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대결전 (2)
아코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과 히나의 총구에서 총탄이 발포된 것은 거의 동시였다.
고작 몇 발 발사된 총탄은 미카의 정강이뼈에 정확하게 적중했다.
“아얏!”
그러나 총탄이 몇 발 발사되기도 전에 히나의 머리 위로 아코가 떨어져 부딪히고 말았다.
멋들어진 낙법 같은 것도 없이, 아코는 그냥 바닥에 ‘철푸덕’소리를 내며 히나와 함께 꼴사납게 엎어졌다.
아코의 체중 아래 쓰러진 히나는 상대가 누구인지 훑어봤다.
“게흑, 케흑, 콜록! 콜록 콜록! 으흡! 우웨엑!”
안개를 뚫고 떨어진 아코는 바로 꼴사나운 기침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에으윽… 아야야… 아파…”
“...아코?”
먼저 입을 연 것은 히나였다.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으으윽…”
아코는 엉덩이를 매만지며 엉거주춤하게 히나 위에 엎드렸다.
“콜록! 콜록! 히나 부장님,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이야. 아코.”
“우윽, 콜록! 정말 이게 얼마만이에요 부장님!”
그런 아코를 향해 미카가 소리쳤다.
“아코! 오지 말라고 했잖아!”
“콜록! 시끄러워요! 자꾸 이래라저래라! 누가 당신들 지시 따윌 들을 것 같아요?"
"길을 잃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대책 없이 안개 속으로 들어온 거야?
"몰라요! 아무튼 제대로 도착했으니까 된 거 아니냐고요!”
지금까지 숨이 차도록 달려오고 있었던 듯이 아코는 기침을 마구 했다.
“저도 위치 정도는! 콜록! 알 수 있어요! 그냥, 우웨엑! 잠깐 헤멘… 것 뿐이라고요!”
“...어떻게?”
“냄새로요!”
“...뭐?”
“부장님 머릿결에선 햇님 같은 냄새가 난단 말이에요!”
"우, 우와..."
미카의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침이 대충 멎은 아코는 히나를 꼭 껴안았다.
“히나 부장님, 대체 왜 이러신 거에요? 저랑 모두가 선도부장님이 없어져서 얼마나 찾았는지 아세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서는, 데려오라고 보낸 선도부원도 모조리 실종 상태고, 어디 상담할 사람도 없지…”
애써 유지한 히나의 무표정 아래로 희미한 안도감, 반가움 같은 것이 스치고 지나갔다.
정말 잠깐의 순간이었고,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그걸 놓칠 아코가 아니었다.
“...너도 안 자고 있었구나.”
“그럼요. 부장님을 두고 저 혼자 어떻게 잘 수 있겠어요?”
아코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부장님도 잔업치고는 지나치게 오래 일하시고 계시잖아요!”
“...그런가.”
“부장님 얼굴이 말이 아니에요. 식사는 챙겨 드시고 계셨나요? 또 수면은…”
습관적으로 안부를 묻는 대사를 하던 아코는 말도 안 되는 걸 물었다는 걸 때닫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무사하셔서 무엇보다 다행이에요! 제가 어떤 기분으로 부장님을 찾아다녔는지 아세요? 하다못해 연락이라도 한 마디 해 줬으면…!”
“미안해. 아코.”
히나가 품 안에 안겨서 머리를 마구 비비적거리고 있는 아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런 어색한 대화를 하는 사이에도 아코는 계속해서 히나의 위에 올라타 있었다.
“히나 부장님. 이러지 말고 저희 돌아가요. 돌아가 모두에게 사과를 해요.”
“...”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요. 제발 이걸 멈춰 주세요.”
히나는 그 말에 한참 동안이나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늦었어.”
“어째서요? “
“...한번 시작한 이상, 난 이걸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어.”
“그럼 하다못해 그 ‘싯딤의 상자’만이라도…”
아코의 시선이 히나의 코트 안쪽에 매달린 타블렛을 향해 가 닿았다.
그 시선을 느끼자 히나는 자신도 모르게 코트 자락을 여미고 말았다.
“미카 씨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에요. 정말 그걸로 선생님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지도 모른다구요.”
“...”
히나는 아코의 말에 눈에 띄게 동요하는 것 같았다.
같은 말이라도 미카가 하는 것과 그녀를 가장 오랫동안 보좌해 왔던 아코가 하는 것과는 말의 무게감이 달랐으니까.
“아코. 그게 어느 정도로 확실한 수단이라고 생각해?”
잠깐 고심하는 듯 하던 히나가 아코에게 되물었다.
“...네?”
“타블렛과 카드로 선생님을 부른다는 그 뜬구름 잡는 소리를, 어느 정도로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시도라도 해 봐야죠!”
“아코… 미안하지만 그럴 수 없어.”
히나가 쓸쓸하게 웃으면서 아코의 제안을 거절했다.
“이건 확실히 내가 만들어낸 안개야. 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선택했던 수단은 아니었어.”
그녀의 말대로 이 안개가 처음 그녀 주변을 감싸고 있었을 때는 히나가 키보토스 전역을 잠든 채로 유지하겠다는 계획 같은 걸 세우지도 않았을 때였다.
그러나 그녀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이 잠들어 버리고,
그 때문에 선생을 수색하려는 모든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 버리자 그녀의 마음 속 절망감은 날이 갈수록 거대해져 갔고,
그럴수록 안개 역시 그녀 주변을 짙게 감싸기 시작했다.
“이건 내 마음인가 봐, 아코.”
“...부장님의, 마음요?”
“그래 보이지 않아, 아코? 이 검은 안개 말이야. 정말로 그런 걸지도 몰라. 내 나약함과 이기적이 형상화된 무언가라고 말하면 넌 믿겠어?”
“아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할 지 모르지만…”
“당연하죠!”
아코가 소리쳤다.
“왜냐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맞거든요! 부장님은 나약하고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
“그런데 내게는 도저히 그렇게밖에 보이지가 않아. 그도 그럴 게, 이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잖아?”
히나가 아코의 말을 잘랐다.
결국 이 안개가 키보토스 전역으로 퍼지던 날은 그녀가 선생님과 관련된 잘못된 무전을 들었을 때였다.
마지막 희망조차 사라지고, 모든 선택지가 잘려 나간 그녀가 고른 마지막 수단이었다.
히나는 스스로도 그걸 알고 있었다.
다른 방법이 더 있었다면, 가능성이 더 있었다면, 자신이 이 모든 실패를 딛고 올라올 정도로 강했다면,
그때도 자신이 이런 수단을 선택했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었다.
“아코. 난 나약한 사람이야. 내게 제발 기대감을 더 주지 마. 만약 네가 제안한 마지막 수단조차 실패한다면… 내게 뭐가 일어날지 알 수 없어. 영원한 꿈과 수면, ‘빈 자리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히나는 정말로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이 판단에 필연과 우연이 어느 정도인지, 검은 양복의 말이 어느 정도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히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히나 부장님은 그럴 사람이 아니잖아요!”
“이 안개는 내 마음에서 나온 거야. 그리고 난 그걸 통제할 수 없어.”
어쩌면 번지르르한 다른 이유를 제치고 그것이 히나가 이런 수단을 선택한 이유일지도 몰랐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그녀도 더는 상처입을 일이 없을 것이었다.
잠드는 것 이상으로 나쁜 일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미카와 아코가 잠시 침묵하는 사이 히나가 숨을 고르고 아코를 밀어 내려고 했다.
그러나 아코는 그냥 히나 위에 다시 털썩 엎어져 버리더니, 그녀를 꼭 껴안았다.
“...아코. 비켜. 난 해야 할 일이 있어.”
“싫어요! 어떻게 찾은 부장님인데! 절대 싫어요!”
평소였다면 히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코를 밀어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이 정도로 허약한 분이 아니셨는데.’
체력도, 정신력도 한계에 달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히나는 책상물림에 가까운 아코가 당해내기엔 너무 강했다.
“으으으으읏!”
곧 아코를 떼어 내는 데 성공한 히나는 옷자락을 툭 툭 털고 서서히 일어났다.
그러나 곁에 내동댕이쳐졌던 아코는 다시 그녀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아코. 제발 비켜.”
“싫다고요! 절대 안 비켜요!”
“아코…”
히나가 슬픈 눈으로 아코를 내려다봤다.
“제가 비키면, 뭘 할 셈인데요?”
“...미카를 마저 ‘재울’거야.”
“그럼 더 못 비켜요!”
“아코. 너도 미카 편을 드는 거야?”
“설마요! 트리니티의 저 기분 나쁜 여자보단 귀신 같은 부장님이 백 배 천 배 나아요!”
“그럼 어째서…!”
“왜냐면 이건 부장님이 완전히 잘못한 게 맞으니까요!”
그 말을 들은 히나가 자기 귀를 의심헀다.
“아코, 방금 뭐라고…”
“지금 이건 부장님이 잘못한 거라구요!”
취미 칸에 ‘히나’라고 적어 내는 사람, 히나의 무조건적인 지지자.
히나의 말만 듣고, 히나의 지시라면 무엇이든 하는 그 아코의 입에서 ‘근데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었다.
“에… 그래?”
이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던 미카조차도 좀 당황하고 말았다.
“말도 없이 도망가서는, 선도부 사람 모두 애간장은 다 태우고, 몇 주나 더 지나서 다시 만났더니 고작해야 한다는 말이 ‘오랜만이야 아코’뿐이고! 그동안 온갖 말도 안 되는 계획은 혼자 세우고! 저한테 물어 보지도 않았잖아요! 상담도 안 해줬잖아요! 문서화를 꼭 해야 한다고 말한 건 부장님이면서!”
아코의 눈시울이 붉어져 오고 있었다.
“계, 계획서도 안 쓴 이런 행동 제가 용납할 것 같아요? 저도 부부장이에요! 여기에 도장 절대 안 찍어 드릴 거에요! ‘안개 어쩌고 계획’은 폐기에요! 폐기!”
그리고 곧 훌쩍이기 시작했다.
“아코… 제발 이러지 마.”
“부장님이 이러지 마요! 이 고집불통! 백 퍼센트에요 백 퍼센트!”
“백 퍼센트…?”
“백 퍼센트로 선생님 불러 올 거에요! 무조건 무조건이에요!”
히나가 두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아코…!”
“그 못된 바보, 탈주범, 호색한, 다리 페티쉬가 뭐가 좋아서!”
아코가 울고 불고 콧물까지 질질 흘리면서 꼴사납게 소리쳤다.
“새벽 두 시에 모모톡 보내도 답장해 주고, 잔업 떠맡겨도 싫은 소리 안 하고, 편의점에서 만나면 커피 사 주고, 애인 사귄 적 있냐고 캐물어도 화 안 내고, 그런 주제에 문제가 생기면 자기한테 다 맡기라는 그런 사람이 뭐가 좋아서!”
“...”
"어차피 다 끝나고 나면 나면 저도 다시 잠재울 생각 아닌가요? 히나 부장님 계획에 예외 같은 건 없잖아요!"
히나는 그 말에도 대답하지 않았고, 아코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부장님이 이렇게까지 고집불통일 줄은 몰랐어요. 자꾸 이러시면 저도 생각이 있다구요!”
아코가 결심을 굳힌 듯이 이를 꽉 깨물더니, 곧이어 큰 소리로 누군가의 이름을 외쳤다.
“이로하!!!!”
“!”
막다른 골목을 막고 선 히나의 등 뒤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렸고, 위협을 육감으로 느낀 히나가 황급히 방어 자세에 들어갔다.
히나는 몸을 돌려 날개로 몸통과 머리를 가리려고 했지만, 두 다리를 꽉 잡고 놓지 않고 있는 아코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등에 포탄을 직격으로 맞은 히나는 미카 쪽을 향해 튕겨 나갔다.
“커흑!”
그리고 히나에게 매달려 있던 아코는 히나를 놓치고 다른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에…?”
이로하? 미카가 생각했다. 만마전 학생 아니었나?
‘전차 전력에 대해서는 대해서는 들은 게…’
“미카 씨!”
하지만 그런 걸 여유롭게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폭압 때문에 완전히 나가떨어져서 벽에 쳐박힌 아코가 미카의 이름을 불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미카가 히나 쪽을 향해 도약했다.
총격을 받아 부러진 한쪽 다리에서 잠깐 실신할 정도의 격통이 치고 올라왔지만, 미카는 고통을 무시했다.
자세가 무너진 히나가 황급히 미카의 돌진을 막아 내려고 했지만,
포격을 직격으로 받아 현기증을 느끼는 히나보다 미카가 아주 살짝 더 빨랐다.
히나에게 달라붙어 그녀가 든 기관총을 쳐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멀리 치워낸 미카는, 히나의 허리춤을 안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거 놔!”
미카의 아래에 깔린 히나가 발버둥을 쳤지만, 오랜 불면과 금식으로 인해 허약해진 히나는 미카가 자신을 짓누르는 힘을 이겨낼 수 없었다.
“싫어! 무슨 일이 있어도 놓지 않을 거야!”
“놔! 놓으라고!”
“절대 안 놔!”
"아코랑 똑같은 말을...!"
표정을 일그러뜨리던 히나는 갑자기 무언가 섬뜩한 예감이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차포를 직격당하고 쓰러졌다. 그럼 자신의 품 안에 있던 그건...?
'타블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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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아코야 귀찮지만 도움이 된다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