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토스.me
홈모음집마이페이지
SUBSCRIBED
EXPLORE
BA블루 아카이브BR봇치 더 록!ZZZ젠레스 존 제로GI원신HSR붕괴: 스타레일모든 채널 보기
문의하기
블루 아카이브
블루 아카이브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10)
/블루 아카이브
광고

10. 정체불명의 안개

노을이 서서히 지는 트리니티의 백색 테라스를 배경으로 나기사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짙은 시트러스 껍질과 민트 향이 감도는 다기의 내용물을 코끝으로 음미하는 나기사는 그것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이 되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무엇 하나도 특별할 것 없는, 티파티의 또다른 애프터눈 티 타임이었다.

평소와 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건 이따금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뱉는 테이블 위의 커다란 통신 장비, 그리고 작전 지도였다.

찻잔 끝에서 우아하게 입술을 뗀 나기사가 나긋한 목소리로 지시 사항을 읊었다.

“제4간선도로 2-51에 연막탄 포격을 지시합니다. 좌표와 시각은 송신한 테이블에 맞추세요.”

정확한 발성으로 깔끔한 지시를 끝낸 나기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다시 홀짝거렸다.

나기사 맞은편에 앉은 보좌관이 나기사의 고갯짓을 보고 채널을 바꿨고,

나기사는 곧이어 또다른 지시 사항을 내렸다.

“츠루기 씨, KV 14번 고속도로는 말씀드린 것처럼 일시 폐쇄됐습니다. 인터체인지 입구에 위장한 공사 차량을 보내 놨어요. 터널 입구를 붕괴시켜 출입을 막아 주세요.”

무전기 너머에서 인간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찢어지는 괴성이 들려 왔다.

“후후, 츠루기 씨는 오늘도 기분이 좋아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그럼 부탁합니다.”

나기사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고, 보좌관은 익숙한 모습으로 다시 채널을 돌렸다.

“하스미 씨, 츠루기 씨가 지정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약 2분 30초 뒤에 시에라 5 포인트, 킬로 2-3 포인트로 고폭탄 TOT 사격이 착탄해 폐건물 잔해들로 진로를 막을 겁니다. 그럼 게헨나 전차들은 30 애비뉴를 가로질러 하스미 씨의 관측반이 대기중인 장소로 우회를 시도할 거에요. 그때 도로 상단의 대전차 방호물에 설치한 폭발물을 기폭시켜 도로를 차단하세요.”

“알겠습니다.”

하스미의 명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지그시 감은 나기사가 차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히후미 씨를 추격하는 차량들은 그걸로 다 증원이 막히게 됩니다. 남은 것은…”

나기사가 복잡한 메모와 선들이 가로질러진 블랙 마켓의 지도를 손끝으로 빠르게 훑어내렸다.

“그래요. 만마전의 지휘 전차 단 한 대 뿐이겠네요.”

여유가 가득찬 태도를 가장하고 있었지만, 나기사의 안색을 조심스럽게 살피는 보좌관은 그녀의 입술과 찻잔을 든 손끝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저라도 그건 어떻게 할 수가…”

“그걸로 충분합니다. 나기사 씨. 티 파티의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아니요,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코 씨와 하스미 씨의 부탁인걸요. 그건 곧 호스트인 제 의무이기도 합니다.”

“남은 일은 하나코 씨와 저희 정의실현부가 처리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려요. 그리고 모든 수를 써서라도…”

“모두를 무사히 귀환시켜 달라는 말씀이셨죠.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염려하지 마시길.”

수화기 너머에서 자신감으로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히후미 씨는 제가 아는 누구보다도 우수한 전차 승무원입니다.”

…승무원입니다…

입니다…

…입니…

비몽사몽인 하스미의 정신에 시끄러운 무전기 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하스미 선배! 하스미 선배! 무사하신가요?”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눈이 먼 건가요?’

감각이 희미한 손끝이 움직였다. 외상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팔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갑자기 먹물 같은 어둠이 그쪽을 모조리 가렸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요? 뭔가 폭발한 건가요?”

손끝으로 얼굴을 대충 훑었지만, 파편에 의한 화상이나 자상 따위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안구는…멀쩡한 것 같았다. 확신은 없었지만.

‘너무 어두워요. 이게 무슨 일이죠…?’

정신이 흐릿해 똑바로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이지?

‘아무 것도…생각나지가…’

“하스미 선배! 어둠이 번져 나가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입니까? 연막탄 같은 거라도 터트린 건가요?”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손을 더듬었다.

가까운 곳에서 뭔가 단단하고 각진 물체가 잡혔고, 하스미는 그걸 억지로 끌어당겼다.

…무거웠다. 너무 무거웠다. 이건 분명 무전기의 수화기일 텐데. 이게 이렇게 무거운 물건이었나.

“여기는… 하스미에요. 무슨 일인가요.”

익숙한 느낌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 이것과 비슷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언제였더라.

“무슨 일이냐니… 그건 제가 물어봐야 할 일이라구요 선배!”

무전기 너머에서 마시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스미 선배가 계신 블랙 마켓의 허공에서 갑자기 먹물…? 같은 것이 나타나더니 그 부근 전체를 완전히 새까맣게 물들여 버렸어요! 선배는 괜찮으신가요?”

“저는…”

하스미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자신이 괜찮은 건지도 알 수 없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긴 그녀도 매한가지였다.

“잘 모르겠어요. 마시로… 아무 것도 알 수가…”

“하스미 선배, 목소리가…”

무전기 너머에서 불안한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요?”

“목소리가 아리우스와 싸우다 중태에 빠져서 실려 오셨을 때랑 똑같습니다. 괜찮으신가요?”

‘아… 그런가. 그런 느낌이었나.’

이 기시감이 느껴지는 피로함은 그때의 것이었나.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다친 곳도 없을 거고, 장시간 싸운 것도 아닐 터였다.

“네. 마시로. 저는 괜찮아요. 그냥 좀…”

그래서 이게 무슨 느낌인지 설명하기 너무 어려웠다.

왜 피곤한 거지?

“피곤한 것 같군요. 그냥…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뭘까요. 이게…”

하스미의 심하게 추상적인 상태 묘사에 마시로는 불안감이 커져만 갈 뿐이었다.

“그, 그런…”

“히후미 씨의 전차는 잘 탈출했나요?”

“네! 상대 전차를 멋지게 따돌리고 트리니티로 넘어가는 대교 쪽을 향했다고 합니다. 단지…”

마시로가 불안한 목소리로 한 마디 덧분였다.

“단지?”

“대교를 넘어가자마자 벽에 성대하게 충돌했다고 하더군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교전 중에 브레이크가 당한 걸까요. 전차 안에서 미카 씨도 무사히 발견됐습니다.”

‘역시 해냈군요. 그녀들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하스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아아. 그런 거라면… 제가 데리러 가면 되겠군요.”

가서 칭찬해 줄 것도 많을 것 같고. 마침 좋은… 좋은 기회였다.

기회… 무슨 기회라는 거지?

“하지만 하스미 선배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제 상…태가 어떻길래요?”

뭔가 말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입술은 한 번도 열린 적 없던 것 같았고,, 혀는 납덩이로 만들어진 것처럼 무겁기만 했다.

“그냥 목소리가… 목소리가 너무 불안해요! 하스미 선배 모르시는 건가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목소리라구요!”

“과장이 심해요 마시로. 전 그냥… 좀… 졸린 것 뿐이니까…”

하스미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하스미가 흔들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 더할수록 그건 마시로에게 최후를 앞둔 히로인의 대사처럼 들릴 뿐이었다.

“곧… 따라갈게요.”

“네? 하스미 선배? 하스미 선배!”

울음보를 터트리기 직전이 된 마시로의 외침이 무전기 너머에서 아련하게 들려 왔다.

왜 이렇게 졸린 거지.

저항할 수 없는 수마가 덮쳐 왔다.

졸릴 이유가 없는데.

눈꺼풀이 경련하며, 강제로 닫혀 왔다.

상처도 없는 것 같고, 그냥… 그냥…

뭔가 아련한 그리움과 안락함이 무겁게 몸을 짓누르고, 단 한 가지 욕구만이 곧이어 몸을 지배헀다.

‘쉬어. 하스미.’

귓가에 누군지 알 수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누구 목소리지? 기억날 것 같기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어요...’

분명히, 단 한 번 들었을 뿐인 목소리였지만, 그건 확실히…

생각… 생각이…

‘잠시만 쉬다 오면 돼.’

끝없이 멀어지는 의식 저편에서, 하스미는 눈가를 마지막으로 가리우는 커다란 박쥐 날개를 본 것 같았다.

총학생회의 긴급 회의실은 휑했다.

선생님의 실종을 알고 있는 각 학원의 대표자에게 긴급 호출을 보냈지만, 도착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히마리와 실장 두 명만이 피로에 찌든 린 옆에 얌전하게 앉아 빈자리를 하나씩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알고는 있었지만요…”

린 옆에 앉은 히마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도 역시나 이건 좀 기대 이하라고 할까요.”

“동감입니다.”

린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로 대답했다.

텅텅 빈 회의실을 둘러본 린 역시 얼마 전에 있었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도 선생님이 안 계셨고, 그분이 안 계신다는 걸 알자마자 각 학원들은 비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다 바로 돌아가 버렸었다.

‘총학생회의 권위가 존중받지 못하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하지만…’

이런 모양새라면 이건 그냥 내부 회의가 될 뿐이었다.

“이래서야 학원들이 모여 대책을 의논한다는 원래의 취지는 완전히 무산된 셈이네요.”

“그, 그러게요.”

아유무가 맞장구쳤다.

“저는 일단 명색이 조정실장인데… 조정할 학원들이 아예 불참이면 할 수 있는 일조차…”

“그래도 어쨌든 회의는 회의니까, 의제를 간략하게 요약해 보도록 할까요.”

에헴. 하고 히마리가 의제를 꺼냈다.

“블랙 마켓 주변에서 발생한 정체 불명의 안개와 관련된 조사입니다.”

그리고 뭔가 반응을 기대하는 모습으로 테이블 너머를 둘러봤고, 회의실에 잠깐 정적이 감돌았다.

그야 당연했다. 히마리의 말을 듣고 있는 건 불안하기 짝이 없는 표정의 린과 그녀의 보좌관 둘 뿐이었다.

“저기, 뭐랄까… 박수 같은 건 없나요? 뭔가 좀 이렇게, 짝짝짝… 이라던가.”

“이런 때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린이 딴지를 걸었지만, 테이블 저편에 앉은 아유무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작게 박수를 쳐 줬다.

“어머나. 고마워요 아유무 씨.”

히마리가 아유무를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휠체어 위로 뜬 홀로그램을 손짓으로 조작해 보이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음… 그러네요. 뭐라고 할까요. 이게 그 최근 소문이 들리던 블랙 마켓에서의 유행성 수면병의 정체였군요.”

“정체라고 하심은?”

린이 물었다.

“네에. 이 사진을 봐 주시겠어요?”

히마리가 뭔가 더 조작하더니 테이블 한가운데에 홀로그램 사진들을 띄워 보였다.

“이건…안개인가요.”

사진들을 주의 깊게 바라보던 린이 한 마디 했다.

히마리가 띄워 보인 수많은 사진들은 농도가 짙은 검은 색의 안개가 건물 사이사이로 빠르게 번져 나가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그래요. 짧게 요약하자면 이게 바로 얼마 전 블랙 마켓을 휩쓸듯이 지나간 안개입니다. 안개라고 하기엔 공기 중에 먹물이 퍼진 것처럼 이질적이고 짙은 색이죠? 이 안개에 닿은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극심한 수면 욕구를 느끼게 돼요.”

히마리는 손짓으로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였다.

공기 중에 먹물이 퍼져 나가듯, 짙은 검은색이 블랙 마켓 전역을 어둡게 뒤덮는 모습들이 다양한 각도로 찍혀 있었다.

“이 병과 관련해선 소문만 무성한 상태였어요. 다들 문제가 산적해 있었기 때문에 블랙 마켓까지 찾아가 이런 뜬소문을 조사해 볼 사람이 없었던 게 문제였던 거죠. 그 점에 대해선 우리 밀레니엄도 마찬가지였으니 반성해야겠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이건 정말로 사각 지대였네요.”

“하지만 이 안개 발생 전에도 소수의 게헨나 학생들이 이미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네에. 공교롭게도 이 안개의 발원지가 그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던 블랙 마켓 외곽의 한 창고입니다.”

“게헨나가 말했던 ‘비밀 구출 작전’을 위해서 말이군요.”

“그렇죠. 그런데 거기서 트리니티 학생이 발견되었고 말이죠. 아마도 그게 트리니티 쪽의 오해를 산 것 같아요. 결론적으로… 그게 폭발 직전에 있었던 무력 충돌의 원인이 되겠네요.”

사정을 모르는 트리니티 쪽에서는 티파티의 전 구성원이 해당 창고에서 발견됐다는 것만 해도 충분히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트리니티의 아가씨들은 납치와 인질극의 대상으로 인기가 높았으니,

아가씨 중의 아가씨인 미소노 미카가 대상이 되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이게 블랙 마켓 전역을 뒤덮은 건가요?”

린이 질문했다.

“아니요.”

히마리가 고개를 저었다.

“사실은 더 나쁘죠. 이 검은 안개는 이미 블랙 마켓 전역을 뒤덮은 이후 이미 각 학원으로 퍼져 나갔어요.”

히마리가 또다른 자료를 꺼내 보였다.

안개의 농도를 표시한 그 지도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안개가 이미 키보토스 전역을 향해 퍼져 나가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여기에 닿은 사람들은 잠든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실제로 그래요.”

이번엔 테이블 한가운데에 안개 농도와 관련된 상세한 데이터가 떠올랐다.

“단지 블랙 마켓 바깥쪽에선 그 농도가 옅으니, 이상 현상의 발원지인 블랙 마켓 중심부보다는 훨씬 그 영향이 덜하겠죠. 하지만 이미 몇몇 밀레니엄 학생들에게도 증상이 발현되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학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믿어요.”

“맞아요. 총학생회 인원들도 상당수가 연락이 끊겼어요.”

아유무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헨나와 트리니티의 무력 충돌이 시작된 시점에 사태 파악을 위해 나가 계셨던 아오이 선배도 그렇구요. 이럴 때 연락이 끊기는 분이 아니신데..."

그리고 그게 회의실에 총학생회 소속의 임원이 단 세 명만 모인 이유였다.

“그런데 이 정보들은 어디서 입수한 거야?”

모모카가 과자를 으적거리며 질문했고, 이번엔 린이 그 질문에 대답했다.

“모모카, 이 정보는 티 파티에서 직접 제공한 거에요.”

“으엑, 그 능구렁이 같은 작자들이 직접 전해줬다고? 린 선배한테?”

“티 파티의 호스트가 제게 직접 전달한 정보입니다. 더불어 블랙 마켓에서 있었던 ‘간접적’인 ‘소규모 무력 충돌’에 대해서는 심심한 사과를 전하고, 그 책임도 지겠다고 하더군요.”

“그 여자는 블랙 마켓의 블록 몇 개를 모조리 박살낸 그 포격을 ‘간접적’이니 ‘소규모’니 하는 말로 뭉개 버리는 거야…”

모모카가 과자를 먹다 말고 질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특히나 도로를 완전히 박살내 놓는 바람에 내 책상 앞으로 미친 듯한 피해 평가 보고서가 올라왔었다고. 어쩔 거야 이거? 트리니티가 보상 금액을 제때 주긴 할 거라고 생각해? 만약 안 준다면 나중에 아오이 선배가 깨어났을 때 뭐라고 말해야 해?”

“다행인 점은 인명 피해는 조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아마도 트리니티나 게헨나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것만큼은 주의했을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제 와서는 그런 일은 차라리 사소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린이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말을 했다.

“그건 뭐… 그렇지만…”

“맞아요. 린 씨 말대로 블랙 마켓이 유사 무인지대가 된 이상 더 불평할 사람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어요.”

아유무가 그렇게 말하며 들고 있던 서류를 한 장 넘겼다.

그곳 도로를 이용할 사람은 이제 있지도 않으니까 말이죠. 아유무는 그 말까지는 굳이 하지 않았다.

“안개 발생 전에 게헨나는 이미 다수의 학생들이 블랙 마켓에서 증상이 발현됐다고 하더군요. 그곳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난 계기도 수면병에 걸린 게헨나 학생들의 구출 작전이었던 것 같고… 해당 작전의 지휘관이던 만마전의 나츠메 이로하 씨 역시 현장 근처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또한 트리니티 정의실현부의 부장과 부부장이 행방불명, 기타 많은 학생들과…”

아유무가 다음장을 넘겼다.

“더 많은 학생들이… 그리고 사실상 블랙 마켓 주민의 전부가 잠든 걸로 추정됩니다.”

“와. 그건 정말 뒷수습이 장난이 아니겠는데.”

“그래서 트리니티와 게헨나가 여기 오지 못한 건 십분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린이 말했다.

“핵심 부서가 기능 불능인 지금, 모모카 말대로 뒷수습에 사력을 다하고 있을 시점이니까요.”

“밀레니엄도 상태가 많이 심각한가요?”

그 질문에 히마리가 꺼림직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여기선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네.”

그녀가 습관처럼 걸린 부드러운 미소를 지우고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리오 회장은… 뭐어. 원래 믿을 만한 사람이 못 되었구요. 유우카 양 역시... 잠들어 버렸어요.”

“...”

“세미나는 아직까지는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지만 많은 기관들의 부서장들이 수면에 빠졌습니다. 현재 회복실에서 수면 중이구요.”

히마리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히마리가 황급히 밝은 목소리를 지어내 보였다.

“어머, 그렇게까지 심각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까 말했듯 편안한 숙면을 계속해서 취하게 되는 것이 증상의 전부고, 건강에는 다른 이상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히마리가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그 귀여운 후배는 항상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어서요. 차라리 이번 기회에 조금 잠을 자 두는 편이 오히려 좋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 보면 꽤 괜찮은 점도…”

히마리의 연기도 소용없이 자리의 다른 사람들은 의심과 걱정의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유우카 씨의 상태에 대해서는 저도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린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학생 대부분이 잠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심각한 일이 아닐 수는 없었다.

“문제는 이 잠이 언제까지 지속되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녀가 핵심을 짚었다.

“게헨나의 보고를 믿는다고 하면, 최초 발병자는 이 주 전에 블랙 마켓에서 처음 발견됐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수면과 궤를 달리 하는 ‘이상 현상’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이 증상이 더 장기화되었을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치료할 방법은 있는지 우리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린이 문득 떠오른 듯이 한 가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면병이 발병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안개 노출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게 이상하다는 겁니다. 히마리 씨의 말대로라면 우리 모두 다 이미 비슷한 농도의 '안개'에 노출됐습니다."

"이게 정말 안개가 맞긴 한 거야?"

"안개가 아니라 공기든, 바람이든, 사악한 기운이든, 뭐라고 부르던 간에... 안개의 중심 구역인 블랙 마켓과 거기서 최초에 발병한 인원을 제외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은 벌써 수면에 빠져들고 어떤 학생은 아직까지 깨어 있어요. 이건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을 듣자 히마리가 살짝 손을 들어 보였다.

“아, 그것 때문인데요, 베리타스의 후배들이 몇 가지 가설을 세워 봤거든요. 그 중 한 명은 벌써 잠들어 버렸지만…”

“어떤 가설인가요?”

“밀레니엄 학생 중 잠에 빠져든 학생들의 목록을 모아 프로파일링을 진행했습니다. 취미, 특기, 식습관, 체격과 신체 체력, 일정, 온갖 것들을 모아 빅 데이터로 치환했어요. 공통점을 찾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린이 그 말을 듣고 안경을 고쳐 썼다.

“신기하군요. 그런 데이터는 어떻게 남아 있는 겁니까?”

그리고 자신 없는 얼굴로 한 마디 덧붙였다.

“역시 S…NS…? 같은 걸 보셨나요?”

히마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질문을 듣더니, 별안간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네? 아! 아아아아! 그거 말이죠. 부끄러운 일입니다만, 베리타스 부원 중에 도청에 취미가 있는 후배가 한 명 있어서요. 그 데이터를 좀…”

“아니, 그걸 취미라고 해도 되는 거냐고…”

턱을 괸 모모카가 뜬금없이 튀어나온 고백에 질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밀레니엄뿐만이 아니더라도 여기서기서 샬레 도청은 꽤 흔한 취미라서… 아. 그러고 보니 여기도 누군가 도청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유무가 웃으면서 살벌한 농담을 했지만, 모모카는 그 말을 듣고 안색이 더 찌그러져 버렸다.

“어떻게 키보토스에는 제정신인 학원이 단 하나도 없는 거야? 린 선배랑 아유무도 참 고생이 많겠어~”

“아하하… 그 정도일까요…”

린과 아유무는 샬레 침입이 취미인 학생들도 꽤 있다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았다.

“모모카. 일단 이야기를 계속 들어 보죠.”

“아무튼 그래서 가설을 세웠는데요. 이건 어디까지나 가설입니다만, 꽤 설득력이 있다고나 할까.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요.”

“히마리 씨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아예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요.”

“어머. 신뢰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래도 이걸 100% 믿으라는 말은 드리지 않겠습니다만…”

히마리가 표정을 진지하게 바꿨다.

“블랙 마켓 근처에 있던 학생들을 제외하면…”

꿀꺽.

“수면병에 빠져든 학생들은 선생님이 실종되기 직전, 그분과 가장 자주 접촉했던 학생들입니다.”

광고
BA블루 아카이브·24.07.05창작

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10)

#소설#피폐
좋아요 0댓글 12저장 0
광고
EDC
EmptyBox작가
게시물 33개
외부 링크디시인사이드
게시일2024.07.05 01:00
조회3
광고

댓글 12

나
ㅇDC
ㅇㅇ24.07.05

선개추 후감상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ㅇDC
ㅇㅇ124.07.05
디시콘
ㅇDC
ㅇㅇ224.07.05
디시콘
ㅇDC
ㅇㅇ324.07.05
디시콘
ㅇDC
ㅇㅇ424.07.05
디시콘
광고

EmptyBox님의 다른 게시물

전체 보기 ›
TEXT
창작
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完)
EEmptyBox057
TEXT
창작
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33)
EEmptyBox016
TEXT
창작
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32)
EEmptyBox016
TEXT
창작
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31)
EEmptyBox014
TEXT
창작
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30)
EEmptyBox016
TEXT
창작
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29)
EEmptyBox017
TEXT
창작
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27)
EEmptyBox011
TEXT
창작
소설,피폐) 마지막 접속: 60일 전 (26)
EEmptyBox010

비슷한 태그의 게시물

TEXT
창작
소설)약피폐)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 - 3
슈슈퍼물라매081
TEXT
창작
소설)약피폐)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 - 4
슈슈퍼물라매076
창작
(소설피폐) 아코에게 장난치는 쓰레기 선생
ㅇㅇㅇ1107
TEXT
창작
소설)약피폐)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 - 5(재업)
슈슈퍼물라매079
TEXT
창작
소설)약피폐)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 - 1
슈슈퍼물라매075
TEXT
창작
소설)약피폐) 선생님이 우울장애를 진단받는 이야기 - 2
슈슈퍼물라매079
번역
4
피폐) 미안해, 미소노 양
Ddio_nand362
창작
피폐) 시로코 테러 1분전
330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