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78자
#아카네
원문 夜の機動戦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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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외출》
롤플레잉(아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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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 우편함을 보면 매일 뭔가 들어 있다. 학원 전단지라든가, 음식점 쿠폰이라든가.
한손 가득 들어올 정도라 하루라도 회수를 게을리하면 우편함이 넘친다. 가끔 정말 중요한 서류가 있기도 한 것이 악질이다. 일단 점심 도시락과 함께 우편물 뭉치를 들고 엘레베이터에 오른다.
점심을 먹고 분류를 시작한다. 오늘도 샬레는 한가하지 않다. 오늘은 맛집에 가고 싶은 기분이었는데... 라고 속으로 불평하면서 벌써 몇 번이나 봤던 것은 열지도 않고 버린다. 그러던 중 두툼한 광택지 한 장이 손에 닿았다.
"... 메이드 카페?"
업계 제일로 유명한 Maid'n Dream이 신점을 내는 모양이다. 무슨 가게인지는 알지만 그 소재와 접근성에 고개를 갸웃했다. D.U.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기슭에 있다. 요즘은 손님층이 다양해졌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역세권이 정석일 텐데.
"어머, 흥미로운 걸 보고 계시네요."
내가 분류하는 손을 멈춘 동안 집무실을 청소하던 무로카사 아카네가 다가왔다. 언제나 그렇듯 메이드 카페 직원들과는 격이 다른 『진짜』 복장이지만 아무래도 다른 메이드가 신경 쓰이는 걸까. 설마 『청소』를 위해서...?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순수하게 관심이 갈 뿐인 듯 하다.
"메이드 카페 순례?"
"네. 서비스를 받는 입장에서 보이는 것도 있고──귀여우니까요."
안경테 너머로 아카네가 눈웃음을 짓는다. 그럴듯한 말을 하고 있지만 본심은 뒤에 말한 부분인 것 같다. C&C 입부를 결정한 이유가 (표면상으로는) 메이드부였기 때문이다는 말도 이해가 간다.
"실례가 안된다면 같이 가시겠어요?"
"역시 갈 생각이구나."
"네. 산기슭이라면 명확한 컨셉을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주인님도 관심이 가지 않으신가요?"
"... 응, 확실히."
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카네는 곧바로 일정표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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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먼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끼어 있다. 숨만 쉬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도 누그러지고 맑은 날 야외 활동도 덜 힘들다. 가을도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 같다.
가게 근처까지 노선버스가 다니기 때문에 약속 장소는 샬레 근처 버스정류장이었다. 밀레니엄 자치구에 거주하는 아카네에게는 조금 먼 거리였기에 빨리 출발했지만 역시나 그녀는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 많이 기다렸어?"
"아니요, 저도 방금 왔습니다."
휴대용 선풍기로 바람을 쐬는 아카네와 상투적인 대화를 나눈다. 그 낯선 모습에서 신선한 인상을 받는다. 기억 속 아카네는 클래식한 메이드복이거나 대담한 잠입용 바니걸 정도였고 생각해 보면 교복을 입은 모습조차 본 적이 없었다.
"사복입은 모습은 처음 보네."
"주인님과의 외출은 단순한 외출이 아닙니다. 저도 신경 많이 썼답니다?"
칭찬을 바라는 듯 아카네는 순백의 플레어 스커트를 펄럭인다. 펄럭이는 옷자락 사이로 얼핏 보이는 발목 위로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맨다리가 옷감 사이로 어렴풋이 비친다. 레이스업 샌들 끝 발톱은 터쿼이즈 블루로 칠해져 있다. "어른스럽고 예뻐."라고 솔직한 평가를 전하자 아카네가 원하던 대답이었는지 기품있는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노선버스를 기다린지 몇 분, 밖에서 봐도 손님이 적어보이는 차량이 다가온다. 옆에 앉은 아카네 몰래 부디 오늘 하루만이라도 폭발 소동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버스 안에는 냉방이 강했고 아카네는 평소 사용하던 갈색 숄을 꺼내 레이스가 달린 오프숄더 블라우스 위를 덮었다.
"여름에도 갖고 다니는구나."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서. 그래도 오늘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왜?"
"후훗... 주인님이 옆에 계시니까요."
체온이 전달될 정도의 거리에서 아카네가 몸을 기대어 왔다.
정류장을 지나며 보이는 경치에서 편의점과 식당은 조금씩 줄어들고 초록이 늘어간다. 울창한 숲을 조금 지나자 이윽고 나무들 사이로 양옥 지붕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게 뭘까, 생각하는 순간 Maid'n Dream의 로고가 새겨진 간판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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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옥 뒤편에는 주차장이 있고 승용차 몇 대가 주차되어 있다. 의외로 줄이 길다. 주인이 매각한 정원 딸린 부지를 Maid'n Dream을 경영하는 회사가 통째로 매입해 메이드 카페 겸 무언가의 시설로 바꾸려 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주인님──앗."
아카네가 툭 내뱉은 말에 뒤에 줄선 손님들 사이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들렸다. 우리 앞 손님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고 "어서오세요, 주인님."이라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군요. 호칭을 바꾸지 않으면 혼란을 야기하겠네요. 바라는 바는 아닙니다만..."
"주인님은 좀 그렇네..."
"그럼... 달링?"
"읍?! 케흑, 케흑...!"
촉촉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사레가 들렸다.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아카네는 킥킥 웃고 있다.
"어떠신가요?"
"그, 그건 그것대로 다른 오해가 생길 것 같은데...!"
"그런가요...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렇다면..."
XXX 오빠──♡
연인에게 속삭이는 톤으로 이름을 불려 얼굴이 화끈해졌다.
"선생님! 선생님으로 충분해!"
"... 네, 알겠습니다."
내 반응을 즐긴 뒤 만족했는지 아카네는 싱글벙글 눈웃음을 지었다. 나를 주인님으로 부르며 섬기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지만서도 방심할 수가 없다. 키보토스에 온 이후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확인할 때 빼고는 처음이다. 심장이 진자처럼 흔들린다.
* * * * *
차례가 되어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저택같은 외관에서 짐작할 수 있듯 역사가 느껴지는 인테리어의 양옥이다. 항상 아카네가 입는 긴 치마에 클래식한 에이프런 드레스를 입은 직원이 천천히 가게를 안내한다.
시내 곳곳에 있는 대중문화의 상징같은 계열점과는 분위기부터 완전히 다르다. 카페보다는 찻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 했다.
"어서오세요. 주인님과 사모님 두분이신가요."
"아, 이 애는 아가씨──"
"네, 맞습니다."
"아카네...!"
정정을 막은 아카네가 기분 좋은 듯 직원을 따라간다. 메이드 카페에서 남자 손님은 주인님, 여자 손님은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으로 정해져 있을 텐데 이런 패턴도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 그런 관계... 로 보인 걸까. 난처한 채로 원형 테이블로 안내되어 앉는다.
가죽으로 된 메뉴판을 연다. 『모에모에큥』이나 『맛있어져라~』같은 퍼포먼스는 없다는 듯 다른 가게에서 보던 것보다 한층 더 수준높은 (가격을 포함해서) 식사와 디저트가 딱딱하게 늘어서 있다.
높은 천장에서부터 바닥을 비추는 샹들리에, 광택이 나는 곡선형 다리의 검정 가죽 의자, 양초를 형상화한 테이블 램프 등 내가 아는 메이드 카페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지만 고딕 그림 속으로 초대받은 듯한 몰입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 그럼 이걸로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사모님의 주문도 확인하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디저트도 주인ㄴ... 아무튼 같이 오도록 부탁드립니다."
온화해 보이는 점원이 테이블 담당 메이드에게 주문을 받는다. 동업자를 품평하는 눈빛으로 아카네는 메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거리가 적당히 벌어지자 소리를 내지 않고 손끝으로 작게 박수를 쳤다.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세련됐네요."
"아카네의 눈으로 봐도 그렇게 느껴지는구나."
"네, 각 계열점에서도 엄선된 메이드만 모은 것 같네요. 저도 본받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후후훗, 사모님이라...♪"
"어, 응. 아카네가 어른스러워서 그런 거 아닐까."
아카네는 옅은 눈웃음을 지으며 몹시 만족스러운 듯 했다. "섬기는 몸으로서 어찌 그런..."이라고 부정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입안에서 조그맣게 "주인님과 사모님..."이라고 되뇌이면서 황홀해 한다. 롤플레잉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미약한 역할극같은 것이지만 아카네는 푹 빠져서 렌즈 너머로 애쉬브라운 색의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다.
이윽고 식사가 서빙된 뒤에도 아카네는 시종 싱긋 웃으며 때때로 무슨 생각을 하는 듯 멍하니 있었다. 카린과 메이드 카페에 갈 땐 더 엄격한 눈으로 메이드를 본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은 좀 후한 평가가 될 것 같네요."라고 작게 중얼거린 아카네는 작게 자른 프렌치토스트를 입에 넣으며 여고생답게 버터향의 단맛을 즐기고 있었다.
온화하고 우아한 아카네는 이 공간의 경험을 순수하게 즐기고 있었다. 메이드로서 나를 『주인님』이라고 부르고선 볼을 붉히거나 내 이름을 부르려 하는 것에 한 마디 하는 것도 멋없는 듯 해서 나도 모르게 그 장난을 용서해 버렸다.
입장 상 입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그 장난에 내가 일종의 쾌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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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주인님. 무심코 들떠 버려서 큰 결례를..."
숲을 빠져나오고 버스 창밖으로 인공물이 늘어날 즈음 정신을 차린 아카네는 눈을 바닥으로 내린 채 사과하고 있었다.
"결례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하지만 마치 배우자인 것처럼 행동해 버려서... 으으..."
멀리 노약자석에 앉은 승객이 정지 버튼을 누른다. 다음 정류장을 지나면 남는 승객은 맨 뒤에 앉은 우리 뿐이다. 이제 창밖에는 낯익은 D.U.의 풍경이다. 한 블록 지날 때마다 숲의 양옥의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아카네는 즐거웠어?"
"네? 네. 솔직히 말씀드리면 본분도 잊고 빠져들 정도였습니다."
"그럼 그걸로 좋아. 나도 즐거웠어. 지금도 즐겁고."
"... 주인님..."
아카네는 버스가 흔들릴 때 가끔씩 내 팔에 닿기만 하던 팔을 움직이더니 팔짱을 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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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노을이 지고 빨라지는 일몰도 여름에서 가을로 옮겨가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버스에서 내리고 몇 시간의 작은 여행이라고 부를 한때가 끝난다. 한참을 걸어 샬레 건물 앞까지 당도하자 아카네는 서운한 듯 팔짱을 풀었다.
"오늘은 정말 감사했습니다."
아카네가 크게 감사하며 고개를 푹 숙인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나는 아카네를 보며 웃었다. 조금씩 그녀의 분위기가 평소와 같아져 간다.
바람에 휘날리는 하얀 치마도 오프숄더 상의로 보이는 맨 어깨도 해가 지면 사라질 것이다. 조금 섭섭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카네가 입을 열었다.
"그 신점, 조만간 정원이나 발코니에도 테라스석을 만들고 조금씩 확장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응. 또 갈까."
"네, 부디! 주인님이라면 그렇게 말하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흐린 하늘이 맑아지듯 아카네가 외친다. 어쩌면 내가 다음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그녀에겐 들켰을지도 모른다.
밀레니엄으로 향하는 전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 너머로 사라지는 아카네──메이드도 바니걸도 아닌 평범한 무로카사 아카네──는 떠나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음 번에도 부부로서 가게 되는 걸까.
댓글 6
오
4000자가 안되는데도 분위기가 되게 풍부하네


