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대결전 (3)
공황에 빠져 시선을 좌우로 마구 돌리던 히나는 벽에 기대 쓰러진 아코의 근처에서 익숙한 형상을 발견했다.
은백색 직각형. 검은 액정이 달린.
“...아."
히나의 머릿속이 새햐얘졌다.
미카는 잠시 히나가 저항을 멈춘 줄 알았지만, 곧이어 엄청나게 강력한 힘을 받고 히나의 몸 위에서 튕겨 나갔다.
그 작고 지친 몸의 어디에 그런 기력이 남아 있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꺅!”
미카를 내팽개친 것도 아랑곳없이, 히나는 미친 듯이 타블렛 쪽으로 기어가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하지만 그것은 보기에도 무참할 정도로 표면에 금이 가 있엇다.
결합부가 쪼개지고, 마치 내장처럼 알 수 없는 온갖 금속 조각들이 주변에 흩뿌려진 타블렛은 누가 봐도 이제 제 기능을 발휘하기 힘들 것 같았다.
“안 돼…”
히나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렸고, 이미 핏기 없는 피부는 더욱 새하얗게 질렸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녀는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타블렛의 표면을 쓰다듬었다.
포탄의 충격을 맞고 돌바닥에 갈려 나간 액정에선 작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선생님?”
마치 그것이 선생님 본인이기라도 한 것처럼 히나가 말을 걸었다.
물론 그것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히나의 품 안에서 전달받았던 물체의 온기는 매 초가 지나갈 때마다 싸늘하게 식어 가고 있었다.
마치 시체가 그러하듯이.
딸깍. 히나가 떨리는 손으로 타블렛의 전원 버튼을 눌렀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다.
당연했다. 그건 선생님 본인이 아니면 누구도 켤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선생님…”
현실을 부정하듯이 히나의 고개가 가로로 천천히 저어졌다.
“거짓말…”
히나가 주변에 널부러진 부품들을 그러모아 망연하게 타블렛 위에 올려놨지만,
그건 어떤 의미도 없는 행위임을 히나 역시 이미 알고 있었다.
그건 그냥 우수수 떨어질 뿐이었다.
하지만 히나는 그걸 반복했다. 마치 충분히 여러 번 그걸 반복하면 기계가 고쳐지리라고 믿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그러던 그녀가 타블렛을 꼬옥 끌어안았다.
마치 이 이상 그 물건이 식어 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처럼.
“흑…흐윽…”
그러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은 이미 일어난 뒤였고, 히나의 눈 앞에는 하나의 잔인한 현실만이 남아 있었다.
“아코!!!!!”
히나가 눈을 질끈 감고 소리질렀다.
그리고 한달음에 쓰러진 아코의 눈앞으로 달려가 그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왜 그랬어!!!! 대체 왜!!!!”
“...”
아코의 고개가 히나가 당기는 방향대로 마구 흔들렸다.
“널 믿었는데, 너만은 내게 이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절 믿으셨군요.”
“그래!!!”
동공이 작아지고, 공황에 빠진 듯한 히나를 앞에 두고도 아코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입가에 가벼운 미소라고 할 만한 것까지도 띄고 있었다.
“유감이네요. 이렇게 돼서.”
유들유들하게. 오히려 히나를 도발하는 것 같이 아코가 한 마디 더 했다.
“큭...!”
이를 꽉 악문 채 히나의 오른쪽 손이 주먹을 쥔 채로 하늘로 치켜올라갔다.
“히나 쨩!”
반대로 내동댕이쳐진 채 그걸 바라보던 미카가 소리를 질렀지만, 히나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아코는 그저 각오했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을 뿐이었다.
“죄송해요.”
오직 그 말만을 남기고.
부들부들. 허공으로 치켜 올라간 히나의 주먹에는 얼마나 힘이 실려 있었는지 굳게 감싸쥔 손톱이 스스로의 피부를 찢고 사방에 핏방울이 튈 정도였다.
서로 악다문 이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어, 설탕 조각처럼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히나의 전력이 담긴 그 주먹이었다.
직격으로 맞았다간 누구라도 중상을 면키 어려울 것이 확실했다.
“크…윽…”
그러나 그 주먹은 한참 동안이나 떨리기만 하고 내리꽂히지 않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더 지난 뒤, 조금씩 힘이 빠진 주먹은 그저 맥없이 땅을 향해 툭 떨어지고 말았다.
아코가 떨어진 히나의 손끝을 쓸쓸하게 바라봤다.
“때리지 않으시나요? 저는 맞을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담담한 말이었다.
“아코…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멱살을 움켜쥔 히나가 고개를 푹 숙이고 히나에게 물었다.
아코는 바닥에 액체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게 눈물인지, 핏방울인지는 몰랐다.
“슬프신가요?”
“...”
아코가 안쓰럽다는 듯이 정수리만 겨우 보이는 그녀의 부장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그러네요.”
“...”
“선생님이 남긴 마지막 물건을 제가 부숴 버렸어요. 정말로 경솔하기 짝이 없게요.”
“...”
“부장님이 가진 선생님의 마지막 흔적을 제가 빼앗아 버렸어요. 부장님에게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없네요.”
“...아코?”
“절망감이 느껴지세요?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미워서 어쩔 줄 모르시겠나요?”
질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는 히나가 고개를 들어 다시 그녀를 마주봤다.
“...이건 부장님에게 있어 희망이 짓밟힌 게 아닌가요?”
아코의 눈동자가 히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지그시 응시했다.
“부장님.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고 하셨죠.”
“...”
“하지만 이상한걸요. 정말 그랬다면 제 얼굴에 성대하게 주먹을 한 대 날리지 않으셨을까요?”
아코가 바라본 히나의 양 눈가에는 눈물 자국이 가득했다.
“그리고 히나 부장님이 방금 말한 대로 뭔가 나쁜 일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하다못해 안개라도 더 강해지지 않았을까요?”
짐짓 좌우를 살펴보는 척 한 아코는 히나를 부드럽게 달랬다.
“하지만 아닌걸요? 더 나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잖아요?”
“그런…”
멱살을 움켜쥔 히나의 손에서 힘이 서서히 빠져나갔다.
“부장님. 저는 부장님 말 안 믿어요. 선도부에 폐 끼치기 싫다고 혼자 사라지고, 혼자 죽을 정도로 힘들고 괴로워서 고작 생각해 낸다는 흉계가 ‘모두 행복한 꿈 꾸게 하기’ 라는 사람 말은 믿지 않아요.”
아코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처음 재워 버린 학생들이 혹시 잘못될까 봐 확인하려고 창고에서 한 발짝도 안 나가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트리니티 독사를 만나도 급소 다 피해서 사격하고, 소중한 선생님의 타블렛 부순 부하한테 손찌검조차 못 하잖아요. 그런 사람이 ‘나 진짜 못됐어’라고 말하면 그걸 믿겠어요?”
“나는… 그런 사람이…”
“우습게 들린다구요. 아세요? ‘나 위험한 사람이야’라고 애써 강조해 봐야. 전 부장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안단 말이에요.”
"지금이라도 뭔가 더 나쁜 일이 일어날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히나 부장."
히나의 등 뒤에서 미카의 것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전차 안에서 총학생회의 채널을 들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의 상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정말로...?"
"그래요. 선도부의 리더답지 않게 경솔했네요. 히나 위원장.”
어느 새 비틀거리면서 나타난 이로하였다.
“그건 타블렛일 뿐입니다. 선생님 본인이 아니에요.”
히나와 미카가 처음 만났을 때 조명탄을 발포하고, 히나의 등 뒤에 포탄을 발포했던 것도 그녀였다.
안개가 키보토스 전역으로 퍼져 나갔던 그 시각, 이로하는 토라마루 안에 있었던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지휘부와 연락을 시도하던 중 유일하게 응답해 온 것이 잠에서 깨어난 아코였던 것이다.
“더 중요한 건, 그건 정말로 ‘싯딤의 상자’도 아니라는 거지요.”
“뭐…?”
눈을 치켜뜬 히나 앞에서 아코가 부드럽게 허리춤 뒤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들어 보였다.
“진짜는 이거에요.”
그건 틀림없는 싯딤의 상자였다.
"어...째서?"
“속여서 죄송합니다. 아까 매달려서 떼쓸 때 슬쩍했어요.”
“...그럼 저건?”
“제 거에요.”
아코가 싱긋 웃었다.
“저도 업무용 단말기 정도는 들고 다니니까요. 아시다시피 타블렛이란 건 다 비슷하게 생겼잖아요?”
제대로 확인해 보지 않으셨죠? 라고 아코가 한 마디 덧붙였다.
그 말대로 공황 상태에 빠진 히나는 그것의 형상을 냉정하게 분석할 겨를이 없었다.
히나가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며 마침내 두 손을 놓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하…하하…”
다행인 건지 기막힌 건지 알 수 없는 공허한 웃음.
그런 그녀 뒤로 미카와 이로하가 거리를 좁혀서 다가왔다.
이로하는 아직도 경계하는 듯이 권총을 히나에게 들이댄 상태였지만, 미카는 그저 연민 가득한 눈초리만 보낼 뿐이었다.
“이대로 날 체포해 갈 생각이야?”
반쯤 체념한 히나가 자포자기하듯이 말했다.
“그런 게 아니야.”
미카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말했잖아. 이야기를 하러 온 거라고.”
“이야기…?”
“응. 이대로라도 좋으니까. 잠깐만 내 말을 들어 주지 않을래?”
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미카가 입을 열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녀 자신 스스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는 조금 혼란스러운 눈치였다.
“히나 쨩은 트리니티에 전해져 내려오는 화두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어?”
어느 순간 미카가 다시 꺼낸 화제는 그런 말이었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는 히나가 잠깐 망설였다.
“낙원의 존재 증명에 관한 화두였어. 낙원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면 결코 거기서 벗어나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낙원의 존재를 누가 전해줄 수 있을까 하는 모순이었지.”
“그런 밑도 끝도 없는 선문답이 어쨌다는 거야?”
히나의 부정을 개의치 않고 미카는 말을 이어나갔다.
“히나 쨩이 만드는 꿈 속이 정말로 낙원이라면, 거기서 헤어나온 나는 뭐가 되는 걸까?”
히나의 몸이 움찔했다.
“그런 건, 네가 특별 취급을 받았으니까…!”
미카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사실이지? 나라는 예외가 존재해 버린 이상, 그게 둘 이상이라도 이상하지 않잖아?”
“그건…”
“있잖아, 히나 쨩, 이게 정말로 모두가 원하는 방법이 맞을까?”
“...”
“...난 말이야, 항상 이 화두가 다른 화두랑 비슷하다고 생각했었어.”
선생님이 전해준 이야기를 떠올리며 미카가 말을 이어나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였지. 재미있지 않아?”
히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미카는 상관하지 않고 재차 물었다.
“이상하게 들리지 않아?”
“그건 질문조차 아니야. 말도 되지 않는다고.”
“응. 하지만… 기분 탓일까, 난 항상 이게 낙원에 관한 화두와 똑같다고 생각했거든. 성격 때문인지, 소망 때문인지, 항상 여기에 내가 원하는 단어를 대입해 보는 버릇이 있었어. 그게 무슨 단어였을 거라고 생각해?”
“...”
“...나 자신이었어. 나한테 나 자신만큼 두려운 것은 없었거든. 내 실수 때문에, 내 아집과 충동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쳤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런 생각을 했어.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 건지 모르겠다고. 이 행복한 일상 이면에 이런 계략과 음모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게, 나 혼자 그걸 몰랐다는 게 믿을 수 없었어. 그게 너무 두렵고 끔찍해서… 마냥 아름답기만 한 세상이 사실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런 말로 변명하려는 거야? 아무것도 몰랐다는 말로?”
미카는 그 말을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선생님 앞에선 웃는 낯으로 대하다가, 뒤에서는 모두를 파멸시킬 바보 같은 계획이나 생각하고 있었던 내가 자꾸 떠올라서… 남들에겐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정말 끔찍하고 이해할 수 없는, 종말의 화신, 그야말로 마녀 같은 것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히나는 미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갑작스레 시작된 고해 같은 말들에, 그냥 주저앉은 그대로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난 그래서 그렇게 생각했어. 난… ‘나’를 통해 ‘타인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근데 이상하지 않아? 그야 타인이란 건. 이해하는 순간 타인이 아닌 거잖아.”
“...그건…”
“마치 낙원 같지. 낙원을 누군가 간증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낙원이 아니게 되는 거니까.”
미카가 웃었다.
“그런데 거기서 선생님이 나타난 거야. 포기하라고 하고, 배신하고, 모멸하고, 심지어 총에 맞아도 돌아가지 않는 그 바보 같은 어른이.”
“선생님…”
“날 포기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정말로 그렇게 했어. 이 구제 불능에, 바보 같은 나를 끝까지 놓지 않고, 넌 내 학생이라고 외치면서, 죽음 앞까지 달려왔어. 정말 바보 같지 않아?”
스스로 말하면서도 미카의 뺨에도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믿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 선생님은 보이는 그대로의 사람이었어. 한없이 타인 같지 않았던 거야. …낙원과 한없이 닮은 사람, 그게 선생님이었어.”
“그럼 너도 알잖아!”
히나가 재차 호소했다.
“선생님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을 거 아니야! 대체 왜 부정하는 거야? 왜 그 꿈에서 벗어난 거야?”
미카가 히나의 얼굴을 응시했다.
충분히 가까워진 거리에서 히나는 미카의 눈동자에 서린 광채까지 똑바로 볼 수 있었다.
“그런 지금이라서 더 알 수 있어. 어쩌면 선생님의 부재 덕분에 깨닫게 된 걸지도 몰라. 모순의 해답이, 화두의 실마리가 바로 우리 곁을 거닐고 있었는데, 그땐 우린 몰랐던 거야. 매 순간이 기적 같은, 너무나도 소중한 순간이었는데 그걸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거야.”
미카가 고성경의 오래된 경구를 작게 읊었다.
“나라가 이미 임하였으나,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하였나이다…”
그건 히나조차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그러니, 낙원을 다시 도래하게 만드는 건, 우리 힘으로 하지 않으면 안 돼. 환상 같은 선문답, 꿈 속의 막연한 공간이 아닌, 오로지 현실에 다시 낙원이 거하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 그것이…”
미카가 말을 끝맺었다.
“그것이 우리의 의무니까. 불가능하더라도, 그 노력에 의미가 있는 것이니까. 스스로 낙원의 내방자에 가장 가까웠음에도, 마지막까지 그저 낙원의 존재를 믿은 선생님처럼.”
“내게 뭘 믿으라는 거야?”
히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우리가 바라는 무엇이든지."
“선생님이 없이… 우리들끼리라도?”
“난 그렇게 믿어. 히나 쨩.”
“우리들이…?”
“응. 그러니 히나 쨩도 그걸 같이 믿어 주면 안 될까?”
“하지만…하지만…”
"믿음을 가져야 해. 히나 쨩. 난 좋은 사람이라고."
그 말에 이로하도 옆에서 한 마디 했다.
"당신은 여전히 좋은 사람입니다. 히나 부장."
“이렇게까지 해 버렸는데. 돌이킬 수 없이 큰 일을 저질러 버렸는데… 모두가 내 나쁜 모습을 알아 버렸는데, 이제 난 어떻게 해야 해? 이런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했는데…”
히나가 울먹였다.
“이제 와서 그냥 믿으라니, 뭘 믿으라는 거야? 선생님이 돌아올 거라고? 선생님 없이도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모든 게 예전같을 수 있을 거라고? 키보토스 전체를 잠재운 나를 사람들이 다시 용서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대체 뭘 믿으라는 거야? 너무 제멋대로잖아. 막무가내야…”
“히나 쨩도 사실은 이러고 싶지 않았던 거 아니야?”
미카가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악의는 없었는데, 뭔가 일은 자꾸 나쁘게만 돌아가고, 그러다 보니 실수를, 악운을 만회하기 위해 스스로를 속여야 했던 거 아니야? 난 원래 나쁜 학생이었다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흑!”
“하지만… 두 번째 기회는 언제라도 있어.”
그리고 히나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미카의 무릎 역시 까지고 상처투성이었지만, 그녀는 전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그야, 날 보면 알잖아?”
미카가 히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히나가 눈가를 감싸쥐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 나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어. 그냥 선생님이 보고 싶다고. 나도 응석부릴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다고. 난 그냥 남들과 같은 학생일 뿐이었단 말이야.”
“이해해. 히나 쨩.”
“그런데… 그런데 그런 말을 어떻게 해? 누구한테도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어. 그런데 오직 선생님만… 선생님만 날 이해해 줬단 말이야. 그런데…!”
“그것도 이해해.”
“너무 보고 싶어서, 보고 싶다는 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정신 차리고 보니 주변의 모든 게 잠들어 있고, 모든 게 다 잘못되어 있었어…!”
“응…”
“이유가 필요했어. 이런 짓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멈추지 않을 이유가 필요했다고. 내가 옳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난 그저…”
자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똑같은 생각을 했던 히나를 보면서 미카는 생각했다.
조금만 더 일찍 그녀 같은 친구가 게헨나에 있었다면, 그녀와 조금 더 빨리 알았었다면 많이 달라졌을까?
게헨나는 모두 상종 못하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거기에 나와 꼭 닮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지금 내게 지워진 무거운 과거가 좀 가벼워졌을까?
모를 일이었다.
미카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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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개추 후감상.
대 미 카


건강한 정신은 미황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