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래빗 소대 인원이 한 명 더 늘었다. 하지만 어째 전력이 늘긴 커녕 오히려 사기가 저하된 느낌.
"그런고로 어둠의 전골을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유가 불쌍한 것과는 별개로 배가 고프니 일정대로 전골을 준비한다.
"소대원들과 순서를 상의하고 차례대로 줄을 서세요."
2열 종대로 정렬된 소대들. 약속이라도 한 듯 리더들이 맨 앞에 섰다.
"내용물이 보이지 않도록 냄비째로 가져가 즉석으로 재료를 넣는 겁니다."
"참 번거로운 식사네...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거람"
게임이란 개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지 미사키는 뺀질거리며 불만을 뱉는다.
하지만 몸은 솔직하게 전골냄비를 품에 꼭 안고 있다.
"전골 육수랑 조미료는 기본 제공. 그렇다면 1번 주자부터... 시작!"
미야코의 뒤로 미사키가 느긋하게 걸어간다. 역시 서두를 필요가 없을 정도로 냉장고는 만석이다.
"먹을 게 많네요. 게다가 각 학교 특산품까지... 선생님의 수완일까요."
"아무리 사양해도 제자들이 자꾸만 먹을 걸 갖다 줘서 말야."
"과연.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는 법인가-"
시니컬하던 미사키가 냉동실을 여니 잠깐 냉기에 몸이 굳는다.
지방과 살코기가 균등하게 붙은 차돌박이다.
"앗. 역시 전골의 기본은 고기겠죠."
그렇다 설령 누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더라도 고기만큼은 요지부동.
미야코가 냄비에 차돌을 담고난 뒤에도 미사키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
그녀는 고민하고 있다. 확실히 좋은 고기는 맞지만...
지금은 다른 대원들까지 의식해야 한다.
히요리는 분명 뽕을 뽑기 위해 고기를 보자마자 득달같이 잡을 터
두 명이 중복된 재료를 선택한 순간, 밸런스가 망가진다.
하지만... 미사키 역시 고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진 상태.
지금은 전골에 고기 말고 달리 무슨 재료가 들어가나 기억도 안 나는 지경
"호오. 미사키양. 어차피 배에 전부 섞인다고 의미 없다 하지 않았나~ 오늘은 바니타스 바니타툼 안하나."
"......끄응!"
경종을 울리듯 냉장고에서 삐삐거리는 경고음이 나온다.
냉동실 문을 너무 오래 열어둔 것이다.
"미사키양~ 샬레 전기세는 모두의 세금이라고"
"시, 시끄럽거든...... 자. 골랐어!"
미사키는 차돌박이와 뿅코를 들고 전골 냄비에 넣으려 했다.
"스톱! 무슨 짓입니까?! 그건 제가 기르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왜 냄비에 안 넣은 건데"
"식용이 아니라 애완용입니다!"
잠깐의 소동이 있었으나 둘은 재료 선택을 마쳤다.
이제 전골 냄비는 주방에 맡기고 다시 탕비실로 돌아가 다음 차례와 교대한다
"흠..."
사키는 큰 고민도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버섯들을 담았다.
'미야코가 생각을 잘했구만. 대원들의 기호 식품을 고려해 챙긴 거였어.'
'이 다음 차례라면 앞에서 고기를 챙겼겠다 예상하고 다른 재료를 고르겠지'
그에 반해 아리우스는
"아... 고기"
역시 만인의 예상대로 히요리는 똑같은 차돌박이를 챙겼다.
앞선 두 명이 가져가 절반 정도 빈 팩을 통째로 들었다.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스트레스로 뒷발을 구르던 뿅코마저 들어 올린다.
귀를 잡혀 발버둥치던 미물이 가여웠는지, 히요리는 얼른 도마를 찾는다.
"이봐! 무슨 짓이야!"
"앗! 죄송합니다... 확실히 살이 좀 덜 올랐네요... 헤헤..."
"애초에 그건 우리 소유라고."
더 이상의 수모를 방지하기 위해 선생은 뿅코를 잠시 사무실로 빼냈다.
다음은 미유와 아츠코... 둘 다 평온해 보이는 인상에 무난한 선택을 할 것만 같지만
왜 옛말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오른다는 말도 있지 아니한가
"흐음~"
아츠코는 냉장고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제일 중요한 전골용 소고기가 없단 걸 눈치챈 뒤. 꿩 대신 닭이란 듯 신선실을 확인해본다.
"아. 맛있겠다."
거기서 고른 건 삼겹살. 선생은 웃음이 터지려는 걸 가까스로 입으로 막았다.
히요리가 욕심을 부려 통째로 가져간 탓에 에러가 발생
졸지에 아리우스는 설마하던 고기 3연벙 달성.
"그걸로 괜찮겠니?"
"...네."
그리고 미유의 선택은 예상외였다.
***
래빗 소대 측 마지막 차례 모에까지 재료를 냄비에 담았다.
아리우스는 수적 열세로 맛의 풍부함에서 손해를 봤지만,
이 게임의 승리 조건은 완식. 먹을 양이 줄어든 건 호재라 볼 수 있다.
"두근 두근 거리지 않니?"
모든 재료를 섞은 다음 버너에 올려 데우기 시작한다.
다들 맛있는 냄새를 음미하는 동안 위화감을 감지한다.
"그으... 원래 전골에서 이런 소리가 나나요...? 제대로 된 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헤헤..."
국물이 끓는 소리가 아닌 무언가가 튀겨지는 소리에 미사키는 급히 전골 뚜껑을 개봉한다.
육수는 흔적도 보이지 않고 무수한 기름에 고기들이 튀겨지고 있었다.
"켁."
"아아. 아리우스측 전골은 정체성을 잃어버려서. 육수를 넣으면 넘치니 그냥 양념만 쳤어."
"이건... 아아..."
몸을 떨던 히요리와 아츠코는 이내 건치를 보이며 웃는다.
"오, 오랜만에 포식이네요! 고기가 이렇게나 많이!"
"응! 삿쨩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긍정적인 건 보기 좋았으나 역시 비주얼 면에선 래빗소대가 전골 본연의 모습에 가까웠다.
"크으~ 이게 진짜 전골이지. 저긴 무슨 스모 선수 식단 아녀?"
"오. 우동까지 있네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좋은 센스입니다."
"밥이 없었는데 딱 적절하네. 뭐 원래는 후식으로 넣는 게 제맛이지만-"
허나 우동처럼 보이던 가닥은 사키의 젓가락에 바스라져 사라져버렸다.
조금의 정적이 흐른 뒤 소대는 방금 사라진 존재를 부정하듯 국물을 떴다.
"...잘 먹겠습니다."
국자로 덜어 충분히 식혔지만 마시자 마자 도로 뱉어버렸다.
"구웨에에엑-!"
달다. 채소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운 단물 맛이 아니라 고도로 정제된 당의 맛이 난다.
"사키. 천천히 불어 드세요. 실례지 않습니까... 우읍!"
피해자가 연속으로 나오자 군말 없이 해제 작업이 시작된다. 우동사리로 보였던 희멀건 액체는 생크림...
전골 바닥엔 땅콩 분태 같은 것도 있는 걸로 보아, 누군가가 디저트를 너무 일찍 넣은 것 같다.
"어떤 미친년이야?! 모에 너지!"
"아앙~? 왜 이런 건 나 먼저 의심하는 건데!"
일단 올곧은 미야코는 아니다. 한소끔 담겨 있는 버섯들로 보아 사키 역시 아니다.
모에 마저 부정한다면 범인은 자연스레 미유를 가리킨다.
'복수'
이 단어가 뇌리를 스치자 격앙된 분위기는 정반대로 반전되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건 물론, 한여름에도 식은땀이 흘러내릴 정도였다.
"......"
미유는 침묵한다. 때때로 언어가 없어도 전달되는 뜻이 있다. 표정에서 발산되는 서슬퍼런 악의 말이다.
흥분하여 자리에 일어섰던 사키도 얌전히 엉덩이를 붙인 뒤 전골을 바라본다.
제일 편안해야 할 식사 자리가 고문처럼 변해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우리한테 화를 내는 건 이해하지만, 선생님의 식량까지 희생시키는 건'
끓고 있는 전골을 먹지도, 버리지도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상황 속에서
소대장 미야코는 다시 한 번 국자를 잡았다.
"!" "!" "!"
이 우중충한 밀회 속에서도 휘둥그레한 눈들이 별처럼 빛난다.
미야코는 맛을 알면서도 뒤틀린 전골을 그릇에 담는다.
"야 야... 그걸 굳이 왜 먹는 거야."
"맞아. 어차피 이겨봤자 얻는 건 달랑 디저트인데"
갖은 만류에도 미야코는 젓가락을 놓지 않는다. 기합이 제대로 들어간 듯 양배추와 함께 딸기가 씹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
아아.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폭우가 캠프를 집어 삼켰을 때도 미천해보이는 야전삽으로 물을 퍼내었다.
다들 처음엔 가식이라 생각했었다. 소대장이라는 대외적 명목에 목줄 잡힌... 성숙하면서도 어린 아이라고
"우물... 우물..."
허나 미야코는 다르다. 맹목적인 행동이 아니라 신념에 기반한 행동은 주변을 감화시킨다.
"...맞다. 내가 심사하기로 했지."
선생 역시 조용히 국자를 들고 녹아 내려가고 있는 케이크를 조심히 퍼간다.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기시감에 소대원들도 하나 둘 냄비로 모인다.
"다들 억지로 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번 사태는 소대원 관리에 소홀했던 제 실책이기에-"
"옆에서 병풍 마냥 가만 있으면 미야코 혼자 멋지게 만드는 거잖아. 절대 사양이거든~"
"......"
"그나저나 선생님은 배짱 있게 가져가더니 벌써 포기?"
"아. 이거 사람 불러야해. 이즈미 불러야... 우욱!"
"우리들의 저력을 보여줘야겠는 걸. 노숙 생활로 닦은 비위를 보여줄게"
당차게 말했던 모에였지만 곧 버섯 앞에서 의지가 꺾인다.
국물을 잘 빨아들이는 버섯 특성상, 잡탕맛을 농축 시킨 어뢰가 되어버린 것
"안 먹을거면 내놔."
사키가 모에의 버섯을 빼앗아갔다. 의도치 않은 팀워크에 선생의 눈에서 불이 켜졌다.
"오오. 사키의 전우애. 감동이야."
"뭐, 뭐라는 거야! 이 녀석한테 주긴 아까운 버섯이라서-"
"이 참에 화해해라!~ 화해해! 화해해!"
선생의 구호에 학생들이 하나 둘 따라한다.
이윽고 적군인 아츠코와 히요리까지 따라하니 사키의 얼굴은 터질듯이 빨개졌다.
"그니까! 애초에 안 싸웠다니깐!?"
둘의 거리가 처음 샬레에 도착했을 때보다 가까워진 느낌이다.
역시 내부를 결속 시키는 최적의 방법은 외부의 적을 만드는 것인가.
"아아... 슬슬 물리는데..."
"에에....... 확실히 과유불급이네요... 이, 이러다 고기 맛을 못 느끼는 불감증이라도 걸리는 것 아니겠죠...?"
수월해보였던 아리우스의 전골. 허나 고기 일변도라는 양날의 검 앞에 가로막힌다.
"상대의 속도가 줄어들었습니다. 다들 조금만 더 힘내십쇼! 고생한 미유를 위해 디저트를 선물하는 겁니다."
"나, 날 위해...?"
"아아... 응당 우리가 받아야 할 벌이겠지. 넌 먹지 않아도 돼 미유."
"호에에..."
그렇게 래빗 소대는 하나된 유대의 힘으로 전골을 공략해나갔고
결국엔 졌다.
"아아... 하다못해 밀크 초콜릿이 아니라 다크 초콜릿이었다면 승산이..."
"진 건 진 겁니다."
간만에 화목해 보이는 모습에 기분에 따라 돈이 움직인다.
다 같이 설거지를 마치고 힘이 노곤하게 풀어질 때 쯤. 배달부가 커다란 봉투를 쥐고 올라왔다.
"자, 약속대로 승리팀은 디저트입니다."
"글쎄... 속이 니글거려서 더는 안 들어가"
"그럴 줄 알고 과일도 시켰지. 기름이 소화되게 도와줄 거란다."
"와아~"
부러운 눈길로 흘끔거리던 래빗 소대에게 웃으며 다가가 타르트를 건네준다.
"래빗 소대는 비록 승부에서 패배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점, 맛 없는 전골 때문에 불화가 생기지 않는 점을 높이 사 가산점을 부여. 무승부로 인정한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어이어이 수련회 마지막 날 메타냐고~ 고맙다고~"
당분이 몸을 감싸자 긴장이 풀어진다. 특수부대라지만 입가에 크림을 묻혀두고 말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고1이었다.
"이야~ 미유한테는 제대로 한 방 당했어. 앞으로 절대 업신여기는 일 따위 없을 거야."
"나?... 내가 뭘 했다고..."
"응? 미유가 전골에 이상한 걸 섞은 거 아니었어?"
"아, 아니야...! 다 같이 먹는 거에 장난을 치면 못 쓰지... 나도 배고팠고..."
"정말?"
마침 미유가 재료를 고를 때 같이 있었던 선생이 변호해주었다.
"아. 미유가 고른 것도 의외였지만 절대 못 먹을 건 아니었지"
"뭘 골랐는데?"
"쑥갓이랑... 곤약. 존재감은 적지만 막상 없으면 허전하잖아... 뭔가 동질감도 느껴져서 헤헤..."
자신을 식재료랑 동급 취급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지금은 범인 찾기가 더 시급했다.
"아니 그럼 도대체 초콜릿이랑 케이크를 넣은 놈은 대체..."
"아, 그거 난데"
모에는 뻔뻔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아니 그야 참을 수가 없잖아. 어둠의 전골 같은 이벤트는 먹는 목적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거니까. 뻔한 레시피는 재미 없지."
"너... 너...!"
"그래도 사키 표정은 맛있었어. 그렇게 선생님을 기쁘게 해줘야 이렇게 콩고물이 떨어- 꾸웱!"
기껏 화해했나 싶었더니 결국 둘은 또다시 개와 고양이처럼 싸워대기 시작했다.
"허허. 녀석들..."
여러 일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학생들의 숫자가 전부 올라가는 상승장이었다.
미야코-94 사키-41 모에-62 미유-29
미사키-59 히요리-43 아츠코-84
"탄복. 역시 선생님에겐 혜안이 있으시군요. 아직 설명도 안드렸는데 착실히 점수를 올리고 계시다니"
"프라나쨩?!"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깜짝 등장.
싯딤의 상자 업데이트가 끝난 후. 드디어 기어 나온 프라나다.
다음편에 계속...
댓글 10
뭐지 대체???

모에 이 미친년이
언제나 재밌게 보고 있음. 다음엔 제데로된 캣파가 보고 싶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