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기준 5,982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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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도스 학생회장의 귀환
사막에 잠든 배
-호시노-
아비도스 사막을 빠져나와 광대한 협곡에 접어든다.
풀도 나무도 드문드문하다. 대지는 붉은 벽돌처럼 붉은 기가 도는 색조다.
길이는 200km 초과, 낭떠러지의 심부 3,000m에 달하는 비경 중 하나다.
"떠, 떨어져요! 떨어지겠다고요, 선배!"
그런 협곡의 낭떠러지 끝자락을 유메 선배의 개조 차량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간다.
"위험해요! 절벽에서 좀 더 떨어져서 가요!"
"괜찮아, 괜찮아. 자, 호시노 쨩은 주변을 보고 있어. 나는 절벽 아래를 볼 테니까."
창문을 연 유메 선배가 운전석에서 몸을 내밀었다.
균형을 잃으면 당장에라도 아득한 아래의 낭떠러지로 추락해 버릴 것이라 쉽게 상상될 정도로 크게.
"선배, 위험해요!"
"잠깐, 호시노 쨩!? 옷 잡아당기지 마! 그게 더 위험해!"
앞좌석에서 소란을 피우는 우리와 대조적으로, 뒷좌석에 앉은 히나와 케이 쨩은 묵묵히 적갈색 지평선을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케이, 그쪽은 어때?"
"아무것도 없네요. 그쪽은요?"
"이쪽도 마찬가지야. 유메 선생님, 그쪽은?"
"음~"
운전하면서 골짜기 밑바닥을 계속 살피는 유메 선배.
그렇다, 유메 선배가 운전석에서 이렇게나 위태롭게 골짜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단순한 장난은 아니다.
아트라하시스의 방주에 대항할 수 있는 초고대 병기가 이 협곡 어딘가에 있다.
케이 쨩이 가진 기록을 토대로, 햇빛이 들지 않는 낭떠러지 아래를 주의 깊게 살핀다.
"겉보기엔 수상한 건 없어 보여. 동물 뼈 같은 게 흩어져 있긴 한데."
골짜기 밑을 향해 유메 선배가 고개를 내민다.
"히나 쨩, 뒤에 유탄발사기 있지. 조명탄, 쏴줄 수 있을까?"
"조준점은?"
"저쯤. 그래그래. 저 그늘진 곳 근처."
히나의 유탄발사기에서 발사된 조명탄이 유메 선배가 가리킨 절벽 아래로 빨려 들어가듯 착탄.
메마른 소리와 함께 불꽃처럼 빛을 흩뿌린다.
어두웠던 골짜기 밑바닥이 몇 초간 다른 세상 같은 광휘에 비춰졌다.
"어때?"
"……다음은 저쪽 절벽. 큰 바위 뒤에 가려진 곳."
이어서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유메 선배가 지정하는 포인트가 차례차례 밝혀진다.
"대단하네, 히나."
"뭐가?"
"그치만 종막의 디스트로이어의 탄환이랑은 탄도가 완전히 다르잖아? 공기 저항이 다르니까 보통 탄환보다 빨리 낙하할 텐데."
"비추기만 하는 거야. 정확히 과녁을 맞히는 건 아니니까."
히나는 그렇게 대답하지만, 거의 수직 아래로 총구를 향하고 강풍이 몰아치는 골짜기 밑의 한 점을 노리는 기량이 얼마나 탁월한 것인가.
"시로코 쨩이라면 경험이 없어도 능숙하게 다룰 것 같긴 하지만 말이야."
"그렇겠지. 그 아이에겐 천부적인 재능이 느껴져."
색채와 접촉하여 시로코 쨩은 죽음의 신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검은 양복이 단언했다던데.
"시로코 쨩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 있을까요?"
히나가 밝게 비춘 곳을 빤히 바라보는 유메 선배에게 내가 물었다.
"그 이전의 문제일지도 몰라."
시선은 골짜기 밑을 향한 채 선배가 대답했다.
"그 아이는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시로코 쨩이 아니었어."
"색채와 접촉한 탓이죠?"
차 안으로 몸을 들인 선배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D.U. 중심부에서 시로코 쨩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차가운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어. 아무리 무시해도 아는 얼굴을 보면 어떤 반응이나 감정이 나타나기 마련이잖아? 그런데 말이야, 시로코 쨩의 눈에는 아무런 반응도 감정도 없었어. 타인을 보는 것과 똑같은 눈이었어."
"기억이 지워졌을 가능성은요?"
"없다고 봐. 호시노 쨩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유메 선배의 눈동자는 확신에 차 있었다.
"나와 케이 쨩 앞에 나타난 시로코 쨩은 나를 의식해서 무시한 게 아니야. 내 얼굴을 모르는 거지."
나와 유메 선배의 대화 따위 듣지 못했다는 듯이,
"탄약이 다 떨어졌어."
히나가 빈 유탄발사기를 어깨에서 내려놓았다.
"재장전할까?"
"음~ 이제 됐어. 고마워, 히나 쨩."
핸들을 두 손으로 다시 고쳐 잡는 유메 선배.
"위험은 없어 보이니까 일단 아래까지 내려가 보자."
골짜기 밑바닥까지 내려가 다 함께 주변을 탐색해 본다.
머지않아 동굴 입구가 발견되었다.
들여다보니 안은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
스마트폰으로 비춰 보니 아래쪽으로 꺾여 있어 곧바로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
몸집이 작은 나나 히나, 그리고 케이 쨩이라면 몰라도 유메 선배는 제대로 서서 걷지 못할 것이다.
발 디딜 곳은 잔해, 벽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바위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자연적인 동굴 같다.
정말 이런 곳에 초고대병기가 있는 걸까.
동굴 앞에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의논 결과, 내가 먼저 가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 났다.
애총과 스마트폰에 양손이 묶인 채 조심조심 바위 계단을 내려간다.
때로는 팔꿈치나 무릎을 대고 기어가듯 나아갈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었다.
이윽고 바닥이 평탄해지자 길 폭도 조금 넓어졌다.
동굴은 내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구조로 변해갔다.
흙을 쌓거나 깎아내어 복잡한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길은 지독하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발밑도 확실치 않은 어둠 속을 헤매며 걷는 것은 몹시 신경 쓰이는 일이다.
차츰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시간 감각이 어긋나, 마치 깨고 싶은데 빠져나올 수 없는 꿈속에라도 있는 것 같아서.
차라리 적이 나타나 주는 게 나았다.
뛰어다닐 수 있는 편이 마음 편했다.
이제 찾을 수 있는 곳은 전부 찾아버린 것만 같다.
그저 정처 없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 속을 걷고 있는 것 같다.
무한하게도 느껴지는 공백의 시간 끝에, 드디어 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좁은 공동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자, 그 손을 히나가 꽉 맞잡으며 기뻐해 주었다.
내가 먼저 눈앞의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이건……"
"왜 그러시죠?"
이어서 뛰어내린 케이 쨩에게 무언으로 주변을 비춰 보였다.
무기질적인 기계 복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유메 선배가 뛰어내려 전원이 모인 뒤, 우리는 안쪽으로 나아갔다.
그저 길기만 한 복도를 지나고, 오로지 커다란 방을 통과하며 끝없이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막다른 복도 끝에 커다란 문이 있었다.
잠겨 있는지 조금 힘을 주는 정도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억지로 열까?"
"그러자."
나와 히나는 각각 좌우 문손잡이에 손을 얹고 서로 눈을 맞추었다.
호흡을 맞춰 동시에 훅 잡아당긴다.
한 척의 우주 전함이 그곳에 있었다.
기록에 남아 있던 그대로의 광경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케이 쨩, 이건."
너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유메 선생에게 생긋 미소 짓는다.
"초고대 병기, 우트나피쉬팀의 배입니다."
하늘 저편에 떠 있는 아트라하시스의 방주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유메 선생, 일단 안쪽도 확인해 보고――"
말을 하려던 히나가 등 뒤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신속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길 안내 고생했다. 훌륭한 활약이었어."
등 뒤에 10명 정도의 사병을 거느리고, 지팡이를 짚은 슈트 차림의 로봇이 유유히 걸어온다.
프레지던트. 키보토스에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대기업, 카이저 코퍼레이션의 중역.
그리고 아비도스 고교를 빚더미에 앉히고 자치구의 땅을 빼앗은 장본인.
"이래서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을 법하군."
1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프레지던트와 마주한다.
"설마 이토록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쓴웃음 섞인 목소리를 흘리는 프레지던트.
"안내를 자처한 기억은 없는데."
"입 조심하게. 자네들은 기업의 사유지에 무단 침입을 하고 있는 거라고?"
히나의 차가운 시선 앞에서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프레지던트.
"사유지에서 발굴된 물품은 당연히 토지 소유자의 손에 넘어가지. 아니면 게헨나의 학생은 그런 간단한 이치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뻔히 보이는 도발이다.
동시에 카이저 그룹 입장에서 보면 진심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문대로 머리가 나쁘군, 쿠치나시 유메."
히나를 감싸듯 앞으로 나선 유메 선생을 보며 프레지던트는 비웃는다.
"생판 남을 위해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고 행동하다니 어리석음의 극치군. 자네 같은 쓸모없는 어른이 선생을 맡고 있다니 말세야."
가슴 언저리가 불쾌하다.
방금 전까지 정말 행복했는데.
그런 감정은 전부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프레지던트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상처받고 있는 내가 있었다.
유메 선생이 모욕당하자 분노로 떨고 있는 내가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도 훨씬 더 화를 내고 있는 인물이 두 명이나 있었다.
호시노와 히나가 프레지던트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선의 강렬함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성소의 수호자를 상대할 때조차 이런 강한 눈은 하고 있지 않았는데.
"일단 물어는 보겠는데 말이야."
어쩔 수 없다는 듯 유메 선생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섰다.
"지금 비상사태니까 이 배, 양보해 주지 않을래?"
"헛소리도 정도껏 하게. 이 자리에서 붙잡아도 상관없다고?"
그렇구나, 하고 유메 선생은 웃었다.
"그렇다네? 카야 쨩, 부탁해."
툭, 하고. 무언가 딱딱한 물체가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간, 빛이 터져 나왔다.
눈부신 빛에 휩싸여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눈을 뜬다.
프레지던트의 사병들이 전부 쓰러져 있었다.
"클리어."
그리고 망연자실 서 있는 프레지던트의 등 뒤에 총구를 들이밀고 있는 은발 여성의 모습이 있었다.
"좋은 판단이었다, 미야코."
"아뇨, 아직 유키노 선배에게는 미치지 못합니다. 정진할 뿐입니다."
여우 같은 귀가 머리에 돋아난 흑발 여성에게 칭찬을 듣자, 은발 여성이 겸손하게 미소 짓는다.
그녀들의 교복과 몸놀림으로 보아 SRT 특수학원 학생임을 특정할 수 있었다.
RABBIT 소대와 FOX 소대, 각각의 리더로 짐작된다.
혹시나 해서 동굴 안의 생체 반응을 탐색해 본다.
아니나 다를까, 이 방 밖에 반응이 있었다. 하나, 둘, 셋…… 일곱 명인가.
두 명만 유독 멀리 몸을 숨기고 있다.
거리로 따지면 1km, 아니, 1.04km.
틀림없이 스나이퍼 역할을 맡고 있을 것이다.
"카야 쨩, 나이스."
"정말이지, 사람을 험하게 부리시네요."
유메 선생에게 투덜투덜 불평하며 카야라고 불린 여성이 들어온다.
"갑자기 좌표만 덜렁 보내시면 곤란하다고요. 적어도 현황 보고 정도는 같이 적어 두세요."
생체 반응 탐지에 걸렸던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웬일인지 수영복 차림이었다.
-케이-
"하아?"
나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어라, 저거 트리니티 지정 학교 수영복이죠?
경영용 수영복과 비슷한 구조라 소위 V라인이 예각이라 꽤 아슬아슬한 상태가 되어 있네요.
아니, 아리스, 그만두세요.
뭐가 아슬아슬하냐니, 뇌내에 직접 묻지 말아 주세요.
대답하기 곤란해지잖아요.
"확보할 상대를 착각한 거 아닌가? 방위실장 나으리."
"어머나? 분수도 모르는 범죄자 씨가 뭐라고 지껄이고 있네요."
씨익 웃어 보이는 카야.
아니 아니, 수영복 차림으로 말해봤자 긴장감이 전혀 없는데요.
그나저나 왜 프레지던트는 그녀의 옷차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거죠?
하얀 부츠에 수영복이라니, 이 자리에 어울린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습니다만.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저 배는 방위실장의 이름 아래 몰수하여 샬레에 양도하도록 하죠."
"그런 횡포가 허용될 리가 있나! 애초에 공무 방해 따위 하지 않았어!"
"바로 지금 하고 있지 않았나요. 세계를 구하려는 유메 선생의 방해를."
설마 싶은데, 이 상황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건 나뿐?
시선만 움직여 다른 세 사람의 기색을 살핀다.
"어…… 어라?"
아, 유메 선생도 멍하니 계시네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굳어 있으시고요.
호시노와 히나도 비슷한 상태인 걸 보니 제 감각은 정상인가 보네요.
"샬레는 총학생회 소속. 모른다고는 하지 않겠죠?"
"그렇다 해도 몰수는 너무 과한 거 아닌가?"
"호오, 그렇다면 당신이 선생 대신 세계를 구해주실 건가요? 자신을 돌보지 않고 키보토스의 위협에 맞서주겠다고?"
프레지던트가 카야의 복장에 대해 따질 기색은 전혀 없다.
지극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수영복 때문에 다 망치고 있다.
"연행하세요."
카야의 한마디에 방 밖에 대기하던 네 명이 들어왔다.
신속하게 수갑으로 전원을 포박한다.
"젠장, 조금만 더 하면 됐는데. 네년만 오지 않았어도……"
"섭섭하네요. 오히려 감사 인사를 받고 싶을 정도인데 말이죠."
무릎을 꿇은 프레지던트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리는 카야.
"호시노 씨도 히나 씨도, 동굴에 들어오기 전부터 당신들을 눈치채고 있었을걸요?"
"……뭐라고?"
"1km 이상 떨어진 정찰용 드론에도 반응해서 격추하는 강자들이라고요. 당신 같은 초짜나 다름없는 미행 따위 즉각 간파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러고 보니, 하고 떠올린다.
프레지던트가 난입했을 때 호시노도 히나도 놀라지 않았다.
그런 두 사람조차 카야가 수영복 차림으로 나타났을 때는 동요를 숨기지 못했지만.
"일부러 내버려 둔 거예요. 처리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언제든 가능했으니까."
프레지던트가 뒤를 돌아본다.
호시노와 히나가 웃었다.
섬뜩한 미소였다.
"그런 것도 모르고 유메 선생을 바보 취급이나 하고. 저희 개입이 조금만 더 늦었으면 당신들 전부 먼지가 되었을 텐데요."
프레지던트는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나 큰 공포에 넋이 나가 버렸다.
은발 여성의 재촉에 고분고분 방을 나갔다.
"그럼, 전 이만."
"아, 카야 쨩, 잠깐만."
발길을 돌린 카야를 유메 선생이 다급히 불러 세웠다.
"저기 말이야, 하나만 물어보고 싶은데."
"제가 대답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무엇이든."
"그 복장은 취미야?"
"절대 아닙니다!"
트리니티에서 우라와 하나코에게 억지로 갈아입혀졌다느니.
구조를 위해 한시라도 빨리 오느라 여벌 옷을 챙길 시간이 없었다느니.
수영복 차림으로 오게 된 경위를 카야는 빠른 말투로 쏘아붙였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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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기준 4,619자
원본 -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2659351
아비도스 학생회장의 귀환
잠깐의 휴식
-유메-
"그럼, 회를 먹어보고 싶습니다."
케이 쨩이 주문한 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내가 쏘는 셈 치고 게헨나의 학생 식당에 케이 쨩을 초대했다.
이미 한밤중이라 가게 안에는 다른 손님의 모습이 없다.
주리 쨩도 뒷정리를 마치고 귀가한 상태다.
식당에 케이 쨩을 데려온 것은 우트나피쉬팀의 배를 무사히 찾아낼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보답이다.
말뿐이면 서운하니, 뭐든 좋아하는 것을 시키라고 했다.
"이 세계를 지키고 싶다는 아리스의 소망에 응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케이 쨩은 일단 거절했지만, 내가 강하게 부탁하자 못 이기는 척 받아주었다.
초대를 받았으니 마지못해 왔다는 식으로 꾸미려는 모양이지만,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발걸음은 가벼웠고 콧노래라도 흥얼거릴 기세였다.
정체가 인공지능인 케이 쨩은 동등한 존재인 아리스 쨩과 몸을 공유하고 있다.
평소에는 아리스 쨩에게 신체 소유권을 양보하고 있어서, 케이 쨩이 자유분방하게 행동하는 일은 없다.
지금은 아리스 쨩의 허락을 얻어 몸을 쓰고 있기에 거리낌 없이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단것을 주문할 거라 예상해서 후우카 쨩에게 과일을 넉넉히 들여와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케이 쨩, 회는 먹어본 적 없지 않아?"
"네. 그래서 먹어보고 싶어서요."
카운터를 바라보자 식칼을 닦던 후우카 쨩이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안쪽에서 꺼내온 것은 참치 덩어리였다.
오늘은 좋은 참치가 들어왔다며 기뻐하더니만, 붉은 빛깔이 아름답다.
넋을 잃고 볼 정도의 칼솜씨로 썰어 나간다.
순식간에 차려진 회는 붉은 보석 같다.
"자, 맛있게 드세요!"
탁, 하고 눈앞에 놓인 접시를 케이 쨩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먹어도 되냐는 듯 눈으로 물어오기에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케이 쨩이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뻗었다.
눈동자에는 기대의 빛이 반짝이고 있다.
냠. 눈을 감고 두 번, 세 번 씹자 케이 쨩의 얼굴이 미소로 무너져 내렸다.
황홀한 표정으로 뺨을 감싸고, 음미하듯 씹어 삼킨다.
"맛있어?"
묻자 케이쨩은 아쉬운 듯 작게 끄덕였다.
"맛있어요. 입안에 넣으니 폭신하게 녹아버렸습니다."
그 말만 남기고는 그 뒤론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케이 쨩이 젓가락을 내려놓았을 때 접시 위는 텅 비어 있었다.
"유메 선생님, 감사합니다."
염원하던 회를 먹어서 케이쨩은 만족스러운 모양이지만.
"케이 쨩."
"네?"
"아직 배에 여유는 있지?"
후우카 쨩과 눈짓을 주고받은 나는 씨익 웃었다.
-히나-
선도부 본부를 뒤로하고 게헨나 자치구의 골목을 홀로 걷는다.
"안 되겠어……"
자신을 꾸짖듯 말을 내뱉는다.
휴식을 위해 아비도스에서 일시적으로 돌아왔지만, 줄곧 마음에 여유를 가질 수 없었다.
적의 본거지인 아트라하시스의 방주로 돌입하는, 세계의 운명을 건 작전이 일출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나는 게헨나에, 아니, 지상에 남는 편이 좋다.
긴급 사태가 일어났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나일 테니까.
이 작전에는 유메 선생도 참가한다.
스나오오카미 시로코를 구하기 위해 아비도스 고등학교 멤버들도 가세한다.
호시노를 비롯해 그 학교 학생들은 강자들뿐이다.
전학 온 아리우스 스쿼드 네 명도 지금은 아비도스에 녹아들었다고 하고.
그래, 그러니까 괜찮아. 내가 없어도 문제없어.
그렇게 스스로를 타일러 지상에 남겠다고 선언하려던 찰나, 아코가 나를 말렸다.
"함께 가주세요, 히나 부장님."
오퍼레이터로서 작전에 참가하는 아코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유메 선생님의, 그리고 호시노 씨의 힘이 되어주고 싶은 거잖아요?"
정곡을 찔렸다.
"하지만 나는 선도부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해야만 해."
갑자기 아코가 껴안아 왔다.
"가끔은 고집을 부려주세요."
아니면, 하고 아코가 귓가에 속삭인다.
"부재중을 맡길 수도 없을 정도로 선도부가 못 미더우신가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다들 게헨나를 위해 전력을 다해주고 있어. 믿고 있어."
아코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엄청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만세.
해냈다.
따뜻한 말씀 감사합니다.
뒷일은 맡겨주세요.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온갖 격려의 말이 겹치고 짓눌려 더 이상 의미를 이루지 못하는 폭력적인 소리가 되었다.
"정신 차려야지."
중얼거리며 핏빛 붉은색에서 해방된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에잇!"
갑자기 귀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더니 오금이 눌렸다.
순간 평형감각을 잃고 비틀거리고 만다.
어떻게든 자세를 바로잡고 뒤를 돌아본다.
"야호-"
경례하듯 손을 올리며 호시노가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이야?"
"인사 같은 거야."
"그런 무례한 인사는 그만둬."
"좋잖아. 세세한 건 신경 쓰지 마, 신경 쓰지 마~"
우리들은 웃으면서 그런 말을 주고받았다.
"아, 여기 있었군요?"
갑자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보니 그곳에 하야세 유우카가 서 있었다.
유우카는 곧장 우리에게 달려왔다.
"정말이지, 두고 가지 마세요."
"미안 미안. 히나를 발견해서 반가운 마음에 그만."
"있지, 왜 둘이 게헨나에 있는 거야?"
좀처럼 보기 힘든 조합이라 끼어들어 보았다.
그러자 왠지 호시노와 유우카는 눈을 반짝였다.
"학생 식당에 가요."
"후우카 쨩네, 아직 열려 있을 거거든."
기쁘게 같은 장소를 제안해 온다.
잘 모르겠다.
배가 고프기도 하고, 거절할 이유는 없지만.
다시 물어보니 호시노는 유메 선생님을, 유우카는 케이를 데리러 왔다고 한다.
후우카의 식당까지 발걸음을 옮기니, 운이 좋으면 자신들도 뭔가를 얻어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는 모양이다.
"못 먹으면 어떡할 거야?"
"그때는 시바세키 라멘에 가지 않을래?"
"좋네요. 유메 선생에게 데려가 달라고 할까요?"
셋이서 줄지어 빈둥빈둥 걸어간다.
거리의 낯익은 모퉁이에 후우카가 운영하는 학생 식당이 보였다.
"응?"
자, 들어갈까 하던 참에 깨달았다.
가게 안에 감도는 예사롭지 않은 긴장감을.
"히나 선배?"
쉿, 하고 검지를 입에 갖다 댄다.
다급히 입을 손으로 가리는 유우카와 주위를 경계하는 호시노.
소리를 내지 않고 식당 문을 살짝 열어본다.
"……에?"
그곳에서 나는 어스름한 기쁨으로 채색된 비밀스러운 의식을 목격하고 말았다.
-유메-
"유메 선생님, 제정신입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케이쨩의 말을 애써 무시하듯, 다시 한 숟가락 더 금단의 별미를 추가한다.
연어알이다. 덮밥 위에는 이미 흰쌀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어알이 수북이 쌓여 있다.
얇게 썬 연어 조각을 곁들인 해산물 오야코동.
연어와 연어알. 두 가지 붉은색이 덮밥 위에서 아름답게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일품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케이 씨. 저렇게 된 유메 선생님은 이제 멈출 수 없어."
체념한 듯 후우카 쨩이 중얼거린다.
갓 간 와사비를 종지의 간장에 풀어 덮밥 위에 휘두른다.
젓가락으로 호쾌하게 퍼서 한 입. 맛있다.
송어 연어알이 입안에서 톡톡 터지며 농후하고 깊은 풍미가 퍼진다.
연어 조각도 기름이 올라 살살 녹는 것 같다.
톡톡, 사르르. 톡톡, 사르르.
입안이 행복으로 가득 차는 것을 알 수 있다.
터진 연어알과 간장이 밴 흰 밥을 단숨에 긁어 먹는다.
"후우……"
다 먹고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은 행복의 한숨뿐.
먹어야 할 때 먹어야 할 맛있는 것을 먹으면 사람은 말을 잃게 되는 법이리라.
배를 쓰다듬고 있자 케이 쨩이 양어깨에 손을 얹어 왔다.
"만족하셨다면 저희 몫도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말투는 정중하지만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다.
카운터 뒤에서 지켜보는 후우카 쨩도 같은 표정이다.
그렇게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당연한 반응이겠지.
"알고 있다니까!"
그렇게 대답하며 남은 연어알을 떠올린다.
괜찮아. 두 사람이 먹어도 앞으로 세 명분은 남을 거야.
"저, 저희 몫도요!"
그때 입구 문을 열고 세 개의 그림자가 뛰어 들어왔다.
호시노 쨩과 히나 쨩, 그리고 유우카 쨩이었다.
"유메 선배! 그렇게 맛있게 드시는 걸 보여주시면 이쪽도 안 먹고는 못 배긴다구요!"
히나쨩도 유우카쨩도 고개를 끄덕이며 호시노쨩의 항의에 동의를 표한다.
"어떡할까요?"
시선으로 물어오는 후우카쨩에게 작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들켜버린 건 어쩔 수 없다.
"알겠어. 자, 앉아 앉아. 금방 준비할 테니까!"
연어를 얹고 연어알을 수북이 담아가는 후우카쨩.
절여둔 연어알은 이걸로 깔끔하게 완판.
한 번 더 즐기려던 야망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히잉, 역시 나쁜 생각은 하는 게 아니네.
색감을 위해 썬 깻잎이 올라간 해산물 오야코동이 모두에게 배달된다.
"잘 먹겠습니다!"
전원이 손을 모으고 목소리를 맞춘다.
연어와 연어알이 모두의 입으로 운반된다.
음음-, 하고 눈을 감고 예의 없게 발을 동동 구르는 케이 쨩.
호시노 쨩과 히나 쨩은 허겁지겁 젓가락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유우카 쨩과 후우카 쨩은 행복한 듯 해산물 오야코동을 볼 가득 머금고 있다.
"그럼 히나도 작전에 참가하는구나."
"응. 대답이 늦어서 미안해."
"아니야, 같이 싸울 수 있어서 기뻐."
호시노 쨩과 히나 쨩은 완전히 사이가 좋아져 있었다.
"어쩔 수 없군요."
하아, 하고 크게 숨을 내쉬는 케이 쨩.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아리스가 그렇게 바라고 있으니까요."
후후, 하고 유우카 쨩이 웃는다.
"솔직하지 못하네, 케이 쨩."
"나쁩니까?"
"아니, 전혀?"
서로 미소 짓는 두 사람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 만났을 무렵의 케이 쨩이라면 절대로 그런 말은 하지 않았을 거다.
아리스쨩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제대로 대화하며.
이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주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세상은 불합리투성이라는 걸.
나라고 해서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고 20년을 살아온 건 아니다.
이 눈으로 봐왔고 귀로 들어왔다.
때로는 더러운 구두에 짓밟힌 적도 있다.
이유 없는 악의에 휘둘린 적도 있다.
나는 나대로 있는 힘껏 각오를 하고 선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전혀 부족한 걸지도 모른다.
뭐, 어쩔 수 없지.
나는 아직 스무 살이니까.
스무 살 나름의 각오밖에 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학생을 내팽개치는 짓 따위 할 수 있을 리 없다.
왜냐하면 나는 모두를 좋아하니까.
내가 가진 최고의 감정이 그것이니까.
이 세계를 지킨다.
시로코 쨩을 구해낸다.
단 한 명도 잃지 않고 돌아온다.
모두와 함께라면 반드시 괜찮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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