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또 거짓말
“여기가, 안개의 중심부인가…”
지상 위 10m정도에서 호버링 중인 헬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내린 미카가 중얼거렸다.
아리스의 슈퍼 노바가 남긴 궤적 주위로 십수미터에 달하는 폭만 햇볕이 화창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역의 바깥쪽부터는 칠흑 같은 어둠이 지배하고 있었다.
하나코가 생각보다 고전하는 동안 휴식을 마친 아리스와 토키가 이번엔 블랙 마켓까지 2차 발포를 했던 흔적이었다.
계기비행으로 비행한다고 해도 안개가 가장 짙은 블랙 마켓까지의 접근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총학생회의 임시 작전실에서는 아주 제한적인 항공 관제만 가능했고, 안개는 시계를 거의 0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작전실의 모두는 아리스와 토키에게 조금 더 무리를 해 달라는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이번에야말로 둘은 완전히 뻗어 있을 것이었다.
“행운을 빌어요, 미카 씨!”
“응! 나만 믿어!”
미카는 조종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야네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아리스와 토키를 후방으로 옮겨야만 했고,
지금쯤 다른 장소에 추락한 위성들의 뒤처리를 하고 있을 아비도스의 동료들을 지원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공간이 잘려 나간 것 같아…”
미카의 바로 좌우에는, 직선으로 죽 이어진 ‘공간’이 마침내 끝나 있었다.
마치 이 우주에서 미카가 서 있는 거기까지만 현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미카가 뒤돌아보자 큰길 중간중간 치열한 교전이 있었던 흔적들이 보였다.
폭발과 총탄의 흔적, 방치된 몇몇 전차는 아직도 엔진 룸 혹은 포구 쪽에서 연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아마도 저게 자신이 잠들어 있었던 사이 일어났던 무력 충돌의 흔적이리라.
“...좋아.”
그리고 그 직선 경로의 끝자락에 목표한 창고가 보였다.
'이걸 아리스 쨩이 했다고 했나. 거의 곡예에 가까운 완벽한 출력 조절이네...'
최근 문짝을 바꾼 것 같은 그 창고 입구에서부터 불길한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 아리스가 걷어 낸 안개를 다시 메우고 있었다.
“소라사키 히나!”
확신을 가진 미카가 목청껏 큰 목소리로 외쳤다.
“거기에 있지? 나와 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야기가 하고 싶을 뿐이야!”
미카가 간절한 목소리로 다시 외쳤다.
“그냥… 그냥 정말. 이야기만 하면 되니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어!”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아니나다를까, 닫힌 창고 문 너머에서 뭔가 쿠션에 묻힌 것 같은 먹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있잖아? 거기 있는 거지?”
미카가 창고 문을 가볍게 두드려 보였다.
“나, 나는 트리니티의 미소노 미카라고 해!”
“미카…? 신기하군. 트리니티엔 다른 미카도 있었던 건가.”
히나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더니,
“...아니. 네가 누군지는 상관없어.”
곧 다시 흥미를 잃어 버렸다.
닫힌 창고 문을 두드리면서 미카가 계속해서 호소했다.
“좋은 소식이 있어서 왔어!”
“좋은 소식?”
창고 문 너머에서 히나가 헛웃음을 지었다.
“재미있는 소리네. 네가 좋은 소식을 가져왔다니.”
“진짜라구! 선생님을 불러올 방법이 있대!"
"선생님...?"
"응! 그냥 타블렛을 잠깐 빌려 주기만 하면 돼!”
“너와 할 이야기는 없어.”
히나는 잠깐 흥미를 가지는 듯 하다가 미카의 제안을 거부했다.
“들어 봐! 정말로 선생님을 다시 불러올 수 있어!”
“...가 버려.”
“나기 쨩, 아니 트리니티에서 알아낸 건데, 카드와 타블렛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밀레니엄 다음에는 트리니티가 찾아온 거야?”
거부감이 역력히 느껴지는 목소리로 히나가 내뱉었다.
“미카 네가 날 직접 비웃으러 찾아왔다니 어지간히도 기분이 좋았나 보네.”
“아니야! 그런 게…”
“가 버려. 날 비난하러 온 거면 그냥 사라져 버리란 말이야!”
“널 비난하러 온 게 아니야! 난 정말 대화로 일을 해결하고 싶어서...”
“널 믿으라고?”
히나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말했다.
“넌 네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헨나 학생이, 이런 대형 사고를 친 걸 비웃으러 온 거 아니야?”
“아니야!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야, 넌 미소노 미카잖아.”
”...읏…!”
“게헨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은 사람이잖아.”
“아, 아니야! 예전엔 확실히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듣기 싫어."
무언가 더 말하려던 미카의 입이 서서히 닫혔고, 이상한 점을 느낀 그녀의 손이 창고 문에서 서서히 미끄러졌다.
"내가 가면, 넌 어떻게 하게? 그냥 그 안에 영원히 있을 거야?"
"안 돼?"
"그럴 수 없다는 거 알잖아?"
그러자 그녀는 히나의 목소리가 계속 묻힌 것처럼 들렸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얇디 얇은 철문 너머로, 그녀가 소리 죽여 작게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 넌 지금 엄청 지치고 피곤해. 너 스스로도 네가 만든 잠기운에 시달리고 있어. 하지만... 잠들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거지?"
"..."
"이게 네 의무라고 생각하는 거지? 최후까지 기다리는 게? 모두가 잠든 키보토스를 뜬눈으로 지새우는 게?"
"네가 신경쓸 일이 아니야."
"모두에게 영원한 꿈을 선물하고도, 너 혼자 거기서 예외여야 하는 거잖아."
미카가 안타깝게 말했다.
'이런 때마저 성실하기 짝이 없어...'
무엇보다도 이 꿈들을 계속 만들어야 할 히나는 결코 잠들 수 없었다.
선생님의 모습이 비록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히나는 그걸 독점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있었던 거야? 이대로 계속 기다리는 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있잖아. 히나.”
미카가 고개를 잠깐 젓고서는 말을 고쳤다.
“...아니, 히나 쨩이라고 불러도 돼?”
그녀가 나긋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타블렛만 잠깐 빌려 주면 돼. 모두 잘 될 거야. 거짓말이 아니라고 약속할게. 내 약속 따위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
“적어도 이건 믿을 수 있잖아? 나도 선생님이 보고 싶어.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건 모두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해.”
문 너머에서 조금의 반응이 있었다.
“맹세할게 히나 쨩. 거짓말이 아니라고. 나도 히나 쨩이 만들어 낸 꿈을 봤는걸.”
“...너도 역시 잠들어 있었구나.”
“응. 선생님. 아주 상냥한 선생님 꿈을.”
잠시 뜸을 들인 미카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선생님이랑 카페 갔다가, 쇼핑도 하고,,, 저녁으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까지 하는 꿈을 꿨어.”
미카의 손이 철문을 다시 짚었다. 먼지 덮힌 철문을 쓸어 내려가던 그녀는 아주 작은 고동이 머무는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히나의 것이 분명했다. 이 철문 너머로, 자신을 가둔 히나가 등을 기대고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장면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듯 했다.
“아마 히나 쨩은 모를걸. 나한테 그게 얼마나 아름다운 꿈이었는지… 정말, 정말 나 같은 거한테는 너무 과분하기 짝이 없는, 그런 행복한 꿈이었어. 이 꿈은 네가 만들어 낸 거지?”
“...그래.”
“응. 그래서, 그런 꿈을 꾸게 해 줘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오랜 침묵이 흘렀다. 문 너머의 작은 고동을 느끼면서, 미카는 히나가 재촉하지 않고 뭔가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너는…그럼 그 꿈에선… 어떻게 깨어난 거지?”
어렵사리 입을 연 히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분명, 얼마 전 블랙 마켓에서 넌 나를 만나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는데. 분명 이 창고 안에 게헨나 학생들과 함께 잠들어 있었을 텐데…”
아무 것도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워서 더 이상 창고 안을 스스로 살펴볼 순 없었지만, 확실히 히나는 잠든 미카를 자기 손으로 창고 안에 눕혀 놨었다.
“으응… 그건 설명하기 좀 복잡한데…”
히나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오해가 겹쳐 빚어진 트리니티 특공대의 습격이 있었고,
결론적으로 미카만 챙겨서 탈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히나가 알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때는 미카 본인도 잠들어 있었으니, 이 복잡하고 너저분한 과정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히나 쨩. 선생님은 결코 자상하지만은 않았어."
하하. 미카가 쑥스럽게 웃었다.
"나 언제나 사고만 치고, 못된 말만 하고, 마녀라고 손가락질당하고... 그런 주제에 항상 누군가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고... 알잖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래서 내가 기억하던 선생님은 마냥 상냥하던 사람이 아니었어. 나와 늘 거리를 유지해야 하던, 엄격한 분이었으니까."
미카는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
"히나 쨩. 네가 기억하던 것과는 좀 다르지? 네가 만들어낸 꿈은 네가 기억하던 선생님의 모습이었어. 아니, 사실 대부분 학생들의 모습에서 선생님은 그런 모습이었겠지. 상냥하고, 자상하고, 응석을 받아 주는..."
"..."
"하지만 나에겐 그래서는 안 됐던 거야."
"...그런가."
히나도 미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챘다.
"응. 그리고 난 그 위화감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어. 그걸 다시 모른 척하는 순간, 선생님의 실망하는 표정이 보일 것만 같아서..."
미카는 선생님의 다른 모습을 직접 마주한 유일한 학생이었다.
그게 그녀가 잠에서 깬 이유였던 것이다.
"하지만 히나 쨩은 다르잖아? 언제나 성실하고 열심이었던 거잖아? 그래서 선생님의 그런 모습을 봤던 거 아냐?"
그녀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것은 선생님을 다시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사실 단 하나였다.
비록 그 선생님이 지금은 키보토스에 있지 아니할지라도.
“히나 쨩, 이렇게 하는 건 어때?”
히나가 침묵을 유지하는 사이 좋은 생각이 떠오른 미카가 제안했다.
“믿어지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지금 창고 밖은 꽤 밝거든? 나와서 직접 보고 이야기하는 건 어때?”
미카가 창고 뒤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리스가 레일건으로 안개를 걷어 낸 부분이 아직 희끗하게 보였다.
“직접…?”
“응! 정말이야. 여기 바로 앞은 맑게 개였다구! 기분 전환 겸 나와서 바깥에 뜬 태양도 잠깐 보고, 내 얼굴도 직접 보면 되잖아!"
히나는 조금 고민하는 듯했다.
그녀에게 있어 바깥이 밝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떻게 바깥이 밝을 수가 있지?
...혹시 잠을 거부하는 학생들이 생기기 시작했나? 아직 깨어 있는 사람들이 다른 방법을 찾았나?
햇빛이라. 히나 역시 햇빛이 그리웠다. 벌써 며칠 동안 자연광을 못 봤던 건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마음이 약해질까봐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지치고, 초췌한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라 정신도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끝없는 어둠 속에서 숨만 죽이고 있는 것은 히나의 생각보다도 훨씬 정신력을 크게 깎아 먹는 일이었다.
"햇빛이라..."
“응! 그리고 선생님을 어떻게 불러올지 설명도 해 줄게! 지금 내가 카드를 가지고 왔거든? 분명 너도 보면 깜짝 놀랄 거야!”
문 너머에선 다시 침묵이 흘렀다.
“...좋아.”
시간이 조금 흘렀고, 창고의 셔터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잠깐 모든 것이 잘 될 거라고 생각했던 미카의 기대와는 일이 아주 다르게 돌아갔다.
문이 열리자마자 안에서 차원이 다른 농도의 안개가 눈사태처럼 바깥으로 쏟아져 나왔다.
“으읏…!”
순간적으로 무거운 향수, 그리움, 슬픔, 잠기운이 복합적으로 들이닥치는 바람에 미카는 아득해진 정신을 애써 부여잡았다.
그리고 창고 안의 히나의 모습을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짙은 안개가 주변을 모조리 잠식하는 바람에, 히나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문 밖의 경계로 나온 히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미카가 호언장담했던 맑은 날씨도, 화창한 하늘도 아무 것도 없었다.
“...봐.”
키보토스 전역을 메울 만큼 거대한 안개가 단 한 사람에게서 왔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던 것이다.
미카가 들고 있던 탐조등도 소용없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히나의 조곤한 목소리만이 메아리쳤다.
“역시 거짓말이었잖아.”
히나의 어깨가 흔들렸다.
“미카. 역시 넌 거짓말쟁이구나.”
“아니야! 방금 전까진 분명 햇살이…!”
이쪽으로 손을 내밀어 줘.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히나의 손을 맞잡기엔 정말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히나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래…? 이것도 내가 잘못한 거야?”
“그, 그런 말이 아니…”
어둠 속에서 무언가 쇳덩어리가 긁히고 맞부딪히는 듯한 기척이 났다.
뭐라고 말하기도 더 전에, 곧이어 장전손잡이가 당겨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네 기만은 정말로 지긋지긋해.”
그러나 그런 것보다 가장 소름돋는 것은 감정이 사라진 히나의 목소리였다.
분명 아무 것도 보일 리 없음에도, 미카는 한순간 안개 너머로 보라색 안광이 움직이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미카. 네 약속, 맹세는 네 성격만큼이나 가볍기 짝이 없네.”
“히나 쨩...”
“다시는 날 그렇게 부르지 마.”
배신감에 몸을 떨면서 히나가 미카의 호칭을 거부했다.
“날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건 이 세상에서 단 한 분 뿐이야.”
“그럼 이것만이라도 믿어 줘! 선생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만큼은 진짜...”
“미카. 넌 참 재미있는 사람이야. 내 일상을 빼앗고, 내 목표를 빼앗고, 그걸로도 모자라 동정심을 팔아 나와 선생님의 시간을 빼앗았잖아.”
“...에덴 조약 일은 정말 미안해. 네가 정말 고생했던 것도 알고 있어. 나도 반성하고 있...”
히나가 미카의 말을 잘랐다.
“근데 그걸로도 모자라 나한테서 선생님이 남긴 마지막 물건마저 빼앗으러 왔단 말이지.”
그녀가 타블렛을 소중하게 꼭 안았다. 그리고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코웃음쳤다.
“넌 대체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하는 거지? 남을 얼마나 더 짓밟아야 만족하는 거야? 타인을 얼마나 깔보면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
“절대 그런 게 아니야 히나 쨩! 난 정말 사실만 말했었다구!”
탕!
어둠 속에서 총성이 울렸다.
“난 경고했어 미카...”
허공에다 발포한 히나가 싸늘하게 말했다.
“넌 날 그렇게 부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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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히나야...


노벨피아에서부터 재밌게 봐왔어요.
좋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이게 정병보존의 법칙인가 뭔가하는거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