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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학생회의 경우

“선생님은 장기 요양을 가셨습니다.”

오늘만 해도 몇 번째인지 모를 말을 되풀이하며 린은 한숨쉬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요! 그걸 저보고 믿으라고…”

후우카가 반박했다.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훌쩍 떠나실 분이 아니란 말이에요.”

사실이었다.

“믿으실지 아닐지는 몰라도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하다못해 한 마디라도… 뭔가 말을 하고 가셨을 거에요. 선생님은 그런 분이시라구요!”

“아이키요 후우카 씨.”

린이 불안한 표정으로 읊조리는 학생의 말을 부드럽게 끊었다.

“선생님의 부재 때문에 불안하신 건 이해합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지만 선생님께서는 그간 너무 격무에 시달리셨습니다.”

“그건…”

“샬레에 자주 찾아가셨다니 아실 텐데요. 평소 그분이 맡으신 업무량이 얼마나 되는지 말입니다.”

린은 최대한 피곤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그건 사실은 전혀 필요 없는 노력이었다. 아무 노력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지금 이 세상 누구보다도 피곤해 보였다.

“평소 업무량도 업무량이지만, 그분께선 방주 점령전과 그 이후 뒷수습까지 관여하셨습니다. 사실은 그걸 진두지휘하셨다고 해도 될 정도에요. D.U. 시라토리구 재건과 관련해서도 그분은 그럴 필요 없는 수많은 안건들까지 손수 검토해서 조언을 주셨습니다. 각 학원과의 이해 관계를 조율하러 직접 발로 뛰시기도 하셨고요. 후우카 씨도 아시잖아요?”

“그것도…”

린과의 대화를 시작한 이후 계속해서 후우카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 같았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은 더 있는데, 논리적인 린의 말에 차마 끼어들 여지를 못 느끼는, 그런 모양새였다.

“선생님이 격무 때문에 쓰러지신 이후…”

“쓰러지셨다구요?”

린의 말을 납득해 보려고 노력하던 후우카의 낯이 대번에 새파랗게 질렸다.

“또요?”

아. 이건 실언이었구나. 이런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린은 한숨을 쉬며 최대한 부드럽게 끊긴 말을 이었다.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바로 적절한 조치를 받으셨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돌아오실 겁니다. 그분은 잠시 쉴 시간이 필요할 뿐이니까요.”

“그러면, 그렇다면 하다못해 병문안이라도…! 계신 병원이라던가…”

후우카는 물러서지 않고 간절하게 이야기했다.

그녀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하는 건 린에게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당장이라도 회의실을 나가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면서, 린은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후우카 씨, 그건 선생님을 더 힘들게 할 뿐입니다.”

“어째서…”

“...선생님과 알고 지내는 학생이 몇 명이죠?”

“네?”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녀가 자신 없는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그건… 아마도… 모르겠어요…”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저도 모릅니다.”

그건 정말이었다. 그건 린에게도 있어 궁금한 사실 중에 하나였다. 선생님은 먼저 그런 주제를 입에 담는 분이 아니었으니까.

도대체 선생님의 핸드폰에 저장된 학생의 연락처는 몇 개일까?

관련된 기관의 개수는? 핸드폰의 용량이 그걸 감당할 수 있긴 할까?

“하지만 천 명보다 많다는 건 확실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의 연락처에 있는 학생이, 아니 열 명 중 한 명만이라도 선생님의 병문안을 가면 어떻겠습니까?”

“...그건…”

“선생님은 과로 때문에 쓰러지신 겁니다. 하지만 후우카 씨 같은 학생이 백 명 단위로 찾아오기 시작하면 그건 그분께 또다른 일이 될 거에요.”

“그런…저는 그런 생각은 조금도!”

“그래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됩니다.”

“정말로…”

충격받은 표정의 후우카를 바라보면서 린은 계속해서 한 마디만을 되뇌었다.

제발.

제발 이제 그만 돌아가 주기를.

“정말로…조금도 안 되나요?”

오늘만 해도 똑같은 거짓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하지만 그 중 마지막으로 찾아온 후우카만큼 양심의 가책을 자극하는 학생은 없었다.

그녀가 두 손을 모아 애잔하게 요청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린은 금방이라도 사실대로 실토하고 사과하고 싶어졌다.

“이기적이라고 비난하셔도 좋아요…하지만… 저한테만… 금방 뵙고 돌아갈 테니까…”

후우카의 눈가에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제발.

“두 달이 넘게 뵙지 못했잖아요. 저도 바보가 아니에요. 두 달씩이나 요양을 가셔야 한다는 게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정도는 알 수 있다고요. 하지만… 정말 아주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미안합니다. 후우카 씨.”

목젖 아래에 무언가 튀어나오는 느낌을 억누르면서 린이 말했다.

“총학생회장 대행으로서 저는 모두에게 공정해야 합니다.”

거짓말이야.

불편한 침묵이 한참이나 이어졌다.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은 건가요? 부탁이니 이 이상 저를 더 힘들게 하지 말아 주세요. 이만하면 충분히 부탁했으니. 제발…

린은 잠시 동안 후우카가 조금 더 떼를 쓰려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가 또다른 부탁을, 또다른 협상을 하기 위해 다른 말을 준비 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후우카의 어깨가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걸 눈치채자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말았다.

“...미안… 미안, 해요…”

한참이 지나 다시 열린 후우카의 목소리는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게 어떨 때 나는 소리인지 그녀가 모를 리가 없었다.

“저… 정말 못됐죠. 린 씨도… 힘들고 바쁜 일이 잔뜩 있을 텐데… 저만 이렇게 힘든 것도 아닐 텐데… 와서 떼나 쓰고… 하지만…”

계속해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그녀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린은 그녀가 헝클어진 머릿칼 아래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후우카 씨…”

제발 돌아가 주세요.

“미안…해요… 전 그저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

후우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터져나온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흐느낌을 죽이기 위해서인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이따금 불규칙하게 크게 흔들리는 어깨만이 그녀가 정말로 큰 울먹임을 겨우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이 불편한 침묵을, 죄책감을 이겨내는 일 초 일 초가 고문처럼 느껴졌다.

거짓말이야.

다 거짓말이잖아.

금방이라도 입술 밖으로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그녀는 진심으로 선생님을 걱정하고 있어. 사실을 알 권리가 있잖아.

하지만 동시에...

말하면? 말하면 어쩔 거지?

뭐라고 말해 줘야 할까?

선생님이 사라졌다고.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아무런 흔적도, 말도 남기지 않고, 이슬이 아침 햇살을 받은 뒤처럼 그렇게 사라졌다고?

그러고 나면 그 다음은?

어깨의 떨림이 멎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린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주고 싶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만지면 그녀가 뿌리칠 것 같아서. 혹은 무너질 것 같아서.

“그럼… 이거라도 전해 드리겠어요? 도시락인데… 선생님께서 끼니를 자주 거르시니까…저는…”

후우카가 테이블에 놓인 찬합 보자기를 조심스럽게 들고선 내밀었다.

린을 만나야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나타났을 때부터 그녀가 품 안에 소중하게 안고 있던 물건이었다.

“저는… 이런 건…”

“부탁해요. 다른 억지는 더 부리지 않을게요. 하다못해…”

손 끝에 매달린 보자기가 살짝 흔들렸다.

“...알겠습니다.”

받아드는 수밖에 없었다.

울음기로 빨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자 더는 거부할 수 없었다.

린이 그걸 받아들자 후우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갔다.

문이 열리고,

“정말 죄송해요.”

문이 닫히고.

린은 쓰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한숨을 쉬고, 심호흡을 하고, 린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거짓말뿐인 하루였다. 거짓말로 시작해 거짓말로 끝난 하루였다.

하지만 이 무거운 죄책감을 통감할 시간조차 그녀에겐 얼마 허락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자 총학생회의 단말기가 보였다. 후우카 양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도 또 새 메일이 그녀에게 문자 그대로 쏟아지고 있었다.

절반 정도는 그녀가 아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으나, 나머지 절반은 그녀가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리고 모두는 한결같이 같은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연방수사동아리 샬레의 문이 닫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선생님께 직접 간 메일은 아마도 이것의 배는 넘겠지.

사적인 궁금증 외에도, 그분과 논의하고자 하는 수백 가지 공사들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 지금 내가 대신 답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모르겠다.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 장소에서 뭐가 얼마나 잘못되어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린은 그 생각만 해도 위액이 통째로 역류하는 느낌이었다.

샬레의 선생님과 면담 계획을 잡고 싶다. 샬레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샬레의 권한이 재조정된 것인가. 이것이 키보토스에 내린 재앙과 관련이 있는가. 혹은 방위실장의 실각과 관련이 있는가.

모두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모두가 선생님이 어디 있는지 알기를 원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구도 아닌 선생님과.

땅에 떨어진 총학생회의 권위 사이에서, 선생님이 책임졌던 샬레의 판은 유일하게 빛나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모두가 비난하는, 싫어하는,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이 바보 같은 자리를 왜 지키고 서 있는 거지?

왜 선생님의 실종을 앞장서서 숨기면서까지 이 많은 것들을 처리해야 하는 거지?

답은 간단했다. 린은 누구보다도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단말기를 억지로 집어든 린은 몇 번째인지 모를, 같은 내용의 답신을 붙여넣고 보내려다 그만두었다.

연방수사동아리 샬레의 고문 선생님은 현재 건강 문제로 인한 장기 요양 중입니다.

거짓말이었다.

그분의 복귀 일자는 건강 상태의 호전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구체적인 일정은 미정이라는 사실을 전해 드리게 되어 몹시 유감스럽습니다.

또 거짓말이었다.

답장을 한 통 보내는 사이 새 메일이 두 통 더 도착해 있었다.

이건 부질없는 짓이었다.

자동 회신이라도 돌려야 할까.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해.’

하지만 정말로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런 메일 같은 것도 아니었다.

이런 거짓말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해야 하는 거지?

어쩌면 이건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

그분의 행방에 대해 궁금해할 학생이 그녀가 처음도 아닐 것이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었다.

내일은 여기에 몇 명이나 더 찾아올까? 언제까지 이런 거짓말을 해야 하지?

화면이 흐릿하게 보였다. 눈이 메말랐다.

안경을 조심스럽게 벗고선 집게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고서 생각했다.

영원히 이걸 숨길 수는 없어.

그리고 곧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가 오면…

똑똑똑.

누구지?

“들어오세요.”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괜찮나요? 그런 물건을 받아 버려도.”

높은 톤의 간드러진 미성이 들려왔다.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당신입니까.”

흐트러진 안경을 고쳐 쓰며 린이 문쪽을 바라봤다.

“어디서부터 듣고 있었죠?”

“듣고 있던 게 아니에요. 다만 그 모습을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던 것 뿐이랍니다.”

문이 열리고 나타난 새로운 방문자는 린의 옆에 놓인 커다란 찬합 보자기를 바라봤다.

“게헨나 급양부 소속의 후우카 씨라고 했지요. 눈가를 감추면서 뛰쳐나간 걸 방금 봐 버렸기에… 방주 공략에도 참가했던... 선생님을 정말로 소중히 생각하는 학생 같았는데요.”

린이 길게 한숨쉬었다.

“절 책망하러 찾아오신 거라면…”

“어머나. 그런 게 아니랍니다. 다만 이것저것 전달하고 협의할 게 많아서 온 것 뿐이에요. 선생님 수색과 관련된 일들로 말이죠.”

조금 고민하던 히마리가 한 마디 덧붙였다.

“베리타스… 아니. 밀레니엄 세미나의 특무부 부장 자격으로요. 네에. 그 자격이 좋겠네요.”

히마리의 취향은 전자 쪽에 더 가까운 것이었겠지만, 베리타스는 여전히 비인가 동아리였다.

이런 자리에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히마리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지난번까진 세미나 집행위원 하야세 유우카 씨가 찾아왔었건 걸로 압니다만.”

“그랬죠. 그런데 유우카 쨩은 최근 몸이 좀…”

히마리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이런 내숭은 그만두지요. 우리 사이니까요.”

“우리 사이입니까...”

“네 그래요. 같이 사선을 넘나들었던 사이 아닌가요?”

히마리가 웃음지어 보였다.

“그러니 우리의 함장이신 린 쨩에겐 조금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을까 하고.”

“...누가…”

린 역시 피로한 얼굴 입가에 가볍게 호를 그려 보이며 화답했다.

“누가 린 쨩입니까.”

히마리가 말하는 그 사건이 벌써 십 년쯤 된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표정을 진지하게 고친 히마리가 말을 이었다.

“유우카 쨩은… 세미나에서 잠시 쉬게 됐어요.”

“하야세 씨가 말입니까?"

“네. 총학생회도 밀레니엄에 벌어졌던 소동은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학생회장인 그 여자… 실례. 리오가 모든 직무를 유기한 이후 한동안 임시 실세는 유우카 쨩이 되었지요.”

“그랬었군요.”

“그랬답니다. 인망 좋고 성실하고 똑똑한 후배였으니 무리도 아니지요. 키보토스 멸망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가장 최전선에 서 있다는 사실도… 그래요. 많이 플러스였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유우카 양에게도 선생님의 실종은 큰 충격이었던 모양이에요.”

“...”

“그런 후배가 아니었어요. 보기에 좀 날카로워 보였을 지 몰라도 공사를 맡아 처리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태도라고나 할까… 마음씨가 고운 후배였지요. 그러나 선생님의 실종 이후 유우카 쨩은 선생님을 찾는 과정에서 상당수의 월권 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이성적 정책 결정 절차를 중요시하는 세미나에게 이건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에요.”

히마리가 언급한 그 단어는 린에게도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월권 행위라 함은…?”

히마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우리 밀레니엄의 치부가 될지도 모르니. 그대로 말씀드리긴 어렵겠네요. 하지만 믿어 주시길. 그녀는 선을 넘는 행동은 결코 하지 않았답니다.”

말을 끝내고 잠시 고민하던 히마리는 한 마디 덧붙였다.

“아뇨. 하지 못한 것에 가깝겠네요. 그녀는 그러기엔 너무 성실한 사람이니까요.”

그 여자와는 다르게. 라는 말이 히마리의 입가에 맴돌았으나 그녀는 굳이 그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그건 제 잘못입니다.”

린이 괴로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린 쨩이 말인가요?”

“누가 린 ㅉ…”

자신에게 붙은 호칭을 반박하려던 린은 한숨쉬며 그만두었다.

그런 걸 일일히 따질 때가 아니었다.

“제가 하야세 유우카 씨에게 선생님을 찾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제가 원인 제공을 한 셈입니다.”

“그건 아니에요.”

히마리가 린의 말을 가로막았다.

“당신이 부탁하지 않아도 그녀는 선생님을 찾기 위해 무엇이든 했겠지요.”

“그렇다면 그걸 알려 준 게 잘못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차라리 숨겼어야…”

“방금 문을 나간 후우카 씨처럼 말인가요?”

린의 숨이 턱 막혔다.

순식간에 괴로움으로 일그러지는 린의 표정을 보며 히마리는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당신을 탓하려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반대지요. 당신은 최선을 다한 것 뿐이니까요.”

“하지만…”

히마리는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당신이 어째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알아요. 선생님의 부재 때문에 그분께서 처리하시던 수많은 잡무들은 자연스럽게 당신에게 다 흘러왔겠지요. 평소의 배는 늘어난 업무를 처리하면서 당신은 선생님의 실종이라는 정보를 최대한 통제해야 했습니다. 사후 수습도 미처 끝나지 않은 지금 그런 소식이 퍼지게 되면 일어날 혼란은 그리 상상하기 힘들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그건 시간 제한도 붙어 있는 일이었지요. 이 비밀을 언제까지나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에요.”

거기까지 말한 히마리는 숨이 차다는 듯이 잠시 가슴팍을 지그시 짓눌렀다.

“때문에 각 학원의 학생회 혹은 그에 준하는 기관에 수색과 관련된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신이 사과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요.”

“저는 총학생회장의 대리입니다.”

린이 지지 않고 항변했다.

“제가 요청한 사항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이유가 어찌 됐든 책임은 저도 져야만 합니다.”

“린.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네?”

린은 당황하고 말았다.

“제가 당신을 질책해 줬으면 좋겠나요?”

히마리가 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전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이게 당신 탓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요. 그리고 당신을 탓하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도 않아요.”

“저는…책임을 져야 합니다.”

린은 괴로운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선생님께서 안 계신 지금, 불의의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면 그것은 총학생회장 대행인 저 뿐입니다.”

“당신은 너무나도 성실하군요.”

히마리가 안쓰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악의나 조소가 전혀 담기지 않은, 진심어린 연민이 담긴 안쓰러움이었다.

동시에 지금 린의 모습은 동시에 어딘지 모르게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건 히마리에게도 있어 너무나도 기시감을 자극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걸 어디서, 누구에게서 봤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째서 이 책임자라는 작자들은, 자신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거지?

“예. 성실하고 말고요. 너무나도…”

독백처럼 히마리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짧은 침묵.

“그러면…”

긴 침묵.

“그러면 어떻게 했어야 한단 말이에요!”

“...”

“이게 제 일입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저는 오로지 제 직무를 다할 뿐이에요. 최선의 결과를 위해서 항상 노력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칭찬했으면 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제가 해야 하는 일일 뿐이에요.”

총학생회장이 사라졌다.

“그런데 잘 안 됐어요. 하지만 ‘잘 안 됐다’고 거기서 끝나는게 아니잖습니까! 노력은 했었다고, 운이 안 좋았다고 그걸로 끝일 수 있다면 회장 대리 같은 직함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습니다. 누군가는 이 화살을 받아 내지 않으면 안 돼요.”

선생님이 사라졌다.

“저는 선생님처럼 모든 일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냥… 하다못해 성실하게 자리를 지켜야 한다면,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언성을 더 높이려던 린의 목소리는 말을 계속하면서 급격히 조용해졌다.

내면의 답답함과 울분이 이성과 슬픔을 맞닥드려 급격히 잦아드는, 그런 모양새였다.

모두가 총학생회장 대리라는 멋들어진 직함을 아주 좋아했다. 그것이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을 동경했다. 멋진 제복을, 의전을 동경했다.

그러나 이게 진정으로 어떤 위치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그 중 극히 소수였다.

들어 주세요 나나가미 린. 제가 이만큼 슬프고 힘들어요.

그렇군요. 해결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총학생회장 대리. 당신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하지만 내 불평은, 내 고충은, 내 괴로움은 누구한테 토로해야 하지? 누가 그걸 들어 주지?

“실패에 대한 책임은 제가 져야 합니다.”

그런 자리는 없었다.

이건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응석받이를 위해 준비된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저는 그런 자리에 앉아 있으니까요.”

“당신 혼자서 말인가요?”

린의 일방적인 토로를 듣던 히마리가 되물었다.

“네?”

“당신 혼자서 이 모든 일에 책임질 작정이었나요?”

얼토당토않다는 표정으로 히마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이지, 이 어찌나 감동적인 성실함인지. 저지른 일이 들키자마자 대책도 없이 도망쳐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우리 학생회장이 본받았으면 할 정도에요. 방금 전만 해도 그래요. 사실은 후우카 양도 만나주지 않아도 됐던 것 아닌가요?”

“그건… 제게 설명할 의무가 있어서…”

히마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정식 절차를 밟은 접견 요청이 아니었잖아요. 그냥 막무가내로 총학생회를 찾아와 무슨 소식이든 듣고 싶어했을 정도로 절박했던 것 뿐이니까요.”

히마리가 후우카가 가져온 보자기 끝에 손끝을 조심스럽게 가져다댔다.

찬합 뚜껑과 부드러운 보자기 너머로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당신은 그래서 더욱이… 못 본 척 할 수 없던 것이겠죠. 남의 일 같지 않았으니까요. 당신도 그게 무슨 기분인지 너무나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린은 히마리가 누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이 사라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대체 당신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히마리는 잠시 대답하지 않고 휠체어를 돌려 창가를 내다보았다.

시간은 그녀가 총학생회를 찾아왔을 때에서 벌써 많이 흘러 재건 중인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보였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겁니까? 그건 나름대로 어려운 질문이었다.

“그러게요.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일까요?”

유우카의 마음도 모르고, 선생님의 행방도 모르고, 저 아래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다 알지도 못하는데,

그러나 히마리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이래 뵈도 밀레니엄의 ‘전지’, 벼랑 위의 한 떨기 꽃과 같은 초천재병약미소녀라는 이명은 내기를 해서 딴 게 아니랍니다.”

히마리가 짐짓 콧대를 높이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아무도 그렇게 불러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그럴 리가요. 모두가 존경을 담아 저를 이렇게 부르는걸요. 초병약천재미소녀라고…”

아까와 조금 달라지지 않았냐고 말하려던 린은 맥빠진 웃음을 살짝 터트렸다.

이것이 분위기를 풀어 보려는 그녀 나름의 배려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래요. 그 표정이 훨씬 보기 좋네요.”

히마리 역시 부드럽게 미소지어 보였다.

“책임을 지려는 건 멋진 태도에요 린. 그리고 저는 그런 당신을 존경하고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이 모든 것에 책임을 질 순 없어요. 그건 누구에게나 불가능한 일이에요.”

“대체 제가 아닌 다른 누가 해야 한단 말인가요?”

린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히마리를 응시했다.

“저는 총학생회장의 대리입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이 제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그거 몇 번째로 말하는 건가요? 의외로 굉장히 좋아하시나 봐요? 그 직함.”

그렇게 말한 히마리는 빙긋이 미소지으며 린을 마주봤다.

“그러네요… 가능하면… ‘우리’가 어떨까요?”

그녀는 문득 떠올랐다는 듯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아까 말 말인데요.”

“네…?”

“칭찬 정도 받고 싶어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게 나쁜 것도 아니잖아요.”

히마리가 휠체를 움직여 입구에서 린 쪽으로 다가갔다.

“좋든 싫든 우리는 비밀을 공유하는 한 배를 타게 됐지요. 후훗. 배라고 하니 그립네요. 바로 저번에도 같은 배를 탔었는데 말이에요. 사실 오늘은 당신을 도와줄까 해서 온 거기도 하고 말이에요.”

히마리가 손을 뻗어 부드럽게 린의 손을 감싸쥐었다.

자그마한 떨림을 느끼면서 히마리가 말을 이었다.

“같이 선생님을 찾아야죠. 포기하긴 이르니까요. 그리고 만약 총학생회가 정보를 숨겼다는 걸 들키게 되면… 그땐 저도 옆에서 같이 혼나 드릴게요. 살짝 손을 들고 ‘사실 저도 같이 숨겼어요.’ 하고 말이죠.”

“제가…”

뭔가 말하려던 린은 손 너머로 조금 힘이 느껴지자 말을 바꿨다.

“우리가 찾을 수 있을까요?”

“그건 우문이네요 린.”

히마리가 린이 오늘 본 것 중 가장 활짝 웃어 보였다.

“그렇게 믿어야만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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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블루 아카이브·24.06.26창작

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1)

#소설#피폐
좋아요 0댓글 36저장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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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C
EmptyBox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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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4.06.26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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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6

나
ㅇDC
ㅇㅇ124.06.26

선개추후감상

ㅇDC
ㅇㅇ224.06.26
디시콘
ㅇDC
ㅇㅇ324.06.26
디시콘
ㅇDC
ㅇㅇ24.06.26

선생 빨리 돌아와‼+

ㅇDC
ㅇㅇ424.06.26

키보토스의 전지 황 마 리 이거 개맛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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