.”
미네는 왠지 모르게 만족스러운 듯이 웃는다. 딱히 기쁘지는 않지만 나랑 생각이 비슷하기는 해 보인다.
“그래서. 넌 언제까지 따라올 생각인데.”
“에…”
옆에서 계속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수수녀가 인상을 쓰면서 중얼거렸다.
“민폐가 된다면 그, 숨어 있을게요.”
“내가 민폐라고는 안 했잖아. 따라올 거야? 말 거야?”
“가, 갈게요…! 따라가게 해 주세요…!”
“제가 지키겠습니다. 순수한 마음은 구호할 가치가 있습니다.”
“뭐, 좋아. 자, 빨랑 시작하자고!”
6 언스토퍼블
“아즈사 씨. 돌입하기 전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어떤 거?”
장비를 최종 점검하면서 나는 대답했다.
“방금 전에 하신 말씀, 저는 무척 기뻤습니다. 그저 그뿐인데요… 그, 제가 의뢰한 내용에 친구처럼 대해주셨으면 한다는 부탁이 있었으니, 그렇게 하셨겠지만요.”
“......”
나는 일단 손을 멈추기로 했다.
작전 성공률은 그리 낮지 않다. 상대가 아리우스나 테러 활동 중인 미식연구회라면 모를까 헬멧단이라면 일상다반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혹시 모를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럴 때는 도중에 포기하면 좋지 않다. 이것도 내가 트리니티에 와서 배운 것들 중 하나다.
“나기사. 늘 궁금했던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
“아, 네. 말씀하세요.”
“나기사가 두려워하는 건 대체 뭐야?”
“에…”
“물론 짐작 가는 것들은 많이 있어. 보충수업부와 에덴조약, 미소노 미카와 아리우스 사이에 있었던 일, 유리조노 세이아의 몸 상태도 그렇고.”
나기사는 표정이 굳었다. 지금껏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았을 뿐이지 아직 틀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 눈앞에 있는 적을 쓰러뜨릴 방법은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다는 건 그보다 훨씬 두렵겠지.”
그러니 이건 내 단순한 의문일 뿐이다.
한때 동료를 배신하고, 새로운 동료마저 버려두고 홀로 싸우려 했던 나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누군가 내민 손을 잡아 무사할 수 있었다. 나는 강하지 않았다. 눈앞의 적을 쓰러뜨리는 것조차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내 적과 싸우기만 하면 돼. 하지만 나기사는 트리니티의 적들과 싸워야만 하잖아. 때로는 자기의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면서. 그건 아주 힘든 일이니까 항상 뭔가를 두려워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
“...제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을까요?”
괜한 말을 꺼냈는지도 모른다. 나기사의 눈동자가 불안한 기색으로 흔들린다. 이대로는 작전 성공률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으음. 그렇다기보다 아까도 그랬지만 나 같은 일반 학생한테 너무 신경을 쓰는 게 아닐까. 내가 아는 권력자란 좀 더 강압적이고, 그게 또 잘못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아!”
그러자 나기사의 표정이 달라졌다. 굳었던 표정이 깨지듯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웃는 얼굴이 되었다.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이었군요. 우후훗, 죄송합니다. 아아, 그랬군요. 안심했어요.”
“? 내가 뭐 이상한 말 했어?”
“아니요. 아무래도 아직 저희는 서로 오해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방금 전에 주신 질문에 답할게요.”
그러더니 나기사는 웃는 표정을 진지하게 바꾸었다. 그 표정에서 나도 모르게 움찔할 만큼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저는 트리니티가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그 평화 속에는 미카 씨와 세이아 씨가 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걸 위해서라면 저는 이 한 몸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기사의 표정이 또 다시 바뀌었다. 그저 한 명의 소녀로 보이는 부드럽고 환한 웃음이었다.
“아즈사 씨 말씀대로 저는 항상 두려워하고 있겠지요. 하지만 그 이유는 분명 아즈사 씨와 같을 거예요.”
“나랑, 같다고?”
“네. 그 이유는 ‘상실’이에요. 저는 이제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아요. 지켜야 할 트리니티도,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도. 물론 아즈사 씨, 당신도요.”
나는 잠시 동안 나기사의 웃는 얼굴에 눈길을 빼앗겼다.
“...그래. 알았어. 물어보길 잘했어. 조금 의외였지만.”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나기사는 키득 웃었다.
“이유 때문인가요? 아니면 제가 아즈사 씨도 걱정했다는 말 때문인가요?”
나도 작게 웃은 다음…
“비밀이야.”
그러면서 총을 들었다.
“자, 친구끼리 수다 떠느라 너무 열중했네. 그렇게 걱정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라도 빨리 해치우자.”
“네. 그럼 가 볼까요.”
☆
“으아앗! 용케 이딴 걸 숨겨서 태웠네!”
비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피해 몸을 숨기면서 나는 외쳤다.
“거점 방어용 로봇 같네요. 아마도 파테르 분파 자금이 흘러들어온 거겠죠.”
미네는 냉철한 표정으로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역시나 온갖 아수라장을 지나왔을 테니까.
화물 칸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자마자 이 모양이다.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어떻게 가져왔는지도 모를 사이즈의 로봇. 양 팔과 양쪽 어깨에 대형 개틀링건 4정이 달려 있다. 다리는 없다. 완전히 열차에 고정되어 있고, 심지어 녀석 앞에는 두툼한 장갑판이 빈틈없이 달렸다.
얼굴을 내밀면 끝도 없이 총을 쏴댄다. 이러면 앞으로 나가기도 전에 벌집이 된다고
“한도라는 게 있잖아!? 어떤 바보가 이딴 무식한 가드 로봇을 만들었대!?”
“그러게요. 저 혼자였으면 아마도 상대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구호기사단 단장인 저와 또 한 사람, 대장이라 불리는 학생이 있습니다.”
미네가 히죽 웃었다. 그렇다기에는 고급스러운 느낌인데. 내가 저럴 때처럼 음흉한 느낌이 안 드는 게 뭔가 분하다.
“야!? 미네, 너 진짜로 하려고!?”
“네! 진심입니다!”
미네가 방패를 들고 뛰쳐나갔다. 터무니없는 양의 총알들이 일제히 날아온다. 헬멧도 없이 저런 곳에 달려드는 녀석이라니 난 이해를 못 하겠다.
근데 이 녀석도 바보였다. 미네는 그 총알들을 정면으로 막아내고 있다. 어느 쪽이 바닥에 고정된 건지 모를 만큼 미동도 없다. 그야 키보토스에서 앞장서는 역할이라면 위험한 녀석들 투성이긴 한데. 최근에 본 애들 중에서는 아비도스에 다니는 그 느긋한 꼬맹이도 진지해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터프하다.
“하! 믿을 만한데!”
가장 바보 같은 점은 나 같은 불량배한테 뒤를 맡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보가 딱히 싫은 건 아니다. 그렇다면 나도 그만큼 보여줘야지.
미네가 막아내는 개틀링건 총알이 사방으로 튄다. 내구성이 약한 물건들은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창문이 깨지고 파편이 반짝거리며 흩날렸다.
그러고 보니 미네가 재미있는 말을 했는데.
“착한 아이는 따라하지 말라고. 읏차!”
나는 창문에 손을 얹고 부츠 한가운데를 있는 힘껏 밟았다.
“라, 라브 씨!?”
수수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말을 하는 걸 보니 무사했나 보네. 미안하지만 어울려 줄 시간이 없다.
“...으헤. 이게 맞나.”
지붕에 올라왔더니 엄청난 바람이 귀를 뜯어버릴 기세로 불어온다. 이 위에 올라타서 들어왔다니 역시 말도 안 된다니까.
“아니, 잠깐!?”
조금 전. 산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앞에는…
“우왓!”
그대로 바닥에 엎어졌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귀가 먹먹해지는 감각이 든다.
괜찮아, 아직 살아있어.
터널.
천장이 너무 가까워서 눈에 보이는 것들이 흘러가는 모습을 눈으로 따라갈 수 없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내가 먼저 폭발할 것 같다고.
머리가 닿지 않도록 엎드린 채 몸을 비틀었다.
“핫. 나 참. 내가 지금 뭔 짓을 하는 거야!”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없는데.
막말로 화물차를 강제로 분리하면 폭약이 있든 말든 나는 살 수 있다. 나기사를 지켰으니 보상도 받을 수 있고 나는 그거면 된다.
하지만 나기사에게는 그렇지 않다. 트리니티 자치구에서 기차가 탈취당했으니 원 아웃. 그 기차에 타 있었으니 투 아웃. 마지막으로 이 열차가 어디서든 폭발하면 쓰리 아웃으로 게임 셋.
티파티 호스트가 탄 차량이 원인이 되어 레일이 파괴되고 게헨나와 트리니티가 일시적이나마 말 그대로 분단되었다는 사실을 크로노스 보도부가 알게 되면 좋다고 튀어올 것이다. 그러면 몰래 게헨나로 가려고 했던 사실도 포함해서 나기사의 입지가 위태로워진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귀찮아!”
바보 같다. 나는 딱히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쨌든 폭발만 안 하게 하면 된다. 이대로 가드 로봇은 미네한테 맡기고 나는 화물 칸까지만 가면 되는 거잖아.
쾅!
조금 쫄았는데 일단 폭발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터널을 빠져나왔다. 기압이 바뀌어서 귀가 살짝 아파졌을 뿐이다.
갑자기 밝아지니 눈이 아프다.
초록이 펼쳐진다. 산골짜기가 지나간다. 하늘은 무척이나 새파란 게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오늘 보는 풍경 중에 썩 괜찮았다.
험한 길이 이어진다. 게헨나가 가깝다는 뜻인가.
무릎을 짚고 어떻게든 일어선다.
“라브 씨!”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른다. 아무리 그래도 목소리는 기억한다.
“왜 너까지 왔어! 착한 애는 따라하지 말라고 했잖아.”
뒤를 돌아본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서 성가시다.
수수녀가 서 있었다. 다만.
“저, 저는 착한 아이가 아니에요…!”
“? 뭐야 그거?”
그 새빨간 총.
그 총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7 폭주 특급
“...역시 저항이 거세네.”
아즈사 씨가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선두 차량으로 통하는 문을 연 순간 무수한 총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적들은 좌석을 늘어놓아서 바리케이드를 구축했어. 그 앞에 기관총을 배치해서 문을 지나려는 사람에게 자비없이 발포하는 모양이야.”
“돌파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받아쳐도 상관없다면 어렵지는 않아. 하지만 선두 차량에도 폭발물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 확인해보지 않고 돌입하기에는 위험해.”
아즈사 씨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 같지만 아까 전보다 조금 말이 빨라진 것 같습니다. 약간 조급해진 거겠죠.
“이 열차를 급조 미사일로 만들 생각일까요.”
“응. 파테르 분파가 세운 작전이라면 이상할 게 없어.”
“그, 그렇다면 어쩌죠.”
“문제없어. 나기사, 잠깐 괜찮을까.”
슥.
아즈사 씨가 재빨리 다가와 제 뺨에 손을 댔습니다.
“네, 네엣!?”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아즈사 씨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 눈동자 속에 쩔쩔매는 제 표정이 비치고 있습니다.
아직 앳됨이 남아있는 소녀의 눈동자. 하지만 그 눈동자 안쪽에는 수많은 싸움을 헤쳐왔을 분명한 강인함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긴 속눈썹과 가는 눈썹. 그녀의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색을 띠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사람을 대하는 일이 별로 없었기에 진정이 되지 않는다고 할까요, 부끄럽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시선을 받고 있었더니.
“아, 아즈사 씨…!?”
“아, 미안. 이걸 써야 할 때 같아서.”
“네…?”
그 손에는 제가 끼고 있던 귀걸이가 있었습니다.
“그럼 신호할 테니까 잘 부탁해.”
“네? 자, 잠시만요 아즈사 씨!?”
건네받은 귀걸이 한 쌍이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아즈사 씨는 뛰쳐나갔습니다.
손에는 아까 봤던 나이프 두 자루가 있습니다.
자세를 최대한 낮춰 미끄러지듯이 달려갑니다. 조금 늦게 기관총 소리가 요란하게 울립니다.
“읏.”
저도 모르게 눈을 감을 뻔했지만 어떻게든 참았습니다. 그녀가, 제 호위가 이 정도 공격에 당할 리가 없습니다.
“느려!”
아즈사 씨는 왼쪽 벽을 세게 걷어차더니 양손을 교차하듯이 칼을 들고 경로에 있는 적들을 베어내면서 다시 오른쪽 벽을 박차고 나아갑니다. 적들의 조준은 안정되지 못해 마치 번개처럼 그녀가 남긴 궤적을 뒤늦게 따라갑니다. 이를 거듭하다 보니 어느새 적군에게 근접했습니다.
하지만 총을 사용하지 않고 근접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위험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대로 난전 상태로 들어간다면 어디 있을지 모를 폭발물에 불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네!”
저는 귀걸이의 양쪽 끝을 잡아당기고 반응이 느껴짐과 동시에 있는 힘껏 던졌습니다.
다소 불안한 궤적을 그리면서 귀걸이는 날아갔습니다. 수상한 하얀 가스를 힘껏 흩뿌리면서.
‘끝이다.’
아즈사 씨의 목소리가 흐릿한 목소리로 바뀌었습니다. 저도 서둘러 방금 건네받은 또 하나의 방독면을 착용했습니다.
차량 내부가 가스로 가득 찼습니다. 아즈사 씨가 자세를 낮게 취한 것은 유리창이 파손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렇지만 귀걸이에서 분출되는 가스의 양이 작은 외형과는 달리 상당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여차할 때 쓰려던 장비였는데, 도움이 돼서 다행이야.’
연기 속에서 방독면을 쓰고 나타난 아즈사 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하하… 은근히 마음에 들었는데요.’
그 귀걸이는 액세서리를 잘 착용하지 않는 저를 위해 그녀가 준비해 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송신기 같은 게 들어있을 줄 알았습니다만…
창문을 열었는지 점차 가스가 사라지더니 시야가 맑아졌습니다.
“적들은 다 잠들었어. 열차를 멈추자.”
“네!”
이제 방독면은 필요 없겠죠. 모르는 사이에 모자도 어딘가에 떨어뜨렸던 모양입니다.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묶었던 머리카락이 아래로 흘러내렸습니다.
‘키리후자 나기사! 당신이!’
““앗!?””
시야가 완전히 트이는 동시에 차량 뒤편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늦게 발견했어.
헬멧을 쓴 학생. 방독면을 쓰고 있어. 파테르 분파.
총소리.
“나기사!”
작은 몸이 내 앞으로 달려들었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천천히 흘러내리더니,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쏴! 나기사!”
“으아아아!”
숨이 막힌다. 총을 든다. 조준한다. 수없이 반복해왔던 것. 훈련에서 수없이 해 왔다.
방아쇠를 당긴다.
총소리.
뒤늦게 총구가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호흡법. 눈앞의 적. 없다. 쓰러뜨렸다.
쓰러져 있는 사람은.
“아즈사 씨!?”
총을 내던지고 아즈사 씨의 가녀린 어깨를 잡는다.
“...훌륭한 사격이었어.”
“읏. 정말, 놀라게 하지 마세요.”
저는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흐려진 시야를 손가락으로 훔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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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진짜 신선하네ㅋㅋ 나기아즈 미네라브 ㅋㅋ 근데 다음편완결인거보면 게헨나까지 난입하는 개판은 아닌가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