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78자

7 시사이드 스쿼드 (後)
“이런이런.”
산 정상에 있는 망루. 관제탑으로도 쓰이는 건물 안에서 나는 한숨을 내쉬며 딱딱한 의자에 앉았다.
커피라도 한 잔 있으면 정신이 맑아질 테지만, 그건 잠시 참아야 한다.
“병아리들은 그렇다 치고 우리 쪽 부대에도 과제가 참 많군.”
작전을 개시한 지 두 시간이 지났다. 해가 질 무렵이면 제압이 끝날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직 전원 확보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섬 안에 있는 전파탑의 기능을 정지시켰으니 핸드폰은 사용할 수 없다. 우선 그렇게 해서 많은 이들이 혼란에 빠졌다. 해변에서 바캉스를 즐기던 자들은 애초에 느슨해진 상태였고, 일몰로 인해 시야가 좋지 못한 해상에서 습격을 당한다면 이겨낼 수 있을 리 없다.
“설마 그 녀석이 남아있을 줄이야.”
나카츠카사 키리노.
아니면 잔당이라고 해야 할까. 원래부터 그녀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유형이었고, 전에 그 이변이 일어났을 때 나와 선생님은 그 정의로운 마음 덕분에 도움을 받았다. 습격을 한발 앞서 감지하고 몸을 숨겼을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손을 떼자는 쪽으로 이끌었을 네무가키 후부키도 오지 않았다. 그 녀석은 아마도 꾀병을 부렸을 테지만,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그랬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녀석들은 대개 약삭빠르니까.
문제는 키리노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아직 몸을 숨기고 있다면 규모가 큰 숨바꼭질이 될 뿐이다.
하지만 또 다른 보고도 들어왔다.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일단 첫째. 그 선생님이 이끄는 보충수업부. 그곳에 속한 1학년 시모에 코하루 또한 행방을 알 수 없다. 이번에는 정의실현부로서 왔다는데, 다른 정의실현부 몇 명은 이미 붙잡혔다.
그리고 둘째. 지명수배 중인 그 5인조를 찾느라 많은 인원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키리노가 그 녀석들과 같이 움직이는 걸까.
“...아니, 그럴 리가 없나.”
그 녀석들은 다른 집단과 같이 몰려다닐 만한 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요소가 있는 게 아닐까.
“큭, 뭐지…!?”
폭발음.
그리고 비명소리가 몇 번.
불이 꺼졌다가 곧 다시 켜졌다. 아주 잠깐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나는 깊게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들었다.
코앞에 돌격소총 총구가 있었다. 날카로운 시선에 이미 수없이 베인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는데, 이 여자가 허리에 차고 있는 장검 때문일 것이다.
“조마에 사오리. 네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어.”
“그렇군. 이력서 사진이 웃는 표정이라 그랬는지도 모르지.”
농담을 할 줄은 몰랐기에 나는 어리둥절한 채 말문이 막혔다.
“쏘려면 쏴. 이런 상황에 아리우스 대장 급을 상대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없으니. 한 살만 더 어렸더라면.”
“...공안국 국장, 오가타 칸나였군. 하나 말해두지. 나카츠카사 키리노는 재능이 있어. 지휘관만 잘 만나면 크게 될 거야.”
“삼류 악당으로서는 가망이 없다는 건가?”
우리 둘은 서로를 노려본 뒤에 짧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사오리는 총구를 내렸다.
“여기가 거점이군요! 자, 가, 각오하세요! 어라, 칸나 국장님!?”
뒤늦게 나타난 키리노에게 우리는 둘 다 비슷한 시선을 보냈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당황하지 마, 바보 같긴. 아니, 그건 내 얘기겠지. 잘했어, 나카츠카사 키리노. 네가 유일한 합격자다.”
“어라, 그럼 어떻게 된 거죠?”
키리노의 눈동자가 점처럼 작아지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캉스는 페이크고, 연수 쪽이 진짜였다는 거지.”
사오리가 말했다. 재미있게도 상상했던 것보다 인상이 훨씬 부드럽다.
“설명해 주지. 1학년에게는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적응력을, 2학년에게는 작전 수행 시 대응력을 각각 경험하게 하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야. 예년에도 심한 꼴을 당했으니 정보가 새어나갈 일은 거의 없어.”
“그, 그럴 수가…”
키리노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조금 사이즈가 맞지 않아 보이지만 제복 차림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급조 부대 대장은 이미 눈치를 챈 모양이다만.”
나는 한숨을 쉬며 사오리에게 말했다.
“? 아, 그래. 병사들 움직임이 둔했어. 평소에 쓰던 장비가 아니라는 증거다. 그리고 이 섬을 제압한다는 건 결과적으로 총학생회를 상대하겠다는 말인데. 그렇다기에는 전력이 부족했어.”
사오리는 담담하게 사실들을 나열했다. 경험 많고 침착한 대장이 있을 거라 예상치 못했던 시점에서 내 패배였다.
“그래도 오해는 하지 마. 대장 알파 6는 내가 아니다.”
사오리가 그렇게 말한 순간 밖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뭐라고?”
“그, 그랬죠! 알파 6! 대답해주세요~! 라브 씨!? 잠시만요!?”
☆
“어깨 힘 좋은데! 더 가져가!”
“네, 네에!”
핀을 뽑은 수류탄을 야구공처럼 방망이로 쳐낸다.
산 정상에 있어야 할 망루에는 사오리와 키리노가 따로 향했다. 나와 코하루는 탈출을 하든 지원을 부르든 방해가 될 진지와 대포를 부수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는데, 마침 수류탄을 대량으로 발견했던 딱 좋은 타이밍에 코하루와 합류했다.
“아하핫! 수류탄 무한 반복이다! 섬을 재개발해서 우리 걸로 만들어 주마!”
왜, 그렇잖아. 거점으로서 기능이 없어지면 버려질 수도 있으니까.
쉴새없이 폭발음이 울려 퍼지고, 무장한 병사들의 비명소리도 들려오니 기분이 좋다.
“저기! 알파 6! 알파 1이랑 2에게 교신이!”
“앙?”
코하루가 공을 공급하다가 멈추더니 말했다.
“예이예이. 뭐야? 벌써 제압했어?”
나는 헤드셋을 손으로 고쳐 쓰면서 물었다.
“알파 6! 공격을 중지하세요! 이건 훈련이었어요!”
““에.””
나와 코하루의 목소리가 겹친다.
키리노가 뭐라고 말하고 있지만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일단 이해할 수 있는 건 내 시선 끝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와 아직도 이어지는 비명소리뿐이다.
“...튈까.”
“어!? 그럼 이거 내가 한 것처럼 되…”
“찾았다! 이 나쁜 자식들!”
““!?””
갑자기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딜 보는 거냐! 이쪽이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마치 쏟아지듯이 날아들었다.
위를 보니 바위 위에 그 녀석들이 서 있었다.
““뭣…””
또 다시 코하루와 목소리가 겹쳤다. 아니, 이건 그럴 수밖에 없나.
“무한히 회전하는 레일은 이윽고… 정의로운 미래로 이어진다! 우리 섬의 평화를 위협하는 악당들아! 카이텐저가 상대하겠다! 이얍!”
빨강, 검정, 초록, 노랑, 그리고 분홍색으로 딱 달라붙는 슈트를 입은, 머리에 스시가 달린 5인조가 완벽하게 타이밍을 맞춰 점프했다.
“나, 나쁜 건 너희들이잖아! 여기저기서 문제만 일으키고 다니면서!”
착지해서 허리에 손을 얹은 카이텐저에게 코하루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일단은 정의실현부라 나쁜 녀석들은 용서할 수 없나 보다.
“오호. 그렇군. 도망친 지명수배자라는 게 너희들이었구나.”
“이 섬에서 먼저 바캉스를 즐기던 건 우리야. 뒤늦게 온 녀석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우리는 이 사실에 분개했어!”
검은색이 말했다. 다른 색들이 응응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한다.
“...내가 할 말은 아닌데, 그거 범죄야.”
“토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했을 뿐이야! 마침 딱이길래 우리 비밀기지로 쓰기로 했어!”
노란색이 자랑스러운 듯이 말했다.
리조트 사냥 때는 땅문서라도 있었으니 내 경우가 더 상식적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너희들의 무의미한 파괴 행위는 용납할 수 없어!”
빨간색이 일갈하자 다섯 명이 일제히 총을 들었다.
“그러냐!”
곧바로 나는 방망이의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땅을 내리쳤다.
흙먼지가 폭발에 휘말려 카이텐저에게 쏟아진다.
“알파 3! 일단 던져!”
“네!”
코하루는 짧게 대답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수류탄을 던졌다. 이 녀석 정말로 적한테는 가차없구나.
“알파 1, 알파 2, 들었지! 이제부터가 진짜야!”
코하루가 던진 수류탄의 폭발음이 들리고…
‘알파 1, 확인했다.’
‘알파 2, 알겠습니다! 두 분 다 무리하지는 마세요!’
“이 섬은 언젠가 내가 접수할 거야! 저런 녀석들한테 넘길까 보냐!”
☆
“응응, 좋아좋아~. 설마 이러고 끝은 아닐 거 아냐? 드디어 재밌어지겠네.”
나는 혼자 라브 쨩 일행과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를 낮추지 않고 웃었다.
경비원 애들이 몇 명 쓰러져 있지만 얘들이 중심은 아니니까 그닥 중요하지 않다.
“자, 그럼.”
옆으로 길게 뻗은 유리창은 두툼하다. 그 너머로는 캄캄한 바다가 펼쳐진다. 높은 곳이니까 낮에는 분명 경치가 좋을 것이다.
나는 손에 든 패널을 조작했다.
“그럼 시작한다~!”
펑! 하더니 너무 강하다 싶을 정도로 새하얀 빛이 켜졌다.
8 결전, 카이텐져!
“...가는 거냐, 너희들.”
저희가 통신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칸나 국장님이 말했습니다.
“네!”
그렇게 저는 기세 좋게 곧바로 대답했지만…
“앗!? 그러고 보니 사오리 씨랑 라브 씨 건은…”
말끝을 흐리자 칸나 국장님은 빙글 돌아섰습니다.
“무슨 이야기지. 나는 아무것도 못 봤어. 1학년들은 모두 구금됐고, 2학년은 원인 모를 폭발로 연락이 끊겼어.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본부 섬에 구조를 요청해야 해서 바쁘거든.”
순간 저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사오리 씨가 훗 하고 웃는 소리를 듣고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본관에게 맡겨주세요!”
“좋은 대답이야… 가져가라.”
칸나 국장님은 허리를 숙이더니 권총을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 네, 넵!”
저는 그것을 집어들어 비어있던 홀스터에 집어넣었습니다.
“알파 2, 가자.”
“네!”
지금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저희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겠죠.
밖으로 뛰쳐 나왔습니다.
이곳은 거의 정상입니다. 진지들이 늘어선 곳은 조금 내려가서 산 중턱에 있는 평지인데, 벌써 저쪽에서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카, 카이텐져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레드 씨는 돌격소총. 블랙 씨는 권총. 그린 씨는 미니건. 옐로우 씨는 저격소총. 그리고 핑크 씨는 로켓 발사기를 소지하고 있을 겁니다.”
사오리 씨, 그리고 통신 상대인 두 분께도 전달되도록 저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무튼 빠르게 도망치니까 주의하세요!”
“알파 1이다. 알파 6, 알파 3, 대답할 필요 없어. 가능하면 광장에서 적의 발을 묶어 줘. 곧 합류하겠다.”
사오리 씨가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 앞에서 달리고 계신데 아마도 제 속도에 맞춰주고 계신 거겠죠. 외로운 늑대 같아 보이는 분이지만, 경력으로 보아 팀으로 움직이는 데 익숙할 겁니다.
위험한 향기와 침착한 분위기. 솔직히 조금 멋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파 2. 사격을 잘 못하나?”
사오리 씨가 고개를 슥 돌리더니 말했습니다.
“에!? 네, 네에. 그렇기는 한데요, 그래 보이나요?”
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일단, 총을 들고 나면 눈을 감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으으. 그렇죠. 고치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요…”
“아니지, 그러면 방식을 바꾸는 게 빠르려나. 마침 네 장비는 권총이니까.”
“네?”
☆
“나와라 이 비겁한 자식들! 정정당당하게 승부하자!”
빨간 카이텐져 녀석이 광장 한가운데에서 외쳤다.
(어쩌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그걸’ 쓸 수도 없고…)
나는 손목에 찬 슈슈를 만지작거렸다.
라브 씨가 가지고 있던 그 이상한 방망이가 폭발했고, 그 덕에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도망쳐서 광장을 둘러싼 수많은 나무들 속에 숨어 있다.
방금 전 통신대로라면 곧 키리노와 사오리가 찾아오겠지만.
“레드! 아무래도 녀석들은 우리의 위풍당당한 모습에 겁먹어서 못 나오나 봐!”
검은 녀석이 말하자 다른 녀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미니건을 든 초록색과 로켓 발사기를 든 분홍색이 중앙에 있는 바위 위에서 어디든 조준할 수 있도록 서 있다. 저격수 녀석이 안 보인다. 어딘가에서 조준하고 있을 텐데.
“그런가 보군! 배짱 없는 녀석들 같으니! 하하핫! 이제 이 섬은 우리 차지야!”
뭔가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한바탕 도발하고 있는데 보통은 이렇게 알기 쉬운 도발에 당해줄 리가…
“헛소리 집어치워! 누가 배짱이 없다는 거야!? 아얏!”
나무 그늘에서 튀어나온 라브 씨가 저격소총에 맞더니 바로 숨었다.
“너희들 똑똑히 기억해! 눈물 콧물 다 쏙 빼줄 테니까!”
아, 괜찮아 보이네. 일단은 무사한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맷집이 강한가 보다.
그런데 이렇게 당하고만 있자니 분하다.
이렇게 된 이상…
“변…”
‘알파 3. 핑크가 로켓 발사기를 쏘지 못하게 방해해.’
사오리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차 한 대가 숲 사이로 튀어나왔다.
타이어가 크고 지붕이 없는 오프로드 차량이다.
운전석에는 키리노가 탔고, 조수석에는 사오리가 총을 들고 서 있다.
“아, 알겠어!”
나는 곧바로 총을 들고 광장 한가운데, 바위 위에 서 있는 핑크를 겨눴다.
“왔구나! 간다, 너희들!”
라브 씨가 다시 튀어나왔다. 사오리는 바위 위에 있는 그린을 향해 사격했다. 키리노는 차를 지그재그로 몰았다.
핑크가 로켓 발사기를 차에 겨눴다.
“그렇게는 안 둬!”
나는 그보다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로켓은 발사됐지만 조준이 크게 빗나갔다.
“우와아아!”
키리노가 급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고, 동시에 사오리가 보닛을 발판 삼아 높이 뛰어올랐다. 핑크가 다시 한번 로켓 발사기를 사오리에게 겨눴다.
사오리의 손에는 검게 빛나는 길고 딱딱한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
나는 검은 장검을 휘둘러 로켓 발사기에서 발사된 로켓탄을 세로로 양단했다.
어떤 사건 이후 츠카츠키 리오가 가져온 물건인데, 근접전에서는 효과적인 도구라 할 수 있다.
“히익!? 뭐야 이 사무라이 걸은!?”
핑크가 비명을 질렀다.
미니건을 든 그린의 사선에 핑크가 들어가는 위치에 섰다. 접근한 시점에서 내가 유리하다.
“레드. 상당히 위험한 상대가 섞여 있잖아. 나중에 추가 보상을 요구하겠어.”
“? 너희도 고용된 건가?”
급조된 팀은 우리 쪽일 텐데, 카이텐져 녀석들의 팀워크는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 보였다.
“미안하지만 빠르게 정리하도록 하지.”
나는 장검을 바로 위로 던졌다. 그렇게 해서 순간적으로 틈을 만들었다.
곧바로 핑크에게 접근해 거의 영거리에서 배에 돌격소총을 쐈다. 비명을 지르게 할 생각도 없었다. 그대로 팔을 잡고 발판이었던 바위에 머리를 세게 부딪혔다. 만약을 대비해서 등에 몇 발을 쏘자 기절한 것 같았다.
“핑크가 당했어!”
미니건 조준이 끝나기도 전에 달려갔다. 맞서서 총을 쏘는 것보다는 접근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한 발자국 남은 거리였지만 그린이 발사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하지만.
“근접전 훈련을 더 해야겠군.”
떨어진 장검을 집어들고 칼날을 거꾸로 돌려서 옆으로 휘둘렀다. 베기에는 살상력이 너무 강하다.
장검이 목을 깊게 파고들자 그린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바위에서 굴러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둘. 화력이 높은 자들은 쓰러뜨렸다.
☆
“나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는데 너는 누구로 할래?”
라브 씨가 방망이를 어깨에 얹더니 제게 물었습니다.
“...레드 씨요.”
그렇게 대답하자 라브 씨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더니 삐죽 튀어나온 이를 드러내며 웃었습니다.
“오케이. 너한테 맡긴다!”
쾌활한 그 목소리에 저는 마치 등을 떠밀린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묘한 인상을 주는 사람입니다. 겉모습만 보면 분명히 불량학생인데 거침없는 성격을 보면 악인이라기보단 장난치기 좋아하는 아이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어딘가 미워할 수 없는 부분이 왠지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헬멧단 간부겠지만요. 카리스마가 있다고 할까요.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납득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발키리 신입이냐! 날 상대할 수 있겠어?”
레드 씨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원래 같으면 후부키나 발키리 동료들과 같이 상대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가, 갑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는 라브 씨가 이끄는 이 급조 팀의 일원입니다.
아까 사오리 씨가 가르쳐 주었던 것만 생각하면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레드 씨를 고른 이유는 제가 하려는 것에 알맞은 상대였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권총을 든 블랙 씨와는 상성이 맞지 않았습니다.
(칸나 국장님, 힘을 빌려주세요!)
저는 홀스터에서 다른 한 자루를 꺼내 양손에 각각 권총을 들었습니다. 최대한 허리를 숙이고 아무튼 상대에게 접근했습니다.
“응? 무슨 꿍꿍이냐!?”
레드 씨가 쏜 총알이 뺨이나 다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멈춰서는 안 됩니다.
“에잇!”
달리던 기세 그대로 무릎을 들어올려 부딪칩니다. 레드 씨의 몸이 붕 뜨더니 뒤로 물러났습니다.
“조, 좀 하잖아!”
키보토스 학생은 이 정도로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저는 곧바로 양손을 들어 오른쪽에 든 권총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익숙한 제 총소리가 들립니다.
““큭.””
서로 숨죽이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집니다.
레드 씨는 몸을 비틀어 아슬아슬하게 피했습니다.
“아직입니다!”
왼손에 든 권총을 레드 씨가 피한 쪽으로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크악!”
명중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닿을 거리였으니까요.
“이걸로 끝이에요!”
있는 힘껏 다리를 위로 들어올렸습니다. 멋있는 발차기 같은 게 아니라 축구공을 차는 듯한 느낌으로.
그 발차기가 보기 좋게 빗나갔는지, 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레드 씨는 그 틈에 돌격소총 총신을 제 몸으로 향했습니다.
(지금!)
균형을 잃으면서도 저는 두 팔을 벌려 휘두르면서 권총 끝부분을 돌격소총에 부딪쳤습니다.
동시에 총성이 울리고 지면에 총알 자국이 생겼습니다. 저는 떠 있던 다리를 땅에 단단히 붙인 다음 이를 악물고 다시 한번 강하게 내딛었습니다.
“확보!”
온몸을 내던지듯이 레드 씨에게 달려들었습니다.
그대로 기마자세로 올라타 남은 총알을 모두 쏟아 부었습니다.
“크흑, 건카타 사용자였을 줄이야… 후, 훌륭해.”
풀썩.
레드 씨는 정신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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