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마지막 회동
금방이라도 쪼개질 것 같은 원탁에 마주 앉은 남성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건에 대해서는 우리들의 시각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군.”
머리가 둘 달린 마네킹 같은 존재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남성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인간과는 거리가 먼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부르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몰랐다.
“큭큭. 그럴지도요.”
“이 사건에 대해서 네게는 참으로 할 말이 많다. 검은 양복.”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듣겠다.”
마네킹이 탁자 위에서 양 손을 가지런히 깍지꼈다.
“당신답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마에스트로. 그녀에게 그렇게까지 많은 정보를 전해 줄 줄은 몰랐군요. 그것도 선생의 복귀를 위한 포석이었습니까?”
“예술의 탐구를 위한 판단이었다. 검은 양복. 네가 간섭할 일은 아닐 텐데.”
“아, 오해하지 마시길. 저는 당신을 탓하는 것이 아닙니다.”
큭큭큭. 검은 양복이 기분 나쁘게 웃었다.
“오히려 반대지요. 당신 덕분에 굉장히 흥미로운 결과값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선생이 부재중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들 스스로 보여준 유대와 믿음의 힘… 흐음. 선각자의 뜻이 이 세계에서 실재화되는 과정을 관찰하는 것은 꽤 괜찮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이것으로 만족한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아니군요. 고작 두 달 남짓한 시간은 진정한 부재를 탐구했다고 부르기엔 너무 짧지요.”
“어느 정도가 적절하다고 생각했었지?”
“글쎄요.”
잠깐 고민하던 검은 양복이 말했다.
“이천 년 정도일까요.”
“...그것은 터무니없군.”
“그렇습니다. 그건 잔혹한 농담이지요. 하지만… 그래서 낭만적입니다.”
“의외로군. 네가 낭만 따위를 추구하는 자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특이 상황’에서는 ‘특이한 감상’ 정도는 용인되지 않을까 해서.”
마에스트로가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정보를 전해주었다고 하니 말인데, 애시당초 너의 계획이 그토록 극단적이지 않았다면 그녀와 접촉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 소라사키 히나라는 학생에게 선생의 부재를 전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었다. 조금만 일이 더 잘못되었더라면 이 키보토스는 정말로 영원한 잠이 지배하는 무덤 세계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랬지요.”
검은 양복은 그의 책망을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강한 신비에 깃든 미숙한 정신을 가졌다. 그녀의 주변인들이 그녀를 철인에 가까운 누군가로 칭송할지는 몰라도, 그녀의 선생에 대한 의존성은 네가 예측했던 것 이상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공포’로 ‘고정된’ 그녀가 키보토스를 모두 뒤집어 버렸다면 어쩔 셈이었지?”
“하지만 덕분에 그녀의 신비 이면의 공포를 아주 조금 엿볼 수 있었습니다. 비록 정확하거나 완전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밤의 영역, 그리고 잠이라니. 흥미롭지 않습니까? ‘아누비스’의 모습과 여러모로 닮아 있을지도요.”
“지나치게 결과론적이군.”
“허나 그녀가 우리에게 장차 최대의 장애물이 될 것을 고려해 보면, 이 지식은 형용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닐 것입니다.”
“으으음…”
“사실 저는 당신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당신이 아코라는 학생에게 귀띔을 해 주지 않았다면 상황은 훨씬 복잡하게 흘러갔을 테니까요. 당신 말대로 정말로 키보토스가 무덤 세계가 되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나를 이용했다는 건가? 내가 이렇게 행동할 줄 알았다고?”
“그건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훌륭한 ‘공동 연구’가 된 셈이죠.”
검은 양복이 훈훈하게 말끝을 마무리했지만, 마에스트로는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 우연과 추측에 기대는 안일한 방법은 네 취향이 아닐지언데, 나를 떠보려 하는군. 검은 양복.”
마에스트로가 검은 양복에게 가볍게 삿대질을 했다.
“이번엔 내가 추측을 한번 해 보지. 너는 실제로 키보토스 전체가 당한다 할지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
“소라사키 히나가 최종적으로 공포로 고정되고, 키보토스 전체가 잠들어 버린다고 해도 너는 그걸 ‘통제 가능한 피해’라 치부했겠지.”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왜냐면 너는 선생이 돌아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호오.”
“선생이 이 이야기의 끝을 맺지도 않고 일방적인 작별을 고할 것이라곤 결코 생각지 않았겠지. 그리고 선생이라면 언젠가 이곳에 돌아와 남은 문제들을 마저 수습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마에스트로의 추측을 듣던 검은 양복이 팔꿈치를 원탁 위에서 치우고 의자에 기대 앉았다.
“그리고 그렇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데이터들은 역시 더할 나위 없이 값진 것들이라 생각했을 테지. 아닌가?”
“과연 마에스트로라 불릴 만 하군요.”
검은 양복이 감탄했지만, 마에스트로는 여전히 심기가 불편한 듯 보였다.
“하지만 검은 양복. 뭐든지 선생에게 의존해 버리려는 것은 학자로서 그다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지 않은지?”
“버리기 아까운 기회였습니다.”
검은 양복이 완고하게 대답했다.
“방주 사태에서 '아누비스'가 가진 공포의 편린만을 엿보았음에도 그것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반대로 이런 가능성을 저버리는 것이야말로 학자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자세잖습니까?"
"흠..."
"또한 선생의 귀환이 ‘쓸 수 있는 카드’가 된다면, 그건 그야말로 최고의 패를 뽑은 것이나 다름없겠지요. 그렇게 본다면 저는 이길 수 밖에 없는 싸움을 한 것입니다.”
“네 동기가 나와 같이 ‘탐구’에 있었다는 것은 잘 알겠다. 허나 수단의 극단성은 둘째치고서라도, 네 계획은 모두 ‘선생의 귀환’이라는 전제 하에서만 진행된 것이지 않은가? 나는 그것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그의 요지는 만약 선생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쩔 것이었냐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대책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고?”
“모든 경우를 다 상정해서 완벽하게 작동하는 계획은 누구도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고가치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위험 역시 감수해야 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소라사키 히나 정도의 학생이 가진 ‘공포’의 편린을 엿볼 기회가 몇 번이나 더 찾아오겠습니까?"
“으으음.”
그것은 마에스트로에게도 완전히 부정하기 힘든 유혹임은 사실이었다.
“제가 당신의 방식을 존중해 주었으니, 당신도 제 방식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나 역시 네 행동에 참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같은 탐구자로서 솔직히 말해 주길 바란다. 최초에 소라사키 히나라는 학생에게 그토록 큰 힘이 잠재되어 있다고는 너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검은 양복이 순순히 인정했다.
“예.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도 맞습니다. 여태까진 당신의 ‘작품’들을 상대할 때조차 그녀가 직접 나서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그것보단 이렇게 쉽게 반전될 줄은 몰랐다고 해 두는 것이 더 가까울까요. 그녀가 선생에게 가진 감정이 그 정도로 깊은 것인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선생의 부재를,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불가역적이고 무겁게 받아들인 건가…”
숙고하던 마에스트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다른 부분 역시 납득이 가지 않는군. 나의 미메시스를 상대할 때의 그녀는, 그녀의 수하인 아마우 아코라는 자보다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그녀가 가진 신비의 잠재력에 훨씬 미치지 못했지.”
“어쩌면 아직 자신에게 맞는 모습을 찾지 못한 것뿐일지도 모르죠.”
검은 양복이 어깨를 으쓱했다.
“모습?”
겉모습에 얽매이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마에스트로가 의아해했다.
“뭐. 모습이건, 형태이건, 어떻게 부르든 좋습니다. 뭐 '옷이라도 갈아입는'다거나, 그럼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옷이라?”
"그렇습니다. 당신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겠지만요. 복장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경우도 흔하니,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흐음..."
"뭐, 적당한 드레스라도 걸친다던가."
대충 듣기에는 어이없는 말이었지만 어쩐지 깊은 울림을 가진 그 말이었고, 마에스트로는 조금 섬뜩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날이 찾아오면, 오늘날 얻었던 지식이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에게도, 당신에게도.”
검은 양복이 눈을 빛내면서 말을 끝마쳤고, 이제 궁금증을 대다수 해소한 마에스트로는 여기가 이 짧은 회동을 끝마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이해했다. 허나 다음에는 더 사려 깊은 행동을 기대하지.”
“당신의 충고를 기억해 두지요.”
큭큭큭. 검은 양복 역시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를 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견해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많이 없으니까 말이죠."
마에스트로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용건을 끝낸 서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원탁에서 일어났고, 각자가 가야 할 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아. 그러고 보니."
문득 발걸음을 멈춘 검은 양복이 말했다.
"돌아온 선생은 뭘 하고 있답니까?"
"...바쁜 듯하더군."
마에스트로가 뒤돌아보며 대답했다.
"큭큭. 두 달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물론 그렇겠죠."
말할 것도 없다는 듯이 검은 양복이 웃었다. 하지만 그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었다.
"백귀야행에 볼 일이 있는 것 같았다. 이번 사태에선 겉돌기만 했던 곳이지만 말이지."
"아아."
"정확히는 그곳의 분쟁조정위원회와 인연을 만들었던 듯하다. 허나 그 전에..."
마에스트로가 어쩐지 말을 잠깐 망설였다.
"데이트를 해야 한다더군."
"...데이트. 말입니까?"
마에스트로는 묘하게 스스로 말하는 단어가 낯간지럽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많이...?"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도 모르고, 잠시 동안 손끝으로 턱을 쓰다듬던 검은 양복은 겨우 딱 한 마디 했다.
"그것 참."
댓글 16
드히나페스라 복귀선생 가챠돌만드노ㅋㅋ
예붕이 때문에 드히나에서 긁혔네 씹ㅋㅋㅋㅋ
드히나!
와 이격설정을 이렇게 녹여낼줄은 몰랐네ㅋㅋㅋ
근데 왜 히나의 공포는 잠으로 설정된건지 궁금하다
일차적으로는 캐릭터 디자인 코드가 서브컬쳐쪽 몽마(서큐버스)를 참고했다고 느껴서 그랬고 마에스트로 입을 빌려 적었듯이 히나 성격인 성실함, 책임감, 과로의반대편에 나태가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그걸 잠이라는 상징으로 치환했고 그게 공포로 발현되면서도 히나 스스로는 책임감을 완전히 놓지 못해 본인은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설정으로 썼습니다...
이번 몰픈월드 해보니 적절한 분석으로 보이네 항상 재밌게 읽고 있음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