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아침이야 아야메... 오늘은 선생님도 함께야."
나구사는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옆으로 뉘었던 아야메를 정자세로 눕히곤 준비해둔 선물을 꺼낸다.
"이번엔 백야수상제에 참가했어. 아야메도 함께였다면 좋았겠지만, 다들 무탈하게 즐기고 왔어. 훗... 이건 기념품이야."
풍만한 가슴 위로 은박지를 올리자 들숨과 날숨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아니, 전혀 바다 느낌 없잖아"
"바다의 집에서 산 거야."
"그렇구나..."
"어때 아야메? 맛있는 향이 나지?"
나구사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올려둔 닭꼬치를 무른다.
"나구사 선배, 살아있는 사람한테 제사 같은 의식 치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
"듣고 있어?"
"......"
"...듣고 있어 나구사 부장?"
"응... 어쩔 수 없는 걸. 의식이 없으니 억지로 쑤셔 넣다간 탈이 날 거야."
"애초에 음식 말고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물건을 선물하란 말이야"
잔소리 시동이 걸리려 하자 전자레인지로 뎁힌다는 핑계로 자리에서 빠져 나갔다.
"그나저나 아직도 일어나지 못했다니. 위중한 상태 아닐까 걱정되는데"
"의사가 정기적으로 진찰하고 있어. 병리적 증상보단 심리적 영향이 크다는 소견이야. 호흡과 맥박 모두 작용하고 있어"
"확실히... 혈색이 환자 느낌은 아니네. 살집도 빠지지 않았고"
키쿄는 잠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선생을 노려보았다.
그러곤 말려 올라가 뱃살이 살짝 비치는 아야메의 상의를 정돈한다.
"하여간 남정네들은"
"아니, 진짜 신기해서 물어본 거거든?! 식사를 하지도 않는데 기초대사량을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그건 아마... 아야메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그새 닭꼬치를 해치웠는지 입가에 데리야끼 소스가 발린 나구사가 출현했다.
"아야메는 살이 잘 붙는 체질이어서 항상 식단 관리에 엄격했지..."
나구사는 추억에 잠긴다.
닭꼬치 세트 구성에서 은행 꼬치만 빼 아야메에게 짬처리하던 그 황금기가 그립다.
이젠 부장이라서 편식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생각보다 많이 먹는데 깡마른 나구사랑은 반대구나?"
"응... 아야메는 날 부러워했지만... 진화론적 관점으로 보자면 난 연비가 나쁜 체질이지. 에너지 보존에 능한 아야메가 부러워."
이젠 슬슬 칭찬과 돌려까기의 기준이 모호해지고 있다.
"체질로 퉁치기엔 벌써 몇 주 째인데 나도 슬슬 걱정돼."
아침 단련을 마친 렌게까지 합세하자 아야메를 둘러싼 토론회가 열려버렸다.
"음... 어쩌면 가능할지도. 낙타는 등에 있는 혹에서 지방을 축적해 에너지로 전환하지."
키쿄는 누워 있어도 볼륨이 느껴지는 쌍봉 가슴을 가리킨다.
"낙타카도 아야메."
'꿈틀'
이상한 별명을 지어주자 순간 아야메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오! 방금 움직인 거 아냐?"
"글쎄. 저걸로 의식이 돌아왔다고 속단하긴 일러. 평범한 생리 활동이겠지."
"마그네슘이 부족해서 그런가... 좋다 말았네"
여자아이들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선생은 좌식이 불편했다. 잠깐 다리를 풀기 위해 일어나다가 벽에 붙여진 사진들을 발견했다.
"바다에서 찍은 사진들 벌써 인화했구나. 다들 예쁘게 찍혔네"
"맞다. 스승님한테도 주려고 했는데 까먹을 뻔했네."
렌게가 준 사진들을 천천히 음미하듯 넘겨 본다.
푸른 바다와 대비되는 붉게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지만 키쿄는 살짝 불만인 표정이다.
"...어째 렌게 비중이 큰 거 같은데"
"응? 당연한 거 아냐? 넌 수영을 못해서 해변에만 있었고, 유카리는 사진을 찍었으니까"
"그러면 부장은?"
"여기 있잖아"
눈에 힘을 주자 백사장에 앉아 있는 나구사가 희미하게 포착된다.
"너무 하애서 안 보였어. 위장색이구먼"
"아야메까지 있었으면 완벽했을텐데..."
"또 그런다. 이미 흐른 시간에 미련 갖지 마."
하긴 3학년이라 마지막 여름 이벤트였겠지. 그 대미를 가장 친한 친구와 보내지 못한 것이 한스러운 모양이다.
"아야메도 백야수상제에 참가한 적 있니?"
"응... 금년을 제외하면 매년마다 참가해 입상했었지..."
"아야메는 수영을 잘했나 보구나"
"음... 엄밀하게 따지면 유영 속도는 나구사 선배가 좀 더 빨랐던 거 같은데?"
렌게는 눈을 감으며 곰곰히 추억들을 되새김질 해보았다.
"확실히. 몸이 삼각형이라서 그런지 물의 저항을 덜 받을 것만 같아."
"그랬던가...? 그 때의 난 아야메를 동경만 하고 있어서... 비교할 생각도 품지 않았어."
"자신감을 가져. 이젠 부장이잖아?"
"응... 내가 아야메보다 나은 건 청초한 이목구비와 백옥 같은 피부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의외의 강점도 있었어."
'꿈틀'
"어? 또 움직였다. 뭔가 자극 받은 거 아니야?"
"눈 주변이 떨리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니까"
"혹시 모르지. 이렇게 아야메를 열받게 만들면 홧김에 일어날지도"
"마른 입으로 사담을 나누는 것도 힘든 일이네 뭔가 마실 거라도 내올까나"
"오. 키쿄가 대접해주다니. 잘 마실게"
"흠."
허나 냉장고가 열리는 소리를 끝으로 정적만이 흐를 뿐. 차의 은은한 향은 느낄 수 없었다.
잠깐의 딜레이 후. 양말이 마루와 마찰하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냉장고에 있던 내 말차. 누가 마신 거야. 빨리 자수해"
이런. 단체 생활의 비애인가. 아무리 막연한 사이라도 최소한의 경계는 필요하다.
"......"
"용의선상은 좁거든? 결국 발각될 운명이니 빨리 말해"
"에이~ 겨우 차 한 잔에 그렇게 서로 얼굴 붉혀야 할까?"
"고작 차 한 잔이 아까워서 이러는 거 같아? 남을 존중하지 않는 뻔뻔한 태도가 문제라고"
"난 아니야."
"나구사 선배가 아니라면... 렌게인가?"
"부장."
"하아아~ 나구사 부장이 아니라면 렌게구나?"
"아앙?! 왜 이런 건 항상 나 먼저 의심하는 건데?"
"그럼 아야메 선배가 마셨단 뜻이야?"
"끄응... 냉장고에 미지근한 차가 있으면 딱 봐도 남긴 거 같잖아. 그러니까 대신 처리해준 거지... 마침 단련 후라 목이 좀 말랐고."
"시인했구나. 쯧... 정말 귀찮게 군다니까. 고양이혀 부원이 있으니 차를 식히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런 간단한 추론도 못해?"
"귀찮은 건 키쿄 쪽이거든! 차갑게 마시고 싶다면 애초에 얼음을 넣어서 아이스 말차로 마시면 그만이잖아?"
"얼음이 녹으면 맛이 흐려지잖아. 하아~ 됐다. 소 귀에 경 읽기인가"
"참나 고작 차 하나로 사람 무안 주기는... 그 까짓 거 내가 하나 내올게 기다려 봐."
호언장담하며 주방으로 향한 렌게였지만, 무력에 치중한 삶 때문에 가사는 쉽지 않았다.
"자. 여기."
"......"
말차라기 보단 녹조가 낀 물이 대령되자 키쿄는 슬그머니 찻잔을 밀어버린다.
"뭐, 뭐야. 기껏 우려냈는데"
"누가 뭐래?... 맛있어 보이니 아야메 선배 주자."
"그럴까"
나구사는 녹조 말차가 든 찻잔을 든 뒤, 아야메 위로 원을 그리며 돌렸다.
"어때? 후배가 우린 차야. 향이 좋지?"
"그니까 왜 자꾸 제사 분위기인데..."
이번엔 음식을 무르지 않고 그대로 아야메 곁으로 유기하였다.
'꿈틀'
"또 꿈틀거리네"
"한 두번은 우연이라도 세 번은 뭔가 있는 거 아닐까...?"
"착각이야 선생님 생리 현상이라고"
"후루룩..."
차를 마시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생리 현상이라...
학생들이 누군가의 수발을 드는 건 가혹한 거 아닐까?
"조금 민감한 이야기인데. 아야메가 그... 실수를 한다거나 하면 너희들이 치우는 거니"
"엣- 갑자기 그런 화제를?!"
"다과 시간에 그런 이야기 꺼내고 싶어?"
"하지만 위생은 중요한 부분인 걸. 만약 너희들이 책임지기 힘들다면, 선생님이 간병인이나 요양 시설을 찾아봐 줄게"
허나 백화요란은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쉽사리 답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러고 보니. 난 한 번도 선배의 치부를 보지 못했어."
"나도. 나구사 부장이 몰래 처리해왔던 거야?"
"아니... 나 역시 몇 번 확인해 봤지만 그런 적은 없었어. 황혼에 잠식되었던 이 오른손. 기꺼이 아야메를 위해 희생하려고 봉인을 풀었는데 말이지. 크큭..."
선생은 살짝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키쿄와 귓속말을 가진다.
"뭔가 나구사가 부장이 된 뒤로 조금..."
"즐기게 내버려 둬..."
긴장한 상태에선 용변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선생 역시 훈련소에서 몇 주 동안 대변이 나오지 않은 동기가 생각났다.
하지만 소변은 하루도 못 참는 거 아닌가?
"음... 혹시 몽유병처럼 무의식으로 본인이 해결한 거 아냐?"
"정말이라면 뜻 밖의 일이네."
"밤중에 아야메가 움직이는 걸 본 적 없어?"
"모르겠어. 백화요란의 하루 일과는 고돼서 말야. 꼭두새벽부터 기상 후 단련하는 통에 밤이 되면 대부분 골아 떨어지거든"
"흐음... 흥미로운 걸"
별 생각 없이 꺼낸 주제지만 어느새 첨예하게 대립하는 논쟁 거리로 확대되었다.
그중 제일 접전을 벌였던 주장들로는,
아야메는 깨끗해서 대소변도 보지 않는다는 나구사의 '아야메 아이돌론'
아무것도 안 먹어서 무향인데다, 조금씩 싸서 말리느라 티가 안 난 거라는 렌게의 '방광 카이팅론'
'꿈틀 꿈틀'
점점 눈가에 균열이 생기더니 보라빛 자수정 같은 눈동자가 인사한다.
"ㅇ, 애들아! 아야메가 눈을 떴어!"
"아야메 선배?!"
"아야메...!"
"으어어..."
분명히 뭔갈 중얼거리는 듯 하였으나 바싹 마른 입 안에선 모든 발음들이 죽어버렸다.
"자. 이거라도 마셔봐"
렌게가 제조한 녹조를 마시자 입술이 안으로 말려 들어간다. 그 후 아야메가 띄운 첫 운은 충격적이었다.
"나...구사..."
"듣고 있어 아야메...! 뭐든지 말해봐"
"계승전을... 신청한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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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방광카이팅론은 못참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